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아틀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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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5주일 일요일을 맞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 지난 일요일은 유나와 Ozzie가 우리 집에서 봐주고 있어서 외출을 못했고, 따라서 주일 미사를 빠져야만 했고, 그래서 그런지 어쩌면 그렇게 서먹서먹하게 느껴질까? 지난 2010년대 우리의 영적, 사회적 고향 같았던 우리 도라빌 순교자성당이 이런 저런 이유로 점점 멀어지는 듯한 걱정을 하며 산지도 꽤 되는가? 이런 걱정은 과연 기우일까? Pandemic 이전부터 서서히 세대교체가 진행되는 듯한 우리의 이 본당, 이제는 전혀 본 적이 없는 교유들의 모습이 대부분인 듯, 그러니 그 동안 활동 중심이었던 교우집단이 중심권에서 밀려난 것인가? 쓸쓸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2주일 만에 보는 아가다 자매모녀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J 베로니카 자매는 허리 디스크로 미사 중에 무릎을 꿇지도 못하더니 결국 오늘은 아프다고 참석을 못해서 아쉽기만 했다. 그 자매가 있어야 우리와 색다른 화제들이 많았을 터인데..

 

오늘 드디어 한동안 시간과 머리를 쓰게 했던 “mickey mouse” project: hand vacuum wall holder, 오늘 완성이 되었다. 이것은 design이construction보다 훨씬 머리와 시간을 쓰게 했던 것이었다. 일단 완성을 시키고 냉장고 옆 나무 벽에 붙여놓은 모습이 아주 실용적으로 보인다. 이제는 수시로 편하게 fully-charged가 된 상태의 hand vacuum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나머지 작은 목공 일들도 빨리 끝을 보게 되기를 기대하지만…

 

Redeeming the Time, Bishop Barron의 신간서적이 오늘 도착했다. 책의 외관상의 모습도 멋지고 내용도 기대가 된다. 짧은 단원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이것으로 나는 얼마나 영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기대가 크고 두고두고 이 책이 나의 점점 험악해지는 말투, 생각을 잔잔하게 안정을 시켜 주면 얼마나 좋을까?  궁극적으로 나는 초월적인 마음의 평화를 구한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이제는 제법 비가 짧지만 자주 내리는 모습을 본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더 많이 내려서 우리 집 앞쪽 잔디에 생명수를 조금만 더 주었으면… 하는 것, 그쪽의 잔디에 너무나 미안하구나…  하지만 오늘 날씨의 주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 것, 최고 83도 정도라니… 이것이 정말 사실인가? 물론 잔뜩 흐리고 저녁 무렵에는 5분 정도 잔잔히 비까지 내리고…  아쉬운 것은… 역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내렸으면… 그래도, 감사합니다.

오늘은 모처럼 오후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원한 비가 한차례 내렸다. 하지만 흡족한 양이 아니었던 것이 그렇게 아쉽기만 하다. 일단 약간의 해갈은 되었을지언정 우리 집 앞쪽의 죽어가는 잔디에는 역부족인 것이다. 이것이 올해 여름의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인가… 아니다… 다른 곳에 비해서 그런대로 견딜만한 정상에 가까운 것에 감사해야지…

 

오랜만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으로 연도와 장례미사엘 다녀왔다. 날씨가 완전히 더위주의보가 나온 날이어서 검은 양복이 불편하긴 했다. 하지만 ‘연옥의 영혼’을 위한 외출이라는 자부심이 있기에 하나도 귀찮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문제는 오늘따라 성당의 a/c가 고장이 났다는 웃기는 사실, 어떻게 또 이런 일이..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낯익은 모습의 85세 김마리오 형제님, 중앙대약대졸업, 약사, 아르헨티나 이민, 그곳에서 레지오 단장, 연령회장등을 역임한 것으로 대강 어떤 성품인지 짐작이 되고, 아드님의 짧지만 감동적인 조사도 아버님이 어떤 착하고 남을 돕는 따뜻한 사람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이 형제님은 평생 몸과 마음이 건강하신 분으로 사신 것, 지병이 없이 입원 이후 며칠 만에 선종하는 것, 주위에 큰 부담도 주지 않고.. 우리들이 바라는 것 아니었던가?  비교적 조문객들이 꽤 많이 참석한 오늘 장례식중에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자신의 장례식 모습을 떠올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맑은 머리로 산뜻하게 일어난 편안한 아침, Almost stress-free day No.2!  아무리 날씨가 code orange라고 하지만 나의 머리 속은 상쾌한 것으로 가득 찬 느낌, 어제부터 시작된 이런 조금 이상한 날, 언제까지 가려나~ 하지만 상관없다, 현재가 제일 중요한 것이니까. 책, ‘물이 본 세상‘에서 힌트를 받으며, 조용히 감사하며 기도하는 자세로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Donald 개XX’ 냄새에 과잉반응을 하는 나의 모습, 이상한가? 아니다, 내가 정상임은 확실하니까.. 그 냄새를 풍기는 각종 정치군상들, 이곳 local은 내주 화요일이 지나야 결말이 나니, 나는 그것이 신경이 쓰이고 stress의 잠재적 원인으로 당분간 나를 괴롭힐지도 모른다. 그저 hope will triumph 를 잊지 말자. 그 중에서도 Pa의 senate race가 나의 촉각을 곤두세운다. 개XX의 냄새를 흠뻑 받은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또 다른 개XX [Turkish fake doctor, Oz] 의 운명이 아직도 결말이 나지를 않았다니, 안타깝기만 한다.

Georgia EC, 아틀란타 성체대회 Eucharistic Congress‘ BACK! 세상이 변한 것을 2년 만에 다시 실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좋던 나쁘던 꿈같은 2년의 세월의 끝에 만 명이 넘는 군중이 모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거의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틀란타 대교구의 용감한 대 결단의 결과가 아닐까? 2년 전에 새로 부임하신 대주교님의 첫 거대한 교구 행사라서 그분의 역량이 어떻게 드러날지 궁금하다. 그 전까지 이 행사를 거구의 위엄으로 주도하던 ‘흑인’ Archbishop Wilton Gregory, 당시의 대주교님, 우리의 희망과 예상대로 추기경이 되고 미국 천주교 심장부인 워싱턴 DC 대교구로 가신 것도 Pandemic 직전이었다. 이 Wilton 미국 첫 흑인 추기경, 나와 동갑으로 친근감도 가지만 혹시 바티칸과 계속 좋은 ‘최고 인연’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지… 상상도 해본다. 올해 성체대회, 현재로서는 물론 참가하려고 하는데, 우리와 같이 갈수 있는 사람들에 관심이 간다. 혹시 안나, 아가다 모녀자매, 그리고 장베로니카 자매와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을 듯한데…  과연 뜻대로 될지…
오늘은 Holy Family 성당 미사도 갔기에 정말 유쾌한 나머지 하루를 예상했었지만 너무나 stress에서 벗어난 것을 즐기려다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거의 휴일처럼 보낸 셈인데… 조금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불만은 없다. 이렇게 쉬는 날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그만 일이라면, garage의 창문을 다시 열고 box fan을 임시로 설치한 것, 그래서 오늘 이상기온, code Orange 90도가 넘는 날을 시작으로 본격적 여름에 대비를 한 셈이다. 아~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일단 찾아 왔으니…

 

Roe versus Wade, 이제까지 unthinkable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온다는 뉴스를 보고, 정확하게 mixed feeling의 극치를 맛본다. 1973년 이곳에 왔던 그 해 초에 이것이 헌법의 한 조항이 되었던 것, 미국 여성운동의 절정을 이루기도 했던 이것, 낙태법… 50여 년 동안 나는 이것은 나에게 무엇이었던가? 솔직히 한번도 깊이 심사숙고 해본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나에게 상관없다’라는 자세로.. 1975년 나의 부끄러운 escapade 경험까지 연관이 되어서 잊고 싶기도 했다. 그저 막연히 여성인권을 조금 더 보호한다는 차원 정도였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가 되면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하지만  진정한 종교, 특히 천주교 신자의 의미를 생각하며 ‘생명의 의미’로 발전하고, 결국은 교회가 고수하는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나도 pro-life 라고 자처하게 되었다. 그것이 정치계와 연관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이런 big news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최근의 ‘DONALD 개XX’들 덕분에 조금 냉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생명 경외’의 기본적인 자세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역시  detail에 있는 것이다.

 

Erwin Schrödinger의 묘지석

Erwin Schrödinger: Schrödinger Equation, Quantum Physics에 한때 심취하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일명 probability wave equation이라던가? 간단히 말해서 classical physics에서 Newton의 2nd equation이 소립자 세계인 quantum level에서는 이 wave equation으로 바뀌는 것이다. 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해서 모든 입자들의 움직임은 probability wave를 따른다는 것. 크기가 작아지면 일상적인 세상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것,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 거꾸로 크기가 너무 커지는 초우주 level로 바뀌면 Einstein의 general relativity theory가 모든 것을 설명하는… 그러니까 인간적 눈으로 보는 것은 궁극적인 실재, 현실의 극히 일부에 한정되는 것, 이것을 실감하면 모든 것에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보고 느끼고 듣고… 이런 것들이 세상만사의 진실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 아닐까?

