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alea 산수유, 돌아온 사월은, 고향의 봄

집 주변, 동네를 돌아보니..  온통 총천연색의 향연인 듯, 본격적인 봄의 모습은 바로 azalea 진달래가 아닐까. 그렇게 무덤덤하게 이 꽃들을 보아왔던 나이는 서서히 물러가고 나도 별 수 없이 이런 자연의 신비가 무섭게 느껴지는 것, 역시 자연의 섭리에는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산수유, 귀에 익지 않은 이름이다. 산유화는 익숙하지만..  중앙고 57회 동기회 총무를 맡아 열심히 노력하는 와중에도 이렇게 고향의 봄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곳과 조금 다른 모습의 ‘고향 진달래’와 함께, 처음 보는 듯한 산수유..  알아보니 이것은 이곳의 dogwood 과에 속하는 것이라고…  이렇게 동서양 봄소식을 김순애 작곡  ‘4월의 노래’와 함께 맞는 ‘돌아온 사월’,  애 띤 친구들의 모습이 가물거린다.

갑자기 기온이 10도씩이나 올라간  거의 늦봄 같은 날씨, 하지만 흐린 덕분에 정말 산책, 걷기 좋은 날, ‘녀석’과 지난 이틀 동안에 걸었던 옆 동네 산책길  외에  모처럼 우리동네 길을 조심스럽게 걸었는데… 예상 밖으로 녀석은 잘 걸어 주었다.  가파른 오름 길도 전에 비해서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늦은 오후 예정대로 Atlanta Hearts Specialist  Dr. S 과의 regular checkup 만남, 특별한 것이 없었다. 심전도를 찍었는데 문제가 없었고.. 결국 앞으로 정기적인 만남은 일단 끝난 것으로 정해졌다. Dr. S,  침착하고 예리하지만 적절하게 친절했던 것이 그 동안 참 마음에 들었고 만족스러웠기에 아예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지만…앞으로 만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가? 최소한 심장 쪽으로는 현재 문제가 없는 것이니까.. 폐의 ‘작은 그림자’도 일단은 OK라는 사실, 이것은 정말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Happy New Year, Solemnity of Mother of God

Unthinkable, 정월 초하루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이라는 사실을 거의 잊고 사는 우리의 모습, 상상도 못하던 일이 2024년의 시작과 함께… 그래, 인생은 이런 것 아닌가? 변화, 변천, 진화, 흐름.. 시간과 세월의 느낌이 있는 것이 삶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그래도 조금, 성모님께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죄송합니다, 곧 마음을 다시 추스르겠습니다~~

아~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desktop calendar, 없구나… 매년 편하게 쓰고 있는  Holy Family 동네성당 것,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 못했으니.. 도대체  동네 성당엘 갔어야 말이지.. 이것이 있어야 나의 하루 삶의 조금은 정리가 되는데… 내일 아침 미사에라도 가게 되면 즉시 해결이 될 터이니, 너무 유념하지 말자…

오늘은 ‘먹는 날’로 연숙이 배려, 노력을 했기에 ‘양력 설’날의 기분을 느낄 것이고 의도적으로 즐겁게, 기쁘게, 하루 종일 먹으며 살고 싶다. 작은 기쁨, 작은 즐거움으로 일년을 살아보자는 NYT 기사에 보이는  권고, 오늘은 이 말이 그렇게 동감이 가는구나.. 아주 조그만 즐거움 들이 모이면 큰 행복이 되는 것 아닌가? 진리의 말씀이다.

일본 서해안 지진, 쓰나미… 새해 첫날…  오늘 새해 첫 뉴스는 어젯밤 자정 각 나라 특히 서울과 뉴욕의 3-2-1 countdown 행사에 대한 각종 YouTube video가 압도적일 것인데 갑자기 나타난 breaking news로 서 일본 지진에 대한 뉴스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2011년 동일본 지진과 원전사고의 기억이 생생하게 있어서 더욱 유심히 보게 되었다. 다행인지, 쓰나미 경보는 해제가 되었지만 지진의 피해는 적지 않은 듯 보인다. 일본이란 나라, 다 좋은데 이런 운명적 환경은 정말 숙명적인 불행은 아닐지…

설날 떡국, 김치 돼지고기 보쌈   김치를 담그는 것부터 시작해서 에너지와 정성을 들이더니 결국은 이렇게 맛있는 설날 음식을 준비해 준 것, 너무나 감사한다. 이제는 이런 나의 마음을 가급적 표현하며 살면 좋겠다. 아~ 오랜만의 떡국, 김치 보쌈…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의외로, ‘칩거 생활’이 지루했던지 연숙이 먼저 동네를 걷자고 제안한다. 우리에게 제일 알맞은 운동은 역시 적당한 산책, 산보임을 알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3,000보를 습관적으로 걷자는 의견에 나도 동감이기에 찬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20분도 채 안 걸리는 가벼운 산책이지만 그래도 정신을 새롭게 하는데 분명히 도움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Izzie, Adios My Friend, 2006~2023

식구야, 친구야 잘 가시오~~ 부디 잘 가시오~~ 사랑하는 님이여~
사랑하는 친구여, 식구여~~ 부디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시게나~~

정신 없이, 머리 속이 텅 빈 상태로 ‘관’을 만들었다.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전혀 idea가 없이 손이 가는 대로 몇 개월 만에 circular saw를 돌려 판자조각을 삐뚤게 자르고 못을 박고.. 거의 순식간에 조금 볼품이 없는, Izzie가 쉬어야 할 집을 만들고… 또한 한 겨울에 땅을 파는 것도 역시 쉽지 않았다. 결과는 깊지 않게  파인 곳이 되었지만 얇은 흙 위로 걸맞지 않게 커다란 flag stone 2개를 얹으니, 순식간에 아주 안정된 묘소가… 우리는 자주 이곳을 보며 남은 여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린 후 오늘 일을 되돌아 본다.

몇 가지 상상되는 광경을 미리 그려보며, 함께 머물던 새로니의 pet dog, Ozzie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일부러 전등불을 꺼놓은 dining room 구석, 어둠 속에 있을 ‘녀석’을 일부러 안 보고 Ozzie를 볼일을 보게 밖으로 내보내고… 조심스레 돌아와 전등을 손으로 켠다. 아무런 소리가 안 들린다. 움직임이 안 느껴진다. 그래도 자세히 얼굴을 보니 ‘잠 자는 듯’한 모습, 목덜미를 만져보니 어제처럼 따뜻하지 않구나. 그러면… 눈도 감고… 하지만 잔잔하게 숨쉬는 움직임은 보인다. 그러면.. 서서히 서서히… 가는 것인가? 아~ 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울고 싶다. 울고 싶다… 정녕 떠나는 것인가, 정녕 우리에게서, 나에게서… 식구의 또 한 생명이 이렇게 추운 겨울, 성탄절을 앞두고 우리를 떠난단 말이냐?
…………
아~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의 야옹~ 소리는커녕 움직임이 아직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 눈 감고 자는 듯한 잔잔하게 숨을 쉬는 모습…  한번 안아볼까… 밤에 잠을 자는 것이었다면 이렇게 되면 조금은 깨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반응에 변화가 없다면.. 아~ 이것은 지금 점점 의식을 잃는 중이 아닐까? 기다려보자, 기다려보자… 오늘 밝은 낮에 밖으로 안고 나가서 ‘네가 살았던  인간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다. To Dance with the White DogHume Cronyn 할아버지처럼..
…………
숨을 쉬는 모습.. 하지만 목덜미를 만져보니 어제처럼 따뜻하지 않다. 손과 발도 마찬가지, 눈도 잘 뜨지 않는다. 어제보다 더 저 세상으로 간 것인가? 지금 꿈꾸듯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잠을 자는 듯 가는 것일까? 아픈 곳은 없는 듯 보이는 것이 그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 절박한 순간들… 지나가라, 지나가라, 빨리 지나가면.. 지나가리라, 지나가리라… 성모 마리아님, 이 불쌍한 것을 위해 빌어주소서… 부디 하느님 옆으로 가도록…
…………
결국 녀석은 우리를 떠났다. 아침 8시 15분 경부터 숨쉬는 느낌이 없어지고,  움직임조차 없어졌다. 몸이 더욱 차지고, 아~ 떠났구나… 떠났구나… 떠났구나… 잘 가시게, 우리의 벗이여~ 잘 가시게… 17년 잘 살다가 갔지? 마지막에 너와 이렇게 함께 한 것 두고두고 귀중한 기억, 추억으로 간직할 거야~ 그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제부터 성모님께 빌어 볼게, 잘 가~ Izzie야, 나의 친구야~~~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불편하고 조금 편하기도 하고, 이런 복합된 생각과 느낌이 머리 속을 빙빙 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돌보아 주는 일, 귀찮은 일도 많았다. 그런 것들이 일시에 사라진 것이 어깨를 가볍게 한다. 하지만 2006년 이후 거의 우리와 함께 있었던 ‘존재’가 없어진 것은 역시 슬픈 일이다. 저쪽 방 dining room에서 나를 보며 야옹거리던 녀석, 그 녀석이 안 보이는 첫 저녁.. 정말 이것은 참기 힘들게 슬픈 것이다. 시간이다, 시간… 시간이 이 유일한 해결책인 것이다. 지나가라, 지나가라…

계동 1번지, 그리고 계동 ‘길’ 98번지

은지가 보낸 계동 ‘길’ 동영상, 크게 확대해서 자세히 천천히 본다. 추억의 극치 중에 하나, 그 중에서 바로 으뜸이구나… 당시 비가 온다는 그곳, 크게 자세히 보니~ 아~  골목 끝 위 먼~ 곳에,  ‘계동 1번지, 중앙고등학교 white castle‘이 ‘솟아 솟아 솟아서’, 솟은 것을 찾는다.  더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원래부터 문이 없던 ‘교문’ 기둥 둘이 보이고, 그 뒤는 김성수 ‘교장’이 손수 화강암 돌을 날라다 쌓아 만들었다는 본관 건물, 그곳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이 가려져 있다. 교문 왼쪽은 ‘사령관 모자를 쓴 수위’ 아저씨가 상주하던 수위실, 오른 쪽에는 당시에 그다지 싸지 않았던 통학용 자전거들을 두던 곳. 이 문짝 없는 교문, 언덕길을 6년이나 오르내렸으니.. 그것이 나의 뇌리에서 그리 쉽게 사라지겠는가?

