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아틀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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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동학교 형제  Birthday Party Hangover: 새로 사귄 형제친구, 서울에서 아래 윗동네에 위치한 두 국민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니던 동갑을 만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으로 참 희귀한 일 중에 하나다. 몇 년 전에 성당에서 우연히 돼지띠 동갑도 만났던 즐거운 경험이 있었지만 곧 헤어지게 되어서 너무 아쉽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알고 보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공동체 이곳 저곳에 적지 않게 그들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그들을 못 찾은 것이고, 대부분은 신심단체가 아닌 친교단체에 속해 있었기에 그 동안 그들이 ‘숨어 보였던’ 것이다.

사람은 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나이고하 高下 를 막론하고 잘도 어울리던데, 나는 그것이 체질적으로 불편한 것.. 자라난 환경 때문인가?  작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고 ‘입회’를 한 60+ group 등대회, 나에게는 한마디로 awakening 같은 것이었다.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그 느낌,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며 나는 사실 ‘즐거운 우려’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동갑류 형제, 자매들을 ‘무더기’로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timing이 아주 좋았다. 명색이 신심단체라는 곳에서 ugly하고 극단적인 위선을 통째로 경험을 했기에 아예 내숭떠는 모습이 훨씬 적은 친교단체에 신선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가?

서울 종로구의 노른자위에 위치했던 국민학교, 교동학교 출신, 그것도 동갑의 형제님을 이곳에서 만난 것,  오랜만에 가물에 단비가 내린 듯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재동국민학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같은 때, 비록 짧았던 시절이었지만 같이 뛰고 놀고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뒤 덮인다.

교동국민학교는 나의 원서동 죽마고우 유지호와 ‘시자 누나’가 다녔고,  천도교 건물, 덕성여대, 우리들의 ‘문화전당’, 문화극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사실 그 시절 그 주변의 광경들은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꼭 ‘어느 국민학교 나왔느냐’ 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하곤 해서 어떤 사람들은 웃기도 한다. 중 고교나 대학교를 묻는 것은 당시의 ‘입시지옥’ 풍토를 생각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국민학교는 전혀 문제가 없는1 순진한 화제가 아닐까?

이렇게 새로 만난 ‘교동형제님’ 의 칠순 생일 party에서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푸짐한 음식, 술, 얘기를 즐겼는데.. 문제는 남자들만 앉았던 table에서 ‘예의 정치, 시사토론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술을 평소보다 더 마셨던지,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멍~한 기분으로 ‘반성, 자숙’의 날로 보냈다. 피곤하긴 했지만, 동갑류 모임의 즐거움은 아직도 잔잔히 남고, 무척 오랜만에 느끼는 것, fraternity 형제애, 남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정은 여자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또 오면 적극적으로 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Only God & Time:  지난 목요일은 4월 첫 목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저녁 미사 후에 성시간이 있는 날이었고 연도가 있던 날이었다. 전날 ‘음주’의 여파로 꼼짝하기 싫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가라, 나가라..’ 하는 음성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이날은 빠질 수가 없었다. 미사나 성시간을 그렇다 치고 연도는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연도는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요절 夭折’을 한 청년을 위한 것이었다. 그 젊은 나이로 잠자는 중에 사망을 했다는 사실이 사실은 정말 믿기 힘든 것이었다. 사연이야 어떻다 치고 그 부모들의 심정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사고, 사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부모로써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끔찍한 상상은 사실 상상을 하기도 벅찬데..

이 부모님들은 사실 우리가 아틀란타로 내려오기 전에 잠깐 살았던 Madison (Wisconsin)에 사셨다고 해서 반가웠다. 물론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부터 그곳에 사셨고, 같은 한인성당에도 다녀서 우리가 알고 지내던 분들을 많이 알고 계셨던 인연이 있다.

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사고로 아드님을 잃었던 자매님이 있어서 연도를 했지만 사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연도의 위력은 참 대단한 것인가.. 그렇게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지만 유족들도 마찬가지라 생각 되었다. 그저 생각한다… 왜 그런 고통이.. 그래서 하느님만이 ‘왜?’ 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는 것,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시간’이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참,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  Spring roll & wine,  Impromptu style: 어제는 성당 휴무관계로 연기된 레지오 주회합이 있던 날이었다. 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뀐 것은 이미 전에 경험을 해서 별로 다른 느낌이 없는 것인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정오 미사 후 맛있고 푸짐한 점심2 생각을 하며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는 아주 희귀한 것이다. 저녁 초대를 받기는 해도 평일에 점심초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부부신자는 많지만 항상 같이 다니는 case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couple이 그 중에 하나다. 우리보다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그 동안 우리와 그런대로 ‘웃는 모습’으로 대하던 부부, 요새 보면 전 보다 더 사이가 좋아 좋아 보여서 보기에도 좋았다. 자매님은 본당의 각종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신심은 참 부러울 정도다.

 

 

전에는 성당 근처에 살았지만 년 전쯤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보는 부부, wife끼리 우연히, 그야말로 impromptu, 지나가는 말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그것도 자기의 집에서.. 이런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닌가? 거창하게 계획 만들지 않고 스쳐가는 생각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식사 하는 것.  비교적 drive 하는데 시간을 좀 걸렸지만 멋진 country club 내에 있는 예쁜 집에서 한가하게 Spring roll 과 wine으로 시간을 보낸 것, 두고 두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

 

  1. 하기야 이곳도 그 후에 사립국민학교가 나타나며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2. 우리는 평소에 저녁을 안 먹기 때문에 점심이 제일 양이 많고 푸짐하다.

Jesus, into Passion Week

 

올해, 2018년의 성지주일(聖枝主日),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는 blog 제목 그대로, 비에 젖고 싸늘하고 온통 쫓기는 듯한 그런 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아침, 기온마저 싸늘한 것이 오래 전 같았으면 따뜻한 방 책상 앞에서 향기 짙은 coffee를 한없이 마시며 백일몽을 꾸고 싶었을,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들어가시는 날인데,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어떻게 참혹한 죽음을 알면서도 사명을 완수하러 죽음의 행군을 하셨을까.. 인간적으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이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날은 2018년 가톨릭 신앙 의미의 최 정점인 부활주일을 향한 성주간의 첫날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 행사 등등이 ‘모조리’ 겹쳐서 도저히 그런 ‘도피 심리’는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우리 구역이 성당 점심봉사 차례였고, 본당청소의 날, 레지오 아치에서 행사 등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구역 점심봉사나 본당 청소는 pass할 만도 했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미안해서였을까.. 

하지만 이날 제일 중요한 행사는 역시 레지오 아치에스 행사였다. 올해로 20차를 맞는 큰 의미 있는 행사다. 레지오는 로마 군대의 조직을 본 딴 것이고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 맹세하는 엄숙한 행사로서 보통의 신심단체에서는 찾기 힘든 행사다. 이것을 빼먹는 것은 한마디로 충성이 결여된 군인과 같은 것인데 나는 작년에 그런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 이유는 레지오의 ‘왕마귀‘라는 인간이 벌린 해괴한 행동에 너무나 놀라고 실망을 해서 레지오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런 경솔한 실수를 한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올해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결심을 하였고 결국 오늘은 큰 문제없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제 성주간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성삼일, 수난감실 성체조배 같은 heavy급 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끝나면서 우리는 ‘초자연적 중의 초자연적 기적,  인간 부활’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Spring at Saybrook Court

¶ Spring finally comes: 유난히도 추웠고 (아직도 싸늘한)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이 3월 20일1이었다.

봄의 시작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이때 내가 할 일이 하나 있다. 나의 blog site의 header art picture를 ‘봄’의 그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site는 이런 식으로 일년에 네 번을 바꾸는데,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ugly 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받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거저 받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이런 때 다시 한번 행복한 마음으로 새기는 것,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받고 싶은 것이다.

이 header art에 담긴 ‘봄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집, cul-du-sac 에 있는 neighbor house들 초봄의 모습과, 비가 내린 후 blacktop에 물빛이 반사되어 흡사 커다란 ‘연못’을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 잘 어울려서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까지 봄은 무르익어갈 것이다.