이 뉴턴의 고전물리에 맞먹는 새로운 ‘확율파동방정식’을 유도한 Schrödinger, 그는 물론 이 방정식으로 일약 1930년대 초 노벨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Quantum Physics의 거두, 거성으로 길이길이 그 이름이 남는다.

그는 일단 물리학의 거성이지만 다른 물리학 거성을 초월하는 독특한 실재관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철학과 신비주의, 종교, 생명론 등에 첨예한 관심을 가진 ‘가슴이 활짝 열린’ 천재라고나 할까. 그의 강의록 ‘What is Life‘에서 그는 물리학과 생명의 접근을 논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다 좋은데… 알고 보니 그는 간단히 넘어갈 수 없는 개인적인 결함의 소유자였다. 그것도 지나친 것. 이럴 때 그의 모든 업적들은 어떻게 평가 절하가 되어야 할 것인가? 요새 말로 cancel culture가 적용되어야 할 것은 아닐까?

그는 한마디로 pedophile, 그러니까 어린 소녀들과 성관계를 즐겼던 것, 지금 같으면 100년 징역형은 아닐까? 그것도 모자라서, 축첩도 모자라서 아예 집에 본부인과 첩이 함께 살았고, 그 부인은 남편 동료와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고 하니…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기막힌 사실은 이런 해괴한 삶이 그의 과학연구에 커다란 에너지를 주었다는 것. 이제 이 ‘인간’의 ‘파동방정식’을 흠모할 때마다 뒤에 보이는 각종 ‘성관계 장면’이 떠오른다면 어찌할 것인가? 시대마다 독특한 성 문화가 있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예전에는 바람 피우고 축첩을 하고 아이들과 성관계를 맺고 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관대하게 허용이 되었던 듯한 사실이고, 대신 그 당시에는 동성문화는 완전히 범법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거의 반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언어’를 만든 이 천재도 역시 도덕적 시험에서는 완전한 죄인인 것이다. 이런 사실이 서서히 들어나면서 그의 이름을 붙인 각종 장소에서 cancel culture의 영향을 받아 하나 둘 씩 사라지게  되었으니…

그의 고향인 Vienna, Austria 에 있는 그와 wife의 묘소, 그곳에 그의 wave equation이 자랑스럽게 전시가 되고…  그의 또 다른 바람둥이 wife가 제3의 mistress와 합장이 안 된 것, 다행인가 아니면? 되었다면 유례없는 Three’s Company 묘소가 되지 않았을까?

본격적으로 어제 저녁은  a/c 에어컨 계절의 서막을 장식하였고 덕분에 창문을 여닫는 수고를 몇 개월간 잊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했지만, 참 그것은 한마디로 나의 우둔한 생각이 아닌가? 무엇을 위해서 몇$$를 절약하려고… 조금 더 크게 생각하자. 너무나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자… 순리대로 살고, 조금은 나이에 맞는 편안함과 평안함을 추구하자.
지난 밤에는 완전히 열대성 기후를 보는 듯한 ‘습기 찬 대기에 뿌린 약간의 비’ 소리를 들었고, 아~ 이제 서서히 여름이 오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비록 적은 양이지만 축축한 땅의 모습도 반갑고, 다시 출현하는 모기들, 끈끈함 들, 시원한 오후의 소낙비와 옷에 신경 안 쓰는 편안한 낮잠… 등등 모든 몸을 편히 펼 수 있는 모습이 반갑다.  하지만 평년적인 5월은 이것보다는 조금은 싸늘하고 건조한 것, 얼마나 며칠이나 계속될 것인가?

몇 달 만에 체중계에 올라 서 보았다. 평소 체중은 145 파운드를 오랜 세월 유지하고 있었다가 얼마 전 140으로 갑자기 줄었었다.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거의 병적인 식욕감퇴로 고생을 하던 때였기에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이제부터는 140이 정상체중으로 생각하기로 했는데… 다시 오래 전의 것으로 환원을 한 것, 좋은 것인가 아니면 별로? 나의 키의 평균은 사실 140 정도일 듯도 하지만 육체적인 노동이나 운동을 하려면 어느 정도 초과된 체중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현재 나는 아주 활동적인 생활을 하기에 적당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의 식생활에도 큰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옆집 Dave 집에서 아침부터 요란한 중장비 소리가 나서 보니, 나무를 자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길가 쪽으로 아주 무성하게 자란 삼림을 연상케 하는 키다리 나무들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런 자연의 모습이 잘려지고 사라지는 것은 조금 슬픈 것 아닐까? 하지만 너무 집 가까이에 서 있는 키다리 나무는 위험한 것이기에 할 수가 없다. 처음에 아틀란타로 이사오면서 놀란 것은 역시 ‘울창한 수목, 삼림’ 그것도 주택과 섞여 있는 것은 장관에 속했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로 키다리 소나무들이 송림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을 방문했던 중앙중고 동창생 호룡이가 우리 집 backyard에서  ‘송림욕’을 한다고 할 때 나도 실감을 했었다. 그 당시 backyard는 정말 원시림 송림 그 자체였으니까..지난 30여 년 동안 개발이 가속되면서 모습도 따라 변했지만 그래도 울창한 모습은 인상적이다. 미국의 어느 대도시를 가도 하늘에서 본 모습이 이렇게 ‘시골’처럼 보이는 곳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을 듯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개발’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당히 균형을 지킨다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IoT/MQTT: IoT system에 흥미를 느낀 지도 한참이나 되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무언가 재미있는 것이 나를 기다린다’ 정도가 나의 자세인 것이다. 이런 상태를 나는 상당히 즐기는 편이 아니던가? 실제로 손을 대기 전의 그런 ‘즐거움에 대한 기대’. 이러다가 나의 인생을 수없이 ‘시간낭비’의 피해를 보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나의 본성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의 매력은 시작하는데 $$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이유도 그렇고, 실용적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제일 구미가 당기는 것은 ‘머리가 돌아가는 한’ 이것으로 여생을 바쁘게 보낼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잡초들로 우거진 이 fence부분, 연숙이 깨끗이 정리를 한 후에 드디어 paint가 칠해지고, 이후에 screen 이 복구될 것이다… 보기에 훨씬 정돈된 모습이 되고 있다.

저녁 무렵에 잠시 내린 따뜻한 비, 이후에 backyard의 모습은 실로 봄의 신록  그 자체다. 살아있는 느낌, 깨끗한 모습, 공기조차 꽃가루가 밀려난 것, 역시 비의 도움이었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내려주는 비에게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인지… 성모님, 감사합니다…

지난 해 첫추위가 쳐들어오기 직전 모두들 겨울채비 차 집안으로 들어왔던 정든 화분들이 올 추위의 끝자락에 왔다는 확신이 들던 오늘 모두들 신선한 대기의 맛을 보려고 밖으로 옮겨졌다. 그 동안 실내의 답답한 공기와 간접 햇볕으로 얼마나 지루하고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면 조금 불쌍하기도… 인간들과 더불어 살면서 또한 얼마나 우리가 모르는 피해를 보았을까 생각도 한다.

 

