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아틀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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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비를 보며:  오늘 아침, 10월 중순을 향하는 길목에서 나는 아직도 열대성 공기를 느끼며 깨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는다. 어제부터 처음으로 ‘긴 바지, 긴 셔츠’를 입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덥다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을 느끼니.. 아 ‘긴 팔, 긴 바지’의 진정한 가을이 코 앞에 다가오고 있구나 하는 잔잔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습기 없는’ 시퍼런 하늘을 유난히도 올해는 내가 기다렸는데 야속하게도 이제는 지겨운 ‘열대성 대기’는 쉽게 물러가지 않았다. 설상가상 이제는 갑자기 나타난 Michael이란  남자 이름을 받은 허리케인 hurricane이 열대성 습기와 강한 바람을 몰고 FloridaPanama City Beach 쪽을 강타하고 무서운 속도로 이 지역을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다행히 메트로 아틀란타 지역은 ‘반가운 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영향이 없는 듯 하다.

 

아틀란타 주변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 tropical storm Michael

 

몇 주간 뜨겁게 마르고 있던 대지들이 오랜만에 단비의 맛을 보았던 어제 밤과 오늘 아침의 주변은 그야말로 축복을 받는 느낌. 이번의 비와 바람이 올해 ‘마지막 여름’을 장식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진정한 O. HenryThe Last Leaf 의 느낌을 한껏 주는 추위 속의 낙엽과 Halloween의 찬란한 가을을 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어두운 밖에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 소리가 나의 귀를 의심케 한다. 바로 ‘피해 없이 내려오는’ 잔잔히 빗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the last leaf clings to the bough, just one leaf..

 

¶  19차 레지오 사업보고:  레지오 단원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업보고 business report’, 일년에 한번씩 지나간 일년간 레지오 단원으로 했던 활동 실적을 총집계해서 꾸리아 월례회의 때 발표를 하는 것으로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며 계기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단원들이나 평의원들에게 별로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관행대로 하는 routine, 그저 해야 되는 것, 심지어는 귀찮은 것 정도로 생각되던 것이다.

이것이 올해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우선 내가 발표를 하여야 하는 단장이 되었고, 어떻게 이것을 발표할 것인가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소관’이 되었기에 생각을 더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 동안 ‘우리들’이 ‘뛰었던’ 모습들이 서기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정해진 form’에 주로 ‘숫자’들을 적어 넣는다. 그리고 이것을 단장이 꾸리아 평의회에서 ‘보고 읽는’ 것이다. 읽은 후에는 질문을 받고 답변을 하면 끝이 난다.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과정을 매월 겪는데, 어떨 때는 너무나 형식적으로 들려서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올해의 사업보고서 작성을 끝내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전 해의 것과 비교해 보면 단원의 숫자가 반으로 감소했으니까 활동도 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우려를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보고에는 글로 쓰게 되어있는 ‘운영 상황’ 난을 통해 지난번 꾸리아 단장과 면담을 했던 ‘자비의 모후 명예회복을 위한 특단 조치’에 관한 우리의 결심을 공적으로 알리기로 했다. 실명을 쓸 수가 없지만 아마도 당사자 (2명의 미친X들) 들은 아마도 짐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흥미롭기까지 하다.

 

바로 전에 print된 ‘따끈따끈’한 레지오 사업보고서, 일요일에 발표될 예정.

 

이렇게 올해의 사업보고 작성을 매듭지으며 나에게 도대체 레지오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새삼스럽게 생각을 해 보았다. 거의 8년 동안 뒤를 안 보고 달려왔던 것, 암만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 이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기에 나는 나에게 매일 놀란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의미다. 다른 설명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 달릴 수 있을까… 오직 그분만이, 성모님만이 아실 것이다.

 

 

Peaceful, serene Fort Yargo State Park

 

Workshop at Fort Yargo: 이런 색다른 workshop 에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언제였을까? 암만 머리를 굴려도 이런 모임에 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Workshop이니까 무엇을 배우러 간 것인데, 특색은 하룻밤을  Fort Yargo State Park resort cabin에 20여명 이상의 가톨릭 신자 형제, 자매들이 모여서 ‘놀고, 나누고, 배우는’ 그런 것으로 끝나고 난 지금도 사실  아직도 머리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이’구역장 workshop’ 은 2018년도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구역장들이 신부님, 사목회장단 들과 모여서 어떻게 성당을 구역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운영을 하는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좋은 기회인데, 특별히 나 같이 ‘경험이 전혀 없는 구역장’에게는 시기적으로 적절한 모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귀찮다’ 라는 외침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를 유혹하는 것, 이 칠십의 나이에 전혀 모르는, 그것도 대부분 나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그것도 하루 밤을 자면서.. 그것도 신부님, 자매님들도 같이… 우아~ 싫다, 갑자기 귀찮아진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역시 ‘레지오 성모님에게 등을 떠밀려’ 각오를 단단히 한 자세로 이 모임을 받아들였다.

 

Cabins at Fort Yargo

Fully nicely furnished cabin interior

 

1박 2일 예정의 이 workshop의 첫 날(밤)은 사실 친교(나눔과 여흥)로 거의 밤잠을 설칠 정도였는데, 서로 잘 모르는 구역장들이 친숙해지려면 이 방법도 좋을 듯 했다. 이 친교가 끝나고 난 후에는 거의 모든 참가자들이 거의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이날 밤 여흥 순서는 예측대로 노래방에 간 듯한 느낌이었고 가끔 신부님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날 전에 듣던 대로 신부님의 기타 style을 목격할 수 있었다. Strumming이 상당한 수준급이었고 노래의 chord는 거의  암기한 듯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 기타를 많이 치시는 듯 했다.  모든 사람들, 돌아가며 mic 를 잡고 신들린 듯 가라오케 노래, 춤을 추었다. 나의 차례가 오자 난감한 나에게는 역시 몇 곡의 익숙한 노래와, 통 guitar밖에 없었고, 신부님 기타를 빌려 70년대의  ‘젊은 연인들’을 불렀는데 갑자기 바뀐 70/80 style 노래의 느낌에 모두들 놀란 눈치였지만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칠순의 나이에 ‘젊은 연인들’을 부르는 것, 웃기는 것 아닌가 하는 어색함은 떨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하루 종일 교회에서 구역의 의미와 운영에 대한 심도 있는 workshop이 진행되었고 나는 이때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많은 조언, 경험담, 해결책 등 을 접할 수 있었다. 나에게 당장 떨어진 우리구역 운영에 대한 것이라 실감나게 곧 써먹을 수 있는 각종 tip을 얻은 셈인데 이것으로 비록 밤잠을 거의 못 잔 피로감은 엄습했지만 참가하길 너무 잘했다는 안도감으로 위로를 받았다.

앞으로 나는 ‘경험이 전혀 없는’ 신 구역장으로 20명 내외의 구역식구들을 이끌고 본당의 날 행사에 참가해야 하는 ‘무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나의 목표다.

¶  Waning Summer, already? 오늘 이른 아침 일년 365일 매일 하는 대로 바로 전에 켜진 전깃불 (6시 30분에 켜진다)을 의식하며 아래층 내 서재로 내려오는데 기억에도 조금 희미한 ‘싸늘함’을 느꼈다. 서재로 가니 써늘함을 더한 듯 느껴지고.. 아마도 올 여름 시작되고 처음 맛보는 싸늘함이었던가? 긴 바지가 어디에 있더라는 생각도 스쳤다.

그리고 달력을 보니 8월 3일.. 어찌된 일인가? 8월 초밖에 안 되었는데. 그리고 생각하니 며칠 전에 노오란 school bus가 아침에 동네를 오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이들이 집에 없어서, 학교들이 개학을 하는 것도 잊었나? 그렇구나.. 올해의 여름도 서서히 물러가는구나.. 한 계절이 서서히 또 물러가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았나? 아마도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려서 태양의 열기가 땅에서 거의 사라진 결과로 이렇게 싸늘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시 열기는 돌아오겠지만 며칠 뒤는 입추, 그 뒤로 말복이 가까워오고.. 한마디  올 여름도 서서히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그림을 상상하는 것, 이 시점에서 그렇게 조급하고 이상한 것이 아니다.

 

 

¶  장마 단상 斷想: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가끔은 폭포수 같이 퍼붓는다. 비를 워낙 좋아하는 나지만 어떤 순간에는 조금 겁이 난다. 혹시 우리 집에 홍수가 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우리 집은 우리 동네에서 낮지만 언덕 비슷한 곳에 있기에 심각하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억수, 장대배가 며칠 째 내린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예외 없이 꽤 내리고 있다. 가끔 보슬비로 변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줄기차게 내린다.

반세기전 나를 낳아준 어머니 대한민국에서 경험했던 장마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오른다. 요새도 그곳에 장마라는 것이 있을까? 50년이면 기후 system도 변할 수 있는 것일까? 들리는 얘기로 예전보다 조금은 더워졌다고 한다. 거의 ‘아열대성 subtropical’ 이라던가… 속으로 ‘설마’ 하는 생각도 든다. 기억에 7월 초부터 시작되었던 기억, 폭우가 쏟아지는 것보다는 그저 ‘구질구질’ ‘오락가락’하는 것만 두뇌 기억세포에 남아있다.

요새 이곳의 ‘장마’, 이것이 진짜 장마가 아닐까? 그 옛날 ‘장마의 기억’에 ‘남태평양의 열대성 저기압’ 어쩌구 했는데 이곳은 ‘멕시코 만의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뀐 것 뿐이다. 그 옛날의 장마는 젊었던 20대 초 혈기에 답답한 나날들이었다. 유일한 ‘밖의 휴식처, 다방’ 이라도 가려고 밖으로 나가려면 ‘구질구질’한 시내버스에 시달려야 하고, 조금 더 신나는 도봉산 등산도 비 속에선 너무나 처량맞은 것이다. 조그만 나의 온돌 방에 누워서 무언가 하려면 없는 것 투성이.. PC, 인터넷, smart-phone, cable TV.. 비슷한 것은 고사하고 cassette recorder도 희귀하던 시절, 그저 유일한 것은 흑백TV와 radio, Stereo recorder player정도로 정말 만사가 simple했던 시절. 하지만 나이 탓에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즐거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렇게 반세기를 뛰어넘는 두 종류의 장마를 비교할 수 있는 것, 역시 반세기를 뚜렷하게 비교할 수 있는 나이와 능력을 가진 사람만의 특권이다. 이렇게 세상은 공평한 것이다.

 

¶  Depression? 며칠간 우울한 느낌의 횟수가 부쩍 늘어간다. 느낌뿐이 아니고 육체적으로도 피곤함의 횟수가 잦아지고.. 결과적으로 매사의 능률은 떨어지고 기쁨도 횟수도 같이 떨어진다. 왜 그럴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코앞에 다가온 것들을 처리하는데 문제가 있었나?

