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해병의 善終, 영적신부

¶  지난 주에 갑작스레 선종하신 이 요셉 형제님의 연도와 장례미사가 오늘 정오 전후에 있었다. 지난 달부터 전에 받았던 허리통증,  수술의 경과가 악화되었지만 재활치료를 받으시는 것을 알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곧 퇴원을 하실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타계하신 것이다.

요새 병으로 사망하는 대부분의 case가 불치병인 암 아니면 심장관련의 병이라서, 비록 통증의 정도가 심하다고는 하지만 허리, 척추 수술은 비록 고령의 나이라도 불치병으로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이렇게 급작스레 운명을 하시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터였다.

 이요셉 형제님은, 우리와 함께 오랜 세월 (7+ 년) 동고동락하며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셨던 아가다 자매님의 부군이시라서 비록 가깝지는 않았어도 레지오의 큰 식구(협조단원) 일원으로 알고 지냈던 터였다. 조용하시고 신심도 깊으셨지만 불치병인 듯한 ‘청각 장애’로 고통을 받으시고 따라서 사람들과 긴 대화를 피하시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도 신앙, 인생의 대 선배로서 가까이 하려는 노력도 몇 번 해 보았지만 기본적으로 조용하고 shy하신 것과 청각의 문제 때문이었는지 의미 있는 대화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중에 이 분이 6.25 동란 이후 대한민국 해병대에서 복무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적지 않게 놀라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신심 깊고 조용하신 분이 그 험했던 6.25 직후 ‘귀신 잡는 해병‘의 일원이었는지.. 상상이 안 가는 것이다.

연도와 장례미사는 입추의 여지없이 많은 조객들이 함께 했고 특히 해병대 군복을 입은 ‘장정’들이 운구를 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아가다 자매님은 그 특유의 모습을 하나도 잃지 않고 함께한 유족들 일행을 ‘지휘’하셨는데… 나는 그런 ‘평정한 모습’을 조금은 복잡한 심정으로 읽었다.  사실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저런 평정함을 유지 못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날 장례미사 후에 성당 친교실에서 ‘조객을 위한 음식’이 마련 되었고 예의 줄을 서 있었는데.. lo and behold!  Serve하는 자리에 누가 서서 밥을 퍼주고 있었던가? 얼마 전에 공개석상에서 미친 난동을 부리고 레지오에서 퇴단을 (당)한 그 ‘회 칠로 도배질한 얼굴‘이 거기 ‘우아하게’ 서 있었다. 나의 입맛, 소화효소 분비가 즉시 멈추고 내 깊은 속에 잠재해 있던 무서운 demon 이 나의 머리 위로 그대로 올라옴을 느꼈다. 그것을 억지로 막으려고 나는 엉뚱한 농담을 하며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파렴치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It’s not fair, not fair, not fair…

 

¶  영적신부란 무엇인가? 신부는 사실 영적 인데.. 영적이 아닌 신부도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영적신부는 사실 어떤 역할, 직함으로 레지오 마리애 조직에서 평신도가 아닌 사제단이 개입된 것을 의미한다. 레지오 마리애는 본당에 소속이 되었고 따라서 본당 신부 밑에서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영적신부의 존재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본당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현 주임신부님은 ‘자동적으로’ 레지오 조직의 영적 지도자가 된다. 본인이 좋건 싫건 상관이 없이 ‘지정’이 되는 이런 제도는 사실 함정이 있다. 만약 그 본당 신부님이 레지오 조직을 싫어하거나 잘 이해를 못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scenario인 것이다.

100년이 가까워 오는 오랜 역사의 레지오는 경험상으로 레지오 조직에 hostile한 사제들이 많았고 그것은 한마디로 그 단체의 불행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본당 신부가 교체될 때마다 레지오는 기도를 더 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우리 단체를 이해하고 협조적인 분이 오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 본당은 독특하게도 대한민국의 예수회소속 사제들이 사목을 하시는데 글쎄 예수회와 레지오는 어떤 특별한 관련이 있는지 확실치는 않기에 속으로 제발 우리 단체에 조금 더 협조적이기만 희망하는 정도다. 예수회의 성 이냐시오 영성체계와 레지오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모신심체계는 사실 직접적인 관계는 찾기 힘이 든다.

7년 여의 레지오 경험에서 나의 중요한 관심사는 바로 이것이다. 본당내의 실질적 ‘지휘본부’인 꾸리아를 누가 지도, 감독할 것인가.. 하는 절박하고 실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오늘 장례미사 후에 나는 이 문제를 의식하며 나의 요청으로 본당 이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시급한 당면한 문제는 이미 일어난 ‘난동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목격한 것을 가급적 객관적으로 보고를 드리고 나의 견해를 말씀 드렸다. 끝으로 ‘영적인 지도’를 부탁 드렸다. 이럴 때 신부님의 입장은 참 난처할 것이다.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듣고 이해하고 ‘높은 해답’을 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신부님의 간단한 대답은: 지금 hurricane Irma가  코앞으로 돌진해 오고 있는데 ‘우선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하셨고, ‘개개인의 안전이 본당 단체의 존망보다 우선한다’.. 는 의미 있는, 그것이 ‘영적 해답’이었다.

하지만 내가 강조한 것은 ‘본당의 의무’에 관한 것이었는데.. 만에 일이라도 본당 건물 내에서 ‘(언어, 물리적)폭력사태’가 발생한다면 본당은 법적 책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아주 암담한 조금은 가상적인 scenario..  이에 대한 반응은 “그 때는 ‘구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였는데, 이 구조적인 조치가 무엇인지는 상상에서나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으로 신부님은 그런대로 내가 기대했던 레지오 영적신부의 역할을 하신 셈이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조금 더 proactive한 ‘영적지도’인데.. 이것은 아마도 현재 여러 가지 여건상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나도 인정을 하게 되었다.

 

Get out & run away..

Getting out of ‘Legio’.. get out, get out, run away, run away: 이 것이 지난 일주일 동안 나의 머리 속을 맴도는 ‘terrible’ idea가 되었다. 뒤를 안 보고 7년여 동안 앞만 보며 신명 나게 나를 이끌어준 성모님의 이끄심을 기억하며 나만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어떻게 나에게서 이런 엄청난 생각까지 들게 되었을까?

지난 주 회합 후 단원들의 회식 중에 벌어진 엄청난 광경은 나로 하여금 한 동안 성모님을 ‘완전히’ 잊게 하는 놀랍고 슬픈 재발견의 기회가 되었다. 한 사람 속에는 언제나 선과 악이 엄연히 실존하고 있다는 등골이 써늘해지는 사실에 그저 놀라고, 놀라고, 또 놀라기만 했다.

지난 3월 달의 꾸리아 간부라는 어떤 인간에 의한 Kafkaesque happening도 당시에 나에게는 슬프고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이번 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예상을 전혀 못했던 devil-coming-out-of-disguise moment였기 때문에 그 놀라움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혀 1%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정도다.

암만 흥분한 상태여도 1주일 뒤에도 전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것이다. 이 사태는 전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갔다는 심각한 현실이다. 회복이 100% 불가능하다는 냉혹한 현실이고, 이 문제의 인간은 나에게는 완전히 존재가 사라진 투명인간이 되었다.

치졸하고 비열하고 유치한 방법으로 pre-emptive attack을 감행한 이 인간에게 어떤 pricey consequence가 앞으로 필요한지 알려줄 필요는 있지만, 사실 그런 것에 필요한 나의 energy가 한마디로 아까운 불쌍한 영혼 임도 안다.

나의 바로 코 앞에 다가온 대 명제는: 7년 동안 나에게 진정한 평화와 진리를 깨우쳐 준 Frank Duff의 이 ‘용감한’ 단체 레지오와 나의 관계를 더 이상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나에게는 처절하고 실존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물론 현재는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dark night이지만 모든 것에는 시간이라는 해답이 있기에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Frank Duff형제님, 제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 주세요, 부탁합니다!

 

탈을 쓴 악마인가..

Devil in disguise.. 귀에 익은 Elvis의 oldie.. 리듬은 신나고 가사도 애교가 있는 것이지만 지금은 그것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악’의 느낌이 드는 것이고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그저 ‘이런 모든 것 다 지나가리라’ 라는 말만 되뇌고 싶은 시간들이 되었다. 한 마디로 sick & tired 의 심정인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세상이..

실비아라는 ‘물건’들에 무슨 악이 들러붙는 힘이 있는 것일까? 몇 년  전의 실비아는 지금 문제의 실비아에 비하면 심지어 귀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지금의 그것이 거의 monster class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숨어있던 (sleeper) monster였는데, 사실 나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아직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심지어는 당황하며 도망가고 싶은 ‘비겁한 남자의 꼴’을 보이고 있는데…

그 ‘물건’이 조용한 식당에서 벌렸던 해괴하고 놀라운 짓은 아마도 아마도 오랜 세월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듯 하니.. 빨리 잊고 싶은 것인데 이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나의 성모님이 주신 평화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성스럽게’ 풀어야 하는 것일까? 전혀 나에게는 현재로는 명답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는 거의 ‘실존적인 문제’로 까지 비약을 하게 되어서 7년여 의 오랜 세월 동안 나를 인도하셨던 성모님의 군단을 완전히 잊고 싶게까지 되었으니.. 생존적, 실존적인 생사를 좌우하는 문제로 까지 비약한 이것을 어떻게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도망만 간다면 해결이 되지 않음을 잘 알지만.. 나에게는 우선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 자비의 모후가, 어떻게 최근에 들어 이렇게까지 도전을 받으며 흔들리는 것인지.. 암만 생각해도 누구의 잘못인지.. 간부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어디부터 생각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다. 어디서부터 기초가 흔들리게 되었을까? 아마도 지금의 실비아 monster가 입단한 그때부터 였음 을 누구도.. 이 정도로 심각한 지를 누구도 몰랐던 것인데..