성목요일, 오늘부터 성삼일 Triduum의 시작이다. 지난 10여 년간 나에게는 일년 중 가장 귀중하고 중요한 기간이 되었다. 지난 2년간 Pandemic 의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올해는 거의 정상으로 돌아온 상태에서 보내게 되었다.  성삼일 첫날 저녁미사, 세족례 미사에 참례를 했다. 모두 얼굴에 마스크를 쓴 것을 빼놓고는 완전히 정상적인 미사 광경을 목격하였다.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도 정말 오랜만에 목격한 것이라서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 그리고 그 동안 못 보았던  낯익은 얼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아련한 향수까지 느끼기도 한 오늘 미사, 작년에는 없었던 세족례 광경을 보았고, 끝나고 철야 수난감실 성체조배가 준비되는 것도 보고 왔다. 나는 솔직히 성체조배를 조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누구나 복잡한 고민과 사정이 있다고 믿으면 그만이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야릇하게 내려 앉는 기분, 느낌의 유혹이 오늘 아침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정시’가 아닌 늦디 늦은 아침 9시에 일어나게 되었지만, 이렇게 늦게 일어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제 저녁보다는 훨씬 머리가 맑아지는 듯하다.  악령, 악신의 유혹을 물리치려 화살기도에 의지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훨씬 가벼운 느낌이니까 우선은 됐다.
무엇이 나를 갑자기 이렇게 했는지 출발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보긴 했지만 kitchen TV의 YouTube을 통해서 Ukraine 이 ‘고전’하는 뉴스가 나에게 희망을 조금 앗아갔다고 할 것인가?  그것과 더불어 하루를 낭비시킨 Atlantic article , 분명히 나는 지난 10년 간의 ‘미국 정치 사회적 고통’의 실체를 조금 알려고 한 것이었지만 이것도 나를 우울하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것은 아마도 social media, Putin, Trump ‘개XX’와  연관이 되는 나의 선입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갑자기 ‘희망의 빛’이 꺼져가는 착각에 빠진 것, 이것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일 듯하다. 문제는 왜 내가 이렇게 신경과민에서 허덕이냐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절대자’를 의지하는 노력을 하며 산다고 자부를 하는데… 왜? 이렇게 자신과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제 밤에 생각한 것 중에는 부활절이 지나가기 전까지 모든 ‘잡스러운 뉴스 매체’를 100% 끊어 버린다는 결심이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처방책 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잡스러운 뉴스 매체들… 요새 분명히 나는 이 ‘유혹’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기다리던 것들 2가지가 예정대로 배달이 되었다. 이제까지 본 것 중에 제일 가격이 저렴한 것, Arduino Uno clone kit와 Sonoff wifi power switch. 현재 가지고 있는 Arduino는 20년 역사와 그전통을 자랑하는 Made in Italy original Duevillanove 인데 LED 하나가 이미 수명을 다했고, 사실상 이제 이것은 retire를 해도 될 듯하다.  IoT 중의 대표적인 제품이 Sonoff basic인데 이것으로 각가지 기기를 remote [power] control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Palm Sunday, 성지수난주일, 성주간이 드디어 오늘부터 시작되는가.  역시 머리 속은 … 아~ 나는 사순절을 제대로 충실히 보내지 못했다~ 는 자괴감과 후회로 시작이 된다. 매년 그랬을 것이지만 올해는 조금 더 그런 것이, 판공성사를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 동안 그렇게 가깝게 느껴졌던 본당 신부님들이 최근 신임 신부님 이후로 갑자기 멀어진 듯한 섭섭함도 나를 조금 우울하게 한다. 그래, 여기서 stop! 지나간 때보다는 오늘부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되는 거야.
아침 8시반 Palm Sunday의 미사는 물론 교중미사보다는 에너지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성지가지를 모두 들고 제대로 미사를 한 것, 이렇게 2022년의 성주간이 시작되는 거다.  신부님 강론도 나에게는 특별히 다가왔는데, 역시 요즈음 고통으로 다가오고 느껴지는 ‘작은 걱정, 공포, 근심, 우울’ 을 예수님이 개인적으로 그 고통을 같이 하신다는 것, 대부분 상투적으로 들리기도 했던 그것이 오늘은 가슴 깊이 다가온 것이다. 이것이 2022년 성주간의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 주일에 이이서 오늘도 우리들 소그룹 자매님 4명과 나, 5명의 하얀풍차 환담모임이 계속되었다. 장베로니카 자매가 합세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주였는데, 오늘도 용케 합류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차갑게 느껴질 때가 많았고, 심지어 거부감까지 느낄 정도였던 이 자매, 가까이서 이야기를 해 보니 혼란스럽다. 어쩌면 그렇게 다른 모습, 다정함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한마디로 내가 너무 빨리 단죄를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것, 즐겁고 유쾌한 놀람이었지만 그것에 못지않은 것이 있었다. 지난 주부터 아가다 자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듯한, 아니 거의 라자로처럼 죽음에서 일어난 듯한 행동거지… 나는 아직도 놀라고 있다. 치매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지난 번이 이어 오늘도 완전히 정상적, 다정한 모습의 아가다 자매님의 모습… 혼란스럽다. 어떤 일이 있었기에… 혹시 우리 둘이서 기도를 한 것도 한몫? 정말 세상은 이래서 살 맛이 나는가?

어제는 나의 몸이 실내기온에 적응을 잘 못했던 듯하다. 아니, 나의 잘못일까? 추위를 느끼면 옷을 더 입으면 되는데, 어떻게 고집을 부리며 버티었을까? 그 정도로 나는 어제 하루 종일 추웠다. 실내가 그렇게 싸늘하게 느껴졌던 것도 조금 이상할 정도였다. 아마도 나의 몸 컨디션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아예 ‘완전무장’을 하고 내려와, 따뜻함을 만끽하고 있다. 이것이 초봄의 ‘안 보이는’ 추위의 모습이던가? 게다가 오늘은  ‘강풍, 화재주의보’까지 있어서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비록 강풍이 예상되는 날이지만 대신 하늘은 정말 ‘영광스럽게 찬란한’ 그런 날 이런 날씨에는 밖에서 일을 한 후  땀이 나더라도 몇 초도 안 되어서 말라버린다. 별로 밖에서 일하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찬란한 하늘에 이끌려 무엇에 홀린 듯이 나가보니.. 아하~ 어제 발견했던 garage앞 쪽의 low fence 에서 떨어져나간 cross beam 생각에, 우선 그것을 고치고 나니 또 미완성 작업, back porch 의 gutter cleanup job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두 가지 작업은 날씨의 도움으로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강풍이 부는 날 걷는 것을 조금 망설였지만 역시 새파란 하늘의 유혹에 이끌려 산책까지 한 오늘은 그야말로 ‘바람이 가득 찬 하늘’의 날이 되었다.

 

벌써 토요일…  어제 밤에 이재영과 주고받은 카톡 메시지를 보았다. 이 친구의 문체는 나와 그렇게 ‘화학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같은 내용으로 썼더라도 그의 것과 비슷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금은 분석적, 회의적, 관망적인 자세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앙생활의 화두는 역시 조심스러운 것이라서 나의 생각은 잘 전달되지 않은 듯한 반응이라 조금은 실망했지만 이런 시도는 솔직히 말해서 나에게도 생소한 것이라서 시간이 걸린다. 이런 기회를 Bishop Barron의 멋진 ‘지식에 근거를 둔 이성’ 에다가 최근[1950년 이후, 물리학] 의 과학적 발견의 도움을 받으면 이런 도전도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을지도…

중앙고 57회 카톡 카페, 그리 많지 않은 regular들의 ‘힘찬, 시끄러운 토론’은 사실 익숙한 모습이긴 하지만 ‘설전의 내용’의 대부분은 내가 자신 있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짐작은 하지만..   현재까지는 99% 정치적인 것들이고 화제도 거의 한가지, ‘문재인’이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가는 인물에 관한 것이다.  사상, 이념적인 것을 빼고는 그렇게 심각한 issue는 없는 듯 한데, 아마도 우리 그룹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이념적 갈등’이기에 다른 것들은 큰 문제가 안 되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지정학, 역사적인 배경으로 힘든 도전이지만, 만약 이념이란 것이 등식에서 빠진다면 어쩔 것인가?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으면 사실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비를 잃게 한 동족상잔의 후유증을 겪은 사람으로서 한마디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상, 이념적 갈등은 사실 나도 이곳에 살면서 피부로 느꼈기에 실감한 것이, 가까이 거의 친구로 지내오던 우리보다 10년은 젊은 ‘전 사장’, 근래의 고국정치에 대한 의견이 우리들과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을 알고 우리들 모두 너무나 놀랐던 기억.. 10년 정도 젊으면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들은 그에게 ‘지나간 퇴보한 고루한 꼰대’의 수준으로 보인 듯하다. 쉽게 말하면 우리 세대들이 ‘모두 사라져야’ 대한민국이 새로운 나라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의 세대들이 그들을 포함한 우리 자식세대들이 아닌가? 아마도 문재인이란 인물은 이런 거대한 세대적 변화의 산물이 아닌지?

나는 어떤가? 대한민국 최근 정치역사의 지식이 모두 결여된 나로서 할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몇 가지 기본은 있다. 우선 우리 가족을 포함한 동족을 파멸로 몰아간 공산당, 김일성, 빨갱이, 그 세습 후손들, 그 이후의 정권들은 모두 역사의 심판대에 서서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나의 신앙적 믿음이 되었다. 이것이 시작인 것이다. 그 이외의 갖가지 문제들, 나의 머리로는 분석, 해결할 자신이 없지만, 마지막으로 최소한 Catholic Social Justice의 잣대에 의지를 한다. 이것은 충분히 보편적인 가치, 세계관에 의거한 것이다. 이 잣대에서 문제가 있으면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문재인이란 인물, 이 잣대의 기준으로 보면 과연  어떤 문제가 있는가?

 

Donald 개XX가 Atlanta에 왔다고? 피하고 피해봤자 이XX의 뉴스는 왜 이렇게 우리를 따라오는가? 하기야 이XX는 뉴스에 나와야 가느다란 목숨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해는 간다만..  불쌍하다 못해서 ‘하느님 좀 봐주세요’라는 한숨밖에 안 나온다. 이 쓰레기를 이용해서 득표를 하겠다는 더욱 기막힌 쓰레기급 정치인이 이곳에 산다는 것조차 믿을 수가 없다. 하기야 쓰레기는 쓰레기 속에서 살아야 하니 이해는 간다만. 이 쓰레기를 재선시키려 ‘Biden Crime Family’를 언급한1 현 ‘거의 미친 보수’ black supreme justice Thomas의 ‘뚱보 백인 마누라’의 text message의 내용은 아무리 생각해도 세기적인 happening중의 하나다. 진짜 crime family는 바로 Donald 개XX 가족들인데… 이런 마누라와 함께 사는 대법관2 이 내리는 ‘궁극적 판단’을  앞으로 우리는 절대로 믿을 수가 없게 되었다.

