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day déjà vu

2014 Atlanta Snowjam on I-285 North

드디어 올 겨울 첫 white stuffs, snow 가 오늘 낮에 ‘잠깐’ 올 것이라고 어제 ‘경고성’ 예보가 계속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번 겨울 내내 은근히 어린아이처럼 이것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은 나 자신도 조금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머리가 나이에 비해서 그렇게 삭막하게  무감하게 굳은 것이 아님을 알기도 했다. 사실 이런 나의 심정을 연숙에게 비치기도 했는데. ‘첫눈 올 때 집 근처에 위치한 Starbucks Coffee 에 가서 coffee를 같이 마시자’ 고 몇 번 말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곳은 눈이  조금만 내려도 차를 타고 가는 것이 힘들기에 그럴 경우에는 걸어서 가자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도 한껏 피기도 했다. 그것이 드디어 실현이 되는 가, 가능성이 제로가 아님이 더 확실해지면 올 겨울 들어 첫 snowday dreaming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시기, 날자는 ‘괴로운 추억’이 얽힌 날이기도 하다. 2014년 1월 28일이 그 유명한 아틀란타 교통대란, snow jam이 있었던 날이어서 먼저 ‘악몽’이 떠오른다. Doraville 도라빌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 주회합 등을 마치고 집에 오려고 차가  I-285 로 들어서면서부터 퍼붓기 시작한 freezing rain 그리고 함박눈에 모두 일찍 귀가하려던 차들이 꼼짝 못하고 차 속에서 밤을 지새웠던, 그런 악몽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눈에 대한 피해망상증으로, 이맘때가 되면 신경을 곤두세우며 일기예보를 주시한다.  결국 오늘도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날이었지만 성당이 문을 닫게 되어서 ‘공짜’로 하루 푹 쉬게 되었다.

기다리던 올 겨울 첫 눈의 꿈은 사라지고..

하지만 이번의 ‘눈 예보’는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았다.  아침에 잠깐 내린 비 뒤에 약간의 눈발이 흩날렸지만 곧바로 하늘은 개었다. 대신 무섭게 기온은 떨어지고 바람이 분다. 이 추위는 북극으로부터 내려 온 것으로 polar vortex라는 이름으로 북미주 전역이 강추위와 바람으로 꽁꽁 얼어붙는다. 이곳도 오늘 밤 10도(섭씨 영하 10도 정도) 대로 떨어진다고.. 집에 사는 사람들이야 난방으로 큰 문제는 없지만 homeless들과 밖에 사는 고양이들이 걱정이 된다.  그 동안 비교적 따뜻한 날씨로 한참 올라오던 뒷마당의 수선화들 위에 비닐 봉지를 덮어 두었는데 1~2월의 추위에 익숙한 이 지역의 수선화들, 이 겨울을 살아 남으리라 믿는다.

 

제일 어두운 밤, 거룩한 밤..

¶  동지:  2018년 12월 19일 수요일, 이틀 뒤인 21일이 책상 위의 달력에 ‘Winter begins‘라고 쓰여 있다. 아하.. 바로 Winter Solstice, the Longest Night, Midwinter.. 고추장 냄새가 나는 우리 말 ‘동지 冬至’.. 이제는 동지란 말이 왜 그리 생소하고 심지어 우습게까지 들리는지 조금은 슬퍼진다. 그렇다. 나는 ‘동지’란 말을 들으면 내가 본향 本鄕 으로부터 얼마나 오래, 멀리 떨어져 살아왔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다.

 

긴 밤 지새우고 나면 ‘진짜’ 겨울이 시작되는 날..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 공식적 겨울이 시작되는 날은 이틀, 성탄은 6일, 2018년의 마지막 날은 열 이틀 정도 앞둔 날..  2018년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의무행사는 등대회 망년회,  구역점심봉사, 본당 구역 송년잔치가 있지만 ‘등대회’를 제외하고는 글자 그대로 ‘의무적’인 것으로, 솔직히 ‘할 것을 해야 하는, It’s now or never의 심정’으로 별로 신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것들은 나의 관심 대상이 아닌 것들이고 해야 되었어도 나는 ‘안 했을’ 그런 것들이다. 내가 변신을 한 것인지 누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인지..

그래도 송년에 포근한 느낌을 주는 것이 있다면 60~70대 성당친교단체인 ‘어둠을 비추는’ 등대회, 같은 세대를 살았다는 인연은 믿음의 색깔도 초월하는, 생각보다 진하고 포근하다는 나의 ‘지론 至論’ 에는 아직도 변화가 없다.

 

¶  망각의 나날들:  거의 한달 만에 내 마음의 위안처, 쉼터 ‘retro‘ blog posting 을 준비한다. Blog draft들은 그 동안 많이 남겨져 있었지만 그것을 posting할 시간과 에너지가 거의 없었다. 무언가 나를 지독하게 피곤하고 심지어 쳐지게 했던 그런 지나간 한 달..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주로 (Microsoft Office) OneNote에 남겨진 나의 단편적 기억과 사건들을 다시 모으고 엮으며 달 간의 역사를 재구성해는 작업, 쉽지 않지만 해를 보내며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는 기억력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  Sorry, Holy Family Catholic..  오늘 아침 9시 미사엘 가니 정말 모처럼 Father Dan Ketter 가 오셨다. 도대체 몇 개월만인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 만이다. 재능과 젊은 에너지가 철철 흐르는 이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를 하면 우리도 젊어지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바티칸 신학’ 강의를 듣는 기분까지 든다. 게다가 ‘목소리’가 알아 듣기에 거의 완벽한 정도의 pitch를 가졌기에 강론이 나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지만 99.99%를 알아듣는 행운까지 얻는다.

이렇게 우리는 차로 15분 거리의 이 ‘동네 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거의 20여 년의 가족적 인연을 맺고, 6년이 넘는 매일미사의 은총을 주고 있다.  문제는 ‘미사의 꽃’인 주일미사를 이곳으로 못 가게 되어서 주일 헌금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나를 구해준 곳’의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도 드는 것이다.

작년부터 도라빌의 한국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로 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난 것은 나에게 주일날 그곳에 갈 일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급기야는 올 들어서 모든 주일에 무엇인가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마디로 안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내가 꼭 이런 것을 바라고 원한 것은 아니었는데…

 

Glen Campbell morning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쏟아지던 싸늘~한 가을비가 오늘 이른 아침부터 조금씩 잔잔해지는 느낌이더니 결국은 멈추었다. 하지만 빗물에 완전히 젖은 낙엽들이 내뿜는 냉기는  온통 나의 몸을 움츠려 들게 한다.  작년에 연숙이 Costco 에서 사준 실내용 warm pants 로 하체는 해결이 되었는데 shirt는 고르는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일기예보를 보니 올해 첫 winter storm, Avery 의 소식이 나오고 있다. 첫 눈의 소식, 물론 이 지역이 아니고 Midwest, Northeast 쪽이었지만 ‘눈 소식’을 들으니 벌써 ‘Holidays, the best time of year’ 란 숙어가 떠오른다.

작년 가을에 나의 work/study room을 아래층으로 옮긴 후 첫 겨울은 추위를 느끼며 살아야 했다. 위층에 비해서 훨씬 냉기가 대단한 것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올해 다시 맞는 큰 아래층 공간의  ‘냉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를 영원히 떠난 나의 Tobey가 없는 이 큰방, 그 사실이 추위의 냉기보다 나를 더 춥고 쓸쓸하게 만든다. Tobey대신 ‘양양이 Izzie‘ 가 나의 주변을 맴돌지만 ‘개와 고양이의 차이’는 그렇게 큰 것인가? 하지만 ‘5개월이란 세월의 약’이 작용을 하며 all shall pass, all shall pass

이른 아침 ritual (stick coffee, today’s scripture, email, New York Times newsletter, blog counts etc)을 끝내고 우연히 (사실은 며칠 전에 잠깐 보았던) 1960년대 말의 미국 TV show였던The Glen Campbell Goodtime Hour (variety show format)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 감미로운 추억이여! 아무리 잇몸이 쑤셔도 이런 60년대 말의 추억은 모든  불편함을 한때나마 잊게 해 준다. 그의 음악에 심취했던 시절, 60년대 말은 나에게 절대로 잊을 수도 놓칠 수도 없는 보물중의 보물로 남아있다. 서울에 있던 ‘미8군 방송국’이었던 AFKN 에서 이 program을 정기적으로 방영을 했고 나도 기회가 되는 때에 보곤 했었다.  연세대 전기과 기타귀재 심재흥의 영향과 도움으로 한창 기타를 배우던 시절, 이 Glen Campbell의 folk, country, rock style은 거의 교과서적인 도전을 나에게 주곤 했다.

 

 

 

한때 Elvis Presley 의 guitarist였던 그가 어떻게 그런 많은 재능을 가졌는지.. 그의 vocal style은 기타 솜씨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다만 그도 연약한 인간이었는지 ‘유명세’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으로 그의 말년이 기억되는 것은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의 노래 A Place in the Sun 을 ‘ 따라 부르며 guitar chord와 rhythm 을 연습했다. 특히 당시 Bobbie Gentry와 duet으로 부른 Let it be me 는 당시의 시내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항상 흘러나오던 hit song 이었고, 그 뒤로 듣던 Gentle on My Mind, By the Time I Get to Phoenix, Wichita Lineman, Galveston… 수많은 hit after hit..  훨씬 뒤에 미국에서 TV로 보고 들었던 그의 ‘대작’, big orchestra와 협연으로 부른 MacArthur Park은 정말 그만이 남겨준 영원한 classic이 되었다. 아~ 추억에 젖은 이른 아침이여…

 

 

MacArthur Park – Glen Campbell

 

Let it be me – Glen Campbell & Bobbie Gentry – 1969

 

Rainy day and Monday..

Tobey가 잠자고 있는 낙엽에 덥힌 뒷마당에 늦가을비가 세차게..

 

¶  비 쏟아지는 월요일:  하루 종일 어두운 하늘에서 싸늘한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물론 반가운 선물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flood warning이 나올 정도가 되면 선물의 정도를 넘은 것이다. 게다가 가끔 물이 새는 2층 지붕도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조금 불편한 것이 있어도 이것은 역시 ‘가을비’가 아닌가? 각가지 감상적 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운다. 물론 대부분 추억에 얽힌 생각들이다. 게다가 이런 을씨년스러운 가을비에 나의 영원한 친구 Tobey가 내 옆에 없다는 새로운 사실이 가슴에 걸린다. 이런 때면 나의 무릎에서 편하게, 평화스럽게 코를 골며 자던 그 녀석.. 비록 육신은 뒤뜰 땅속에 묻혔어도 녀석의 느낌은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나를 따라다닐 듯하다.

 

Saybrook Court에 아직도 남은 가을 낙엽들, 과연 언제까지 버틸까..

 

월요일에 내리는 비, 70년대 초 (1971년) The Carpenters의 classic oldie, Rainy Days and Mondays가 문득 떠오른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다시 없는  목소리’ Karen Carpenter의 잔잔하지만 깊은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그렇다.. 1970년 초.. 미지의 세계를 향한 꿈을 꾸던 멋진 시절에 들었던 ‘비 오는 월요일’은 큰 의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의 가사처럼 ‘모조리 우울한 것’들이었다. 그런 감정이 반세기 뒤에 완전히 뒤바뀌어 이제는 반대로 즐기는 ‘선물’이 된 것이다. 세월의 조화가 아닐까?

 

이렇게 세차게, 힘차게 쏟아지는 비는 나의 혼탁한 머리 속을 씻어주는데..

이런 때면 문지방에 편하게 엎드려 하염 없이 비를 바라보던 Tobey는 이제..

 

요새 갑자기 ‘기분과 몸’이 훨씬 나아진 연숙 덕분에 다시 규칙적인 정상적 생활을 찾기 시작해서 오늘 아침도 예의 daily morning mass, adoration chapel, Sonata cafe, 그리고 YMCA workout의 routine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역시 예외는 예외다. 갑자기 연숙에게 ‘감기 기운’이 덮친 모양, 열이 나고 목이 잠기고 기운이 빠지고.. 나 같으면 그런 것 참거나 숨기거나 하겠지만 사람은 다 다르니까.. 이럴 때 제일 중요한 것이 Bishop Robert Barron이 즐겨 강조하는 prudence 란 것이다. 나도 그의 말에 동감이다. 때와 장소에 따른 각가지 ‘덕목’들이 항상 같지 않고, 지혜롭게 ‘조절’을 해야 한다는 wisdom. 그저 참고 해야 할 것을 다 끝내느냐, 아니면 내일을 생각해서 할 것을 포기하느냐.. 결국은 내일을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일주일에 제일 중요한 레지오 주회합이 있는 화요일 ‘Legio’ Tuesday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날인 것이다.

 

 

Rainy Days and Mondays – The Carpenter – 1971

 

¶  ‘기타귀재’ 심재흥, 50년 전:  어제 중앙고, 연세대, 연호회 친구, 이윤기와 뜻밖으로 KakaoTalk 에 연결이 되어서 감회 깊은 이야기(texting)를 나누었다. 본지가 50년도 넘은 사람과 어제 헤어진 듯한 느낌으로 대화하는 것, 솔직히 이것이 바로 surreal 한 느낌이 아닌지.. surreal, surreal..  한마디로 실감이 안 나는 것이다.

