Reflecting Anger, Envy, Proud…

거의 제시간에 일어나면서 ‘아~ 어제는 조금은 이상한 날이었지.. 나의 몸이 조금 아프지..’ 하는 순간적 생각을 했다. 그 이상한 기분이 오늘 아침은 조금 다른 듯하고, 어제 저녁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오른쪽 어깨쪽지[나는 쭉지로 읽는다] 의 묘한 아픔도 조금 완화가 된 듯해서 조금 가볍게 일어났다

Ozzie도 기분 좋게 나를 반기고 온통 물기로 가득한 뒤뜰로 둘이서 걸었다.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드는 토요일 아침, 이런 기분이 계속되기를 빌면서… 오늘은 맑고 덥다고 했지..했던 일기예보를 상기한다. 그래, 중복이 지났어… 중복다운 더위는 그대로 감상을 해야지, 불평하지 말고…

 

 Anger, Envy, Proud 이 구절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것이 나에게는 어떤 것인지… anger… 밖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자부하던 나도 이제는 자신이 없다. 비록 물리적인, 눈에 뜨이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숨길 수가 없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도 ‘야비하게’… 싫다 싫어. 나의 문제는 ‘언어, 말’로 자신 있게 표현을 못하는, 안 하는 데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화’ 그 자체를 없애거나 줄이는 수밖에 없다.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왜 화가 났는지, 화를 안 낼 수 있는 길을 결사적으로 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나의 본성이요 성격인 것이다.

Envy…  좋은 것, 나쁜 것… 어떤 것인가? 진정으로 내가 되고 싶은 것,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재물이나 세속적인 것들이면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탓인지 많이 포기한 것들 투성이여서 큰 문제는 아닐지도. 살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했던 사실에서 보기에 모든 것을 성취하면서 산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러워 함은 지극히 정상일지도..

Proud…  나에게 자랑스러운 것들… 사회적으로 법을 따르며 사는 양순한 시민으로 살려는,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 하느님 공동체의 일원으로 할 일을 하는, 봉사단체를 통해 주위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려 사는 삶.. 이런 것들은 물론 자랑스럽다.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도를 지나친 proud가 나에게 있을까, 잘 모르겠다.

 

Ozzie와의 일상, 나에게도 삶의 활력을 주는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산책, 이것을 해야 나도 마음이 놓이고 그 녀석도 마음 놓고 푹 쉴 수가 있다.  이제는 보름이 훌쩍 넘어간 동안 아주 편한 여름휴가를 그 녀석은 즐긴다. 다음 주까지 하면 25일 이상을 우리 집에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 중의 하나다. 새로니 3식구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오늘도 어제의 큰 화두가 이어진다. 연숙이 C, S 자매들과 긴 통화를 한 결과로 우리가 조금 더 자세히 크리스티나 자매의 임종전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랄만한 소식은 없었지만 우리의 의문은 조금 풀린 셈이다. 우리에게 그다지 큰 ‘[나쁜, 서운한] 감정’은 없었던 듯 보이는 것인데, 사실 그럴만한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한번 이 자매의 독특한 자존심, 아니면 ‘anger, envy, pride’ 중에서 envy 쪽의 결함을 보는 듯했다. 아픈 사람에게 무슨 큰 고매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신앙인’이 아니던가? 그런 신심의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간 듯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자아집착 의식이 끝까지 높은 곳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것을 보면 나는 거꾸로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인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몸이 아파 죽겠는데 그것이 쉬울까, 모르겠다.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신문인의 이야기, 나이는 분명히 나보다 많을 듯한데… 갑자기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후에 쓴 깊이 있는 수필이었다. Boston Globe 신문에 게재된 것, 생각보다 자신의 신상을 솔직히, 자세히 밝히는 필자의 용기가 나는 정말 부러워진다. 그런 솔직함, 그것을 나는 부러워하고 나의 최대의 결함이라고 고백한다. 솔직함, 그것을 나는 나의 ‘개인적 일기’에서 문자화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현재까지 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는 사실을 나는 내 자신에게 조차 고백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조차 숨기는 사실들을 모조리 밝히려고 기를 쓸 것이다. 언제? 모른다, 오늘은 자신이 없고,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올해 안에… 노력해 보고 싶다. 내 자신의 모습을 내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모두에게…