 

¶  Kafkaesque March day: 지나간 화요일 주회합에는 일년 만에 꾸리아 순방이 있었다. 이날 꾸리아 간부들의 방문을 맞으며 일년 전 같은 때를 기억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blog post를 기억하면서 Kafka를 연상시키는 ‘해괴한 사건’2을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3월의 악몽’ 으로 뇌세포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 해괴한 사건, 그 사건의 장본인은 작년 8월의 ‘레지오 미친년 사건’과 더불어 ‘2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로 내 개인 역사에 당당히 남게 되었다.

꾸리아의 위상을 완전히 진흙탕 속으로 떨어뜨린 그 사건의 여파로 나는 심각하게 레지오를 포기할 생각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레지오 아치에스 acies 행사까지 포기하는 실수도 범했다. 지금은 조금 감정적이었던 그 당시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장본인 왕마귀’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로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구건 간에 레지오를 분열시키거나 떠나게 만드는 것은 ‘성모님 정신을 거역하는 심각한 죄’ 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이런 사건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원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레지오는 모두를 저질단원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이날 다시 맞은 꾸리아 간부들, 특별한 문제없이 방문은 끝났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작년 같은 사태가 재발하게 되면 즉시 video로 기록을 남겨 Youtube로 공개할 것을 밝힌 후,폭력으로 쫓아낼 각오‘까지 다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감정이 격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일들,  나에게 조그마한 피해망상증 paranoia 이 생겼는지, 정말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성모님의 군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음도 느낀다.

 

 

¶ 목요회 친구들: 6개월이나 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목요회 모임이 이번 달에는 마지막 목요일이 아니고 세 번째 목요일에 모였다. 마지막 목요일인 ‘성 목요일’에 떨어졌기 때문에 한 주를 앞당긴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도밍고 형제가 난색을 표명해서 예전 대로 밖 (식당)에서 모였다. 몇 개월 전에 밤에 차 사고를 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깜깜한 늦은 저녁시간에 마리에타로 drive하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의 20년 전에 온 적이 있겠지만 아무리 요새의 technology, GPS와 Google Map이 있어도 밤에 이곳의 불규칙적인 residential area를 drive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이다.

칠십의 나이는 확실히 ‘밤중의 운전’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서서히 실감한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주위의 동년배들도 거의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점점 mobility는 떨어지게 되지만 대신 virtual mobility (Internet)는 점점 발달할 것이므로 예전의 ‘노인’들이 겪던 ‘소외감’의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모였으면 spaghetti 와 wine으로 배와 기분을 채우려고 했고, 아오스딩 형제에게는 (60/70 style) guitar 101 정도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아마도 6월 달 정도에나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밤 늦은 저녁식사 모임을 끝냈다.

 

  1. ‘한국산’ 레지오 수첩을 보면 3월 19일이 춘분인데.. 갑자기 혼동스럽다. 이것은 국제표준 ‘절대’ 시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꾸리아 간부로 방문 온,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인간이 갑자기 괴물로 돌변, 순명 하라고 길길이 뛰던, 이직도 그 광경이 믿기지 않는 사건

¶  5th Sunday of Lent, 사순절 5주째를 맞는 주일, 다시 완연한 봄기운이 대기를 감싸기 시작한 따뜻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춘분’ 전 일요일을 맞았고, 이제 어느덧 사순절이 1주일밖에 안 남았다. 돌아오는 일요일은 Palm Sunday (성지주일), 이날부터 Passion Week (수난주간)이 시작되고 우리 가톨릭(그리스도교) 신앙의 절정을 향한 일주일을 맞는다.  다가오는 성삼일 Triduum  을 생각하면 사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 찬란한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생각하며 위로를 삼는다.

이날 아침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정든 ‘동네 neighborhood 미국 성당’, Holy Family  성당엘 갔다. 생각을 미처 못했지만 우리가 거의 두 달 동안이나 한국 순교자 성당으로 주일미사를 갔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 우리 신앙의 고향 같은 이 동네 neighborhood  미국성당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주일 헌금을 거른 것도 미안하고 큰 은혜 받고 있는 것 (6 days 평일미사 포함)을 못 갚는 듯한 죄송함도 느낀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 조금은 시간과 힘을 바쳐야 할 ‘위치’에 있는데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틀란타 대교구의 Annual Appeal donation 도 작년부터 순교자성당을 통해서 하게 되었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두 달 연속으로 주일미사를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 공동체가 예전보다 좀 더 가까워져서 그런가, 익숙해져서 그런가, 확실히 전 보다 익숙해진 것도 도움이 되긴 했다. 오래 전처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하다’ 라는 변명을 하기가 힘이 들게 되었다. 얼굴이 그런대로 익숙한 형제,자매님들이 이곳 저곳에 눈에 뜨이는 것,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혹시라도 그 두 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성모님, 죄송합니다), 두 괴물들 monsters’ 의 얼굴을 멀리서라도 보게라도 되는 것, 즉시로 밥맛이 거의 제로로 떨어지는 경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특효약이 없다. 있다면 ‘세월의 흐름’ 그것 밖에 없다.

이날 순교자 성당 주일 미사에 안 간 이유는 또 있었다. 이날 집전 신부가 주임신부님이 아니고 ‘윗동네’ 신부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상식의 선을 언제 또 벗어날지 모르는 돌출적 행동을 나는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어한다. 게다가 ‘정구사, 주사파, 신 진보‘로 무장하고 세속에 찌들은 듯한 신부.. 진정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주일 날, 순교자 성당에서는 전 주임신부 예수회 류해욱 신부의 사순 특강이 있었는데 물론 나는 참석을 못했다. 류신부의 특강을 못 들은 것, 사실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지난 주에 다른 신부 (가톨릭 신문)의 특강에서 하도 ‘진을 빼서’, 다시는 이런 식의 특강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는 형제님들(등대회 회원)에게 권유를 해 보았지만 YES 대답이 없어서 그냥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 중에 한 형제님은 부부가 같이 특강에 참석을 했었기에 ‘특강권유 활동’ 이 성공으로 check mark가 되는 흐뭇함을 느꼈다.

이날, 일요일 연숙은 미국성당 미사가 끝난 후에 교리반 때문에 순교자 성당을 갔었지만, 가는데 무려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일요일 아침에 한가해야 할 I-285 (Eastbound near Roswell Rd Exit) 에 car accident로 all-lane이 막히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coffee를 즐기고 있었고… 문뜩 ‘악몽’이 떠올랐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19시간 얼어붙은 freeway에서 밤을 지새웠던 경험.. 잊고 싶은 추억인데 그것이 다시 눈앞에 그려지는 것.. 이것도 세월이 더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  Pray for me, St. Joseph, Solemnity of..:  성 요셉 대축일, 원명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이 대축일은 3월 셋째 월요일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올해는 3월 19일 월요일이었다. 아침미사엘 가며 ‘어렴풋이’ 이날이 성 요셉 축일 정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엘 가니, 대성당에 불이 꺼져있었고 작은 note가 붙어있었다. 오늘 미사는 별관인 Parish Center에서 한다고 적혀 있었다. 왜 미사 장소를 바꾸었을까, 궁금증은 그곳에 도착해서 풀렸다.

의자들이 놓인 것은 그렇고 벽 쪽으로 멋지게 꾸며진’제단, alter’ 이 설치 되어 있었다. 아하! 성 요셉 대축일을 더욱 의미 있게 ‘축하’하려는 본당 신부(Father Miguel)의 노력이었다. 그러니까 이 신부님은 성 요셉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성모 신심은 잘 알려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배필인 성 요셉 신심은 조금 생소한 것이 아닌가? Not So!

요즘 가톨릭 인터넷 site엘 가보면 한마디로 이것은 devotion trending 중의 하나다. 얼마 전에는  그 유명한 야쿠자 신부님 Father Donald Calloway 의 ‘St. Joseph Gem: Daily Wisdom on our Spiritual Father‘  란 책이 나오기도 했다. 개신교의 ‘성경유일주의’에 의하면 이 요셉 성인은 성경에서 ‘한 마디’도 하신 말씀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성령의 감도를 받은 수많은 성인,성녀, 교부들이 남긴 기록들은 그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런 것 만으로도 나는 마틴 루터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성 요셉 신심의 불길을 뜨거워지고 있고, 아마도 critical mass에 도달하면 마리아 신심에 버금가는 은총 전구의 원천이 될 것을 기대하며 이날 ‘성 요셉 대축일’ 미사를 참례하였다.