교문에서 왼쪽은 가회동 으리으리한 한옥들 골목, 오른 쪽은 상대적으로 우중충했던 무허가 건물 처럼 초라한 집들이 도열한,  또 다른 언덕길은 나의 6.25이후의 고향, 원서동으로 이어진다. 추억의 계동 골목이 이제는 계동길 X번지로 바뀐들 , 너무나 깨끗하게 정리가 된 것 외에는 추억의 골목과 크게 다를 것이 있겠는가? 그곳은 그곳이고 그때는 그때다. 오늘따라 왜 나는 그곳에서 사는, 아니 살아온 사람이 된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나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할까, 왜?  추억의 시대를 반세기 넘어서 세대도 두 번씩이나 바뀌어, 코흘리개였던 조카 은지가 계동길 98번지에서 희망에 찬 모습으로 ‘식물이 좋아서 because Ilove plants‘라는 이름도 거창한 plant gift shop, ‘창업’을 하며 나의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으니까.. 고맙다, 은지야~  부디 그렇게 좋아하던 것, 크게 성공하기를…

날씨를 핑계로 편안하게 일요일 아침, 또, 집에 있고 싶었다. 아니 20마일이나 운전을 해서 한국본당에 가는 것이 싫었다. 그쪽에서 나를 잡아 끄는 그 무엇이 오늘도 없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지.. 하지만 오늘은 지난 일요일과 조금 다르게 미사를 완전히 빼먹기도 께름칙하고, 아침 식사를 끝내며 옆에 켜있던 TV를 보며 CPBC 평화방송 생각이 문득 난다. 아~ 코로나, 코로나 Pandemic 이것도 벌써 ‘향수鄕愁’ 깜이 되었나?  불과 2~3년 전에 거의 매일 찾던 곳, 평화방송의 인터넷 미사!

이것이라도 있어서 오늘 하루는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조금 덜 미안하고 덜 죄스러웠으니까.. 오늘 YouTube에서 방영된 미사는 방송국 chapel이 아닌, 서울 시내 성당에 나가서 한 것이어서 더욱 실감이 있었다. 오늘 평화방송이 간 곳은 구로2동 성당, 1969년에 지어진 성당이라서 요새 지은 성당과 너무나 다르게 소박하기만 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1969년 나의 대학3학년 때를 돌아보는 친근함만 더해 주었다.

이제는 그곳 [고향 땅]에 있는 성당에 대해서 조금은 실감이 가기에 오늘 미사는 나에게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필연적으로  10월 달에 인연을 맺었던 경기도 군포시 금정성당, 그곳의 레지오 회합, 단원들 생각이 나고, 이어서~ 아~  역시 나의 ‘진짜’ 고향이 그립다라는 생각에서 비약.. 혹시 우리가 그곳에서 다시 산다면? 나에게도 그곳에 가까운  가족, 친척,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이 비약적으로 그들을 이제는 가까이 옆에서 보고 살고 싶은 뜬금없는 가망성이 희박한 희망까지 생긴다.

김형석 [명예] 원로 ‘백세인’ 교수님의 아침 식사, 오늘 비로소 그 식단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우리의 지난 20여 년 간의 아침 식사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또한 매일 매일 심심할 정도로 큰 변화가 없다. 그러면~ 이것이 바로 건강식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백세인의 습관 중의 하나란 말인가? 그러면 우리도 백세를 살고 싶다고? 어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물어볼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아침 식단은 조금 격려를 받으며 계속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하루 두 끼 먹는 것은 어떤가? 그것은 김교수님의 습관에 보이질 않는다.

어제 저녁 연숙이 아슬아슬한 자세로 기우뚱거리며 의자에 올라가서 이 ‘포도 성탄 장식’을 설치했는데, 오늘 보니 너무나 예쁘고 귀엽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집 안팎이 쓸쓸하기만 한데 이 조그만 노력으로 당분간 우리 부엌  주변은 성탄과 새해를 조금 따뜻하게 보이게 할 것 같다. 고마워~ 고마워~

불고기 볶음밥과 두부 된장국, 갑자기 추워지는 늦은 오후의 늦점심.. 영양학적으로 봐도 완전 균형식이다. 감사, 감사…

즈음 우리 둘 모두 양양이에게 신경을 쓰고 산다. 나이도 그렇고, 최근 계속 ‘실수, 사고’ 를 연발하는 녀석이 걱정도 되고, 특히 먹는 것이 주춤해서 살이 더 빠지고 있어서 은근히 혹시~ 하는 상상까지 안 할 수가 없구나. 아~ 갈 때 가더라도 지금 안 된다, 안 되~~   이런 와중에서 녀석과 우리는 갑자기 가까워졌다. 전혀 화도 안 내고, 나의 곁을 안 떠나려고 하는 등,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예전의 Tobey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나의 무릎에 앉는 것은 물론 아예 거기서 졸기도 하고, 오늘은 그와 함께 나도 졸았으니… 참, 꿈을 꾸는 듯하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이야~~ 그래, 양양아, 편안하게 살다가 가자꾸나, 그곳으로, 그곳으로…

포근하던 며칠~ 새벽에 무섭게 폭풍이 지나가더니 일요일 하루 종일 세찬 바람에 컴컴한 비가 하루 종일… 게다가 오후로 들어서는 기온까지 급강하~~ 아마도 내일 새벽은 다시 빙점으로 돌아가는 완전 “겨울의 초상”인가… 하지만 나는 이런 날씨를 ‘지독히’ 사랑하니까.. 아무런 문제는커녕 기다리며  산다.

불안, 두려움, 절망감의 정체와 해답은…

예전, 아니 오래~ 전에 스쳐갔던 생각 중에는 ‘현재가 힘들어도 나이가 들면 분명히 도사나 신선처럼 느끼는 잔잔한 평화, 불안이 없는 지혜와 함께 살 것’이라는 뜬구름 같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지금 눈을 떠보니, 어떻게 되었는가~ 별로 아니 전혀 나이와 편안함은 상관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이, 세대별로 그 성질이 달라진 차이뿐이다.  그 중에는 불안과 두려움 같은 것은 끈질기게도 따라오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비록 육신의 건강은 점점 내리막 길을 걷게 되어도 머리 속에 펼쳐지는 세상은 점점 편해질 것이라는 희망, 바로 그 희망을 원하며 살았는데… 결과는 거의 참패에 가깝다.

얼마 전,  ‘강산이 99%  변해버린 고향’ 방문 시, 처조카 딸 수경가 선물이라며 수원근교 미리내 성지 내 성물방에서 건네 준 책에서 이 급한 명제에 대한 분석적인 essay를 읽게 되었다. ‘잊혀진 질문’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 이 질문은 바로 ‘불안과 두려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것과 더불어 ‘희망의 부재’까지 함께 다루었기를 바라기도 했다. 과연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신부님이 제시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에게는 50% 정도의 답은 주신 셈이니까, 이번 고국 방문의 성과 중에 하나라고 기억을 할 것이다.

불안, 초조, 두려움 이런 감정들을 ‘특권’이요 ‘에너지’로 승화하려는 신부님의 ‘성경해법’이 과연 나머지 50%의 해답을 줄 것인가?  모든 것, 아니 이 우주의 모든 것 (없는 것도 포함한)은 궁극적으로 내가 보는 세계관 안에서 내가 가진 생각의 눈으로 보는 나만의 실재,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분명히 해답은 있다. 쉽게 말하면 ‘세상은 생각하기에 달린 것’이다.  코앞에 다가오는 물리적인 위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머리 속 consciousness 의식체계, 아니 우리가 ‘상상’하는 세계일 뿐이 아닐까? 성경 속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전혀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착각의 영역’인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두려움에 대하여 독일 소설가 장 파울이 위트 있는 말을 했습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기 전에 무서워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에 무서워한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나간 다음부터 무서워한다.”

이 말은 그대로 진실입니다.

소심한 사람은 위험을 미리 걱정합니다. “어이쿠, 이러다가 뭔 일 터지는 것 아냐?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그러면서 나름 철저히 준비한답시고 우왕좌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공포에 짓눌립니다. “우와, 집채만한 호랑이잖아. 이제 나는 죽었다!” 벌벌 떨다가 그만 위험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대담한 사람은 위험이 지난 다음 사태를 인식합니다. “이거 뭐야? 돌이 굴러 떨어졌잖아! 하마터면 큰일 뻔했네.”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전율에 식은땀을 흘립니다.

결국 두려움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인 셈입니다.

 

수천 년 철학사에서 근세기에 등장한 실존주의 사조는 철학적 고민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우주, 자연, 사회 등의 거창한 주제보다 더 시급한 주제가 인간의 실존이며 나아가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 안에도 여러 색깔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인간의 숙명적인 문젯거리가 있으니 바로 ‘불안’입니다. 약간씩 의미상 편차가 있습니다만 두려움, 공포, 염려, 걱정 등을 아우르는 ‘불안’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표층과 심층을 장악하고 있는 생존 인자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독심술은 오늘날까지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줄을 잇고 있는 통계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취업, 인사포털 인크루트가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2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 5면 중 4명꼴인 82.1 퍼센트가 졸업을 앞두고 불안함,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일명 ‘4학년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24일 구직포털 HR KOREA 는 지사 회원 직장인 3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직장생활 스트레스’에 대해 발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39.3퍼센트가 미래에 대한 (관한) 불안감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편의상 젊은층의 ‘불안증후군’에 초점을 맞춰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안이 습관화된 사람들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경험상 무리일 것입니다. 도리어 나름 탄탄하던 사람들조차 은퇴를 기점으로 불안의 늪에 빠지는 경우를 허다합니다. 불안이야말로 예측불허로 찾아오는 불청객이며, 수시로 변색하며 살아남는 카멜레온입니다.

 

그러면, 이 불안의 정체는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불안’이라는 것은 ‘공포’와는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상태입니다. 눈앞에 주어진 자극이나 위협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생기는 감정을 ‘공포’라고 합니다. ‘공포’는 동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원초적인 본능’이거든요. 쥐는 눈앞에 고양이가 나타나면 공포에 떨면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이것은 사고 작용이 없어도 생기는 일종의 반사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은 반드시 생각의 결과로써 생깁니다. 자신의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위기나 피해를 미리 상상하거나 불길한 일을 예상할 때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불안’입니다. 동물은 불안을 느끼지 않습니다. 동물이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느라 불면증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동물이 느끼는 것은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변화에 대한 반응, 즉 공포입니다.

그러므로 불안은 인간 고유의 정서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버드대 정신과 교수인 필레이 박사는 수년간의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인간이 공포, 불안, 두려움에 반응하는 독특한 방식을 밝혀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뇌는 아주 작은 위험도 재빠르게 감지하며 ‘원하는 것’보다 ‘피하고 싶은 것’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해왔다고 합니다. 이를 처리하느라 다른 일들을 뒤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건 불가능해, 하지만 나는 이직을 하고 싶어”라고 생각한다면 뇌는 이 상충된 메시지를 받고 혼란스러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불가능해’라는 두려움을 먼저 처리하느라 진정 원하는 ‘이직’을 하려는 에너지를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필레이 박사는 그의 저서 <두려운, 행복을 방해하는 뇌의 나쁜 습관>에서 이것이 바로 뇌가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방식이라 설명합니다.