  1. 믿을만한 증거 한 올도 없는 소위 말하는  ‘부정선거 misinformation’의 시작은  바로 이런 ‘고위층 인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2. 이 대법관은 1990년대에 벌써 당시의 #metoo 급 뉴스에서 성추행사건으로 문제가 되었던 인간이었다. 당시 이 인준 청문회를 목격했던 나는 당시에 성추행을 고발하던 흑인여성판사 대신 이 인간을 믿었는데, 이제 보니 우리 모두 감쪽같이 속았던 듯싶다.

 

Mea Culpa~~오늘 대림2주일 주일미사를 빠지는 것, 결국은 미안함을 넘어서 죄의식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미사 중이나, 자매님들과 coffee를 마시는 자리에서 기침하거나 콧물 흐르는 것을 보이는 것 보기가 좋을까?  하지만 나의 깊은 속의 목소리는 “웃기지 마라, 그래도 기어서라도 갈 수 있는 것 너도 잘 알지?” 하는 것이다. 그래, 그래… 모두 맞는 말이다. 나의 선택이었고 나의 책임이라는 것만 알면 된다.

아직도 기침, 콧물이 나오지만 목이 아픈 것은 많이 가라앉은 듯하다. 가래가 고이는 듯하고.. 이것은 거의 나아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번 감기에서는 열이 전혀 나지를 않았고 딴 때보다 심하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flu shot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감기에 걸렸다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유일한 위로는: daycare에 다니는 손자녀석을 자주 보는 것, 그것이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사실… 피할 수가 없다.

 

Sea of Fallen Leaves… 어둠이 걷히는 backyard는 완전히 낙엽의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90% 이상의 낙엽이 떨어진 듯하다. 나머지는 그야말로 제일 건강했던 것들이 마지막 폭풍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그러면 올 가을은…

 

Curse of  Insomnia~~ 연숙 혼자서 미사에 갈 것이라고 미리 생각을 했지만 역시 또 다른 그녀의 고민, 불면증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잠을 거의 못 잤다고… 나는 은근히 혼자라도 미사에 가기를 원했는데… 모처럼 일요일 아침 시간을 혼자서 ‘중단됨 없이’ 보내려는 나의 희망이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쉽다. 설상가상으로, 며칠 못 보고 지나간 ‘성당 대림절 묵상집’을 보려고 하니 ‘왕마귀’의 냄새가 나는 ‘글 장난’을 보고 소책자를 덮어 버리고, 서고 깊숙이 넣어 놓았다. 아예 Bishop Barron의 대림 묵상글을 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모습은  성모님을 슬프게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 주일, 그것도 대림2주 주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미사까지 완전히 빠지면서, 조금 심했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중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도 미루고 있었던 숙제 같은 것들과 씨름을 하고 있었을지도.. 이런 때, 나는 어찌할 수가 없다. 미적거리는 나의 병신 같은 모습이 싫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나의 회의적인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와 순교자 성당 공동체의 관계로 초점이 맞춰진다. 나에게 이 공동체는 무엇인가? 어느 정도 중요한 것인가?

오늘 나를 찾아온 악마의 제자는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현재 공동체에서 멀어지고 있다. 왜 그렇게 연연하고 있는가. 다 때려치우고 나와 버려라… 보기 싫은 사람은 안 보는 것이 제일 상책이 아니냐… 너의 나이가 도대체 몇인데  밀리면서 살아야 한단 말이냐? 집에서 좋은 책을 보는 것이 훨씬 영성적 차원을 높이는 것 아니냐? 인터넷으로 미사를 보면 얼마나 편하냐? 왜 사람들에게 연연하느냐?”

복잡하고 스산한 느낌을 떨쳐버리려고 다시 올해 지나간 daily journal을 훑어본다. 올해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 다시 회상하는 것, 이것의 효과는 대단하다. 거의 치료제역할을 하는 것이다. 머리를 잔잔하게 해주고 심지어 행복한 상상으로 편하게 된다. 그러면 됐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Canadian Mist, 요즈음 나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예상보다 빠르게 마시고 있다는 것. 다시 나가서 사올 용기는 없고,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받을 Johnny Walker Black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지… 그래 그때까지는 Thanksgiving 때의 Box wine이 backup으로 있으니… 의지력을 시험해 볼 양으로 위스키 술병을 아예 dining room cabinet속에 넣어버렸다. 이제 가까이 손에 닿는 곳에 없으니 조금은 유혹을 덜 받으려나~~ 

 

드디어 2021년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절의 첫날이 밝아왔다. 대림절은 성탄의 기적을 기다리는 4주간이지만 세속적으로는 완전히 축제의 시간들이 그려지고 요즈음은 교회도 조금 ‘기를 피려는지’ 세속의 축제분위기를 예전보다 일찍 받아들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도 조금 발을 맞추어 축제분위기를 조금씩 지나치지 않게 느끼며 살고 싶다. 트리 장식부터 시작해서 carol, holiday movie같은 것에도 마음을 조금 더 열고 살면 어떨까… 그것이 사실은 어릴 적을 추억이기도 하니까…

성당 제대 아래는 대림환에 4개의 촛불이 세워지고 첫 번째 촛불에 불이 켜졌다. 기대 보다 훨씬 격조, 수준 높은 구동욱 미카엘 주임신부님의 대림절 주일 강론, 대림절 시작을 멋지게 장식을 한 셈이다. 거의 생각 없이 지낸 지난 며칠이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대림절의 진정한 의미를 신부님이 멋지게 정리해 주신 셈이어서 대림절 첫 주일날 아침이 훨씬 밝게 느껴진다.

2000여 년 전에 오신 구세주, 앞으로 ‘꼭’ 오실 구세주..  매일 매일 우리에게 오시는 구세주를 피부로 느끼며 살고 싶은 때가 바로 대림절이라면… 조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앞으로 4주를 보내야 할 지 그림이 그려진다. 순간 순간, 매일 매일, 매주 매주… 어떻게 그 구세주 초월적인 우주적 절대 존재와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 나에게는 쉽지만은 않은 과제다.

본격적으로 모든 소공동체와 활동들을 open하려는 신부님의 결정이 며칠 전부터 퍼지는COVID Omicron variant로 조금 찬물을 맞는 듯하다. 누가 결정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나이 든 신자들에게는 조금 신경이 쓰인다. 이런 때에 ‘운’, ‘은총’의 도움을 기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도 우리만의 ‘성당 소그룹’이 ‘하얀풍차’에서 coffee, bakery & talk으로 값진 시간을 보냈다. 비록 2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social 이 일주일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는 사실, 다행이고 행운이다. 이런 때에 이렇게라도 작은 그룹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이것도 ‘脫 레지오’ 이후 성모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작은 길’ 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작은 사위 Luke의 40세 생일이다. 전부터 나의 40세 생일을 기억하며, big four oh~ 를 그에게 말하곤 했는데 오늘 집으로 찾아가서 보니 나와 40세의 느낌이 다른 듯 보였다. 별 감정이 없이 보인 것, 이것도 30년 세월의 세대차이가 아닐까? 나의 40세와 그의 40세는 정말 다른 모양이다. 나의 40세와 44세의 생일들은 사실 ‘죽을 사 자 死字’ 에 관심을 쏟은 운명적인 나이였지만 지금은 아마도 60세가 되어야 ‘조금 나이를 먹었다’ 정도가 아닐지. 

그들 부부는 오늘 생일을 맞아 외식을 하려고 계획을 했던 모양인데 나라니가 각종 감기 바이러스 탓으로 오늘 완전히 계획했던 것을 취소하고, Ronan을 우리가 오늘 하루 집으로 데려와서 봐 주기로 했다. 개구쟁이지만, 오늘은 조금 점잖은 모습의 그 녀석, 2살을 향한 시점이 이런 것인지… 녀석이 순순히 우리 차에 오르며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따라 온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제야 나는 점점 잔 정 情이 느껴지는 듯하니, 나도 지독한 목석의 심장 소유자인 모양이다.

우리의 작은 도움으로 나라니 부부는 편하게 Buford Hwy에 있는 한국식당[이름을 잊었다~, 나의 망각증.. 만천홍 옆에 있는 비싼 한국식당이름이… 알았다! ‘운암정’이다!  ] 에서 생일축하 외식을 했다고..  우리는 로난을 집까지 직접 데려다 주었다. 이것으로 Luke에게 작은 생일선물은 한 셈이라, 우리도 무척 기뻤다.