 

Solemnity of St. Joseph, Holy Family Catholic Church

거의 반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번씩 있는 이날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서 꾀병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질 않는다. 어떤 때는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나에게 물을 때도 있고 그에 대한 뾰족하고 명쾌한 답이 없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슬프기도 한 그날은..  다름이 아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월례회의.. 한 마디로 밥맛, 입맛이 떨어지는, bad taste  monthly 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이곳엘 나가기 시작한 것이 거의 6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암만 생각해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루 아침에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서 아마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감지 感知 를 못했을 듯하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잠긴 개구리, 바로 우리가 그런 꼴이 아닐까.

나의 밥맛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두 인간이 그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내가 너무도 잘 알기에 오늘도 병이 날 정도로 가기가 싫었다. 그저 그 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조금만 조용히 얌전히 앉아 있어 주기만 기대하며 그곳엘 들어갔지만, 역시 어디를 가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인간과 뱀 같은 얼굴로 자기도취에 빠진, 언제라도 monster로 돌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 (아!  이 역시, 모두 ugly한 아줌마, 여자들이다)…  가뜩이나 쳐지는 몸이 더 쳐지는 오늘, 지독히도 맛 없는 ‘설날 떡국’ 과 함께 잊고 싶은 ‘주일’이 되었다. 최후의 희망은, 영적 신부님이라도 제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그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것들은 unthinkable 한 option 들 뿐이다.

 

¶  Filet-O-Fish:  언제부터였을까… 금요일을 no-meat-day 로 삼고 ‘가급적’ 그날 하루 고기 meat 먹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 물론 확실한 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강 내가 본격적으로 ‘회심1‘을 하기 시작했던 그 무렵이었음은 분명하다.  추측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라 조금은 절제 abstinence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지만 나는 그 무렵 ‘추호의 의심, 반론’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할 ‘열린 가슴’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고기를 피하고 대신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생긴 것이 금요일에 McDonaldFilet-O-Fish sandwich를 즐기는 전통이었다.

이것은 McDonald 아침 menu에 없기에 우리는 아침에 YMCA gym에서 workout 이 끝난 후에 가서 먹곤 하고, 저녁식사를 거의 하지 않기에 이것이 사실 그날 마지막 음식이 된다. 요새 이곳에 들어가는 fish fillet 는 Alaskan Pollack(명태)를 쓰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생선 맛이다.  비교적 작은 size의 sandwich라서 비록 단식은 아니지만 비슷한 abstinence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금요일도 그런 fish Friday였다.

이 역사 깊은 sandwich는 거의 45년 전, 1973년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2 이 남는다. 값도 Big Mac보다 쌌고 크기도 아주 적당하게 작았다. 이것의 역사를 찾아보면 (물론 Wikipedia) 아주 재미있다. 역시 나의 짐작대로 가톨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천주교인들이 금요일에 고기 중심의 hamburger를 피하는 것을 보고 idea를 얻은 것이다. Cincinnati (Ohio)의 한 McDonald franchise 주인이 처음 착안,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것을 본사에서 받아들여서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그것이 1960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이 sandwich의 년 매상 1/4이 팔리는 시기도 역시 천주교 전례력의 사순 四旬 시기(Lent)라고 하니, 역사적 배경을 알고 먹으니 더욱 ‘숨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upscale Japanese buffet Nori Nori

 

¶  노리 노리 Nori Nori: 어제는 뜻밖의 점심 외식 초대를 받아서 우리는 Nori Nori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고급 일식 upscale Japanese buffet 엘 갔었다. 우리 집에서 drive로 30분 가량 걸리는 곳, Sandy Springs (Roswell Rd @Abernathy)에 있는 이 all-you-can-eat sushi buffet  우리는 처음 가본 곳이다. 그저 이런 식의 buffet 라면 대강 Chinese 위주의 ‘서민 풍’의 그런 곳으로 상상이 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야말로 upscale, 한 마디로 ‘비싼 곳’으로 모든 것들이 느낌이 달랐다. 요사이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스테파노 형제 댁의 초대였는데 아마도 지난 년 말 우리의 초대로 외식을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던 추측도 들었다. 한 마디로 즐겁고 편한 대화와 깨끗하고, 감칠 맛 나는, 고급 스러운 음식들로 나중에 우리 식구들도 한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것은 한마디로 lunch menu들 치고 상당히 pricey, 거의 $20 에 가까워서, 우리의 수준으로는 자주 찾기는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보통 점심 때 Buffet에 흔히 보이는 ‘노가다’ 류 (정말 끊임없이 먹어대는) 가 이곳에는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역시 pricey 한 upscale buffet 였다.

 

  1. 성당에 규칙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2. 여행 중, Pittsburgh, PA 에 살던 연세대 선배 위재성 형에게 들렸을 때

정말 오랜만에 머리가 띵~ 한 하루, 그것도 멀쩡하게 아침 미사까지 빼먹고 보내는 하루가 되었다. 사순절 시작이 2주 앞으로 다가온,  2월첫 날 아침부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원인은 어제 저녁에 있었던 마리에타 사랑반 구역미사 후 회식에서 아차~ 하고 ‘조금’ 마셨던 술의 여파 hangover 때문이었다. 그렇게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drive를 연숙에게 맡긴 것을 보면, 그리고 조금은 꼬부라진 혀끝의 감각을 기억하면 분명히 조금 over한 것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이날은 사실 구역미사엘 안 가려고 미리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사가 항상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랴.. 가기 싫었던 이유는 물론 여기서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이유는 궁극적으로 올바른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기에 이런 ‘끌려가는 듯한’ 사태가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미사는 미사지만 본당신부님의 일반적인 사목적 자세는 한마디로 well-rounded한 것, 그 복잡한 사목방침을 항상 ‘중용’의 자세로, 타협점을 구하는, 공정 중간적 입장,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보려는 자세, 알맞은 강도의 강론, 겸손한 demeanor.. 나에게는 absolutely positively NO problem.. 아니, 좋아하는 쪽이다. 하지만 세상사에 downside, dark-side가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사목성패의 관건이다.

 

이날  pikapika 한 술들 (jumbo-size whisky, upscale wine & beer), 이 앞에서 우리 신부님도 술을 즐기는 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이것은 news가 아니고 이미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날 그것을 조금은 직접 확인한 셈이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만천하가 하는 사실이지만 가끔 밖에서 ‘쓸쓸히’ 끽연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동참한다는 이유로 ‘얻어’ 피우기도 했다. 신부님들의 일상 ‘기호’ 생활도 사실 일반인들이나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 유혹은 더 심할 것 같아 보여서 조금은 공감을 하기도 한다.

남자들 모여서 ‘정치,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 하라는 불문율이 깨어진 채 이날은 마구잡이로 사정없이 종교+정치 이야기가 난무했는데… 전에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신부님은 ‘진보성향’이 농후함을 알게 되었다. 진보+보수의 갈등, 신세대+구세대의 갈등, 특히 고향 대한민국의 현 실정을 배경으로 그것은 잘못하면 화약고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교회나 사제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을 두느냐 하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 시절에 익힐 들어서 알기에 함부로 ‘심판, 단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이 70으로 진입하는 마당에, 분명히 나는 보수중의 보수 세대에 속하지만 나 자신은 거의 ‘중립, 관망’하는 입장이기에 신부님의 ‘고견’을 많이 듣고 싶었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적’인 것과 ‘주관적, 편협적’인 주장과 의견이 완전히 ‘짬뽕’이 되어서 왜 그런 논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암만 관망, 중립을 지켜도 지켜야 될 마지노 선 (Ligne Maginot)Maginot Line 은 분명이 존재한다. ‘김씨 왕조’를 두둔하거나 비방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나의 마지노 선이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넘기면 그때는 진보, 보수가 없다. 그것은 역사왜곡, 양심 포기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6.25 전범 김일성 세습정권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날 신부님 발언 중에는 나의 간담을 조금 써늘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음모세력’ 그것이 미국이라는 간접적인 논리였다. 몇 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나는 놀랐다. 어떻게 미국 ‘제국주의적 음모론’을 믿는 것일까? 정구사(정의구현사제협의회?) 정당성을 예전부터 주장하셨던 신부님의 입장을 나는 그저 benefit of doubt 으로 넘어가곤 했지만.. 이런 신부단, 교회의 입장 때문에 극우세력, 극보수 세력이 열을 올리는지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실패한 햇볕인가 무시긴가 하는 것으로 장난감 폭탄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미국 하와이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던 희극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바보들이 그런 애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이런 저런 혼란했던 머리 속에 whisky, wine, beer가 모조리 섞였던 나의 몸은 완전히 쳐지고… 결국은 오늘을 small holiday로 보낸 것, 술이 웬~수다…

