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ey of the Universe, Pumpkin Spice

잠시 중단되었던 Coursera course, Yale University MOOCJourney of the Universe: 3rd course: The Worldview of Thomas Berry, Week 4의 끝부분에서 Berry의 essay  마지막 부분을 읽는다. 지금 읽고 있었던 것은 그의 사상, 논문을 요약한 책 Spiritual Master Series [Orbis Books, Maryknoll]중의 하나다.  이 course를 ‘청강audit’하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배웠을까? 이것이 항상 궁금하기만 하다. 중요한 것은 ‘사실적 배움’ 보다는 나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배움이었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Week 5를 시작한다. Week 6가 마지막이니까, 거의 다 마치고 있는 셈이다. 끝나면 이것을 나름대로 총정리를 해서 website에 남기고 싶은 과욕을 느낀다.

잔잔하고, 편하고, 흐르는 듯한 머리 속을 정리하며 Thomas Berry Writings 중에서 ‘드디어’ 그와 Teilhard de Chardin과 연결되는 관문 격인 Spirituality of Earth section을 침을 흘리며 읽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Teilhard사상이 Thomas Berry에게 전수해준 영적, 지적인 선물이라고 추측을 하게 되었다. 과학적, 물질적, 지질학 적인 우리의 보금자리 ‘지구’가 결국 영적, 신앙적, 종교적인 위상으로 ‘출세’를 하는 부분이었다.

 

추억의 McDonald’s, 모처럼 둘이서 동네 근처로 외출 drive를 하였다. 이런 일들이 이제는 그렇게 새삼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짐은 2020년 벽두 이후의 독특한 느낌을 것이다. 한 순간순간들이 보람과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오늘을 더욱 그런 것이 Home Depot는 그렇다 치고  Pandemic이후 새로 단장한 ‘정든 McDonald’s’가 우리에게 준 추억들이라고 할까… 이곳은 1992년 이 근처로 이사를 온 이후 우리에게는 친근한 동네 다방역할을 한 것을 안다. 추억에 읽힌 사람들도 많았겠지만 오늘은 특히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성당교우 크리스티나 자매의 추억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얼마 전 오랜 암 투병 끝에 선종 했던 구역교우라는 사실을 떠나서 우리와 한때 ‘아주’ 친근하게 지냈던 사람, 하지만 세상을 떠날 즈음에 예상외로 한번도 우리와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것이 놀랍고, 못내 아쉽기만 하다.

오늘 우리가 본 이 McDonald’s는 사실 Pandemic시작 직전에 remodeling을 시작하고 있었고, 새 단장을 한 후에 open을 하긴 했지만 drive-thru service로 시작해서 dine-in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실내의 모습을 오늘 처음 보게 된 것인데, 물론 훨씬 modern-look인 것과 깨끗한 것은 좋았지만 그래도 역시 예전의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젊어진 내부의 모습에 비해 우리는 반대로 더 늙어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

이곳에서 Big Mac을 마지막으로[Pandemic 이전] 먹었을 때 나는 지독한 치통으로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없었던, 괴로운 추억으로 남았지만 오늘은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던 것과 함께,  편하게 Big Mac의 ‘변치 않는’ 그 독특한 sauce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 처음 올 당시의 Big Mac 값, 아마도 $0.80?, 오늘의 것과 비교하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Kroger에 들려서 조금은 seasonal 한 특별한 것을 사가지고 와서 기분을 내기도 했다. Starbucks’ Pumpkin Spice ground coffee, 아~ 오랜만에 특별한 기분을 느낀다. 거의 pumpkin을의 향기를 마시는 느낌. Halloween을 향한 10월도 중순으로 접어드는 이때 이런 순간은 살맛을 나게 한다. 그래, 음미하고 기뻐하고 즐기자~~~

 

건박사? 허~ 괴상한 이름이지만 아마도 建博士 정도는 아닐까? 요즈음 backyard의 (vegetable) garden을 ‘건강의 원천’으로 만들려는 열정으로 희망의 나날을 보내던 연숙이 Youtube 에서 찾아낸 ‘건강정보’ video의 이름이 건박사… 이 나이면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각종 건강정보 중의 하나려니 짐작을 했지만 지금은 아주 심각하게 그 정보들을 소화하려 애를 쓰는 모습이다. 주로 약초, 건강식물, 나아가 건강식품에 관한 것인데 아주 ‘과학적’으로 설명을 한다고… 오늘의 정보에는 coffee (ground and whole bean) bag을 ‘절대로’ 냉장고나 냉동고에 저장하지 말라는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인 정보와 정 반대가 아닌가? 그 건박사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발견을 했단 말인가? 과연 정보의 홍수요, fake news의 우려는 만만치 않다.

 

최근에 자주 경험하는 것,  아침에 침대에서 걸어나올 때 몹시 자제를 못할 정도로 balance를 못 잡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는데, 이것이 일시적인지 지속적인지 은근히 우려가 되기 시작한다. 이상한 것은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하나도 없는데 걷는 것만…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인병 증상 중에 하나일까? 아~ 싫다, 싫어~~`

 

일기예보보다 더 흐리고 빗방울까지 간혹 뿌리던 낮이었지만 밤이 되면서 갑자기 구름이 걷힌 것을 알았다. 혹시나 해서 서쪽을 향한 집 앞문 쪽을 열고 하늘을 보니 깨끗이 맑고 검은 지평선 위로 반달이 멋지게 떠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 전에 금성, ‘목성과 그의 달들’을 보았지만 막상 친근한 달을 telescope로 본 적이 없었기에 오늘이 최적의 chance로 느껴졌다. 처음으로 x70 (70배율)로 본 반달[이때에 표면의 모습이 제일 잘 보이는]의 도움으로 갖가지 분화구들이 즐비한 달 표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모습들을 내가 직접 실시간,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적인 느낌 밖에 없었다. 70배로 볼 수 있는 것들이 밤하늘에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연숙도 처음으로 이것을 본 표정이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날씨만 좋으면 다음에 토성의 고리를 보게 하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Tricky 2 Dog Walk, Colbert to the Rescue

오늘도 6시30분 아래층 불[scheduled room lights] 이 들어올 즈음,  2 犬公들이 짖는 것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었다. 하늘이 온통 습기로 가득 찬 텁텁한 공기를 느낀다. 세찬 빗소리는 안 들리지만 가랑비는 계속 뿌리는 모양. 나를 본 두 ‘아이’ 들이 어찌나 나를 환영하고 반기는지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 이 녀석들과 또 정이 들어가고 있구나~  nearly cosmic, 동물적 사랑의 힘인가?

두 견공, dog boarding하는 것 예정이 조금 바뀌어서 Senate만 내일  밤까지 자기로 했다. Ozzie는 내일 예정대로 새로니 집으로 돌아가지만… 새로니의 [뜻밖의]호의로 나라니네 식구들이[현재 임시로 묵고 있었던 Airbnb home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Tucker의 어느 hotel suite로 옮겨서 진행중인 집 공사 기간을 보낸다고… 새로니가 모처럼 동생을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나 흐뭇하였다. 그렇게 둘이서 도우며 살면 앞으로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오늘 아침은 예외적으로 desk 정면 멀찌감치 홀로 외로이 잠자는 듯 졸고 있는 [2nd Gen] flat-screen TV[on ROKU stick]를 켰다. Kitchen dinette table에서 아침 식사 때 가끔 보던 [Youtube version] NBC TV Colbert late show를 지금 시간에 보는 것도 이른 아침의 느낌을 상쾌하게 한다. 작년 선거 이후의 목불인견의 ‘6살짜리 머리의 소유자’의 최후발악에 이어 1월 6일 Congress 난입사건 이후 나의 정신건강을 아슬아슬하게 지켜 준 이 Stephen Colbert 를 너무나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나의 구세주처럼 느끼게 되었다. 정치관이 절대로 모호하지 않고, 상식적 수준 no-nonsense 의 이성적인 이 가톨릭 교우, 그의 가족 배경도 마음에 들고[특히 그의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wife] … 사실 매일 밤 이late show를 생방송으로 보고 싶을 정도다. 문제는 그 시간이면 나는 ‘절대로’ 잠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 다음 날 아침 조금 늦게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구름이 아직도 2시간 안전 거리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

하루 종일 thunderstorm에다가 flash flood watch까지 예보된 오늘, 어제 두 견공을 데리고 산책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늘을 유심히 보면서 우선 현재 비가 오는가, 오면 어느 정도인가, 걸을 수 있을 정도인가? 우산이 필요할까, 느낌에 폭우나 거센 비가 올 듯한가.. 예보[과학]와 순전히 감 感[거의 영적인] 에 의지를 하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 없이 그렇게 즐겁지 못한 산책이 될 수도 있다. 전에 한번 그런 일[폭우를 만난]도 있었기에… 하지만 오늘은 머릿속에서 한가지 묘안이 나왔다. 바로 현재 local weather radar[near real-time] 를 보는 것이다. 현재 비구름의 위치와 움직임이 나오지 않는가? 그것에 의하면 최소한 2시간 이상 Atlanta Metro에는 비구름이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하! 왜 이 생각을 못했던 것인가? 이것으로 오늘은 거의 안심을 하고 편하게 우산 없이 산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왜 전에는 이 생각을 못했을까?

2시간 가까운 산책,  OzzieSenate 어쩌면 이렇게 다정하게…

Ozzie & Senate, Thomas Berry

우리 Senate [나라니 집의 pet dog], 역시 gentle dog인가? Ozzie에 비해서 어쩌면 그렇게 조용하고 점잖은 것일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내려오니 계단 아래서 얌전히 앉아서 나를 맞고 있었다. 허둥지둥, 천방지축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모시고’ 나가서 이슬비가 내리는 어둠 속의 뒤뜰로 나가 녀석 ‘화장실’을 보게 하였다. 하지만 내일 아침부터는 조금 이런 행사가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Ozzie가 오늘 아침부터 합세를 할 테니 말이다… 목요일까지 우리는 또 ‘합숙’을 하고 또 추억의 page를 남길 것이다.  나의 관심은 예보되어 있는 비의 chance, 2시간 course의 산책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4일 중에 반, 이틀 정도만 해도 성공으로 느껴질 것이다.

Ozzie & Senate, the Duo

OzzieSenate가 ‘상봉’을 했다[서로 만났다, 하면 될 것을]. 그들의 만나는 모습을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그려보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훨씬 더 즐겁다. 그들도 친구인 것이다. 개들도 우정이 있을 것이다. 이제 관계가 생긴지 몇 년이 되어가나.. 세월이 빨라서.. 하지만 그들은 아주 좋은 chemistry를 가지고 있기에 가급적 서로 만나도록 노력을 하는데, 지금이 그런 경우다. Senate가 어차피 우리 집에 머물러야 해서 내가 자청을 해서 Ozzie도 같이 머물도록 한 것이니까… 혼자 ‘남의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즐겁지 않을까? 나도 옛날에 그랬으니까… 친구와 함께 먹고 자고 며칠을 보내는 것은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특히 1965년 초의 겨울, 용산구 남영동 우리 집을 기억하면 된다.

오늘 두 犬公을 데리고 비가 ‘아직은’ 안 오는 덕택에 정상적으로 2시간짜리 my trail을 걷고 걸었다. Ozzie는 익숙한 길이지만 Senate는 처음이라서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하나도 문제가 없었다.  2시간을 비록 천천히지만, 야외에서 걷는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노력의 결과다. 나는 현재 그것이 routine처럼 쉽지만 말이다.  비록 근육운동은 아니더라도 다른 쪽을 많이 건강에 도움이 되었음을 분명하다. 이럴 때마다 아쉬운 것은 나보다 연숙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하지만 이것을 해결한 뾰족한 방안이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이 나도 며칠 만인가 2시간을 밖에서 산책을 한 것이… 감사합니다.

 

어제 생각이 떠오르고 언급했던 것, 왜 이즈음 나는 쉽게 우울하고 심지어 슬픔까지 느끼는 것, 그 이유는 무엇인가…  레지오를 떠나면서 심각한 삶의 변화를 우려했던 여파는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이제는 조금 새로운 삶에 적응을 하여야 하는데 기대보다 나는 잘못하고 있음을 안다. 지금 생각에 나를 ‘즐겁게’ 했던 순간들과 그로 인해서 받는 에너지, 그것은 역시 ‘추억의 즐거움’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과거에 얽매어 산다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애꿎게도 나의 보물, 아름다운 추억들을 망각으로 묻어버리는 결과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 그래, 과거를 다 묻어 버리는 것 중에는 보물들이 많이 있고 그것이 나에게는 삶의 에너지인 것이다. 잊혀져 가는 나의 아름다운 추억의 보물들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남기고 즐기고 싶다.

어제부터 시작된 ‘가려움’증 생각보다 심한가,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모기가 물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되지만 혹시 아니면 어쩔 것인가? 은근히 피부병 걱정을 하는 나의 모습이 병신처럼 느껴진다. 왜 이렇게 겁쟁이인가? 이런 것으로 걱정과 신경을 쓰면서 어떻게 죽음을 예상하는 환자들의 기도에 동참을 하겠다는 말인가? 나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기도하면서도, 거의 같은 의심을 하니, 내 기도가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역시 이것도 걱정과 회의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나? 믿음의 문제일까? 나야 말로 기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닌가?

 

Thomas Berry talks about ‘New Story’

오늘로서 Thomas Berry course의 4주째로 접어들었다. 주로 그의 논문 발췌와 그에 관한 interview video clip을 보는 것으로 조금 단조롭기는 하지만 나에게는 Teilhard Chardin을 간접적으로 복습하는 계기가 되어서 아주 효과적이다. 솔직히 내가 접한 Teilhard는 거의 피상적인 것이라서 더 자세히 공부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현재 나의 처지로써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Journey of Universe series course를 임하면서 지구 생태학에 깊은 관심이 간다. 특히 최근에 피부로 느끼는 climate change의 모습들로 이것은 생각보다 더 급한 인간차원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Teilhard의 사상체계 [Universe story]에서 출발한 Thomas Berry의 사상은 인간중심에서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거대한 생각임에 동감은 물론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적이다. 아마도 교황의 Laudato Si 회칙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추측하지만 더 공부해보면 알게 될 것이다.

First Day of October, 2021

“이천 이십 일년 시월 일”일이 되었다. 색다른 날인가, 아니다. 소싯적에는 ‘국군의 날’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하루일 뿐인가? 아니고 싶다. 특별한, 보람 있는 날로 만들고 싶다. 어떻게? 잘 모른다. 일단 맡긴다, 자생적, 유기적으로 굴러가는 듯하지만 은근히  ‘안 보이지만 느낄 수도 있는’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 이 요안나 자매님에게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어 죽음을 맞는 순간에도 영원한 천상 행복을 생각하고 주님을 그리며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이제는 아주 멀게 느껴지는 ‘레지오 수첩’, 그곳에 나와 있는 이 기도문,  언제까지 이 기도를 바칠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조시몬 형제 어머님의 선종순간까지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96세로 천수를 준비하시는 분, 최근에 잠깐 사귄 형제님의 어머님인데 왜 이렇게까지… 우리가 그 형제로부터 받는 ‘의외적인 은혜’를 잊고 싶지 않고, 한편으로 홀로 외롭게 선종하신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을 다시 생각하며 사죄의 고통을 계속 느끼고 싶기도 한… 복잡한 심정으로 바치는 선종기도가 되고 있다.