이 통찰은 우리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데 매우 도움이 됩니다. 그르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불안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불안의 작동 방식을 확실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조금 더 가까이 불안현상을 들여다보기로 하겠습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어떤 것에 위협을 느낄 때, 우리 뇌는 0.01초 만에 두려움의 시스템을 작동시킨다고 합니다. 뇌의 편도체가 위험을 감지하고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0.01초에서 0.03초. 이후 의식적인 처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상을 파악하게 됩니다.

이 두려움은 본래 인간이 진화하는 데 필수 요소였습니다. 두려움을 얼마나 빨리 감지하느냐가 생존과 직결되었기에 뇌는 다른 감정들보다 위협을 먼저 처리하도록 진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기능도 따랐습니다. 이 예민하고도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대한 자각이, 상황을 부정적으로만 파악하고 위축된 반응을 유발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두려움은 단지 이전에 기억된 정보일 뿐’이라는 자각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익사할 뻔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 더러는 어른이 된 뒤에도 웅덩이의 물만 보면 반사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는 어린 시절 편도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뇌에서 일어나는 가상의 반응일 뿐 실제가 아니지요. 다 큰 어른이 웅덩이의 물을 무서워할 이유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생각의 힘만으로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불안의 작동방식을 잠깐 짚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불안은 없어도 문제고 너무 많아도 문제라는 얘기가 됩니다.

이제 불안의 순기능을 클로즈업해보겠습니다. 심리분석가 프리츠 리만은 ‘불안의 심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불안은 우리의 발전에 특별히 중요한 지점들에서 제일 먼저 의식 속으로 온다. 즉 친숙한 옛 궤도를 떠나는 곳에. 새로운 과제를 감당하거나 변화해야 하는 지점에 불안이 온다. 발전, 성장, 성숙은 그러니까 명백히 불안 극복과 깊은 관계가 있다. 어느 연령에서든 그 나이에 상응하는 성숙을 위한 걸음이 있으며, 그 걸음은 있게 마련인 불안을 수반한다. 걸음을 내딛자면 그 불안을 다스려 이겨내야만 한다.”

프리츠 리만보다 앞서 불안의 긍정적 역할을 철학적으로 섬세하게 규명한 사람이 철학자 키르케고르입니다. ‘불안’을 일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던 그는 불안을 도약을 위한 계기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심미적 삶, 윤리적 삶, 종교적 삶의 3단계로 질적 성숙을 이루는데, 불안이 앞 단계에서 다름 단계로 도약하는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사람은 본능적으로 심미적인 삶을 산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좇아 살거나 환상에 빠져서 삽니다. 삶을 기분풀이로 여기며 쾌락을 탐닉하면서 기분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이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국 권태와 싫증에 다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무기력한 자신의 눈에 비친 인생은 무상하며 미래는 불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합니다. 이 절망은 새로운 삶을 찾게 합니다. 이렇게 해서 절망의 늪을 넘어 윤리적 삶으로 도약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불안으로 말미암아 이제 두 번째 단계인 윤리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쾌락만을 좇아 무비판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와 윤리에 따라 생활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제 내면의 양심에 호응하고 의무에 성실하려고 애씁니다. 이제 비로소 인간은 ‘되어야 할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단계도 결국 벽에 부딪치고 맙니다. 높은 도덕에 이르지 못하는 능력의 한계 그리고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무력함을 절감합니다.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이 뜻대로 잘 되지 않고, 또 윤리적으로 산다고 세상이 알아주는 것도 아닌 데다 엉터리로 사는 사람들이 망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맞서서 고뇌하는 인간은 마침내 죄의식과 불안에 빠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 불안과 절망이 다시 도약을 만들어 사람을 신에게로 내몬다고 합니다. 이 현실의 모순을 심판해 줄 하느님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불안은 종교적인 삶으로 옮겨가도록 사람들을 이끌어줍니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으로서 완전하고 참된 삶은 세 번째 단계인 ‘종교적 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실현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결심에 따라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를 때에 인간으로서의 무력감과 허무함을 떨쳐버리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체적 결단과 도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정작 학생 자신이 공부하려고 하지 않으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불안의 역기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첫째로, 불안은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하여 결국 도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공학기술자 헨리 포드의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미래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활동을 제한 받아 손도 발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라고 했거든요.

나는 해군 출신입니다. 해군 훈련 과정에서 “퇴함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에서 물로 뛰어 내려야 할 유사시를 대비하여, 실내 수영장 10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훈련입니다. 적음을 위하여 먼저 5미터에서 시작해 다음 7미터, 그 다음 10미터 순으로 진행합니다. 전원이 차례로 뛰어내려야 하기에 줄을 지어서 기다립니다. 자기 차례가 오면 다이빙 대 끝에서 서서 오른손은 코를 쥐고 왼손은 낭심을 잡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000 사후생 퇴함준비 끝!”이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지휘관이 “퇴함!” 하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때 “퇴함!” 이라고 복창하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사람은 10미터에서 가장 큰 고소공포를 느낀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높이에서 그냥 뛰어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 위에는 구대장 몇 명이 지휘봉을 휘두르며 포진하고 있습니다. 훈련생들에게는 10미터 높이도 무섭지만 그 지휘봉도 만만찮게 무섭지요. 그런데 세 명이 끝내 뛰어내리지 못했습니다. 구대장들이 격려를 하고, 협박을 하고, 떼밀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난간을 붙잡고 있는 힘은 여러 장정이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초인적으로 강했습니다. 결국 그 세 명은 석식 열외에다, 완전군장 차림으로 날이 저물도록 연병장을 ‘평화롭게’ 돌아야 했습니다. 이렇듯 두려워하는 마음을 먹으면 발이 땅에 딱 달라붙고,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요지부동하게 됩니다.

둘째로, 불안은 사람의 심신을 해칩니다. 제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과 근심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총탄이 사람을 꿰뚫어 죽인 수보다 불안과 공포가 죽인 사람의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용감한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이다.”

지지 않으려면 정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어떻게 정복할 것인가?

리처드 바크는 그의 저서 <날개의 선물>에서 인간이 성취를 향하여 전진하는 과정을 수영장의 다이빙대를 예로 들며 설명합니다.

다이빙대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은 우선, 며칠 동안 다이빙대를 올려다 만 봅니다. 이는 올라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생각하는 과정입니다. 그 다음 단계로, 그는 드디어 젖은 계단을 조심조심 오릅니다. 어떤 일을 앞두고 결단을 내리는 단계에 해당하며, 아직 결심을 굳히지는 못한 채 불안 중에 조금씩 전진하는 단계입니다. 셋째 단계로, 그는 높은 다이빙 대 위에 섭니다. 결단 직전, 가장 불안한 단계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두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나는 다이빙을 포기하고 내려오는 길로 이는 “패배를 향한 계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과감하게 물속에 뛰어드는 길로 이는 “승리를 향한 다이빙”입니다. 다이빙대 끝에 선 그는 두려움에 소름이 끼쳐도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침내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면, 후퇴는 이미 늦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인생이라고 불리는 다이빙대가 정복되는 순간입니다.

이처럼 불안과 두려움의 다이빙대를 한 번 정복한 사람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높은 데서 다이빙을 즐길 정도가 됩니다. 바크는 책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천 번 올라가고 천 번 뛰어내리고, 그 다이빙 속으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내가 비로소 인간이 된다.”

 

어떻게 하면 이 불안감을 덜 수 있을까요? 나는 인생의 위대한 멘토들의 지혜를 빌리는 것 자체가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방법은 강력한 희망과 꿈으로 불안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인간의 두 얼굴>은 꿈의 한 모습인 ‘긍정적인 착각’의 효과를 밝혀냈습니다. <인간의 두 얼굴: 착각> 편을 제작한 정성욱 PD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국내외 책과 논문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러고는 인간의 착각과 행동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줄 실험을 구상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도화지에 손가락 하나를 없는 손을 그리고,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묻습니다. “10년 후 이 손가락은 어떻게 될까요.” 일부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측을 뛰어넘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손가락이 자라나요!” 라고요. 실험 결과 손가락이 자란다고 대답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지능지수가 높았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적 착각입니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와 좌절의 상황에서 스스로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정 PD는 말합니다.

“긍정적 착각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킨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울증 환자들은 절대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긍정적 착각을 동반하는 희망과 꿈이야말로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감싸는 ‘보호막’ 역할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방법은 불안을 신께 맡기는 것입니다.

토론토대학 심리학과 마이클 인즐릭트 교수 팀은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불안과 걱정에 덜 시달린다는 연구 결과를 얻어냈습니다. 인즐릭트 교수는 “신앙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테스트에서 실수를 하거나 잘 모르는 것이 나와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 팀은 그 내용을 2009년 <심리과학> 온라인 판에 발표했습니다.”

한마디로 기도가 불안감을 해소해준다는 얘기입니다. 나 자신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마는, 어떤 사람이 옥중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워 말라”는 말씀이 수없이 기록된 것을 보고 도대체 몇 번이나 씌어 있는가를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꼭 365번이 기록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1년 365일 매일 한 번씩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럴듯한 수치적 일치입니다. 우연이긴 하지만, 신은 불안에 떠는 우리를 최소한 매일 한 번씩 위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전해줍니다.

 

뭐니 뭐니 해도 불안을 이기는 최고의 방법은 그 불안을 성장의 계기로 삼는 것이겠지요. 불안하니까 더 준비하고, 불안하니까 더 정진하고, 불안하니까 더 노력하자는 얘기입니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로니카 웨지우드의 말을 기억해둘 것을 권합니다.

“불안과 무질서는 절망의 징후가 아니라 에너지와 희망의 징후다.”

체념한 사람에게는 불안이고 뭐고 가 없습니다. 불안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권, 곧 생의 에너지인 것입니다.

올해의 자랑스런 中央人, 김형석 교수님

이 사진에 대한 아래의 소개글은 중앙고 57회 동창 교우 이재영이 동창회 카톡방에 쓴 것이다. 이 동문이 쓴 것이면 나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무조건 믿는다.

김형석 교수님께서 중앙고 교사(사회과목 담당) 시절인 1953년 가을, [중앙고교]본관 앞에서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고3이던 45회 선배님들은 모두 작고.  맨 오른쪽 학생은 전주교육대학교 미술 교수로 정년퇴직을 하시고 최근까지 작품 활동하셨는데 금년 봄에 소천.