 

Thursday Friends: 처음 만난 지 4 반세기 (quarter century) 가 훨씬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실질적’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 나이 지긋한 3명의 남자들,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갖는 ‘이상한’ 모임, 이름하여 ‘목요일 밤 친구들’, 하지만 이름은 짧게, 목요회가 되었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강렬한 향수를 동반한 그리움을 느끼며 3명이 처음으로 함께 모였고, 그 이후는 짧은 역사가 되었고 지금도 매달마다 작은 역사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하나 둘씩 서로에 대한 느낌들이 쌓이고 어렴풋이  pattern 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one year anniversary가 되는 올해 9월의 모임이 되면 그 pattern이란 것이 어떤 것일지 미리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건강한 것, 희망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오랜 세월을 같은 지역에서 살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세 명의 ‘아빠 남자’들은 꽤 다른 인생을 살았던 듯 싶다. 서서히 나누기 시작한 옛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렇고, 아주 가끔씩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들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두 old friends들과 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오랜 세월, 이들이 냉담을 고수했던 나를 성당에서 찾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그들을 찾고 있다는 것, 참 긴 세월의 irony가 아닐까?  우리들의 등대였던 그곳, 성당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나에게는 다가왔고 그들로부터는 떠난 것인지 나는 더 알고 싶기도 하고, 가급적 남은 여생에서 그들과 함께 머무는 공동체를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지난 달 모임과 이번의 모임을 통해서 나는 조금 색다른 각도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스산하게 깜깜한 밤중에 coffee shop를 찾으러 old Korea Town (at Buford Hwy)을 걸으며.. 기억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무엇이 있었다. 70년대 초 친구들과 종로, 명동 거리를 걷던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 이후 수십 년(아니, 거의 반세기?) 동안 이렇게 ‘남자들끼리’ 밤 거리를 배회’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과 갑자기 내가 이 ‘외딴 섬, 미국 내의 stranger’란 느낌과 Frank Sinatra 의 1966년 classic oldie, Strangers in the Night의 은은한 crooning 추억, 또한 남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형제애, fraternity’를 너무나 오랜 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색다른 이유로 나는 우리 목요회가 ‘장수 長壽’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Strangers in the Night – Frank Sinatra – 1966  

 

¶  Happy Anniversary, 38th!  결혼 38주년, ‘삼십 팔, thirty eight’ 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와~ 축하한다.. 축하해.. 하는 자축의 느낌은 어느 해 보다 강렬했다. 우리 세대에는 그렇게 이혼이 흔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38년 ‘무사히’ 가정을 지켰다는 것은 솔직히 자랑스럽다. 이혼이나 사별 같은 것, 가정적으로 얼마나 자녀들에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1980년 1월 25일에 시작된 결혼의 세월들, ‘남녀의 결혼’이란 말에 더 심각한 의미가 실린 초 현대의 해괴한 초 超 세속사회의 격동 속에 오늘을 38년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자연법을 거스르지 않고 두 생명이 하느님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간단한 Lemongrass 외식을 즐겼던 날이 되었다. 

 

September Morn – Neil Diamond – 1980  

 

¶  Serpents:  오늘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미국 본당  Holy Family church대신에 한국 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정오미사엘 갔다. 이유는 그곳에서 지난 12월에 선종하신 어떤 자매님의 50일재 추모 연도 煉禱 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미사와 연도가 함께 있는 날은 요일에 상관없이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렇게 금요일의 추모연도에만 참석하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 지나간 12월 달에 있었던 장례미사, 연도에 ‘snow day 날씨 관계’ 로 불참했었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셈이다. 

연도가 끝나고 단체 식사를 하는 곳에서 보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는 2017년  ‘레지오 난동사건 장본인’ 그 미친년의 얼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차.. 했지만 늦었다. 그 인간을 상상하거나 보기만 해도 나는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 동안 소화까지 안 되는 정도다. 아직도 아직도 나는 꿈 속에서 ‘죽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고, 그 인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하… 그 얼굴이 사람들이 말하던 serpent의 모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년에 레지오에서 난동을 일으켰던  두 ( 왕마귀 포함) 미친 년들의 얼굴이 그러고 보니 완전한 (성모님의 발꿈치에 눌린듯한) serpent의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완전한 뱀(그것도 독사들)의 얼굴이 아닌가? 1978년 supernatural horror  movie sequel, The Omen II 에서 본 (Damien) serpents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잊고 싶다, 잊고 싶다, 영원히 잊고 싶은..

 

 

Frozen land, Saybrook court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어두운 집 주변이 비교적 환하게 느껴진다. 잠결 속에서도 어제부터 예보된 대로 집 주변이 모두 눈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기예보의 timing은 거의 정확한 듯 보인다. 늦은 저녁에 차가운 비로 시작된 것이 시간이 가면서 눈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진짜 news는 아니었다. 바로 wind chill 화씨 제로.. 기온이 수십 도 가 떨어지면서 불어오는 바람..

아침에 Tobey 를 밖으로 잠깐 내 보냈더니 pee pee 만 잠깐하고 곧바로 들어온다.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햇빛은 찬란한.. 땅을 보니 이것이 바로 어떤 시인이 말했던, 凍土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정도면 오늘은 100% hunker-down day 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덕 길이 완전히 빙판이기 때문에 drive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이 빙판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결국 오늘은.. 올 겨울 들어 2nd snow day가 된 셈이다.  비교적 따뜻하게 무장한 나의 보금자리에서 coffee를 마시며 relax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직업상, 사정상 꼭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relax할 것 만은 아닐지 모른다.

 

¶  지난 주 금요일, 저녁부터 ‘폭포처럼’ 쏟아진 함박눈으로 이틀 정도의 뜻밖의 snow days,  애들 처럼 즐거운 ‘공짜 휴일’ 이후, 곧바로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추위로 사실 아직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환상적인’ 12월의 느낌 으로 그러니까.. 매일매일 white Christmas의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추위로 녹지 않는 ‘잔설 殘雪’

 

¶  등대회 망년회:  12월의 3분의 1일 지나가는 때, surprise heavy snow로 holiday 의 기분과 광경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망년회’ party같은 것들이 더 돋보이는데, 사실은 꽤 오랜 동안 우리는 이것들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stress받고 피곤한 경험들도 있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너무나 ‘세속적’인 모임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보았다. why not..이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라는 세월이 너무나 ‘피곤하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부정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에 대응하는 antidote는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있다.  만에 일이라도, 올해 두 번씩이나 당했던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2명)’처럼 ‘경고 없이 순식간에 괴물 monster 로 돌변할’ 가능성이 거의 zero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내가 보아온 성당 60 plus 친목단체인 등대회는 큰 문제가 없이 보였고 지난 가을의 West Bank park 야유회에 이어서 연말 모임, 망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대학 동창회나 다른 단체의 연말 party 같은 곳에 안 가고 산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이런 모임이 생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정해진 program이 없이 informal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그 사람들이 ‘노는 데’는 주역들이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Duluth Korea Town에 있는 ‘초원부페‘라는 곳에서 정말 푸짐히 ‘마시고, 먹고’, 아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disco풍의 춤과 노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며 즐겼다. 나는 예의 ‘옛 노래’ 몇 곡을 불렀지만, 그들의 폭넓은 (특히 요새 노래들) 노래실력에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요새 노래들을 배웠는지..

 

 

¶  Film Noir time again:  작년 11월 경,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즐기는 방법으로 film noir가 나에게 다가왔고 아마도 작년의 holiday을 많은 시간을 이것, film noir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아~~~ film noir, glorious ‘black & white’ 느낌들… HitlerTojoevil empire를 ‘하느님의 정의로 무찌른’ victorious America의 전후에 ‘대량생산’ 한 이 film noir 영화들.. 당시에 어떻게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70여 년 후에 이렇게 YouTube라는 ‘해괴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것을 즐긴다는 사실이 사실은 surreal한 느낌인 것이다.