단원을 제명 除名 시키려면..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을 한지 벌써 7년에 가까워 오면서 한번도 퇴단이나 전입 같은 것은 물론이고 제명이란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말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7년이란 세월의 횡포는 별수 없이 나도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

퇴단은 그 동안 많이 보아왔던 것들이고 그것은 물론 ‘자진 퇴단’이었다. 개인적인 사유로 quit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퇴단은 무엇인가? 강제 퇴단도 있었던가? 레지오 교본에서 명시하는 퇴단은 분명히 단장의 직권으로 본인이 원하건 말건 퇴단을 시키는 case였다. 게다가 퇴단을 시킬 때 ‘설명도 필요 없다’고 나와 있다. 조금 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강제 퇴단과 제명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제명.. 이것은 알고 보면 최악의 case가 되는데, 퇴단의 경우 ‘사유가 없어지면’ 다시 입단이 가능한 반면 제명의 case에는 재 입단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교회법의 ‘파문, excommunication’인 셈이다.

최근에 일어난 한 단원의 ‘상상을 초월한’ 불미스러운, 해괴한 폭력적 난동사태를 보면서 이것은 어떤 case가 될까 생각을 한다. 현재로는 ‘자진퇴단’으로 처리가 되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이것은 절대로 제명, 파문의 case라고 굳게 믿는다. 그 정도로 그 단원의 죄는 심각한 것이었고 후유증은 아마도 꽤 오래 갈 것이기 때문에 레지오가 입은 피해는 상상하기가 힘들 정도다.

좋은 것이 좋은 것, 심지어는 ‘보복이 무서워서’ 쉬쉬하며 조용히 처리하려는 것, 한마디로 관련 간부들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다시는 조직 근처에 못 오게 하려면 제명을 하여야 하는데 그 절차는 어떤 것인가? 아무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런 case,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인가? 레지오 교본에 그 절차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고, 다른 행동지침 같은 곳에도 없다. 아마도 정부관리의 탄핵 같은 절차가 아닐까? 그만큼 심각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한다.. 이 문제의 단원을 제명시키려는 case를 만들려면 어떤 ‘자원 resources’이 필요한가? 나의 결심을 점점 굳어지고 있다. 이 탄핵, 제명 case를 내가 한번 시도해 보겠다는 생각이다. 절대로 이 case는 쉬쉬하며 덮어둘 것이 아님을 성모님께 맹세하고 싶기 때문이다.

서울 ‘무염시태’ Senatus의 website에 다음과 같은 ‘강제’ 퇴단, 제명에 관한 규정이 있고 아마도 그것이 case를 만드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제명의 사유는 내 생각에: 제명대상 3번과 5번일 듯하다.

 

퇴단:

  1. 쁘레시디움 단장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다른 간부들과 의논하여 단원을 퇴단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쁘레시디움에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교본 138쪽)

이 말은 쁘레시디움에 피해를 끼치는 단원의 거취를 결정하는 단장의 권한이 그만큼 확실하게 유효함을 드러내는 말로 이해해야 하며 결코 단장 독단으로 쁘레시디움을 이끌어 가라는 가르침은 아니다.

  1. 퇴단의 경우에는, 퇴단의 사유가 소멸되고 본인이 원할 때 다시 입단할 수 있다. 다만, 3개월의 수련 기간과 선서 과정은 반드시 다시 거쳐야 한다.

 

제명:

  1. 단원 제명의 결정권은 쁘레시디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에 있다. 제명된 단원은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모든 자격을 잃게 되며, 차후 어떠한 경우라도 레지오에 다시 입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 단장은 제명 결정을 내릴 때 다른 간부들과의 사전 협의는 물론, 반드시 영적 지도자와 의논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2. 일단 제명을 통보 받은 단원은 해당 꾸리아(직속 상급 평의회) 바로 위의 상급 평의회에 제소할 수 있으며, 그 상급 평의회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이 된다.(교본 138쪽)

 

제명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레지오 조직을 분열시키는 단원
  2. 개인적인 목적을 위하여 레지오 조직을 이용하는 단원(선거 운동이나 상행위에 단원들을 이용하거나 단원들에게 부담을 주는 행위)
  3. 레지오 조직에 상처를 입히는 단원
  4. 교본에 명시된 규율·규칙을 존중하지 않고, 편의대로 변칙 운영을 일삼는 단원
  5.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동료 단원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단원(이러한 사람은 다른 훌륭한 단원들이 레지오를 떠나게 만든다.)
  6. 조직이나 동료 단원에게 의도적으로 금전상의 손해를 끼친 단원

 

dark day afternoon

A dark day afternoon.. 대신, dog day afternoon 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탄식이 나오는 날의 오후가 되었다. 물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훨씬 넘어선 것을 보며 7년에 가까운 짧지 않았던 세월을 회상한다.

이런 꼴 다시 보지 않으려면 떠나자, 떠나자.. 란 말만 나온다. 어제는 한 마디로 darkest day 였다. Solar eclipse도 아닌 날에 태양이 사라진 것이다. 며칠 전까지 존댓말을 쓰던 ‘불쌍한 영혼’ 한 레지오 단원이, 식당 회식자리에서 ‘청천벽력’ 으로 단장 (a.k.a my wife)에게 반말로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로 각종 욕설을 퍼붓는 광경에 나는 외계인처럼 한 마디 말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이 수십 년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그 당시 나에게는 어떤 option이 있는가? 별로 많지 않았다. 식당에서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같이 맞서서 싸우는 것은 나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갑자기 monster로 돌변한 이 ‘인간’은 이미 상식적, 통상적인 차원을 훨씬 넘어 섰기 때문이었다. 비이성적이고 미친 듯한 인간을 대하는 방법은 그런 상황을 빨리 피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나의 머리 속은 sick & tired, sick & tired, sick & tired of …’Legion of Mary’  로 가득 차고, 서서히 demonic rage가 나의 머리를 사로 잡았다. 이제는 내가 demon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사로잡은 demon은 나도 겁이 날 만한 무서운 욕설로 그 인간을 괴롭히고 있었다. 지옥의 끝까지 쫓아가리라.. 그리고, Nuclear Option이란  생각까지 다다르자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분명히 생시였다. 일어난 일, 엎질러진 물, 다시 되돌일 수, 담을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처음으로 Love to Hate (a human being) 란 말이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랜만에 겪는 darkest day를 나는 지금 맞고 있는 것이다. 이때, 평소 나를 인자하신 눈으로 내려보시던 성모님의 존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인가?

 

봉헌을 위한 33일을 마치며..

2017년 8월 15일, 나를 낳아준 조국 대한민국은 치욕적인 36년간의 ‘압박과 설움’에서 해방된 날, 광복절이지만 오늘 나에게는 다른 의미로 ‘빛을 다시 보는’ 그런 날이 되었다. 33일 간의 ‘성모 마리아께 봉헌’하는 여정이 끝나고 그 봉헌식이 오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에서 정오 미사 중에 있었고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작년 이맘때에도 나는 그 더웠던 삼복더위 중에 33일간의 긴 여정과 함께 했지만, 33일에서 3일 모자란 30일째 포기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무언가 나를 유혹한 것임을 알기에 올해 광복절을 향한 여정은 각별히 신경을 쓰고 조심을 하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올해도 3일 정도를 앞두고 다른 형태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지만 결사적으로 나는 빠져 나왔다. 이것은 아주 감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작년에 경험했던 것을 journal로 남겼기에 나는 그것을 기억하며 다시 journal을 남겨 두어서 이곳에 남기기로 하였다. 아직은 기억이 생생한 편이지만 아마도 수년 후에 다시 보면 감회가 새롭고 내가 그 동안 어떤 변화를 했는지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록이 되리라 믿는다.

 

나에게는 금메달 같이 소중한 스카풀라와 봉헌초

 


매일 드리는 기도문

 

성령송가

 

오소서 성령님, 당신의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난한 아버지, 은총의 주님 오시어 마음에 빛을 주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생기 돋워주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울 바람을, 슬플 때에 위로를.

지복 빛이시여, 우리 깊은 곳을 가득히 채우소서.

주님 도움 없으면 우리 모든 이로운 없으리.

허물을 씻어주고 마른 주시고 병든 고치소서.

굳은 풀어주고 마음 데우시고 바른길 이끄소서.

성령님을 믿으며 의지하는 이에게 칠은 베푸소서.

공덕을 쌓게 하고 구원의 문을 넘어 영복을 얻게 하소서.

 

 

묵상 기도

 

죄에 물듦이 없으신 성령의 짝이 시요, 예수님의 어머니시며

저의 어머니 시요, 주인이시며, 모후이신 마리아님,

저를 온전히 당신께 드리며

당신을 통해 예수님께 온전히 속하여 있기를 원하오니

성령으로부터 제게 영광과 힘을 간구하여 주시고

세속 정신으로부터 저를 깨끗하게 해주소서.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당신으로 채워주시고

안에 세속적인 정신을 없애주소서.


아멘.

 

 

바다의

 

바다의 별이요,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평생 동정이시며, 하늘의 문이시여, 하례하나이다.

죄인의 사슬 풀고, 선을 구해주소서.

기묘하신 동정녀요, 가장 양선 하신 이여.

저희를 죄에서 구해, 착하고 조찰케 하소서.

하느님 아버지께 찬양과

그리스도께 영광과

삼위이신 성령께 같은 존경 있어 지이다.

 

 

33일 매일 실천 사항

 

  1. 하느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그날의 주어진 내용들을 주의 깊게 읽고 그날의 주제에 따라 묵상하도록 한다.
  2. 그날의 주제에 따른 자기 성찰을 철저히 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덕을 닦도록 노력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다.
  3. 해당 주간에 매일 드릴 기도 중 ‘성령송가’와 ‘바다의 별’을 제외하고는 매일 드리지 않아도 된다.
  4. 대죄는 물론이고 아무리 사소한 잘못이라도 범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한다.
  5. 될 수 있는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하도록 한다.
  6. 묵주기도를 매일 바친다.
  7. 적어도 하루에 1시간은 이 봉헌 준비에 할애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침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거나 텔레비전 등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봉헌 준비에 필요한 기도와 묵상시간을 마련하는 확고한 결심을 해야 한다.
  8. 그날의 묵상 내용이나 성찰한 것들과 결심사항 등을 노트에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도록 한다.
  9. 자신의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끊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도록 노력한다 (TV를 비롯한 매스미디어의 절제, 흡연과 음주의 절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장소의 출입을 삼가 함).