예를 들면 지난 주말 이틀 연속으로 레지오 점심봉사에 매달렸던 것은 피곤했지만 보람을 느꼈지만,  ‘아마도’ 70의 나이에 조금은 무리였을지도 모르고 7월 중에 있었던 구역미사 준비 차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했던 것 등으로 피로가 쌓인 것은 아닐까?  혹시 골머리를 썩힌 것이 있었나? 7월 초부터 맡고 있는 구역장의 임무에 너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닌가?

사실 처음으로 경험하는 group leadership은 보람 반, 고민,실망 반 정도로 진행 중이지만, 어느 정도 self-control에 단련이 된 내가 조그만, 사소한 걱정거리로 휘청거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다른 걱정, 고민거리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인가? 있었다.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 나의 친구, 영혼의 짝.. Tobey가 내 옆에서 영원히 떠난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잠재의식 깊은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 이제야 인정을 한다. 충분히 나는 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문득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의식하면 미칠 듯하지만 곧바로 감정을 덮어버리곤 했으니까.. 결론은 한가지.. 세월과 시간 바로 그것이고 슬픔과 눈물을 감추지 않는 그것이 올바른 처방약이라는 사실.

 

¶  Sushi Yoko: 스시 요꼬, 스시 전문집 이름이 요꼬라는 뜻일까? 알고 보니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식당이었다. 요새 일본식당은 거의 비일본인들이 경영을 하는데 이런 집은 희귀한 case가 아닐까?  오래 전부터 Peachtree Industrial Blvd를 North로 drive하다 보면 바른 쪽으로 그 간판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는 이(동수)목사 부부, 이번에는 목사님의 제안으로 그곳에서 만나 점심식사를 했다.

지난 3월 초 이후 처음이니 거의 5개월 만난 목사님 부부, 무언가 더 밝아진 느낌을 받았다. 이날의 대화는 조금 더 일반적인 신앙적, 사회적이 화제로 소화하기에 큰 무리도 없었다. 비록 개신교와 천주교의 대화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 이목사님은 이날도 ‘귀향’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였다. 귀향이란 말, 참 매력적이고 감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생각처럼 쉬운 것일까.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좋은 것, 꿈일 수도 있지만 없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날 경험한 스시요꼬의 맛은 만족스런 것이었다. 스시도  ‘진짜’ 스시처럼 느껴지고 내가 처음 먹어본 나가사끼 짬뽕 (Nagasaki Chanpon)은 한마디로 색다른 부드러운 그런 맛으로 중국식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도 맵지 않은 그야말로 일본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과 비교적 가까워서 ‘값이 엄청 오른1‘ 한국식당대신 앞으로 이곳을 찾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역시 가까운 곳에 있고, 실내가 운동장처럼 넓은 Bakery Mozart에 가서 못다한 이야기와 ‘붕어빵‘ coffee로 이날 즐거운 만남을 끝냈다. 다음 만나는 시기는 언제인가.. 아마도 하얀 눈이 연상되는 대림절 12월 쯤이 아닐까?

 

¶  Car Connex Time: 거의 한 달을 미루어오던 2009 Hyundai Sonata 100,000 mile checkup을 이제야 하게 되었다. 오래 전의 기억에 차가  100,000 mile이 넘으면 수명이 거의 다 되었다고들 했지만 차 만드는 기술이 발전해서 요새는 그것보다 훨씬 오래 탄다고 들었다. ‘멋진 차, 고급 차’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이에 걸맞고, 안전한 그런 차에는 관심이 있다. 물론 우리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

현재의 차 Hyundai Sonata는 지난 9년 동안 우리 부부에게 별로 고장 없는 거의 완벽한 (transportation) service를 해주었다. 우리는 ‘효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Mr. Won (owner, master mechanic)은 우리 차가 비교적 ‘얌전하게’ 유지되었기에, 앞으로 몇 년간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다. 생각에 2~3년 정도 뒤 쯤에 새 차를 살까 하지만 요새의 새 차 값을 보니 장난이 아니어서 심각한 budgeting을 하여야 할 듯하다.

 

  1. 또라이 트럼프 무역관세 덕분에 엄청 오른 중국산 때문인가..

¶  서서히 길어지는 밤:   7월, 그것도 30일.. 허~~ 벌써 7월이 다 갔다는 말인가? 언제나 세월의 ‘가속도’에 놀라지만 이번은 그 중에서도 제일 빠른 느낌이다. 한 달이 거의 일주일도 안 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 7월은 나의 기억에서 정말 제일 바쁜 그런 나날들이었으니까 빠른 느낌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무언가 머릿속도 정리가 잘 되지 않은 채 지나간 느낌,  점점 한가해져야 하는 이 나이에 나도 조금 이해하기가 힘 든다.

이른 아침에 밖을 쳐다보니 조금 느낌이 다르다. 확실히 아침이 전보다 조금 어두워졌다. 낮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렇게 밤과 낮이 같아지면 또 가을이 시작되는가? 또한, 그림자들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인데 오랜 만에 보는 시야였던가.. 아하! 날씨가 흐렸구나. 작열하는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서늘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거의 매일 code Orange같은 경고가 나올 정도로 공기가 메말랐던 나날을 보낸 것이다. 한차례 시원한 소나기가 조금 그리워지는 7월말 중복이 지나가고 말복을 향한 본격적인 늙은 여름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면 다시 계절은 바뀔 것이고..

올 여름은 비교적 시원한 편이다. 비가 자주 와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으로 ‘새로 설치한’ 2대의 에어컨, 이제는 하루 아침에 고장 나는 일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두 다리 쭉 뻗고 찬 공기를 만끽하니 더욱 시원한 느낌이다.

 

¶  레지오 점심봉사:  지나간 주말(어제, 그제)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점심봉사로, 피곤하지만 보람 있는 이틀을 보냈다. 일년에 한번씩 레지오가 하는 점심식사 봉사팀에 우리가 포함되었는데 3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되는 것이라 사실 큰 부담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봉사팀의 구성은 인원수가 워낙 적어서 (참가 3 쁘레시디움이 모두 최소한의 적은 단원을 가졌음) 신경이 쓰였는데 다행히 꾸리아에서 ‘전폭 지원‘을 해 주어서 무사히 성공리에 끝을 냈다. 또한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레지오에서 이번의 봉사팀에는 의외로 형제님들이 그런대로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이날 점심은 지난 6월 우리 구역 점심봉사 때 했던 ‘모밀국수’를 했는데 그때의 경험을 100% 활용을 하였다. 물론 대부분의 모밀국수 menu idea는 연숙으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모두들 열심히 협조해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이번의 일, 우리는 2일 거의 full-time으로 일을 한 셈인데, 역시 조금 무리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우선 우리들의 나이도 그렇고,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Moderation, moderation을 motto로 살아왔던 우리들, 이런 것들이 시험 case인가.. 한마디로 take it to the limit이란 Eagles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이날 모든 일들을 마치고 귀가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아픈 후유증을 달랬지만 역시 나이 탓인가… 쉽게 풀리지를 않는다.

 

¶  1년이 가까워 오는 목요회:  7월의 마지막 목요일 밤 8시 반에 어김없이 우리 목요회 멤버들이 ‘궁상맞게’ 모였다. 다 늙은 남자 3명이 목요일 그것도 밤 8시 넘어서 외식을 한다는 것은 암만 그림을 예쁘게 그려보아도 예쁠 수가 없다. 하지만 모임은 계절을 몇 번 거듭하면서 조금씩 덜 궁상맞게, 더 예쁘게 탈바꿈을 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같이 느끼는 것 또한 경이로운 사실이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모였던 것이 시작이었고 언제까지 계속될 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지만 무언 無言 속의 표정들은 ‘아마도’ 오래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명 모두 너무나 다른 사연과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고 풀어나가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이런 모임에서 그런 문제들을 정면으로 풀어나가는 것,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가벼운 화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야기로 2시간 정도를 보낸다.

살기가 너무 힘든 때에는 아무 말 못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거의 일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시점에서 우리는 서로를 많이 알게 되어가고 이 모임은 확실히 우리에게 어떤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얼마 전부터 오랜 냉담을 풀고 귀향을 한 형제가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모였을 때는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즐겁고 유쾌한 그런 모임이 되었고, 1년이 되는 9월에는 모두들 ‘무언가 기념식’이라도 하자고 의견을 모으며 늦은 밤 헤어졌다. “친구들이여 우리 그날까지 열심히 삽시다!

 

¶  장례 예배:  장례, 연도 같은 연령행사가 뜸했던 요즈음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음 訃音 을 듣게 되었다. 연숙의 이대 梨大 선배 김경자씨의 남편이 타계한 것이다. 이분은 1990년대 아틀란타 부동산업계의 선두주자로 잘 알려지신 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식이 뜸해지고 우리도 거의 잊고 살게 되었다. 지금 사는 마리에타 우리 집은 1992년 초에 이분의 소개로 사게 되었던 사연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집 구경을 처음 할 때 서로 만났던 McDonald’s,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인데 갈 때마다 가끔 이분의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이분들은 개신교 배경의 집안이라서 교회에서 장례식을 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장의사 chapel에서 해서 그곳에 다녀온 것이다. 천주교 장례미사와 너무나 차원이 다른 ‘간단한 예식’이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은 고인의 막내 동생이 성당에 다닌다는 사실, 전에 교리반 교사로 연숙과 같이 일했었다는 원선시오 형제였다는 사실, 이날 얼굴을 보니 사실 고인과 얼굴이 닮긴 닮았다. 나는 이 형제님을 잘 모르지만 ‘접근하기가 어려운’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Take it to the limitThe Eagles

 

¶  Jim Beam & Charlie Chan: 근래에 ‘공적인 활동’이 늘어난 이후 느끼는 것은 바쁘고 보람된 일들 뒤에 ‘꼭’ 찾아오는 선물 같은 ‘심도 깊은 평화, 망중한의 텅 빈 머리’ 이것들 중에도 망중한 忙中閑의 기쁨 중에도 이 두 단어가 바로 그것들이다. 우리 집에서 있었던 구역미사를 위해서 liquor store까지 가서 사온 ‘양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Bourbon의 명품, Jim Beam이었다. 그때 ‘몰래’ 사온  세 가치의 cigar도 나의 기대를 자극하는 즐거움이었다.  물론 양주는 신부님 접대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로 거의 없어지질 않아서 그 이후 cigar와 함께 망중한의 즐거움으로 쓰였다. 사실 혼자서 즐기는 것이 되었지만 이럴 때 먼 옛날의 친구들과 어울려 마실 때를 회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 지나갔다. 모든 즐거움 들은 다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것, Charlie Chan.. 수십 년 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TV를 보면 그 당시의 nostalgic channel 역할을 하던 channel에서 이런 류의 TV drama가 있었다. 평생에 이런 Charlie Chan이란 말 조차 못 들었는데 그 옛날 (1940년대)에 어떻게 ‘짱께’가 주인공을 나오는 TV program이 있었을까 의아하기만 했다. 그것을 요사이 Youtube를 통해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요새 기준으로 보면 비록 범죄추리극이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순진한 장면들 투성이.. 그러니까.. 마음 놓고 마음 안 상하고 ‘즐길 수’있는 그런 것, 특히 편히 쉴 때 이것을 보면 마음 속 깊은 평화까지 느끼게 된다.