103세이신 김형석 교수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김형석 명예 교수님이 중앙학교 교우회로부터 ‘자랑스러운 중앙인’으로 선정되어서 상패 증정식을 가졌다는 소식이 중앙고57회 동창회카톡 소식으로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김교수님을 연세대 시절의 인연으로 알고 만 있었지만 우리 중앙중학교 교감이셨고 고등학교 사회과목을 가르치신 선생님이셨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 라는 말이 나온다. 당시 중앙학교에는 주시경 선생님 등 민족계열의 선각자님들이 교편을 잡고 계셨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님보다 한 살 젊으신 103세의 향년을 누리고 계신 철학자, 석학, 교수, 교감.. 지금은 대한민국의 지성과 양심을 대표하는 ‘광야의 목소리’..  연세대 교양학부시절 교수님의 철학개론을 들었다. 딱딱하고 심오한 것들을 쉽고 유머러스하게 이끄셨던 기억, 교수님 댁에 일시 살았던 미국인 여성에 얽힌 일화를 나누어주시기도 했는데..  참, 대단하신 것, 현재도 정정하신 모습을 마주 대하기가 부끄럽다. 지금 우리들 나이를 두고 한탄조로  나이타령이나 하고 사니 말이다.

콜럼버스 중앙고 후배 단톡방에 위의 글을 올린 후에 새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우선 전주에 사는 김명환이와 사진 속 얼마 전에 타계하셨다는 45회 선배는 이미 아는 사이, 둘이 만났던 사진까지 올려 주었다. 성당에 그림을 남기셨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을지. 게다가 안동규 후배 아버님, 안병욱 교수와 김형석 교수는 절친한 사이였다고, 묘소 자리도 나란히 준비를 해 놓았다는 놀라운 사실도 함께. 하기야 당시 두 분은 거의 동등한 위치의 석학이셨음을 기억한다.

 

일찍 Tucker로 손자 Knox 녀석 babysitting  ‘출근’하는 연숙이, 그 집에서 푸짐하게 먹지 못하는 듯해서 신경이 쓰인다. 무조건 많이 먹어서 덜 배고프게 하고 싶은 것이다. 오늘은 연숙이 좋아하는 bagel을 bread대신 했다. 양적으로 다른 것보다 조금 더 많으니까 분명히 소화되는 시간도 더 걸릴 테니까..

드디어 ‘인형의 집’에 성탄 불이 들어왔다. 일단 제자리를 잡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예쁘지 않은가? 그것도 뒤편에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이 자상하고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계시지 않은가?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절대로, 절대로 걱정, 근심은 하지 말자. 슬퍼하지도 말고..

 

어제 Sam’s Club 갔을 때 나의 유일한 관심은~~ 역시 ‘술 종류’, 그래 봤자 wine종류였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눈치를 보는데, 우선 지금은 12월 특별한 때니만큼 죄송스럽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최소한 12월과 1월은 예외적임을 아니까.. 특별히 1월 1일을 생각해서 champagne 에 신경을 써서 그것도 함께…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3 병 만큼의 양이라는 BLACK BOX.. 당분간 ‘머리가 복잡하거나’, 아니면 ‘너무 좋은 일이 생겨도’ 이것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 하지만 조심조심 자제하며 즐길 수 있을 때 마시자…

후아~ 오늘 아침도 추운 정도가.. 아마도 빙점부근일 듯하다. 그렇구나 이곳은 34도! 거의 제일 두꺼운 옷을 향하고 있는 이 즈음이다. 이곳, 이 지역, 아니 제2고향의 기후적 위치는 흥미롭다. 경계선에 있는 위치, 기온도 날씨도 이곳으로부터 변화하는 것, 왜 그럴까? 대부분 기후대란도 이곳에서 완화가 되거나 기온도, 바람도.. 특히 더위도 아틀란타 중심과 꽤 차이가 나는 것 등등… 그러니 이제 나는 거의 느낌으로 이런 기후 특징을 알아가게 되고.. 진정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된 것인가?

원죄없으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THE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SOLEMNITY, Holy Day of Obligation (의무 대축일)

대림절 첫주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의무대축일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 조금 위안은 되지만 과연 그럴까? 오늘은 갈 수도 있긴 한데.. 그러면 그 외에 내가 이것을 보속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특별히 바치는 환희의 신비 묵주기도, 성경읽기를 더 하는 것, 관계된 영화 루르드 발현 이야기 등등.. 물론 나를 ‘늪에서 이끌어 내신 성모님’의 2010년대의 은총 등등을 회고할 수도 있지 않을지..  성모님이시여, 저를..

세월

12월도 ‘벌써’ 나흘 째로 슬그머니 넘어온 즈음, 중앙고, 연세대 친구, ‘도사’ 양건주가 1999년 8월에 보내주었던 [외로움의 도사] 김재진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를 다시 꺼내었다.  이 시집의 표지의 글,  건주의 속삭임을 듣는 듯하다.

그 당시 이미 상당한 세월을 훌쩍 넘기고 ‘가상공간’에서 다시 만나는 행운과 함께 힘든 시절, 고민과 고독을 호소하던 나를 위로하며 이 소책자를 보내 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이후 이 시집은 나의 영적 상담자가 되었다.

너무나 힘들었던 40대 말을 바로 뒤로했던 시절로 깊이 각인된 그때, 이 소책자는 나에게 시의 안 보이는 위로의 손길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는데.  올해 한달 전  서울 근교 일산시의 그의 보금자리에서의 기적적, 극적인 해후 이후 더욱 이 시집에 진하고 진한 남자의 우정을 되찾게 되었다.

그때 그와의 ‘역사적 만남’은 나에게 ‘세월’이라는 간단한 말을 두고 두고 묵상하는 계기를 주었고, 밤 잠을 설칠 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악동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세월, 세월… 세월…

그런데 역시 이 김재진의 시집 속에도 이 ‘세월’은 유감없이 그의 생각을 타고 있었다. 100%는 아니더라도 나의 깊은 속을 유감없이 속삭이고 있었으니..  사 반세기만에 나를 찾아온 선물이라고 할까. 건주야, 고맙고 그립다. 잠을 설치는 밤에 다시 보고 싶구나. 조금 더 나은 건강을 빌며.. 우리의 긴 세월은…

 

세월

김재진

 

살아가다 한번씩 생각나는 사람으로나 살자.

먼길을 걸어 가 닿을 곳 아예 없어도

기다리는 사람 있는 듯 그렇게

마음의 젖은 자리 외면하며 살자.

다가오는 시간은 언제나 지나갔던 세월.

먼바다의 끝이 선 자리로 이어지듯

아쉬운 이별 끝에 지겨운 만남이 있듯

모르는 척 그저 뭉개어진 마음으로 살자.

 

대림초 가 처음으로 켜지는 날…

일요일 아침시간을 편하고 아늑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 비록 성당제대에 켜진 대림초 는 코앞에서 못보고 있지만 의외로 마음은 가볍기만 하다.  대학시절 수업을 빼먹고 연대 입구 [사실은 신촌 로터리] 대지다방으로 클럽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던 그 가벼움과 비슷한가…  지금 50년 후의 그 연대입구, 신촌 로터리에는 꾀죄죄했던 2층 다방의 모습은 간데 없고 우람하고 번쩍이는 ‘명동, 강남 스타일’의 고층건물 아래의 ultra-modern cafe들.. 아~ 싫다, 싫어… 우리 마음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보너스로 생긴 일요일 아침, 성당 망치회의 김밥 대신에 left-over fried chicken, SPAM, 따끈한 밥이 곁들인 한 접시 요리는 나의 혀끝에는 천하일미였다.

중앙고 콜럼버스 인연의 채인돈 후배의 ‘서울역 선물’ 제주산 차茶.. 지난 한달 간 우리는 거의 매일, 정기적으로 이 차의 향기에 취해 서울역 모임을 음미하며 살았다. 문제는… 이제 거의 이것이 떨어져간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나는 과연 너무 생각을 많이 하며 사는 ‘장애자’인가?  그것도 특히 우려, 걱정, 부정적인, 나쁜, 해가 되는 그런 것들을 주로 하며…  왜 좋은 생각, 희망적인 것, 사랑스런 것들 그런 것들을 지나치게 생각하며 사는 재주가 없는가? 정말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를 지경인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 자가진단이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연숙이의 sinus infection과 심지어 기침까지 조금씩 나오는 것으로, 오늘 ‘쉬기로’ 정했기에 마음은 훨씬 편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것이었다.  물론 미사엘 못 갔다는 미안함도 한 몫을 했겠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편한 새벽을 맞이하지는 못했다는 것, 아~ 그렇구나… 다가오는 시간, 날, 세월들에서 나를 즐겁게, 편하게 하는 ‘희망’이란 놈이 잘 안 보인다는 슬픈 사실이다… 왜 요새는 그렇게 앞날이 어둡게만 보이는 것일까?

어제 읽었던 NYT 논설, Is South Korea Disappearing? 생각보다 ‘비 과학적’ 분석인 것이 사실은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그의 ‘느낌’이 ‘과학’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을까?  내가 과연 조국의 출산율에 관심을 가졌던 때가 있었는가? 절대로 절대로 한 적이 없다. 우리의 시대에는 이것[낮은 출산율]은 사실 ‘선진적’ 인 좋은 것에 속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곳일 수록 ‘초고층 건물’이 즐비하고, 출산율은 반비례해서 낮았으니까…  이 두 가지를 현재 모두 가지게 된, ‘자랑스런 조국’ 인데…  무엇을 걱정하랴?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미 시작된 대한민국의 출산율 걱정인 것이다. 세계적인 환경위기와 더불어 모국, 대한민국은 이것을 현명하게 해결할 것임을 물론 나는 신앙적으로 믿는다.

오늘 CBS Sunday Morning show에 이 ‘미국판 애국열사’의 침통한 얼굴이 나온다.  Elizabeth ‘Liz’ Cheney, 그녀는 누구인가? 오래 전 ‘추억의 부통령’ Dick Cheney의 딸, 정치집안의 산물, 모두 강경 보수파 매파 공화당 계열.. 한때 나는 이들을 싫어했고 때에 따라서 ‘증오’까지 했던 때도 있었다. 특히 선제공격 형 전쟁 광으로까지 치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은 흐르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기준이 180도 바뀐 후.. 무엇이 변했나?

이 극우 대부격인 아버지와 그의 딸, 모두 지금은 거의 ‘성인 聖人 반열급’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주의의 양심을 몸으로 지키는 사람 중에 나는 이 ‘용기 충만한 여성’이 제일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썩을 대로 썩은 Republican 중에서 거의 홀로 DONALD ‘개XX’를 탄핵했던 용기와 양심의 소유자, 그녀가 이번에 ‘미국을 살리는 책’ “OATH and HONOR  A Memoir and a Warning” 펴냈다. Memoir는 그렇다 치고 Warning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온다. Warning이란 것, 쉽게 말해서 Trump의 ‘다가올 제2 쿠데타 음모’ [사실은 음모가 아니고 공공연한 호언장담] 에 관한 것, 진정 미국의 ‘전통자유민주주의’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해독제’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철학, 도덕률의 절대잣대가 사라진 이때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지하며 살 것인가? 