 

‘성자처럼 즐겨라!’ 필사/독서, 현재 4장을 거의 다 끝내고 있다. 그러니까 217쪽이니까… 거의 절반 정도인가?  James Martin 신부의 글은 거의 대화식이고 무겁지 않은 것, 게다가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움인 것이 많다. 그래서 속도도 다른 글에 비하면 아주 빠른 편이다.

이 책, ‘유머, 웃음, 기쁨’… 솔직히 진부한 화제라고 미리부터 discount하고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역시 또 나에게는 후회와 심지어 괴로운 경험들을 들추어내는 것인가. 또 다른 ‘내 탓이요..’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나는 기본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결국은’웃고 싶지 않는’ 사람으로 딱지가 붙었음을 안다. 내가 나를 왜 바꾸지 못하는 것인가?

총각 시절, 특히 20대 초, 특히 대학시절 나는 그런대로 많이 웃었던 기억들이 많이 남는다. 비록 가끔 우울한 때도 있었고 웃음을 잊고 살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잠깐 잠깐 찾아오는 불청객 정도로 느끼고 살았다. 하지만 역시 가정이 생기면서 나는 스트레스를 필요 이상으로 느끼며 살았기에 웃음을 많이 잃었으니, 유머 같은 것은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던 것, 나에게는 다른 ‘원죄의 짐’을 지고 가는 남다른 고민까지 있어서 이런 것들을 나는 정당화하며 살았다. 한편으로는 항상 심각한 모습이 나에게는 더 열심히 사는 자세라고 생각했지.

나중에 아이들이 보는 나의 모습과 평가는 한마디로 놀라움과 노여움, 슬픔까지 느끼는 처참한 것들이었다. 어쩔 것인가? 유머가 먼저인가 아니면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는 여유가 먼저인가? 정말 죽을 때까지 그 해답을 나는 못 찾을 것만 같다.

 

1999 Plymouth Voyager mini-van 의 운명이 조금씩 윤곽이 잡혀간다. 오늘 나가서 다시 살펴보았다. Towing이 가능한지, 아니면… 최소한 car key가 있으면 P(parking)에서 N(Neutral)로 gear를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Engine start의 상태와 상관이 없는 것, 그러니까 battery jumping도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이제는 donation할 곳과 car title만 찾으면 된다. 10월 15일까지 auto insurance renewal을 해야 되니까, 가급적 그 전에 처리가 되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20년 지기 知己, 효자’와의 이별을 심리적으로 준비하면 되는가? 아~ 1999년 늦여름, 이차를 사러 Cobb Parkway를 어슬렁거리던 추억이…

 

고추 김밥: 가끔 먹는 점심 김밥, 한번 내가 일주일에 2번씩 점심 김밥을 먹자고 제안한 것을 기억한 덕분에, 새로니까지 합세해서 감사하게 먹는다. 오늘 것은 고추가 가미된 것, 이것은 식욕과 거의 상관 없이 우리 집 텃밭의 풍년 고추가 즉석에서 소비가 되는 희한한 매력이 있구나…

 

완전히 잊고 사는 것들, 두 가지가 가끔 아니 자주 나를 조금은 슬프게 한다. 나의 사랑하는, 40년 역사의 야마하 통기타가 나의 곁을 떠나 living room으로 ‘쫓겨난’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으로 만져본 지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uC [microcontrollers] stuffs들, 그것들은 숫제 위층 현재는 거의 비어있다 싶은 lab room [어울리지 않는 이름] 으로 불쌍하게도 방치되어 있으니…  이 두 가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게다가 왼손가락 끝의 굳은 살은 자꾸만 엷어지고… 기타 코드조차 많이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이제는 계절상으로 보아도 멋진 추억의 folk song들이 통기타와 잘 어울리는데 어찌할 것인가? 문제는 현재 나의 desk주변을 정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완전히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보이는 나의 주위를 서서히 청소를 해야 하는데… 미루고, 미루고, 언제까지…

Newtonian Reflector, 10 Years Later..

오늘 일할 것 중에, 급한 것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계획한 것이 있었다면 역시 Orion Newtonian [reflector telescope]을 밖으로 ‘끌고 나가서’ fine tuning, adjustment를 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지만 과연 밤하늘이 되었을  때에 이것이 어떤 도움을 줄 지는 오늘 밤에 결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 목표는 목성 Jupiter와 토성 Saturn 인데 혹시 예쁜 달님이 나타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아~ 하지만 오늘 Moonrise는 자정 직후 12시 21분으로, 오늘은 틀렸다. 거의 반달 상태로 보이는 이즈음 [Waning Gibbous]이 제일 좋을 때인데…

오늘 fine tuning은 B선생 댁 쪽의 제일 높은 소나무의 위쪽 끝 부분 솔가지였다. 모든 것이 정확하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결론은 이 망원경의 general optics의 상태는 10년 이후에도 별 이상이 없다는 것. Now, go for stars!

 

 지난밤 처음 눈을 떴을 때 시계가 [자정]12시 어쩌구~ 하는 것의 공포[앞으로 6시간을 더 자야 하는데]를 느끼며 다시 잠을 청했는데 다행히도 깨지 않고 자서 6시 30분 전에 편안히 깨어나서 일어났다… 아~ 감사합니다. 화장실로 갈 필요도 없었던 것도 다행이고, 어제 이른 저녁에 Chicory coffee[cheapo old coffee]를 마신 것도 수면 건강에 큰 영향이 없었던 것은 알 수가 없다.

어젯밤 늦게까지 a/c가 간간히 오락가락 했는데 역시 아침도 그렇게 싸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shorts wear들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나의 옷을 철 따라 내가 나의 마음에 맞게 정리를 하고 싶은데… 아직도 의지를 하며 ‘이를 가는’ 상상을 하고 있으니… 그래, 내가 하면 되지 않겠니… 내가, 누가 그런 일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머리를 싸매냐, 병신아?

‘Come September’가 벌써 다 갔다고? 야~세월아, 좀 봐주라…봐 달라고, 나는 할 일이 적지 않단 말이다~~~~  9월을 나는 어떻게 보냈던가, 큰 일도 못하고 작은 일도 못한 ‘성취감이 없는 듯’한 불쾌한 느낌 밖에 없으니, 왜 그럴까? ‘생각 좀 덜하고 살자~ 병신아~’ 라고 중얼거리고 싶다. 웬 자질구레한 불필요한 걱정,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 말이다!

 

Get Busy! 이것이 오늘 오랜만에 TV ABC morning show,  interview에서 본 [former Pres, a great black] Obama의 충고였다. 하도 속이 상하고 불안할 때는 그저 바쁘게 하라는 것, 어찌 동감이 가지 않겠는가? 그가 언급한 ‘속상하고 불안하고’ 는 십중팔구 ‘개XX'[aka Donald]의 미치고 해괴한 짓, 에서 비롯된 미국의 심장부를 찌르는 듯한 그 1/6/21의 [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울할 때, 슬플 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경험적으로 그의 말은 99.9% 맞음을 나도 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알면서도 못할 때가 많은 것이 문제다. 나를 밀어내어서 바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것이다.

모처럼 지나가는 9월 한달 간 나의 private daily journal을 천천히 다시 보게 되었다. 확실히 ‘모습 자체’가 다르다. 이곳 저곳에 picture들이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삶의 기록의 운명이 조금 슬픈 것이다. 내가 저 세상으로 간 후에 아무도 볼 사람이 없으니까… 하지만 상관없다. 분명히 보는 눈이 어디엔가 있을 것임을 아니까…

이제 9월 달 내 삶의 모습을 모두 훑어 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런대로 열심히 산 것을 안다. 게을렀던 시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쪽으로 항상 보람차고 기쁘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정말 순간 순간 괴로운 때를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니까.  사실 그것이 순교자 성당의 안정호 신부님 말대로 인생의 진정한, 솔직한 모습인 것이다.

 

날씨가 너무나 화창해서 거의 무엇에 홀리듯이, 아니면 밖의 광경을 안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느꼈던지, 무조건 나갔다. 계획적으로 일을 하는 것을 거의 포기한 후 나는 손과 눈이 가는 곳으로 가면 거의 자동적으로 일거리가 보이고 그때부터는 몸이 하자는 대로 맡기면 모든 것이 제일 능률적으로 끝이 난다. 오늘은 아직도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한, 그러니까 settling하고 있는 lumber rack의 level을 맞추는 작업, 그리고 아직도 조금씩 비가 새는 tool shed roof 를 살펴보았다.

요즈음에는 이곳 저곳에 ‘고전적[기하학적]인 거미줄’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거미라면 질색인 연숙은 그것을 치우느라 고생이지만 나는 사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게다가 이제는 그런 생물체, 살아있는 것을 절대로 괴롭히고 싶지도 않다. 언제부터인가 생명체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변한 나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괴롭기조차 할 때도 있었다. 거미도 그 중에 하나, 비록 집은 치워야 할 때에도 거미는 안전하게 rake로 감아서 다른 곳으로 ‘안전한 이사’를 시켜 주었다.

거미줄을 치우려 접근을 하니 거대한 거미줄의 위쪽으로 잽싸게 옮겨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는 거미, 미안하다. 다른 곳에다 새로 집을 지어주렴, 사람 손이 안 가는 곳으로… 미안, 미안…

 

아하~ 갑자기 생각이 난다. Thomas Berry Coursera course의 숙제 reading을 못하고 있는 것이 도대체 며칠이나 되었나? 느낌에 몇 주일이라도 되었을 듯한데 사실은 일 주일도 채 안 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읽을 분량이 늘어난 탓도 없지는 않다. 오늘 재개를 하지 않으면 나는 또 ‘청강자격’ 조차 없어질 지도 모른다. 읽고 또 읽자… Thomas Berry!

오늘은 조금 특별한 날로 기억을 하고 싶다. 머리 속이 갑자기 ‘우주적 평화로움’ 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고나 할까, 설명하기에 나의 조잡한 문장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머리 속의 생각과 느낌을 글로 제대로 못 옮기는 고통과 고문拷問, 나날이 더 깊이 실감한다. 멀고 높고 넓은 곳으로 나의 높이를 옮기며 나의 주변을 보는 지혜, 이것은 신앙적, 영성적인 것인가, 아니면 과학적인 것일까…  하지만 이것이 현재 나를 지탱시켜주는 커다란 도움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것과 더불어 Thomas Berry의 초 거시적 우주, 세계관은 나를 생의 다음 단계로 올려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갑자기 나를 ‘기쁨의 영역’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것도 성령의 작용, 도우심인가…

오늘 밝디 밝고 시원하며 청명한 하늘아래서 나는 산뜻하고 감사하는 기분으로 일의 결과대신 그 과정을 마음껏 즐겼다. 나의 눈에 들어온 거대한 소나무의 정상 솔가지들의 영상이 10여 년이 지나고 있는 3″ Newtonian reflector mirror에 떠오를 때 나는 진정한 희열을 느꼈고, 맑을 대로 맑은 머릿속을 진정시키려 오지도 않는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평화의 온건한 강물이 귀속에서 흐르는 것, 그것을 나는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Beautiful Sunday Morning After…

6시 30분에 눈이 떠지고 곧 일어났다. 4시 경에 꿈에서 깨어난 것을 기억한다. 잡다한 꿈들 중에는 Teilhard & Berry의 영향을 받은 듯한 것이 있어서 흥미롭고, 성당교우 레 자매의 얼굴이 보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요새 저녁기도에서 환자명단 제1순위에  대건 안드레아 형제가 있는데 그것과 상관이 있었는지…. 어떻게 개인적, 사적, 조그마한 기적은 없는 것일까?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날이라고… 더운 것이 아니고 따뜻한… 참 이렇게 온도의 느낌이 하루아침에 바뀌니…  지구 생성될 때,  ‘사고, 잘못’으로 태양으로부터 23도 이상이나 삐뚤어진 자전 축, 우연[아니면 계획된]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이렇게 우리에게 계절의 변화를 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I-285 freeway drive와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기대를 넘치는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미사 후 ‘하얀풍차[하풍]’ coffee & bakery에서 함께 어울리게 된 것이다. 미사에서 의외로 만나 오랜 시간 회포를 풀게 된 박[교수]선배님 부부, 의외의 놀라움과 반가움이 겹친 행복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앞으로도 8시반 미사에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반가운 것이었다. 카톡 연락처도 받았기에 다시 그 옛날 [1990년대] 시절의 추억과 함께 앞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에 정말 오늘은 반가운 주일이 되었다.

특히 선배님은 이임하신 이영석 신부님과 개인적으로 만나면서 신부님의 책에 친필 사인을 받았다고 했는데.. 무슨 책인가?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이라는 책이라는데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와~ 이 신부님의 그런 분이었구나…  조기 이임의 주요 원인도 어머님 간병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선배님으로부터 알게 되어서 가슴 속이 아련해 옴을 느낀다. 교수직 때문에 일방[이기]적으로 퇴임, 귀국한 것으로 알고 섭섭해 하기도 했는데, 역시…

특히 오늘 ‘하풍’ 내부의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8시반 미사 regular 교우들이 우리 옆자리에 대거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가 좋았고 서로의 눈인사는 나를 ‘편하게, 안심하게, 기쁘게’ 하기도 했다.

 

당신은 어떤 멋진 일, 웃긴 일,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 놀라워할 때, 그것은 하느님이 당신에게 장난을 치시는 표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이것을 약간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하느님이 당신을 그저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신학자 제임스 엘리슨이 종종 독자들에게 상상해 보라고 권유하듯이, 하느님이 당신을 ‘좋아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은 너무나 많이 들어서, 우리에게 그만 진부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일단 벽에 바르고 나면 다시는 의식하지 않는 방의 벽지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생각합니다. “음, 물론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셔. 그건 하느님이라면 당연한 일이요.” 하지만 우리를 ‘좋아하시는’ 하느님이라는 생각은 이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 말의 어감에는 전혀 다른 활력이 있습니다. 즉 놀랍고 유쾌하고 인격적입니다.

– “성자처럼 즐겨라!” – James Martin,  p202

위의 글을 필사하며 100% 동감을 하게 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말, 표현… 사실 ‘너무나 많이 들어서’ 심하게 말하면 지겹다는 생각까지 들지 않을까? 나도 그렇다. 둔감 정도가 아니라 전혀 감정이 일지를 않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래서 어쨌다고?’라는 비꼬인 반발감을 유발할 때도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래, ‘아’와 ‘어’ 가 다르다고, 그래 하느님이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신다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친구처럼 나를 속속들이 아는 선배처럼 나를 보면 웃으며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는 정다운 모습이 하느님이라면…

 

앞으로 ‘비 구경’은 기대하지 말라는 장기예보를 듣고 간사하게 다시 비가 그리워진다. 촉촉히, 잔잔한 소리를 동반한 가을비, 그것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Youtube(ambience music)에서 보는 이 ‘환상적’인 desk가 있는 방의 창문 밖의 풍경, 이것이  이 즈음의 천국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정말 멋진 모습이어라….