Dave & Ava를 좋아하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기다리던 소식, 건주의 wife 황인희씨로부터의 카톡 text 다. 내용은 조금 아쉽게 간단한 것,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나에게 소식을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크게 값지게 생각을 하고 싶다. 1968년 한창 대학시절 친목클럽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여대생, 친구인 건주와 짝이 될 줄은 예기치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후 그들은 부부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백년해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찾아온 stroke,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중풍’, 결과는 신체의 마비 상태인 것을 누가 모르랴. 어떤 곳에 어는 정도인가가 문제다. 건주의 case, 아직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wheelchair,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태가 아주 호전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다. 갑자기 이 stroke 의 위험을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장만 생각했지 두뇌의 혈관은 잊고 산 것이다. 혈관, 어떻게 피가 부드럽게 흐르게 할 수 있는가? 혈관의 건강은 어떻게 만드는 것인가… 아~ 참 나이의 횡포는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대림절의 시작을 Catholic Sunday 전통을 지키려 나의 작은 등대 Bishop Robert Barron [Los Angeles Diocese] 주교의 주일강론을 보며 듣는다. 이 ‘머리 좋은’ 신부님은 현재 미국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인터넷 신부님’이고 특히 젊은 세대를 교회로 인도하는 선구자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 같은 ‘꼰대’층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특히 no dumbed-down religion을 강조하는 그의 모습으로 가톨릭의 가느다란 희망의 빛을 본다. 우리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도 2021년 대림절 묵상집 소책자를 발간 배포를 해서 가지고 왔다. 이것으로 성탄을 향한 묵상의 한 걸음을 내디디는 오늘은 은총의First Sunday of Advent 가 되었다.

 

Bishop Barron on YouTube on Sunday

Catholic Sunday… 아~ 아련~ 하고, 아늑하며 감미로운 느낌이 든다. 오래~ 전 가끔 나는 이런 제목으로 블로그를 쓰며 주일 오후를 지내곤 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오후가 되었다. 일요일, 주일은 주일이지만 가톨릭 천주교 주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주일미사 후, Vatican Mass, Angelus를 시작으로 각종 전세계와 미국의 교계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진정한 휴식, 휴일을 보냈던 때, 그때가 지금은 정말 그리운 것이다. 이것이 Pandemic은 말할 것도 없고 2017년의 각종 ‘인재 人災’가 발생하기 전 모습이다. 이때가 내가 말하는 authentic Catholic Sunday였다. 이제 다시 그런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리 그때가 그리워도 그때의 모습에 머무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진화, 진보, 변화가 없는 인간은 하느님의 바램이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연중33주일, 다음주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 이어서 새해 시작인 대림절이 시작된다. 결국은 전례력 한 해가 또 꼴깍~ 넘어가는구나.  빠른 것인가, 기다림에 지쳐 늦게 온 것인가.  그래 기다렸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세월이 느린 것이라고 느낄 수 있으니까. 대림절 Advent 2021년, 그리고 2022년… 세속적 한 해도 한 달 뒤에 뒤따라 올 것이고. 그래 모두 모두 반갑게 맞아들이자.

순교자 성당엘 가보니 정문 주차장의 문이 닫혔다. 아~ 오늘 바로 그 garage sale을 하는 날이었구나… 우리도 조그만 것을 하나 이곳에 협조했지만 그 동안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조금은 미안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고… 예전에 비해 퇴색해지는 듯한 우리의 봉사정신에 민감한 것인지…  싸늘한 빙점에 머무는 이른 아침부터 수고하는 젊은 봉사자들을 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들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즐거운 마음자세를 갖고 일하는 모습, 그리워지기도 한다.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우리세대는 이미 ‘주역’이 아니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오늘 미사 때 우리 바로 뒷자리에 한 가족이 모여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그곳으로 특별한 시선을 주지 않았는데, 연숙이 그들을 보고 인사를 건넨다. 아니, 인사가 아니라 위로의 말을. 그들도 슬픈 표정으로 기도를 부탁한다는 말로 인사를 받는다. 뒤돌아 보는 것을 꺼리는 나도 혹시나 해서 돌아보니…아하~ 지난 화요일 연도, 장례미사의 그 가족들이 아닌가? 32세로 요절을 한 청년의 가족… 아무런 예고, 낌새도 없이 갑자기 선종을 한 외아들… 과연 이 가족은 이것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그 이후 내내 신경이 쓰였는데, 오늘 전 가족이 첫 미사에… 마음 같아서는 다가가서 간절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오지를 않았다. 그런데 미사 후 신부님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들에게 ‘박수를 치라’고.. 이럴 때 박수를 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위로의 표시가 될까? 그것보다는 그들을 소개하며 위로의 말씀을 공개적으로 하는 정도에게 끝났으면 얼마나 적절했을까…  이래서 이번 신임 신부님의 점수는 나에게서 또 1점은 깎인 셈이다. 

 

Bakery ‘하얀풍차’에서 안나, 아가다 자매님들과 ‘수다’를 떨며 아침 coffee와 doughnut으로 주일 ‘정기모임’을 마쳤다. 이 모임도 이제는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요사이 우리에게 일주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활력을 주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외로운 시절을 보내는 현재 우리에게 또 이런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으니, 참 인연은 묘한 것인가. 누가 이런 것들을 예측이나 했으랴. 다음 주에는 우리 차례로 점심모임을 둘루스의 칼국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나라니 Tucker 집에 잠깐 들러서 깍두기를 전해주고 왔다. 이런 때 나는 정말 바보가 된 느낌이다. 아픈 나라니를 위해서 신경을 써서 깍두기를 전해주자는 얘기에 역시 나는 ‘반가운 듯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태도를 나 자신도 분석하고 싶다. 왜 그렇게 그런 말을 거의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 이런 일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면 간단히 끝날 터이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분명히 부담을 갖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통적인 반응, ‘귀찮다’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just do it, it’s now or never의 정신이 이렇게 약해졌단 말인가?

마지막으로 장례미사 전에 연도를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분명히 COVID-19 Pandemic이전이었다. 그 이후에는 연도를 하지 못하고 장례미사 가족들만이 모여서 한 것이 이제는 연도와 미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조금 세상이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갑자기 연도, 장례미사 공지를 몇 군데서 받아보고 어리둥절했다. 32세의 청년? 지병도 없는 갑작스러운 죽음? ‘프카’ 자매님이 보낸 소식에 자매님 아들과 축구를 했던 적이 있는 아는 청년이었다고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날 밤 몸이 안 좋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가보니 숨진 상태였다고… 가족들, 얼마나 놀랐을까? 심장마비인 것 같지만,  왜?

연도 전에 viewing에서 고인이 편안히 누워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았다. 고통스런 표정이 하나도 안 보이는 아주 잘 생긴 청년이었다.  32세의 새파란 Georgia Tech 대학원생 청년, 총각의 갑작스런 죽음, 이런 일이 가끔 있긴 했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지병도 없이 갑자기 밤새 시신으로 변한다는 것, 소설,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이 아닌가? 아직 사인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로 연도,장례미사, 화장까지 하게 된 것, 우선 관심은 그 청년의 가족들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놀람과 슬픈 심경이었다. 어떻게 그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죽은 본인보다 가족들의 고통…  32세면 내가 결혼할 당시의 나이가 아닌가?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것으로 결혼은 물론이고 애인도 없었던 듯 보이니, 얼마나 많은 인생을 놓친 것인가? 지병도 없이 그러니까 심장마비 가능성이 많은데, 정확한 사인은 무엇이었는지…

오늘 영결 현장은 오랜만에 슬픔을 나누는 장례식 같은 오열의 몸부림을 목격하는 자리가 되었다. 가족 모두들 혼이 나간 표정들, 이들은 어떻게 이 비극을 이겨낼 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일찍 한 젊은 생명을 거두어가신 것일까…

오늘 장례미사에서는 이제까지 듣던 강론과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인 사연, 이야기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personalized되지 않은 장례식은 아무래도 아쉽기만 한 것이었다. 유족들과 면담을 거치는 과정이 짧았거나 없었던 느낌이 든다. 지나간 3명의 주임신부님들의 장례미사 강론은 정말 가슴에 와 닿는, 인생과 죽음에 대한 교훈들이었지만 오늘은 거의 김이 빠진 듯한, 완전히 boiler plate격이라고나 할까…