얼마 전 같은 그룹친구 양건주의 주도로 우리들 4명 (나, 양건주, 이윤기, 윤인송)이 기적적으로 단체 카톡방에서 몇 마디나마 서로의 숨결을 느끼게 되었다. 언제고 이 친구들의 최소한의 안부 정도는 알 수 있겠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모두 친한 친구들이었고 특히 윤기는 헤어진 이후 거의 연락을 못하고 살아서 궁금한 것들이 더 많았지만 ‘거리와 세월의 횡포’ 의 희생자로 일생을 보낸 셈이다.

이 친구가 video하나를 올렸는데.. 1960년대 일본에서 활약했던 그 유명한 The Ventures를 ‘흉내’낸 electric guitar group의 공연이었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떠 올렸다. 50년 전의 그 이름이 이윤기란 친구의 기억과 겹치며 떠오른 것이다.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 그 중에 ‘기타귀재’라고 불리던 친구, 그가 심재흥이었다. 1969년의 회고담을 쓰려고 하던 참이라서 참 timing이 절묘하다고 할까..

 

그 당시 일제 electric guitar, 심재흥의 도움으로 샀고 역시 그의 도움으로 팔았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이 ‘귀재’로부터 기타(특히 electric guitar)의 매력을 배웠다. 자세한 테크닉을 배운 것은 아니었어도 그가 연주하는 것을 보며 넋을 잃고 바라보기도 한 것, 나중에, 아니 지금까지 (통)기타를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했던, 엄청난 영향을 준 것,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심재흥’이란 이름을 언급하니 놀랍게도 이번에 보낸 ‘벤쳐스’ 동영상’이 바로 그 친구가 보낸 것이라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에 연세대 전기과 동문들이 모이는데 그 친구도 만난다는 얘기에 나는 솔직히 꿈을 꾸는 듯한 느낌조차 들었다. ‘세월과 거리의 횡포’.. 도 이렇게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구나…

 

 

The VenturesWipeout live in Japan 1966

 

¶  사랑의 기다림:  지난 토요일 모처럼 우리는 ‘자매 성당’인 둘루스 Duluth, GA  에 있는 김대건 성당엘 갔다. 이날 그곳에서 ‘추계 일일 침묵피정’이 거의 하루 종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거의 30마일이나 떨어진 곳을 아침 8시에 집을 떠나야 하는 것 물론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가라, 가라, 무조건 참석해라’ 라는 무언가를 거역할 수 없었다. 가만히 보니 근래 나는 이 ‘가슴 속 깊은 곳의 무엇’을 조금씩 느끼며 사는 듯하다. 그것이 거창하게 ‘성령’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유행하는 과학적 표현으로 아마도 quantum message 정도는 아닐까?

4년 전에 이곳으로 같은 피정에 온 기억이 남아있지만 매번 지도신부가 다르니까 피정의 결과는 매번 다를 것이다. 아침 점심 식사를 포함해서 각각 두 번의 신부님 강의와 침묵 묵상이 번갈아 가며 오후까지 계속되고 마지막에 미사로 끝을 맺는다. 이번의 지도 신부님은 우리의 도라빌 본당 보좌신부인 ‘김형철 시메온’ 신부님으로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비교적 젊은 신부다.  ‘사랑의 기다림’이란 포근한 주제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졸리지 않는’ presentation을 했다.

요사이 신부님들의 강론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이분들 ‘과학적인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요새 신학교가 지나간 반세기 동안 급변하고 있는 과학문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갈릴레오 사건’으로 체면이 완전히 구겨진 가톨릭 전통을 상기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이날 김 시메온 신부님의 강론 서두가 이것을 말해준다. ‘거시적 우주론, Cosmology’ 으로 주제를 이끌었던 것이다. 아마도 더 기다리면 아마도 상대성이론, Quantum MechanicsString Theory 까지도 거론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추세를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입장이지만 ‘철학적, 신화적’ 접근을 좋아하는 일반 신자, 대부분 여성들에게 이것이 크게 appeal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test’ fires up, 가을비는 언제..

어제 이 지역으로 내려온 찬 공기의 영향으로 오늘 아침에는 드디어 얇은 스웨터를 찾아 입을 정도가 되었다. 사흘 전까지만 해도 이곳까지 쳐들어 온 열대성 폭우 ‘마이클’로 대기는 온통 습기로 가득 차 있었고 가끔 에어컨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하루 아침에 습기가 완전히 사라진 ‘추운 느낌’의 진짜 가을이 된 것이다. 올해의 환절과정을 보면서 ‘조금은 이상하다’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혹시 이것도.. 그것.. global warming의 영향은 아닐까..

 

Time to ‘test’ fire up central heating..

 

오늘 아침에는 조금 마음을 졸이는 ‘첫 추위와 난방’ switch-over 과정을 거쳐야 했다. 난방 furnace system ‘점화’ 때문이었다. 올 여름에 모든 heating & air system 을 새것으로 바꾸었을 때, 에어컨은 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실 그 더운 여름에 난방 system은 테스트 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었기에 항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드디어 그것을 test할 순간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위층은 electronic, 아래층은 pilot lamp system이라서 아래 층은 그 ‘어두운 지하’로 들어가서 손으로 점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래층도 electronic으로 바뀌어서, 예전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문제는 한번도 내 눈으로 test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위층의 furnace는 test에서 문제없이 fire가 되어서 한숨을 놓았고 아래층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Best time to reminisce, rainy autumn with hot coffee

 

며칠 간 계속되는 ‘추운 쪽의 가을’ 을 맞으며 겨울도 아주 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부지런히 가을/겨울 옷들을 찾아야 하는 귀찮음을 느낀다. 비록 황금색의 낙엽과 하얀색 눈의 자연은 나를 즐겁게 하겠지만 머리 속이 예년의 그것과 너무나 다른 ‘처음 경험하는 일’들로 가득 찬 요즈음, 과연 나는 예전처럼 ‘감상적 사치’ 를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도 기대는 있다. 차가운 가을 비 내리는 바람 부는 한가한 오후에 편한 의자에 기대어 향기로운 coffee를 마시는 기대.. 한번 기대해 보자…

가을비, 19차 사업보고..

¶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Autumn too far..

¶  가을은 도대체 언제, 어디에? 올해의 9월 초순은 유별나게 더운 느낌이고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나의 불평은 햇살 따가운 그런 것이 아니라 장마 뒤의 끈끈한 그런 날씨의 연속이라는 사실이다. 거의 매년 날씨의 느낌을 개인 일기로 남긴 탓에 나는 계속 작년 이맘때와 일일이 비교를 하는 ‘함정’에 빠진다. 작년의 9월은 Nine-Eleven (2001년 9월 11일)의 그때와 거의 비슷하게 바짝 마른 시퍼런 하늘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런 9월 초순을 기대하였는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가 되었다.

이런 때, 즉 여름 같은 느낌의 9월을 느끼게 되면, 빠지지 않고 잊지 않고 떠오르는 9월의 날씨는 1968년의 9월 서울에 살 때의 기억이다.  연세대 2학년 2학기가 시작 되었던 때, 그렇게 재미있던 학교공부가 갑자기 시시하게 느껴지고 연세대 입구에 즐비한 다방에 앉아서 pop song에 심취되고, 그 당시에 시작된 어떤 학생 클럽(남과 여)에 거의 모든 시간을 ‘낭비’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철없는 듯 하지만 절대로 후회를 할 수 없다. 그 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없는 가장 ‘즐거운,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때’ 였으니까.. 신촌 로터리에서 이대 쪽으로 가는 언덕길에서 ‘클럽 뉴스’를 등사 service 하는 집에 부탁하고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때, 9월 중순 무렵, 엄청 더웠다. 바로 지금 내가 겪는 그런 날씨였다. 그 이후 나는 ‘더운 9월’을 맞이하면 그때 그 길에 있었던 ‘등사 service’1하던 집을 회상하곤 한다. 아마도 지금 같았으면 집에서 Microsoft Word로 편집을 해서 집에서 print하거나 email로 회원들에게 보냈을 것이지만.. 50년 전에는 이렇게 모든 것이 ‘느리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그런 시절이었다.

오랜 만에 들어보는 단어 hurricane, 이것도 꽤 기억에서 희미해 진 것이다. Global warming 과 함께 익숙했던 이것, 이것이 올해는 생각보다 가까이 왔다. 바로 옆에 위치한 Carolina (주로 North)로 들이 닥친 것이다. Hurricane Florence.. 여자의 이름, 줄여서 Flo라고 했던가. Carolina 사람들은 무섭고 귀찮겠지만 안전한 거리에 있는 이곳 (Metro Atlanta) 에서는 그저 ‘시원한 북쪽의 공기’를 이곳으로 보내주고 시원하고 잔잔한 비나 좀 많이 뿌려주기를 바랄 정도다.

 

¶  2018년 9월 8일, 끈끈한 구름 속으로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대단한 9월 초, 올해의 9월은 작년의 그것과 이렇게 다른가… 작년의 daily (personal)  journal을 보면 습기가 완전히 빠져나간 파란 초가을의 풍경이 생각이 나는데.. 비까지 그친 날씨 아래 흙먼지가 뽀얗게 일어나는 올해의 backyard는 그렇게 예쁜 모습이 아니다.

오늘은 사실 교회력으로 ‘성모님의 탄생축일’인데도 불구하고 아침미사를 거르게 되었다.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귀중한 아침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던 것 뿐이다. 사실 이런 아주 작은 유혹들에게 넘어가면 결과는 예측불허다. 경험을 통해서 어찌 모르랴… 관건은 이 작은 유혹에서 더 이상 후퇴를 안 하는 것이다.

달력을 앞뒤로 보니 내주 화요일이 9월 11일… 2001년 9월 11일… 나인원원… 갑자기 몸이 움츠려 든다. 기분이 갑자기 나빠지고 쳐진다. 어느 누군가 안 그럴까? ‘그 당시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라는 질문이 나에게 떨어질 듯한 기분을 느낀다. ‘악의 실재’를 처음으로 체험한 날을 어찌 누가 잊겠는가? 기분이 또 쳐진다.

  1. 당시에 print물을 copy하려면 거의 등사란 것을 해야 했다. 복사기(copier) 가 없거나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장마 아틀란타 斷想

¶  Waning Summer, already? 오늘 이른 아침 일년 365일 매일 하는 대로 바로 전에 켜진 전깃불 (6시 30분에 켜진다)을 의식하며 아래층 내 서재로 내려오는데 기억에도 조금 희미한 ‘싸늘함’을 느꼈다. 서재로 가니 써늘함을 더한 듯 느껴지고.. 아마도 올 여름 시작되고 처음 맛보는 싸늘함이었던가? 긴 바지가 어디에 있더라는 생각도 스쳤다.

그리고 달력을 보니 8월 3일.. 어찌된 일인가? 8월 초밖에 안 되었는데. 그리고 생각하니 며칠 전에 노오란 school bus가 아침에 동네를 오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이들이 집에 없어서, 학교들이 개학을 하는 것도 잊었나? 그렇구나.. 올해의 여름도 서서히 물러가는구나.. 한 계절이 서서히 또 물러가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아마도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려서 태양의 열기가 땅에서 거의 사라진 결과로 이렇게 싸늘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열기는 돌아오겠지만 며칠 뒤는 입추, 그 뒤로 말복이 가까워오고.. 한마디  올 여름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그림을 상상하는 것, 이 시점에서 그렇게 조급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  장마 단상 斷想: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가끔은 폭포수 같이 퍼붓는다. 비를 워낙 좋아하는 나지만 어떤 순간에는 조금 겁이 난다. 혹시 우리 집에 홍수가 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우리 집은 우리 동네에서 낮지만 언덕 비슷한 곳에 있기에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억수, 장대배가 며칠 째 내린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꽤 내리고 있다. 가끔 보슬비로 변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린다.

반세기전 나를 낳아준 어머니 대한민국에서 경험했던 장마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른다. 요새도 그곳에 장마라는 것이 있을까? 50년이면 기후 system도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들리는 얘기로 예전보다 조금은 더워졌다고 한다. 거의 ‘아열대성 subtropical’ 이라던가… 속으로 ‘설마’ 하는 생각도 든다. 기억에 7월 초부터 시작되었던 기억, 폭우가 쏟아지는 것보다는 그저 ‘구질구질’ ‘오락가락’하는 것만 두뇌 기억세포에 남아있다.

요새 이곳의 ‘장마’, 이것이 진짜 장마가 아닐까? 그 옛날 ‘장마의 기억’에 ‘남태평양의 열대성 저기압’ 어쩌구 했는데 이곳은 ‘멕시코 만의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뀐 것 뿐이다. 그 옛날의 장마는 젊었던 20대 초 혈기에 답답한 나날들이었다. 유일한 ‘밖의 휴식처, 다방’ 이라도 가려고 밖으로 나가려면 ‘구질구질’한 시내버스에 시달려야 하고, 조금 더 신나는 도봉산 등산도 비 속에선 너무나 처량맞은 것이다. 조그만 나의 온돌 방에 누워서 무언가 하려면 없는 것 투성이.. PC, 인터넷, smart-phone, cable TV.. 비슷한 것은 고사하고 cassette recorder도 희귀하던 시절, 그저 유일한 것은 흑백TV와 radio, Stereo recorder player정도로 정말 만사가 simple했던 시절. 하지만 나이 탓에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즐거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렇게 반세기를 뛰어넘는 두 종류의 장마를 비교할 수 있는 것, 역시 반세기를 뚜렷하게 비교할 수 있는 나이와 능력을 가진 사람만의 특권이다. 이렇게 세상은 공평한 것이다.