 

불현듯 잊기 전에 living room의 한 구석에서 먼지를 쓰고 잠을 자고 있는 2011년 1월 ‘아이들이 준 생일 선물 ‘초보자 용’ x70 천체 망원경을 나의 desk 옆에다 갖다 놓았다. 이제는 조금 자신을 가지고 이것을 갖고 놀려는 희망이 생겼던 것. 하지만 역시 걸림돌은 그 놈의 알 수 없는 viewfinder EZ-Finder라는 괴물이었다. 암만 조작을 해도  lens 가운데 ‘red mark’가 보이지 않는 것, 이런 상태로 10년 간 가끔 사용하면서 실망감을 안고  거의 포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번에는 Google의 힘으로 그 문제의 정체를 밝힌 후 완전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역쉬~ 이 것도 [빨갱이] 짱깨 들이 만든  ‘불량품’인 것이었다. 이제는 그 동작, 사용 원리도 알게 되었다. 이 viewfinder를 다시 사려면 $40 씩이나 하는 것인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선 대강의 위치를 새로 산 x10 쌍안경 binoculars로 찾은 후, 끈기를 가지고 정확한 위치로 ‘총 쏘듯이’ 조준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런 노력으로 이제는 밤하늘을 쳐다 볼 준비가 서서히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번에는 부디 가깝고 커다란 행성 몇 개[금성, 목성, 토성 등] 는 볼 수 있게 되기를…

No big news, Cherbourg, Barnes & Noble

머리맡에 있는 alarm clock의 가느다란 찌르르르~ 소리에 깨어났다. 이것은 아침 7시에 맞춘 것으로, 나보다는 늦게 일어나는 연숙을 위한 것인데, 내가 오늘 이 소리를 들은 사실은 나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나는 분명히 무슨 잡스러운 꿈으로 이른 새벽시간을 낭비한 것 같다. 지난 밤에는 며칠 만에 다시 ceiling fan을 밤새 켜놓고 잤다. 밤늦게까지 조금 더운 듯해서 그랬지만 사실은 필요가 없었던 지도 모르는 여름과 가을의 경계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밤과 낮의 길이가 비슷해지고, 시원하고 더욱 어두컴컴해 지는 밤… 아~ 좋다~~~

아침 7시부터 요란하게 시작하는 ‘network TV (over antenna)’ morning shows, 돌아가는 세상의 맥박과 온도를 거의 ‘즉시’에 감지할 수 있는 이곳,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big news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정치적인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기후관련, Pandemic관련 뉴스도 여전같이 과장된 느낌이 없다. 비교적 평온한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물론 7시 첫 부문을 놓쳤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Barnes & Noble, 허~ 이곳이 아직도 있나? 뉴스에 그곳의 모습이, 그것도 요새의 것, 어찌된 일인가? 아직도 이곳이 business를 한단 말인가? 그리워진다. 어디에 있나? 이 지역에도 어디엔가 있는 모양? 다른 지역에, 특히 대도시에는 아직도 남아 있단 말인가? 한번 가보고 싶다, 그 많은 찬란한 모습의 책들 속에 묻히고, 서서, 앉아서 하루 종일 뒤져보며 읽고 싶다. 아~ bookstore의 추억이여~~ 그곳의 광경, 분위기를 잊은 지가 도대체 얼마나 되었나?

요란하게 ‘조중동’ 중에서 ‘조동’의 link 까지 애써서 만들어 놓고 잠시 나도 ‘한국 통’이 될 수도 있다는 달콤한 맛을 느끼기도 했는데 1주일 후에 결과는 어떤가… 나는 거의 습관적으로 그곳을 아직도 피하고 있고, 아예 생각을 피하기도 한다. 15년 ‘탈 고국 뉴스’ 세월의 관성을 어찌 며칠 만에 풀 수가 있겠냐 마는… 그래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면 그림자처럼 남아있는 고국 뉴스에 대한  ‘불안과 초조’  때문인가…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이다..기다려보자..

 

The Umbrellas of Cherbourg, 영화 셀부르그의 우산… NYT newsletter ‘부고 란obituaries’ 에 귀에 익은 말이 보였다. 아하~ 그 유명한 영화주제곡이었지… 남자 주인공, 이탈리아 출신 배우가 타계했다는 것, 1960년대의 프랑스 영화, 당시는 영화보다는 유행가에 더 관심이 있었던 때, 이 영화 주제곡 음악, I’ll wait for you는 독특하게 감미로운 것이었고…  Cherbourg라는 말이 ‘곳, 장소, 도시이름’이라는 사실과 1944년 6월의 D-Day이후에 이곳은 allied force의 전진기지로 모든 전쟁물자들이 이곳으로 집결되어 유럽, 특히 나치독일 쪽으로 운반되었던 것 등을 알고 나니, 그 romantic한 주제곡이 잔잔히 깔린 영화와 추억의 꿈에서 깨어나는 듯 하다.

 

오늘도 Ozzie와 집 주변을 무려 한 시간 반 이상을 큰 문제없이 거뜬히 걸었다. 비록 최고기온이 88도의 더운 날이지만 오전 중이라서 그런지 시원한 날씨였다. 지난번처럼 full course, 그러니까 Spring Creek subdivision과 Sope Creek Apartment  주위의 반 정도를 걸은 셈이다. 원래는 아예 더 나아가서 그 옆의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Kroger 가 있는 shopping center 까지 가볼까 했지만 오늘은 Ozzie가 뒷발에 가시가 박혔는지 불편한 모습을 보여서 포기하고 말았다. 진작 이런 길들을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제부터 가을과 겨울의 멋진 날씨의 덕분으로 최소한 일주일 2번 정도는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대가 된다.

 

옆 동네 Spring Creek 산책을 하고 tennis court옆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아~ 은혜로운 모습이여~ 조금 더워도 청명한 늦여름, 초가을 하늘의 느낌이…

 

갑자기 피곤한 듯 보이는 Ozzie를 달랠 겸 푹신한 풀밭 위에 앉았다가, 그래 하늘을 또 보자, 누워버렸다. 옆을 보니 Ozzie고 눕니다. 아~ 이곳이 중앙고 3학년 때 주왕산 선생님 고문, 국어시간에 들었던 ‘무릉도원 武陵桃源’ 이 아닐까…

우리의 Subdivision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길에 위치한 오랜 전통의 apartment complex, Sope Creek Apt. 뒷길은 우리 subdivision의 옆으로 나란히 뻗어있는 깊숙한 작은 골짜기와 creek이 원시림 속에 숨어있다. 이것을 얼마 전에 발견한 후 이곳을 잊지 못해 찾아와 둘이서 걷는다… 오늘도 걷는다 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모처럼 김밥을 말아서 셋이서 ‘시원하게’ 즐겼다. ‘지지고 볶는’ 것이 없어서 시원한 것이고 먹는 데도 열을 느끼지 않으니 시원한 이것, 한식 snack의 비결이라고 할까… ‘간식’이 아니고 우리에게는 정식 점심역할을 했다. 유나도 옆에서 방긋거리며 웃기도 하고, 세 명이 모처럼 한자리에 한가하게 환담을 나누는 이 시간, 너무나 아깝기도 하고 해서 오늘 밖의 일은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날씨가 시원해진다고 하니 늦을 것 ‘하나~도’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여유시간은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사치를 부려도 되는 시점에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늘은 비교적 차분하게 desk에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꽤 있었다. 주위에서 나를 간섭하거나 시간을 빼앗는 일들이 거의 없기도 하였지만 나의 의지도 있었다. 읽고 싶은 책들이나 web contents 을 시원하게 중단 없이 읽고 생각하고 싶었다. 특히 신선한 느낌을 주는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은 앞으로 내가 제일 신뢰하고 좋아하는 apologetic classic이 될 것 같다. 그 외 대부분 James Martins의 글들도 현재 내가 직면하고 있는 ‘신앙생활에서의 방황’ 시기를 절도 있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줄 것이라고 믿는다.

Came September…

확실히 기온이 떨어짐을 느낀다. 그렇게 습도가 높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게 잠을 잔 것이다. 6시 반에 일어났지만 잡스러운 꿈을 기억하느라 누워있었다. 7시를 전후해서 아침 routine을 시작한 날, 오늘은 어떤 하루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덤덤하게 이끌려 가지 말고 내가 만드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오늘은 9월의 첫날, ‘명색이 가을’의 느낌을 주는 단어가 9월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기분학상으로도 써늘한 피부의 느낌과 thermostat에 보이는 70도라는 숫자, porch door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 등등이 가을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래 나는 올 가을의 ‘갈색’을 그렇게 기다렸지…

완전히 개인 날씨일 뿐 아니라 바람까지 산들산들 부는 여름 들어서 제일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날이 아니었을까?  85도 정도에 비교적 건조한 대기는 상쾌한 것이었다. 9월의 시작을 시원하게 맞는다.

 

A Coursera course:  Journey of Universe specialization No 2, conversation을 힘차게 시작하였다. 첫 번째 것의 반복도 포함 되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것으로 나는 ‘과학+종교’의 대화가 시작되는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테이야르 샤르댕의 공헌이 지대했을 것이다. 진화론을 그리스도교에 완전히 이론적으로 접목하는 그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학식이 나왔을까?

늦게 손에 잡힌 책이 작년 3월 Pandemic이 선포되던 때 산 Capra (with Luisi)의 The Systems View of Life, a unifying vision.. 왜 이 책이 눈에 띄었을까? 물론 현재 ‘청강’하고 있는 Journey of the Universe 코스의 영향이다. 오늘 이 코스에서 새로 찾은 석학 Thomas Berry의 유명한 저서 The Dream of Earth 중에서 New Story 란 부분을 필사를 하면서 이미 인문학, 과학, 종교 등이 서서히 대화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실감을 못한 것이다. 특히 진화론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 가톨릭 교리의 영향, 정말 편견, 편협한 생각이란 것 등… 눈을 떠간다, 나는 점점, 거대한 그 무엇을 향하여..

그 다음에 나의 눈은 2014년2월에 사서 읽을 책, The Language of God,  그 유명한 BioLogos 창시자 Francis S. Collins를 알게 해준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해박한 과학철학종교 론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나는 너무나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처럼 살 수 있는가?

Hurricane Ida, Bye August, Big Fish

지난 밤에도 꿈을 많이 꾼 듯한데 아~ 왜 하나도 분명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기억하고 다시 그 꿈을 살고 싶은데…

잠 속에서도 비가 오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아하~ 이것 또 내가 상상을 심하게 했구나~ 혹시 hurricane Ida 가 완전히 이곳을 피해서 올라간 것일까? 조금은 섭섭하기도 한데… 알고 보니 지나가기 전의 상태인 모양… 하루 종일 폭우와 tornado 가능성이 높다고… 그럼 그렇지. 덕분에 조금 시원해질 것을 기대도 하고 세월의 변화도 신선하게 느낄 수 있고… 하지만 NOLA (New Orleans) 는 완전히 power 가 끊어졌다고… 전에는 flooding을 걱정했는데 그것은 OK인데 결국 power system이 이번의 victim이 되었나? Flooding보다는 몇 배 낫지만 power가 없으면… 이것은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 아닌가? West의 wild fire, 그리고 끈질긴 Pandemic Delta variant까지 nature는 신음을 한다. 아~ 테이야르 샤르댕 Teilhard de Chardin 신부님이시여, 저희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여름의 끝자락, 초록의 향연은 서서히…

 

8월 말, 9월 초가 되면 떠오르는 추억들, 별로 좋지 못한 것들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역사물들로 화석화가 되어가는 것들… 잊혀지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2017년 8월 말,  ‘레지오 미친년’ 사건은 추억중의 악몽, 악몽중의 악몽에 속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나는 개인역사의 다음 장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악몽만은 아닌 것이다. 용서와 망각의 두 가지 중에서 망각을 택한 case일지도 모르지만 망각이 그리 쉽지도 않다. 아직까지 그 당시의 생생함과 놀라움이 느껴지니 말이다. 불쌍한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용서의 명분을 찾고 살지만 역시 망각이 먼저 올 것이다.

깜깜한 날씨에 알맞게 시원한 대기를 뚫고 가랑비, 세찬 비가 교대로 오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 바로 나의 날이다. 차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잔잔하고 편한 느낌, 이것이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기분이고 즐거움이다. 물론 ‘피해’가 없는 한…  유난히 우는 모습의 유나, 쩔쩔매며 돌보는 새로니 부부의 모습이 엇갈린다. 모두 겪는 것이지만 이 둘의 모습은 왜 그렇게 안쓰럽게 느껴지는지… 바로 이것 때문에 연숙이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죽을 때까지 이런 것들은 멀었다, 배우고 공감하려면… 하지만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Second Cup:  dark & rainy [hurricane] IDA day를 조금 더 가슴으로 느끼려 정말 오랜만에 2nd cup of coffee (freshly brewed Starbucks brand)를 둘이서 즐겼다. 연숙도 모처럼 문인화를 그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나는 두 번째로 보게 되는 ‘월척 越尺’ 이란 화석화 되어가는 KBS 드라마[게임] episode를 마주하며 아련~히 고향생각에 빠지는 사치함을 맛보고 있다. 그래, 이것이 우리의 IDA day가 된 것, 피해보며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너무나 응석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월척이란 드라마 게임 episode는 아버지의 숨은 교훈을 가르치는 멋진 이야기였다. 낚시로 거의 모든 주말을 보내는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이신재 분]는 사실은 시골 산중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며 땅을 개간해서 조상 묘를 모시고 퇴직 후에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퇴직 후에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이야기, 낚시의 월척이 아니고 후손을 위한 월척을 한 것…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었던 그 가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버지가 없었던 나에게는 조금 실감이 안 가지만, 부러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란 것만 빼고.   

80년대 KBS 드라마게임 episode ‘월척’

 

Joe Biden 바이든, no more nice guy, 평소 그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거의 싸울 듯한 모습으로 자기의 아프간 철수결정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인간성과 정치 철학을 지지하지만 그 결정의 시기와 눈에 보이던 결과가 문제가 아닌가? ‘개XX’ 졸개들에게 정치적인 허점을 너무나 많이 보이며 ‘정치자산’을 소비한 것, 어떻게 그것을 회복할 것인가? 산더미처럼 쌓인 big agenda들을 먼저 처리를 한 후에 했어도 그렇게 늦은 것이 아닐 텐데… 코앞에 다가오는 Nine-Eleven 9/11에 맞추려는 symbolism에 집착한 것이라면 그도 큰 실책을 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national address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최소한 그는 자신을 가지고 모든 책임을 지는 용기와 더불어 이번 결정과 결과 모두 역사가 공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조금은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YALE University  Coursera

Journey of the Universe: A Story for Our Times Specialization

Course 1: Journey of the Universe: The Unfolding of Life

Course 2: Journey Conversations: Weaving Knowledge and Action

Course 3: The Worldview of Thomas Berry: The Flourishing of the Earth Community

얼마 전에 Course 1의 audit가 일단 끝났다. ‘청강’을 한 셈인데 그런대로 많은 것, 특히 초거시적인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을 목격한 셈이다. 알고 보면 이런 우주, 세계관은 Teilhard de Chardin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번에 새로 알게 된 Thomas Berry로 이어지는 종교, 인문, 과학철학으로 보인다. 지금은 제2 코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한동안 멀리하며 살았던 테이야르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끈끈한 여름에 거의 우연히 얻게 된 큰 수확 중에 하나가 되었다.