오늘 미사에서 보여준 유족들의 모습들은 이즈음 보기 드문 ‘모범적’인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혼이 나간 듯 오열하는 모습은 조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고, 항상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조사 弔詞’, 여동생이 나와서 짧지만 심도 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었는데… 특히 오빠는 겁쟁이였다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대부분 장황하게 길고 긴 넋두리를 하는 것, 정말 나는 피하고 싶은 경험이었기 이번에는 휴~ 하고 가슴을 쓸기도 했다. 비록 우는 소리가 평소에 비해서 클 수밖에 없었지만, 울음소리가 없는 장례미사는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또한 가장 家長의 엄숙하지만 슬픔을 참는 듯한 괴로운 모습,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All Souls Day, 위령의날,  본당 순교자성당 위령미사, 몇 년 만에 이곳엘 오늘 가는가? Pandemic 전까지만 해도 위령미사를 우리가 사는 마리에타의 공원묘지에서 하곤 했었다. 작년에는 본당으로 옮겨서 했는데, 그때만해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여서 우리는 자제하고 있었다. 올해는 vaccine의 도움으로 위령미사에서 부모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특히 우리 가족 영혼들, “아버님, 어머님… 오늘은 조직적으로 절도 있게 영혼들을 생각하며 맞대면 할 수 있는 미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명심을 하며 참례를 했을 뿐만 아니라 모처럼 나의 기억 속으로 사라진 영혼들 모습들을 회상할 수 있는 경건한 기회가 되었다. 100% 위령미사엘 가기 잘했다는 생각, 게다가 연숙과 같은 생각으로 보낸 오늘 하루는 정말 보람을 느끼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특히 Roswell Nursing Center의 형제, 자매들이 그렇게 생각이 날 수가 없었다. 그 중에서도 유학남 형제님, 거의 형님처럼 여기고 싶었던 분, 오일순 여호와의 증인 자매님, 천의순 신의주출신 개신교 자매님, 그리고 성당 중앙고 후배의 어머님 김 엘리사벳 자매님… 아~ 불과 2~3년 전만 해도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Pandemic은 그렇게 잔인하게…

위령미사, 물론 공원묘지의 배경과는 다른 것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위령을 하는 한 자리에 모인 것은 나에게도 우리 조상, 부모님들을 기리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도 얼마 안 있어 그들의 대열엘 속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 하루하루 사는 것은 인간, 생물, 모든 피조물 존재의 신비가 아닐까?

어제 저녁가족기도, 그것을 안하고 잔 것은 나의 잘못이다. 할 것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시간 9시를 향한 나의 몸가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 때 잠깐 잡스러운 것에 눈을 돌리면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요사이 연숙의 기도 준비 자세는 오래 전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반가운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우리도 저녁기도에 더 에너지를 쏟으면 얼마나 좋을까? 깊이와 정성이 더해지는 우리의 ‘역사적 기도 전통’을 만들면…

 

도라빌 H-Mart에 들러서 간단한 grocery shopping을 하고 전번에 맛있게 먹었던 ‘그 집’ 우동으로 배를 채웠다. 그곳에서 우연히 윤형 부부를 만났던 것도 기분이 너무 좋았던 이유가 되었다. 내가 한번 모두 만나자는 제안을 고맙게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윤형의 모습이 정말 흐뭇했다. 그의 바쁜 일정이 끝나면 집 뒤뜰의 사과 나무 밑에서 고기를 구워먹자는 희한한 idea얘기도 들었다. 아~ 이들과도 알고 지낸 지가 꽤 오래 되었구나… 세월이…

H-Mart에 간 이유 중에 ‘술’ 생각을 뺄 수가 없다. 비록 진짜 liquor store의 술은 아니지만 그 중에서 제일 ‘도수가 높은’ 것을 사려는 것, 19% JOA라는 소주 흉내를 낸 술, 사실은 wine급, 을 2병 사와서 연숙이 급히 만들어준 고구마 튀김을 안주로 삼아 잔을 기울였다. 19% 라서 그런지 제법 취기가 빨리 돈다…. 아~ 이런 때도 나에게 있어야지… 나라고 매일 악마의 유혹에 시달리란 법이 있나? 그래, 이제 최소한 11월 달에 풀어야 할 커다란 난제는 없다. 편하게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요새 가끔 보는 한국산 80년대 드라마 중에 [청소년문학관]이란 것이 있다. 청소년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과 80년대라는 것으로 분명히 ‘깨끗, 정직, 순진’한 거의 교육적인 이야기들임을 직감적으로 안다. 어떻게 보면 내 나이에서 보면 유치함의 절정일 듯하지만 사실은 그와 정 반대다. 절대적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 시절들이 유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들, 출연한 청소년들 시절을 분명히 보냈건만 어쩌면 그렇게 딴 세상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분명히 그렇게 순진한 세월을 경험했는데..  그 이후의 장구한 세월은 절대로 순진한 것이 아니라서 퇴색, 퇴폐를 했단 말인가? 하지만 돌아가보고 싶다. 다시 한번 그때를 살아보고 싶은 것, 아~ 내가 또 가끔 꾸는 꿈을 또 꾸고 있구나…

소식이 뜸~ 한 뒷집 동포이웃 B선생님 댁, 모처럼 카톡으로 안부를 물으려 하니… 허~ 카톡방에 이름이 안 보이고… 떠났다~ 고 나온다. 어찌된 일일까? 잘못해서 실수, 아니면 떠나고 싶어서… 알 수가 없다. 우리와 멀리해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누가 알랴? 이런 일에 나는 자신이 없다. 사람들이란 예외 외의 모습도 있는 것, 교성이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던가?  다시 연결시도를 하려니 전화번호를 알 수가…  이런 texting tool 덕분에 그래도 ‘동포 이웃’과 간접적인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았던가?  나의 희망은 언젠가 한번 이 가정과 우리 집에서 따뜻한 차라도 나누고 싶은 것, 그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인가..  알 수가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화장실엘 갔다 왔고, 6시에 일어났다. 요사이 새벽에 아래가 조금 축축함을 느껴 만져보면 생각보다는 덜 젖은 상태임을 알고 조금 안심은 하지만, 역시 이것이 바로 ‘그것, 요실금’ 이란 것 아닐까? 이것과 전립선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역시 본격적으로 노인이 되고 있다는 증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일어나며, 방금 전에 꾸었던 꿈을 ‘즐겁게 음미’하기도 하고 역시 때가 온 것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 지난 일주일간의 “영혼의 어두운 밤”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들었다. 그리고 임시로 넣어 두었던 물건들을 다시 꺼내고 이 Daily Note를 이렇게 펼치고 쓰기 시작을 한다. 이제 탁상용 달력도 꺼내어 펴놓아야 한다. 그 전에 십자고상을 먼저 내 눈앞에 모셔놓았다. 묵주와 기적의 메달, 필기도구 등등, 일주일 만에 보니 너무나 생소하고 반갑다. 정상화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된 것, 그래 ‘치워버린 성모상’의 어머님께 감사를 드린다. 어머님, 제가, 탕자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온통 모든 ‘성사, 기도, 영성, 독서’ 등이 정지 되었지만 그 시간을 메우려 온통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신경을 기울여서 대상 세상의 맥박을 잡게 되었다. 이제는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산다는 조바심이 사라지고 있음은 바람직하지만, 대신 세상의 고통을 조금 더 나누어지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중에 제일 실망스런 것은, 그렇게 잘되기를 바랐던 ‘바이든’의 어처구니 없는 바보 같은 행동, 정책[‘갑작스런’ 아프가니스탄 철군]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비 정치적’인 일이 경험이 너무 많은 그에게서 나온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완전한 인간은 없다. 하지만 너무 실망스럽다. 그는 이제 치욕적인 부담을 역사 속으로 안고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어제 이영석 신부의 이임이 공식적이지만 아주 간단하게 발표되었다. 나는 이번의 의외적으로 이른 이임소식을 서서히 알게 되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고 실망까지 하게 되었다. 누구에게 실망을 할지도 모를 정도로 ‘이상한 느낌’도 들었기에 기대가 큰 만큼 이 신부님에 대한 추억에도 상처를 받을까 걱정까지 들 정도다. 내가 너무나 기대를 한 것이 문제였을까? 이제는 나도 지쳤다. 신부에게 너무 의지하는 것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나의 공동체, 교회 생활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은근히 나도 걱정을 하고 있다. 정말 이제는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어제 8월15일, 성모승천대축일, 예상보다 맥과 김이 빠진듯한 이영석신부님의 강론, 조금 실망적이었다. 이제는 떠날 때 정을 떼려는 것인가? 왜 이런 결과가 나와야만 하는가? 왜? 왜? 이제 나의 교회생활도 서서히 맥이 더 빠지고 결국에는… 아~ 싫다 싫어… 성모님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며칠 전부터 보이던 tropical depression Fred, 예상 진로가 이곳을 정확하게 조준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은 내일 새벽부터 이곳을 지나가게 된 모양, 태풍이 아니고 폭우가 예상되는 것, 큰 피해 걱정은 없지만 만약 폭우가 심하게 되면… 지붕과 siding은 문제가 없겠지만 밖에 널려 놓은 잡동사니들이 조금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시원하게 된 것은 물론 반갑다.

며칠 전에 도착한 기대했던 책, Finding God in Science 을 읽기 시작한다.  심각한 논문급의 책으로 기대했던 것이 틀렸지만 대신자전적 수필로 시도하는 이 apologetic은 다른 의미에서 더 호소력을 가지고 있음을 나는 기대하고 싶다.