 

¶  Depression? 며칠간 우울한 느낌의 횟수가 부쩍 늘어간다. 느낌뿐이 아니고 육체적으로도 피곤함의 횟수가 잦아지고.. 결과적으로 매사의 능률은 떨어지고 기쁨도 횟수도 같이 떨어진다. 왜 그럴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코앞에 다가온 것들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있었나?

예를 들면 지난 주말 이틀 연속으로 레지오 점심봉사에 매달렸던 것은 피곤했지만 보람을 느꼈지만,  ‘아마도’ 70의 나이에 조금은 무리였을지도 모르고 7월 중에 있었던 구역미사 준비 차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했던 것 등으로 피로가 쌓인 것은 아닐까?  혹시 골머리를 썩힌 것이 있었나? 7월 초부터 맡고 있는 구역장의 임무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가?

사실 처음으로 경험하는 group leadership은 보람 반, 고민,실망 반 정도로 진행 중이지만, 어느 정도 self-control에 단련이 된 내가 조그만, 사소한 걱정거리로 휘청거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걱정, 고민거리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있었다.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 나의 친구, 영혼의 짝.. Tobey가 내 옆에서 영원히 떠난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잠재의식 깊은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 이제야 인정을 한다. 충분히 나는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문득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 미칠 듯하지만 곧바로 감정을 덮어버리곤 했으니까.. 결론은 한가지.. 세월과 시간 바로 그것이고 슬픔과 눈물을 감추지 않는 그것이 올바른 처방약이라는 사실.

 

¶  Sushi Yoko: 스시 요꼬, 스시 전문집 이름이 요꼬라는 뜻일까? 알고 보니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식당이었다. 요새 일본식당은 거의 비일본인들이 경영을 하는데 이런 집은 희귀한 case가 아닐까?  오래 전부터 Peachtree Industrial Blvd를 North로 drive하다 보면 바른 쪽으로 그 간판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동수)목사 부부, 이번에는 목사님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지난 3월 초 이후 처음이니 거의 5개월 만난 목사님 부부, 무언가 더 밝아진 느낌을 받았다. 이날의 대화는 조금 더 일반적인 신앙적, 사회적이 화제로 소화하기에 큰 무리도 없었다. 비록 개신교와 천주교의 대화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 이목사님은 이날도 ‘귀향’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였다. 귀향이란 말, 참 매력적이고 감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생각처럼 쉬운 것일까.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좋은 것, 꿈일 수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날 경험한 스시요꼬의 맛은 만족스런 것이었다. 스시도  ‘진짜’ 스시처럼 느껴지고 내가 처음 먹어본 나가사끼 짬뽕 (Nagasaki Chanpon)은 한마디로 색다른 부드러운 그런 맛으로 중국식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도 맵지 않은 그야말로 일본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과 비교적 가까워서 ‘값이 엄청 오른1‘ 한국식당대신 앞으로 이곳을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역시 가까운 곳에 있고, 실내가 운동장처럼 넓은 Bakery Mozart에 가서 못다한 이야기와 ‘붕어빵‘ coffee로 이날 즐거운 만남을 끝냈다. 다음 만나는 시기는 언제인가.. 아마도 하얀 눈이 연상되는 대림절 12월 쯤이 아닐까?

 

¶  Car Connex Time: 거의 한 달을 미루어오던 2009 Hyundai Sonata 100,000 mile checkup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오래 전의 기억에 차가  100,000 mile이 넘으면 수명이 거의 다 되었다고들 했지만 차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요새는 그것보다 훨씬 오래 탄다고 들었다. ‘멋진 차, 고급 차’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이에 걸맞고, 안전한 그런 차에는 관심이 있다. 물론 우리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

현재의 차 Hyundai Sonata는 지난 9년 동안 우리 부부에게 별로 고장 없는 거의 완벽한 (transportation) service를 해주었다. 우리는 ‘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Mr. Won (owner, master mechanic)은 우리 차가 비교적 ‘얌전하게’ 유지되었기에, 앞으로 몇 년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생각에 2~3년 정도 뒤 쯤에 새 차를 살까 하지만 요새의 새 차 값을 보니 장난이 아니어서 심각한 budgeting을 하여야 할 듯하다.

 

  1. 또라이 트럼프 무역관세 덕분에 엄청 오른 중국산 때문인가..

7월 말, 흐린 여름날에..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The Eagles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
Peace with Charlie Chan time

 

Muggy, Atlanta EC.. all pass

¶  Muggy & Wet, then: 지나간 5월 중순부터 이곳은 Tropical Storm Alberto의 영향인지 완전한 ‘우기(雨期)’, 그것도 ‘열대성 熱帶性’ 대기가 완전히 이곳을 뒤덮어서 수시로 내래는 폭우, 폭풍은 이제 아주 익숙해졌고 며칠 전부터는 드디어 ‘끈끈한 밤’ pattern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air conditioner가 없으면 밤잠이 괴롭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느낌이 아주 달랐다. 공기 속에 물기가 하나도 없는 그런 것, 피부가 빠삭빠삭하게 느낌이 산뜻했다. 아침 6시 반 쯤 backyard엘 나가니 이건 다리가 추울 지경이 아닌가? 그렇구나, weather pattern이 결국 바뀌었구나… 하는 반가운 느낌으로 조금은 머리가 가벼운 새벽을 맞았다.

지난 2~3일 간 우리 집 Tobey가 토하고 설사를 하는 등 아주 아파서 나의 기분도 축~ 쳐지는 그런 날들이 되었다. 말 못하는 동물의 아픔은 그저 짐작으로 알 뿐이다. 하지만 병원엘 갈까 말까 하는 것은 고민 중의 고민이다. 최대한 머리를 써서 자가치료를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이 녀석 간호하며 희비쌍곡선이란 말이 어쩌면 그렇게 맞는 말인지..

피곤한 김에 어제 일요일, 예수성체성혈 대축일, 을 skip할까 하는 유혹이 강했지만 다른 이유로라도 가야 했다. 본당 구역장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신구임 구역장은 필수로 참석하라는 ‘지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비록 7월에 나의 임기가 시작되지만 이렇게 해서 나도 서서히 ‘구역 business’ 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별로 크게 생각할 것 없다. 순명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2명의 ‘만장일치’ forced holiday를 맞기로 했다. 마라톤을 하려면 이런 조치도 필요하다. Daily Mass, YMCA workout, eatout lunch모든 것에서 오늘 하루는 ‘해방’되고 나니 또 다른 느낌의 세상이 느껴진다. Tobey의 설사도 멎고 solid food를 조금씩 먹기 시작하고.. 감사합니다. 그렇다. This shall also pass… 이 모든 것 다 지나가리라..

이런 것들로써 올해의 ‘여름’은 시작되고, 나의 몸과 마음도 이런 기후 [끈끈함, a/c noise, 폭우]에 거의 적응을 하였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물론 ‘낙엽’을 떨어지는 사색의 가을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뜻, 이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자연이 변하는 것은 언제나 희망인 것이다.

 

¶  문인화 입선 자축@Miss Gogi: 다솔(연숙의 문인화 예명)이 몇 달 전에 ‘끙끙거리며’ 열심히 그려 출전했던 문인화 두 점이 입선이 되었다. 대한민국 전라북도 서도대전 이란 곳에서 입선통지가 왔고 며칠 전에는 그 작품들이 이곳에 무사히 도착을 해서 우리 집 ‘meeting room’에 걸어 놓았다. 다솔이 이 ‘것’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나… 최소한 7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오름과 내림새를 거치며 그려왔고 취미의 level을 고수해 왔는데 문인화 친구 ‘예랑’씨를 만나며 ‘대전 大展’ 을 꿈꾸게 되었다. 그 ‘예랑’씨는 거의 pro의 정신으로 그림을 그렸고 결국 대한민국 대전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 그런 ‘친구’의 영향을 받아 다솔도 결국 작년에 한국미술협회 대전주최 미술대전에 1점, 올해는 서도대전에서 2점이 ‘입선’되는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문인화 문화권의 변방에 있는 이곳에서 이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가 없고, 앞으로 골치 아픈 일들을 내려놓은 후에 전념을 할 것을 찾은 보람도 있을 듯 하다.

이런 것은 가족적으로 반드시 자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간 Memorial Day저녁에 온 가족 (나라니의 Lucas 포함) 이 도라빌 H-mart 옆에 있는 고기전문집 Korean BBQ Miss Gogi 란 곳에서 푸짐하게 오랜만에 고기요리를 즐겼다. 이런 식의 ‘신개념의 Korean BBQ steak house’는 아마도 재미 신세대 한국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듯 싶은데 거의 fusion style, 그러니까 Americanized 된 ‘신세대 한국음식점’으로 보인다. Mom & Pop 의 구태의연한 수많은 한국인 상대의 전통 한국음식점도 우리 같은 세대에게 필요하겠지만 이런 새로운 idea는 역시 ‘우리의 세대는 이제 다~~ 갔구나’ 하는 자조감 自嘲感을 느끼게 한다.

Korean BBQ, Miss Gogi

 

¶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8년 6월 2일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아틀란타 성체대회, 2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제는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진 전통적이고 유서 깊은 가톨릭 연례행사가 되었다. 2011년부터 우리는 참가했지만 2년 전 행사는 예외적으로 불참을 한 적도 있다. 그때 불참한 이유는 기대했던 어떤 speaker가 갑자기 못 오게 되었음을 마지막에 알고 너무나 실망을 해서 protest한다고 불참한 실수를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주최측의 scheduling 실수가 아니고 그 speaker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기도 했다.

Mother Olga

그 speaker의 이름은 요새 미국 가톨릭의 ‘떠오르는 별’ Bishop Robert Barron이고 그 유명한 주교님이 이번에 결국은 연사로 왔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기를 쓰고’ 참가를 해야 했다. 사실 이번에 오는 speaker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분들이었다. 또한 7년 전에 우리가 처음 참가했을 때 왔던 ‘아주 조그만 키’가 인상적인 Boston (Mass.) 에서 오신 Mother Olga를 또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우렁찬 노래의 기도로 시작하는 그 수녀님, 체구에 비해서 어쩌면 강론이 그렇게 힘있고 심금을 울릴까…

하지만 역시 이번 성체대회의 꽃은 역시 Bishop Robert Barron 이었다.  제일 마지막 차례로 그분이 등단했을 때 반응이 무슨 rock star라도 온 듯한 그런 열기였지만, 사실은 그분의 ‘지식적, 이론적’이지만 ‘신심이 담긴’ 강론은 정말 더 인상적이었다. Youtube로 보던, 매일 받아보는 daily reflection과 하나도 한치도 다름이 없는 일관된  message 바로 그것 이었다. 얼마 전에 끝낸 DVD ‘Mass‘를 의식하며 이날의 주제는 ‘천주교에서 제일 boring하게 느껴지는 미사’에 대한 것,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100% 200% 공감, 동감하는 주제요 강론이었다.

왜 이분이 그렇게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나의 추측이 맞는다면, ‘신세대가 수긍할 수 있는 이론적 강론’ 바로 그것이 아닐까? 특히 무신론자들과 ‘신사적 논쟁’하는 그의 이론은 정말 인상적인 것이다. 해박한 그의 디지탈 시대에 맞는 apologetic 은 아마도 현재 가톨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올해 성체대회는 이분을 직접 본 것으로 참가한 보람을 느낀 그런 기회가 되었다.

rising star, Robert Barro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전례부장, 교육부장 그리고 주임 이재욱 신부님 모두 morning procession에 참가 하였다

연인원 30,000명이 참가한 Georgi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  5월 목요회: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여서 하루의 영업을 서서히 닫기 시작하는 시간에 식당을 찾아 3명의 오래된 지기의 남자들이 모여서 지나간 달의 이야기를 나눈다. 일명 목요회, 이것이야 말로 odd group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점이 독특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전혀 다른 세 사람… 정말로 전혀 닮은 것이 거의 없다.

이번 달에는 Pleasant Hill Road 한인 town 입구에 있는 깨끗한 느낌의  ‘명가원’에서 모였다. 막내격인 S 형제, 누가 모른다고 지난 달에 이어 얼굴이 펴질 줄을 모른다. 아마도 지난 몇 달을 그렇게 우울한 나날들을 보낸 듯 보인다. 그와 반대로 나의 동년배 연대동창 이 형제는 의외로 얼굴이 밝을 대로 밝다. 무슨 좋은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덕분에 대화가 활기에 찬 것으로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coming home’ 의 hint를 비추었는데 의외로 전과 다르게 open 된 모습을 보인다.