 

Stay Home & Work Saturday

5시경에 눈이 떠지고 5시 반이 지나서 일어났다. 아침 routine은 혈압약, Izzie treat & food, 바깥의 공기를 냄새, 자고 있던 나의 pc 를 깨우고, instant coffee를 타가지고, ‘도리도리 100회’, 이것도 족히 시간이 걸린다. 그러고 나서 아침의 첫 음성을 찾는다. 그러면 6시가 넘는구나.  이때 나는 어두운 새벽의 신비함을 느끼며 더욱 강하게 느끼고 싶은 열망을 갖는다. 1965년 경, 고3때 입시전문지 진학 잡지에 실린 ‘김기창’ 화백의 ‘새벽 예찬론’을 희미하게 기억하며, 그때를 추억하고 싶기도 하고… 새벽은 신비함의 시작이다. 감사합니다, 우리 어머님…성모님…

오늘 눈이 떠지고 일어날 때까지 골돌이 생각한 것, 그것 때문에 잠을 완전히 깼지만, 그것은 quantum wave equation의 collapse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니까 double slit experiment의 ‘진상’이 나에게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은 모양이다. 결론은 알겠지만 그 자세한 과정은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Observer의 해괴하고 신비한 역할까지는 알겠는데, 왜 그런지는 자세하게 이해를 못하는 것이다. 오늘 그것에 대해서 공부하거나, 읽으면 좋겠다.

 New York Times를 보니, Texas에 사는 어떤 ‘병신XX’ anti-mask organizer, 코로나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이런 뉴스에 나는 고민 중의 고민에 빠지는 불쾌감 그 자체다. 하지만 첫 반응은 이것이다… ‘쌤통이다, 이 병신아!’ 하지만 그런 나의 자세가 자랑스럽지는 못하다. 생명이 우선이라면 그러면 곤란하지. 하지만 나도 피가 끓는 이성적인 인간 임도 잘 알기에 더욱 혼란함 속으로 빠진다. 하지만 내가 분노하는 것은 이것이다. ‘죽으려면 너나 죽지 왜 남까지..’ 이런 논리가 무엇일 틀렸는가?

JESUS: A PILGRIMAGE [J. MARTIN] 어제 desk위로 옮겨놓은 summer reading, 오늘 첫 읽음의 상대가 되었다. 이 James Martin 신부의 글은 정말 경쾌하고 유머러스 그 자체다. 아무리 심각한 화제도 물에 녹듯이 부드럽고 유연하다. 심각한 신학 자체도 이 신부님에게 ‘걸리면’ 어김없이 웃음을 동반하는 것이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심각한 배경은 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 성지 순례의 자세한 여정을 이렇게 재미있고 심각하게 묘사하는 필체가 부럽다. 언젠가 우리도 이 holy land로 갈 수 있으면 이 책은 필수적일 듯하다. 그때가 과연 언제일까?

 

아침 7시… 깜짝 놀란다. 밖에 칠흑 그 자체인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어두워졌는가? 분명히 가을은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 옴을 알게 되어 기쁜 것이다. 예전에 암흑을 사랑했던 아득한 시절을 돌아보지만 이제는 밝음을 더 사랑한다. 하지만 암흑도 때에 따라서는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음도 안다. ‘더러움이 사라지게 하는’ 암흑,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더러움을 없앨 수 있으면 암흑은 사실 필요가 없다. 나는 그런 밝음 속의 인생을 살다 가고 싶다.

Hurricane IDA coming to NOLA on August 29th? 귀에 익은 뉴스가 아닌가? 그래 8월 29일, 2005년 Hurricane KATRINA!  그러니까 벌써 16년 전이 되었구나~~ 2005년은 교황 성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해, 나에게도 신앙적으로 의미가 있었던 해였었다. 이제는 거의 ‘성인’처럼 느껴지는 George W. Bush가 비행기 속에서 수해현장을 돌아보던 모습, 그것이 그에게는 big mistake로 남게 되었지. 하지만 지금은 그의 ‘통치’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지난번 Donald ‘개XX’가 모든 나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개XX’같지만 않으면 거의 나에게는 안심이고 OK다.  이번의 IDA, 얼마 전에 왔던 ‘열대성 어쩌구’ 와는 질적으로 다른 hurricane인 모양이고, 아마도 이곳 서쪽 근방으로 북상을 할 모양이어서, 이곳은 비가 예상된다. 그것은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올해는 참 기후적으로 우리 지역은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서가의 먼지를 털면서 안 보이는 곳에 숨어있던 책: Quantum Enigma [Rosenblum & Kuttner, 2011, Oxford U. Press] 을 꺼내어 Chapter 7을 펼쳐 놓았다. 오늘 아침에 나를 침대에서 일어나게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The Two-Slit Experiment, The Observer Problem.  하지만 나는 이 책의 설명을 아직도 잘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자세히 읽어도 아직까지는 수긍이 안 가는 것이다. 다른 책으로 가끔 ‘아하!’ 하기도 하지만… 어쩔 것인가? 더 정독을 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다른 source를 찾아야 하는 것인가?

다시 뜨거운 태양을 의식하며 조금 일찍 밖으로 나가서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우선 tool shed 뒤에 lumber들을 저장해둘 wood frame을 nail gun을 오랜만에 사용해서 두 개를 우선 만들어 놓았다. 완성을 하기 전에 연숙의 요청으로 vegetable garden의 땅을 뒤집는 작업을 하였다. 역쉬~~ 땅을 다루는 일, 장난이 아님을 또 실감한다. 손바닥만한 크기를 삽으로 뒤엎는 일, 어렵다. 옛날에 누가 말했던가… “땅을 하루 종일 파봐라… 땡전 하나 나오나… ” 노동의 어려움을 말해주는 이 말이 왜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던가? 하지만 요새 사람들 모든 것을 기계로 해 치우는데 나는 그런대로 근육을 써서 결과를 얻는 것, 나쁘지 않은가? 이것도 운동인 것이다.

조시몬 형제, 서울 도착 소식을 보내주었다. 공항에서 마지막까지 ‘고양이 보내는 것’ 의 문제가 있었음은 정말 재수가 없는 case가 아닐까? USDA의 어떤 ‘저급 공무원’의 불성실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case였다. 이런 문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한국의 다른 상황과 비교를 하는 이 조형제의 생각은 조금 성급한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어제에 비해서 ‘공부, 독서’를 별로 못했다. 기대를 가지고 quantum mechanics double-slit experiment 책을 보았지만 전에 비해서 더 알쏭달쏭 이해가 가지를 않음을 느낀 것, 나를 조금 당황시킨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책 하나를 뒤져서 같은 부분을 읽으려 하니, 이것은 더 가관이다. 완전히 sci-fi 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 이런 지나친 과장된 책들을 정말 조심해서 피해야겠다는 후회감도 들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 낭비도 그렇게 요새 말하는 misinformation 까지 의심이 되는 것이다. [eg. physics of god]. 이제는 테이야르 사상을 중심으로 하는 조금은 진보적인 종교과학, 생태학, 인류학 등 거시적인 안목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찾으면 좋겠다.

제임스 마틴 신부의 ‘성자처럼 즐겨라’ 라는 번역서를 연숙이 읽은 후에 넘겨 받았다. 이 책은 마틴 신부의 번역 서문까지 있어서 아주 이 저자 신부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다. 원제는 BETWEEN HEAVE AND MYRTH Why joy, Humor and Laughter are at the Heart of the Spiritual Life, 2011년 원서 출판, 2013년 번역서 출판으로 적혀있어서 비교적 일찍 한국판이 나온 셈이다. 그러면 한국에서도 이 신부가 꽤 알려진 듯하다. 그냥 읽느냐, 아니면 예의 필사를 겸할 것인가 조금 생각을 해보고 싶다. 만약을 위해서 softcopy가 있는 것이 편하기는 한데… ‘바오로딸’ 사건 이후 나는 움츠리게 되어서… ‘빌어먹을!’

하지만 결국은 필사의 시작을 준비하고 말았다. 앞으로 이것은 읽고 나면 완전한 soft copy가 남게 될 것이다.

Perfect late evening snack!  SPAM with a cup of wine!

오늘 점심은 오랜만에 대구탕, 오징어 젓 (연숙이 만든), 등 맛깔 난 것이었지만 역시 기본적인 ‘양’이 부족했는지 저녁 8시가 넘으면서 공복감을 느낀다. 이미 dent는 out이 되었고, 라면을 끓이면 연숙이 분명히 눈치를 챌 것이고… 기발 난 생각이 났다. 조용히 desk에서 먹을 것, 지지고 볶고 할 것도 없는 것… 바로 SPAM이 아닌가? 하지만 그냥 먹기에는 너무나 건조하고… 아하~ box wine이 남았나… 보니 조금 남았구나…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조합이었다!  나는 체중의 여유도 있지 않은가?

조금씩 내일에 펼쳐질 일들이 그려지고, 조금씩 최면을 거는 듯한 긴장감이 들어온다. 채 아오스딩 형제가 거의 2년 만에 성당에 와서 미사, 영성체를 하는 날이다. 게다가 2019년 가을 처음으로 부임한 이영석 신부님이 이 형제의 집을 방문해서 병자성사를 주었던 이후, 이제는 이임하는 신부님의 마지막 미사에 참례를 하게 된 조금은 의미 있는 주일이 되지 않을까…

Slowly Out of Dark Nights

새벽 5시에 일어나 화장실엘 갔다 왔고, 6시에 일어났다. 요사이 새벽에 아래가 조금 축축함을 느껴 만져보면 생각보다는 덜 젖은 상태임을 알고 조금 안심은 하지만, 역시 이것이 바로 ‘그것, 요실금’ 이란 것 아닐까? 이것과 전립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역시 본격적으로 노인이 되고 있다는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일어나며,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을 ‘즐겁게 음미’하기도 하고 역시 때가 온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 지난 일주일간의 “영혼의 어두운 밤”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임시로 넣어 두었던 물건들을 다시 꺼내고 이 Daily Note를 이렇게 펼치고 쓰기 시작을 한다. 이제 탁상용 달력도 꺼내어 펴놓아야 한다. 그 전에 십자고상을 먼저 내 눈앞에 모셔놓았다. 묵주와 기적의 메달, 필기도구 등등, 일주일 만에 보니 너무나 생소하고 반갑다. 정상화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된 것, 그래 ‘치워버린 성모상’의 어머님께 감사를 드린다. 어머님, 제가, 탕자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온통 모든 ‘성사, 기도, 영성, 독서’ 등이 정지 되었지만 그 시간을 메우려 온통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신경을 기울여서 대상 세상의 맥박을 잡게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조바심이 사라지고 있음은 바람직하지만, 대신 세상의 고통을 조금 더 나누어지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중에 제일 실망스런 것은, 그렇게 잘되기를 바랐던 ‘바이든’의 어처구니 없는 바보 같은 행동, 정책[‘갑작스런’ 아프가니스탄 철군]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비 정치적’인 일이 경험이 너무 많은 그에게서 나온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완전한 인간은 없다. 하지만 너무 실망스럽다. 그는 이제 치욕적인 부담을 역사 속으로 안고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어제 이영석 신부의 이임이 공식적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발표되었다. 나는 이번의 의외적으로 이른 이임소식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실망을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이상한 느낌’도 들었기에 기대가 큰 만큼 이 신부님에 대한 추억에도 상처를 받을까 걱정까지 들 정도다. 내가 너무나 기대를 한 것이 문제였을까? 이제는 나도 지쳤다. 신부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공동체, 교회 생활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은근히 나도 걱정을 하고 있다. 정말 이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어제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예상보다 맥과 김이 빠진듯한 이영석신부님의 강론, 조금 실망적이었다. 이제는 떠날 때 정을 떼려는 것인가? 왜 이런 결과가 나와야만 하는가? 왜? 왜? 이제 나의 교회생활도 서서히 맥이 더 빠지고 결국에는… 아~ 싫다 싫어… 성모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며칠 전부터 보이던 tropical depression Fred, 예상 진로가 이곳을 정확하게 조준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은 내일 새벽부터 이곳을 지나가게 된 모양, 태풍이 아니고 폭우가 예상되는 것, 큰 피해 걱정은 없지만 만약 폭우가 심하게 되면… 지붕과 siding은 문제가 없겠지만 밖에 널려 놓은 잡동사니들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시원하게 된 것은 물론 반갑다.

며칠 전에 도착한 기대했던 책, Finding God in Science 을 읽기 시작한다.  심각한 논문급의 책으로 기대했던 것이 틀렸지만 대신자전적 수필로 시도하는 이 apologetic은 다른 의미에서 더 호소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기대하고 싶다.

Reflecting Anger, Envy, Proud…

거의 제시간에 일어나면서 ‘아~ 어제는 조금은 이상한 날이었지.. 나의 몸이 조금 아프지..’ 하는 순간적 생각을 했다. 그 이상한 기분이 오늘 아침은 조금 다른 듯하고, 어제 저녁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오른쪽 어깨쪽지[나는 쭉지로 읽는다] 의 묘한 아픔도 조금 완화가 된 듯해서 조금 가볍게 일어났다

Ozzie도 기분 좋게 나를 반기고 온통 물기로 가득한 뒤뜰로 둘이서 걸었다. 한결 가벼운 느낌이 드는 토요일 아침, 이런 기분이 계속되기를 빌면서… 오늘은 맑고 덥다고 했지..했던 일기예보를 상기한다. 그래, 중복이 지났어… 중복다운 더위는 그대로 감상을 해야지, 불평하지 말고…

 

 Anger, Envy, Proud 이 구절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이것이 나에게는 어떤 것인지… anger… 밖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을 잘 다스린다고 자부하던 나도 이제는 자신이 없다. 비록 물리적인, 눈에 뜨이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숨길 수가 없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도 ‘야비하게’… 싫다 싫어. 나의 문제는 ‘언어, 말’로 자신 있게 표현을 못하는, 안 하는 데 있다. 유일한 해결책은 ‘화’ 그 자체를 없애거나 줄이는 수밖에 없다. 원인부터 제거해야 한다. 왜 화가 났는지, 화를 안 낼 수 있는 길을 결사적으로 찾는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나의 본성이요 성격인 것이다.

Envy…  좋은 것, 나쁜 것… 어떤 것인가? 진정으로 내가 되고 싶은 것,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재물이나 세속적인 것들이면 나도 예외일 수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탓인지 많이 포기한 것들 투성이여서 큰 문제는 아닐지도. 살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했던 사실에서 보기에 모든 것을 성취하면서 산 사람들을 지나치게 부러워 함은 지극히 정상일지도..

Proud…  나에게 자랑스러운 것들… 사회적으로 법을 따르며 사는 양순한 시민으로 살려는,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 하느님 공동체의 일원으로 할 일을 하는, 봉사단체를 통해 주위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려 사는 삶.. 이런 것들은 물론 자랑스럽다. 그 정도가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도를 지나친 proud가 나에게 있을까, 잘 모르겠다.

 

Ozzie와의 일상, 나에게도 삶의 활력을 주는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산책, 이것을 해야 나도 마음이 놓이고 그 녀석도 마음 놓고 푹 쉴 수가 있다.  이제는 보름이 훌쩍 넘어간 동안 아주 편한 여름휴가를 그 녀석은 즐긴다. 다음 주까지 하면 25일 이상을 우리 집에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 중의 하나다. 새로니 3식구 조금은 편하게 지낼 수 있으니까…

 

오늘도 어제의 큰 화두가 이어진다. 연숙이 C, S 자매들과 긴 통화를 한 결과로 우리가 조금 더 자세히 크리스티나 자매의 임종전의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랄만한 소식은 없었지만 우리의 의문은 조금 풀린 셈이다. 우리에게 그다지 큰 ‘[나쁜, 서운한] 감정’은 없었던 듯 보이는 것인데, 사실 그럴만한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다시 한번 이 자매의 독특한 자존심, 아니면 ‘anger, envy, pride’ 중에서 envy 쪽의 결함을 보는 듯했다. 아픈 사람에게 무슨 큰 고매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신앙인’이 아니던가? 그런 신심의 혜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간 듯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자아집착 의식이 끝까지 높은 곳의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것을 보면 나는 거꾸로 교훈을 삼아야 할 것인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몸이 아파 죽겠는데 그것이 쉬울까, 모르겠다.