 

드디어 Triduum 성삼일, 마지막 부활성야미사까지 무사히 끝을 내고 들어왔다. 그야말로 무사히 참례, 그것도 도라빌 순교자 성당, 대성전 내에서 꽉 찬 교우들과 우렁차게 바치던 기도 소리는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젊어진 듯한 분위기, 물론 신선했지만 다른 쪽으로는 ‘그래 우리는 서서히 물러가는구나’ 하는 자조감도 없지는 않았다. 시니어 멤버들이 주류인 등대회 회원들이 대거 빠진 것이 유난이 가슴이 저며오는 듯했다. 모두들 이제 어두운 밤에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진 나이가 되었는가? 그래, 그것이 정직한 것이다… 세월의 순리…

The Day After, 그 다음날!  아직도 나는 어제의 ‘작은 기적’을 생각하며 소화시키려고 애를 쓴다. 우선 작은 기적이기에 분명히 작은 악마가 찾아올 것이다. 벌써 찾아 왔다. ‘그것이 며칠이나 가겠니.. 그래 너는 별 수가 없어..’ 라는 속삭임을 계속 듣는다. 하지만 2007년의 성모님 체험과 2010년의 레지오 시작 경험을 통해서 조금은 자신이 있다. 그것을 돌이킬 수 없게 하려고 조금은 성급하게 신부님께 나의 숨은 사연을 알려 버렸다. 신부님 반응이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대리자’인 신부님께 알려 드렸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하느님과 관련 된 나의 체면문제로 승격한 것이다. 나는 앞으로 ‘작은 악마’와 계속 싸울 것이다. 계속, 계속…

 

집 공사는 내가 바란 대로 (take it easy!) 오늘 안에 거의 끝을 내고 월요일 날 아침에 와서 마지막을 정리한다고 하고 조금 전에 돌아갔다. 가지가지로 나는 억측을 하며 stress를 받았지만 하나같이 나의 오판, 오해로 들어났다. 나는 ‘사람을 쓰는 데’는 정말 불편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예상보다 잘 끝이 난 듯하다. 완전히 새집이 된 느낌인데, 예외는 물론 내가 손을 대고 있는 deck와 porch 다. 이것은 절대로 문제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들이 모두 해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꿈 같다. 지붕과 siding이 완전히 새 것으로 바뀐 사실이… 나도 연숙도 자축을 하고 싶다.

 

예정대로 성금요일 저녁8시 미사를 끝내고 들어왔다. 십자가 경배도 예전대로 있었지만 조금 의아했던 것은 이번에는 정면의 제단 뒤의 커다란 십자고상을 장막으로 덮어 놓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유가 있었으면 이해를 하겠지만 귀찮아서 그랬다면 정말 실망이 아닐 수가 없다. 관행을 왜 무시한 것일까?

오늘 미사 중에 나는 작은 기적을 체험했다고 할 수 있다. 100% 확실한 것이 아니지만 나는 거의 확신을 한다. 10여 년 전에 회심 이후 성당, 레지오로 들어오면서 경험했던 갖가지 작은 기적들과 맞먹는 것이라고 기억하고 싶다. 지나간 4년 전에 우리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던 어떤 두 자매들[모두 레지오 단원]을 ‘일방적으로’ 용서할 자신이 생긴 것이다. 아니 용서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그들의 사과나, 반응 등에 상관이 없는 것으로, 자진해서 용서를 하고 잊기로 한 것이다. 이후에는 다시 ‘증오, 혐오’ 등 적극적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잊는 것도 가능할 수 있고, 아니 잊었으면 더 좋겠다. 더 이상 사람을 미워하는 재미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기도할 것이다.  조금 더 가슴이 넓은 남자가 되고 싶다. 큰 그릇의 관대함을 가지고 살고 싶다. 미워하는 것은 재미가 아니고 괴로운 것이라는 사실을 항상 간직하며 살고 싶다.

이제까지 나는 ‘그들을 적극적으로 미워하며 살리라’는 무서운 생각으로 살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진심으로 용서를 청하기 전에는 절대로 미워하며 용서를 안 하기로 칼을 갈며 사는 것.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지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내가 무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아찔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신부님의 강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겪는 고난을 생각하는 와중에 갑자기 ‘용서하기로 결정하자’ 라는 결심이 선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 나도 알기에 나는 이것을 작은 2021년 부활절의 기적이라고 개인 역사에 기록하기로 했다. 일단 결심이 섰기에 나는 이 예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요새 나를 괴롭히는 작은 악마도 부활예수 근처에는 얼씬도 못할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비가 예보되었지만 아침이 조용하다. 아직도 안 내리는 것, 아마 더 늦게 내리는 것인가? 예보를 다시 보면~~  분명히 비가 오는 것으로… 그렇다면 scattered, isolated인 모양.. 낮 기온도 떨어져 50도 대, 가랑비가 내리는 싸늘한 날이 그려진다. 오늘 장례미사의 분위기에 아주 적절한 것이 아닐까? 그래, 기왕 ‘봉사’를 한답시고 무조건 미사에 간다고 했지만 정성을 드려야지… 비록 전혀 모르는 55세의 자매님이지만… 현 삐에리나 자매님, 도대체 누구일까? 그것이 상관이 있나, 떠나가신 영혼과 가족들을 위로하면 되는 것이지… 나는 정말 이런 연령행사가 필요하고 많은 위안을 받기도 하기에 할 수 있는 한 가보고 싶은 것이다.

오늘 장례미사 주인공은 불과 55세 밖에 되지 않은 현 삐에리나 자매님.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이었다. 희귀병으로 지난 20년 동안 투병을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어머님 외에는 모두 지친듯한, 감정이 별로 없는 상태의 모습이었다.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에 찍은 영정사진을 보니 아주 멋지고, 활달한 모습이었는데 어떻게 그런 병에 걸렸을까, 누가 알겠는가? 이것도 예정된 운명일까?

이영석 신부님의 장례미사 강론은 나의 공감을 100% 얻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장례미사를 잊고 산다는 것, 어찌 안 그렇겠는가? 나도 그렇게 살았는데… 하지만 나는 안다. 지나간 10여 년 동안 내가 발견한 것, 장례미사를 통해서 내가 얻은 은총이 얼마나 놀랍게 큰 것이었던지? 그래서 나는 심지어 장례미사엘 가는 것을 즐긴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것은 나에게 커다란 인생공부요, 신앙의 영양제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기를 쓰고 간 것이다.

미사에서 만난 조시몬 형제와 점심을 오랜만에 성당 근처 한식당 동네방네에서 즐겼다. Pandemic이후 거의 갈 수가 없었던 그곳에 가면 어떻게 레지오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것인지? 그래, 참 그곳에서 많은 추억을 만들었지… 레지오 단원들이 인생선배 누나뻘 되는 자매님들이었지만 나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잊을 수 없는…

 

아침에 도착한다던 shingles & sidings 자재들이 집에 와보니 얌전히 도착이 되어있었다. 놀란 것은 그것의 크기였다. 상상에 엄청 거대한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작은 것이었다. 그것으로 우리 집의 위 roof와 옆 siding의 모든 곳을 새것으로 단장을 한다니… 생각만해도 기쁘기만 하다. 제발 큰 차질 없이 공사가 끝나기를 다시 한번 바라고 바란다.

 

오늘 아침에 일을 저질렀다. 얼마 전부터 생각한 것이었지만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기에 아침에 순간적으로 저지를 일이다. 내주 화요일 미사 후에 신부님과 면담 약속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사순절을 망칠 수도 있다는 염려도 있었다. 판공성사도 빠뜨릴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몇 년 동안 제대로 못한 나의 신앙성찰을 할 때가 되었다.  지금이 그것을 해야 할 적시인 것이다. 인생의 다음[아마도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려면..

자비의 모후 성모님,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나의 예감이 어쩌면 이렇게 귀신처럼 맞는 것일까, 어떻게 그 인간이 다시 이렇게 우리 앞에 ‘뱀 같은 모습’으로…  나도 너무나 놀란다. 결정의 시간이 온 것이다. 레지오를 완전히 떠날 수 있는 확실한 여건이 되었다. 우리들 모두 조금 여한이나,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것이 성모님의 뜻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싶다. 우리 여생의 다음 장으로 과감하게 넘어가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이제 우리의 2021년 새해가 미리 시작되었다. 자비의 모후여… 정말 고맙습니다. 성모님, 다른 기회에 성모님을 더욱 돕겠습니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오늘은 원래 레지오 주회합의 날이지만 정식 주회합대신 작별모임으로 끝났고,  결과적인 느낌은 어떨까?  특히 우리 (나, 연숙, 아가다 자매) 3명은 지난 10년 이상 자비의 모후를 지키고 있었기에 조금 감상적이 안 될 수가 없다. 나에게도 정말 오랜 세월 10년, 2010~2020, 이 아닌가?

우리 둘의 레지오 퇴단 결정은 결과적으로 전 단원이 ‘자비의 모후 쁘레시디움’ 을 떠나는 case가 되었다. 이 ‘자비의 모후’ 의 향후는 거의 폐단일 것 같지만 그것까지 우리가 상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자비의 모후라는 ‘호도(이름)’가 꾸리아에 반납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10년이란 세월 [연숙은 20년] 이 나에게 너무나 커다란 의미를 주기에 심리적으로 빠져 나오는데 물론 시간이 걸릴 것을 각오한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새로운 장이 시작 되었다.