 

Peace and joy with Jim Beam & cigars..

Peace with Charlie Chan time

 

¶  Muggy & Wet, then: 지나간 5월 중순부터 이곳은 Tropical Storm Alberto의 영향인지 완전한 ‘우기(雨期)’, 그것도 ‘열대성 熱帶性’ 대기가 완전히 이곳을 뒤덮어서 수시로 내래는 폭우, 폭풍은 이제 아주 익숙해졌고 며칠 전부터는 드디어 ‘끈끈한 밤’ pattern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air conditioner가 없으면 밤잠이 괴롭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느낌이 아주 달랐다. 공기 속에 물기가 하나도 없는 그런 것, 피부가 빠삭빠삭하게 느낌이 산뜻했다. 아침 6시 반 쯤 backyard엘 나가니 이건 다리가 추울 지경이 아닌가? 그렇구나, weather pattern이 결국 바뀌었구나… 하는 반가운 느낌으로 조금은 머리가 가벼운 새벽을 맞았다.

지난 2~3일 간 우리 집 Tobey가 토하고 설사를 하는 등 아주 아파서 나의 기분도 축~ 쳐지는 그런 날들이 되었다. 말 못하는 동물의 아픔은 그저 짐작으로 알 뿐이다. 하지만 병원엘 갈까 말까 하는 것은 고민 중의 고민이다. 최대한 머리를 써서 자가치료를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이 녀석 간호하며 희비쌍곡선이란 말이 어쩌면 그렇게 맞는 말인지..

피곤한 김에 어제 일요일, 예수성체성혈 대축일, 을 skip할까 하는 유혹이 강했지만 다른 이유로라도 가야 했다. 본당 구역장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신구임 구역장은 필수로 참석하라는 ‘지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비록 7월에 나의 임기가 시작되지만 이렇게 해서 나도 서서히 ‘구역 business’ 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별로 크게 생각할 것 없다. 순명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2명의 ‘만장일치’ forced holiday를 맞기로 했다. 마라톤을 하려면 이런 조치도 필요하다. Daily Mass, YMCA workout, eatout lunch모든 것에서 오늘 하루는 ‘해방’되고 나니 또 다른 느낌의 세상이 느껴진다. Tobey의 설사도 멎고 solid food를 조금씩 먹기 시작하고.. 감사합니다. 그렇다. This shall also pass… 이 모든 것 다 지나가리라..

이런 것들로써 올해의 ‘여름’은 시작되고, 나의 몸과 마음도 이런 기후 [끈끈함, a/c noise, 폭우]에 거의 적응을 하였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물론 ‘낙엽’을 떨어지는 사색의 가을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뜻, 이것도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자연이 변하는 것은 언제나 희망인 것이다.

 

¶  문인화 입선 자축@Miss Gogi: 다솔(연숙의 문인화 예명)이 몇 달 전에 ‘끙끙거리며’ 열심히 그려 출전했던 문인화 두 점이 입선이 되었다. 대한민국 전라북도 서도대전 이란 곳에서 입선통지가 왔고 며칠 전에는 그 작품들이 이곳에 무사히 도착을 해서 우리 집 ‘meeting room’에 걸어 놓았다. 다솔이 이 ‘것’을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나… 최소한 7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오름과 내림새를 거치며 그려왔고 취미의 level을 고수해 왔는데 문인화 친구 ‘예랑’씨를 만나며 ‘대전 大展’ 을 꿈꾸게 되었다. 그 ‘예랑’씨는 거의 pro의 정신으로 그림을 그렸고 결국 대한민국 대전에서 특선을 받기도 했다. 그런 ‘친구’의 영향을 받아 다솔도 결국 작년에 한국미술협회 대전주최 미술대전에 1점, 올해는 서도대전에서 2점이 ‘입선’되는 기쁨을 얻게 된 것이다. 별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문인화 문화권의 변방에 있는 이곳에서 이것은 뜻 깊은 일이 아닐 수가 없고, 앞으로 골치 아픈 일들을 내려놓은 후에 전념을 할 것을 찾은 보람도 있을 듯 하다.

이런 것은 가족적으로 반드시 자축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나간 Memorial Day저녁에 온 가족 (나라니의 Lucas 포함) 이 도라빌 H-mart 옆에 있는 고기전문집 Korean BBQ Miss Gogi 란 곳에서 푸짐하게 오랜만에 고기요리를 즐겼다. 이런 식의 ‘신개념의 Korean BBQ steak house’는 아마도 재미 신세대 한국인들의 머리에서 나온 듯 싶은데 거의 fusion style, 그러니까 Americanized 된 ‘신세대 한국음식점’으로 보인다. Mom & Pop 의 구태의연한 수많은 한국인 상대의 전통 한국음식점도 우리 같은 세대에게 필요하겠지만 이런 새로운 idea는 역시 ‘우리의 세대는 이제 다~~ 갔구나’ 하는 자조감 自嘲感을 느끼게 한다.

Korean BBQ, Miss Gogi

 

¶  아틀란타 성체대회: 2018년 6월 2일 Atlanta Eucharistic Congress, 아틀란타 성체대회, 2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제는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진 전통적이고 유서 깊은 가톨릭 연례행사가 되었다. 2011년부터 우리는 참가했지만 2년 전 행사는 예외적으로 불참을 한 적도 있다. 그때 불참한 이유는 기대했던 어떤 speaker가 갑자기 못 오게 되었음을 마지막에 알고 너무나 실망을 해서 protest한다고 불참한 실수를 한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주최측의 scheduling 실수가 아니고 그 speaker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기도 했다.

Mother Olga

그 speaker의 이름은 요새 미국 가톨릭의 ‘떠오르는 별’ Bishop Robert Barron이고 그 유명한 주교님이 이번에 결국은 연사로 왔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기를 쓰고’ 참가를 해야 했다. 사실 이번에 오는 speaker들은 하나같이 쟁쟁한 분들이었다. 또한 7년 전에 우리가 처음 참가했을 때 왔던 ‘아주 조그만 키’가 인상적인 Boston (Mass.) 에서 오신 Mother Olga를 또 볼 수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 우렁찬 노래의 기도로 시작하는 그 수녀님, 체구에 비해서 어쩌면 강론이 그렇게 힘있고 심금을 울릴까…

하지만 역시 이번 성체대회의 꽃은 역시 Bishop Robert Barron 이었다.  제일 마지막 차례로 그분이 등단했을 때 반응이 무슨 rock star라도 온 듯한 그런 열기였지만, 사실은 그분의 ‘지식적, 이론적’이지만 ‘신심이 담긴’ 강론은 정말 더 인상적이었다. Youtube로 보던, 매일 받아보는 daily reflection과 하나도 한치도 다름이 없는 일관된  message 바로 그것 이었다. 얼마 전에 끝낸 DVD ‘Mass‘를 의식하며 이날의 주제는 ‘천주교에서 제일 boring하게 느껴지는 미사’에 대한 것,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100% 200% 공감, 동감하는 주제요 강론이었다.

왜 이분이 그렇게 남녀노소를 막론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  나의 추측이 맞는다면, ‘신세대가 수긍할 수 있는 이론적 강론’ 바로 그것이 아닐까? 특히 무신론자들과 ‘신사적 논쟁’하는 그의 이론은 정말 인상적인 것이다. 해박한 그의 디지탈 시대에 맞는 apologetic 은 아마도 현재 가톨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올해 성체대회는 이분을 직접 본 것으로 참가한 보람을 느낀 그런 기회가 되었다.

rising star, Robert Barron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전례부장, 교육부장 그리고 주임 이재욱 신부님 모두 morning procession에 참가 하였다

연인원 30,000명이 참가한 Georgia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  5월 목요회: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모여서 하루의 영업을 서서히 닫기 시작하는 시간에 식당을 찾아 3명의 오래된 지기의 남자들이 모여서 지나간 달의 이야기를 나눈다. 일명 목요회, 이것이야 말로 odd group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런 점이 독특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전혀 다른 세 사람… 정말로 전혀 닮은 것이 거의 없다.

이번 달에는 Pleasant Hill Road 한인 town 입구에 있는 깨끗한 느낌의  ‘명가원’에서 모였다. 막내격인 S 형제, 누가 모른다고 지난 달에 이어 얼굴이 펴질 줄을 모른다. 아마도 지난 몇 달을 그렇게 우울한 나날들을 보낸 듯 보인다. 그와 반대로 나의 동년배 연대동창 이 형제는 의외로 얼굴이 밝을 대로 밝다. 무슨 좋은 일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덕분에 대화가 활기에 찬 것으로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coming home’ 의 hint를 비추었는데 의외로 전과 다르게 open 된 모습을 보인다.

장구한 신앙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동문형제, 어쩌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지.. 올해 9월이 목요회 ‘연륜’ 1년이 되는데 그때까지 더 좋은 결과를 얻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어린  S 형제’, 60대가 넘었으니 과히 어린 것은 아니지만, 어떻게 아직도 ‘세월의 교훈’을 느끼지 못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 커다란 희망은 접었지만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하느님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Mother’s Day 2018

¶  Mother’s Day 2018:  미국에서 유래된 오랜 전통의 Mother’s Day, 생명이 약동하는 포근한 5월의 둘째 일요일. 그 옛날에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도 ‘어머니 날’이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어린이날에서 사흘이 지난 5월 8일이었다. 고국을 떠날 때까지 분명히 있었고 어머니 날의 선물을 나의 어머니께 드렸던 마지막 기억도 있다. 그것이 그 후에 없어졌고 ‘아버지가 꼽사리1 낀, 어버이 날’이라는 거북한 날로 만들어 버렸다. 아직도 나는 이것은 honest mistake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바꾸어버린 ‘이유’는 분명히 있었을 것은 알지만 아직도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분명히 다른 존재인데…’ 라는 아쉬움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미국의 전통적 Mother’s Day와 더불어 따로 6월의 3째 일요일에 Father’s Day를 만든 것 ‘이곳 사람들’의 생각을 좋아한다. Motherhood와 Fatherhood를 구별하는 것은 타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 나는 ‘고유한 의미의 가정’을 ‘지나치게’ 걱정한다. 말도 그럴듯한 LGBT 인간2들이 혹시라도 Mother와 Father라는 말도 없애자고 $$$을 억수로 써서 유명한 lawyer라도 매수하는 것은 아닐까… 와~ 2018년에 생각하는 Mother의 의미는 정말 해괴하게 복잡하기만 하다.

어머니 날은 미국 West Virginia에서 출발했다. 남북전쟁에서 봉사자로 일을 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서 Anna Jarvis가 제안하고 기념을 하기 시작했고 1914년에 미국의 ‘공식 기념일’로 Wilson대통령이 선포를 하고 매년 5월 둘째 일요일을 Mother’s Day로 제정한 것이다.  Anna Jarvis가 밝힌 이유는 간단하게 ‘a mother is the person who has done more for you than anyone in the world‘ 였다. 단순하지만 설득력이 있는 이유였다.