우연히 보게 된 어떤 신문인의 이야기, 나이는 분명히 나보다 많을 듯한데… 갑자기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은 후에 쓴 깊이 있는 수필이었다. Boston Globe 신문에 게재된 것, 생각보다 자신의 신상을 솔직히, 자세히 밝히는 필자의 용기가 나는 정말 부러워진다. 그런 솔직함, 그것을 나는 부러워하고 나의 최대의 결함이라고 고백한다. 솔직함, 그것을 나는 나의 ‘개인적 일기’에서 문자화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현재까지 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는 사실을 나는 내 자신에게 조차 고백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조차 숨기는 사실들을 모조리 밝히려고 기를 쓸 것이다. 언제? 모른다, 오늘은 자신이 없고, 내일도.. 모레도… 하지만 올해 안에… 노력해 보고 싶다. 내 자신의 모습을 내 자신에게 고백하고 싶은 것이다. 나의 진짜 모습을 모두에게.. 모두에게…

 

비가 매일 한차례씩 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부수적을 모든 초록색 식물들이 무섭게 자라는 것은 크게 반갑지 않다. 먹을 것이나 꽃나무들은 문제가 없지만 소위 말하는 ‘잡초’들이 문제다.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잘 자랄까? 이것을 가만히 놔두면 미관상 집의 ‘가치’가 떨어지니 정기적으로 깎아야 하는데 이렇게 더운 여름, 특히 햇볕이 쨍쨍한 오늘 같은 날은 정말 힘이 드니.. 남들처럼 gas power, self-propelled 가 아니고 electric cord를 일일이 끌고 다니는 것, 솔직히 주위에서 보면 내가 불쌍해 보일 것 같다. 하지만 air, sound pollution으로 주위를 괴롭히는 그들이 나는 더 불쌍한 것이다. 문제는 나이다, 나이… 언제까지 이런 육체적인 ‘노동’을 할 수 있을까? 아~ 10년만 젊었으면~ … 죽음이 화제인 요새 며칠, 나는 어떻게 임종을 맞이할 것인지 조금 궁금해지기도 한다.

 

‘나의 멘토..’ 교정, 재독을 보면서 ‘이냐시오’ 편에서 다음의 글에 관심이 간다. 이냐시오 영성의 출발점이라고 할까..

병상에 갇힌 이니고는 한 친척에게 책을 부탁했다. 그가 건네준 책은 신심 서적뿐이었고,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성인들의 삶에 매력을 느끼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도미니코 성인이 할 수 있었다면 나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하느님을 위해 큰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니, 평화로운 느낌이 밀려들었다. 그는 여기에 ‘위안’이라는 낱말을 썼다. 반면에 군인으로서 성공하거나 어떤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상상을 하며, 전에는 뜨거운 열정이 북받쳤는데 이제는 ‘씁쓸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그는 이 씁쓸한 느낌과 위안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봉사의 길로 이끄시는 손길임을 점차 알아차린다. 이 평화로운 느낌이 하느님이 자신을 당신께로 가까이 끌어들이시는 손길로 감지한 것이다. 이 깨달음은 그가 영성 생활에서 ‘식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길로, 이냐시오 영성에 핵심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올해 이냐시오 500주년을 맞이하는데, 이런 글을 읽으면 그 긴 멋진 역사도 이렇게 놀랍게도 간단한 계기가 원류가 되었다는 사실, 그것도 ‘책’에 의한 것, 등등은 아주 친근한 이야기다. 그래 책에 의한 것, 물론 요새는 영화나 인터넷 등등도 이런 것을 가능케 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확실한 것이 책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책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런 세계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그렇게 자주 올까? 그것도 나에게? 하지만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다. 그런 번쩍하는 영감을 주는 글귀를 나는 찾고, 기다린다.

위의 글에서, 이냐시오 영성의 핵심이 나온다. ‘식별’, 바로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의 손길을 감지하는 것, 와~ 하지만 이 이냐시오 영성이 그것을 도와 준단다. 그것을 나도 알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나는 예수회, 그것도 James Martin신부의 책을 몇 권씩이나 사서 읽는다. 이런 노력이 ‘탈 레지오, 후 레지오’ 시기에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도록 할 것이다.

 

처음으로 근육통의 귀찮음, 괴로움 같은 것을 경험한다. 이것도 나이 탓인가? 아무리 근육을 많이 썼어도 이렇게 아픈 것을 보면 단순히 근육이 피곤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 근육이 뭉치거나 뒤틀렸는지도 모른다. 남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온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저절로 낫는 것인가? 특별한 약이 있나? 현재 바른 쪽 어깨 죽지가 제일 아픈 것을 보면 그곳이 문제점인가? 게다가 오늘 그쪽의 근육을 많이 또 썼으니, 그것이 더 나쁠 것일까?  현재 감기기운으로 심란한데다가 이것까지… Tylenol이냐 Theraflu냐 망설이다가 후자로 택했다.

Martin on Merton

2021년 summer reading 목록 중에서 제일 빨리 독서/필사가 끝난 책이 예수회 America magazine 편집장 James Martin신부의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원제: My Life with the Saints, 2006)’ 이다. 이 책이 최근에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닌 듯 싶다. 몇 개월 전에 Martin fever로 이름한 나의 초 超관심 기간 중에 이 신부의 책 4권을 거의 한꺼번에 산 적이 있었다. 그것들을 천천히 이것 저것 조금씩 보기 시작했다. 그의 문체와 지적 철학에 조금 적응하려는 의도였다. 이 예수회 신부는 news media상에서 가끔 ‘지나친 진보적 신부’라는 비판을 받는 것 외에는 별로 큰 관심을 끈 것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속단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고, 결국은 Bishop Robert Barron에 못지않은, 아니 버금가는 미국 가톨릭 [거의] 차세대 최고 지성의 거목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연숙과도 나누었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벌써 그분의 책 몇 권을 이미 읽었던 과, 이 책이 우리 집에 있다는 사실[교리반 시절 선물로 받은]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이었다.

이제까지 성인전 종류의 책은 나에게 별로 손이 가지 않은 것들이었다. 기억 속에서도 그런 책들은 우선 오래된 낡은 책들, 하나같이 고통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들, 감히 다다르지도 못할 인간의 능력을 넘은 초인간들, 난해한 고유명사 투성이의 조잡한 번역… 등등으로 나는 가급적 그런 책들을 피하며 살았던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책도 별로 선뜻 손이 안 가는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제는 친근한 모습의’ Martin 신부가 쓴 책이라는 것에서 느낌이 아주 달랐다. 조금은 ‘초현대적, 초이성적, 심지어 과학적’인 접근을 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전통적인 고리타분 하고 녹 냄새가 풍기는 그런 성인전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바로 나를 위해서 쓴 책이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이 책의 원제는 ‘성인과 함께한 나의 삶, My Life with the Saints‘ , 하지만 성찬성[역자] 번역본은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왜 멘토란 말을 넣었을까? 나중에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성인’이란 말은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성인은 물론 그 외에도 성인 같은 삶을 산 사람들[토마스 머튼, 도로시 데이 같은]도 포함되었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로 그 ‘성인과 비슷함’을 멘토 mentor 란 단어로 표현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 책에는 16명의 성인, ‘예비, 준’성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들의 특징,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 Martin신부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으뜸으로 다루어진 ‘성인’이 바로 토마스 머튼 트라피스트 수사신부님인데, 솔직히 나는 그런 사실에 아직도 동감을 못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화장실에서’ 몇 년간 읽었던 그의 대표작 Seven Storey Mountain 이란 자서전이 왜 그렇게 수많은 예비신부들의 ‘고전적’ 필독서가 되었는지 쉽게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이유는 이 책은 솔직한 고백록일지는 모르지만 요점을 제외한 ‘군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 웬 고유명사들이 그리도 많은지, 본인에게는 익숙한 표현이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한 것들인데 알고 보면 그런 것들이 모두 불필요한 표현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머튼은 절대로 겸손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실망까지… 그래도,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99% 틀렸을 것이라는 것 [사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Bishop Barron과 Father Martin 모두가 그 책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마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토마스 머튼과 그 칠층산을 열정적으로 소개하는 마틴 신부의 글은 다른 각도로 그 책을 재조명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아마도 다시 그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더 겸손한 자세로 읽게 될 지도 모른다.

 


참된 자아

 

나에게 있어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성화와 구원의 문제는 사실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문제와 같다.

 – 토마스 머튼, <새 명상의 씨>

 

대학에서 미시 美詩 American Poetry 강의를 들을 때, 월트 휘트먼을 처음 소개받았다. 우리 젊은 교수는 휘트먼 예찬자이자 연구가였다. 그녀는 시인의 전기를 써서 호평을 받았다. 어느 날 그녀는 만일 우리가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다는 비난을 받거든 <나 자신의 노래 Song of Myself> 에서 다음 구절을 인용하라고 말했다.

 

내가 나 자신과 모순되는가?

그래, 참 좋다. 나는 나 자신과 모순된다.

(나는 크고, 내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앉아 있나니.)

 

휘트먼은 이 시구로 또 다른 시인이자 신비가요, 수도승이요, 예술인이요, 평화 운동가요, 사제요, 영성 대가요, 교회 일치 주창자요, 선사 禪師 요, 성인인 토마스 머튼을 어렵지 않게 변호할 수 있었다.

머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모순이다. 자신의 주변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 봉쇄 수도회 수도승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데, 그가 바로 트라피스트 수도승 머튼 루이스 OCSO the Order of Cistercians of the Strict Observance (엄률 시토 수도회) 신부다. 떠돌이요 타고난 여행가이면서 정주 서원을 하고 미국 켄터키 주 외딴 산중에 터를 잡은 겟세마니 성모 대수도원에 정착하기로 작정한 사람. 자진하여 순명 서원을 하고도 수도 생활 상당 기간을 자기 수도회의 장상들과 부딪히며 보낸 사람. 자신의 소명에 반하지만 [필사주: 反인가, 반대로 魅惑인가? 정말 성의 없는 번역] 끊임없이 의문을 갖는 사람. 동양 종교들에 매혹당한 신심 깊은 가톨릭 회심자. 명예직과 훈장을 싫어하는 (아니면 싫어한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키려 노력하는) 저명한 문필가. 하루는 결코 한 줄도 더 쓰지 않겠다는 결단을 글로 쓰는가 하면, 며칠 후에는 출간된 자신의 또 다른 저서를 보고 느낀 기쁨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 (그는 주목할 만한 한 일기의 도입부에서, 새로 나온 자신의 책 표지를 싸고 있는 올이 굵은 삼베가 당시 맨해튼의 현대식 나이트클럽에 사용된 천과 똑같았다는 점에 은근히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런 역설들, 이런 휘트먼풍의 다중성은 머튼을 20세기 가톨릭 교회의 변화무쌍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이르는 여정을 소상하게 기록한 1948년도에 출간한 회고록 <칠층산>은 사리를 아는 머튼조차도 예견하지 못한 출판계의 기현상이 되었다. 이 책은 수백만의 독자에게 관상 기도를 소개했고, 전후 미국 수도 생활의 쇄신을 예고했다. 평화에 관한 그의 글들은 요한 23세 교황의 회칙 <지상의 평화 Pacem in Terris>의 전조가 되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자극은 지쳐 있던 한 미국인이 그리스도 신앙을 재정립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책은 나를 재정리하는 데도 보탬이 되었다.

<칠층산>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알려면, 내가 머튼을 만나기 이전의 삶을 얼마간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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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일곱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경영 대학 와튼 스쿨에서 수강했다. 내가 경영학을 공부하기로 한 이유는 설명하기 어렵거니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는 이해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에서는 영어, 프랑스어, 미술처럼 신나게 공부한 과목은 많았지만, 어느 것 하나 직업으로는 실용적이지 못하다고 보았다. 일례로 나는 프랑스어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도리가 없었다.

Bye Echinopsis, see you next year..

작년 여름 Pandemic 치하에서도 역경을 이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던 이 선인장,  오늘 피어난 것은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난산 難産의 모습이 아닐까… 생명의 신비는 이곳에도 역력하다. 달포 전에 며칠간 ‘다산 多産’을 자랑한 후 조용하더니 이렇게 마지막 꽃봉오리를 힘들게 보여준 친구, 내년 여름을 다시 기대한다.

 

15분을 벌었다. 아침 radio clock시계는 분명히 59분 비슷한 것을 보았는데 일어나서 일어나 나와 보니 6시 45분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나의 시력이 떨어졌나… 하지만 횡재다, 15분이 어디냐?

모처럼 어젯밤에는 HF[Harbor Freight] cheapo ear plug을 끼고 잤는데, 역쉬~ 이것이 나에게는 최고다. 편한 잠을 잔 것이다. 이제는 noise machine도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이것이 맞는다. 알맞고 편하게 소리를 차단 하고,  ‘비싼 것’과 다르게 후유증이 하나도 없다.

어젯밤에는 망각의 선상에서 오고 가는 꿈에 시달렸다. 고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 분명하지만 심리적으로 괴롭힌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많지만 이것이야말로 ‘확실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case다. 왜 이럴까? 하루 종일 나의 기억력을 동원해서… 이것도 나의 다른 꿈 ‘악몽류’ [나의 시험걱정, 집이 수해로 무너지는.. 등등]중의 한 종류로 생각된다.

 

어제부터 뉴스에 보이는 ‘개XX [a.k.a Donald]’에 관한 것, 현역 합참의장 정도되는 사람의 주장에 관한 것, 우리 모두의 추측과 비슷하다. ‘천하역적’ 개XX가 선거패배 이후 쿠데타를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나는 은근히 놀란다. 이것,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고 미국의 최고위 군장성의 우려였다는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개XX 가 그 정도로 미친XX는 못 된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위인도 못 되는… 그저 ‘세기의 SOB, 개XX’ 정도나 되는 쓰레기 급의 인간 정도가 아닐까?

 

쉴 수 있는 편한 금요일이 오늘은 다시 일을 하루 더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상관없다. 사실 마음껏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진 것 뿐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점점 귀여워지는 ‘노랑머리’ 손자녀석과 있는 것이 왜 힘만 든단 말인가? 읽고 싶은 책을 편하게 읽을 짬이 없는 것, 그것 하나가 문제일 뿐이다.

새로니의 condo가 드디어 팔렸다고 한다. 참, 어렵게 노력해서 장만한 그 애의 ‘노력의 결정’이 바로 그 물건이었기에 결과적으로 그 노력에 보상을 보게 된 셈이다. 그 애의 financial eye는 상당한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이제 결혼으로 더욱 안정적인 ‘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상하지만 그와 더불어 다른 쪽[higher perspectives] 의 눈도 서서히 뜨게 되기만 기도한다.