작년에 YouTube에서 download한 film noir 영화가 거의 5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low-budget class여서 정성스럽게 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신경을 써서 자세히 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분위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blustery, chilly, windy afternoon인데… 요새가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거기다가 달콤한 mini donuts 과 아주 진한 gourmet coffee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길 수가 있다. 힘들었던 올해였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이 그런 괴로운 추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니.. 한마디로 it’s fair라고 할까..

이 특별했던 회색 빛의 오후에 보았던 glorious black & white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내에서 ‘원자탄 비밀’을 찾고 있었던 독일의 스파이 망을 FBI에서 일망타진 하는 내용의 1945년 영화 ‘The House on 92nd Street‘ 였다. FBI의 방대한 수사망의 위력을 ‘선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당시에 ‘적국의 스파이’들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좋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기와 각본 등도 뛰어난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film noir afternoon, 2017

 

The House on 92nd Street – 1945

 

 

¶  Earlier Tree: 얼마 전에 Vatican Youtube를 보니 성 베드로 광장에 거대한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성탄구유도 설치가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교회(천주교)는 ‘세속적인 장식’을 가급적 성탄 며칠 전까지 ‘참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었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서 그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떠난 이후 이런 ‘장식’들을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나도 그 ‘취지’에 동감을 하기에 큰 문제도 없었다. 나아가서 성탄절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세속, 상업’적 풍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12 days of Christmas, Octave of Nativity (of the Lord) 등등을 따르며 신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성탄기분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더욱 새롭고 느낌이 달랐다.

 

’tis time again, 2017

 

그런데 올해는 조금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올해 어찌나 무언가 힘이 들었다는 쳐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불현듯 성 베드로 광장의 성탄 트리를 보며..  what the heck… 이란 느낌으로 garage로 가서 일년 묵은 성탄장식들을 끌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lighted treed, wreath 를 세워 놓았다. 며칠 뒤에는 올해 새로 나온 twinkling snow flake light까지 사다가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carol 을 틀어 놓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서 거의 열흘 정도 이르게 성탄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규칙, 규정, 법칙’도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직감, 느낌’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은 아주 좋았다.

 

나의 office, study로 바뀐 첫 해의 성탄 wreath

 

 

깜깜한 이른 새벽, 저 멀리 있는 digital clock radio의 clock이 잠결에서도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현재 시각이… 오밤중의 그것이었다. 속으로.. 내가 불면증인가.. 나이 탓인가.. 이 오밤중에 정신이 말짱하니,  다시 자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며 창 밖을 훔쳐 보니 아무래도 나의 body clock은 아침 7시 정도는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digital clock을 보니.. 아하, it’s blinking! 언뜻, 밤에 ‘전기가 나갔었구나’, 그러니까 그 radio clock 의 시간이 틀린 것이다.

부리나케 아래 층으로 내려오니, 나의 body clock이 거의 정확했다, 7시 10분이었다.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가 분명히 배가 고플 것 같아 먹이를 들고 부지런히 나가려고 하니 porch door가 쌓인 눈에 걸릴 정도로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Deck guardrail 에 가지런히 쌓인 눈의 깊이가 족히 5~6 inch가 될 정도로 근래에 드물게 보는 ‘대설 大雪’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내린 눈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우리는 어제를 snow day 로서 푹 쉬었지만 장례미사를 못 갔던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2014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이 마당에 이러한 결정은 현명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Sugarloaf mansion의 최형이 전화로 우리가 혹시 어제 ‘외출’을 했었나 부터 물었다. 3년 전 19시간 동안 I-258 freeway에서 밤을 지샜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3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집으로 drive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듯했다.  어떤 사람은 5시간, 우리 작은 딸 나라니는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일찍 시작된 rush hour가 끝나면서 눈은 엄청난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늘 아침에도 내리고… ‘자, ruler’로 재어보니 정확히 6 inch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두 번째 snow day가 된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흠…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설마 내일까지도 문제가… 있다면… 성당과 저녁 5시에 있는 성당 60 plus 대 모임, 등대회 연말 파티 모임도.. 설마..

 

sleeting ,dusting Marietta

¶  깜깜한 이른 새벽 침실의 curtain사이로 들어오는 가물거리는 빛들, 먼 곳에 있는 집의 security light는 거의 항상 켜 있으니 익숙한 것이고 땅 쪽에서 올라오는 어두운 빛들은 무엇인가? 우리 집의 security light는 분명히 아니고.. 잠결에 생각이 났다. 아하… 오늘 이곳에 wintry mix advisory가 있었던 것. 그러면 혹시 눈, 하지만 절대로 하얀 색갈이 아니다. 거의 검은 색으로 반짝거린다. 그러면 비.. 그것도 아닌 느낌이다. 그러면… 아하.. sleeting or freezing rain?  다롱이(backyard cat)  아침밥 주러 밖엘 나가니.. 이건 sleet 도 아니고 freezing rain도 아니고 바로 그 중간이었다. 아니.. snow도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바로 올 season 첫 번째 winter storm warning…  2014년의 ‘snowmageddon‘ nightmare가 곧바로 기억이 난다.

The Mother of humanity

오늘은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의 대 축일이고 미국에서는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것인가? 현재의 상태 같으면 Holy Family Church로 가는 drive는 큰 문제가 없을 듯한데.. 그래도 현재의 날씨 상태로는 100% guarantee는 없다. 어쩔 것인가.. 하지만 곧 결정이 났다. 최악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이 지난 밤도 예외가 아닌 듯해서 내가 결정을 내 버렸다. 성모님… 용서하소서..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오늘 낮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로 알게 된 데레사 자매님의 시어머니의 장례미사와 연도가 예정되어 있기에 이것도 어쩔 것인가 생각을 하고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TAKE ZERO CHANCE..였다. 2014년 20시간 I-285에 묶여 밤을 새웠던 기억은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갈 듯한데 이제 고작 3년도 안 된 fresh한 것이니.. 다시는 이런 날씨에 I-285 drive는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연도를 하는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장례미사를 참석 못하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Ave Maria – Composed by Michal Lorenc Performed by Olga Szyrowa, Moscow Symphony Orchestra (1995)  

 

¶  어제는 가까운 곳에 사시는 스테파노 형제님 댁, 점심초대를 받아서 예외적으로 격조 있고 맛있는 점심 회식을 즐겼다. 이 댁의 자매님은 알고 지낸 지 그런대로 되었지만 스테파노 형제님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인생철학’도 크게 유별난 것 아닌 듯해서 ‘안심하고’ 사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도 ‘해괴한 인간’들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 사귀는 것, 이제는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운과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 가 보니 3명의 자매님들도 오셨는데.. 모두 낯이 익은 분들이었고 한 분은 3년 전 세례를 받으신 아녜스 자매님, 우리 둘이 교리반 봉사를 할 때 예비신자 학생이었다. 그 당시 교리반 학생들, 세례 후에 많이 못 보게 되었지만 이 자매님은 그런대로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멋진 table setup에다가 주로 holiday style meal, gourmet coffee 등등.. 인상적인 모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좋은 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  이 posting 은 아침에 시작된 wintry mix, sleet 를 보면서 한 것인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을 뒤엎고 major snow로 돌변을 하였다. 지상의 온도는 빙점 위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하늘은 영하였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rain, 그리고 저녁부터 눈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조금 빗나간 것이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교통대란 때도 비슷한 예보를 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도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기후는 정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현명하게도’  아침에 아예 snow day를 선언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멋진 함박눈’을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Advent 대림절 시작.. 동창회, 파티, 친지들의 각종 모임들.. 구세주 탄생, another turkey meal, 망년회.. 송년 countdown.. 등등 ‘즐거운 것들만’이 연상되는 12월, 2017년 마지막 달력을 앞에 두고 나는 내 자신이 깊은 시름의 늪으로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왜 그럴까..  일생일대의 biggest  challenge가 나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Forgive or Forget?

 

올해 들어서 최소한 나로서는 처음 인생공부를 한 계기들이 2건 있었고 모두 ‘나쁜 것’들이어서 정말 해가 가기 전이라도 잊고 싶은 것들이 되었다. 잊는 것, 나는 그런대로 자신 있다고 했지만 이번의 것은 종류가 아주 다른 모양이다. 잊는 것은 고사하고 꿈속에서도 생각이 날 정도가 되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해도 지나칠 정도로 분노의 감정이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말이 사실은 고상한 것이다. 그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나는, ‘치가 떨리는’ 그런 것이다.