그녀가 밝힌 이름은 Mother’s Day였고 결코 Mothers’ Day가 아닌데 이유는 ‘자기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기리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아이들의 엄마를 생각하기 전에 나의 어머니가 우선적이라는 것.. 조금 까칠한 논리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나를 낳아준 어머니’, 그녀 존재의 이유를 먼저 생각하는 것은 100% 옳다고 본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5월 13일, Mother’s Day 일요일인데다 우리의 천상의 어머니 Virgin Mother (성모 마리아)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 (Fatima, Portugal) 에서 3명의 ‘아이들’에게 발현한 날이기도 해서 더욱 Universal Motherhood의 의미가 돋보인다. 오늘은 거의 의도적으로 동네성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엘 갔는데, 결과적으로 성모님에게는 조금 송구스럽게 되었다.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가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있는 날이라 원래는 그곳엘 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례없는 파격적인 결정에 우리가 무리 없이 공감한 이유는, 그 월례회의에서 ‘성모님의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 을 미리 느낄 수 있었고, 오늘 Mother’s Day의 기분을 깨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평화가 하수구로 빠져나갈 것 같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무는 의무, 불참은 불참, ‘총사령관’ 성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금할 수 없다.

오늘은 작년과 같이 ‘아이들’이 와서 엄마를 데리고 나가 외식을 하고 들어왔다. 오늘 그들이 갔던 식당의 분위기는 안 보아도 그림이 그려진다. 모두들 일년 간 ‘불효’ 했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자식들이 엄마를 ‘끌고’ 나왔을 듯 하다. 그렇게 해서 잠시나마 나만의 안식일을 맞이했던 오늘, 잠깐이나마 나의 하늘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었다. 효자건 불효자건 상관없이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후회 안 할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지난 날에 비해서 조금 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아니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아니 희망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굳게 믿는 사실이 되었다. 올해 어머니 날에 다시 확인하고 싶은 ‘진리’는 바로 이것이다.

 

  1. 그 당시의 유행어로 슬그머니 모임에 끼어드는 얌체 같은 느낌의 말
  2. 이들은 인간본성을 포기한 subhuman이라고 나는 믿는다.

 

 

¶ 성모성월: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이렇게 시작하는 가톨릭 냄새가 듬뿍 담긴 성가, ‘성모성월의 노래’가 은은히 귀에 들려온다.  그렇다.  지금은 5월의 시작이고, 성모성월이 된 것이다. 그것도 6일이나 지난 오늘 일요일(a.k.a., 주일)은 이 노래 가사 중의 ‘화창한 날에..’ 를 100% 닮은 그런 날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날씨가 이렇게도 화창하고 멋있는 것일까?

5월은 가정적인 달, 옛날 옛적 어린이날부터 시작해서 어머니 날까지 있는 포근한 달이었다. 그런데다가 우리 가톨릭에서는 다른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달이기도 하니, 어찌 포근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있으랴.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의 기일도 5월에 있고, 가톨릭 전례력에서는 부활시기의 절정에 도달하는 그것도 5월에 있어서 한마디로 ‘살 맛’이 다시 돋아나는 때를 맞았다.

오늘은 원래 Holy Family ‘동네’성당 주일미사에 가려고 예정을 했지만, ‘불행히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을 갈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속한 레지오 ‘자비의 모후’가 그곳의 ‘주차정리’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레지오에서 정 情 이 무척이나 떠나버린 이마당에, ‘그런 것’ 무시하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발동했지만, ‘총사령관’ 성모님의 얼굴이 다시 떠오르며 유혹을 물리치고 주어진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아침 8시 30분 주일미사엘 가게 되었는데, 나로써는 너무나 참신하고 깨끗한 느낌으로 미사를 보고 나서 점심식사까지 했다. 남대문시장처럼 복잡한 10시반 미사에 비해서 사람이 훨씬 적었던 것과 평소에 잘 안보이던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 것들도 좋았지만, 그보다도 더 좋았던 것은:  ‘보기만 해도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되는, 정말로  싫은 인간들’ 그 중에서도 레지오 미친년의 ‘가오’가 안 보이니 이건 한마디로 천국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앞으로 이 8시 30분 미사로 바꿀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이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에게는 한마디로 ‘백일몽’에 가까운 희망이었다.

 

Big Wedding: 어제 토요일은 장례미사가 아닌 혼인미사엘 갔다. 레지오 활동으로 장례식에 너무나 익숙해진 우리들, 이런 결혼식은 그야말로 생소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과 결혼식에 거의 관심이 없는 두 딸들이 있는 우리들이어서 가끔 이것을 잊고 살고는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들도 ‘겪어야 할’ 큰 일이라는 사실은 우리들의 잠재의식 속에는 항상 있어왔다.

어제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혼인미사, 나는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끝까지 지켜 보았다. 현재의 ‘해괴한 추세’를 정면으로 맞서려는 듯한 한마디로 ‘거대한 행사’였다. 그 큰 대성전이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룬 것, 나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성당 청년부 활동에서 만난 이 행복한 couple들, 부러운 만남으로 보였다. 부모님들이 그런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으리라 생각하니, 우리는 어떠했는가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이 ‘혼인성사’는 부모님들의 정성과 사랑이 결집된 결과라고 나는 보았다.

신부측 가족이 우리 구역의 중요 멤버였기에 참석을 한 것이지만 신랑측은 그보다 더 잘 알려진 현직 사목회장이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혼인 미사와 피로연까지 모두 참여를 하였는데, 피로연에서 보니 성당 공동체의 ‘알만한 사람’들의 얼굴은 거의 다 그곳에 모인 듯 했다. 미국식의 ‘조그마한 뒤뜰’에서 하는 결혼식에 익숙한 탓에 이런 ‘초대형 결혼식’은 아마도 당분간 인상적으로 머리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

 

도대체 얼마 만인가? 지난 해 ‘레지오 미친년 사건’ 이후 거의 잊고 지냈던 Roswell Nursing (& Rehab) Center에 계시는 박안나 자매님.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 자매님을 정말 오랜 만에 방문했다. 식구들은 많지만 집에서 간병하는 것,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래서 이런 ‘시설’들이 필요하고 생긴 것이고 프로 간호인들의 간병을 받는 것인데 문제는 시설마다 service의 질이 다르고 어찌 가족이 있는 집과 그 환경이 같을 수 있을까.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의 머리 속의 혼란한 생각은 이런 것이다. 전혀 현실을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은 자기의 주변, 환경을 어떻게 인식을 할까.. 분명한 것은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로 보고 대응을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 ‘젊은 할머님’, 이날 본 모습은 더욱 나빠진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방문할 때는 그런대로 우리를 알아 보시는 듯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날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전에 같이 방을 쓰셨던 2명의 할머님들 그 동안 모두 타계를 하셨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이곳은 그 정도로 중환자들이 계셨던 곳이었다. 모두 ‘치매성’ 환자들이었지만 신체상으로 큰 병은 없었던 분들이었는데 퇴보하는 두뇌도 생각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 안나 자매님, 전에 뵈었을 때는 활발하게 주위를 돌아다니셨는데 지금은 거동이 완전히 어려워져서 어둠침침하게만 보이는 방 안의 침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가족들이 할머니,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모를 리가 없겠고,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으니.. 침울한 심정으로 그곳을 나올 때, ‘저 자매님이 만약 나의 어머님, 누님이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괴로운 생각이 나의 머리 속을 하루 종일 맴돌았다.

¶  교동학교 형제  Birthday Party Hangover: 새로 사귄 형제친구, 서울에서 아래 윗동네에 위치한 두 국민학교를 같은 시기에 다니던 동갑을 만난다는 것은 나의 경험으로 참 희귀한 일 중에 하나다. 몇 년 전에 성당에서 우연히 돼지띠 동갑도 만났던 즐거운 경험이 있었지만 곧 헤어지게 되어서 너무 아쉽기만 했다. 왜 이렇게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이 없을까 의아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알고 보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공동체 이곳 저곳에 적지 않게 그들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나였다. 내가 그들을 못 찾은 것이고, 대부분은 신심단체가 아닌 친교단체에 속해 있었기에 그 동안 그들이 ‘숨어 보였던’ 것이다.

사람은 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나이고하 高下 를 막론하고 잘도 어울리던데, 나는 그것이 체질적으로 불편한 것.. 자라난 환경 때문인가?  작년에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고 ‘입회’를 한 60+ group 등대회, 나에게는 한마디로 awakening 같은 것이었다. ‘다른 세계’를 보는 듯한 그 느낌, 아직도 계속되는 것이며 나는 사실 ‘즐거운 우려’의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동갑류 형제, 자매들을 ‘무더기’로 만나게 된 것은 나에게 timing이 아주 좋았다. 명색이 신심단체라는 곳에서 ugly하고 극단적인 위선을 통째로 경험을 했기에 아예 내숭떠는 모습이 훨씬 적은 친교단체에 신선함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가?

서울 종로구의 노른자위에 위치했던 국민학교, 교동학교 출신, 그것도 동갑의 형제님을 이곳에서 만난 것,  오랜만에 가물에 단비가 내린 듯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내가 다니던 재동국민학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같은 때, 비록 짧았던 시절이었지만 같이 뛰고 놀고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나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뒤 덮인다.

교동국민학교는 나의 원서동 죽마고우 유지호와 ‘시자 누나’가 다녔고,  천도교 건물, 덕성여대, 우리들의 ‘문화전당’, 문화극장이 바로 앞에 있어서 사실 그 시절 그 주변의 광경들은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로 익숙한 곳이었다.

나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꼭 ‘어느 국민학교 나왔느냐’ 는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질문을 하곤 해서 어떤 사람들은 웃기도 한다. 중 고교나 대학교를 묻는 것은 당시의 ‘입시지옥’ 풍토를 생각하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국민학교는 전혀 문제가 없는1 순진한 화제가 아닐까?

이렇게 새로 만난 ‘교동형제님’ 의 칠순 생일 party에서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푸짐한 음식, 술, 얘기를 즐겼는데.. 문제는 남자들만 앉았던 table에서 ‘예의 정치, 시사토론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술을 평소보다 더 마셨던지, 그 다음날은 하루 종일 멍~한 기분으로 ‘반성, 자숙’의 날로 보냈다. 피곤하긴 했지만, 동갑류 모임의 즐거움은 아직도 잔잔히 남고, 무척 오랜만에 느끼는 것, fraternity 형제애, 남자들만이 나눌 수 있는 정은 여자들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하고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또 오면 적극적으로 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  Only God & Time:  지난 목요일은 4월 첫 목요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저녁 미사 후에 성시간이 있는 날이었고 연도가 있던 날이었다. 전날 ‘음주’의 여파로 꼼짝하기 싫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가라, 나가라..’ 하는 음성이 계속 들리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이날은 빠질 수가 없었다. 미사나 성시간을 그렇다 치고 연도는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날 연도는 20대 중반의 한창 나이에 ‘요절 夭折’을 한 청년을 위한 것이었다. 그 젊은 나이로 잠자는 중에 사망을 했다는 사실이 사실은 정말 믿기 힘든 것이었다. 사연이야 어떻다 치고 그 부모들의 심정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다. 사고, 사고 하지만 이런 사고는 부모로써 정말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다. 나의 딸이 이런 일을 당했다는 끔찍한 상상은 사실 상상을 하기도 벅찬데..