장구한 신앙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동문형제, 어쩌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지.. 올해 9월이 목요회 ‘연륜’ 1년이 되는데 그때까지 더 좋은 결과를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어린  S 형제’, 60대가 넘었으니 과히 어린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아직도 ‘세월의 교훈’을 느끼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 커다란 희망은 접었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5월이여 안녕.. 성모님과 수국 水菊

¶ 5월의 어머님과 수국 水菊:  2018년 어머니의 선물, 성모성월 5월이 서서히 우리로부터 떠나고 있다. 올해, Mother Nature는 자상하게도 하늘에서 단비를 지나칠 정도로, 땅이 거의 마를 새 없이 충분히 주시어, 온갖 초록색 생명들, 꽃과 나무들은 호사를 하고 있는 5월이었다.

작년 5월을 돌아보면 그때는 거의 ‘초록색의 향연’을 잊고 살았었다. 우리 집 뒤뜰에서 태어난 8마리의 kitten들 살려내어 입양시키려고 동분서주하였던 때, 봄의 싱그러움은 거의 놓쳤지만 잊을 수 없는 그 귀중한 생명들, 귀여운 아기 고양이들 얼굴은 영원히 우리의 뇌리에 각인 刻印 이 되었고, 두고 두고 맛난 술을 조금씩 마시듯 아직도 기쁨을 느낀다. 그런 생명의 5월이었다.

올해의 5월은 조금이나마 ‘역사의 짐1‘을 덜어보려고 1980년대의 5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지냈다. 1980년 5월의 ‘광주사태’가 나와 어느 정도 관계가 되었을까 물으면 사실 많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 없던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절대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되었고, 나에게 과연 Motherland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더 생각하며 살기로 했다.

5월의 찬란하게 화사하고 청초한 꽃들을 매주 성모님께 ‘계속’ 바칠 수 있었던 것, 두고 두고 2018년 5월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주 회합 때마다  $4짜리 ‘상품화 된’ 꽃을 Kroger에서 사다가 성모님께 바치는 것, 돈도 돈이지만 미안하게 느껴진 것이, 화창한 5월에 우리 집에서 가꾸었던 꽃들을 바치는 것은 너무도 은총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한창 멋을 내는 수국과 옥잠화를 곁들인 homemade bouquet, 5월의 어머님 성모님, 너무도 좋아하실 것 같았다. 특히 왜 매년 피었을 수국의 싱그러움이 올해 특별히 나에게 그렇게 멋지게 다가 왔을까.. 생각한다. 아마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이 먹음의 멋일까?

 

성모님, 레지오, 수국, 옥잠화… 그리고 5월

 

¶  선생님의 방학:  ‘teacher 새로니’의 pet dog Ozzie가 2주 정도 우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애들처럼 여름 방학을 그렇게 목이 매이도록 기다리더니 며칠 전 Memorial Day 저녁에 식구들과 외식을 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Canada로 여행을 떠나며 Ozzie는 우리의 식구가 된 것이다. 이때마다 선생님이란 직업, 괜찮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긴 여름, 다 큰 사람이 아이들처럼 ‘놀고 먹는다’는 것, 나는 아직도 실감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나이에 그런 입장이었으면 아마도 지루하기도 할 것 같고 집구석에서 독서 정도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나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더 멋지게 보낼 자신.. 근래 들어서 outdoor sports: deep sea diving, hiking, climbing 같은 데 푹 빠져 있는 새로니, 지금은 공기 좋을 듯한 Canada의 wilderness를 누비고 있을 것이지만 글쎄.. 요새 ‘아이들’ 참 어리게 산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렇게 여행을 안 하고 사니 나는 나는 2주 동안 대리 만족이나 즐길까..

 

Ah, Canada.. I wish I..

 

¶  레지오 활동 재개:최근에 들어서 우리 레지오 Pr.2 ‘자비의 모후’, 1조 (나와 연숙)는 오랫동안 침체했던3 때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레지오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그 동안은 소극적으로 기도에만 치중하는 ‘활동’이었지만 그것은 균형을 잃은,  바람직한 방법은 절대로 아니었다. 이상적으로는 신심활동(기도를 중심으로)과 corporal work (육체적 활동)의 비율이 적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해서도 ‘밖으로 나가 뛰는’ 활동처럼 나에게 돌아오는 보람과 활력소가 되는 것은 없었다.

나보다 덜 건강하신 ‘어르신’들을 찾아 조금이라도 사소한 도움이라도 주는 것, 그 정도도 못할까? 이분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자체만도 그분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언젠가는 우리가 이런 도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하며 더욱 더 뛸 수 있는 육신의 건강을 주시라고 기도한다.

 

¶  Unofficial Summer: 어제 Tobey와 Ozzie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몇 년 전만해도 거의 매일 Tobey를 데리고 걸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거의 산책을 못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이가 많아진 Tobey를 너무 걱정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것은 좋지 않다. 모든 ‘운동’ 중에서 나의 나이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빠르게 걷는’ 것이다. YMCA에서 나는 30분 정도 빠르게 indoor track을 걷기에 날씨의 영향을 받는 동네걷기에 등한했는지도 모른다. 좌우지간 오랜 만에 걷다 보니 우리 subdivision의 ‘자산’인 swimming pool과 tennis court를 지나게 되었고, swimming pool이 ‘파~란’ 색으로 변한 것을 보았다. 그렇다.. Memorial Day부터 모든 Summer facility가 open 하는 것,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자주 가던 ‘수영장’… 아~~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그 수영장 아이들이 이제 30대가 되었으니.. 그렇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여름이다. 기껏해야 3~4개월 정도일까… 땀 흘리는 여름은 반갑지 않지만 이제는 드디어 갈색 낙엽의 가을도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보인다. 그러면… 작년에 재 발견한 classic oldie, ‘The Last Leaf‘를 다시 들고 부르게 될 것이다.

 

Swimming pool’s open for Summer!

  1. 거의 40년 동안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를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
  2. 쁘레시디움 Praesidium의 약자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의 최전방 분대로 실제적인 선교, 봉사 활동은 이곳에서 한다.
  3. 특히 지난해 ‘레지오 미친년 난동 사건’ 이후부터

Freedom, Memorial weekend

Freedom, Never Free

 

¶  현충 顯忠 단상 斷想:  며칠 전 Gulf coast로부터 북상하는 Tropical storm Alberto 의 영향인지 시원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고요한 휴일 아침이다. 대기는 이제 완전히 여름의 냄새가 가득한 그런 것으로 바뀌었지만 대신 기온만은 늦봄의 그것, 이런 모습의 Memorial Day 를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맞았던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 대부분 군인들, 이들을 추모하는 날답게 고요한 느낌을 주어야 하는 날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교과적인 삶을 사는가.. 그 많은 사람들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반세기 전, ‘부선망 父先亡 단대독자 單代獨子’1라는 구세대적 병역조항으로 군대의 의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당시에는 날듯이 기뻤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의 작은 trauma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과거지사 過去之事로 잊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특히 요즈음 빈번히 주위에 등장하는 ‘월남전 veteran’ 들을 마주하면 사실 할말이 하나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미안하다’라는 심정 바로 그것이다.

자유, 인간의 자유를 유지, 보전하기 위한 악 惡 과의 투쟁, 공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무료로 주어진 것인가? 우리 신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환경, 상황도 마찬가지다. 당장 김일성 세습왕조의 역사상 유례없는 잔학성과 현재 서서히 몰락하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며, 사필귀정 事必歸正 이란 말을 새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 절대로 공짜로 얻은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인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것, 그들만의 문화,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군대조직의 역할을 너무도 간과하며 살았던 것도 깊숙이 진행되는 나이의 혜택으로 하나 하나씩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며 놀랄 정도로 후회도 한다. 전쟁에 관한 책이나 영화들, 그 모든 것의 배경에는 ‘정말로 잔인하게 희생된 살과 피가 실제로 있었다’는 간단한 사실들이 ‘재미에 의해서 간과’가 되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오늘 내가 느끼는 역사의 관성적 慣性的 교훈이다.

 

¶  Double Whammy! 구역모임:  2018년 비공식적 여름철의 시작을 알리는 Memorial Day weekend 우리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조용히 단출한 식구들 오랜만에 모여서 barbecue 와 beer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연상되는 때이지만 올해는 완전히 storyline이 바뀌어 버렸다. 거의 10년 만에 우리 집에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구역 마리에타 사랑반의 월례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10년 이상.. 그러니까 그 동안 우리는 너무도 소극적인 구역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성당공동체가 덩치가 커지면 사실 구역의 역할을 그와 비례해서 중요해진다. 한 곳에서 모두 친교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는 두 곳에 본당을2  가진, 사실상 ‘두 집 살림’을 이유로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꽤 오랫동안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로 구역을 대했지만 나 자신으로써는 ‘내 신앙 reversion 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외골수적인 생각으로 일부러 피한 것도 있었다. 경험적으로 보기에 즐겁지 않은 사람을 피하는 과정에서 많은 ‘냉담자’가 생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한의 관계를 위한 노력은 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방관적 작은 역사도 나의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갑자기, 청천벽력의 느낌’으로 내가 이 작은 구역의 ‘장 長’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온 것이다. 자발적으로 이 자리를 맡는 어려움 때문인지 거의 ‘강제적, 임명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이 의무가 맡겨진 것이다. 이때 생각에, ‘결국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뿐이었고, 본능적으로 ‘도망가자’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번에는 ‘반사적 반응’이 아닌 진지한 묵상을 하게 되었다.

우선 현실적으로 ‘이제는 할 사람이 없다’라는 체념적인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이야 말로 다른 선택은 없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도망가면 해결되는’ 경험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도망가는 것 만은 피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편할 것도 아니고 도리도 아님을 절감을 하게 되었다.

이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얼마 전에 ‘완독 完讀’ 한 책,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의 저자 안득수 형제님이 생각났다. 그는 개인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그날의 ‘성경말씀’을 보곤 했는데 그것이 결정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온 말씀 그 날의 제1독서는 ‘배반한 유다의 자리에 마티아 사도가 뽑힌‘ 것에 관한 것 (사도행전 1, 25-26) 이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나의 사정과 비슷한 것인가.. 

이러한 배경에 이번 달의 구역모임까지 우리 집에서 있었으니.. 무언가 double whammy 라고 할까.. 최선을 다하자 라는 motto로 오랜 동안 손님이 별로 없었던 우리 집, 덕분에 며칠 동안 ‘중노동’의 결과로 무사히 많지는 않지만 ‘손님들’을 맞을 수가 있었다. 맞기에 편한 정도의 사람들이 왔기에 ‘작은 우리 집’도 앞으로 ‘작은 모임’ 을 하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까지 생겼던 Memorial weekend.. ‘근육통이 만발하는 즐거운 고통과 기쁨’이 교차되는 순간들이었다.

 

  1. 외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사망한 집안의 외아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적 병역면제 규정.
  2. 집 근처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와 20+ mile 떨어진 도라빌 Doraville 소재 한국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Mother’s Day Reflection

Mother’s Day 2018

 

¶  Mother’s Day 2018:  미국에서 유래된 오랜 전통의 Mother’s Day, 생명이 약동하는 포근한 5월의 둘째 일요일. 그 옛날에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도 ‘어머니 날’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어린이날에서 사흘이 지난 5월 8일이었다. 고국을 떠날 때까지 분명히 있었고 어머니 날의 선물을 나의 어머니께 드렸던 마지막 기억도 있다. 그것이 그 후에 없어졌고 ‘아버지가 꼽사리1 낀, 어버이 날’이라는 거북한 날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도 나는 이것은 honest mistake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바꾸어버린 ‘이유’는 분명히 있었을 것은 알지만 아직도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인데…’ 라는 아쉬움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미국의 전통적 Mother’s Day와 더불어 따로 6월의 3째 일요일에 Father’s Day를 만든 것 ‘이곳 사람들’의 생각을 좋아한다. Motherhood와 Fatherhood를 구별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나는 ‘고유한 의미의 가정’을 ‘지나치게’ 걱정한다. 말도 그럴듯한 LGBT 인간2들이 혹시라도 Mother와 Father라는 말도 없애자고 $$$을 억수로 써서 유명한 lawyer라도 매수하는 것은 아닐까… 와~ 2018년에 생각하는 Mother의 의미는 정말 해괴하게 복잡하기만 하다.

어머니 날은 미국 West Virginia에서 출발했다. 남북전쟁에서 봉사자로 일을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서 Anna Jarvis가 제안하고 기념을 하기 시작했고 1914년에 미국의 ‘공식 기념일’로 Wilson대통령이 선포를 하고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Mother’s Day로 제정한 것이다.  Anna Jarvis가 밝힌 이유는 간단하게 ‘a mother is the person who has done more for you than anyone in the world‘ 였다. 단순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이유였다.

그녀가 밝힌 이름은 Mother’s Day였고 결코 Mothers’ Day가 아닌데 이유는 ‘자기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하기 전에 나의 어머니가 우선적이라는 것.. 조금 까칠한 논리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나를 낳아준 어머니’, 그녀 존재의 이유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100% 옳다고 본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5월 13일, Mother’s Day 일요일인데다 우리의 천상의 어머니 Virgin Mother (성모 마리아)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 (Fatima, Portugal) 에서 3명의 ‘아이들’에게 발현한 날이기도 해서 더욱 Universal Motherhood의 의미가 돋보인다. 오늘은 거의 의도적으로 동네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엘 갔는데, 결과적으로 성모님에게는 조금 송구스럽게 되었다.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는 날이라 원래는 그곳엘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례없는 파격적인 결정에 우리가 무리 없이 공감한 이유는, 그 월례회의에서 ‘성모님의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 을 미리 느낄 수 있었고, 오늘 Mother’s Day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평화가 하수구로 빠져나갈 것 같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무는 의무, 불참은 불참, ‘총사령관’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금할 수 없다.