 


2017년 7월 12일 저녁, 이것이 나에게 조용히 하루 전에 다가왔다. 우연 반, 필연 반.. 왜 성모님은 나에게 이것을 권하시는 것일까? 왜 이곳으로 부르시는 것일까? 성모님, 저는 이미 이 길이 하느님께 가는 최선의 방법이란 것을 배웠고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봉헌을 하게 되면 2번째 봉헌갱신을 하게 된다. 작년 같은 때에 시도한 것, 정말 순조로웠지만 기가 막히게도 마지막 3일을 남기고 포기를 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지금 기억을 하려고 해도 자세한 상황이 가물거린다.. 나의 자제력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사실 후회도 안 했던 기억까지 나니.. 성모님, 무슨 악이 나를 덮쳤습니까?

올해는 사실 별로 큰 생각을 안 했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것을 해야겠다, 아니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다시 봉헌을 위한 노력을 하면 또 다른 진리를 찾을 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도 생긴다. 귀찮은 생각이 없을 리는 없지만 그래.. 이번 2017년 복더위를 이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이 찾아낸 마리아의 진리를 찾으며 이겨보자!

 


첫째 시기 12일: 세속 정신을 끊음

 

첫 12일 동안 자신 안에 있는 세속 정신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 매일 매일 자신을 성찰하고, 세속에 대한 인식을 구하고, 세속을 지겨워 하며, 자기부정, 가난을 사랑, 침묵, 은둔, 겸손, 순결, 정직, 절제, 순명의 을 실천하도록 노력한다.

 


제 1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당신 제자로 부르심

2017년 7월 13일 (목요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가장 완전하고 빠른 길은 성모님에게 우리가 온전히 봉헌되는 것이다.

 

 

독서: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태 16, 24)

 

1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

예수를 따르는 누구나 를 당신의 제자라고 부른다면, 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아야..

용기와 결단성 있는 영웅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모든 일을 참아 받기로 결심한 사람..

이러한 결심이 없는 사람은 십자가의 벗 가운데 있을 자격이 없다

 

2 “자기를 버리고

가난과 십자가의 굴욕과 고통만을 영광으로 여기고 자신을 끊어 버려야 한다.

교만, 지식과 재능, 위대한 철인, 자유사상가 모두 멀리해야 한다

거만한 신심가나 세속주의자, 모두 쫓아내야 한다.

 

3 “ 십자가를 지고

나 만에게 맞추어진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나만의 십자가에서

무게는: 매일 겪어야 하는 물질적 손해, 굴욕, 고통, 질병 정신적 고통 등이다.

길이는 중상모략에 시달리고, 병으로 눕고, 동냥할 처지가 되고 유혹과 냉담과 마음의 권태,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나날의 연속.

넓이는: 친구들, 가족들, 친척들로부터 받는 냉대와 괴로움.

깊이는: 주님이 주신,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을 수 없는 내적 괴로움.

 

4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고 그것을 정복자의 무기와 왕의 지팡이로 삼아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것 보다 더 필수적이고 유익하면서도 감미로운 것이 없고 영광스러운 것이 없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 (요한 8, 12)

그리스도의 생활과 행실을 본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힘쓸 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묵상함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듣고 맛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그 일생을 그리스도와 맞추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묵상과 생활실천:

나를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고통을 따르라는 첫 날의 주제는 사실 매력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영광을 위한 현세의 고통, 하지만 현재도 중요하지 않을까? 세상 것을 미워하라는 말을 해석하는 것, 나는 아직도 거부감이 드는 것, 부정할 수가 없다. 세속적인 것을 전부 버리라는 것도 그렇다. 그만큼 나는 세속적이기에 그런 충격적인 느낌을 받는 것일까?

아하! 이 고통이란 바로 세속적인, 쾌락적인, 달콤한 것들을 멀리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고통이다. 세상사 만이 고통이 아니다. 이것이 고통이다. 아니 고통처럼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다.

나를 조금이라도 세속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는 실질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 하고 있는 일상적인 신심활동 이외에 더 활동을 늘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대로 친교를 이루거나, 여흥을 하거나 놀러 다니거나 (그런 것이 거의 없는 우리들은?) 하는 것들을 더 줄이라는 것인가? 예수님, 성모님, 과연 무엇입니까?

 


제 2일, 양 진영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진영, 선 善 과 루치펠의 진영, 악 惡 중에서 나는 어느 진영에 서있는가?

 

독서:

구원의 문은 좁고 들어가려는 사람은 많다.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우리의 적은 권세, 세력의 악신들, 암흑세계의 지배자들, 하늘의 악령 들이다. 이에 진리와 정의로 무장, 복음과 믿음의 방패를 잡고, 성령의 칼을 쥐어야 하며, 언제나 기도하며 하느님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편과 세상의 편:

나의 잔치, 천국의 월계관, 에 자리를 같이 하겠다는 벗들은 많으나 내 십자가, 고통과 굴욕, 와 함께 하겠다는 벗은 적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순수하여야 하며, 한번도 위안을 못 받는다고 하여도 항상 예수님을 찬미하고 항상 감사하여라.

 

묵상과 생활실천:

선과 악의 세계, 분명히 알고, 보이고 존재하는 것들.. 이런 이원론적인 생각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그 중간은 없나? 9/11 직후 Bush의 경고: Either You’re with us or against us.. 이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는데..

오늘도 오늘의 말씀들도 어제의 것들과 거의 같은 것인가. 쾌락적, 육감적 같은 세속적인 것들을 피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길인 것인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면 충족한 것인가? 분위기에 휩쓸려 감상에 젖고 그것을 즐기는 것도 세속적인 것인가?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말씀을 믿으며 실천하고, 영생의 희망 속에 살아가는 것, 나는 이제 조금은 자신이 있다. 과학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나는 모두 믿으며 아니.. 믿고 싶다. 1%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나는 하느님의 ‘물리적 현존’ 과 역사적, 신학적인 예수님의 존재를 믿으며 믿고 싶은 것이다. 이것이 나를 세속적인 인간으로부터 믿는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 나의 최후의 노력인 것이다.

 


제 3일, 결단

2017년 7월 15일 (토요일)

한 여름 오수 午睡, book club 그리고 난타

¶  일요일 New York TimesSunday Review Opinion 기사 중에 The Glory of a Summer Sleep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Trump stress 에 시달리는 세월이라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여름이 주는 계절성 opinion은 반갑기 그지없다. 백두산 천지에 홀로 떠 있는 조그만 배를 연상시키는 삽화도 나를 나른~하게 하고 summer sleep이란 말도 나를 relax하게 하니 ‘언어의 위력’은 무섭다.

삼복 더위가 시작된 이 마당에 이런 ‘게으름의 사치’는 나를 너무나 즐겁게 한다.

이 필자도 나와 비슷한 즐거움, 즉 오후의 낮잠에 대한 예찬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A wanton slumber on a hot afternoon offers the luxurious expanse of wasted time. The world can keep turning without us for a while.

 

그렇다..  나른한 더운 오후의 낮잠을 a wanton slumber라며 사치스럽게 낭비된 시간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이 정도면 무더운 여름의 낮잠은 상당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이런 의견에 절대로 수긍을 한다. 내가 바로 이 낮잠을 즐기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고 그 즐거움과 심지어 깊은 의미까지도 알고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이 곁들인 낮잠은 그 사치스러움이 더욱 극에 달한다. 거기다 포만감을 한껏 느끼는 배부름 에다 가급적 인상적인 꿈까지 포함되면 그날은 완전한 성공이다. 아무런 주위의 도움 없이 즐거운 하루가 되고 심지어 그 이후 며칠간은 ‘룰루 랄라’ 가 계속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했기에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  Book Club: 몇 개월 전 순교자 성당 주임신부와 면담한 적이 있었고 (아마도 판공성사 때문에) 그 때 여담으로 우리 성당에도 book club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신부님도 이런 idea에 대 찬성이었다. 당시에 성당에 그런 것이 없었기에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이전에 성당 사목회 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프란치스코 형제( Ohio State alumni)를 도서실에서 만났을 때 지나가는 말로 제안을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도 심각하게 생각 중이라는 답을 들었다. 성당 도서실의 책 구입 등을 그가 담당하고 있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그 이후 우리 집에 갑자기 생긴 kitten emergency로 이것을 완전히 잊고 살다가 한달 여 전에 성당주보에 독서클럽이 발족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결정의 시간’이 다가옴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것에 참여를 하려면 ‘정기적으로’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엘 가야만 한다는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런 ‘주일 활동’을 하려면 우리의 미국본당 주일 미사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참 결정하기 힘든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주일에는 ‘한번 가 보자, 될 대로 되라, it’s now or never‘ 라는 심정으로 그곳엘 가게 되었고 그날 모이는 ‘영적 독서 클럽’엘 갔는데.. 프란치스코 형제가 group leader라는 것은 짐작이 갔는데 나머지는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알고 보니 거의 모두 안면이 있거나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가? 오로지 한 사람, 어떤 형제님만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7월 달 선정된 책은 전원 신부가 쓴 ‘그래, 사는거다!‘ 라는 조금은 비영성적 느낌을 주는 제목의 책이었다.  물론 나는 그 책을 본적도 읽은 적도 없으니 거의 한 시간 동안 member들의 ‘독후감’을 듣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생긴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group leader를 포함해서 누구도 처음 들어간 나에게 관심조차 없는 듯한 인상이었는데.. 원래 그런 loose, unorganized, free-style을 목표로 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해 가지고는 serious한 member가 늘어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book club 인상은 한마디로 lousy한 것이었지만 8월 달까지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하니 그 때 한번 더 try해 보고 진퇴를 결정하기로 했다.