 

비가 매일 한차례씩 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부수적을 모든 초록색 식물들이 무섭게 자라는 것은 크게 반갑지 않다. 먹을 것이나 꽃나무들은 문제가 없지만 소위 말하는 ‘잡초’들이 문제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잘 자랄까? 이것을 가만히 놔두면 미관상 집의 ‘가치’가 떨어지니 정기적으로 깎아야 하는데 이렇게 더운 여름, 특히 햇볕이 쨍쨍한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힘이 드니.. 남들처럼 gas power, self-propelled 가 아니고 electric cord를 일일이 끌고 다니는 것, 솔직히 주위에서 보면 내가 불쌍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air, sound pollution으로 주위를 괴롭히는 그들이 나는 더 불쌍한 것이다. 문제는 나이다, 나이… 언제까지 이런 육체적인 ‘노동’을 할 수 있을까? 아~ 10년만 젊었으면~ … 죽음이 화제인 요새 며칠, 나는 어떻게 임종을 맞이할 것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멘토..’ 교정, 재독을 보면서 ‘이냐시오’ 편에서 다음의 글에 관심이 간다. 이냐시오 영성의 출발점이라고 할까..

병상에 갇힌 이니고는 한 친척에게 책을 부탁했다. 그가 건네준 책은 신심 서적뿐이었고,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성인들의 삶에 매력을 느끼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도미니코 성인이 할 수 있었다면 나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평화로운 느낌이 밀려들었다. 그는 여기에 ‘위안’이라는 낱말을 썼다. 반면에 군인으로서 성공하거나 어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상상을 하며, 전에는 뜨거운 열정이 북받쳤는데 이제는 ‘씁쓸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그는 이 씁쓸한 느낌과 위안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봉사의 길로 이끄시는 손길임을 점차 알아차린다. 이 평화로운 느낌이 하느님이 자신을 당신께로 가까이 끌어들이시는 손길로 감지한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가 영성 생활에서 ‘식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길로, 이냐시오 영성에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올해 이냐시오 500주년을 맞이하는데, 이런 글을 읽으면 그 긴 멋진 역사도 이렇게 놀랍게도 간단한 계기가 원류가 되었다는 사실, 그것도 ‘책’에 의한 것, 등등은 아주 친근한 이야기다. 그래 책에 의한 것, 물론 요새는 영화나 인터넷 등등도 이런 것을 가능케 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확실한 것이 책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책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세계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그렇게 자주 올까? 그것도 나에게?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그런 번쩍하는 영감을 주는 글귀를 나는 찾고, 기다린다.

위의 글에서,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이 나온다. ‘식별’, 바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의 손길을 감지하는 것, 와~ 하지만 이 이냐시오 영성이 그것을 도와 준단다. 그것을 나도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예수회, 그것도 James Martin신부의 책을 몇 권씩이나 사서 읽는다. 이런 노력이 ‘탈 레지오, 후 레지오’ 시기에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도록 할 것이다.

 

처음으로 근육통의 귀찮음, 괴로움 같은 것을 경험한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아무리 근육을 많이 썼어도 이렇게 아픈 것을 보면 단순히 근육이 피곤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 근육이 뭉치거나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남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절로 낫는 것인가? 특별한 약이 있나? 현재 바른 쪽 어깨 죽지가 제일 아픈 것을 보면 그곳이 문제점인가? 게다가 오늘 그쪽의 근육을 많이 또 썼으니, 그것이 더 나쁠 것일까?  현재 감기기운으로 심란한데다가 이것까지… Tylenol이냐 Theraflu냐 망설이다가 후자로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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