나라니 카톡, 아침은 McDonald’s 를 사 온다고, 산이 것만 준비하라고… 어제 Publix에서 우리 grocery를 한 보따리를 사다 주었는데… 가끔 낮에 75도로 맞추어 놓은 위층 thermostat가 생소하기도 하고 했지만 그래, 그것은 나의 오랜 세월의 습관이란다. 나의 이 traumatic habit은 역시 ‘원죄’로부터 비롯된 것이라서, 정당화할 자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찌는듯한 더위는 분명히 아는데, 조금만 움직이면 온몸이 물기로 휩싸인다. 그래 이것이 바로 습도의 역할일 것이다. 땀이 증발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과학이다. 작열하는 태양의 복사열이 거의 양반인 요즈음, 아예 땀으로 젖는 것 나쁘지 않다. 이것은 fan으로 충분히 조절을 할 수 있으니까…

오늘도 걸었다. 같은 코스로… 로난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특별히 힘든 것이 있다면, 이 녀석 조금 자라서 그런지 말을 듣지를 않는 것이다. 대부분이 이것 저것 마구 만지는 것, 이것은 NO란 말로 잘 안 통하고 녀석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것이 나는 잘 안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육아 기술이 아닐까? 새로니, 나라니 시절에 물론 나는 전혀 모르고 지냈기에 생소한 기술이다. 아이들 키웠던 엄마들의 노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빠들, 돈은 번다고 하지만 사실 공짜로 아이들을 키운 것이다.

오늘 처음으로 swimming pool key card 를 사용할 때가 왔는데, 역쉬~ 모든 일에는 이렇게 hiccup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구나.. 이 card 를 지난 6월 초에 동네 home association 의 ‘봉사자’에게 받았는데 그 동안 쓸 기회가 없었다. 요새는 확실하게 믿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조차 문제가 될 줄이야. 나라니, 로난, 연숙이 갔더니 ‘빨간 불’만 들어오더라고… 허~ 무슨 일을 이렇게 한단 말인가? 부리나케 연락을 했더니 몇몇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곧 해결하겠다는 text가 왔으니… 이번에는 가서 test를 해보는 것이 안전할 듯하다. 수영장에 들어갔던 소감은 아주 좋았다고…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하는 생각이 든다. 서늘한 때 가서 책이라도 볼 수 있다면…

 

오늘 밤에도 나에게는 드문 일, Ozzie와 같이 couch 에 누워서 ‘big screen TV’를 보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렇게도 생소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한가지 … 이런 것은 정말 시간이 우습게도 빨리 흐른다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소위 말하는 couch potato가 되는 것이다. 게으름의 상징… 최소한 나는 그런 것은 피하며 산 것, 하지만 대신 relax는 잘 못하며 산 것은 아닐까? 일장일단이 있는 것, 관건은 어떻게 중용지덕을 지키는가 하는 것이겠지. 이런 식으로 나가면 PC에서도 Youtube에 빠질 수도 있다. 오늘 밤에도 거의 한 시간을 이것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 정말 소용없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조심, 조심…

 

Green July, Grapes, C. S. Lewis

신록의 계절 7월, 그것도 첫날… 그래 칠월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아니 떠올라야 할 것, 독립운동가, 시인 이육사 李陸史 님의 대표작 시, ‘청포도’다. 그래, 이 청포도의 멋과 맛이 바로 칠월인 것이다. 아마도 그 옛날 시골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이 시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으로 느낄 듯하다. 공해에 찌들었던 옛날 60년대 서울의 추억에서 이 청포도는 한번도 맛을 볼 수 없었던 그림의 떡이었지만 이곳 우리 집에는 그런대로 볼 수도 있고 맛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초록색이 천지를 덮기 시작하는 칠월 달에…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오늘 아침에는 극히 드문 예로 연숙이 먼저 일어나서 침실을 나갔다. 거의 1시간이나 일찍이… 웬일일까? 혹시 또 불면 현상? 아니었다. 잠을 너무 잘 잤다고… 휴~~ 감사합니다. 습기로 가득 찬 대기권, 비록 끈끈한 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관없다. 기온이 알맞게 낮아서 시원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dream weather가 계속되는 것일까? 감사합니다.

이번 일요일이 Independence Day, 그래서 월요일은 휴일이다. 우리에게 휴일이 따로 있나, 매일이 그런데…  교성이 말대로 휴일의 즐거움이 사라진 지 수십 년… 그 기분을 살리려 기를 쓰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도 어제 오늘부터는 나도 같이 놀고 싶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점점 다가오는 새로니 아기 출산 때문인지 조금씩 나도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조금씩 느낀다. 그것이 정상이고 자연적인 것이다. 고생, 놀람이 없는 출산을 하기를 기도하지만… 그래도… 기도밖에 없다, 이런 때에는…

내일 서 아녜스 부부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분명히 취소가 되었기에 이번 휴일 주말은 주일미사를 빼놓고는 완전히schedule- free가 되었지만, 그래도 크게 다를 것이 없을까? 왜 이렇게 갑자기 심심한 느낌이 드는 것이고, 심지어 외로움이 엄습하는 것일까?  또한 ‘young senior’의 친목단체 등대회 사람들도 그립고, 무언가 그립지만 쉽게 수시로 손에 닿는 친구가 없으니… 이것이 외로움일 것이고, 우울한 감정일 것이다. 오르락, 내리락, 참 조화로다. 이것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인가? 인생은 항상 이런 것인가?

 

 

Lewis’s Baaaak!  C. S. Lewis가 돌아오고 있다.  전에 마지막으로 내가 심취했던 Lewis는 언제였는가? 그것은… 찾아보자… 내가 사서 보았던  Lewis 저서들의 표지 뒤에 기록된 나의 친필기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The Joyful Christian (127 Readings) – 11/9/2013 (순교자 성당 예비자교리반, at the Conyers Monstery)

Mere Christianity – 4/9/2015 (Lewis Fever!)

C. S. Lewis & Mere Christianity (Paul McCusker) – 4/9/2015 (Lewis Fever!)

그러니까… 2013년에 첫 번째로 읽기 시작한 셈이지만, 본격적으로 심취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4월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6년 만에 다시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난 6년 동안 그에 대한 기록영화 등은 가끔 YouTube에서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 구입한 것은 정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신간 중의 신간인데다가 그의 저서 중 The Abolition of Man이란 거의 논문 급의 책을 주해한 것이고 bonus로 이 원서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또한 소위 ‘읽기 어렵다는 책’에 도전하는 것, 해 볼만한 것이 아닐까, 더 머리가 굳어져가기 전에… 이번 여름에 이것에 한번 도전해 보자….

 

만 이틀이 걸려서 ‘나의 멘토…’ 중에서 ‘마더 데레사’편의 독서, 필사가 끝났다. 데레사 편을 읽으면서 Martin신부의 견해, 느낌은 내가 100% 동감하는 것들이었다. ‘사랑으로 남을 돕는 일’이 주는 진정한 기쁨에 관한 것이다. 내가 어찌 이것을 모르랴? 지나간 10년 동안 내가 경험했던 갖가지 봉사활동이 나에게 주었던 것은 진정한 ‘중독성 있는’ 기쁨이었다. 그것을 지나간 몇 년 동안 나는 서서히 잃고 사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큰 아픔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접적인 이유는 사회적 여건, 그러니까 Pandemic에 의한 것과, 그것에 따른 신심단체 활동 정지.. 그것이 치명타였다. 설상가상으로 그 신심단체가 ‘개인적 불화’로 우리로부터 완전히 멀어져 간 것… 정말 나에게는 가슴 아픈 상실의 연속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이런 상실에서 나 자신을 회복할 수 있을까?  오늘은 유난히 지나간 10여 년 동안 타계한 수많은 영혼들이 생각이 났다. 나에게 죽음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가르쳐준 그들… 언젠가는 만날 수도 있을까…

일생을 통해서 특히 근래에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바로 이런 ‘레지오 활동’을 하던 때였다. 그래서 연령행사나 양로원봉사 들이 완전히 사라진 요새는 정말 앞이 안 보이는 막막한 심정이다. 성모님께 길을 보여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확실한 것은 거의 없으니… 성모님, 성모님… 도와 주소서… 이제 제가 할 봉사활동은 없습니까? 이제는 성지순례나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까?

 

새로니부부가 저녁때 iPhone 하나를 들고 찾아왔다. 온 목적은 나의 account를 setup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사실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세월, 세대의 흐름은 어찌할 수가 있겠는가? 특별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그래 이것은 그저 tool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닌가? 내가 간접적으로 greedy Apple의 customer가 되는 사실은 못내 찜찜하기만 하다.

이제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새로니가 엄마가 되는 날이… 오늘 둘이 와서 보인 모습들은 젊은 부부의 그것이었다. 활달하고 긍정적, 이성적이었다. 걱정이 사라진다. 불필요한 걱정을 말고 그저 기도만 하며 기다리자.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오늘 불현듯 일을 시작했다. 10년 역사의 workshop, tool shed 왼쪽 잡동사니를 치우기 시작하고 바른쪽에 오랜 세월 쌓여 있던 lumber들을 하나씩 치울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피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시작을 못하는 병 때문이었다. 그래, 오늘 같은 날 계획도 없이 시작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일단 시작했으니까 tool shed 주변의 정리와 미화작업은 이번에 꼭 끝나게 될 것이다. 다른 비상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제발, 제발…

 

After Humanity, Art of Ignoring, VHS drama, James Martin

어젯밤에 일기예보를 못 본 탓에 침실 ceiling fan 을 켜고 잔 탓에 밤새 추위에 떨었던 불편한 기억이었다. 왜 이렇게 춥지… 하며 몸을 온통 오그리고 잔 것이다. 급기야 긴 팔, 긴 바지, 양말까지 신고 내려오는 나의 꼴이…. 죄값을 받은 셈인가? 어제 저녁 잠깐 office에서 눈을 붙인 것이 기도도 팽개치고 그대로 밤잠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오랜만에 저지른 나의 ‘작은 쾌감’ 같은 것, 아주 후회는 안 한다. 하고 싶었기에…  덕분에 싸늘한 6월 말 아침의 ‘습격’을 받은 셈이다. 연숙에게 조금 미안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어제는 저녁기도를 했어야 했는데….

 

AFTER HUMANITY: A Guide to C.S. Lewis’s  The Abolition of Man,  $30 well spent? I hope so!

아침에 온 WOF (Word on Fire, a catholic ministry) email, Bishop Barron의 promotional video를 보고 ‘그대로’ order를 해 버렸다. 이 책은 사실 Lewis의 ‘어렵게 보이는’ 책, The Abolition of Man의 깊고 자세한 주해서 격에 해당하는 듯 보인다. 보너스로 원저 The Abolition of Man도 포함되었다니… 너무나 매력적인 deal이 아닌가? 나의 Lewis에 대한 늦은 관심과 사랑을 떠나서 이 책의 외형적인 조건들이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현재의 Post-Truth 현실과, 미학적 관점을 가미한 Barron의 영향을 느끼고 싶기도 했다. 이 책을 내가 깊이 이해하게 되리라는 막연하지만 멋진 희망도 빼놓을 수 없다. 희망을 걸어보자!

 

Art of Ignoring: 내가 필요한 ‘사회적 기술’이 바로 이것임을 왜 이렇게 인생의 후반부에 깨달아야만 했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안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큰 것, 작은 것, 개인적인 것, 세계, 사회, 정치 상황 모두에 해당하는 ‘기술, 예술’이다. 무시하는 지혜,…  집에서부터 무한한 우주영역에까지… 해당이 안 되는 곳이 없다. 연숙의 ‘앙앙거리는’ 의미 없는 듯 들리는 잔소리부터 시작해서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우주의 기하학적 구조까지… 어떤 것들은 거의 무시하는 것이 안전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촉감을 초월해서 무시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불교의 냄새를 풍겨야 할 것인가? 요새를 사는 나의 화두 중에 하나가 되었다.

 

80년대 VHS era, KBS [청소년 문학관] 시리즈: 비록 10편도 안 되는 것이지만 더운 초여름에 나를 너무나 아련~하고, 편하게 하는 영상과 이야기들이다.  어떤 것들은 아련한 사랑의 감정을 추억하게 해 주는 것이어서 정말 오랜만에 10대 당시 나의 모습을 그린다.  겁 많고 지나치게 수줍어 했지만 나만의 낭만적인 상상도 적지 않았던 시절들.  이 드라마들 중에는 ‘입시지옥’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꽤 있는데, 우리 때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심각한 것들이라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는 하고도 남는다.  지금은 ‘산사에서’ 라는 것을 보는데… 아늑한 산사, 절의 풍경과 입시지옥을 겪는 고교생, 재수생들의 이야기…  대학입시의 중요성이 극한으로 치솟은 고국의 10대들이 불쌍하기도 하다. 이것이 거의 반세기 후에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요새 80년대의 여러 가지 종류의 고국의 TV 프로, 주로 드라마, 이것들을 보며 간혹 나는 고민에 빠진다. 좋아하는 것보다 거슬리는 것, 특히 연기자들과 그의 역할, 성품 등에 연관된 것이다.  역할이 악역이거나 내가 싫어하는 전형적인 역할은 물론 연기에 따라서 싫고 혐오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문제는 그 연기자 자신에 관한 것이다. ‘악역’을 너무나 실감나게 연기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사람자체에서 흘러나오는 그 연기자의 ‘화학적’ 성품이다. 최근의 예로, 미안하지만 남자 연기자 둘 ‘주X’과 ‘백일X’ case다. 이들의 사생활을 알기 전부터도 별로 호감이 안 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싫은 것이다. 연기 속의 그들이 아닌 실생활에서도 보일 듯한 그들의 모습이다. 특히 주X이라는 사람, 정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정도로 그 ‘느글, 느물거리는 자태’는 물론이고, 그가 실제로 그런 인물일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백일X, 그도 역시 ‘기름기가 밴 폭력성’이 나를 도망가게 만든다. 그의 사생활도 나중에 연숙을 통해서 들었기에 나의 유감은 맞은 셈이다. 이 두 사람의 ‘냄새’ 를 나는 정말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어쩔 것인가? 우문[현답]인가?

고국의 VHS급의 영상물을 보다가 서서히 90년대 혹은 2000년대로 옮아오며 나는 주저하고 주저한다. 우선 배경 scene들이 너무나 나에게 생소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거북한데… 사실 웃기는 것 아닌가? 나는 그 당시에 가끔 그런 것들에 이미 익숙해졌던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왜… 그렇구나, 내가 우리 고향의 변화, 변천하던 모습을 거의 고의적으로 잊으며 살았던 것에 대한 죗값이라고 할까? 내가 너무나 이런 것에 민감한 것일까? 왜 남들처럼 무덤덤하게 못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래도 나는 노력할 것이다. 서서히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로 올라오며 공부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Reese’s, 얼마나 달콤한 유혹인가? 나를 유혹하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에 이것은 예외가 아닐지? 어제 이것을 무려 6개나 입에 넣고 나서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낀다. 나이의 신호인 ‘당뇨병’이란 말이 귀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의 원인이 Reese’s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영양적인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간당 적당한 개수는 몇 개일까? 웃기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요즈음은 솔직히 말해서 사치적인 순간들이다. 즐기고 감사하면 된다. 아~ Reese’s야, 지금도 거의 손이 그곳으로 가며 2개를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중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라고 쓰인 벨라뎃다 편을 신들리듯 읽고 쓴다. 내용은 거의 이미 아는 것들이지만 이 신부님의 묘사, 글은 정말 engaging한 것이어서 실감이 100 % 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은 그가 했던 성지순례일기였다. 아~ 이제 우리도 이곳을 가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실감은 아직 가지를 않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은 나를 정말 행복하게 한다. 건강할 때,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신명 들린 듯, 마술에 빠진 듯 읽으며 필사를 ‘즐긴다’. James Martin신부의 문장, 글의 스타일 때문일까, 아니면 내용에 무엇이 있는가? 지금 루르드의 벨라뎃따, 순례기를 읽고 있는데, 생각한다. 이곳을 가게 되면서 혹시 우리들… 앞으로 꼭 봐야 할 유명한 곳 보다는 세계에 널려 있는 성지를 가급적 많이 가보고 싶다는 어린애 같은 소망이 떠오른다. 나답지 않은 것이, 예전에 나는 그렇게 성지에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Martin신부의 글을 읽으며 서서히 그런 생각이,  ‘꼭 가보고 싶다’ 라는 희망적인 염원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목표가 서서히 안개 속에서 나타나는 듯 느껴지는 날이 되었다.