오늘은 작년과 같이 ‘아이들’이 와서 엄마를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고 들어왔다. 오늘 그들이 갔던 식당의 분위기는 안 보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모두들 일년 간 ‘불효’ 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자식들이 엄마를 ‘끌고’ 나왔을 듯 하다. 그렇게 해서 잠시나마 나만의 안식일을 맞이했던 오늘, 잠깐이나마 나의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었다. 효자건 불효자건 상관없이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후회 안 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지난 날에 비해서 조금 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아니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아니 희망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굳게 믿는 사실이 되었다. 올해 어머니 날에 다시 확인하고 싶은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1. 그 당시의 유행어로 슬그머니 모임에 끼어드는 얌체 같은 느낌의 말
  2. 이들은 인간본성을 포기한 subhuman이라고 나는 믿는다.

First Taste of Summer…

¶  First Taste of Summer:  사나흘 전부터 갑자기 치솟은 기온으로 오늘은 올해 들어서 처음으로 a/c (air conditioner)의 잔잔한 소음을 듣는 날이 되었다. 5월의 ‘어느 날’에 이런 잔잔한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되는가,  매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데 평균적으로 Mother’s Day의 전후가 됨이 흥미롭다. 이것은 그러니까 이곳 아틀란타 Atlanta지역 기후의 특성일 것이다.

오늘은 올 들어 처음으로 90도가 넘는 날이 되었다. 아마 섭씨로 31~32도 정도가 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평균기온을 ‘훨씬’ 넘는 것이다. 이때쯤의 평균 최고기온은 80도(섭씨 24도) 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더워도 진짜 한 여름의 느낌과는 조금 다른 것인데 그 이유는 습도가 그렇게 높지 않고 해가 지면서 기온은 비교적 빠르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런 5월 초의 의식 儀式 May Ritual을 치르면서 다가올 3~4개월간의 여름과 그 이후 낙엽이 쌓일 가을의 이곳 Saybrook Court의 주변과 우리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  A/C Checkups 2018: 내가 제일 싫어하는 job중에 하나가 우리 집의 ‘고물, 고철’, 여름의 필수품인 에어컨의 condition을 checkup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이 과연 켜질까..’ 하는 것이다. 이 a/c system을 하나의 기계로써 만지는 것은 나에게는 재미있는 소일 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문제는 만약에 내가 못 고치는 사태가 발생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고치는’ 것 보다는 ‘바꾸는’ 것이 현명하기에 $$$이 억수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죽기’ 전에는 그냥 쓰기로 했지만 만약에 그 때가 오면 새것으로 바꾸게 될 것인데 물론 $$$은 들지만 energy-efficient한 요새의 system은 사실 장점이 많이 있음도 안다. 내가 손을 볼 수 있는 것은 현재 다한 것 같기에 이제는 ‘심판’만 기다리고 있다. 현재의 상태는 cautiously optimistic한 것인데 곧 그 결과는 알게 될 것이다.

 

PreSummer ritual

 

¶  남자가 만드는 라면: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는 것 중에 ‘라면은 남자가 더 맛있게 만든다’, 라는 말이다. 나도 물론 동감이다. 왜 그런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남자들이 배 고프면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 밖에 없기에 결사적으로 노력을 해서 만든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지만 자신은 없다. 여자들은 요리를 원래부터 자신이 있기에 라면 같은 것은 관심이 없고 노력도 안 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다른 라면은 모르지만 ‘너구리 라면‘은 확실하게 내가 더 맛있게 끓인다. 이것은 연숙도 인정하는 것이고, 그녀가 끓인 너구리 라면은 사실 내 것과 확연히 다르다. 이것과 더불어 얼마 전에 Youtube 에서 ‘너구리 라면’에 대한 video를 본 적이 있는데, 역시 왜 그 라면이 그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는 맛으로 인기를 끌었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 회사의  많은 연구, 노력의 결과였음은 말할 나위 없었다.

이 너구리 라면을 끓일 때 내가 신경을 쓰는 것 중에는: 물의 양과 온도, 그리고 불을 끈 후에 얼마 후에 먹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에서 맛의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연숙이 외식하러 나갔기에 오랜만에 너구리 라면을 끓였는데 이번에는 spam, mushroom을 잔뜩 넣고 끓여보았다. 그러니까 ‘spammed & mushroomed Neoguri ramen’ 인데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  HP Elite 8000:  며칠 전에 order했던 hp desktop pc, 2012년 vintage Elite 8000 가 오늘 집에 배달이 되었다. 현재 내가 수집하고 쓰고 있는  hp desktop pc가 3대나 있는데 하나를 추가한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직접 조립한 pc를 쓰다가 근래에 들어서 이렇게 ‘old’ business model desktop pc를 사들이는 것, 이제는 하나의 취미로 변하고 있는데,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서 웬 이런 괴상한 수집을 하는지 나도 나에게 묻고 있다.

거의 모든 personal computing 이 smartphone으로 옮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desktop pc를 대체할 수는 없다.  특히 많은 시간을 ‘편안하고 널찍한’ desk 에서 보내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조립해서 쓰던 나 자신 brand의 desktop pc에 제동이 걸린 것은 Microsoft 의 ‘activation tax’ 때문에 시작이 되었다. Windows XP 시대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마음대로’ copy 해서 쓰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했지만 Windows Vista가 나오면서 그것을 사야 되는 한마디로 unthinkable 한 사태가 발생, 과연 이것을 돈을 주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free & openLinux 를 쓰면 되겠지만 그것과 Windows 는 너무나 다르기에 문제가 있다. 우선 ‘걸리는 것’이 Linux 에는 Microsoft OfficeAdobe Photoshop같은 것에 문제가 있기에, 바람직한 것은 두 system을  다 쓰면 좋은 것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고수하는 것 중에는: Blood-sucking Apple system은 절대로 안 쓰는 것, Microsoft Windows같은 Operating system software절대로 ‘안 사는 것’ 이 있다. Apple system (Mac, Iphone같은 것들)을 안 사는 것은 나의 경제력으로는 그림의 떡이니 문제가 없는데, Windows 가 문제였다. 이것은 실제로 매일 매일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해결책이 우연히 생겼다. Windows software copy를 안 사고 아예 Windows PC를 사면 되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 왜 이런 생각이 그 동안 안 들었을까? 그러면 어떤 pc box를 살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이다. 5~8년 정도 지난 ‘business class, refurbished or used hp pc’ 가 바로 정답이었다. 그 정도 pc 의 horsepower 면 현재 우리의 computing need를 완전히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물론 hard disk나 RAM 같은 것은 내가 junk box를 뒤져서 upgrade하면 된다. 100% genuine, legal Windows 7 or 10 system이 있으니 거의 모든 desktop software를 문제없이 쓸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정답중의 정답이었다.

 

Stop and Smell the Roses..

 

¶  Stop! Smell the Roses!:  갑자기 포근한 봄 날씨로 돌아온 지난 며칠이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도 상쾌하고, 침대에서 ‘기어 나와’ 옷을 입는 느낌이 훨씬 편해진 것을 보니 정녕 봄 같은 봄이 온 것을 실감한다. 지나간 부활절 이후 4월은 사실 예년에 비해서 싸늘한 그것이었다. 새벽에 central heating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지난 며칠을 겪고 드디어 2층 thermostat를 OFF 로 바꾸었다. 이제부터는 crossover 기간이 시작되고 아마도 얼마 후에는 a/c 의 humming 소리를 간간히 듣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은 서서히 여름의 끈끈하고 텁텁한 냄새를 맡게 될 것이고, 이렇게 인생, 세월, 시간은 흐른다.

오늘 아침 YMCA gym으로 걸어 들어가며 문득 생각이 스친다. 왜, 이렇게 빨리 걸어가는 것일까? 주위도 돌아보지 않고 무언가 쫓기듯 달려 들어가는 듯한 나의 모습에 갑자기 의문이 든 것이다. 칠십의 나이로 보아도 쫓기는 듯한 걸음, 갑자기 흉하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을 과시라도 하려는 것인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다는 것인가, 주위의 things (사람 포함)들이 보기도 싫다는 것인가?

나의 걸음에 비해 거의 거북이처럼 늦게 걷는 연숙을 본다. 물론 약해진 하체 下體 탓이라고는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일까? 그것도 조금은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녀는 주위를 자세히 보기도 하고,  얘기하기도 하며 걷는다. 나에 비해서 ‘여유’가 있는 것이다. 특히 요새 같은 계절에는 더욱 그렇다. 온갖 만물이 다 화려하게 변하는 주위를 그냥 갈 리가 없는 것이다. 나는 그저 ‘목적지’만 생각하며 주위에는 눈도 안 돌릴 때가 많기에 그저 빨리 걷는다.

오늘 유난히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우연일까? 근래에 들어서 나는 ‘우연’보다는 ‘필연, 이유’를 더 믿게 되었기에 이것도 나를 일깨우는 무슨 higher message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오래~ 전 정확히 1974년 경 Mac Davis의 ‘기가 막힌 가사’의 ‘crossover’ oldie, ‘Stop and Smell the Roses‘ 가 생각난다. 당시의 나이에 ‘가사’를 알고 들었을 리가 없었지만 나이가 먹으며 계속 들으니 정말 ‘교훈 같은 가사’였다. 그 가사를 생각하니… 맞는 얘기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가.. 생각 좀 하고 만발한 꽃들의 향기를 사랑하며 하느님의 스치는 손길을 느끼면 누가 때리나..  바쁜 것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만든 여유’를 즐기는 것은 정말 ‘지혜서’ 급의 ‘유행가 가사’였다.

 

 

Stop and Smell the RosesMac Davis – 1974

 

¶  베로니카 3주기:  3년 전 이즈음 (정확히 5월 2일)을 되돌아 본다. 우연히 만났고 알게 되었던 나와 돼지띠 동갑 베로니카 자매님, 남편 타계 일 년 만에 두 젊은 아들 형제들을 뒤에 남기고 선종했던 그 해 찬란한 5월의 토요일 이른 아침, 큰아들의 새벽 전화로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 없이 hospice로 달려갔고, 싸늘한 엄마 옆에서 흐느끼는 다 큰 두 아들과 우리 둘은 연도 밖에는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옛 유행어로 ‘아, 무정 無情’ 이라고 했던가? 불과 2년 사이에 사랑하는 부모님을 모두 잃고 흐느끼는 모습은 내가 그들 대신 나의 부모님을 보내는 그런 슬픔이었다. 온 정성을 다해서 베로니카 자매님 세례를 받게 하여 떠나 보낸 것은 두고두고 보람을 느낀다. 연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게 연도라도 자주 바쳤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매년 가는 묘소, 올해는 큰 아들과 점심을 한 후에 갈 수가 있었다. 집에서 정성스레 꺾어간 예쁜 꽃다발, 바로 전에 레지오 주회합에서 성모님께 바쳤던 것을 자매님 묘소에 꽂아 주었다. 역시, 그 때와 같이 ‘찬란한 5월 2일의 태양’이 전 보다 더 커진 듯한 Winters Chapel cemetery 를 내려 쬐고 있었다.

 

베로니카 자매님, 올해도 저희들 다녀갑니다..

 

¶  Big Mac, Paraclete: Paraclete ‘파라클리토’ 라고 불리는 이 말은 그리스 어로 advocate, helper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가톨릭 교의에서는 Holy Spirit, 성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3/4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교리반에서 내가 맡았던 강의의 주제가 바로 이것이어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성령이라고 하면 성삼위 성부 성자 성령 holy trinity 중의 하나다. 이것이 왜 McDonald hamburger 중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Big Mac과 연관이 되었나?

성령 세미나, 대회 같은 곳에서 흔히 보는 성령의 움직임을 나는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삼위의 교의적인 것은 좋아하지만 사람의 움직임에서 보이는 성령은 때에 따라서 거부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 느낌이 달라지고 있다. ‘분명히’ 나도, 내 안에서도 성령이 움직이고 있으리라는 확신인 것이다. 나의 느낌과는 상관이 없이..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그 ‘움직임’은 내가 확신이 없었을 뿐이지 많은 때에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나의 변화다. 그것을 감지하기 시작한 바로 그것이.. 이번이 바로 그런 때였다. 습관적으로 우리 둘은 아침미사가 끝나고 YMCA gym에 가기 전에 Sonata Cafe breakfast를 먹다가 아주 사소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조금은 심각하게 발전을 하고 말았다. 지나고 보면 이런 일들, 참 사소한 것으로 판명이 되곤 하지만 그 당시는 사실 괴로운 시간이 아닌가? 오늘 하루 또 망쳤구나.. 하는 자괴감 뿐이었다.