 

¶  난타 Redux: book club을 급히 빠져 나온 후 시계를 보니 아직도 연숙이 교리반을 끝내려면 시간이 한참 남아서 망설이는데 한 쪽 방에서 신나는 ‘난타’ 소리가 들렸다. 아하.. 오늘부터 내가 속한 구역에서 10월 초 본당의 날에서 선 보일 ‘난타 공연’을 위한 연습이 있다는 것을 늦게 깨닫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이미 연습은 거의 다 끝난 상태였다. 사실 내가 속한 구역에서 하는 이런 모임에 참가한 것은 일년도 넘는 듯하다. 그러니까 일년도 넘게 모임에 안 간 것이다.  오늘 그곳에 들렀던 것은 난타연습을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다시 구역모임이 나갈 까 하는 생각이 조금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 동안 안 나가야만 했던 ‘이유’가 얼마 전에 ‘깨끗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암만 생각해도 성모님의 손길을 안 떠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안 나가야만 했던 이유는 ‘기다리면 없어 질 것’이라는 나 나름대로의 응답을 느꼈기 때문이다.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닌가? 4년 전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때 돼지띠 동갑 전요셉 형제와 함께 Beethoven Virus에 맞추어 신나게 난타 연습, 공연을 했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면 홀가분한 심정으로 난타 소리를 대하니.. 참 작은 기적이란 이런 것인가.. 

 

봉헌 33일 시작, dementia

St. Louis Marie Grignion de Montfort

¶  루도비코 마리아의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의 정신에 따른,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2017년 8월 15일 성모승천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대축일에 봉헌이 되는 그 준비 33일의 첫 날이 조용히 다가왔다.

작년 이 맘 때를 기억한다. 나름대로 성실한 준비를 하다가 봉헌 3일 전에 포기를 했던, 결과적으로 쓰라린 추억을 만들었고 분명히 나의 주위에는 시기심에 가득 찬, 성모마리아를 증오하는 악마의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 나는 왜 그에게 져야만 했을까.. 아직도 후회를 한다. 이 ’33일 봉헌’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살다가 일 년 뒤에 나에게 조용히 나타났고, 불현듯 ‘다시 시도를 하자’ 로 정해 버린 후 마음이 홀 가분해 졌다. ‘이번만은..’ 하는 각오를 하며..

2012년 8월에 첫 봉헌을 했고 2014년 3월 25일에 봉헌갱신을 했었다. 이번의 봉헌은 그러니까 2번째 봉헌갱신이 되는 셈인가.. 총 3번째 루도비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르게 되는데, 같은 ‘준비’를 하는 것이지만 절대로 개개인에게 같을 수는 없다. 나 자신이 그 동안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번의 준비를 하며 나는 “매일 묵상일지 daily journal”를 Microsoft Office, OneNote format으로 남겨 두었기에 다시 그것을 보며 내가 어떤 생각을 당시에 했는지 알 수가 있기에 조금은 흥미롭기도 하다.

첫 시작은  12일간 계속되는 ‘세속 정신을 끊음’ 의 첫날이 된다.  이 12일 동안 묵상은 모두 현세의 표준 가치관(권력 명예, 육욕, 지성, 집단 성, 쾌락, 거짓, 위선, 무절제한 자유, 불안, 근심, 죽음 같은 것들) 이 된 모든 것들을 뒤 엎는 것이라서 조금은 거부감을 받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하나하나씩 분석하며 묵상을 하면 ‘신기하게’ 서서히 받아들여 지는 것.. 바로 이것이다.. 다시 해 보는 이 묵상들이 이런 작은 기적들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무더운 한 여름에,  신기하고 시원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  Dementia: 90도를 육박하는 7월 중순 전형적인, 알맞게 더운 날, 우리 자비의 모후 레지오 단원 3명 (단장, 서기, 자매 단원)은 약속이 된 대로 Roswell Nursing & Rehabilitation 시설을 방문하였다. 나와 연숙은 이미 몇 차례 방문한 곳이지만 오늘은 단원 중 집이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일종의 ‘도제제도 apprenticeship’ 를 따른 것인데 경험 단원이 경험이 덜한 단원과 같이 활동을 하며 배우게 하는 것이다.

이 역사가 깊은 시설은 상당히 덩치가 큰 곳인데 거주하는 많은 분들이 고령의 dementia, Alzheimer 환자나  재활치료 환자들이다. 우리가 찾는 분은 80세가 넘으신 할머님이신데 흔히 말하는 ‘중증 치매’ 환자다. 가족사진을 보면 대가족으로 참 보기가 좋지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시설로 보냈을까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레지오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환자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을 보아 왔지만 이 자매님이 나에게는 처음 대하는 ‘중증 치매’ 인 case다.  각종 질환으로 고통을 받지만 이렇게 ‘망각증 dementia’ 까지 겹친 분들을 대하면 정말 할 말을 잊는다. 어떻게 이런 가혹한 (환자나 가족친지 들에게) 고통이 있을까?

가벼운 망각증인 분도 많이 찾아 보곤 했고 비교적 대화를 하는데 조금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치매’인 case에는 사실 대화의 의미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의 계속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계속 찾는 이유는 혼자 계시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낳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이런 시설, 그것도 ‘지하층’에 계신 나이 드신 분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지만, 어쩔 것인가? 우리의 희망에 사람을 조금이라도 보는 것이 그 망각의 세계에서도 위안이 되리라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이 분들의 머리 속에 있는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인가.. 나는 그곳으로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

 

Early July, muggy but under 90

 

¶  2017년 (처음에는 천구백..으로 쓰기 시작을 했는데, 역시 나는 아직도 나의 잠재의식은 20세기에 머물고 있는지..) 7월 상순 上旬이 지나가는 시점에 다시 올해 아틀란타지역의 날씨에 감사를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한마디로 끈끈하지만 시원한.. 그러니까 muggy but cool.. 바로 그런 날씨인데 신기하게 magic number 90도를 넘은 적이 거의 없다. 요새 이 지역에서 90도 이하로 머물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평균 이하인 것이 거의 분명하다. 특히 오후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소낙비의 매력은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다.

우리 집에 ‘하숙’하고 있는 ‘불청객’ 3마리 너무나 귀여운 2달 된 kitten들 때문에 thermostat를 1도나 내린 덕분에 우리도 시원하게 지내지만, 이렇게 은혜로운 mother nature덕에 생각만큼 a/c 가 힘들게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

내일이 ‘초복’이니까.. 분명히 muggy & hot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상관없다.. 지금까지는 받은 ‘인자한 날씨’만도 감사하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어제는 2주일 만에 아틀란타 한국 순교자 ‘본당’엘 갔었다. 꾸리아 월례회의가 있기에 간 것이지만 2017년도 예비신자 교리반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해서 나에게는 다른 choice가 없었다. 집 근처 동네 미국본당과, 20마일 떨어진 한국본당을 번갈아 가며 가는 것, 이제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자연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흡사 2중 생활, 2중 국적, 겹치기 출연.. 그런 말들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레지오 이외에도 이제는 낯익은 얼굴들이 이곳 저곳에 보여서 이곳 본당도 정이 든 기분이다. 7년 전쯤 다시 이곳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이지 연숙을 빼고는 ‘하나도’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참 많은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의 시발점은 역시 성모님의 군대, 레지오 마리애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곳에 적을 두기 시작한 것, 내 인생 후반기에 대 전환점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날 꾸리아 월례회의에서는 예고한 대로, 꾸리아 회계선거가 있었다. 회계라는 직함이 별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번 선거는 나의 촉각이 곤두서는 그런 것이었다. ‘절대로 뽑혀서는 안 되는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가..

부정적인 상황을 안고 임한 투표는 ‘하늘이 도와서’,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도 못한 ‘새 얼굴, 새 피’가 선출이 되었다. 희망은 ‘현재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라는 논리인데.. 이것은 절대로 바람직한 꾸리아 간부들의 상황.. 절망적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총사령관 commander-in-chief’ 성모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우리 레지오의 ‘실질적’ 최상급 평의회는 꾸리아 이기에 이것의 중요성은 강조를 아무리 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실제로 레지오의 기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내가 진단한 현재의 상황은: uninspiring, stagnant… 더 no-nonsensical, proactive한 꾸리아 간부들과, 평의회 의원들(쁘레시디움 간부들)이 나오기만 기대하고 있다. 다음 달에는 꾸리아 부단장 선거가 예정이 되어 있어서 당분간은 조금 신경이 쓰일 듯 하지만 이것도 역시 ‘초자연적인 손길’ 성모님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  꾸리아 월례회의에 ‘희귀동물’, 중장년 남성단원이 하나 더 늘었다. 한 때 우리의 미국본당 Holy Family Catholic Church의 daily mass regular 였던 P 카타리나 자매님 부부가 평의회 단원으로 참석한 것이다. 이 남편 형제님은 레지오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했지만 벌써 서기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우리 부부와 똑 같은 상황이어서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장인 wife ‘밑’에서 서기를 맡고 있는 것, 나는 벌써 5년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이들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부부가 같이 단원, 간부 등을 맡으면 이점이 상당한 것이었다. 제일 자명한 사실은 우선 ‘부부간의 대화’에 많은, 상상을 못할 정도로,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고, 이것의 추론은: 부부 관계, 가족 관계에도 큰 도움을 준다는 놀라운 사실. 또 한번 진부한 표현을 빌리면: ‘아~ 내가 이 사실을 10년 전에만 알았더라면..’