일요일 이른 아침을 (old fashioned) TV 와 함께 한다는 것, 전혀 추억조차 까마득한 것, 그야말로 surreal한 경험이다. 실감이 안 가는 것이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얼마 전 최적의 위치를 찾은 HDTV antenna 덕분이다. 이 작은 gadget으로 제일 보기 편한 local channel 들의 signal들, 특히 비록 HD format은 아니어도 KBS AMERICA가  ‘간신히 나마’, 30마일의 Atlanta Metro 를 횡단하며 Marietta에 비추이는 것, ‘공짜 programming’ 이라는 사실과 함께, 요새 나에게는 드문 ‘행복한’ 순간을 선사한다. 세 군데 major channel은 역시 아직도 ‘목사님’들이 설교로 침을 튀긴다. 예전에는 ‘성경유일주의’로 조금은 배울 것도 있었지만, 그들이 Donald ‘개XX’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며 오늘은 100% 완전 외면을 한다.  100% analog에서 99% digital로 변하던 그 동안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심지어 AI preacher의 등장까지 꿈속에 등장하니, 유일한 등대는 이곳이 아니고 저쪽이 아닐까?

아~ 골치 아프다~ 왜 올해는 이것까지 말썽을 부리는가? 근래 우리의 holiday lighting 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 올해는 왜 이러는가? Strand중의 한 부분이 이빨 빠진 듯 감감소식..  이것을 내가 고쳐본 적이 있었던가? 물론 가끔 bulb하나가 ‘죽으면’, 교체를 하면 됐지만 지금은 모두 led여서 거의 불가능하니.. 문제는 어떤 led가 죽었는가 찾는 것인데, 아직까지 고전 중… 이것은 가만히 보니 고치는 것보다는 아예 새것을 사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듯, 역쉬~ 짱개의 얄팍한 발상인가?

오늘은 예전의 ‘보편적’ 주일, 일요일 같지 않은 새로운 일요일을 보냈다. 비록 대림1주 첫째 날 미사는 못 보았어도 큰 후회는 없다. 감기기운이 있는 연숙이 모처럼 아침잠을 깊이 잘 수 있었고, 나도 솔직히 오늘은 ‘순교자 성당’에 가는 것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 갑자기[이상한 예감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monster로 돌변한 추한 모습의 어떤 ‘정서적으로 불안한’ 여자 얼굴을 다시 볼 기분도 아니었다.  한때는 대신 Holy Family 동네 성당에 가는 생각도 했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 뜻밖의 휴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긴장, 스트레스도 잠재울 수 있는 ‘하루’도 우리에게는 귀중한 휴식의 시간이 될 것이 아닌가? 이런 편안한 일요일, 모처럼 연숙이의 homemade 해물잡탕까지 해 먹을 수 있었으니~

저녁때 가슴이 써늘할 정도로 놀랄 뜻밖의 카톡 메시지~ 분명히 캐나다의 중앙고 동창 정교성이 보낸 것인데~~ 보니 딸이 쓴 것인 듯, 교성이가 11월 24일 심장마비로 입원했고,  이후 그곳에서 또 COVID까지 걸렸다는 요지의 메시지였다. 그것이 전부~~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자세히 알려주었으면~~ 기도하겠다는 답을 보내긴 했지만… 아~ 요새, 아니 요즈음, 아니 가을부터 이것이 웬일들인가? 줄줄이 세상을 떠나고, 급기야는 교성이의 입원소식까지~~ 내가 할 것이 하나도 없으니, 기도라도 열심히 할 것이지만 조금 어두운 예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우리는 인생의 황혼을 더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죽을 준비를 서서히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Wet & Milder, Foggy & Misting…

요란하게 예보되었던 ‘비, 가을비, 초겨울 비’ 대신에 이슬비가 포근한 땅으로 잔잔히 내리는 아침이다. 잠시 앞문을 열고 눈에 익숙한 모습을 남기고, ‘수경이네’ 단톡방에 올려 놓았다. 수경이네가 이곳에 왔던 것이 거의 20년에 가까워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는 없지만 이것으로 우리 집 주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기억해 보라는 뜻도 있었다. 수경아~ 벌써 보고 싶다.. 하루 속히 이곳으로 날라 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새벽 6시 central heating 잔잔한 소음, 불과 20분 만에 꺼진다. 기온이 많이 올랐다는 뜻이다.  별로 가볍지 않은 머릿속, 아~ 또 왜 이러는 것일까? 보기 싫은 ‘쓰레기’ 급 단상斷想들이 분명히 나를 괴롭힌 것이다. 오늘은 참을 성을 가지고 아래층 전깃불이 켜지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일어난다.

분명히 일기예보는 온통 비와 천둥이 치는 밤, 새벽을 예상하게 했는데~ 또 속은 느낌. 바깥을 보니 온통 어두운 안개.. 속을 자세히 보니 역시 땅은 젖어있었다. 나의 속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어주는 세찬 비바람을 원했지만, 어찌 세상이 나의 뜻대로 돌아갈까?

오늘은 정말 이상하게도 기분이 그렇게 가라앉을 수가 없었다. 어제 ‘마포 종수 후배’와의 45분 간의 긴 통화 이후부터 그런 것을 보면 분명히 지난 10월 콜럼버스 중앙 후배들과의 ‘서울역 재회’로 느끼게 된 새로운 깨달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11명의 ‘잘나가는’ 후배들, 모두 그곳에서 꾸준히 만나며 사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운 것, 반대로 나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외로운 기러기처럼 보이는 것, 지극히 ‘정상적’,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지,

진정한 행복의 길, 원칙에 ‘남과 비교하는 삶의 폐해’에 대한 것이 제일 중요한 것, 모를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삶은 단계가 낮은 거의 인간 본능에 가까운 것이어서 한눈만 잠깐 팔면 이 비교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 문제다.  이런 ‘잡념, 유혹, 고민’에 대한 나의 돌파구 중에는 예수님의 진복팔단 眞福八端  Beatitudes , 행복의 대헌장이라고 할까, 그것을 묵상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 역시 얼마나 진지하게 복음말씀을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 오늘 내가 이것을 통해서 효과를 보았는지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 잘 모른다.

올해 성탄 lighting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은가? 문제는 작년에 쓰던 것의 일부분이 ‘망가져’서 그런 것이고, 새로 한쪽만 산 것의 색깔이 글쎄 전의 그것과 다른 cool color가 아닌가? 섞어도 될 것이라 희망을 했지만 실제로 켜보니 솔직히 별로인 것이다. 어쩔 것인가? 고장 난 것을 고치면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열의가 없다. 기를 쓰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lighting은 켜졌으니까 조금 시간을 두고 고치는 시도를 계속하면~~  연숙이 몇 년 전부터 이 장식에 유난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아는데 나는 어찌 이렇게 항상 뒤쳐지고 시큰둥한 하고 있단 말이냐? 그래 조금이라도 신나게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면 얼마나 좋을지…

내일 주일미사는 ‘순간적 기지’를 발휘해서 조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듯하다. 아~ 우리 동네 Holy Family 성당 주일미사! 이것 도대체 얼마만인가?  마지막으로 그곳으로 주일미사를 보러 갔던 때가~~  달력을 찾으면 알 수 있을 듯한데 지금으로서는 전혀 idea가 없다. 그만큼 오래된 것 같으니까.. 처음엔 내일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엘 가기가 싫어서 미사를 빼먹을 생각까지 하다가, 순간적으로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감히 대림절 첫날을 어떻게 빠질 수 있단 말인가? 왜 순교자 성당엘 가기 싫었는지, 간단하다.  갑자기 monster처럼 출현한 그 ‘제3의 미친X’ (이제는 부부),  영성체 하러 줄 서서 나가는 뒷모습조차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Closer to Truth Redux, HAMAS problem

아~ Closer to Truth! 오랜 세월 동안 거의 잊었던 얼굴, Robert Lawrence Kuhn…  거의 7년 전에 이미 나는 이 주제를 이곳에서 소개한 바가 있다.  Wikipedia에 의하면 이 PBS program은:

The show is centered on on-camera conversations with leading scientists, philosophers, theologians, and scholars, covering a diverse range of topics or questions, from the cause, size and nature of the universe (or multiverse), to the mystery of consciousness and the notion of free will, to the existence and essence of God, to the mystery of existence (i.e., why there is anything at all).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이 program, 오늘 다시 보며 아직도 건재, 아니 승승장구, 매 season 마다 새로운 program 들로 그득한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PBS science program 중에서 제일 ‘진보적, 아니 심지어 영성적’인 각도로 그들의 진실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이런 것, PBS 만이 할 수 있는 용기가 충만한 쾌거라는 생각. 오늘도 역시 그들은 problem of consciousness & universe의 궁극적인 문제를 세계의 석학들과 과감하게 파헤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주제로 조금만 들어가면 현재의 미소하고 미천한 ‘작은 고민, 사람’들은 거의 일 순간에 사라진다. 이것도 다른 의미의 life-saving enlightenment가 아닐까?

ISRAEL & HAMAS [Palestinians]…  현재 진행 중인 .. 싸움, 전쟁, 살상, 살인.. 이 모든 것들의 역사적 이유를 떠나서 나는 언제나 고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 분쟁의 언제나 보이는 것, ‘인질 전술’이다. 그들의 말할 수 없는 역사적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거의 언제나 이런 ‘반인류적인 전술’을 쓰는 그들, 어떠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이 제일 싫고, 저주의 대상이다. 보이기에 죄가 없는 사람들을 인질로 삼는 Hamas [와 대부분의 그 민족들]의 술책, 그것으로 그들이 인류 보편적인 선과 악의 사이에서  ‘악의 세력에’ 더 가깝다는 심증을 더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는 나만의 철학일지는 모르지만, 그런 세력에 가담하는 Gaza의 ‘죄 없는 민간인’에 동정을 할 수 없는 것, 나도 별 수가 없다.

연숙이 코감기 증세가 심해지는 가운데 가랑비를 뚫고 손주를 보아주기 위해서 Tucker로 가는 날, 나는 집에서 편하게 있게 된 것이 아무래도 미안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20 마일 traffic drive.. 빗속으로.. 또한 로난 (산)과 달리 잠투정이 심한 낙스 (하늘)와 씨름, 아~ 이것이 70대에서 손주들 보아주는 수고인가.. 남들도 다 하는 것인데 어찌 우리만 특별하다고…

‘GOOD TIDINGS WE BRING, to you from our friends’… 행복하게 보이는 아프리카의 가족의 모습이 너무나 편안, 감사하게 보이는 holiday card가 왔다. 아하~ UNBOUND! 잊고 살았다. 우리보다 더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십시일반 으로 도와주는 charity UNBOUND를 통해 우리와 인연을 맺은 필리핀 노부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들 지금 어떻게 잘 살고 있는가? 미미한 우리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에 의욕을 주고 있을지…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 항상 미안하기만 하다.