그러다가 gym workout이 끝나가면서 불현듯, 정말 나도 상상, 예상치도 못한 때에 Big Mac의 모습이 떠올랐다. 때가 점심때니까 배가 조금 고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웃기는 일이 아닌가? 결국은 Big Mac을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도 무언가 paraclete, helper의 도움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래서 신앙, 신심은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  돌나물 비빔밥:  화창한 봄 날씨가 계속되면서 봄의 냄새가 나는 음식이 등장했다. 우리는 점심을 제일 ‘크게’ 먹기에 제일 중요한 음식은 점심때 등장하곤 한다. 아침은 거의 내가 ‘고정식’으로 준비하지만 점심만은 ‘주부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기에, 예외는 있지만 연숙이 준비한다. 요새 한창 backyard에서 살다시피 하며 장차 ‘길러 먹을’ vegetable들에 온통 시간을 보내더니 오늘은 ‘돌나물’이란 것을 backyard에서 따왔다. 따온 것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기가 막히게’ 멋있고 맛있는 ‘돌나물 비빔밥’을 만들었다. 이것이야 말로 ‘자연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맛도 아주 좋았다. 비록 Traders Joe brand이지만 wine까지 곁들이니… 이것이야 말로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면..’ 이 아닌가?

 

Homemade 돌나물 비빔밥

 

¶  Ladder, gutter, roof:  정말 오랜만에, (extension) ladder 사다리를 움직이고, 오르내리게 되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는 일을 해도 주로 집안에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일이 2층의 laminate flooring job 이었다.

이후 기나긴 동면이 끝나고 날씨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니 주위에 만발한 화초들은 즐겁지만 우리 집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한마디로 집 자체가  tired, tired 한 느낌뿐이니… 주기적, 정기적으로 닦을 것은 닦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하면 문제가 없지만 우리 집은 ‘가훈 家訓’ 이 가급적 ‘남의 노동을 사지 말자’.. 비슷한 전통으로 있어 왔기에 원칙적으로 우선 내가 손을 보아야 했고, 사실 그렇게 수십 년을 버티어 왔다.

내 자신이 그런대로 weekend handy person이라고 생각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문제가 있겠다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나의 ‘나이’다. 칠순이 지난 나이에 예전처럼 들고 뛸 수가 있을까?

2층 높이에 있는 roof rain gutter, 경치는 좋지만 수 많은 나무 잎들이 가을부터 떨어져 gutter가 완전히 막힐 정도, 올라가보니 완전히 ‘화분’이 되어 있었다. 이것을 청소하려면 사다리를 계속 옮기는 근육도 필요하지만 2층 꼭대기에서 절대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것 때문에 난 ‘치명적 사고’,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암만 Medicare가 있다고 해도 남들이 보면 바보짓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2층 사다리를 오르내리면서, 아직 나의 몸에 문제가 없다는 조심스런 진단을 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warming up을 계속하면 더 안전하게 roof/siding work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고, 아마도 siding 정도는 나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가을부터 떨어진 나뭇잎들로 gutter가 화분처럼 변한 모습

아무리 청소를 해도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별 수 없이 이정도의 모습일 듯

Garage 위의 roof는 경사가 아주 완만해서 안심하고 주위를 볼 수 있다

집의 정면 쪽을 향한 garage 위의 roof는 아주 급한 경사로 protective gear 없이는 접근 불가능

Main roof는 그런대로 보호 장비 없이 접근이 가능하다

 

4월이여 안녕..

¶ 2018년 4월이 저문다. 올해 4월은 예년과 달리 옛날 옛적의 4월에 얽힌 것들을 별로 회상할 기회가 없었다. 예를 들면 ‘목련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박목월 님의 멋진 시와 가곡, 1960년 4월 19일의 광경들, 아니면 1970년 4월 용현이, 창희와 지리산 종주등반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은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지만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저런 ‘옛날 것’들을 올해는 거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거의 ‘현재’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던 4월을 보낸 것 같고 그것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과거의 사나이에서 조금은 현재의 사나이로 돌아온 것인지.. 하지만 희망은 아름다운 지난날과 건강한 현재를 반 반 정도 섞어서 사는 매일이 되는 것이다. 결국 2018년의 4월은 진정한 나의 ‘부활시기 4월 달’이 되었다.

 

¶ 목요회 Blues: 4월의 목요회 멤버들이 거의 5주 만에 다시 모였다. 매월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이는 조금은 별난 모임, 벌써 8번째다. 예상을 벗어나 한번도 거른 적 없이 성실하게 모여 지나간 ‘힘들었던’ 한 달의 이야기를 나누는 조금은 ‘청승맞게 보이는’ 우리 목요회, 어떨까, 언제까지 이 모임이 계속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나간 7개월 동은 그런대로 서로의 지나간 이야기를 나눈 셈이지만 사실 아직도 궁금한 것들 투성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나간 이야기가 그렇게 중요한가, 현재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써비스가 엉망인 어떤 Chinese buffet 에서 만난 자리에서  S 형제가 모임 줄곧 침묵으로 일관을 해서 우리의 신경을 쓰게 했는데, 이런 태도는 이번이 처음이라서 아마도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인생이란 것, 특히 우리들의 삶, 결코 즐겁지만은, 쉽지만은 않은 것 알기에 이런 자리에서 서로 고민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시간이 더 걸려야 됨을 알게 되었다. 사실 S형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정도로 고민이 많은 듯하지만 현재로써는  ‘기도나 관심’ 이외에 별로 option이 없다. 다음 모임에는 조금은 웃는, 말을 다시 많이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지만, 어떨까..

 

¶ Days with Sherlock: 며칠 간 ‘탐정 미스테리’의 원조 격인 영국 코난 도일 Conan Doyle  원작의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영화를 찾아 (물론 Youtube) 보게 되었다. 대부분 1940년대의 흑백영화인데 download 한 결과 놀랍게도 아주 영상의 질이 요새말로 720p 정도의 ‘보물’들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로 즐겨 보았던 탐정 미스테리 이야기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것들 역시 거의 모두 이 셜록 홈즈 Sherlock Holms 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영국 문화의 영향인지, 모든 스토리나 scene들이 너무나 ‘고상하고 신사적’, 비록 범죄가 주제지만 눈을 감지 않아도 되는, ‘안심하고’ 볼 수 있기에 Film Noir와 더불어 요새 즐겨서 보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접하게 된 Christian Writer의 대가인 C. S. Lewis 를 통해서 1940년대 영국의 여러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유명인, Sherlock Holms, 그리고 그의 sidekick 격인 Dr. Watson을  다시 찾게 되었다.

 

Sherlock Holms & Dr. Watson

 

¶ West Bank, again?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때도 있나? 같은 달에, 그것도 2주일에 걸쳐서 같은 park로 두 번 picnic을 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희귀한 happening에 속한다. 첫 번째 picnic은 성당 등대회에서 간 것이고 다음 것은 역시 같은 성당의 레지오 야외행사로 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같은 West Bank park 이었을까? 아마도 이 즈음에 이곳이 제일 경치도 좋고 가기도 좋은 곳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날씨가 거의 비가 오락가락 하던 때였지만 두 번째는 날씨가 기가 막히게 화창해서 West Bank park의 멋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다만, 레지오에서 간 것은 거의 ‘의무적’으로 간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마음이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모님께 드린 맹세가 있기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out of question이지만 세상사가 어찌 그렇게 예상대로만 되랴.. 그래도 이 화창한 날, 레지오 야회행사에는 장기유고 중인 ‘크리스’ 자매가 오랜 만에 모습을 들어내어 참석을 해서 반가웠다.

 

West Bank park under Spring Sun

 

사월 四月 의 연가 戀歌

4월, 四月, April.. 사월이 되었다. 4월은 나에게 어떤 것인가? 70년 동안 쌓인 기나긴 추억을 통해서 올해 4월은.. 태곳 太古 적의 원시적 온돌방에서 화롯불과  이불로 견디던 서울의 겨울을 벗어나 만나는 반가운 손님처럼 느껴졌던, 그것이 바로 4월이었다.

다시 골목으로 나와 하루 종일 놀 수 있었던 찬란한 봄의 시작이 1950~60 년대의 가회동과 삼청동의 4월의 봄이었고, 자그마했던 ‘강북’ 서울이 10~20대의 함성과 카빈총소리로 요란 했던 찬란한 계절이기도 했다.

희미해져 가는 당시의 4월과 봄의 느낌들, 우연히 찾은 김남조 시인의 에세이 집 중의 ‘사월의 연가’ 가 현재 나의 심정과 어찌 그렇게 비슷한가. 어머님이 계시던 곳으로 이제는 편지를 보낼 수 없는 불효자의 심정과 공해 없이 맑던 당시의 ‘시원 始原 의 냇물’의 순수함.. 이제는 도저히 꿈 속에서조차 희미해지는 것들, 김남조 시인의 글 덕분에 조금은 되살아나는 것들.  느낌인가.. 아니면 바램인가.. . 아 사월이여, 사랑하는 사월이여..

 

 

사월의 연가 – 김남조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눈과 얼음이 얹히던 인동 忍冬 의 나무 살갗에 억 천만 만의 더운 손바닥들이 명주 피륙을 감아 훈훈히 속살마저 덥혀냄을 보러 나오세요.

봄을 맞는 나무 옆에 서서, 봄의 기운이 정수리까지 뻗치는 나무 옆에 서서 생명의 축복을 나누어 가지세요.

이슬을 보세요.

올해의 첫 이슬이 태초의 순수 그대로 영롱히 반짝임을 보세요. 다치지 않게 그 한두 방울을 손 안에 담아 보세요. 문득 새파란 하늘을 우러러 보세요. 옛날옛적 동심의 눈물 방울이 거짓말처럼 우리들 눈시울에 다시 치받아 어이없이 후두둑 떨어지는군요.

사월의 수분을 생각하세요.

겨우내 사람의 속 마음이 너무나 메말라 있었다고 여기던 터에 사월의 수증기를 생각하세요. 훈훈하게 축여질 알맞은 습도를 생각하세요.

사월의 아름다움을 누리세요.

단지 화사한 아름다움이 아니고 눈과 얼음에서 뽑아 올린 장한 아름다움을 누리세요. 광야의 기도사같이 인내와 신앙의 승리를 나누어 가지세요.

꽃을 보러 나오세요.

열 가지, 백 가지의 꽃을 보러 나오세요. 모든 꽃이 이 세상 유일한 꽃의 의미로 피어나는 절대의 숭고와 충실을 배우러 나오세요. 그 환희를 배우러 나오세요. 위로 위로 솟구치는 소망을 배우러 나오세요.

꽃을 보러 나오세요.

꽃의 언니들인 보리밭을 보러 나오세요. 삼월엔 땅 속에 벌여 놓던 초록빛 잔칫상을 오늘은 땅 위로 들고 나왔군요. 2월엔 어둠 속의 진통을 견뎌낸 그 갸륵한 것, 설한 雪寒 섣달엔 희미한 꿈이었던 그 눈물겨운 것.

보리밭을 보러 나오세요.

빛과 대기 속에 펼쳐지는 신록의 성찬식 聖餐式 에 참석하세요. 보리가 펴 놓게 될 순서들을 살펴보세요. 영글어서 곡식이 되고 타작마당을 거쳐 나와선 백설 같은 가루로 빻아져 떡과 술과 온갖 것이 되어서 많은 이를 먹이게 될 그 차례들을.

풀잎들을 보아 두세요.

얼음을 뚫어내고, 돌과 아스팔트마저 뚫어내고, 송곳처럼 디밀어 오르는 무시무시한 모가지들을. 어떻게 그 단단한 것을 뚫어내고 땅 위에까지 나올 수 있었나요.

당신은 믿고 계시겠지요.

도시의 봄 경치 속에서도 새싹들이 얼음과 돌과 아스팔트를 뚫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또한 믿으시겠지요. 해빙의 낙수물이 기왓골을 타고 흐르며 그러한 몇 십 몇 백 년의 세월 사이에 마침내 동그맣게 섬돌이 패이고 있는 그 사실을.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꽃을 불러내는 바람을 만나러 나오세요. 피리 구멍으로 숨결을 디밀어 넣어 구슬 울리는 오묘한 가락을 뽑아내는 바람은 마술사랍니다. 사월의 바람을 만나러 나오세요.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외쳐 보세요.

자신의 내부에 굳게 닫아 두었던 문들을 열고 존재의 골짜기들을 향해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외쳐 보세요. 사월이다 사월이다라고 산울림 돌아 나오게 해 보세요.

사월의 함성을 들어 보세요.

눈 감고 귀 기울이면 영혼이 율연 慄然 해지도록 아름답고 장한 사월의 함성이 들릴 거예요. 이 세상에서 제일로 깨끗한 젊은이의 함성이 뜨겁고 끈적끈적한 피에 섞여 와아~ 와아~ 울려옴을 들을 거예요.

당신은 견뎌낼 수가 있을는지.

목청껏 울어 버리지 않고 참아낼 수가 있을는지. 이십 년 전의 우리 젊은이들이 외치던 4.19 의 함성, 3.1 만세처럼 폐부 속에서 터져 나왔던 정의의 함성, 인권의 함성이 펄펄 끓는 열탕으로 지금도 와아~ 와아~  울려옴을 들을 거예요.

사월의 강가에 나오세요.

아직도 위판은 살얼음인데 그 밑을 흐르는 물 소리를 들어 보세요.

졸, 졸, 졸, 실타래 풀리듯이 끊이지 않는 봄 시냇물 소리를 들어 보세요. 서럽게 허전하던 모든 날에 꼭 들리던 그 개울물 소리가 아닌가요.