본당에서 오랫동안 음양으로 봉사를 해 왔던 고대출신 남편 형제님, 건장한 체격과 인상 등으로 나보다 젊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거의 2살 선배 격이었다. 3년 전 ‘구수한 인상의 돼지띠 형제님’ 전요셉 형제 이후, 오랜만에 우리 또래를 만난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도 business에 시간을 쓰고 있지만 곧 retire를 생각하는 모양으로 그 후에 할 것들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성당근처 ‘널찍한’ bakery shop Mozart에서 부부가 오랜 시간 이야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전공이 기계공학이었고 관심이 나와 아주 비슷하였다. 쉽게 말하면.. Science & Religion 분야라고 할까.. 이 ‘상극으로 보이는’ 두 분야가 서서히 최근 30년 동안 접근을 하는 것에 ‘환호’를 하였다. 무섭게 변하고 있는 물리적 접근방식을 주목하며 역시 ‘절대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등 정말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  팔순 八旬: 예전에 팔순이라면 사실 제대로 실감을 못하기도 했다. 그저 아~ 오래 사셨구나.. 하는 가벼운 탄성 같은 것 정도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가 칠순과 연관이 되려는 이 시점에서 팔순의 느낌은 그렇게 ‘오랜 인생’ 같지는 않다. 환갑이 한 물 간 이후 칠순조차 별 큰 뜻을 느끼지 못함은 역시 나이에 비해서 모두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뜻일까?

우리 레지오 단원 중에 팔순 생일을 맞이하는 단원이 있었고 이번에는 그냥 단순한 생일회식에서 벗어나 생일카드와 birthday cake을 준비한 팔순 기념회식을 치렀다. 본인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회식에 참여했고 단원들도 축하하는 분위기를 마음껏 즐겼다. 하지만 나이가 제일 많은 이 팔순의 자매님이 다른 단원들에 비해서 훨씬 건강한 편에 속한 것, 물론 좋은 일이지만 건강은 나이와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낀다.

 

끝내주는 초여름, 2017

¶  Green backyard: 와~~ 내가 꿈을 꾸고 있는가? 멋지게 상상하던 모습들이 100% 아니 200% 그대로 눈과 코로, 피부로 그대로 느껴지는 2017년 초여름.. 재빠르게 지나가며 dog day가 멀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이제까지 받았던 날씨, Mother Nature의 은총은 두고두고 음미하며 나를 즐겁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나간 2017년 6월 달은 나의 기억에 아마도 wettest June 이 아니었을까? 폭우로부터 시작해서 해가 전혀 안 보이며 24시간 내리는 줄기찬 비, 가랑비, 보슬비.. 흡사 Seattle, Washington을 연상케 하는 그런 ‘멋진 나날’들이었다. 끈끈해도 시원한, 구차스럽게 a/c 소음을 듣지 않아도 시원한 그런 밤과 낮을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90도를 넘어본 적이 없었던 global cooling 의 초여름..  앞으로 2개월 정도 찌는 듯이 더워도 이제는 불평을 할 용기가 전혀 없다.

 

 

¶  Independence Day가 내일로 다가왔다. 올해는 화요일, 조금 특이하게 우리 부부에게 제일 중요한 레지오 주 회합이 있는 날이 아닌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아틀란타 순교자성당이 이날 아예 문을 닫는단다. 아니 왜 성당이 세속적인 휴일에 문을 닫는가? Universal Church의 미사가 휴일로 문을 닫는 것은 아무래도 수긍이 안 가는 것이다. 원래 성당이 월요일 날 문을 닫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화요일까지.. 본당은 비록 주임신부의 재량이겠지만 최소한의 guideline은 교구청의 것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America, still the beacon, hope..

 

다행히도 우리의 정든 ‘동네본당’ Holy Family Church는 변함없이 미사로 모이고 분명히 America, the BeautifulGod Bless America를 부르지 않을까.. 하지만 주일미사에는 성가대 service가 없으니까 그것은 무리일 듯 하다. 작년에 비해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가 속한, 나의 나라라는 것,  과연 한 인간, 피조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생각을 한다. 정답은 없는 듯 하고..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하면 된다는 소박한 답은 가지고 있다.

올해 Independence Day, 우리 핵가족은 모이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니는 해외휴가여행, 나라니는 Luke네 lake house에서의 그들 가족모임과 매년 참가하는 Atlanta 4K marathon엘 가니까.. 결국은 우리는 역시 2명의 우리밖에 없다. 1명과 2명의 차이는 우주처럼 크지만 2명과 그 이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는 명언을 실감하니까.. 그래 우리 둘 만이라도 무언가 ‘굽고’, Heineken beer로 기분을 내어보자.

 

¶  3 MORE Kittens adopted out: 이틀 전, 지난 토요일.. 슬픈 날이 되었다. 비록 예정되었던 것이지만 미리 알고 있어도 사람의 감정이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애지중지 키워오던 2개월이 넘어가는 8마리의 kitten들 중에 2차로 무려 3 녀석이 adopt되어 나간 것이다. 1차는 이미 6월 20일경 sweet Velvet가 어떤 young couple에게 adopt되어서 떠났는데.. 그때도 이상야릇한 감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갓 태어나서부터 젖을 먹여 키웠던 ‘애’들이라서 완전히 사람 같은 느낌으로 우리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8마리에서 7마리가 되었을 때 그 느낌도 조금은 조용해 진 듯한 것이었지만 이번에 3마리가 빠진 4마리의 방은 그야말로 처음으로 정적이 휩싸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adopt된 3마리: ‘BB: 왕방울’, ‘Jack’, ‘Pink’ 는 사실 그 중에서 제일 애교들이 많았던 애들이어서.. 연숙은 눈물을 참느라고 애를 썼는데 사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다는 말이: ‘이제 다시는 이런 ‘짓’ 하지 않겠다고..’ 나라니가 동부서주하며 찾아 준 adopt family들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안심이 되었고 가끔 Internet으로 근황을 전해 주는 등.. 모두들 행복한 삶을 살리라 기도를 한다. 나머지 4마리는 언제 adopt가 될 지는 미지수이지만 계속 노력 중이다.

 

Velvet renamed to Dax

Jack & Pink

BB – 일명, 왕방울

 

 

Mothers.. I’ve sinned..

Mothers (my own mother & the virgin mother)..  I’ve sinned especially today on Mother’s Day…  2017년의 Mother’s Day 오늘 나는 뜻 밖의 고뇌와 함께 내가 큰 죄를 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오늘의 큰 죄는 ‘고의적, 아니 죄를 안 지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죄’ 였기에 더 나를 괴롭힌다.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싫어하게 되는 죄’, 바로 오늘 ‘사랑의 본질인 어머니 날 의 정신’을 정면으로 거역한 죄를 지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나는 내가 지은 죄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기가 막힌 사실이다. 어떤 교활한 악마가 나를 휘어 잡았는가?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가야만 했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 무심코 들어가 앉은 그곳에서 나는 ‘그 사제’를 또 봐야 했다. 몇 번째 이던가?  ‘피할 수도 뛰어 나올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  근래 더욱 자주 보게 되는 방문 신부, 무엇이 나에게 문제인가?

메주고리예 Medjugorje  에서, visionary중의 하나인 미르야나 Mirjana 에게 개인적으로 발현하신 동정 성모님, 분명히 천명을 하셨다. 사제를 단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큰 죄’라고.. 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직접 심판을 하신다는 뜻인 모양이다. 우리 같은 일반신자들의 사제(단) clergy 에 대한 ‘비판, 비방, 심판’은 아마도 아주 아주 나쁜 죄에 속하는 모양인데.. 문제는 사제도 한 인간이고 일반 신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면 어쩔 것인가?

나를 괴롭히는 것은: 이 사제의 지나친 showmanship한 행동과, 내가 생각하는 사제의 ‘일반적인’ 관행에서 훨씬 벗어나는 ‘파격적’인 언사, 언행(특히 offensive comments) 이다. 보기에 따라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친근한’ 것으로도 보일 수는 있지만 암만 내가 생각하고 생각해도 이 사제는 전형적인 ‘How did he become a priest?’ 중에 하나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나 자신이다. 이런 ‘싸움’에서 나의 말에 쉽게 동조하는 사람이 없거나 극히 소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아마도 해결책은 없을 듯하다.

 

뜻 밖의 이틀간..

불편할 정도로 끈끈하던 지난 밤은 전형적인 여름의 그것이었는데 기분에 분명히 하늘에 주체할 수 없는 energy가 모이고 있음을 느꼈는데 결국은 이렇게 늦은 오후에 thunderstorm 과 heavy rain을 편한 기분으로 만끽하게 되었다. 

이번 주 초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틀간의 mourning 이 몇 시간 전에 모두 끝이 났다. 이것이 인생이다. 예정된 것 사이사이에 이렇게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 일어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이제는 느낀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생’의 하루하루인 것이다.

아틀란타 지역에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최동명 종합보험 대표, 최동명 James (야고보) 형제, 3일 전인 5월 9일 오후에 선종하였다. 심장에 관계 된 병의 결과는 예측을 할 수가 없기에 모두들 그저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어제의 장의사 연도와 오늘의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의 장례미사 그리고 ‘funeral lunch‘ at 한일관’으로 모든 공식 절차는 끝을 맺었다. 하지만 짧았던 충격은 이제부터 서서히 여운을 남기며 소화가 될 수 밖에 없다. 우선 viewing을 할 수가 없어서 실감이 아직도 가질 않는다. ‘이제까지 웃던 얼굴, full of life‘의 60대 중반의 가장이 조그만 urn속의 한 줌의 재가 되어서 우리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이번처럼 실감이 가지 않았던 경험도 없을 것이다.

가족장을 원한다던 직계유족의 바람이 아닌 완전히 공적인 장례식이었다. 연도와 장례미사로 이어진, 다만 viewing과 coffin이 없었던 것이 색다른 것이었다. 직계가족, 특히 아들 딸의 ‘오열’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siblings 과 연로하신 어머님은 부러울 정도로 침착한 표정들이었는데.. 나는 그것이 부럽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었을까? 대가족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 보험 사무실에서 만났던 Charlie P도 오랜 만에 식사 때 만났다. 전보다 살이 빠져서 보기가 좋았던 그, 내가 방문할 때마다 James ‘사장님’과 나를 포함해서 같이 담배를 피었는데 들으니 ‘사장님’이 자기와 같이 금연에 성공을 했는데, 1년 뒤부터 다시 피기 시작했다고 들려 주었다. 심장병의 원인 중에 흡연도 있었기에.. 그 때 완전히 담배를 끊었었다면 어땠을까 아쉽기만 하다.