 

올해 일어난 왕마귀 사건과  미친년 사건,   모두 레지오와 직접 관계가 되어있고 또한 ‘상상을 초월한 해괴한’ 사건들이며 모두 주범(a.k.a 조폭)들이 ‘여자’ 였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7년 전에 사실상 냉담을 풀고 교회로 귀향한 직접적인 동기가 레지오 입단에 있었고 나는 성모님께 ‘충성을 맹세’한 몸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육적으로 문제가 없는 한 ‘죽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러니까 원자탄이 아틀란타에 떨어지지 않는 한 나는 이곳 ‘자비의 모후’ 에 머물 각오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사건들이 일어난 후유증은 무엇인가?  이 두 인간들이 바로 내가 속한 레지오 조직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단원들이 떠나게 만들고, 밖에서는 요란하게 방해공작을 하는 등.. 정말 신부님(영적지도자)에게 조차 말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의 유치한 짓들을 나는 모두 듣고, 목격을 하였다. 과연 이것들의 나이가 몇 살이며, 정신적으로 정상적인 인간들인가?

 

예전의 나였으면 거의 100%, ‘더러운 인간들이 보기 싫어서’ 교회를 즉시 떠났을 것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 그 인간들에게 lesson을 주기 위해서도 나는 절대로 떠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또한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이제는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을 각오(teeth to teeth)가 되어있다. 이것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나도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는 딴 곳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글거리는 분노’가 절대로 잠잠해 지지 않는다는 것, 아니 생각만 하면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고 있으니.. 과연 성모님이 이것을 참아 내실까.. 아닐 것이다. 이것은 분명한 ‘죄’일 것이다. 우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경을 비롯한 많은 ‘영적 독서’에서 권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 ‘용서하거나 잊거나’ 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그것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음은 시간,세월의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우선, 용서하라는 것은 한마디로 현재로는 HELL NO!에 가깝다. 불가능이다. 잊는 것은 어떤가? 이것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인간들을 전혀 안 볼 수 있으면 그런대로 잊을 수도 있는데 성당만 가면 이 ‘회벽칠 얼굴’들이 왜 그리 자주도 보이는가?  이것도 쉽지 않다. 마지막은 길은 오랜 세월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뇌세포의 노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수동적’인 idea다.  좀 더 proactive한 방법은 없을까? 기도? 그들에게는 솔직히 이 시간조차 아깝다.  다가오는 판공성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이 현재 나의 일생일대의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  Uncle Julio’s: 지난 금요일 저녁에는 김 바오로, 데레사 예랑씨 부부의 초대를 받아서 외식을 하게 되었다. 몇 개월 전에는 우리가 그 부부를 초대해서 Duluth 에 있는 Stone Grille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에 대한 응답인 듯 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저녁 때의 rush hour를 헤치고 Sandy Spring에 있는 Uncle Julio’s라는 Mexican restaurant로 갔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감이 있는 Mexican food였지만 비교적 Americanized된 것이라 큰 surprise는 없이 맛있게 즐겼다.

 

 

이 부부와 처음 인사한 것은 사실 몇 년이 되었을 것이지만 인연이 없는지 다시 어울릴 기회가 좀처럼 오질 않다가, ‘악질 여자’들을 몇 번 겪고 나서 ‘보통 형제님’들이 갑자기 그리워짐을 느끼고 부부친교의 기회를 만든 것이다.

우리와 살아온 background가 많이 다르기에 공통 화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부부가 같은 교우에다가 자매님은 레지오, 문인화 등으로 엮인 것이 있어서 큰 걸림돌은 없다. 다만 형제님이 나보다 더 말이 적은 편이고, 대화하는 방식도 아주 달라서 적응하려면 아마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하나도 문제가 안 된다. 기본적인 예의와 ‘정상적인 사고방식’만 있으면 그 이외에 무엇이 문제인가?

 

 

¶  Urge to KILL: 내가 기억하는 한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죽이고 싶다’라는 Urge를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 한 해에 연속으로 일어난 ‘왕마귀 사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지난 수개월 동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충동을 느끼곤 했다.  그 정도로 분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 정도까지 간 것에 나는 사실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한 인간이 이렇게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 참 슬픈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나에게 일어나는 감정임을 숨길 수가 없다.

Hollywood 영화배우 (Loving You 에서 Elvis Presley와 열연)에서 수녀가 된 Dolores Harts  의 자서전 The Ear of the Heart 에 Urge to kill 이란 표현을 한 것이 보인다. 그녀도 영화배우 시절에 주변의 ‘어떤 나쁜 인간’에 대해 이렇게 솔직한 감정을 느꼈다고 쓴 것이다. 그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고 더 솔직하게 urge to kill 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그녀가 Stephen Boyd와 공연했던 영화 Lisa의 한 장면, 꿈 속이라면 몇 번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이것은 사실 큰 죄라고 할 수 있기에, 올해가 가기 전에  나의 제일 심각한 고해성사 주제가 되었다.

 

영화 Lisa, Stephen Boyd와 공연했던 World War II suspense drama의 한 장면

 

 

¶  ‘사랑의 지도’ 필사 완료: 고 마태오 신부님의 자서전 epic love story 제1편인 ‘사랑의 지도’, ‘필사’가 며칠 전 완전히 끝났다. 9월 초부터 간간히 ‘쓰다가’, 지난 며칠 동안은 ‘미친 듯한’ 속도로 결국 마지막 paragraph에 도달한 것이다.  9월 초부터 간간히 ‘쓰다가’, 지난 며칠 동안은 ‘미친 듯한’ 속도로 결국 마지막 paragraph에 도달한 것이다.  6.25당시 해군으로 원산에 상륙한 이후 중공군 개입 이전까지 머물던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성, 숙’과의 사귐, 결혼약속, 그리고 급작스러운 이별로 끝나는 1편 ‘사랑의 지도’ 다음 2편인 ‘예수 없는 십자가‘의 필사가 곧바로 시작이 되었다. 주로 해병대로 싸운 전투경험일 터이지만 나는 숙과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그것이 더 관심이 간다.

근래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조금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우선 화장실에 둔 책이 있다. 대강 2~3 권 정도가 toilet 옆에 항상 있는데, 이것들은 ‘장기간, 급하지 않은’ 그런 책이지만 결국은 꼭 완독하고 싶은 책을 이곳에 둔다. 그러니까.. 그 중에 조금 더 관심이 가는 책을 하나 골라 toilet에 앉아 있는 동안만 번갈아 가며 보는 것이다. 이때에 책을 읽는 기분은 상상하기에 따라 우습기도 하지만 아주 즐거운 시간이다. 이것은 책 전체를 확실히 읽게 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 다른 나의 ‘비법’은, ‘필사 독해‘하는 것인데 ‘쓰면서 읽는 것’이다. 여기서 필사, 쓴다는 것은 사실은 typing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읽으면 이중의 효과가 있다. 난독을 피하게 되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되고 끝이 나면 멋진 나만의 soft copy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수십 권의 softcopy를 만들어 blog site에 올려 놓기도 했다. copyright문제에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fair use 임을 밝혀둔다.

고 마태오 신부님, 고인이 되셨지만 나는 이 ‘서사시’적인 걸작 사랑의 지도를 읽고 이 신부님을 너무나 그리워하게 되었다. 아니.. 존경하고 싶은 분이 되었다. 불과 20여세까지의 이야기지만 어쩌만 그렇게 성숙, 성실, 용기, 부드러움.. 골고루 갖춘 젊은 남자였을까? 솔직하고 섬세한 필체로 그렸던 ‘숙과의 사귐 과정’은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내가 그 주인공, 고 마태오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이 독후감은 꼭 써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이 70에서도 나이 20세 당시의 ‘고백록’을 쓰려면 이와 같은 ‘모범적’인 글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Ugly, sad: 갈 때까지 갔구나..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으려 마음을 굳게 먹고 지내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Trump-era의 한 추악한 단면을 가까이에서 자주 보며 이세상의 어두운 세력이 분명히 있음을 실감, 절감을 한다. 다른 한 편으로 내가 조금은 alarmist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이런 때 냉철한 reasoning이 필요함을 절감한다. 내가 현재 reasonable한 인간인가… 어려운 문제다.