3년 전, 2017년 봄과 가을에 우리 자비의 모후에 일어났던 두 충격적인 사건들을 제대로 상식적으로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 이것은 궁극적으로 ‘꾸리아 간부들의 단체적 책임’이었고, 그것이 오늘의 최종적인 결과로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사건의 범인 격인 당시 꾸리아 간부와 평단원, 두 명:  후에 그 평단원은 억지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소위 간부라는 사람은 사과는 고사하고 사건 자체를 무시하는 실망을 남겨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심각하게 퇴단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지만 곧바로 단장으로 선출이 되어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만약이 이 인간이 다시 간부로 재 선출이 되면 그때는 완전히 퇴단을 하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고 이번에 그날이 결국은 오고야 만 것이다.

올해는 나의 레지오 활동기간이 10년째가 되는 해라서 여러 가지로 앞날을 생각할 때임을 알았지만 성모님의 뜻은 오묘한 것인가 어떻게 이런 때에 이렇게 쉽게 결단을 내릴 기회를 만들어 주셨는가.  하지만 정이 든 우리의 레지오 앞날이 진심으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이제 모두 끝났다. 1123차 마지막 특별주회, 비록 단체 기도시간을 못 가졌지만 공식적으로 작별인사를 하는 기회는 가졌다. 전 단원이 이번에 퇴단의 의사를 밝혔기에 이제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났다. 자비의 모후 성모님,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섭섭하고도 기쁩니다…  우리는  복 바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서 송년 때를 위해 미리 사 놓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어쩔 수가 없었다. 레지오가 없는 우리 둘의 새 기원이 시작되는 양 모든 것을 이제 다시 성모님께 봉헌하는 심정으로… 하지만 고통스런 ‘불필요한 증오’가 없는 그런 새로운 삶을 앞으로 살고 싶다.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자랑, 기쁨, 성탄구유 점등식…

2020년 대림절 Advent 의 시작을 맞아, 어제 토요 특전미사와 성탄구유 점등식에 모두 참석하고 돌아왔다.  칠흑같이 이미 어두워진 저녁 6시 쯤 나가면서 느낌이 ‘정말 오랜만에 어두울 때 나가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예전보다 운전이 익숙지 못함은 나이 때문일까 아니면 그 동안 나가질 못해서 생소하게 보여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이런 생소해짐은 더 심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것이 생의 진리인 것을…

이곳,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성탄구유와 모든 장식들, 크리스마스 tree등은 정말 환상적이고 멋진 것이었다. 아마도 신부님의 특별한 관심과 지도로 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수고를 했을 것이다.  꽤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그리운 모습들이 꽤 있었다. 정말 반가웠지만 예전처럼 깊은 악수나 hug을 못하는 것은 정말 이번 pandemic의 저주라고나 할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런 것인가… 별로 큰 관계도 없었던 듯 보이던 사람들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참,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게끔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

오랜만에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니 Ozzie가 그렇게 반길 수가 없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고, Tobey때의 생각이 떠올라 슬퍼짐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나의 어깨로 뛰어올라오던 녀석… 정말 정말 Tobey야, 그립구나, 그리워…

특전미사 덕분에, 오랜만에 아침에 늦게 잘 수 있는 대림절 첫 주일날이 되었다. 어제 특전미사를 간 것, 여러모로 우리에게 참신한 기분을 제공하였다. 성탄구유 점등식에도 교우들과 같이 모여 섰던 것도 살아있는 기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모두들… 잘 살고 있음에 반가움과 감사함이 솟구친다. 그래 모두들 잘 살아보자.

 

매년 이즈음에 갑자기 요란하게 나오는 대한민국 FEBC 극동방송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사실 유별나고 유난한가? 이곳의 어느 방송에 못지않게, 아니 더 요란하게 각종 성탄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기독교 방송이라지만 문화적, 풍속적으로도 고국의 성탄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지 않았던가… 누나와 같이 그리던 각종 성탄카드들..  코흘리개 꼬마들에게 센베이 를 나누어주던 동네 교회당의 모습, 그립다 그 시절들이…

 

예상을 초월한 평화스러운 주일 날이 되었다. Ozzie 도 행복하게 동네  산책길을 걷고, 점심도 편안하게 먹었다. 한가한 것을 기화로 나는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사치를 부렸다.

2014년에 심취하며 읽었던 Dr. Francis CollinsThe Language of God을 다시 살펴보기도 했고, 그 저자 1950년생, 에 대해서 존경심을 키우기도 했다. 그의 거의 완벽한 신앙과 과학의 접속 함의 놀라운 용기와 지식,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또한 거의 하루 종일 Robert Lanza의 책, biocentrism 을 읽게 되었다. 아직까지 그의 논제의 기본을 향하는 과정이지만, 현재까지는 아주 흥미롭다는, 혁신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관심은 현재의 가톨릭의 ‘과학교리’ 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고차원적인 희망이지만… 누가 알랴.. 이것이 나의 신앙, 믿음에 더 도움이 될는 지를..

 

오늘로서 Mr. 설 의 선물,  Bourbon 의 마지막 잔을 기울인다. 과연 얼마 만에 바닥이 난 것일까? 짐작할 수가 없다. 한 두 달 정도라는 것 밖에는.. 상관없다. 아주 감사하게 맛있게 마셨으니까. 이제 앞으로 이런 것 마실 기회가 생길까, 내가 사지 않으면 힘들지도…  과음을 하지는 못하고 찔끔찔끔 나만의 특유한 모습으로 마셨으니까, 몸에 그렇게 해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설 형제,  형제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  진심으로… 을씨년스러운 늦가을 나의 가슴이 조금은 따뜻해집니다…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이 집과 전깃줄에 피해를 주었다

정말 이상한 날이 계속되는가? 어제 저녁부터 안간힘을 쓰며 함정에서 빠져 나왔던 것을 기대했지만 오늘 새벽의 ‘천재지변’이 다시 이상한 날의 시작으로 만들었다.

일기예보보다 늦게 들이닥친 열대성 폭풍우 tropical thunderstorm Zeta , 사실은 ‘풍 風’이 ‘우 雨’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다. 비가 덜 내린 것은 가상하다마는 세찬 돌풍, 오랜 만에 걱정이 될 정도로 세찬 것이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 날 지 모르는 것, 이런 것들 예전에는 정말 흥미롭게, 즐기기도 했지만 요즈음의 나는 영락없는 ‘겁쟁이’가 된 듯하다.

새벽 5시 넘어서 도저히 겁에 질려 누워있을 수만은 없어서 어둠을 헤치며 내려 왔지만 이번에는 전기가 완전히 나갔다. 분명히 세찬 바람에 어떤 나무가 쓰러져 전깃줄이 끊어졌을 지도… 문제는… 기분에… 이것 다시 들어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 것이다.

 

뜻밖으로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명상을 할 기회를 얻었다

결국 5시간 만에 다시 들어왔지만, 덕분에 아침 밥은 [natural] gas만으로 해결을 하였다. 깜깜한 시간에는 묵주기도를 40단까지 바치기도 했다. 나라니, 새로니 동네도 모두 전기가 나갔다고 해서 처음에는 아틀란타 전 지역이 영향을 받을 줄 알았지만 사실은 각 지역마다 각각의 폭풍우의 피해가 따로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기회에 모든 ‘종이류’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각종 서류들, 지나간 레지오 문서들… 온통 거의 5년 이상 방치가 되었던 것들이다. 이번에 거의 다 모두 정리해서 대부분은 버릴 희망을 한다.

 

영성체,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잔뜩 긴장하며 찾아간 우리의 영적인 고향,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 주일 아침 8시30분 ‘진짜 onsite’ 미사,  Pandemic 이후 5개월이 넘는 긴 세월의 가뭄을 깨고 ‘진짜 영성체’를 하였다. ‘신영성체’가 아닌 ‘영성체’였다. 손에 성체를 받아 나의 입으로… 이런 것에 무덤덤한 나도 별 수가 없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의 손길!

모든 분위기가 좋았다. 당장 생각에 이 정도면 매주 이 시간에 미사참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성급한 결정까지 내린다. 물론 연숙도 대 찬성이고… 또한 8시 반에 온다는 조시몬 형제까지 곁들여서 일요일 오전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몇 명의 아는 얼굴들을 보고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다. 역시 그 동안 알건 모르건 간에 정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 나온다고 하던 헬레나 자매가 늦잠을 자서 못 나왔다고… 이것으로 나는 이 가정에 평화가 조금씩 깃들인다는 성급한 진단까지 했다.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온 김에 내쳐서 ‘운동, 운동, 운동’을 결심하는 연숙과 동네를 걸었다. 걷는 길에 B 선생 댁에 잠깐 들려 과일 box를 드리고 왔다. 며칠 전에 수박을 주시고 간 일,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 가정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희망은 아직도 줄지 않고 있다.

 

오늘은 정말 정말 오랜만(한 달?)에 조금 들뜨며 평온한 마음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제일 큰 이유는 나의 눈 앞의 광경들이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어서 그랬던 것… Pandemic 전 일상적인 외출 후에 귀가하던 때의 느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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