아쉬운 것은 사실 그것이 아니고, 내가 알기로 이 James 형제가 신앙생활로 부터 떨어져서 살아온 것이다. 항상, ‘옛날에 열심히 했다’고 하는 것이 변명이었다. 그것은 사실 그의 형도 마찬가지다. 옛날에 했던 것이 그렇게 지금 큰 상관이 있을까? 아무리 바빠도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했었으면 결과는 아주 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평소에 stress를 많이 받으며 사는 그의 life style에, 마음의 평화가 주는 ‘stress의 해독제’ 역할을 그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덤덤하게 받아들였던 그의 타계, 이제는 조금씩 그의 삶과 죽음이 나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천천히 음미할 차례다.

 

싸~늘~ 한 5월 초, 성모의 밤

¶  싸늘한, 아니 아예, 이른 봄의 꽃 시샘 추위를 연상하게 하는 싱그러운 5월 달 첫 토요일 아침. 지난 밤에는 급히 ‘강제로’ 70도에 hold했던 2층 thermostat로 말미암아 central heating 이 밤새도록 ‘겨울의 소음’을 내며 돌아갔다. 웬만하면 bed blanket warmer로 견디면 되겠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2층 small bedroom 구석에서 3주 째 젖을 먹으며 자라고 있는 5마리의 kittens들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분명히 이런 ‘추위’는 처음일 것이라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지나간 주일들, 초여름의 끈끈함을 느끼게 하는 ‘무더위’의 맛을 보여 주더니 역시 자연은 공평한 것인가.. 기억 속의 5월, 언젠가는 이렇게 unseasonable 한 음산한 추위를 꼭 보여 주었다. 역시 한치도 어김없이 싱그러운 성모성월의 벽두에 이렇게 끊임없이 쏟아지는 폭우가 하루 종일 내리며 ‘5월의 추위’ 까지 찾아온 것이다.

지난 주에 그렇게도 덥게 느껴지던 날 올 처음으로 아래층 마루 아래  crawlspace에 들어갔다가 central furnace의 pilot light를  아예 꺼버리고 나온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이제는 아래층의 central heating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속단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설마 다시 추위 질까?’ 하며 그렇게 한 것인데 오늘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건 완전히 냉장고로 변해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kitchen에 남겨둔 toy같은 space heater 덕분에 ‘동사’는 면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아마도 이번의 싸늘함이 올 여름 전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추위’가 아닐까.. 이제부터는 cooling system에 온통 신경이 쓰일 계절이 아닌가? 아~ 이제는 우리의 ‘고철’ a/c (air conditioner)가 올해는 무사히 견디어 줄까.. 하는,  혹시 무슨 일이.. 하는 자괴감에 젖는다.

 

¶  레지오 피정, 성모의 밤: 2017년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주관  2일간의 ‘연’ 피정이 숨가쁘게 바쁜 스케줄로 피곤한 우리를 맞이했다. 한 동안(1~2 년간?) 피정이란 곳에 못 가보아서 생소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지만 반갑기도 했다. 지난 4~5년 동안의 내가 가보았던 레지오 피정의 느낌들이 만족스럽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본 것들은 대부분 ‘집을 떠난, 진짜 피정’ 들이었지만 이번은 본당에서 하는 ‘편하지만.. 느낌이 덜 한’ 그런 것이고 이틀 째 날의 스케줄은 조금은 아찔한 것. 아침부터 밤 9시를 넘어가는 숨이 찬 하루였다.

피정 둘째 날의 그 바쁜 스케줄은 사실 피정과 상관없이 본당의 다른 행사인 ‘성모의 밤’ 이 저녁 늦게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것은 꼭 참가하고 싶은 것이어서 비교적 긴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야 했다.

대한민국 안동교구 정희욱 ‘원로사제’ 신부님이 주도한 피정 자체는 첫날밤의 slow start로 조금 실망감을 떨칠 수가 없었지만, 끝 마무리가 활기에 찬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grade B+ 정도는 될 것이다. 내가 본 이번 피정 강론의 문제는 이것이다. 성모신심을 ‘체험’으로 강조한 것은 만족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깊이가 결여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성모신심이 생소하거나 거부감이 있는 일반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인들에게는 잘 맞는 정도의 message였다. 하지만, 우리 같은 레지오 단원들은 이미 이런 정도의 신심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피곤한 긴 하루를 마감했던 ‘성모의 밤’.. 이것 때문에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올해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성모의 밤.. 작년 같이 성모동산 앞 주차장에서 ‘어두운 밤을 밝히는’ 멋진 모습을 상상했지만 예상을 뒤엎고 실내인 대 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화창하던 날씨가 일기예보가 정확히 예고한 대로 부슬비가 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랜 만에 들어보는 ‘생음악’, GounodAve Maria, violin 연주(piano와 duet) 는 성모님의 청순함을 아낌없이 느끼게 하는 그런 연주였는데 그 violin 자매님, violin연주의 ‘백미 白眉’를 들려준 것 같아서 고맙기까지 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신 이재욱 요한 본당신부님의 모습도 좋았고, 성모님께 바치는 ‘시적인 글’도 너무나 좋았다. 남녀노소가 골고루 참여하여 우렁차게 바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는 평소에 하던 때의 느낌을 훨씬 넘는 그런 장엄했던 것. 레지오 연피정 주제인 ‘성모신심’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한 성모의 밤, 나에게 있어서 ‘특별한 피조물, 성모 마리아’는 과연 지난 7년 동안 어떤 의미였을까.. 죽을 때까지 음미하여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베로니카, 2주기

2014년 온 세상이 찬란한 amber color로 변해가던 깊은 늦가을 우리와 첫 인연을 맺었던 베로니카 자매님이 하늘로 떠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 바로 오늘 5월 2일이었다. 첫 해는 그런대로 길기 느껴진 세월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무섭게 빠른 세월을 맞을 것이다. 그러면 기억도 서서히 사라지겠지만.. 슬프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고 떠나신 돼지띠 동갑 배 베로니카 자매님..  만난 지 비록 반 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진한 만남들을 경험하였다.

오빠와 동생들의 염원을 따라 베로니카라는 세례명으로 병상에서 세례까지 받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향한 자매님, 올해도 우리는 자매님의 공원묘지를 찾았는데 아쉽게도 두 아들이 함께하지 못 하였다. 양친을 2년 만에 모두 잃은 외로운 형제 아드님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우리의 희망은 언젠가 어머니처럼 하느님을 찾아 성당에 나오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현 시점에서는 tall order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바람 부는 날 redux

오늘은 드물게도, 거센 바람이 분다..  지나간 겨울은 정말로 조용한 하늘이었다. 바람도, 눈도, 큰 비도 없었던 정말 얌전한 날씨로 일관했던 2017년 첫 3개월을 보낸 지금 4월초가 되면서 빚이라고 갚으려는 듯, 어젯밤부터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기온까지 급강하, 아침에 외출 할 때는 거의 사라졌던 두꺼운 스웨터까지 입어야 했다.

얌전하게 지나간 겨울, 비록 재미는 없었지만 덕분에 heating $$$는 분명히 많이 절약이 되었을 것이다. 이럴 때 $$$를 언급하는 나를 나는 경멸한다. 그것이 나이 탓인가 세월 탓인가 시대 탓인가…

 

bizarre & kafkaesque..

2017년 3월의 hump day로 힘겹게 넘어가려는 날 3월 14일, 오늘이 내가 꼽는 올해의 첫 그날, truly  bizarre kafkaesque day가 아닌가 싶다. 아주 가끔(십 년쯤에 한번 정도) 경험하는 이런 ‘괴상하고 이상한 날 Franz Kafka도 놀랄만한’, 이날은 간단히 말하면 memorably truly BAD day가 되고 말았다. 바라건대 이와 같은 날은 가능하다면 다시는 맛 보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니면 10년 이후에나 다시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날의 ‘괴상한 사건’은 timeline으로 펼치면 길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간단한 것이다. 한마디로: 레지오 주회합 시간에 방문을 온 어떤 꾸리아 간부의 ‘해괴망측한 행동’ 바로 그것이다. 이것이야말로 bizarre, bizarre 그리고 또 bizarre 그것도 부족해서 이거야 말로 kafkaesque란 괴상한 단어가 100% 딱 들어 맞을 것이다. Franz Kafka의 classic ‘The Trial‘의 불행한 주인공 K의 심정을 느낀다. 도대체 이 해괴한 행동에서, 나는 (아니 우리 모든 단원들은)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고 순식간에 attack을 당한 것인데.. 솔직히 말해서 이사건 주인공의 정신상태까지 생각해볼 정도였고, 하도 밥맛이 떨어져서 입을 딱 씻고 6개월 장기유고를 선언할 태세까지 갖추고 있는데, 참 어쩌다 우리 레지오가 이 지경까지 흘러온 것인지..

 

+ 강 마리아 자매님..

오늘 저녁에 우리부부는 개인연도를 하고 있었다. 이틀 전에 ‘갑자기’ 타계하신 강 마리아 자매님, 향년 90세로 하늘로 떠나셨다. 인생 90년은 비록 짧지는 않게 느껴지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더 오래 사실 것, 100세는 사실 것으로 안심을 하며 지내던 터에 더욱 슬프고, 당황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으로 고인의 영결행사 대신 이렇게 집에서 연도를 한 것이다. 부디 연옥의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시도록 간절히 빌었다.