이 부모님들은 사실 우리가 아틀란타로 내려오기 전에 잠깐 살았던 Madison (Wisconsin)에 사셨다고 해서 반가웠다. 물론 우리가 그곳을 떠난 후부터 그곳에 사셨고, 같은 한인성당에도 다녀서 우리가 알고 지내던 분들을 많이 알고 계셨던 인연이 있다.

작년 이맘때에도 비슷한 사고로 아드님을 잃었던 자매님이 있어서 연도를 했지만 사실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연도의 위력은 참 대단한 것인가.. 그렇게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지만 유족들도 마찬가지라 생각 되었다. 그저 생각한다… 왜 그런 고통이.. 그래서 하느님만이 ‘왜?’ 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는 것,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시간’이라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  참,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  Spring roll & wine,  Impromptu style: 어제는 성당 휴무관계로 연기된 레지오 주회합이 있던 날이었다. 화요일에서 금요일로 바뀐 것은 이미 전에 경험을 해서 별로 다른 느낌이 없는 것인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정오 미사 후 맛있고 푸짐한 점심2 생각을 하며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오는 대신, 다른 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가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는 아주 희귀한 것이다. 저녁 초대를 받기는 해도 평일에 점심초대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성당에 부부신자는 많지만 항상 같이 다니는 case는 사실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 couple이 그 중에 하나다. 우리보다 나이는 한참 밑이지만, 그 동안 우리와 그런대로 ‘웃는 모습’으로 대하던 부부, 요새 보면 전 보다 더 사이가 좋아 좋아 보여서 보기에도 좋았다. 자매님은 본당의 각종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를 하고, 신심은 참 부러울 정도다.

 

 

전에는 성당 근처에 살았지만 년 전쯤 비교적 먼 곳으로 이사를 갔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보는 부부, wife끼리 우연히, 그야말로 impromptu, 지나가는 말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그것도 자기의 집에서.. 이런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닌가? 거창하게 계획 만들지 않고 스쳐가는 생각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과 식사 하는 것.  비교적 drive 하는데 시간을 좀 걸렸지만 멋진 country club 내에 있는 예쁜 집에서 한가하게 Spring roll 과 wine으로 시간을 보낸 것, 두고 두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될 것이다.

 

  1. 하기야 이곳도 그 후에 사립국민학교가 나타나며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2. 우리는 평소에 저녁을 안 먹기 때문에 점심이 제일 양이 많고 푸짐하다.

Jesus, into Passion Week

 

올해, 2018년의 성지주일(聖枝主日), 종려주일(棕櫚主日), Palm Sunday 는 blog 제목 그대로, 비에 젖고 싸늘하고 온통 쫓기는 듯한 그런 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아침, 기온마저 싸늘한 것이 오래 전 같았으면 따뜻한 방 책상 앞에서 향기 짙은 coffee를 한없이 마시며 백일몽을 꾸고 싶었을, 바로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죽으러’ 들어가시는 날인데,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어떻게 참혹한 죽음을 알면서도 사명을 완수하러 죽음의 행군을 하셨을까.. 인간적으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렇게 호산나를 외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이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을까.. 이제는 이해가 간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이날은 2018년 가톨릭 신앙 의미의 최 정점인 부활주일을 향한 성주간의 첫날이기도 하지만 다른 일, 행사 등등이 ‘모조리’ 겹쳐서 도저히 그런 ‘도피 심리’는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우리 구역이 성당 점심봉사 차례였고, 본당청소의 날, 레지오 아치에서 행사 등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구역 점심봉사나 본당 청소는 pass할 만도 했지만 올해는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미안해서였을까.. 

하지만 이날 제일 중요한 행사는 역시 레지오 아치에스 행사였다. 올해로 20차를 맞는 큰 의미 있는 행사다. 레지오는 로마 군대의 조직을 본 딴 것이고 성모님께 충성을 서약, 맹세하는 엄숙한 행사로서 보통의 신심단체에서는 찾기 힘든 행사다. 이것을 빼먹는 것은 한마디로 충성이 결여된 군인과 같은 것인데 나는 작년에 그런 일생일대의 실수를 했다. 이유는 레지오의 ‘왕마귀‘라는 인간이 벌린 해괴한 행동에 너무나 놀라고 실망을 해서 레지오를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기에 그런 경솔한 실수를 한 것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올해는 ‘절대로’ 그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고 결심을 하였고 결국 오늘은 큰 문제없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이제 성주간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성삼일, 수난감실 성체조배 같은 heavy급 행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끝나면서 우리는 ‘초자연적 중의 초자연적 기적,  인간 부활’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Spring at Saybrook Court

 

¶ Spring finally comes: 유난히도 추웠고 (아직도 싸늘한) 길게 느껴졌던 겨울이 공식적으로 끝이 났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이 3월 20일1이었다.

봄의 시작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이때 내가 할 일이 하나 있다. 나의 blog site의 header art picture를 ‘봄’의 그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site는 이런 식으로 일년에 네 번을 바꾸는데,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세월의 흐름이 그렇게 ugly 하지 않다는 느낌을 주고 받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거저 받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 이런 때 다시 한번 행복한 마음으로 새기는 것,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받고 싶은 것이다.

이 header art에 담긴 ‘봄의 모습’은 우리가 사는 집, cul-du-sac 에 있는 neighbor house들 초봄의 모습과, 비가 내린 후 blacktop에 물빛이 반사되어 흡사 커다란 ‘연못’을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 잘 어울려서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하지까지 봄은 무르익어갈 것이다.

 

 

¶  Kafkaesque March day: 지나간 화요일 주회합에는 일년 만에 꾸리아 순방이 있었다. 이날 꾸리아 간부들의 방문을 맞으며 일년 전 같은 때를 기억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 당시 blog post를 기억하면서 Kafka를 연상시키는 ‘해괴한 사건’2을 다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에게는 ‘3월의 악몽’ 으로 뇌세포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 해괴한 사건, 그 사건의 장본인은 작년 8월의 ‘레지오 미친년 사건’과 더불어 ‘2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로 내 개인 역사에 당당히 남게 되었다.

꾸리아의 위상을 완전히 진흙탕 속으로 떨어뜨린 그 사건의 여파로 나는 심각하게 레지오를 포기할 생각을 했었고 결과적으로 레지오 아치에스 acies 행사까지 포기하는 실수도 범했다. 지금은 조금 감정적이었던 그 당시를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 ‘장본인 왕마귀’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절대로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누구건 간에 레지오를 분열시키거나 떠나게 만드는 것은 ‘성모님 정신을 거역하는 심각한 죄’ 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는다.

이런 사건들의 원인을 쉽게 찾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단원 교육’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 레지오는 모두를 저질단원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악몽을 떠올리며 이날 다시 맞은 꾸리아 간부들, 특별한 문제없이 방문은 끝났고,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 작년 같은 사태가 재발하게 되면 즉시 video로 기록을 남겨 Youtube로 공개할 것을 밝힌 후,폭력으로 쫓아낼 각오‘까지 다질 정도로 나는 ‘아직도’ 감정이 격해 있었다. 이제는 이런 일들,  나에게 조그마한 피해망상증 paranoia 이 생겼는지, 정말 싫고 피하고 싶은 일들이 되었고 나를 조금씩 성모님의 군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음도 느낀다.

 

 

 

¶ 목요회 친구들: 6개월이나 된 ‘장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목요회 모임이 이번 달에는 마지막 목요일이 아니고 세 번째 목요일에 모였다. 마지막 목요일인 ‘성 목요일’에 떨어졌기 때문에 한 주를 앞당긴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조금 늦은 시간이지만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도밍고 형제가 난색을 표명해서 예전 대로 밖 (식당)에서 모였다. 몇 개월 전에 밤에 차 사고를 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깜깜한 늦은 저녁시간에 마리에타로 drive하는 것이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거의 20년 전에 온 적이 있겠지만 아무리 요새의 technology, GPS와 Google Map이 있어도 밤에 이곳의 불규칙적인 residential area를 drive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을 것이다.

칠십의 나이는 확실히 ‘밤중의 운전’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서서히 실감한다. 나만의 느낌이 아니고 주위의 동년배들도 거의 같은 의견이다. 그래서 점점 mobility는 떨어지게 되지만 대신 virtual mobility (Internet)는 점점 발달할 것이므로 예전의 ‘노인’들이 겪던 ‘소외감’의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모였으면 spaghetti 와 wine으로 배와 기분을 채우려고 했고, 아오스딩 형제에게는 (60/70 style) guitar 101 정도를 보여 주려고 했지만,  아마도 6월 달 정도에나 우리 집에서 모이기로 하고 밤 늦은 저녁식사 모임을 끝냈다.

 

  1. ‘한국산’ 레지오 수첩을 보면 3월 19일이 춘분인데.. 갑자기 혼동스럽다. 이것은 국제표준 ‘절대’ 시간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2. 꾸리아 간부로 방문 온,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인간이 갑자기 괴물로 돌변, 순명 하라고 길길이 뛰던, 이직도 그 광경이 믿기지 않는 사건

¶  5th Sunday of Lent, 사순절 5주째를 맞는 주일, 다시 완연한 봄기운이 대기를 감싸기 시작한 따뜻한, ‘이틀 앞으로 다가온 춘분’ 전 일요일을 맞았고, 이제 어느덧 사순절이 1주일밖에 안 남았다. 돌아오는 일요일은 Palm Sunday (성지주일), 이날부터 Passion Week (수난주간)이 시작되고 우리 가톨릭(그리스도교) 신앙의 절정을 향한 일주일을 맞는다.  다가오는 성삼일 Triduum  을 생각하면 사실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끝나는 날, 찬란한 부활주일을 맞이하는 생각하며 위로를 삼는다.