며칠 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의 꾸리아 단장 선거를 유심히 지켜보면서 이런 alarmist 중의 하나가 되었다. As ugly as it gets.. 내가 느끼는 이 경고성 진단이 아마도 거의 현재 우리가 소속된 레지오의 현황, 바로 그것이다. Trump-era와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을까..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겉으로 돌아가고 있는 ‘꼴’은 정확히 Washington politic 과 비슷한 것.. ugliest, hateful, crude politics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이런 ‘인간’들이 ‘겸손, 순명, 부드러움’의 성모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단 말인가? 순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듯한 인간이 순명을 외치고 있는가 하면 ‘사랑과 겸손이 결여된’ 정말 ‘야비한 인간’이 leadership으로 설쳐대는 (이날 이 flawed leadership이 보여준 행동은 아마도 absolutely positively most cruel한 case로 기억될 듯..) 그 ‘극장’은 한마디로 worst Saturday Night Live였다. 잊고 싶고 다시는 안 겪고 싶은 경험이 되었다.

 

 

 

¶  Fall’s falling:  갑자기 ‘다시’ 춥고 을씨년스런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며 back yard를 응시하니.. 와~~~ 파란 색이 완전히 없어지고, 모조리 노랗고 빨간.. 색으로 변했고 땅은 온통 낙엽으로 뒤 덮인 모습들, driveway도  길과 잔디의 경계가 완전히 가려진 ‘낙엽이 뒹구는’ 길로 변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바로 지금이 fall peak가 지나간 것이다. 이제부터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고, 또 떨어질 것이다. 낙엽을 치우는 것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그런 때가 되었다. 왜 나, 우리는 이렇게 가을이 ‘갑자기’ 온 것으로 느끼게 된 것인지.. 생각해보니 지난 2개월 동안 주변을 잘 못보고 산 것은 아닌지.. 그럴만한 이유는 자명한 것이지만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이런 자연의 변화까지 잊고 산 날들이 그저 쓸데없이 허송한 것이 아님도 잘 알고 있다. 다만 이제부터 년 말까지의 ‘멋진 나날들’을 조금 더 멋지게 보내면 된다.

 

 

Big Canoe:  며칠 전에 Y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속으로 아하.. 오랜만에 그 집에서 모이는구나 하는 짐작을 했지만 의외로 Big Canoe (North Georgia) 의 주소를 알려주며 그곳에서 ‘전원 全員’이 모인다는 짧은 대화를 했다. 전원 이란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친지’들 그룹을 말한다. 예전보다 조금 뜸하게 모이기는 하지만 20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4쌍의 부부들, 스스럼이 없고 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비교적 중년에 가까운 나이들에 형성이 되었기에 지나친 기대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관계, 알맞은 거리를 유지하는 성숙함이 있었기에 이런 오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나이 또래들의 이상적인 우정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Big Canoe는 North Georgia mountain에 있는 ‘Mountain Community’의 이름이다. Golf Course를 비롯해서 vacation home들이 높고 깊은 산 속에 ‘즐비’한 이곳, ‘자연적인지 인공적인지’는 잘 몰라도 경치가 기가 막힌 곳이다. 특히 가을 이맘때의 ‘단풍의 풍경’은 일품인데 지금은 단풍잎들이 거의 다 떨어진 후였다. 그러니까 peak season이 지난 것이다. 거의 10년 전에 이 그룹이 한번 같이 이곳에 놀러 간 적이 있어서 대강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Y형 부부가 이곳에 주위 경관이 기가 막힌 property를 지난 올해 초에 아예 사버린 것이다.

거의 3000 feet가 넘는 Georgia에서 4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집, 차도가 잘 되어있었지만 급경사, 급커브 등등이 편안하게 drive할 곳은 아니었다. Y형의 건강상 문제로 공기가 좋은 이곳을 ‘준비’했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차갑고 해맑은’  주변 공기는 아마도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이 없을 듯 했다. 하지만 ‘건강상’ 문제가 100% 해결이 된 지금은 vacation home으로 쓰일 듯한 이곳, 혼자 쓰기에는 너무 커서 group이 모여 party같은 것을 하면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지난 주에는 West Bank park엘 갔고 한 주 뒤에는 Big Canoe, 올해는 비록 peak season이 다 지나갔지만 야외로 나갈 기회를 자주 주시는 것을 보니… 그 이유가 어찌 짐작이 가지 않겠는가?

 

 

Three Stooges.. 오래 전의 흑백영상이나 영화의 제목이 연상되는 ‘세 명의 바보 멍청이들’.. 지난 2+ 개월 동안 문득문득 3명 바보들이 보여 주었던 ‘해괴’한 행동을 생각하며 세상에는 참 ‘미친 바보’들이 적지 않게 많구나.. 하는 슬픈 생각을 했다. 이 blog의 제목이 three stooges가 아니고 three onna stooges라면 onna라 함은 무엇인가 하면, (일본어) 여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3명의 ‘바보 여자’들이다. 아예 일본말로 ‘혼또니, 바카 온나’라고 했어도 되겠지만 구체적으로 ‘광대 clown에 가까운 바보’들을 뜻하고 싶어서 Stooges로 정했다.

 

이 세 명은 두 달 이상 전에 벌어졌던 ‘레지오 미친년 난동사건’ 의 주연(주범 主犯)  배우를 포함한 들러리 조연 助演들까지 3명을 말한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나는 참 많은 인생공부를 했고 나아가 신앙적 측면으로 보는 훈련도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이 전혀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 나를 제일 슬프게 한 것은 나의 생애 처음으로 바로 가까이에서 ‘악’의 존재를 느끼게 된 사실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깊숙한 곳에는 ‘선’이라는 ‘핵 核의 중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아닌 case를 70평생 처음으로 코 앞에서 목격을 한 것이다.

 

그것도 충분히 나를 경악하게 했지만 내가 더욱 놀란 것은 그런 사건에서 보여준 다른 2명 여자들의 예상치 못한 해괴한 행동이다. 한때 ‘모범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살 만큼 산 ‘세월의 지혜가 넘쳐야 할’ 사람, 솔직히 아직도 그들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다. Bizarre, weird, unreasonable..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을 못하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일까? 세상은 이런 것인가? 이렇게 unreasonable한 세상인가? 교회 안이 이렇다면 세속적인 세상은 과연 어는 정도일까? 선과 악의 존재는 분명히 구체적으로 존재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정말 슬픈 노릇이다.

 

¶  ‘Unending Coffee’ Morning: Instant ‘stick’ coffee  에 이어서 supersize Don Pablo gourmet ground coffee.. 나의 머리 속은 벌써 바삐 흘러가는 ‘혈관 속의 움직임’는 느낀다. 이것의 바로 joy of morning caffeine 일 것이다. ‘오래~ 전’ 직장생활 할 시절, 출근해서 그곳의 아침모습을 그리며 회상을 하기도 한다. 참.. 무언가.. ‘세상은 움직임이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시절들이었다.

Early Morning Coffee의 마력과 매력인 이런 추억과 의미와 깊은 연관이 있고 그것이 ‘중, 노년’ 에만 가능한 즐거움이다. 이것은 그 이전 시절에서는 ‘절대로 100%’ 느낄 수 없는 세월 흐름의 마력 魔力 이다. 오늘 이른 아침은 absolutely, positively perfect coffee experience를 주기에 ‘알맞은 추위’까지 선물로 주어졌다. 무언가 3박자가 맞는다고 나 할까?