강 마리아 자매님, 우리와 처음 만난 것 레지오 수첩을 찾아보니 아마도 2013년 11월 경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모습들을 비교적 자세히 기억한다.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준비로 난타 연습이 진행 중이었고 지금은 귀국하고 없는 전요셉 형제와 친해지려고 하던 그 때, 레지오의 다른 단원과 친분이 있었던 ‘할머니 교우’ 였던 강 마리아 자매님이 senior home에 사시는데 ‘치매기’가 있고 성당엘 나올 수 없으니 봉성체를 부탁한다고 알려 왔다. 나는 ‘봉성체 자격증’ 이 없지만 다행히 연숙은 그것이 가능해서 나는 봉성체 동행으로 따라가기 시작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

알고 보니 강마리아 자매님은 전요셉 형제와도 이미 친분이 있었다. 몸이 성할 당시 성당 미사시간에 옆 자리에 앉으시곤 했다고 했다. 그래서 한번은 전요셉 형제도 함께 봉성체를 가기도 했다. 사시는 곳은 ‘비싼’축에 속하는 senior home이었는데 비록 환경은 좋다지만 외롭게 사시는 것은 별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조그만 방에서 시간을 보내시는 것.. 보기에도 쓸쓸하게 보였다. 하지만 강 마리아 자매님은 활달한 성격이고 항상 웃으시는 것이 우리 어머님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 친하게 되었다. 비록 경미한 기억상실증dementia 같은 것은 있었어도 우리가 방문 당시에는 거의 정상인 같이 보였다. 이래서 거의 2년 여의 봉성체 인연을 맺기 시작하게 되었다.

치매, 그러니까 망각증상은 분명히 있었으나 특별한 질환이나 쇠약함이 별로 없는 자매님, ‘약 하나도 안 먹는다’ 고 자랑을 하시기도 하고 일제시대 부산에서 미래의 남편 되시는 분이 지나가는 자기를 ‘꼬시려고’ 할 때의 ‘기꾸꼬 짱!’ 하며 불렀던 기억, 일본 군가 같은 노래를 가사를 똑똑히 팔을 흔들며 부르시던 모습 또한 새롭다.

‘잘 나가는 가족들’을 두신 자매님, 어쩌다 이렇게 미국 아틀란타의 어느 조용한 양로원에 오시게 되었는가? 절대로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자랑스러운 아드님 부부도 가까이 살고 있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다. 경험 있는 관록이 붙은 회계사였던 아드님, 경제적으로 부유했지만 어머님을 모시기에는 너무나 바빴던 모양이지만, 우리 어머님을 내가 모시지 못하고 보낸 나의 처지에서 그런 것을 comment하는 것조차 죄스럽게 느껴진다.

한 번은 자매님이 가출했다고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양로원 근처를 방황하다가 발견되어 큰 문제가 없었지만, 그것으로 우리는 분명히 망각증이 더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4시간 주위의 보호를 받고는 있지만 그런 사고는 날 수가 있는 모양.  한번은 가보니 무거운 장거리 여행용 가방을 챙겨두고 계셔서 어디 가시냐고 여쭈었더니 ‘나도 여행을 가야겠다’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지만 양로원 측의 말이 자주 저러신다고 했다. 짐작에 아들네 부부가 ‘세계일주’를 갔는데 따라가시려고 한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지난 몇 개월 봉성체를 거르게 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하지 않았다. 우리도 바빴고 ‘치매 환자의 봉성체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신부님께서 가급적 치매환자 봉성체를 자제하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강마리아 자매님을 찾지 못하고 지나다가 이번에 정말 놀랍게도 타계하신 소식을 접했는데, 솔직히 머리가 땅! 하고 얻어 맞은 느낌이 들었다. 죄송, 죄송..죄송합니다.. 라는 말 밖에 할 말을 잊었다. 봉성체를 못해드려도 찾아라도 뵐 걸..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몸이 성한 우리 같은 신자로서 봉성체 봉사는 그 분들에게 드리는 도움보다도 그로 인해 내가 받는 은혜와 은총이 더 많음을 항상 절감하곤 한다. 대부분 인생 선배님들은 그들에게서 나는 산 역사 공부를 하고, 신앙공부도 하게 되며 앞으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배우는 등.. 참 알고 보면 내가 더 도움을 받으러 그 분들을 찾아 뵙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아직도 환~하게 웃으시는 강마리아 자매님의 얼굴.. 나에게는 항상 살아서 ‘찾아 주어서 고맙데이…’ 하시면 양로원 문까지 배웅해 주시던 조그만 체구의 마리아 자매님.. 영원히 살아 계실 것이다.  성모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이여, 이 자매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기를 빌어 주소서…

 

레지오 연총, 2016

지나간 거의 반년 이상 줄기차게 레지오 서기록 공지사항에 적혀 있었던 것이 바로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 이것이 드디어 끝이 났다. 대강 이 행사가 끝날 즈음이면 대림절 이후 늘어나는 촛불의 숫자를 필두로, 성탄절과 송년의 기분을 조금 느낄 수 있는 시기가 된다. 올해에도 예외 없이 대림초 2개가 켜지는 날 주일, 12월 4일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천상은총의 모후 꾸리아 산하의 모든 레지오 단원들이 커다란 친교실에 모두 모여서 일년을 무사히 우리들을 지켜준 ‘총사령관’ 성모님께 감사, 전구기도를 드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로써는 올해가 벌써 6년째가 되는 이 연말 행사, 처음이 2010년 12월이었지.. 그때는 정말 햇병아리 신참, 정단원 선서를 기다리던 시절에 이 행사를 보며 ‘난생처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동료의식’을 조금은 느끼며 흥분된 기분이기도 했다. 해가 거듭할 수로 익숙해지고 있지만 매년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는다. 거의 대부분이 ‘자매님’들인 이 단체, 나 같은 ‘형제님’들은 이 여성들을 따라가야 한다.

이 행사는 비록 Ireland 냄새가 짙게 나는 유럽에서 유래된 Legion of Mary (Legio Mariae)의 연말 행사지만 우리가 치르는 이 행사는 거의 99.9% ‘대한민국화’ 된 것이다. Universal Church를 지향하는 천주교의 전통에 따라 이것도 세계화 되었기에 전세계 곳곳에서 열릴 것이고 ‘막강한’ power를 자랑하는 한반도의 전역 본당에서도 열릴 것이고, 그들의 연총 행사는 위에 말한 것같이 ‘한국화’된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이곳 아틀란타의 그것은 무엇인가? 원칙적으로 우리가 숨쉬고 있는 이곳 미국 땅의 그것의 문화를 따라야 할 것이지만, ‘한국인의 근성’이 어디로 갈까? 더욱이나 ‘막강해진’ Korean Connection은 이곳 아틀란타에서는 피할 수가 없다. 레지오 조직의 법적인 차원을 떠나서 사실 우리는 별 수 없이 대한민국의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레지오 연차 총친목회를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짐작에 우리가 현재 여기서 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아마도 똑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크게 상관이 없다. 레지오의 교본에 따라 레지오의 연차 총친목회의 정신을 따르면 문화적인 것은 2차적인 관심이다. 평소 잘 못보고 지내던 ‘레지오 동지’들과 친교를 이루면 그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니까…

이 행사는 동료 단원들과 친교를 이루는 한 방법으로 ‘연예 프로그램’을 긴 시간 동안 준비를 한다. 이 긴 시간을 통해서 친교를 하게 되는데 올해 우리는 비교적 잘 알고 지내던 ‘은총의 모후’와 함께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와 ‘개똥벌레’라는 두 곡을 연습하여 당일에 그 솜씨를 발표 하였다. Chorus style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색다르게 rearrange를 해서 2번째 부른 ‘개똥벌레’는 자매님들이 귀엽게 율동을 해서 연속된 노래의 지루함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나간 여름부터 시작된 ‘기타 club’의 학생자매님들이 guitar로 반주를 했고, 나는 전체적인 guitar 반주를 하는 등, 보는 사람들에게도 신선한 performance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한가지 아쉬움은.. 연총 당일을 위해 지난 몇 개월간 열심히 guitar 반주 연습을 같이 했던 크리스티나 자매님 (나와 guitar duet)이 감기에 걸려 어쩔 수 없이 공연을 포기하게 된 것… 정말 아쉽기만 했다. 그 자매에게 감기는 정상인에 비해서 심각한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차가운 비가 하루 종일 뿌리던 12월 4일 일요일 오후의 이 행사,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아니 2016년 레지오 마리애의 굵직한 행사의 마지막이 끝난 것.. 이제부터는 성탄을 향한 본격적인 대림절로 기다리는, 편안한 12월의 휴일 기분을 만끽할게 되었다.

 

9/11, V3000, 꾸리아 Hijacked

nine-eleven-1¶  Nine Eleven 2016, 9/11/2016… 이제는 희미해진 느낌의 이 말들.. 세월은 무섭다. 그런 것이 이렇게 큰 충격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역시 세월의 효과일 것이다. 그저 매년 매년 이 맘 때면 아 2001년이었지.. 한 정도였지만 2011년과 2016년은 조금은 더 의미를 둔다고 할까, 5년, 10년, 15년, 20년.. 이 조금은 더 기념하기가 쉽다. 올해가 바로 15년 전.. 그날이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던 것이..

나에게는 어떠했는가? 그 동안 아이들 모조리 학교 시절을 벗어나 졸업 직장인, 30대로 들어갈 정도로 변했고, 우리는 60대를 거의 지나가는 ‘신 고령’의 세대로 변했다. 나는 corporate USA 인생을 완전히 떠나서 하루 종일 거의 한국말을 쓰는 시대를 맞게 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완전한 retirement, 하지만 거꾸로 사회적으로는 예전에 비해서 훨씬 의미 있고 바쁜 생활이 되었다.

처음 십 년의 암흑의 세월 동안 나의 전부였던 어머님이 먼저 가셨다. Twin Towers의 시커먼 불 연기 속에 pure evil의 얼굴을 뒤로 하고 세상은 무섭게 변하며 나의 암흑은 더욱 어두워지고.. 아마도 이 기간을 나는 나의 암흑시기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그렇게 ‘우연의 연속’만이 아님을 잘 안다. 아니 거의 모든 세상사는 우연보다는 필연의 연속이고 모든 것에 의미가 있음도 너무나 늦게 깨닫게도 되었다. 그것이 지난 15년이 나에게 준 제일 큰 선물이 되었다.