물의 시원 始原 을 생각하세요. 삼국유사 때부터, 단군신화 때부터 흐르던 물 소리. 선사시대 때부터 흐르던 물 소리. 조상의 조상처럼 늙고 지혜로운 물을 생각하세요.

불을 생각하세요.

태초의 날, 처음으로 일궈지던 성화 聖火 를 생각하세요. 지존하신 여왕을 사모하여 그 몸을 불태운 지귀 至貴 의 불과, 불타서 새하얗게 잿가루가 되어 버린 열 아홉 살의 쟌다르크를 생각하세요.

불을 생각하세요.

불의 상징인 온갖 신성한 것, 온갖 진실한 것, 순애 殉愛 와 순국 殉國 을 생각하세요. 육체를 불사르어 영혼에 기름 따르던 이 나라의 순교사를 생각하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바위 살갗에 눈 트는 이끼, 진홍과 순백의 꽃들, 햇솜처럼 깔리는 봄 아지랑이, 꿈꾸는 연분홍의 조가비들을 생각하세요. 먼 데서 날아오는 새떼를 생각하세요. 훨 훨 훨 날아오는 빛부신 날개짓을 생각하세요.

땅 속에 뿌려지는 곡식들, 채소와 과일, 꽃씨며 갖가지 구근들…

사월엔 노동하세요.

심고 가꾸고 땀 흘리는 영광을 맛보세요.

나무 옆에 서세요. 주루룩 주루룩 속의 땀처럼 하얀 수액이 흘러 내리는 나무의 생리를 느껴 보세요. 사람의 몸 속에 피가 순환하듯이 나무들의 몸 속에도 수액이 돌아 퍼짐을 느껴 보세요.

거친 나무 등걸에 귀를 대면 똑딱 똑딱 시계 초침 소리를 내는 생명의 맥동, 생명의 울림을 들으세요.

사월엔 편지를 쓰세요.

두고 온 고향에도 편지를 날려 보내세요. 객지의 봄이 찬란하다 해도 어머니의 품과는 다른 점을 말해 보내세요.

사월에 편지를 쓰세요. 말할 기회를 미루기만 했던 사랑의 고백을 적어 보내세요.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이후에도 언제까지나 사랑하리라고 말하세요.

사랑만은 뉘우칠 수 없다고, 그 한 마디 말해 버리세요. 재회의 약속, 방문의 일정을 적어 보내세요. 아아 사월엔 사랑의 편지를 쓰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사월의 보석더미 옆에 서세요.

바라봄으로써만 기꺼운 일, 그렇게 욕심 없는 우리들의 꿈, 소박한 소유.

 

사월의 찬미가를 부르세요.

그리고 사월엔 교회를 찾으세요. 제단엔 성촉 聖燭 을 밝히고 신도들이 기도하고 있으리니.

사월엔 교회에 나가세요.

하나님이 땅에 내려와 사람 손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다시 하늘에 오르시는 예수 부활에 참여하세요.

부활절의 기도를 드리세요. 복받치는 통곡으로 당신도 크게 한번 울음 우세요. 영생의 증거를 눈으로 보면서 주의 기적을 심령의 전부로 신앙하세요.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기뻐하세요.

사월의 보석을 캐러 나오세요.

 

세찬 바람 불어오면..

 

Windy March: 김민기 작사, 작곡, 노래의 70년대 oldie folk song ‘아름다운 사람‘ 2절 가사를 보면… “세찬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맞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40여 년 동안 잊지 않고 기타에 맞추어 읊조리는 노래, 오늘같이 세찬 바람 부는 날 실감나게 가사를 음미할 수 있다.

왜 3월 무렵 부는 바람은 그다지도 춥고 움츠리게 하는 것일까? 아마도 찬란한 햇살에 깜빡 방향을 잃은 우리의 계절감각 때문은 아닐까? 봄의 시작이 일주일 가량 남았으니 아마도 우리의 의식은 분명히 봄을 미리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움츠려 드는 몸에 활력을 넣으려고 ‘일부러’ 동네 산책을 강행했다. Mexico에서 Spring break을 즐기는 새로니, 그 애의 home companion인 pet dog, Ozzie를 우리 집에 맡겨놓고 갔다. 이제는 하도 우리 집에서 자주 지냈기에 사실은 우리 식구같이 느껴진다. 주인인 우리 집 pet dog, Tobey도 이제는 체념한 듯, 그런대로 평화롭게 지낸다. 그 두마리 개를 데리고 동네를 걸었다. 찬란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햇빛이 무색할 정도로 ‘움직이는 공기’는 무섭게 차가웠다. 3월의 바람은 역시..

반 세기 전 서울 거리를 걸을 때의 3월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복잡한 시내에서 맞는 강풍, 괴로울 때도 많았다. 머리 숱이 그렇게도 진했던 때, 날리는 머리가 흐트러질까 그것을 shop window에 비추어보며 가다듬던 어린 시절들, 하지만 여자들이 더 고생이었을 것이다. 한창 유행하던 mini-skirt를 입고 2층 높이의 ‘육교, overpass’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 우리들이 보기에는 즐겁기도 했지만 그녀들은 고역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싸늘하고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온통 다리를 거의 다 노출시키고 활보하는 것..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이 머리 속 깊이 남아있는 3월의 모습들..

그 이후에 이곳에 살 때 아이들 bedtime story로 책을 읽어 줄 때, Winnie-the-Pooh 의 추억이 또한 3월에 연관되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중의 한 그림..이 바로 바람에 날라가려고 하는 Piglet을 잡아주는 Winnie의 정다운 모습이다. 이것은 이제는 ‘미국적 추억’이 되었지만 이제는 하도 오래 전이라 미국적, 한국적 하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게 되었다.  바람을 동반한 3월의 추억,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3월을 맞게 될 것인지.. 아마도 그다지 ‘수많은 3월’은 아닐지도 모른다.

 

Darker Dawn again:  3월의 stupid ritual, 2째 주 일요일 오전 1시가 ‘갑자기, 강제로’ 2시로 변하는 해괴한 ‘법‘.. 나는 아직도 이 stupid하게 느껴지는 것 이해를 할 수가 없다. Daylight를 Save 하자고.. 이것 얼마나 귀찮고 번거롭고, 이제는 일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도 일깨워주는 고역이다. 벽시계 같은 것 바꾸는 것 이외는 이제는 거의 ‘자동적’으로 바뀌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시간을 ‘법으로 강제로’ 바꾸는 것이 문제다.

 

 

그런대로 아침에 일어날 때 여명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깜깜해 졌다. 그것뿐인가.. 특히 봄에 바뀌는 시간은 아차 하면 내가 바보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 목적지에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것, 충분히 가능하니까..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TV, Radio) news를 완전히 잊고 살던 ‘공부하던 시절’, 나는 이 news를 놓치고 월요일 아침에 버젓이 수업시간에 1시간 늦게 도착한 적이 있었다. 강의를 시작할 시간에 모두 교실에서 우르르 나오는 학생들을 보고.. 정말 바보, 바보.. 라는 웃음이 나왔던 그 시절도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 Tax surprise:  예정보다 늦게 2017년도의 Federal Tax Return 을 끝냈다. 작년에는 2월 중에 했는데 올해는 분명히 tax를 ‘내야 할’ 것을 예상했기에 무의식적으로 게으름을 피었는지도 모른다. Tax를 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신나는 작업이 아니니까.. 그런데 놀란 것은 그 액수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 허~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부자’가 되었나.. 의아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연숙의 ObamaCare 때문이었다.

 

 

Medicare가 얼마 전에 시작되었기에 그 이전에 받았던 tax credit을 과도하게 받았던 것, 그것을 다시 ‘물어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조금 실망했지만 어찌하랴… Health insurance 를 큰 부담 없이 cover받은 것에 감사를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정당한 이유가 있는 tax는 정직하게 내야 하니까.. 사실 모든 것이 fair한 듯 하다.

 

Give me a break…

¶ It’s Seventy, stupid! 어두운 새벽에 눈을 뜨고 멀리 있는 radio clock을 보니 6시 30분이 채 되지를 않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몸의 가벼움, 불현듯 일어나고 싶었다. 한 동안 (몇 주, 아니면 그 이상) 나는 아침에 일어날 적마다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동반한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며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의 기억에 이런 적이 없었기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나는 그야말로 morning people, 이른 아침만이 주는 특유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인데 거의 7시가 돼서야 간신히 일어나는 것, 한마디로 보통 때의 내 모습이 아닌데.. 이유를 생각해 본다… physical? mental? psychological? 아니면 혹시 spiritual? 

Physical한 것이라면.. 생각을 해보니 혹시 YMCA에서의 weight lifting 같은 운동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평소 때 하던 것들이 아닌가? 왜 갑자기 그것이 문제가 된단 말인가? 적당히 자고,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그 이외에 무엇이 있나? 가족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대답은 ‘그 나이에 무거운 운동은 피하라’는 것인데.. 그 동안 문제가 없었던 것이 왜 갑자기 한참 동안 그렇게 ‘통증을 동반한 피로감’을 주었을까?

Ment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rage, rage.. controlled rage..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이 주었던 활화산에서 휴화산으로 잠든 잠자는 용암의 뜨거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견딜 정도로 되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인가?

Psychological한 것이라면..  물론 있다. 그래서 찾은 것은 바로 70이란 숫자였다. 70세 생일을 전후로 ‘심리적 피로’를 겪은 적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안전하게 나는 그 담을 넘었는데.. 하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닌가? 70이 되면 이런 통증, 피로는 당연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그저 심리적으로 stress를 받는 것이다.

Spiritual 한 것이라면… 이건 너무나 거창한 것 아닌가? 자비의 하느님이 이 나이까지 살았고, 근래에는 ‘우주창조의 진리’를 믿고 싶고 믿게 된 나를 이런 방식으로 일깨워 주실 것 같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내 진단의 비약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분명하게 몸으로, physical 하게 느끼게 된 것은 역시 70의 나이란 숫자가 나에게 친절하게 충고, 경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얼마 전 성당 60+ 친교단체 등대회 회원의 말: ’70은 역시 70이다!’ 그 자매 말의 뜻은 새겨들을 수 있었다. 70은 역시 70인 것이고… 요새 70은 예전의 60이다 라는 유행하는 말,  조심해서 새겨 들어야 할 달콤한 유혹일지도 모른다. 우선 단기적으로 나는  YMCA workout routine에서 weight (lifting) 의 무게를 하향조정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다.. 70은 70이지 60이 아닌 것이다.

 

¶ 우리들의 삼일절: 2018년 3월 1일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3.1절 이란 말, 아직도 생생하게 감정을 일게 하는 말, 유관순 누나와 서울 우리들의 놀이터였던 파고다 공원, 이날이면 각종 장식을 한 ‘3.1절 전차 電車’가 종로 2가를 오고 가던 날.. 먼 곳에서 회상의 파도가 몰려오기도 하는 날이 바로 3월 1일이다.

올해는 새로 만난 동갑내기들 덕분에 3.1절 ‘정치집회’1가 아틀란타에서 열린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아직도 젊은 애국자’들이다. 어쩌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대한민국을 그렇게 사랑할까… 세상 돌아가는 것 잘 모르고 사는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잊고 살았던 3.1절을 그들은 새로운 사명으로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소시민인 우리부부에게 3.1절은 실질적으로 다른 기념일이다. 우리들만의 가족, 부부의 역사다. 1992년은 현재 우리가 사는 집으로 이사온 날, 2007년은 내가 레지오 협조단원이 되었고 부부가 같이 묵주기도를 시작한 때, 2012년 이때에 우리는 ‘평일미사’의 전통을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부터 우리는 이 우리들만의 3.1절을 자축하기로 하고 실행(외식)하고 있고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 이목사님, Vincent Bakery & Cafe: 몇 개월 만에 이목사님 부부와  만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틀란타 한국학교에서 만난 (staff으로) 인연으로 한때 끊어졌던 연결의 고리가 몇 년 전부터 건강하게 다시 연결이 되었고, 착실하게 거의 정기적으로 이렇게 만난다. 오래 전에는 ‘목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나였지만 지금은 같은 크리스천으로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가급적 신.구교의 편견을 버리고 공통화제를 찾는다.

H-mart옆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점심을 먹고 이번에는 예의 ‘떡이네’ cafe 대신에 H-mart 근처에 있는 Vincent Bakery & Cafe엘 갔다. 몇 개월 전 목요회 친구들과 밤 늦게 이곳에서 coffee를 맛보고 인상이 아주 좋았던 기억으로 다시 찾은 것이다. ‘laptop으로 무장한 젊은 애들이 죽치는’ 그런 cafe가 아니고 쾌적하고, 시원하게 빈 공간이 있는 이곳, 제발 오래오래 business가 잘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우리 같은 oldie들도 이런 분위기를 편하게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이날 이목사는 최근에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만난‘ 사적 체험간증을 들려 주었다. 요새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이목사였기에 예상치 못한 것이라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 가슴이 열린 것이다. 몸의 건강이 제일 중요한 과제인 이 목사님, 부활절 지나고 귀국해서 건강진단을 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사목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는 듯 보이는 이목사, 건강상에 아무 문제가 없기를 기도하기로 했다.