이렇게 조금은 느긋한 마음을 갖게 한 다른 이유는.. 예상치 않게 여유를 갖게 한 시간적 bonus, 아침 ‘평일, 매일미사’를 거르게 되었기 때문[she doesn’t feel well] 이다. 5년이 훨씬 넘어가는, 이제는 완전히 습관이 된 이 9시  매일미사는 이제 우리 둘 psyche의 일부가 되었지만 이렇게 가끔 경험하는 exception의 즐거움이 이렇게 오래 ‘매일미사’를 지탱시켜주는 비밀 임도 우리는 잘 안다. 물론 exception은 가끔 있는 rule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exception 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  ‘Senior’ Fall  day trip: How could it be on..?: why, how come, 도대체, 도~시데.. 란 말을 되풀이한다. Mother Nature란 것, 대부분 겸허한 심정으로 받아드리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고 할까? 아마도 나에게 100% 직접 상관이 되는 것이라 그랬을 것이고 사람은 이렇게 ‘약한 이기적 동물’이다. 몇 주전부터 계획되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사회복지분과’ 주최의 ‘가을 경로 야유회’가 바로 그것이다. 가을이라는 말은 분명히 ‘단풍 관광’과 연관이 되었을 것이고 ‘경로’는 말 그대로 ‘어르신들을 모신다’는 뜻인데.. 야유회라 하지만 이것은 bus를 rent해서 Atlanta Metro를 완전히 떠나서 State Park로 가는 당일코스 여행이었다. 그것이 ‘갑자기’ cancel이 되었다. 범인은 역시 Mother Nature였다. 그렇게 날씨가 좋다가 왜 하필이면 그날 하룻동안만 ‘차가운 비가 옴’으로 예보가 나온 것일까? Timing이 너무나 절묘해서.. 이것도 혹시 무슨 숨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다.

‘경로 敬老’ 란 말이 우리에게 연관이 되는 것을 조금 피하고 싶지만 실제로 우리도 ‘경로’를 받으러 참가신청을 했는데… ‘지난 2개월 동안 우리를 괴롭혀 온 악마’의 그림자를 깨끗이 잊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과장 자매님’의 말씀에 동의해서 모처럼 하루를 ‘어르신들’과 어울리는 것을 상상했는데 이렇게 된 것이다. 그래, 이렇게 된 것도 무슨 높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를 하며, 100여명 어르신들을 ‘babysitting’ 하려 불철주야 준비를 했을 그 ‘억척 volunteer’ 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  목요회 월례모임:  어제 밤에는 제2차 목요회 모임이 ‘한일관’에서 있었다. 지난 달 마지막 목요일에 모인 것을 ‘기념’해서 내가 목요회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생각하니 그런대로 멋진 이름이 아닌가? 1990년 5월에 연세대 동문 이WS 형제가 ‘처음 집’으로 이사 갈 때 모였었던 3명의 남자가 거의 30년 뒤에 다시 이렇게 모였고 계속 모인다는 사실은 정말 재미있기만 하다.

목요일날 밤에 모이는 것이 조금 색다르지만 그런대로 이점이 있다. 모두들 목요일날 밤은 그런대로 바쁘지 않다는 사실, 가족이나 가정에 큰 부담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low-key 로 만나는 것, 나는 이 그룹이 아주 오래 가리라는 생각도 해 본다. 2시간 정도 먹고 얘기하는 것, 이번에는 1990년대를 중심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열심히들 살았겠지만 얼마나 그 세월들이 행복했는지는 서로가 추측할 할 수 밖에 없었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더 많은 삶에 대한 고백을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다음 달 마지막 목요일을 나는 Thanksgiving Day인 줄 알고 부득이 옮겨야 하는가 우려했지만 다행히도 그날은 그 휴일의 다음 주였다. 이것도 우리 모임 장래의 청신호 같은 느낌을 주어서 흐뭇하기만 했다.

 

돼지띠 동갑내기 ‘프카’ (Francesca) 자매님이 ‘약속을 잊지 않고’ 책 한 권을 내게 슬며시 건네주었다. 비교적 근간 근간 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쾌한 장정과 비교적 ‘젊은’ 묵상, 명상이 간결한 수필로 엮어진 책, 책의 제목이 바로 ‘그래, 사는 거다!’ 라는 조금은 low-key지만 대담히 선언적인 제목이다. 저자는 ‘전원’ 이라는 천주교사제 인데 가톨릭 세례명이 조금은 흔치 않은 예수님의 12사도 12 disciples  중의 하나인  ‘바르톨로메오, Bartholomew, Bartholomaeus‘ 다.  1995년에 서울 대교구에서 사제로 서품 된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40대 정도의 ‘비교적 젊은 사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렇게 추측에 그치는 것, 사실은 내심 생각한다… 분명히 googling 한 번 정도면 ‘얼굴, 근황,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소리’ 등이 꽤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나는 NO, HELL NO! 인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나 마찬 가지로 minimum, safe distance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니까…

이 책이 나의 손까지 ‘굴러들어온’ 사연은, 지난 여름에 시작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 새로 생긴 ‘영적독서클럽’의 첫 번째 ‘선정 選定 도서’ 였는데 내가 늦게 그곳엘 갔던 join 관계로 이미 모두들 읽고 와서 의견을 나누고 있어서 적지 않게 당황했었다.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지 확실치는 않았지만 어떤 신부의 고백록 같은 정도로 추측은 했었고 당시에 자매님들이 꽤 있었기에 아마도 여성취향의 책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이제 그 의문들이 한꺼번에 풀리게 된 것이다. 아주 경량급 light-weight 하고 짧은 chapter들, 이것이야 말로 ‘필사’하며 읽기에 거의 완전한 책이 아닌가?

지금까지 ‘필사’로 읽어 본 것들로 보아, 사실 은근히 호감이 가는 책으로 생각된다. 그 중에서 나에게 생각, 묵상거리를 준 글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C.S.Lewis character in Shadlowlands, BBC TV drama

첫 부분에 나오는 1993년 영국 영화 Shadowlands 를 통해서 본 ‘이론, 영성적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은 나에게 조금 익숙한 것이었다. 나는 작년에 1985년 Television film으로 나온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고 지난 몇 년간 C. S. Lewis에 심취해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론적, 영성적 ‘추상적’인 사랑에서 ‘인간, 이성’에 대한 사랑을 너무 늦게 발견한 Lewis, 그는 진정한 사랑을 배운 셈이다. 그것도 고통스러운(연인, 아내와 영원히 이별하는) 쪽으로… 결국 Lewis는 고통 속에서 이론적, 영성적으로 체득한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는 ‘위대한 영성, 문필가’로 남게 된 것은 아닐까?

성당 사목을 하면서 사람관계에 대한 저자의 괴로운 경험은 나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의견이 다른 것으로 원수 관계로 치닫는 요새 세상에서 더욱 이해가 가는 것이다. 최근 2개월간의 나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도 나는 안다. 저자의 결론이 나에게는 아직도 실천이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라는 것,  ‘상상’하는 것은 아마도 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그 이상은 ‘무리,무리!’ 라는 결론이고 상책은 ‘100% 잊는 것’ 이다.

‘욕망에 대하여’, 불륜에서 벗어나 제자리를 찾은 어떤 주부에 대한 이야기, 탕자의 비유로 ‘우리는 결국 모두 죄인’이고 죄인이 될 가능성이 항상 있는 ‘불완전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글이다. 그렇다, 항상 ‘죄인이 될 악마의 유혹’은 실재한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도 우리는 조금 나은 자세를 가진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면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을 유지하는 첩경일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필사로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돼지띠 ‘프카’ 자매님, 나는 언제나 먼저 좋은 책을 사거나 구해서 빌려 드릴 것인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필사본 post’는  이곳에 있음.

 

The Shining

오늘 아침 성당 입구에서 그 ‘devilish face‘ 를 먼 곳에서 의식하고 성당 주보도 마다하고 그 ‘회벽 칠한듯한 얼굴’을 비웃으며 이미 묵주기도를 시작한 성당 안으로 곧바로 들어갔다. 성수를 찍으며 성스러운 이곳에서 이것이 도대체 무슨 짓인가 한숨을 지었다. 이런 해괴한 짓을 언제까지 하여야 하나.. 답답하기도 했지만 별 도리가 없다는 결론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나는 ‘회개 없는 악행’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이고, 아무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그런 원수도 나중에 회개를 한 후에나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0.0001%라도 생긴다. 하지만 이 원수는 전혀 아니다. 아니.. 더 나아가 이 원수가 바로 nexus of evils 이라는 끔찍한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제까지 이 인간의 과거에 대해서 들은 것만 해도, 모든 문제(폭행, 협박, 이간, 분열, 조직 해산과 붕괴) 의 중심에는 이 인간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성당에 나와서 ‘성모님의 기도’를 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우리는 이제까지 그런 것들을 모르고 살았는지..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유일한 희망은 역시 ‘성모님의 손길’이다. 현재로써는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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