이날 아침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정든 ‘동네 neighborhood 미국 성당’, Holy Family  성당엘 갔다. 생각을 미처 못했지만 우리가 거의 두 달 동안이나 한국 순교자 성당으로 주일미사를 갔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 우리 신앙의 고향 같은 이 동네 neighborhood  미국성당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주일 헌금을 거른 것도 미안하고 큰 은혜 받고 있는 것 (6 days 평일미사 포함)을 못 갚는 듯한 죄송함도 느낀다. 사실 우리는 이곳에 조금은 시간과 힘을 바쳐야 할 ‘위치’에 있는데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틀란타 대교구의 Annual Appeal donation 도 작년부터 순교자성당을 통해서 하게 되었기에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난 두 달 연속으로 주일미사를 도라빌 순교자 성당으로 가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 공동체가 예전보다 좀 더 가까워져서 그런가, 익숙해져서 그런가, 확실히 전 보다 익숙해진 것도 도움이 되긴 했다. 오래 전처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불편하다’ 라는 변명을 하기가 힘이 들게 되었다. 얼굴이 그런대로 익숙한 형제,자매님들이 이곳 저곳에 눈에 뜨이는 것,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나이가 엇비슷한 형제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았다.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혹시라도 그 두 명의 레지오 미친년들 (성모님, 죄송합니다), 두 괴물들 monsters’ 의 얼굴을 멀리서라도 보게라도 되는 것, 즉시로 밥맛이 거의 제로로 떨어지는 경험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특효약이 없다. 있다면 ‘세월의 흐름’ 그것 밖에 없다.

이날 순교자 성당 주일 미사에 안 간 이유는 또 있었다. 이날 집전 신부가 주임신부님이 아니고 ‘윗동네’ 신부라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상식의 선을 언제 또 벗어날지 모르는 돌출적 행동을 나는 정말 진절머리 나게 싫어한다. 게다가 ‘정구사, 주사파, 신 진보‘로 무장하고 세속에 찌들은 듯한 신부.. 진정으로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 주일 날, 순교자 성당에서는 전 주임신부 예수회 류해욱 신부의 사순 특강이 있었는데 물론 나는 참석을 못했다. 류신부의 특강을 못 들은 것, 사실 그렇게 아쉽지 않았다. 지난 주에 다른 신부 (가톨릭 신문)의 특강에서 하도 ‘진을 빼서’, 다시는 이런 식의 특강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아는 형제님들(등대회 회원)에게 권유를 해 보았지만 YES 대답이 없어서 그냥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아보니 그 중에 한 형제님은 부부가 같이 특강에 참석을 했었기에 ‘특강권유 활동’ 이 성공으로 check mark가 되는 흐뭇함을 느꼈다.

이날, 일요일 연숙은 미국성당 미사가 끝난 후에 교리반 때문에 순교자 성당을 갔었지만, 가는데 무려 3시간 이상이 걸렸다. 일요일 아침에 한가해야 할 I-285 (Eastbound near Roswell Rd Exit) 에 car accident로 all-lane이 막히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집에서 편하게 coffee를 즐기고 있었고… 문뜩 ‘악몽’이 떠올랐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19시간 얼어붙은 freeway에서 밤을 지새웠던 경험.. 잊고 싶은 추억인데 그것이 다시 눈앞에 그려지는 것.. 이것도 세월이 더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  Pray for me, St. Joseph, Solemnity of..:  성 요셉 대축일, 원명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이 대축일은 3월 셋째 월요일에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올해는 3월 19일 월요일이었다. 아침미사엘 가며 ‘어렴풋이’ 이날이 성 요셉 축일 정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Holy Family 성당 아침 미사엘 가니, 대성당에 불이 꺼져있었고 작은 note가 붙어있었다. 오늘 미사는 별관인 Parish Center에서 한다고 적혀 있었다. 왜 미사 장소를 바꾸었을까, 궁금증은 그곳에 도착해서 풀렸다.

의자들이 놓인 것은 그렇고 벽 쪽으로 멋지게 꾸며진’제단, alter’ 이 설치 되어 있었다. 아하! 성 요셉 대축일을 더욱 의미 있게 ‘축하’하려는 본당 신부(Father Miguel)의 노력이었다. 그러니까 이 신부님은 성 요셉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성모 신심은 잘 알려져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배필인 성 요셉 신심은 조금 생소한 것이 아닌가? Not So!

요즘 가톨릭 인터넷 site엘 가보면 한마디로 이것은 devotion trending 중의 하나다. 얼마 전에는  그 유명한 야쿠자 신부님 Father Donald Calloway 의 ‘St. Joseph Gem: Daily Wisdom on our Spiritual Father‘  란 책이 나오기도 했다. 개신교의 ‘성경유일주의’에 의하면 이 요셉 성인은 성경에서 ‘한 마디’도 하신 말씀이 없기에 그들에게는 별볼일 없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성령의 감도를 받은 수많은 성인,성녀, 교부들이 남긴 기록들은 그들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이런 것 만으로도 나는 마틴 루터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성 요셉 신심의 불길을 뜨거워지고 있고, 아마도 critical mass에 도달하면 마리아 신심에 버금가는 은총 전구의 원천이 될 것을 기대하며 이날 ‘성 요셉 대축일’ 미사를 참례하였다.

 

Solemnity of St. Joseph, Holy Family Catholic Church

 

거의 반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번씩 있는 이날이 이제는 지겹다 못해서 꾀병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이제는 한숨조차 나오질 않는다. 어떤 때는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나에게 물을 때도 있고 그에 대한 뾰족하고 명쾌한 답이 없다. 그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심지어는 슬프기도 한 그날은..  다름이 아닌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월례회의.. 한 마디로 밥맛, 입맛이 떨어지는, bad taste  monthly 가 되어가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이곳엘 나가기 시작한 것이 거의 6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암만 생각해도 처음엔 그렇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썩어 들어가는 그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루 아침에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서 아마도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감지 感知 를 못했을 듯하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물 속에 잠긴 개구리, 바로 우리가 그런 꼴이 아닐까.

나의 밥맛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두 인간이 그곳에 도사리고 있음을 내가 너무도 잘 알기에 오늘도 병이 날 정도로 가기가 싫었다. 그저 그 두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조금만 조용히 얌전히 앉아 있어 주기만 기대하며 그곳엘 들어갔지만, 역시 어디를 가나.. 돼지 멱따는 소리로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는 인간과 뱀 같은 얼굴로 자기도취에 빠진, 언제라도 monster로 돌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인간 (아!  이 역시, 모두 ugly한 아줌마, 여자들이다)…  가뜩이나 쳐지는 몸이 더 쳐지는 오늘, 지독히도 맛 없는 ‘설날 떡국’ 과 함께 잊고 싶은 ‘주일’이 되었다. 최후의 희망은, 영적 신부님이라도 제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그것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남은 것들은 unthinkable 한 option 들 뿐이다.

 

¶  Filet-O-Fish:  언제부터였을까… 금요일을 no-meat-day 로 삼고 ‘가급적’ 그날 하루 고기 meat 먹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 물론 확실한 때는 기억이 안 나지만 대강 내가 본격적으로 ‘회심1‘을 하기 시작했던 그 무렵이었음은 분명하다.  추측에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라 조금은 절제 abstinence 하라는 의미에서 그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지만 나는 그 무렵 ‘추호의 의심, 반론’ 없이 교회의 가르침을 수용할 ‘열린 가슴’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 없이 고기를 피하고 대신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하기로 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생긴 것이 금요일에 McDonaldFilet-O-Fish sandwich를 즐기는 전통이었다.

이것은 McDonald 아침 menu에 없기에 우리는 아침에 YMCA gym에서 workout 이 끝난 후에 가서 먹곤 하고, 저녁식사를 거의 하지 않기에 이것이 사실 그날 마지막 음식이 된다. 요새 이곳에 들어가는 fish fillet 는 Alaskan Pollack(명태)를 쓰기에 우리에게는 익숙한 생선 맛이다.  비교적 작은 size의 sandwich라서 비록 단식은 아니지만 비슷한 abstinence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오늘, 금요일도 그런 fish Friday였다.

이 역사 깊은 sandwich는 거의 45년 전, 1973년 미국에 처음 왔을 당시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기억2 이 남는다. 값도 Big Mac보다 쌌고 크기도 아주 적당하게 작았다. 이것의 역사를 찾아보면 (물론 Wikipedia) 아주 재미있다. 역시 나의 짐작대로 가톨릭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천주교인들이 금요일에 고기 중심의 hamburger를 피하는 것을 보고 idea를 얻은 것이다. Cincinnati (Ohio)의 한 McDonald franchise 주인이 처음 착안, 만들어서 팔았는데 이것을 본사에서 받아들여서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그것이 1960대 중반이었다고 한다. 이 sandwich의 년 매상 1/4이 팔리는 시기도 역시 천주교 전례력의 사순 四旬 시기(Lent)라고 하니, 역사적 배경을 알고 먹으니 더욱 ‘숨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upscale Japanese buffet Nori Nori

 

¶  노리 노리 Nori Nori: 어제는 뜻밖의 점심 외식 초대를 받아서 우리는 Nori Nori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고급 일식 upscale Japanese buffet 엘 갔었다. 우리 집에서 drive로 30분 가량 걸리는 곳, Sandy Springs (Roswell Rd @Abernathy)에 있는 이 all-you-can-eat sushi buffet  우리는 처음 가본 곳이다. 그저 이런 식의 buffet 라면 대강 Chinese 위주의 ‘서민 풍’의 그런 곳으로 상상이 되지만 이곳은 달랐다. 그야말로 upscale, 한 마디로 ‘비싼 곳’으로 모든 것들이 느낌이 달랐다. 요사이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스테파노 형제 댁의 초대였는데 아마도 지난 년 말 우리의 초대로 외식을 한 것에 대한 응답이었던 추측도 들었다. 한 마디로 즐겁고 편한 대화와 깨끗하고, 감칠 맛 나는, 고급 스러운 음식들로 나중에 우리 식구들도 한번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것은 한마디로 lunch menu들 치고 상당히 pricey, 거의 $20 에 가까워서, 우리의 수준으로는 자주 찾기는 불편한 느낌도 들었다. 보통 점심 때 Buffet에 흔히 보이는 ‘노가다’ 류 (정말 끊임없이 먹어대는) 가 이곳에는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역시 pricey 한 upscale buffet 였다.

 

  1. 성당에 규칙적으로 나가기 시작했을..
  2. 여행 중, Pittsburgh, PA 에 살던 연세대 선배 위재성 형에게 들렸을 때

정말 오랜만에 머리가 띵~ 한 하루, 그것도 멀쩡하게 아침 미사까지 빼먹고 보내는 하루가 되었다. 사순절 시작이 2주 앞으로 다가온,  2월첫 날 아침부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원인은 어제 저녁에 있었던 마리에타 사랑반 구역미사 후 회식에서 아차~ 하고 ‘조금’ 마셨던 술의 여파 hangover 때문이었다. 그렇게 취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drive를 연숙에게 맡긴 것을 보면, 그리고 조금은 꼬부라진 혀끝의 감각을 기억하면 분명히 조금 over한 것을 인정해야 할 듯하다.

이날은 사실 구역미사엘 안 가려고 미리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세상사가 항상 나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어찌 모르랴.. 가기 싫었던 이유는 물론 여기서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런 이유는 궁극적으로 올바른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마음 속 깊이 알고 있었기에 이런 ‘끌려가는 듯한’ 사태가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미사는 미사지만 본당신부님의 일반적인 사목적 자세는 한마디로 well-rounded한 것, 그 복잡한 사목방침을 항상 ‘중용’의 자세로, 타협점을 구하는, 공정 중간적 입장,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보려는 자세, 알맞은 강도의 강론, 겸손한 demeanor.. 나에게는 absolutely positively NO problem.. 아니, 좋아하는 쪽이다. 하지만 세상사에 downside, dark-side가 없을 수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이 사목성패의 관건이다.