천장의 tv-antenna 가 새로 제자리를 잡은 이후부터 며칠 동안 signal reception의 건강이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덕분에 더욱 자주 거의 모든 channel의 ‘영상 건강’을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아하~ 오늘 아침, 모든 channel 전혀 문제가 없구나, 제일 signal이 약했던 Channel 8.x, 제일 먼 곳에서 오는 KBS-AMERICA 등등 모두 궂은 날씨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으니.. 아마도 현재 antenna의 attitude가 그런대로 optimal한 것인 듯하다. OK & OK!

요한복음 전부, 묵주기도 200단.. 이것이 순교자 본당에 성탄 직전까지 하기로 약속한 ‘아기예수’를 향한 작은 선물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떠나서 이 작은 선물 봉헌 숙제가 나에게 주어진 timing을 다시 묵상해본다.

매일 저녁기도 때 묵주기도 5단을 통상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나를 살려주는’ 듯한, 아기예수님이 나에게 주시는 선물로 다가오는 것이다. 현재 나 우리가 겪고 있는 뜻밖의 작은 고통의 경험이 동정녀로서 아기를 출산해야만 하는 인류의 고통의 하나로 생각하라는 위로의 암시는 아닐까, 비약도 이런 비약이…

하지만 일단 약속을 한 이 봉헌, 일단 시작을 하고 보니 역시 적절한 timing이었다. 의외로 잔잔한 가슴 깊은 곳의 평화의 느낌, 샘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레지오 시절 때 주변 인물들로부터 당하고, 겪었던 각종 ‘인재 人災’의 고통의 순간들에도 우리를 살려준 것은 역시 ‘성모님의 묵주기도’ 였으니까..  지금 겪는 심적 실망, 고통도 그때와 거의 비슷한 ‘악의 현존’을 일깨우는 커다란 교훈으로 인정하면 된다.

9월 말 나의 유일한 누님이 뜻밖에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 시작된 그치지 않는 행렬: 사망, 선종..  나의 대자 김영태 세례자 요한 형제님의 뜻하지 않은 죽음,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서울 교동학교 출신, 불과 몇 주 전까지 친했던 R 형제님을 필두로,  오늘은 Sandra Day O’Conner 93세.. 전 미국 연방대법원 여성 판사.. 며칠 전의 Rosalynn Carter, 그제의 Henry Kissinger에 이어서 연속으로 3번 째 ‘역사적 인물들’의 타계소식..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것인가?

George Santos, I Love to Hate 인물 중의 하나, role model이 Trump ‘개XX’ 이며, baby Trump 역할을 자랑스럽게 자처하는 상습 거짓말쟁이, 사기꾼, 쓰레기 급 1st term Republican CongressSOB, 결국 congress에서 투표로 쫓겨났다. 얼마 후에는 각종 사기, 횡령 혐의로  형사재판 기소로  감방에 갈지도 모른다. 너무나 놀라고 놀라는 사실은 어쩌면 이 Brazilian 쓰레기는 그렇게도 그의 role model인 Trump ‘개XX’를 따라가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나이로 보면 그는 baby Trump 쯤 될 것이다. 사실 정말로 감방에 먼저 가야 할 X은 그의 role model인 ‘개XX’ 인데…

예정된 대로 서울 마포에 사는 김종수 후배와 장장 45분 카톡 통화를 했다. 주목적은 육성을 듣고 싶었고, 그를 통해서 궁금한 사실들을 알고 싶었던 것이었다. 대강은 짐작했던 사실들이었지만 그래도 더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그 중 제일 인상적인 새로운 사실은 하재주 후배가 ‘자랑스런 중앙인’으로 뽑힐 정도의 대한민국 원자력 계 leader로서 크게 성공했다는 것.  이 후배와 오랜 전에 이곳에서 만나기도 했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못 받았던 것은, 이 후배가 너무나 겸손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는지.. 근래 경주용 자전거를 타며  활기찬 모습을 느끼게 해 주었는데 그의 삶도 그처럼 dynamic했던 것 같다.  이들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 가정, 업적’의 소유자들인 듯한 것, 물론 만감이 교차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의 문제일 뿐이다. 절대로 이상하게 삶의 비교를 하는 것, 신앙적으로도 절대로 피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그곳을 가게 되면 더욱 이들 후배 그룹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또 만날 수 있는 기대도 한다..  오늘 들은 소식 중에 이들 대부분이 크리스천,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신앙 생활을 한다는 반가운 사실이었다. 이들과 신앙적 관계로 발전하는 모임이 되는 꿈도 꾸어보는데 과연~~

밤부터 내린다는 비.. 이것은 나에게 작은 위로를 준다. 늦은 밤 이제 2주 밖에 남지 않은 시간, 그 동안 기타와 노래 연습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서서히 쌓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대부분의 노래들과 그에 따른 코드들을 많이 잊지는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개미처럼 들리고, 기타소리는 경직이 되었는지 전혀 마음에 들지도 않는다.

Amazing Carters, 3rd ‘Mad’ Woman…

이제는 나에게 거의 ‘성인 품’에 오른 성인, 성녀들로까지 보이는 카터 부부,  아~ wife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신다. 이제 홀로 남은 카터 전 대통령도 지금 hospice care를 받고 있는 중인데 전 생애의 반려자가 먼저 갔으니..  얼마나 얼마 남지 않은 삶이 외로울까? 어제는 아틀란타 에모리 대학 교회에서 추모식을 먼저 했고 오늘은 그의 진정한 고향  집, Plains (Georgia) 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오늘 Rosalyn Carter의 ‘진짜’ 장례식을 TV로 유심히 보면서 나름대로 만감이 교차됨을 느낀다. 주로 Plains, Ga. 에서 있었던 행사들, 100명도 못 들어갈 자그마한 교회의 모습들, 정말 Carters 부부의 삶은 본받을 만한 정도를 넘는 거의 성인 수준의 삶을 살았다고 나는 믿고 싶은 것이다. 특히 1980년 retire이후의 삶은 교과서 적, 성경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오늘 함께 한 남편 카터 전 대통령의 모습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그와 일생을 equal partner로 함께한 ‘집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77년간의 사랑의 삶..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그의 삶과 정반대 편에 서서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을 비웃는 듯한  Donald ‘개XX’의 징그럽게 웃는 추한 얼굴이 이 성인들의 뒤에 보이는 착각에 빠진다.  지난 50년 동안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변하고,  불공평한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오늘 점심, homemade 샤브샤브~ 해괴한 이름의 이것, 전에는 자주 먹었던 것인데 근래에는 거의 볼 수가 없었지..   지난 3일 간의 심적 (그리고 육신적) 고통을 견디는 의미에서 이것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근래 들어서 오늘 같은 지독한 악몽의 밤을 지새운 적이 아마도 2017년 1월, 8월 두 차례 ‘레지오 미친X 사건’  이후 처음[이것이 제3의 미친X 사건]이 아닐까? 처음에는 완전히 밤 잠을 못 잘듯 했지만 그래도 2시 이후에는 깊은 잠에 빠졌던 듯하다. 주체할 수 없이 뛰던 맥박도 이제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나의 신세가 조금 쓸쓸하지만 이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임을 알고 있다. 바램은 다만 며칠이라도 조용히 보낼 수 있는 의지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이제 남은 여생의 삶에도 100%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안다.
비교적 안전하다는 성당공동체 내에서 이렇게 ‘감정, 정서적으로 불안한, 폭탄을 안고 있는 듯한 여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인지.. 이제까지 우리들이 3번째 겪는 것이어서 솔직히 말해서 가정문제가 있거나 우울하게 보이는 여자들은 가급적 조심하고 심지어 피하고 싶을 정도다. 이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은 여자들’,  나의 추측에 그들은 지나간 세월에 제대로 풀지 못한 trauma가 있거나 현재의 가정에 문제가 분명히 있을 듯한데,  성당 공동체, 신앙적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적극적으로 해결, 대응을 할 수 있을지… 대림절을 앞두고 보고 겪게 된 이런 어두운 모습들,  참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다.

현재 ‘제3의 미친X’ 때문에 심적 고통을 받으며 생각한 사람이 바로 R형이다. 그가 그리운 이유는 지금과 같은 불상사가 났을 때 내가 마음 편하게 의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소설처럼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거의 순식간에 우리로부터 떠났다, 그것도 저 세상으로… 아~ 왜 이렇게 되었는가? 왜? R형, 왜 그리 빨리도 가셨습니까, 저 세상이 그렇게 좋았습니까? 나의 외로움은 더 깊은 영역으로 빠지는데…

우리에게 또 다른 신앙적 고향, Holy Family CC ‘동네 성당’,  오늘 아침은 이곳에 가야만 했다. 절대적으로 가야만 했다. 어지럽고, 사랑이 빠져나간 듯한 가슴을 달래려고 영적인 고향을 찾은 것이다. 역시, 우리와 눈의 빛깔은 달라도 그들은 그곳에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증오, 분노, 혐오 등등의 감정을 이곳 제대 위에서 내려다 보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 모두 보여 드렸다. 조금 안정, 평화가 흘러 들어오는 ‘착각, 아니 느낌’… 고맙습니다!

이어서 오늘 아침 식사는…  한참 잊고 살았던 two number 2로 good old days를 되찾으려고 McDonald’s 엘 들렀다. 아~ 이것이 평화, 평정, 평상, 보통.. 그런 느낌인가? 추한 모습을 보기 싫어서 다음 주 화요일까지 D회 카톡 text를 아예 안 보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런 시간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당 공동체 내에 제3의 ‘기피 인물’이 생긴 것, 앞으로 멀리서라도 보게  되면 아마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선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영혼이 언젠가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후회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일 듯]

경기도 군포시 금정역 바로 옆 high-rise 에 살고 있는 ‘아직도 귀여운’ 조카 수경이가 그곳에서 ‘눈이 와요’라고 text를 지난 밤에 보냈구나.. 아~  한달 전의 그곳이 그립고 그립다. 가고 싶다. 이곳을 당분간 잊고 살고 싶다. 며칠이라도 다시 그곳으로 가고 싶고,  금정역에서 산본로를 걸어 금정성당에 멈추어 작은 묵주기도라도 바치고 산본 전통시장을 기웃거리다가 파리 바게뜨 에 앉아 맛있는 빵과 coffee,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동서형님 high rise 까지 걷고 싶구나.  