기록적인 속도로 베르나데트 성녀 편을 끝냈다. 그러니까 하루 만에 거의 30 페이지를 질주한 것이다. 역시 내용이 큰 관건이다. 너무나 몰입하며 즐겁게 읽게 되니까 이렇게 빠르게 독파한 것이다. 다음 편은 여러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를 택했다. 이것은 Word on Fire Bishop Barron의 영향에 의한 것이다. ‘신학대전 Summa…’, 신학의 정수를 정리한 분이니… 이것으로 나는  apologetic의 한 곳을 또 건드린다.

 

이슬비도 안 되는 물기가 가득 찬 하늘을 보며 로난을 데리고 걸었다. 햇살은 없지만 대신 습기가 땀을 배게 한다. 아직도 나는 로난과 가는 것이 힘들지 않다. 숨도 고르고 다리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연숙은 요새 걷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듯 보인다. 나와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야 할 텐데…  Toddler, 아이를 보는 것 baby-sitting, 힘든 것인가 아니면 할만한 것인가? 지금은 새로 찾은 Dave&Ava [3D animation, 최근의 video technology의 위력을 보여주는 예] 라는 아이들 video를 Youtube에서 보게 하는 것이 무척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그것 이외는 diaper 갈아주는 것, 많을 때는 3번씩이나 하고 나면 정말 나도 늘어진다. 책이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정도가 되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힘은 들어도 이러면서 서로 skinship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좋은 것 경험이 아닐까. 아직도 손주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이런 일들’, 그래 기왕 하게 된 것 편하고 즐겁게 하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노년에 최선을 다해 사는  한 방법이다.

 

하지가 지났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안 간다. 날씨 때문에 해의 동향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관심이 덜 했던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나의 방에 있는 wifi light controller에 문제가 생겨서 ‘일년 중 제일 늦게 저녁불이 들어오는’ 것을 목격을 못 했기 때문이다. 좌우지간, 이제부터는… 저녁때의 불이 조금씩 빨리 들어올 것만 알면 되고… 아~ 진짜 여름의 시작이고… 4개월만 지나면 ‘황금색’의 세상이 올 것을 기대하며…

6월의 하순, 24일의 요한세례자 ‘영명축일’과 메주고리예 성모님 발현이 머리에 떠오른다. 6월 25일은 나의 아버님이 빨갱이들에 의해서 끌려가신 모습이 떠오르고… 이렇게 하면 6월도 저문다. 그리고… 그리고… 기다리는 것, 계속 기다리는 것…

요사이 너무나 시원한 초여름의 날씨, 특히 뒤뜰의 초록색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온다. 연숙이 참으로 애를 쓰며 만들고 있는 이것, 아마도 우리 집의 보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래, 열심히 사는 날까지 가꾸고 보살피고 사랑하자.

 

 President Biden의 사랑하는 pet dog Champ가 집에서 편하게 영원한 잠을 자게 되었다는 소식. 날짜가 6월 19일, 우리Tobey가 3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간  같은 날? 아~ 우연인가? 게다가 나이가 13살? 이것도 거의 비슷한가?  그렇구나… 비슷하다. 그래 우리 Tobey도 집에서 나의 손에 안겨서 떠났으니까…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이 뉴스가 national news에 날 정도니까, 얼마나 미국인들의 pet dog, cat 에 대한 사랑이 깊은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그런지.. 바이든이 더 좋아진다 [모르긴 몰라도 Donald 개XX 는 pet dog이 있어다면 수시로 발로 걷어차며 열을 내고, 화를 풀었을 듯하다].

 

오랜 세월 동안 손에 들어온 고국의 시사 월간지들, 특히 신동아, 월간 조선, 중앙 등… 이제는 추억의 잡지로 곰팡이가 쓸고 있지만, 나에게는 기나긴 고향을 잊고 살았던 기간을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유물이 될 수도 있다. 1970년대 2권, 1980년대 21권, 1990년대 7권, 2000년대 1권… 이것으로 얼마나 나는 과거의 대한민국을 공부할 수 있을까? 노력을 한번 해 보자!

 

올해 Father’s Day, 받는 것만큼  나도 협조를 한 셈인가?  조그만 가족들이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으로 이날의 의미는 살렸으니까… 하지만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다. 나는 사실 이런 날, 기념일, 방학, 휴가, 명절, 휴일 등등,  혼자 있고 싶은 때도 있지만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고, 나의 속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이세상에 아마도 나의 볼래야 볼 수도 없는 어머님밖에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만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인간이 아닌가?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나는 속으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존재가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Father’s Day 모임 자체는 솔직히 말하면 모이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행사이기도 했다. 나는 별로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가 거의 전부일 수도 있지만 별 수가 없었다. 별로 즐겁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 그런 때도 있는 거지…

Father’s Day grill out by Father

 

이영석 신부와의 카톡 대화로 8월 경에 이임, 귀국을 하신다는 것은 짐작했다. 6월 말까지 떠난다는 소문으로 아마도 새로 오시는 주임신부님이 그날까지 못 오시는 듯하고 아마도 8월 경쯤 visa가 된 것은 아닐까? 좌우지간, 8월 전까지는 새로운 신부가? 와~ 아찔해진다. 물론 좋은 사제가 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윗동네’ 주임신부 같은 ‘피하고 싶은’ 사제가 오는 날이면? 와~ 이것도 조금은 도전이고 시련일 수도 있다. 이임 소식을 아직도 생각하고 정리를 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 성당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내년까지는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살려고 했는데 어떻게 이런 부담을 주는 것인지? 어떤 목자가 출현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생의 마지막 순례길을 크게 결정, 좌우할 듯하기 때문이다. 나의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시 신부님,  ‘몸이 아프신가..’ 하는 추측 성 말들을 하게 되었다. 아니면 가족 사정, 특히 그들의 건강상태.. 등으로 관심이 넘어가면서,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 듯 보인다. 그러면 나쁜 것 아닌가?  문제는 timing이다. 왜 지금인가? 시간이 지나면 알려질 터이지만 궁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더 좋은 신부님이 오신다는 hint를 주셨지만 그것이 전부다.

Juneteenth, Tobey’s Memorial

오늘 6월 19일이 바로 이틀 전 Biden 대통령이 federal holiday로 선포한 Juneteenth Day인가?  Black Independence Day 로도 알려진 날,  나도 이번에는 미국의 노예제도, 남북전쟁, 민권운동 등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하는 날이 되었다.

또한 오늘은 조금 숙연해지는 날이기도 하다. 3년 전 오늘  [pet dog] Tobey와의 영원한 이별을 하던 날, 나는 솔직히 이것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다. 얼마나 지나야 아름답기만 한 느낌으로 다가올까? 아직은 생각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다. 이후 나는 이런 이별의 가능성을 피하고 싶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끈끈한 인연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pet cat] Izzie는 어쩔 것인가? 나를 괴롭히려고 이 녀석 요새 나를 어찌나 따라다니는지… 정이 더 들면 이별도 괴롭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찌던 지난 며칠 후에 어쩌면 이런 날씨의 변화가 왔을까? 너무나 고맙게도 촉촉하게 계속 비가 내리는 주말 오후는 너무나 평화스럽다. 비록 Tobey가 그립고 Izzie와의 이별은 나를 미리 슬프게도 하지만 그래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오르고 내리고 웃고 울고 편하고 불편하고… 그래 복음말씀대로 내일의 일은 내일 생각해도 충분하다.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지만 이런 오후에 낮잠은 기막힐 듯해서 침대까지 올라가 누웠지만 역시 잠은 깊이 들지 않았다. 요새 왜 이럴까? 기막힌 나의 낮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날씨가 거짓말처럼 구름의 혜택에 힘입어 최고 low 80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런 날에 무엇을 하며 지날지 조금은 마음이 들뜨지만 실제로 크게 변한 하루는 아니다. 어제 끝낸 plant shelving, 이것에 힘입어 다른 carpentry work은 없을까? Porch 내부의 painting, 아직도 시작을 못한다. Pressure washing으로 시작해서 모든 잡동사니를 꺼내야 하는 것 등등 힘든 것만 머리에 떠오르니…

예보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비가 바람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예의 ‘사진기’를 준비, 뒷문, 앞문을 모두 열고 찍는다. 하필이면 오늘 Tobey가 비를 바라보며 편하게 앉아있던 모습이 그곳에 어리는 것일까? Tobey야, 행복했지? 나도 행복했단다. 서로 고생도 많이 시켰지? 하지만 너는 모두가 인정하듯이 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 그것으로 나도 너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너희들의 저승이 있다면 꼭 다시 한번 만나서 비 오는 모습을 기다려 보자…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저서 ‘나의 멘토 나의 성인’, 이제는 이냐시오 성인 편으로 들어간다. 올해가 성인의 예수회 500주년 기념해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과 김대건 신부 해까지 겹치니 생각하고 살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 환영한다. 성인, 성인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서 나에게 희망을 주는 인물들을 왜 잊고 살았을까? 이런 ‘성인들’을 모조리 찾아서 그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고 싶고, 알고 싶다.

필사를 계속하며 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이냐시오 성인, 예수회는 과연 나에게 무엇이며 무엇일 될까… 웃기는 질문이지만 누가 알랴? 어떻게 전개가 될 지를… 학문적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기에 자신은 없지만 이영석 신부님께 운을 띄웠지만 답은 교과서적인 것이라서 조금은 실망을 했다. 나를 이끌어주실지도 모른다는 수동적인 희망이 문제였다. 역시 내가 주도를 해서 이끌어야 할 듯하다.

Wikipedia에서 이냐시오 영성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우연히 online retreat program의 link를 찾았다. 하나는 Creighton University (a Jesuit  University in Omaha, Nebraska)에서 제공하는 것이고 다른 곳은 완전히 영성수련 전문 site였고 online뿐 아니고 hard copy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아무런 제한조건이 없지 않은가? 요새 같으면 피정도 있을 리가 없고 어차피 zoom 시대이니까… 아무런 문제가 없다. 기간이 긴 것도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번 심각하게 고려할 가치가 있다. 레지오 영성에서 이냐시오 영성으로 옮아가는 것이다. 호기심 반, 실제적인 기대 반이 섞인 이것, 그래 기도를 하며 숙고를 해 보자!

 비속에 우산을 쓰고 mailbox 로 나가보니 Amazon에 order했던 James Martin신부의 2권의 보물 같은 책, The Jesuit Guide (to almost everything)와 newly published JESUS, A PILGRIMAGE 가 들어있었다. 기왕 이렇게 이냐시오 영성에 발을 조금 들여놓았으니 아마도 이것이 성모님, 하느님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닌지…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 두 권을 다 읽게 되면 올해 여름도 다 가고 붉은 낙엽이 우수수 쏟아지는 가을이 되겠지… 그러면…

Truly June Miscellaneous

기침을 하지 않고 지난 밤 잠을 잤다. 일주일 만에 처음이 아닌가? 어제 저녁에 나라니가 준 기침약의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날 때가 되었는지도… 개운한 목의 느낌이 날라갈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몸 깊숙한 곳에 가래침이 고여있음도 느낀다. 오늘은 저녁 자기 전에 그 물약을 복용하고 자면 어떨지…

습관적으로,  작년과 재작년의 일지달력에서 요즈음 6월을 살핀다.  역시 느낌은 마찬가지… 작년과 올해는 큰 차이를 못 느끼지만, 재작년은 정말 아득~한 옛날 옛적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그렇게 거대한 변화가 있었을까? 우리의 십 년이 넘어가는 교회 성사, 봉사 생활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작년이었다면 올해는 없어진 레지오 활동, 봉사는 물론 심지어 성사, 본당생활에서 멀어진 올해의 우리의 모습들이다. 절대로 자랑스럽지 않다.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는지는 몰라도 결과는 형편이 없고, 실망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다시 ‘활동, 활기’의 느낌과 보람찬 생활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비교적 흐리고 시원한 날씨, 이럴 때 바깥일을 해도 되겠지만 우리 둘은 아직까지 ‘기침감기 휴가’를 잠정적으로 즐기고 있기에 선뜻 나가기가 귀찮다. 하지만 일단 잠깐 나가서 집 앞쪽의 paint 계획을 구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야만 조금은 마음의 평정과 안도감을 얻는데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video나 보면서 마음껏 노는 것으로 끝날 것이고, 후회는 안 한다.

이 며칠간은 무엇인가 남기고 싶고 그것을 쓰고 싶어서 무척 글을 긁적거리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처럼 문장을 많이 쓰는 사람, 특히 남자들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주위를 보아도 그런 사람 별로 없는 듯하고 연숙도 의외로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것이 사실 생소할 수 있다. 나는 다행히 10 여 년에 걸쳐서 그런대로 문장을 만들며 살았지 않은가? 하지만 그 중에 멋지고 값지고 남길만한 멋진 글은 사실 하나도 없다. 일기체의 글에서 솔직함만 있어서야 남길만한 것일까? 하지만 공개할 수 있는 글을 남기고 싶은 욕망은 항상 존재한다.

연숙이 점심 식사 전에 지혜네 집 미장원엘 다녀온다. 가정 집에서 하는 거의 ‘허가 된’ 사설 미용실이지만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 문제가 없다. 나는 이발소엘 항상 ‘못’ 가지만 연숙은 문제가 없다. 참, 나도 별난 인간이라서 이발소엘 안 가고 일생을 살았으니… 나도 기인열전에 오를 만 할 것인가. 하기야 지금은 이발을 해야 할 머리가 별로 없으니 큰 문제는 사라졌지만 그것이 아쉽고 가끔은 슬프기도 하다. 나이 먹음의 슬픔 중에 하나일 것이다.