 

Commonsense-Challenged Priests:  지나간 2주일(that is, two Sundays) 연속으로 가톨릭 신부라는 ‘직업 vocation, profession, job’을 다시 조명하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 신부, 수사, 수녀 들도 우리들과 같은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명심하며 다시 생각을 해 본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 그것이 사제들의 중요한 임무라고 하지만 그들의 행동거지는 어떤가?

두 가지 case를 지난 2주일에 걸쳐 보며, 비관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평신도가 사제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최소한의 ‘대우, 대접’은 어떤 것인가?  만약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평생 겪어본 신부, 사제 수녀들 그런대로 꽤 있었지만 요새처럼 나를 생각하게 하고 괴로움까지 느끼게 한 적도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정기적으로 보는 사제들은 거의 ‘이상적’인 분들이다. 이상적이 아니면 상식의 선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들이다. 문제는 가끔 보는 분들이나 처음 갑자기 보는 분들.. 전혀 예상치 못한 case들이다.

우선 가끔 보게 되는 사제의 case다. ‘윗동네 신부’, 가끔 보는 이분 나는 어떻게 생각 해야 할지를 모른다. 한 마디로 나에게는 ‘이상한 weird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위’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그런 류의 사제다. 이번에 또 ‘겪으면서’.. 역시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엄숙한’ 미사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신자(노인들 포함)들이 기립한 상태에서 ‘rambling‘ social  comment (아니 이것은 lecturing이다)를 5분이 넘도록 하는 것, 이것은 한마디로 비상식중의 비상식이다. situation에 하나도 안 맞는 지나친 dry joke는 물론이고, 정치, 사회적 progressive한 것 (그런 것, 私的으로 하세요..)은 나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이 밖에도 예측하기 힘든 돌발적, 지뢰가 터져나올 지 모르는 사제의 언행, 한마디로 괴롭다.

그 다음의 case은 바로 지나간 주일, 강론에 나온 방문사제, snake oil salesman을 버금가는 이 사제, 완전히 common sense를 결여한 강론에서, 최소한 시간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1시간 30분의 강론도 사실 점심 후에 괴로운 것인데 break도 없이 2시간 30분을 끊날 듯 말듯 하며 싱글거리며 끌고 나가는 것을 보고, commonsense 101을 재수강하고 오시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아… 피곤한 이 사제들이여!

 

  1. 근본적인 목적은 문재인 탄핵을 위한 것이라고 함

2월을 보내며…

¶  싸늘한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되었고, 결국은 2018년 2월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을씨년스럽게 싸늘한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하던 날, 지난 며칠 동안은 이른 봄의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 주더니 ‘아직 진정한 봄이 온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라고 mother nature 는 일깨워 준다. 그래도, 그 동안 ‘갑자기’ 주위가 봄소식을 알리는 각종 식물들의 색깔로 채워져 가고 있었는데, 얼어 붓는 추위가 없는 한 그것들은 우리 둘에게 즐거운 화제가 될 것이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할 것이다.

얼마 전 이마위로 ‘재의 십자가’가 그어졌던 Ash Wednesday가 어느새  2주 전으로 멀어지고 있는가? 왜 이렇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가? 지나간 2주 간의 사순절은 나에게 어떤 시간들이었는가? 새로 태어나는 삶을 향한 어렵고 고통스러워야 할 ‘광야의 40일’ 간의 시간을 나는 과연 올바르게 보내고 있는가? 나의 daily journal을 살펴보면 별로 큰 변화가 없는 비교적 ‘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싫다, 그런 나날들.. 하루하루 새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  Cramming… 오래 전 학교에 다닐 때 심심치 않게 겪었던 습관들, 그야말로 ‘당일치기’ 비슷한 것.. 학교를 떠나며 이런 괴로운 ‘시험 보는 것과 당일치기’ 가 없어지는 줄로 알고 쾌재를 불렀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시험과 비슷한 인생시험의 연속, 그곳에도 당일치기가 수없이 많았다. 당일치기 cramming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동시에 괴로운 것이다.

요사이 나는 잊고 살던 ‘당일치기’를 하고 있다. 2월 초에 우연히 찾아간 Coursera, 그곳에 나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았고 곧 ‘공부’가 시작 되었지만… 역시 제대로 매일의 study schedule을 따르지 않았기에 밀리기 시작하고, 오랜 만에 당일치기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A Stanford online course,  ‘Understanding Einstein: The Special Theory of Relativity‘ 였다. 두 달 정도 (8주) 계속되는 ‘미적분 이상의 수학이 필요 없는 특수 상대성 이론’, 목표는 다음과 같다.

Our goal will be to go behind the myth-making and beyond the popularized presentations of relativity in order to gain a deeper understanding of both Einstein the person and the concepts, predictions, and strange paradoxes of his theory.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미적분 이전의]이 필요한 이 course, 처음으로 특수상대성이론의 ‘배경, 구조, 그리고 의미’를 파악하게 되었다. 일 평생 거의 ‘만화, 상상과학 수준’ 정도의 매력에 빠지곤 했지만 (4차원의 신비), 이번에 그것의 ‘실체’를 접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Harvard online course에서는 수학을 거의 쓰지 않았기에 편하기는 했지만 사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실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Stanford대학의  top-class Instructor Dr. Lagerstrom, 지나친 전문학술용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사용하며,  ‘피부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론’으로 서서히 우리를 인도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어려운’ 과학이론을 가르치는 모범 case가 아닐까 나는 계속 놀라며 박수를 친다.

 

 

이 course를 통해서 내가 얻으려는 것은, 요사이 절제 없이 좁아진 인간관계를 보는 관점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것이라는 ‘실체적 진리’, 바로 그것이다.

 

¶  레지오 간부교육:  지난 주말에 도라빌 순교자 성당, KMCC 꾸리아 주관 레지오 간부교육이 있었다. 내가 레지오 간부[서기]가 된 것이 2012년 정도였으니 이제는 꽤 익숙한 경험이다. 모든 신심단체는 그런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사람들로 특정한 신심 조직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지만, 실제로 그런가? 물론 그것은 거의 이상에 불과하다.

그 동안 간부를 맡으며 지내온 동안 계속 느끼는 것은 나도 정말 부족하지만 어떻게 저런 자세로 단원 선서를 했을까.. 하는 놀라움이다. (성모님께 바치는) 선서란 것이 그렇게 형식적이었던 것일까? 실제로 하는 활동의 양도 중요하지만 단원으로써의 자세는 더욱 중요한데.. 암만 레지오 조직의 rule에 대해서 열을 올리며 토의를 해도, 왜 우리가 이런 것을 하고 있는지는 거의 잊고 사는 듯 하다.

 

레지오 간부교육 전 기도와 미사봉헌

 

기도와 활동이 균형적으로 적절히 강조되는 것에 대해서 레지오 간부들 조차 ‘해괴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왜 (묵주)기도하는 것을 발표를 하느냐.. (뛰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못해서 아예 레지오 교본을 완전히 잊고 열을 올리니..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사회봉사단체인 ‘한인봉사센터’에 가지 왜 레지오에 들어와 고생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미국 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주임신부 Fr. Miguel이 제일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기도하지 않는 봉사활동의 허구성인데 바로 이런 꼴을 이곳에서 목격을 하니.. 이런 교본적인 것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는 곳, 이제는 거의 “무명무실 무감한 님‘의  노래 가사가 떠오르게 되었다.

 

¶  Cursing! 마귀 성토 聲討:   아녜스 자매님 부부와 오랜 만에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때 자주 보며 지냈던 이 부부, 이즈음 들어서 자주 못 보았기에 아주 반가운 모임이 되었다. 아녜스 자매님은 레지오를 통해서도 알았지만 형제님은  몇 년 전 내가 교리반 staff으로 있을 때 교리 공부하고 세례를 받았던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자매님이 레지오를 떠나면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근래에 어떤 ‘성당 마귀’에게 잘못 걸려 지독히 고생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동병상련 同病相憐’ 의 심정으로 이날 ‘마귀성토’를 속 시원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 우리 눈에 별로 안 띄던 ‘진짜 여자 마귀’들의 존재를 실제로 ‘당하고, 보고, 듣고’ 하면서… 이 세상은 역시 ‘불완전한, 악이 상존하는’ 그런 곳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리가 겪었던 ‘레지오 미친년 마귀’나 이 자매님이 겪었던 다른 ‘마귀’나 근본적으로 같은 부류의 불쌍한 인간들임을 실감할 때, 분노 이전에 슬픈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이 두 case모두 진정한 용서는 out of question이다. 하지만 형식적, 휴전적인 용서는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마디로 그것은 tall order…. 힘들겠지만 그저 잊고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  등대회, Computer/Tech Talks: 매달 마지막 주일에 모이는 60+대 성당친교단체 등대회, 이곳에 참석한 것이 이제 몇 달째가 되어가나.. 지난 해 9월 무렵에 가입을 했지만 아직도 나는 ‘신입’에 속하는 느낌을 금할 수가 없다. Regular 들(자주 참석하는) 대부분은 이제야 조금 익숙해진 듯하지만 ‘안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알 길이 없다. 이 모임의 성격은 알듯 하기도 하고 확실치 않을 때도 없지 않다. 100% 친교? 그러면 교회 밖의 모임과는 무엇이 다른가? 설립목적, 아니면 mission statement같은 것을 본 적이 없지만 보통의 생각으로도 몇 가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사명과 목적’은 있을 것인데.. 그 중에 ‘간단한 봉사’ 같은 것도 있음직도 해서 어렵사리 제안을 했지만 ‘그런 것 이곳에서는 안 맞는다’ 라는 여론이다.

그러면 다음은 무엇인가? 성당 공동체 다음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갈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서로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누자는 idea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무엇을 할 지는 문제일 것이다. 예전에 보험, 의학 정보 presentation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해서 그렇게 ‘배우는 program’ 을 계속하자는 idea가 나왔고 스테파노 형제가 일반적인 computer technology 에 대한 것을 나에게 제안을 해서… 큰 생각 없이 ok 를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도 생각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Computer technology라면 덩치가 너무나 큰 것이라 접근하기에 따라 무척 복잡한 것 아닌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있지만 아무래도 다음 달 말이면 ‘성주간’인데…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해 보자!’, Don’t think twice, it’s alright!

 

¶  Home Wi-Fi Infra Upgrade, Finally!

 

TP-Link AC1200 Wireless Wi-Fi Access Point – Supports 802.3AF PoE, Dual Band, 802.11AC, Ceiling Mount, 2×2 MIMO Technology (EAP225)

1200Mbps Wireless USB Wifi Adapter, FayTun USB Wifi Adapter,
AC1200 Dual Band 2.4GHz/300Mbps+5GHz/867Mbps,
802.11 ac/a/b/g/n High Gain Antenna

Wi-Fi, 아마도 이 말은 반세기전 home audio system의 표준이었던 HiFi (High Fidelity) audio  에서 유래되었을 듯 하다. 이제 이 말은 wireless Ethernet standard로서 ‘wired Ethernet’ 의 extension을 뜻하게 되었다. 처음  device들이 나왔을 때는 사실 거의 실용 불가능에 가까운, 느리고 연결이 끊어지곤 하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시’로나 쓸 수 있을 정도였다.

벽 속으로 Ethernet wire (CAT5,6 cabling)를 설치하는 것, 아마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작업일 것이지만 우리 집은 1990년대 말에 이미 coax cabling (before CAT5 cabling standard)을 설치해서 쓰고 있었고 나중에는 모두 CAT5/6 로 바꾸었다. 그러니까 3000 sf (square feet)크기의 우리 집은 아래 위층에 있는 desktop computer들이 모두 network이 되었던 셈이고 Wi-Fi infra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다.

그 이후에 Wi-Fi device들이 필요한 때가 도래했다. 바로 mobile device (laptop, mobile, Smartphone같은)들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st generation Wi-Fi  (access point, router)를 설치해서 간간히 쓰고 있었는데… 문제는 mobile device들이 network speed가 점점 빨라지면서 (특히 요새 나오는 Smartphone들) 우리 집의 Wi-Fi system이 따라가지를 못했던 것,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는 Smartphone에서 streaming video가 거의 필수가 되었지 않은가?

우리는 집에서 smartphone으로 video를 안 보기에 몰랐는데… 큰딸 새로니가 가끔 집에 놀러 오면 불평이 대단했다. 자기의 iPhone에서 Internet video를 볼 수가 없다는 것… 그래서 생각해 보니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Wi-Fi router를 설치한 것이 아마도 거의 7~8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예전의 Wi-Fi system, 느리고 문제가 많았기에 거들떠도 안 보았는데…

할 수 없이 요새의 system을 찾고 샀고 설치를 했고… 결과는… shocked! 완전히 놀람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 wireless technology는 경이적인 발전.. 특히 MIMO (multiple antenna) technology의 효과는 놀랄 정도.. 우리 집의 모든 mobile device들 완벽하게 network에 연결되고 안정되고 표시된 최대의 speed, 게다가 device들의 값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reasonable 했다.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놀란 것은 우리 wired network (file server, Internet access) 에 연결된 내가 매일 쓰고 있는 workhorse desktop pc (Windows 10 box)가 이제는 100% Wi-Fi로 쓰고 있는데, ‘한번도’ hiccup 조차 한 적이 없다는 사실.. 놀라고 놀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