TV Antenna, Holiday Decor, Remote Family…

며칠 동안 춥고도 더운 attic엘 오르락 내리락 한 이후, 처음으로 한가지를 끝냈다. TV antenna가 결국 제일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전보다 더 높고, attic floor에 전혀 support가 필요 없는 깨끗한 위치가 되었다. 보기도 좋고…  또 remote rotation control이 되기에 거의 모든 digital channel [KBS AMERICA를 포함]들이 깨끗이 수신이 되는 것 등, 이것이 나의 오늘 하루 기분을 올려주는데 큰 역할을 했으니, 나도 조금 이상한 사람인가~~

오늘 아침메뉴는 처음엔 SONATA CAFE 비슷하게 시작(jam & bread, boiled eggs) 하다가 일상적인 것과 합쳐진 ‘짬뽕’이 되었다. 하지만 새로 가미된 것, potage soup (in monster mug, 은지의 선물)으로 거의 완벽한 아침식사가 되었다. 영양학 적으로도 큰 하자가 없을 듯…

드디어 우리 집 2023년 성탄 시즌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복도 closet안에 모든 성탄장식들이 박스에 들어있어서 꺼내기만 하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된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나 날씨가 거칠고 추워서 실내용 트리 만 완성할 수 있었다. 매년 점점 키가 작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 [우리의 키가 커질 리가 없는데..] , 완전히 mini-tree처럼 보이지만 귀엽지 않은가? 특히 올해는 트리가 이름에 걸맞은 제자리, family room으로 옮겨왔기에 더욱 돋보인다.

어떻게 김밥을 집에서 해먹을 생각이 갑자기 났을까? 완전히 잊고 살았던 것인데.. 이렇게 색다른 것을 먹게 된 것도 연숙이 덕분이다. 나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아~ 싸늘, 아니 춥구나, 진정 겨울이 이미 온 것인가? 서울 근교, 군포시 금정역 부근 처럼 영하 얼음이 어는 것도 아니지만 체감온도는 아마도 이곳이 더 추울지도 모른다.

나의 숙면 습관이 완전히 돌아온 이후,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기다릴 정도,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 느낌이 그렇게 산뜻한 것을 기다리는 것인가? 결론은, 숙면의 중요성, 아니 필요성이 아닐까?

이즈음 나의 혈압전선이 나를 조금 우울하게 한다. 마구잡이로 측정하는 혈압의 수치는 확실히 평소보다 높은 것이다. 애꿎게도 많은 숫자는 140 부근에 머물고 있어서 약을 ‘덤으로 먹어야’할 지 고민을 하게 한다. 전에 보던 숫자들 130 정도, 그것에서 10이 높은 것이니, 왜 그럴까? 잠도 잘 자는데…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원인은 밝혀지긴 했지만]… 커피? 제일 손쉽게 지목되는 범인이지만 나는 솔직히 이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식습관은 전과 같고… 아하~ 본격적인 ‘육체 근육 운동’, 그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럴지도 모른다. YMCA에 요새 거의 못 가고 있으니까..  다시 이것을 되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요사이 ‘녀석’의 행동이 눈에 뜨이게 변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렇게 ‘날뛰며’  행복하게 신나게 움직이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heater가 나오는 곳 앞에 칩거를 하며 안 움직이는 것이고, litter box toilet도 나가지 않고 그 옆에다가 실례를 계속.. 아~ 왜 그러는 것일까? 다행인 것은 먹이는 제대로 제시간에 하고 있다는 것 하나다. 그렇다면.. 아~ 역시 나이, 나이로구나. 그러면, 이 녀석도 점점… 아~ 성모님, 봐주세요~~

기대하던 카톡 소식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 싫어서 정말 오랜만에 ghost friend 이재영 에게 소식을 보냈다. 나의 고국방문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고 일관성 있게 자기 주장을 상식적 수준으로 펴나가는 그를 칭찬하고 싶었다.  깊어가는 밤 시간 ‘생각하며 사는’ 그는 아마도 computer앞에 앉아 있으리라는 상상도 한다. 아직도 computer coding, programming을 하고 있는 그의 프로 정신이 부럽다. 나의 블로그를 본다는 그, 내가 넋두리 급, 잡기록雜記錄 이라고 했더니 과찬 급으로 응답, 나는 솔직히 말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과찬을 100% discount를 해도 나에게는 과분한 것이 아닐지. 하지만 그래도 이런 안 보이는 친구가 지금 이 시간에 고향 땅에 있다는 사실이 오늘 나머지 시간을 행복하게 할 듯하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살맛 나는 이유를 이렇게 찾게 되는 것, 고마워, ‘신비스런’ 재영아!

오늘도 ‘이산 가족들’과 카톡 인사를 나누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아~ 이제 가족, 친척들이 이렇게 그리워지니, 확실히 나는 나이가 들대로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포근한 느낌을 가족 친지들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나는 행복한 것이다. 왜 이런 귀중한 것을 잊고, 아니 잊으려 하며,  놓치고 살았을까? 왜? 왜? 10년 인생선배 동서형님은 독감 끝자락에 있다고 카톡 전화를 먼저 주셨다. 놀랄 일이 아닐까? 나의 반가운 목소리를 형님도 느끼셨을지도… 이심전심…

Avocado on Toasts, Paris Baguette & T-Money

오늘 아침 식사는 모처럼 연숙이 준비해 주었다. 아보카도 avocado를 얹은 토스트가 돋보이고 은지가 선물로 준 monster mug에 담긴, 새로 다시 만든 potato potage soup까지.. 아~ 이런 날도 있어야지.. 고마워 고마워…

‘산본시장 파리바게뜨’ 영수증, 그리고 지하철 충전 영수증 두 장이 지갑에서 떨어져 나온다. PARIS BAGUETTE 의 정확한 한글표기가 그러니까 파리바게뜨 였구나. 이것이 문제다. 정확한 한글 철자는 이런 것을 보아야만 알 수가 있으니. 주소가 경기 군포 산본동 216-22 인데 산본전통시장 옆에 있는 그곳이고, 동서형님댁으로 걸어가면서 래미안 아파트 앞의 이곳에 들러서 빵을 19,000원어치 사가지고 아파트에 갔던 바로 그 영수증이다.  이번에 고국방문에서 은근히 놀란 것 중에 하나는 ‘super high rise 아파트 공화국’ 이외에 ‘gourmet 커피 공화국’인 듯한 착각이다. 과장된 표현으로 한 가게 건너마다 커피숍이 즐비했던 것.  주체할 수 없는 부의 과시인가, 아니면… 그리고 충전 영수증, 이것은 수도권 전철 요금인데 이것도 나 혼자서 금정역에서 T-Money card로 두 정거장 떨어진 ‘어머니와 인연이 있는 상록수 역’에 갈 때의 것이다. 이것으로 다시 금정역 주변의 일들이 벌써 주마등처럼 나를 맴돈다. 좋은 추억이고 잊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꿈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랄 정도로…

오늘도 떠오르는 부러운 것, 사람들 중에 ‘콜럼버스 중앙후배 그룹’ 이 유난히 떠오른다. 왜 그들이 그렇게 부러운 것일까? 우선 그들은 1980년 대 ‘젊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긴 세월 가끔이라도 서로 만나며 ‘함께’  같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그 사실, 내가 흉내를 낼 수 없는 사실들이라서 그렇게 부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콜럼버스 오하이오 시절부터 시작해서 ‘아마도’ 계속 계속 만날 수 있었지 않았던가?  도사 양건주 말대로, 친구나 친척도 ‘안 만나고 살면’ 관계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 다고 한 말, 아직도 나의 귀에 잔잔히 울린다. 이것만은 내 능력 밖이니 어쩔 수가 없기에 나는 그렇게 슬픈 것이다.

오늘로써 Verizon 5G Home 인터넷 service의 upgrade도 99% 해결이 되었다. 나머지 1% 는 $30 discount를 받는 것만 신청을 하면 된다. 그리고.. 아~ trash service도 완전히 GREEN으로 switch를 했지… 그런대로 현안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한가지 남은 것, 조금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 연숙의 Humana insurance 문제, 크게 걱정은 안 하지만 누가 알랴?  그래, 이것도.. 고 차동엽 신부님 말대로 ‘희망으로 실망을 몰아내자’, 그 중에 하나다. 절대로 희망으로 살고 싶다.

문득 어제 전화가 잘 안 되었던 동서형님 생각이 난다. 걸까, 말까.. 카톡으로 걸어 보았다. 혹시나 어디 두 분이 가셨던 것은 아닐까.. 궁금하기도 했고. 걸어보니 예상을 벗어나 곧바로 전화를 받으신다. 오늘은 카톡이지만 음성이 깨끗, latency도 없는 듯해서 밝은 심정으로 짧은 통화 성공! 아하~ 감기에 걸리셨다고 하신다. 그러면 그렇지.. 목소리가 잠긴 듯 들리고. 이 정도면 통화는 성공, 짧게 끊는다. 앞으로도 10년 인생선배님과 이렇게 연락을 하며 살고 싶다. 나도 못지않게 외롭기 때문일 거다.

찬란한 태양의 따뜻함과는 정반대의 대기권의 싸늘함, 게다가 바람까지.. 이런 날은 바깥에서 일하는 것은 매력적이 아니다. 오히려 집안에서 무엇인가 결과가 보이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 무조건 attic으로 기어올라간다. 엄청 쏟아져 나온  attic에 있던 것들, 거의 모든 것들이 WAN/LAN network wire, cabling 종류들, 엉키고 설킨 30여 년의 유물들, 시간이 걸리는 귀찮은 것들이다. 한가지 알 수 없는 것, old analog TV antenna 다. 이것은 조립식이 아니고,  전체 크기는 상당히 큰데, 이것을 어떻게 shipping delivery를 했을까? 도저히 할 수가 없는데..  쉽게 이해가 안 가지만 유일한 해답은 내가 ‘아마도’ 이곳의 어떤 retail store에서 산 것이 아닐지. 혹시 옛날 옛적  Radio Shack같은 곳은 아니었을까?

이곳 저곳 방에 있었던 cable, network outlet 들이 없어진 곳을 repair해야 한다. 벽을 고치는 작업은 나에게 비교적 쉬운 것이지만 지금은 귀찮은 일이 되었다. 하지만 구멍이 뚫린 것을 안 고칠 수는 없는 일, 오늘 잘 하면 시작은 할 수 있지 않을지.