이날  pikapika 한 술들 (jumbo-size whisky, upscale wine & beer), 이 앞에서 우리 신부님도 술을 즐기는 쪽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이것은 news가 아니고 이미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날 그것을 조금은 직접 확인한 셈이다. 담배를 ‘즐기는’ 것은 만천하가 하는 사실이지만 가끔 밖에서 ‘쓸쓸히’ 끽연을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동참한다는 이유로 ‘얻어’ 피우기도 했다. 신부님들의 일상 ‘기호’ 생활도 사실 일반인들이나 큰 차이가 없는 모양이지만 그 유혹은 더 심할 것 같아 보여서 조금은 공감을 하기도 한다.

남자들 모여서 ‘정치, 종교’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 하라는 불문율이 깨어진 채 이날은 마구잡이로 사정없이 종교+정치 이야기가 난무했는데… 전에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신부님은 ‘진보성향’이 농후함을 알게 되었다. 진보+보수의 갈등, 신세대+구세대의 갈등, 특히 고향 대한민국의 현 실정을 배경으로 그것은 잘못하면 화약고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교회나 사제들이 얼마나 정치에 관심을 두느냐 하는 것은 김수환 추기경 시절에 익힐 들어서 알기에 함부로 ‘심판, 단죄’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이 70으로 진입하는 마당에, 분명히 나는 보수중의 보수 세대에 속하지만 나 자신은 거의 ‘중립, 관망’하는 입장이기에 신부님의 ‘고견’을 많이 듣고 싶었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적’인 것과 ‘주관적, 편협적’인 주장과 의견이 완전히 ‘짬뽕’이 되어서 왜 그런 논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지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암만 관망, 중립을 지켜도 지켜야 될 마지노 선 (Ligne Maginot)Maginot Line 은 분명이 존재한다. ‘김씨 왕조’를 두둔하거나 비방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나의 마지노 선이다. 그것을 무시하거나 넘기면 그때는 진보, 보수가 없다. 그것은 역사왜곡, 양심 포기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6.25 전범 김일성 세습정권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이날 신부님 발언 중에는 나의 간담을 조금 써늘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남북통일을 반대하는 음모세력’ 그것이 미국이라는 간접적인 논리였다. 몇 마디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귀를 의심할 정도로 나는 놀랐다. 어떻게 미국 ‘제국주의적 음모론’을 믿는 것일까? 정구사(정의구현사제협의회?) 정당성을 예전부터 주장하셨던 신부님의 입장을 나는 그저 benefit of doubt 으로 넘어가곤 했지만.. 이런 신부단, 교회의 입장 때문에 극우세력, 극보수 세력이 열을 올리는지 모른다. 수십 년 동안 실패한 햇볕인가 무시긴가 하는 것으로 장난감 폭탄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미국 하와이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던 희극을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바보들이 그런 애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이런 저런 혼란했던 머리 속에 whisky, wine, beer가 모조리 섞였던 나의 몸은 완전히 쳐지고… 결국은 오늘을 small holiday로 보낸 것, 술이 웬~수다…

 

Thursday Friends: 처음 만난 지 4 반세기 (quarter century) 가 훨씬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실질적’으로 다시 한자리에 모인 나이 지긋한 3명의 남자들,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밤’에 갖는 ‘이상한’ 모임, 이름하여 ‘목요일 밤 친구들’, 하지만 이름은 짧게, 목요회가 되었다. 작년 9월 마지막 목요일에 강렬한 향수를 동반한 그리움을 느끼며 3명이 처음으로 함께 모였고, 그 이후는 짧은 역사가 되었고 지금도 매달마다 작은 역사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만남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하나 둘씩 서로에 대한 느낌들이 쌓이고 어렴풋이  pattern 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one year anniversary가 되는 올해 9월의 모임이 되면 그 pattern이란 것이 어떤 것일지 미리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건강한 것, 희망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오랜 세월을 같은 지역에서 살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세 명의 ‘아빠 남자’들은 꽤 다른 인생을 살았던 듯 싶다. 서서히 나누기 시작한 옛 이야기를 통해서도 그렇고, 아주 가끔씩 간접적으로 들었던 것들도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두 old friends들과 나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오랜 세월, 이들이 냉담을 고수했던 나를 성당에서 찾았지만 지금은 반대로 내가 그들을 찾고 있다는 것, 참 긴 세월의 irony가 아닐까?  우리들의 등대였던 그곳, 성당 공동체가 어떻게 해서 나에게는 다가왔고 그들로부터는 떠난 것인지 나는 더 알고 싶기도 하고, 가급적 남은 여생에서 그들과 함께 머무는 공동체를 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지난 달 모임과 이번의 모임을 통해서 나는 조금 색다른 각도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했다. 세 명의 남자들이 늦은 저녁식사를 끝내고, 스산하게 깜깜한 밤중에 coffee shop를 찾으러 old Korea Town (at Buford Hwy)을 걸으며.. 기억의 심연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무엇이 있었다. 70년대 초 친구들과 종로, 명동 거리를 걷던 추억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그 이후 수십 년(아니, 거의 반세기?) 동안 이렇게 ‘남자들끼리’ 밤 거리를 배회’했던 기억이 거의 없는 것과 갑자기 내가 이 ‘외딴 섬, 미국 내의 stranger’란 느낌과 Frank Sinatra 의 1966년 classic oldie, Strangers in the Night의 은은한 crooning 추억, 또한 남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형제애, fraternity’를 너무나 오랜 만에 느껴보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색다른 이유로 나는 우리 목요회가 ‘장수 長壽’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다.

 

Strangers in the Night – Frank Sinatra – 1966  

 

¶  Happy Anniversary, 38th!  결혼 38주년, ‘삼십 팔, thirty eight’ 이란 숫자가 주는 느낌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와~ 축하한다.. 축하해.. 하는 자축의 느낌은 어느 해 보다 강렬했다. 우리 세대에는 그렇게 이혼이 흔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38년 ‘무사히’ 가정을 지켰다는 것은 솔직히 자랑스럽다. 이혼이나 사별 같은 것, 가정적으로 얼마나 자녀들에 큰 상처를 준다는 것은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1980년 1월 25일에 시작된 결혼의 세월들, ‘남녀의 결혼’이란 말에 더 심각한 의미가 실린 초 현대의 해괴한 초 超 세속사회의 격동 속에 오늘을 38년의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자연법을 거스르지 않고 두 생명이 하느님의 빛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그렇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며 간단한 Lemongrass 외식을 즐겼던 날이 되었다. 

 

September Morn – Neil Diamond – 1980  

 

¶  Serpents:  오늘 우리는 집 근처에 있는 미국 본당  Holy Family church대신에 한국 본당, 도라빌 순교자 성당의 정오미사엘 갔다. 이유는 그곳에서 지난 12월에 선종하신 어떤 자매님의 50일재 추모 연도 煉禱 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미사와 연도가 함께 있는 날은 요일에 상관없이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이렇게 금요일의 추모연도에만 참석하는 것은 예외에 속한다. 지나간 12월 달에 있었던 장례미사, 연도에 ‘snow day 날씨 관계’ 로 불참했었기에 이번에는 특별히 신경을 쓴 셈이다. 

연도가 끝나고 단체 식사를 하는 곳에서 보는 것도 진절머리가 나는 2017년  ‘레지오 난동사건 장본인’ 그 미친년의 얼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차.. 했지만 늦었다. 그 인간을 상상하거나 보기만 해도 나는 밥맛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한 동안 소화까지 안 되는 정도다. 아직도 아직도 나는 꿈 속에서 ‘죽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고, 그 인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하… 그 얼굴이 사람들이 말하던 serpent의 모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작년에 레지오에서 난동을 일으켰던  두 ( 왕마귀 포함) 미친 년들의 얼굴이 그러고 보니 완전한 (성모님의 발꿈치에 눌린듯한) serpent의 모습들이었다. 어쩌면 이럴 수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완전한 뱀(그것도 독사들)의 얼굴이 아닌가? 1978년 supernatural horror  movie sequel, The Omen II 에서 본 (Damien) serpents의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잊고 싶다, 잊고 싶다, 영원히 잊고 싶은..

 

Frozen land, Saybrook court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어두운 집 주변이 비교적 환하게 느껴진다. 잠결 속에서도 어제부터 예보된 대로 집 주변이 모두 눈으로 하얗게 변해 있었다. 일기예보의 timing은 거의 정확한 듯 보인다. 늦은 저녁에 차가운 비로 시작된 것이 시간이 가면서 눈으로 변했지만 그것이 진짜 news는 아니었다. 바로 wind chill 화씨 제로.. 기온이 수십 도 가 떨어지면서 불어오는 바람..

아침에 Tobey 를 밖으로 잠깐 내 보냈더니 pee pee 만 잠깐하고 곧바로 들어온다.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햇빛은 찬란한.. 땅을 보니 이것이 바로 어떤 시인이 말했던, 凍土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정도면 오늘은 100% hunker-down day 일 것이다. 왜냐하면 언덕 길이 완전히 빙판이기 때문에 drive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밤에 이 빙판이 해결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결국 오늘은.. 올 겨울 들어 2nd snow day가 된 셈이다.  비교적 따뜻하게 무장한 나의 보금자리에서 coffee를 마시며 relax하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직업상, 사정상 꼭 나가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relax할 것 만은 아닐지 모른다.

 

¶  지난 주 금요일, 저녁부터 ‘폭포처럼’ 쏟아진 함박눈으로 이틀 정도의 뜻밖의 snow days,  애들 처럼 즐거운 ‘공짜 휴일’ 이후, 곧바로 다 녹아버릴 것 같은 예상을 뒤엎고, 계속되는 추위로 사실 아직까지 눈이 남아 있는 곳들이 꽤 있다.  그러니까… 요새는 ‘환상적인’ 12월의 느낌 으로 그러니까.. 매일매일 white Christmas의 기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추위로 녹지 않는 ‘잔설 殘雪’

 

¶  등대회 망년회:  12월의 3분의 1일 지나가는 때, surprise heavy snow로 holiday 의 기분과 광경이 온통 머리 속에 가득 찬 시점에서 소위 말하는 ‘망년회’ party같은 것들이 더 돋보이는데, 사실은 꽤 오랜 동안 우리는 이것들을 거의 무시하고 살았다. 한마디로 stress받고 피곤한 경험들도 있고 그저 귀찮기만 했던 너무나 ‘세속적’인 모임들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생각의 각도를 비틀어 보았다. why not..이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올해라는 세월이 너무나 ‘피곤하다’라는 자괴감도 들고, 이런 부정적이고 감상적인 생각에 대응하는 antidote는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절대 조건이 있다.  만에 일이라도, 올해 두 번씩이나 당했던 ‘레지오 미친년들 사건(2명)’처럼 ‘경고 없이 순식간에 괴물 monster 로 돌변할’ 가능성이 거의 zero에 가까운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까지 내가 보아온 성당 60 plus 친목단체인 등대회는 큰 문제가 없이 보였고 지난 가을의 West Bank park 야유회에 이어서 연말 모임, 망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대학 동창회나 다른 단체의 연말 party 같은 곳에 안 가고 산 세월이 짧지 않았기에 이런 모임이 생소할 것으로 우려하기도 했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무슨 정해진 program이 없이 informal한 분위기였고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라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고 사실 그 사람들이 ‘노는 데’는 주역들이어서 결과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Duluth Korea Town에 있는 ‘초원부페‘라는 곳에서 정말 푸짐히 ‘마시고, 먹고’, 아싸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disco풍의 춤과 노래하는 것을  넋을 잃고 보며 즐겼다. 나는 예의 ‘옛 노래’ 몇 곡을 불렀지만, 그들의 폭넓은 (특히 요새 노래들) 노래실력에는 비교가 되지를 않았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요새 노래들을 배웠는지..