 

별로 할 것이 없는 것을 즐기는 오늘, 그 표시로 couch에 잠깐 누웠다. 물론 잠이 올 리는 없지만 쉬는 것에 의미가 있다. 돌돌 말아먹는 김밥, 맛있게 먹고 desk에 앉으니 밖에 깜깜해진다. 와~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초여름의 한 날씨 type이다. 습도는 높지만 온도가 시원한 그런 날에 깜깜한 구름이 몰려오는 그런 모습을 나는 죽도록 사랑한다. 게다가 조금 있으니까 바람이 없는 비가 얌전하게 내린다. 초목들이 얼마나 시원할까~  이런 날이 매일이면 싫증이 날 터이지만 가끔 이런 것은 지독히 매력적이다. 문학소년이 되고 싶은 그런 순간들인 것이다. 아~ 나는 무엇을 쓰고 남길 수 있을 것인가? 성모님, 성모님…

연운경, 양재성, 정운용: ‘어떤 모정’이라는 80년대  [드라마 게임] episode를 편하게 본다. 여기 나오는 연운경이라는 탈렌트도 마음에 들고, 상대역 남자 이름이 무엇인가…  맞다, 양재성, 이분도 참 인상이 좋다. 이런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나를 차분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왜 이렇게 옛날 것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것도 ‘기인 형’ 의 하나일까? 문제 없다. 그러면 어떠랴… 나의 인생인데…

비가 그치고 흐린 초저녁을 맞는다. 아~~ 궂은 비가 주룩주룩 계속 내리면 얼마나 좋으련만… 초저녁에 다시 서녘으로 기우는 햇살을 보는 것, 나는 항상 싫어했다. 하지만 이것을 내 뜻대로 할 수가 있겠는가? 그저 희망사항이다. 오늘도 ‘일’이란 것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낸다. 그러니까 쉬는 것이다. 이렇게 쉬면서 남은 여생을 보낼 수는 없다. 무엇을 하고 결과가 보이고 보람까지 느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 몸과 마음이 건강할 텐데… 요새는 그런 ‘일’들이 예전과 너무나 달라졌고 없어지고 있음이 솔직히 나를 초조하게도 한다. 어떻게 하면 보람된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요새 신경을 쓰는 ‘그것, 그일’도 사실은 정말 중요한 일에 속하는 것이지만 솔직히 ‘능동적인 일’은 아니고 나의 원죄의 여파에 생긴 괴로운 일이기에 정말 기쁜 감정은 없다. 그것이 나의 비극이다.

오늘도 binge watching, “list repeat random” mode로 계속된다. 대부분이 KBS문학관, 드라마 게임 episodes들이지만 간혹 HD version 들이 걸리면 조심스럽게 몇 초를 보다가 다시 SD [사실은 VHS class] video로 돌아가 버린다. 그곳이 편하기 때문인가? HD version은 자연히 대부분 2000년대 이후이기에 나는 아직도 불편하고, 생소하고, 심지어 두렵기도 하다. 나의 병, 나의 고집인가? 1990년대 이후의 video들은 아직도 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해괴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정복’해야 할 나의 목적지 산봉우리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을 향한 나의 목표는 과연 언제나 이루어질까?

 

늦은 저녁에 다시 한번 바람기가 없지만 세찬 비가 내린다. 무조건 고맙고 반갑고 기쁜 소리가 바로 밤에 내리는 빗소리가 아닐까? 오늘은 그런 기회를 몇 번이나 맞았던가? 비록 진한 coffee향과 어울리는 빗소리는 아니었어도 괜찮다. 여름에 맡게 되는 coffee향은 다른 계절에 비해서 볼품과 매력이 떨어지니까 그것은 가을을 기다려보자. 내일은 숨차게 다시 로난 녀석baby sitting 을 하는 날이구나. 조금 숨은 차지만 기왕 하는 것,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면 된다. 몸이 성할 때, 할 수 있을 때…

카톡이 정말 조용하다. 나도 잊었지만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된 일인가? 이심전심 같이 느껴진다. 모두들 나를 잊고 사는 것처럼 나도 그들을 잊고 살고 있으니… 조금 서글프고 외로워진다. 그저 그저 이런 때도 있는 거야 하며 위로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럴 때 부담 없이 소식을 날리던 교성이가 그리워진다. 나는 큰 친구를 잃은 것은 아닌가? 언젠가는 다시 우리의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아~ 정말 슬프고 섭섭하다, 교성아… 너의 건강을 생각하면 조금 다시 아찔해진다.

요새 매일 보는 KBS문학관 series에서 가끔 보는 얼굴이 있다. 그 talent의 이름을 아직도 모르지만 얼굴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 talent를 알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이 옛날 옛적 시카고에서 같은 apt에서 살았던 서충일 형과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 아니 똑 닮을 수가 있을까? 그의 연기도 사실 나에게는 호감이 가는 정도인데 주로 1980년대에 활동했던 연기자인 모양이다. 이름을 찾을 수 있으면..  지금 보는 것, 제목이 김동리 원작,  ‘역마’,   TV문학관 제19화 (1981년 8월 29일 방영) 에는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름이 무엇인가?  드라마 시작, 처음으로 보이는 서영진, 조남경 두 이름 중에 하나일 듯한데… 

Screwtape demon, Chicory Coffee

The Screwtape Letter, 무서운 악마의 유혹을 강렬하게 느끼는 아침 잠에서 깨어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이 유혹의 악마는 ‘나가기 싫다. 잃어나기 싫다. 사람들 만나는 것 싫다, 무섭다, 너의 몰골이 엉망이다, 창피하다’… 등등 으로 유혹을 한다.  나 자신의 오랜 악마의 모습이 나를 찾아온 것처럼 느껴지는 일요일 이른 아침, 일찍 미사엘 가야 하는데… 갑자가 나가는 것, 사람들 보는 것이 무서워지는 것은 정말 무섭기조차 하다. 왜, 내가 이렇게 약해졌을까?  악마여, 예수님이 오신다, 물러가라!

그 이후, 기적의 5시간! 놀랍다. 오늘 아침의 5시간, 7시부터 12시까지 우리 둘이 했던 일, 성과, 결과… 효과의 극치라고나 할까, 그런 시간을 보낸 것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의 은총이라고 나는 ‘과장 표현’하고 싶다. 비록 일어나기 전에 나는 정말 무서운 악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결과가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나는 성모님을 포함한 커다란 영적 존재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결론은 내린다.

삼위일체 대축일에 대한 이영석 신부님의 또 하나의 명 강론, 비록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coffee를 마실 시간을 없었어도 내일 ‘작은 모임’을 대비한 H-mart shopping도 하고 들어와서 SONATA CAFE style 아침을 거뜬히 먹었고, 역시 또 다른 해박한 명 강론, Bishop Barron으로부터 들었고, 이어서 편한 가슴으로 Pope Francis의 또 다른 대축일 맞이 Angelus 삼종기도 중계 방송을 보고 있으니… 이것은 정말 은총의 주일 오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성모님.

 

도라빌 Doraville H-Mart에서 우연히 발견한 ‘깡통 ground coffee’, Cafe Du Monde, 이름도 독특하고 포장도 색다르고 게다가 어찌 그렇게 값이 저렴한가…  조금 다른 coffee  맛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 사가지고 와서 시음을 해 보았다. 역시 다른 맛, 독특한 맛, 기분까지 들뜬다. 조금은 촌스러운 [major name brand에 비해서] 깡통 포장에 적혀있는 상품 설명을 잠깐 보니 chicory란 단어가 눈에 뜨인다. 불현듯 요새 애를 보아주며 youtube에서 보여주는 nursery rhyme 중에 히코리 디코리 란 말이 연상되는 이 치코리는 무엇인가? 포장의 설명에 의하면 coffee와 chicory가 섞여 있다는 뜻인데.. 왜 chicory를 넣었을까? 맛 때문에? 이 깡통 coffee은 미국 Louisiana 주의 New Orleans에서 만든 것으로 아마도 그곳의 토산품인 듯했다. 치코리를 넣은 이유는 역사적으로 그것이 커피 대용품으로 쓰였다는 것으로 경제적인 이유였던 것이지만 맛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사실 커피가 귀할 때에는 치코리가 대용품으로 쓰였다고 한다. 진짜 커피와 치코리를 섞은 ‘경제적 커피’로 유명한 곳 중에 하나가 역시 미국 Louisiana 주, 특히 New Orleans였다. 그것을 내가 오늘 H-Mart에서 sales 가격으로 사온 것이다. 싼 맛과 독특한 맛이 어울린 오늘 아침 SONATA CAFE breakfast는 조금 피곤한 이즈음 나의 생기를 돋구어 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오후에 십계명을 어기고 육체노동을 했다. 비록 일요일 안식일이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내일 진희네 그룹 손님이 오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앞 쪽의 잔디, 잡초들만 조금 손을 본다는 것이 그만 전체로 확산이 되어서 거의 3시간이나 걸렸는데 생각보다 덜 피로한 것은 역시 깎고 있는 잔디가 너무나 건강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까지는 정말 보기도 괴로울 정도였는데 올해는 어떻게 된 일일까? 제때에 weed & feed를 뿌린 것 밖에는 없는데… 역시 이것도 연숙의 노력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pressure washer로 앞문 쪽을 청소하였는데, 처음에 작동이 되지를 않아 실망으로 끝이 날까 우려는 했지만 기어코 원인을 기억해 내어서 일단 청소는 끝을 냈다. 문제는 역시 front door의 낡은 모습…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3,000 예산으로 바꿀 때까지 손을 보아야 하는데… 일단 paint를 내가 깨끗이 닦은 다음에 해 보기로 했다. 또 다른 문제는 역시 그 밑에 brick 의 상태인데… 어쩔 것인가?

일단 일이 끝이 나고 쉰답시고 LIFE magazine [1936-1973]을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보는 것은 역시 내가 제일 흥미와 관심을 가지는,  내 나이  2~3세 정도 때, 1951년 무렵 미국에서 본 한국전쟁의 모습과 뉴스들… 그 당시의 미국의 모습들도 나는 너무나 흥미롭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각종 미국잡지들의 기억이 나고 당시에 거의 ‘이상향, 천국’처럼 보이던 미국과 현재 내가 살아가는 이곳의 모습을 비교하면 한없는 추억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이것, 이런 것 과연 나에게 어떤 효과를 주는 것일까? 거의 70년 전의 일들에 왜 나는 이렇게 ‘허망한 시간 낭비’를 하는 것일까?

First of May, Ah… Marian Month…

원서동 죽마고우들, 또 일 년이 흘렀구나..

 

오늘이 5월 1일 임을 안다. 뚜루루 뚜루루 뚜루루루루루~~  Bee Gees 의 추억 어린 화음이 용현이와 창희, 그리고 지리산 흑백영상과 겹친다. 1977년의 반세기 전의 모습과 풍물, 시대와 함께… 나는 또 ‘이제 우리의 세월은 다 흘러갔다’ 라고 또 중얼거린다.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숨을 쉬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아침 평화방송 매일미사에서 “아차! 어떻게 이런 일이!” 의 moment를 맞는다. 5월1일 May Day의 이름이 떠오르면 곧바로 ‘창희와 용현이’  Friends Forever~ 의 생각만 했지 정작 ‘성모성월’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Marian Month of May! 성모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어머니 날만 생각했지 우리 성모님 생각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 찬란한 5월은 성모님의 달, 하기야 이것은 이제 완전한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기에 5월이라고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그랬을 것이라고 조금은 자위를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5월, 5월, 성모성월, 성모의 밤… 참 포근한 추억들이었지… 성모님, 감사합니다, 저의 [제2의] 어머니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Pandemic 이전 거의 매일 하던 ‘아침외출 drive’를 하게 되었다.  무너지고 있는 에어컨 condenser pad를 고치려고 [pouring new concrete]  Quickcrete 를 사러 Home Depot에 같이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에 아침을 밖에서 아마도 McDonald’s 에서 먹는 것은 어떨까? 그러면 더욱 2020년 이전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아침 동네성당에서 매일미사가 끝나면 fast foods를 가끔 즐기던 우리의 모습들이 그립다. 하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고통, 입안의 고통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었지, 지금은 최소한 그 독특한 아픔은 사라졌다. 음식의 독특한 맛을 조금 잃어버렸지만…

 

Two Husbands? 갑자기 잠에서 깬 느낌이 들었다. NBC weekend morning Show에 말쑥한 남자, Transportation Secretary Pete B.[Last Name조차 느낌이 이상한] 가 열차 안에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 그는 Biden의 ‘Ultra’ infrastructure spending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mega plan은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 가는 것이다. 하지만 interview의 마지막 부분, 그의 ‘husband’ 의 모습이 왜 그곳에 나오는 것일까? 그 남자의 남편이라… Gay couple인 것인데 그렇다면 그는 wife라도 되었다는 말인가?  나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아~~아~~~신음소리’가 나옴을 느낀다. 어떻게 이런 Sodomy 세상이 ‘개화의 이름’으로 초현대에 왔을까?  하지만 잊지 말자, 그것이 세상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만… [나는 bible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의 깊숙한 신념에 의한 것만 기록하면 된다]

 

‘필사, 필사, 필사 [mechanical] typewriter 소리, typing keyboarding..’ 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지나간 수 년간은 나는 ‘심심하면’ 이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 옛날 처음 mainframe computer가 나왔을 때 scientists, engineers들이 ‘심심하면’ 이것을 가지고 [typing이 아니고] toying하며 시간을 보낸 사실을 기억한다. 그것도 좋지만 typing그 자체는 나를 신선하게 하고 젊은 느낌을 준다. 나만의 독특한 생각일까? 타이핑하는 목적,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행위자체를 나는 너무나 사랑한다. 요새는 갑자기 그것을 할 상대가 하나하나씩 사라져간다. 무엇을 필사할까? 이럴 때마다 나는 대한민국의, 출판사 이름도 거창한 ‘바오로의 딸’들의 수녀들이 미워지고 싫어진다… 생각의 안목이 너무나 좁고, 짧은 ‘신앙적 출판인들’의 바보스러움을 한탄한다. 이 바보 수녀들아, 조금 더 높고 넓은 숲, 산, 하늘, 은하계를 보며 사세요!

 

거창하게 James Martin 의 ‘두꺼운’ 책과 reader [James Martin Essential Writings]를 구입했지만 희망대로 진전이 안 되고 있다. 아마도 이것도 Merton effect인가? 나는 지금 이 Merton의 이름으로 걱정에 빠진다. Merton의 first name이 가물거리는 것이다… 이것도 요새는 흔한 경험이다. 하지만 치매초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 이름들이… Merton의 이름… 흔한 것인데..john, James, Steve, TOM TOM TOM TOM!!! 아~ 이것은 왜 이 모양인가? Thomas Merton!!  너무나 기대가 컸던가? 내가 그의 진면목을 잘 못 알았던가? 실망을 하는 자체가 금기여서 그랬나? 하지만 실체를 알게 되는 것은 다행이다. James Martin도 같은 류가 아닐까? 조금 기대치를 낮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독서의 진전이 너무나 느리다. 조금 더 빨리 읽고, 좋은 글은 ‘부분 필사’를 하는 것도 좋은 idea일지도 모른다.

 

Normalcy in the air! 화창한 성모성월 5월, 그것도 첫날은 일년 만에 무엇인가 세상, 최소한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제대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가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는 듯했다. 속으로는 ‘개XX’란 말이 다시 나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앞을 보며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염원이다. 십자가 경배 때의 놀라운 결심을 이곳에도 적용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 Home DepotTrader Joe, 그리고 Wendy’s를 찾았던 오늘 아침은 정말 ‘정상적 토요일’의 느낌이었다.

좋은 날씨와 일찍 먹은 Wendy’s Dave’s Single Combo 덕분에 용기를 내어서 front lawn 잔디를 깎았다 올해의 잔디는 확실히 예년에 비해서 잡초가 적어서 그런지 잔디의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그런지 힘든지 모르고 끝냈더니.. 거의 3시간이 걸렸다. 이 정도면 나의 체력에 큰 이상은 없는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집, 앞에서 보아도 평균 이상은 된 것 아닐까? 특히 ‘가짜 faux’ window  shutter들이 모두 없어진 것은 다른 집과 다르게 보여서 더 돋보인다고 나는 은근히 기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