 

2016-09-19-12-32-10

 

¶  Saving V3000:  작년에 아는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업체와 집에서 쓰던 ‘고물’ computer들을 인계 받았다. 꽤 많은 것들.. 거의 모두 2000년대 초 중반의 desktop, laptop  PC들, 그러니까 모두 Windows XP  정도를 무리 없이 돌릴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거의 모두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거의 dead on arrival 인 것도 있었다.  내가 이것을 인계 받은 것은 고칠 것은 고쳐서 가급적 필요한 곳에 donation을 하는 그런 목적도 있었다.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비록 시간은 들더라도 그 자체가 기쁨이다. 폐기품으로 간단히 landfill로 보내는 것이 나는 제일 싫기에 이것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그 자체가 나에게는 큰 보람이기도 하다. 만약 재수 좋게 완전히 고치게 되면 비록 ‘고물급’이지만 최소한 Microsoft Word 정도만 쓰게 되어도 비영리단체에서는 쓸 수가 있지 않을까?

이 중에 내가 제일 심혈을 기울이고 시간을 많이 들인 것이 2006 쯤 나온 HP Compaq Presario V3000 Notebook 이다. 이것은 dead on arrival (DOA) 로 이미 죽어버린 듯 보인 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비교적 작은 screen을 가진 가볍고 예쁘고 삐가번쩍 하게 흠이 하나도 없는 거의 새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2006 년 급의 CPU (~2Ghz) 였지만  Youtube같은 Internet streaming video는 무난히 handle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씨름을 한 과정은 참 긴 고생길이었다. Hard disk에 문제가 있는 듯한 증상을 보여서 (blue screen 같은) 다른 disk로 Windows XP를 reinstall 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random하게 reset, reboot를 하는 심각한 ‘병’이었다. disk가 문제가 아니라면.. motherboard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얘기는 끝인 것이다.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motherboard에 이상이 없다면 회생의 가능성은 있지만 얼마나 $$을 들여야 하는가.. 하는 ‘경제적’인 것이다. 가령 문제점을 발견 그것이 hardware part에 있고 그것을 사는데 너무나 $$이 많이 들면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여곡절, 희비쌍곡선 등을 골고루 거치며 결과적으로 총 $60 정도의 part (RAM, Battery, Hard Disk)의 도움으로 완전한 것으로 탈바꿈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science 중의 science인 ‘명확한’ 일이지만 그것에는 분명히 luck이란 것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결과는, 멀쩡한 것 쓰레기로 안 버리게 되고 앞으로 2~3년 정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번쩍번쩍’하고 귀여운 laptop notebook PC를 가지게 되었다.

 

¶  Curia Monthly, Hijacked : 9/11, 15주년이 되는 날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레지오 꾸리아 월례회의 때문에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가게 되었다. 한번도 빠진 적이 없었던 이 꾸리아 월례 회의를 나는 지난 달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빠지고 말았다. 나로서는 아주 예외적인 일이어서 사실 나도 기분이 계속 찜찜했던 터였다. 이런 정기모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레지오 군대수칙’을 지키자던 나와 ‘어머니’의 약속이 지난 5년 동안 참 신통하게 효과를 발휘하였는데 이렇게 예외적이나마 깨고 보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더욱 ‘정신 상태’에 신경을 쓰고 참석을 한 것이다.

9/11, 15주년이라 조금 기분이 쳐진 상태였고, 거의 2달 만에 순교자 성당의 주일미사를 참례를 하게 되어서 모든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고, 조금은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잇몸까지 반란을 일으켜 나는 사실 집에 빨리 돌아갈 생각이 가득한 터에… 이날의 본론인  꾸리아 월례회의까지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이 회의가 hijack이 된 느낌이었다. 9/11의 hijacker들의 괴물 같은 모습과 겹쳐진 이날의 happening은 글자 그대로 happening.. 꾸리아 연례 회계감사보고, 예로 10분 정도 ‘형식적’으로 끝나는 관례를 깨고.. 이번 것은 거의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예행연습을 거친 듯.. 3명이 나와서 복음말씀으로 시작해서 묵상말씀이 곁들인 정말 bizarre.. bizarre.. 모든 것이 끝나고 나오면서 나는 이 월례회의, 9/11을 기념하듯 완전히 hijack 된 느낌 밖에 없었고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 car key를 찾기에 바빴다.

 

화창한 5월 두째 주말은..

¶  5월 13일.. 2016년 5월 13일 Friday.. 아하 ‘또’ Friday the 13th 인가.. 하였지만 곧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금요일 13일은 맞았지만 문제는 5월 13일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이다. 맞다 바로 Fatima.. Fatima.. Portugal, 1917년 5월 13일인 것이다. ‘묵주의 성모님’으로 일컬어지는 파티마 성모님 정확히 99년 전 5월 13일에 3명의 어린이들에게 발현하셨다. 그리고 확고한 역사로도 자리를 잡았다. 당시 Lisbon의 유력 정부기관지였던 the Seculo에 보도가 되었을 정도로 큰 ‘사건’에 속했다.

기록(그러니까 역사)에 근거한 영화나 책들이 많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흥행성’을 의식한 영화들은 너무나 ‘색깔’들이 끼어있다. 근래에 발견한 ‘고서’ 중에 The True Story of Fatima 가 있는데 이 책은 주로 목격자 중 제일 오래 생존했던 Lucia수녀님의 증언에 의한 것이고 발현 당시 다른 일반인들의 증언에 의한 교회의 치밀한 발현승인 과정을 거친 것이라 거의 정확한 역사서라고도 볼 수 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적인 발현이었지만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발현 성모님의 모든 예언들이 역사적으로 다 실현이 된 것을 보면 ‘등골이 써늘해 짐’을 느낄 때도 있다. 일관되게 비교적 간단한 요구사항을 요구하시는 성모님의 message들, 과연 쉽게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 message 의 중심에서 초 현대의 세속세계는 내가 보아도 ‘너무나 너무나’ 멀어져 있고 무섭게 멀어져 간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그래도 성모님은 희망의 상징이다. 희망은 원하면 언제나 자비와 함께 우리가 받는 하느님의 선물이 아닌가?

 

¶  마리에타 2구역 점심봉사: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구역미사에 이어서 곧바로 구역이 담당하는 ‘의무적’인 순교자 천주교회 본당 점심봉사 날이 다가왔다. 이것이 주는 stress로 구역장을 못하겠다는 의견도 많이 있을 정도로 사실 이것은 큰 일이다. 200여 개 이상의 serving을 예상하는 것으로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 한마디로 장난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서 각가지 knowhow가 축적이 되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공식’같은 것도 있음 직하다.

우리는 advanced age라는 이유로 봉사의 의무에서 excuse가 되고 있었지만(우리가 희망하기에), 이번에는 조금 사태가 다르게 되었다. 구역이 둘로 나뉘고 우리가 속한 ‘반’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특히 형제님의 숫자가 안심할 정도가 못되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이번에는 봉사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날, 점심 봉사하는 날 full-time으로 일을 하였다. 솔직히, 기분 좋게 일을 해서 그런지 일은 비록 많았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 동안 못 했던 미안한 심정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게 되고,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하지만 ‘호사다마 好事多魔’라고 하던가.. 모든 것이 끝나고 하얀풍차에 몇 명이 모여서 뒷풀이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즐겁지 않은 뉴스, persona-non-grata 를 접하면서 조금은 흥이 깨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었고 main event자체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이틀간의 service는 우리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  감사합니다, 예수님! 메주고리예:  매달 2일에 메주고리예에서 visionary Mirjana에게 ‘공개적으로 publicly’ 발현하시는 성모님, 이제는 게으르지만 않으면 Youtube를 통해서 주로 Italian pilgrim들과 함께하는 group이 찍은 video를 볼 수 있게 되었다. 5월 달은 초부터 무언가 바빠서 깜빡 하고 이것을 check하는 것을 잊었다. 이제야 보니.. 무언가 귀에 익은 노래가 들렸다. 바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하는 우리말 노래가 아니었던가. 비록 영어 accent가 섞였지만 아주 정확한 우리말 노래, 그것도 통역을 전담하는 형제가 유창하게도 불렀다. 어떻게 이렇게 우리말 노래가 불려지도록 주선이 되었을까? 추측에 대한민국도 ‘메주고리예 신심’이 상당해서 이곳 메주고리예에서도 인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완전한 나의 상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상당히 높을 듯하다.

 

 
성모님 발현 – 메주고리예 2016년 5월 2일

 

¶  The Seekers: I’ll Never Find Another You 1967,  우연히 우연히 이 노래 video를 보게 되었다. 요새 비교적 잊고 살았단 나의 지난날의 추억이 나를 아득~하게 만든다. 나에게도 그런 꿈같던 시절이 있었지.. 하는 조금은 만족스럽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추억들.. 추억의 얼굴들.. 이런 것들이 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것, 특히 ‘유행가’와 연관이 되어서,  뇌세포 깊숙한 곳에서 꺼떡없이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옛 유행가를 그렇게 아직도 좋아하나 보다.

오늘 본 것은 Australian vocal group, The Seekers의 경쾌한 country style ballad ‘I’ll Never Find Another You‘. 가사야 큰 의미가 없지만 이 노래의 lead singer의 목소리가 이 노래의 tone과 style을 그렇게 classic으로 만들었나 보다. Judith Durham, 바로 이 그룹의 간판 격 ‘청순한 tone’.. 몇 년 뒤에 미국의 The Carpenters의 Karen Carpenter 가 바로 이런 독특한 음성의 소유자였고 역시 그녀의 모든 노래들, 주옥같이 역사에 남는다.

이 모두 1960년대 말 경이었다. 그 시절, 그 시절, 어떻게 time travel을 꿈 속에서라도 할 수 있을까? The Seekers의 경우, 그 lead singer, Judith Durham의 얼굴과 자태가 내가 한때 ‘좋아했던’ 어떤 아가씨와 그렇게 닮았다. 키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그 때의 그 노래가 그래서 그렇게 그리운가 보다.

 

 
The SeekersI’ll Never Find Another You – 1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