 

¶  Film Noir time again:  작년 11월 경,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즐기는 방법으로 film noir가 나에게 다가왔고 아마도 작년의 holiday을 많은 시간을 이것, film noir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 기억이다. 아~~~ film noir, glorious ‘black & white’ 느낌들… HitlerTojoevil empire를 ‘하느님의 정의로 무찌른’ victorious America의 전후에 ‘대량생산’ 한 이 film noir 영화들.. 당시에 어떻게 이것들이 대중들에게 보였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70여 년 후에 이렇게 YouTube라는 ‘해괴한 매체’를 통해서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런 것을 즐긴다는 사실이 사실은 surreal한 느낌인 것이다.

작년에 YouTube에서 download한 film noir 영화가 거의 50여 개에 달하는데 그 중에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이 low-budget class여서 정성스럽게 보는 것은 좀 그렇지만 신경을 써서 자세히 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이런 영화는 보는 분위기가 잘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blustery, chilly, windy afternoon인데… 요새가 바로 그런 날들이었다. 거기다가 달콤한 mini donuts 과 아주 진한 gourmet coffee가 있으면 몇 시간이고 즐길 수가 있다. 힘들었던 올해였지만 이런 짧은 순간들이 그런 괴로운 추억을 지워주는 역할을 하니.. 한마디로 it’s fair라고 할까..

이 특별했던 회색 빛의 오후에 보았던 glorious black & white는 2차 대전 당시 미국 내에서 ‘원자탄 비밀’을 찾고 있었던 독일의 스파이 망을 FBI에서 일망타진 하는 내용의 1945년 영화 ‘The House on 92nd Street‘ 였다. FBI의 방대한 수사망의 위력을 ‘선전’하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당시에 ‘적국의 스파이’들이 미국 내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좋은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사실은 연기와 각본 등도 뛰어난 느낌의 좋은 영화였다.

 

film noir afternoon, 2017

 

The House on 92nd Street – 1945

 

¶  Earlier Tree: 얼마 전에 Vatican Youtube를 보니 성 베드로 광장에 거대한 성탄 tree가 장식이 되었음을 무심코 보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성탄구유도 설치가 되었음도 알게 되었다. 근래에 들어서 교회(천주교)는 ‘세속적인 장식’을 가급적 성탄 며칠 전까지 ‘참으라고’ 권고를 하고 있었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어서 그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하였다. 다행히 ‘아이들’이 떠난 이후 이런 ‘장식’들을 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나도 그 ‘취지’에 동감을 하기에 큰 문제도 없었다. 나아가서 성탄절 이후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세속, 상업’적 풍습이 그렇게 싫었는데, 12 days of Christmas, Octave of Nativity (of the Lord) 등등을 따르며 신년이 훨씬 지난 후까지 성탄기분을 유지하는 그런 것이 더욱 새롭고 느낌이 달랐다.

 

’tis time again, 2017

 

그런데 올해는 조금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올해 어찌나 무언가 힘이 들었다는 쳐지는 듯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는데 불현듯 성 베드로 광장의 성탄 트리를 보며..  what the heck… 이란 느낌으로 garage로 가서 일년 묵은 성탄장식들을 끌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lighted treed, wreath 를 세워 놓았다. 며칠 뒤에는 올해 새로 나온 twinkling snow flake light까지 사다가 장식을 해 놓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carol 을 틀어 놓았다.. 그러니까 예년에 비해서 거의 열흘 정도 이르게 성탄의 기분으로 빠져들어간 것이다. ‘규칙, 규정, 법칙’도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직감, 느낌’도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피곤하고 상처받은 마음들이 이런 것으로 위로를 받을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느낌은 아주 좋았다.

 

나의 office, study로 바뀐 첫 해의 성탄 wreath

 

 

 

깜깜한 이른 새벽, 저 멀리 있는 digital clock radio의 clock이 잠결에서도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현재 시각이… 오밤중의 그것이었다. 속으로.. 내가 불면증인가.. 나이 탓인가.. 이 오밤중에 정신이 말짱하니,  다시 자려면 고생하겠구나 하며 창 밖을 훔쳐 보니 아무래도 나의 body clock은 아침 7시 정도는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digital clock을 보니.. 아하, it’s blinking! 언뜻, 밤에 ‘전기가 나갔었구나’, 그러니까 그 radio clock 의 시간이 틀린 것이다.

부리나케 아래 층으로 내려오니, 나의 body clock이 거의 정확했다, 7시 10분이었다. Backyard  mother cat 다롱이가 분명히 배가 고플 것 같아 먹이를 들고 부지런히 나가려고 하니 porch door가 쌓인 눈에 걸릴 정도로 새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Deck guardrail 에 가지런히 쌓인 눈의 깊이가 족히 5~6 inch가 될 정도로 근래에 드물게 보는 ‘대설 大雪’이었다. 이렇게 한꺼번에 내린 눈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우리는 어제를 snow day 로서 푹 쉬었지만 장례미사를 못 갔던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2014년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 이 마당에 이러한 결정은 현명한 것이었다. 오늘 아침에 Sugarloaf mansion의 최형이 전화로 우리가 혹시 어제 ‘외출’을 했었나 부터 물었다. 3년 전 19시간 동안 I-258 freeway에서 밤을 지샜던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3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집으로 drive하는데 시간이 꽤 걸린 듯했다.  어떤 사람은 5시간, 우리 작은 딸 나라니는 3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일찍 시작된 rush hour가 끝나면서 눈은 엄청난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내리고 오늘 아침에도 내리고… ‘자, ruler’로 재어보니 정확히 6 inch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두 번째 snow day가 된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흠…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설마 내일까지도 문제가… 있다면… 성당과 저녁 5시에 있는 성당 60 plus 대 모임, 등대회 연말 파티 모임도.. 설마..

 

 

sleeting ,dusting Marietta

 

¶  깜깜한 이른 새벽 침실의 curtain사이로 들어오는 가물거리는 빛들, 먼 곳에 있는 집의 security light는 거의 항상 켜 있으니 익숙한 것이고 땅 쪽에서 올라오는 어두운 빛들은 무엇인가? 우리 집의 security light는 분명히 아니고.. 잠결에 생각이 났다. 아하… 오늘 이곳에 wintry mix advisory가 있었던 것. 그러면 혹시 눈, 하지만 절대로 하얀 색갈이 아니다. 거의 검은 색으로 반짝거린다. 그러면 비.. 그것도 아닌 느낌이다. 그러면… 아하.. sleeting or freezing rain?  다롱이(backyard cat)  아침밥 주러 밖엘 나가니.. 이건 sleet 도 아니고 freezing rain도 아니고 바로 그 중간이었다. 아니.. snow도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바로 올 season 첫 번째 winter storm warning…  2014년의 ‘snowmageddon‘ nightmare가 곧바로 기억이 난다.

The Mother of humanity

오늘은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의 대 축일이고 미국에서는 ‘의무 대축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것인가? 현재의 상태 같으면 Holy Family Church로 가는 drive는 큰 문제가 없을 듯한데.. 그래도 현재의 날씨 상태로는 100% guarantee는 없다. 어쩔 것인가.. 하지만 곧 결정이 났다. 최악의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연숙이 지난 밤도 예외가 아닌 듯해서 내가 결정을 내 버렸다. 성모님… 용서하소서..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오늘 낮에는, 도라빌 순교자 성당에서 레지오로 알게 된 데레사 자매님의 시어머니의 장례미사와 연도가 예정되어 있기에 이것도 어쩔 것인가 생각을 하고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TAKE ZERO CHANCE..였다. 2014년 20시간 I-285에 묶여 밤을 새웠던 기억은 아마 앞으로 20년은 더 갈 듯한데 이제 고작 3년도 안 된 fresh한 것이니.. 다시는 이런 날씨에 I-285 drive는 가급적 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연도를 하는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장례미사를 참석 못하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린다.

 

Ave Maria – Composed by Michal Lorenc Performed by Olga Szyrowa, Moscow Symphony Orchestra (1995)  

 

¶  어제는 가까운 곳에 사시는 스테파노 형제님 댁, 점심초대를 받아서 예외적으로 격조 있고 맛있는 점심 회식을 즐겼다. 이 댁의 자매님은 알고 지낸 지 그런대로 되었지만 스테파노 형제님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이도 나와 비슷하고 ‘인생철학’도 크게 유별난 것 아닌 듯해서 ‘안심하고’ 사귀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하도 ‘해괴한 인간’들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사람 사귀는 것, 이제는 겁이 나기도 하지만 ‘운과 지혜’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무시할 수가 없다. 가 보니 3명의 자매님들도 오셨는데.. 모두 낯이 익은 분들이었고 한 분은 3년 전 세례를 받으신 아녜스 자매님, 우리 둘이 교리반 봉사를 할 때 예비신자 학생이었다. 그 당시 교리반 학생들, 세례 후에 많이 못 보게 되었지만 이 자매님은 그런대로 ‘가끔’ 마주치기도 했다. 멋진 table setup에다가 주로 holiday style meal, gourmet coffee 등등.. 인상적인 모임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고 우리도 이런 식으로 ‘좋은 분들’을 초대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  이 posting 은 아침에 시작된 wintry mix, sleet 를 보면서 한 것인데 몇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을 뒤엎고 major snow로 돌변을 하였다. 지상의 온도는 빙점 위에서 머물고 있었지만 하늘은 영하였던 모양이다. 일기예보는 하루 종일 rain, 그리고 저녁부터 눈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이 조금 빗나간 것이다. 2014년 1월 말의 Atlanta snowmageddon 교통대란 때도 비슷한 예보를 해서 고생을 했는데 이번 것도 비슷하다. 이런 종류의 기후는 정말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힘들 것 같다. 오늘 우리는 ‘현명하게도’  아침에 아예 snow day를 선언하고 모든 일정을 취소했기에 이번에는 비교적 ‘멋진 함박눈’을 하루 종일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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