드디어 엉키고 설킨 heap of cables & wires, 정말 한 뭉치의 30년간의 networking workhorse가 분류, 정리가 되어서 밖의 shed옆으로 퇴출이 되었다. 아마도 앞으로 이것을 재활용할 기회는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고물 analog 안테나도 결국 밖으로 쫓겨나고.. 아~ 미안하구나.. 하지만 세월을 탓해야지 어쩔 수가~~

역쉬~ 드디어~ 나는 지독한 시차 후유증에서 벗어났구나~  깨끗한 잠, 정확한 시간 6시 30분에 일어날 수 있었으니.. 감사, 감사..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와 보니 아~ ‘녀석’이 구석에 푸푸를 해 놓았으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최근에 갑자기 날뛰는 듯한 활발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것은 무엇인가? 왜 밖 porch로 나가지 않고, 실내인 이곳에?  참, 살기 힘들다, 왜 너까지 나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아마도 litter box를 집안으로? 아~ 싫다, 싫어…

가벼운 우울함이 넘실거리며 나를 노려본다.  희망으로, 희망으로.. 이것을… 희망, 이 나이에 희망이란 것이 어떤 종류일 것인지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없지 않을지. 있다 해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생의 마지막을 향하는 마당에 속된 희망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고 차동엽 신부님 왈 희망으로 절망을 쫓아 내야 한다는데.. 어떤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아~ 근래 나는 확실히 ‘영적 영역’에서 많이 벗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2010년대의 내가 빠져서 허우적대던 바로 그 ‘영역’, 도저히 지금은 그때처럼 ‘초월적 기쁨’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하느님이 ‘홀연히’ 사라진 듯한 환상에 빠지게 한단 말인가? 어떻게? 아~ 성모님이시여~

 

Thanksgiving Day 2023, Simple & Joyful

올해는 새로니가 신경을 써서 감사절 식사를 대접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없었으면 올해 우리 집의 가족모임은 흉내도 못 낼 뻔 했을지 않을까? 그래도 큰 딸이 올해는 가족들의 전통을 살려 주었구나, 감사… 그야말로 ‘추수’ 감사절이 되었구나.

비록 두 집 식구만 모인 것이지만 그런대로 상차림은 정성을 드린 것, 비록 turkey대신에 duck인 것이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맛은 있었다. 게다가 내가 게걸들린 듯하며 찾는 ‘술종류’, 꼬냑과 wine.. 하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 운전을 의식해서 그런지 정신적으로 긴장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역시 새로니style의 음식들, 푸짐하지는 않지만 정갈하고, 새롭고, 맛있게 ‘보이는’ 그런 생김새들.. 또한 부부가 둘이서 함께 노력해서 만든 것들, 가급적 맛있게, 용감하게 맛보려고 노력을 한다. 게다가 나의 눈길을 끄는 red wine과 Hennessey Cognac 까지 입맛을 돋구고..  절대로 남게 하지 않는 새로니지만 오늘은 조금 남는 듯, 내가 takeout하겠다고 해서 남는 것 중에서 대부분 담아가지고 왔다. 과연 집에서 얼마나 처리할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지만…

이런 모습을 ‘수경이네’ 로 보냈더니 뜻밖에 (남편) 김서방 왈 ‘양주병을 잡은 손’ 을(그것이 나인 줄 알고) 코믹하게 언급한다. 아~ 왜 나는 이즈음 ‘그곳과 그 식구’들이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인지, 가깝다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생각까지..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항상 조용히 살고 싶었던 나였는데, 어떻게… 가깝건 멀건 이제는 사람들이 그리운 것이다. 외로운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인지도… 

모처럼 사랑하는 나의 ‘아들’ Ozzie와 새로니 동네를 30분 동안 걸었다. ‘감사절 만찬’이 거의 준비되고 있어서 동네 전체를 돌 수는 없었다. 오늘 산책을 한번도 못했기에 더욱 새로니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 흐뭇한 것.. 나도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또 12월 중순에 또 녀석이 우리 집에서 며칠 간 머물게 되는 것, 역시 도움을 주는 봉사요 도움이 아닐까..

모처럼 새로운 soup을 ‘개발’한다는 연숙이가 들고 온 것이 처음 보는 듯한 대형 mug였다. 알고 보니 얼마 전 서울 계동 중앙중고 정문이 가까이 보이는 곳 에 갔을 때 조카 은지가 우리에게 선물로 준 것이었다. 두 잔을 받았는데 모두 ‘아래 층’에 있는 분이 design한 것이었다고.. 불현듯 은지 생각, 얼굴, 보고 싶어진다. 그립다. 긴 세월 못보고 살았던 식구, 어찌 혈육이란 것이 다 이런 것인가?  재력이 있으면 도와주고 싶고, 만나면 누나, 어머니 이야기도 더 듣고 싶고.. 아~ 어떻게 이렇게 떨어져 사는 운명을 안고 살게 되었는가?

또 하나의 ‘완전한 수면’을 감사하는 ‘지난 밤’이 되었다. 정말 나는 ‘시차의 고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그럴 것 같다는 나의 심증… 하나의 경이로운 경험이 되었다. 12시간 시차가 한달 정도 경과되면 시차 후유증은 거의 3주간 계속된다는 사실… 우리들 만이 겪었던 작은 비밀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유의를 하며 또 다른 시차를 경험하게 되기를 기대하는데, 그렇게 될 것인지는 ‘재무장관’의 소관이기에…

어제 도착한 양양이 flea treatment (topical), 목덜미에다가 아주 작은 양을 살짝 뿌리는 것인데 왜 이렇게 나는 굼뜰까? 하도 예전에 나의 손을 물었던 기억 때문일 것일지라도, 요새는 거의 그런 일도 없는데..  하지만 시간 문제임은 알고 있다. 시간문제, 시간문제… 이것이 제대로 성공하면 과연 flea control이 가능할 것인지..   며칠 전부터 아니 전에도 가끔 녀석이 집안에 푸푸를 해 놓곤 했는데 며칠 전부터 더 횟수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밤엔 피피까지~~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너무 늙어서 그런가, 아니면?  왜 밖으로 나가서 하지 않는 것일까? 혹시 녀석도 ‘치매’? 아~ 살려주라, 우리 좀 살려주라… 결국 녀석이 밥을 먹는 틈을 타서 재빨리 약을 머리부근 등에 뿌리는데 성공을 했다. 과연 이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한 달에 한 번 사용하는 것이라니까 분명히 이 약은 ‘독한’ 종류일 것인데 안전 한 것인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거의 우연히 over-the-air TV로 Thanksgiving Day Macy’s Parade를 볼 수 있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10월의 sentimental journey를 거의 뒤로하고 평상적 삶으로 돌아온 느낌까지 든다. 거의 3주가 지난 후에.. 하지만 이제부터 나는 그 기억들을 잊기 전에 글로 남겨야 하는 더 큰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못할 것도!!

양식 아침 한식 점심, 잊혀진 질문

다시 돌아온 ‘내가 만드는 아침’ 고정식, 매일 거의 같은 모습인데 물리지도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지루하게 보여도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 너무나 손쉬운 음식재료에다가 하도 익숙해서 힘도 안 들고 영양학전공 연숙의 승인을 받은 것이기도 하고, 이 정도면 오전에 움직이는 에너지는 충분하다.

조개장국, 감자조림, 완두콩 밥, 김과 알맞게 집에서 담근 익은 김치… 이것으로 우리는 이제 제2의 고향 집에 왔다~~ 라고 선언을 한다.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 감사하고 감사한다.

이런 맛있는 점심을 먹었던 것도 행복한데 오늘은 특별한 한 때가 있었다. 연숙이와 함께 family room에 편하게 앉아서 Roku Channel에서 크리스마스 영화 하나를 같이 본 것이다. 이것은 근래에 거의 없었던 일이다. 사실 같이 영화를 보는 것을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살았던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무엇인가 불편한 것이.. 영화라는 것에 그렇게 친숙하지도 않고 심지어 이해를 잘 못하는 듯한 표정 등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던 것. 의식적으로 이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내가 심각하게 하지 않았던 것, 솔직히 후회를 한다. 특히 영어권 영화를 거의 안 보고 살았던 탓인데, 그래도 새로 배우는 것은 나보다 빠른데.. 내가 너무나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인지도 모르니.. 미안하기도 하고 후회도 된다.

이것을 같이 보고 나는 그렇게 기다리던 낮잠까지 잠깐 잘 수 있었으니~~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듯해서 정말 오늘은 하루가 편하고 즐겁기까지 했다. 아마도 Steve Jobs effect라고 부르는 은총이 도움을 주었는지도…

이 내가 좋아하는 format (책 제본)에다가 차 신부님의 멋진 학자 신부다운 멋진 포즈,  책의 표지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 흔치 않는 case인가? 그래서 수원 근교 미리내 성지에 갔을 때 나의 손이 무심결에 이 책에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려고하는 순간 수경이가 재빨리 계산을 해 버렸기에, 이 책은 앞으로 수경이의 선물로 기억이 될 것이다. 내용이 상당히 포괄적, 보편적이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학문적이기도 하다. 그것에 비해서 문체나 설명이 의외로 이해하기가 수월하니.. 이것이 차 신부님의 특별한 능력이 아닐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제 거의 다 읽게 된 책, 앞으로 이 책을 접할 때마다 생기발랄한 수경이 얼굴이 떠오를 듯하다. 수경아, 고맙고 고맙다… 정말..

ATLANTA OVER-THE-AIR CHANNEL 47.4 KBS: 이제는 거의 안정된 TV reception 을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에 한인TV 방송, 많은 사람들이 이미 평소에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우리 집은 예외 중의 예외였다. 이 channel의 정체조차 확실치 않았지만 알고 보니KBS AMERICA라고 보인다.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의 출처는 LA 지역인 것이고, 한국 KBS를 재편성 방송을 한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의 방송은 우리 집과 30마일 이상 떨어진 NEW KOREA TOWN (DULUTH)에서 보내기에 우리 집에서 수신상태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근래에 무엇이 변했는지 그 방송의 상태가 안정적이고 선명하게 나오기 시작. 우리 집의 antenna도 upgrade가 되었지만 방송의 출력도 증가하지 않았을까? 결국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정상적인 TV로 ‘하루 종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programming들이 나의 취향에 맞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도 생소한 것 투성이.. 하지만 지난 달 여행으로 꽤 많이 익숙해진 모습들이어서 전과 같은 이질감은 점점 사라지는 듯하다. 솔직히 나도 ‘다른 사람들 처럼’ 재미 있게 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무슨 특별한 사람이라고…

이제는 피할 수 없게 된 것,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쳐야만 하는 운명’, 조금씩 이것이 부담으로 다가올 것은 분명한데.. 어쩔 것인가? 과연 내가 전처럼 기타를 치는 것에 무리가 없을까? 많은 코드들은, 노래의 가사들.. 하지만 2016년부터 한때마다 열심히 연습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필요이상 걱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곡을 몇 곡 송년모임에서 ‘선을 보일까’ 하는 것이 더 관심, 신경이 쓰인다. 오늘 아예 서재로 기타를 가져다가 심리적으로 준비를 시작하긴 했는데…

양양이 fle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첫 단계로 나라니가 권해준 ‘목덜미 위에 뿌리는 약’을 order해서 저녁 늦게 도착했다. Made in Germany라는 표시에 우선 신뢰감이 생겼다.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을지는 내일 써보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서예족자, 예기치 못한 죽음, 지미 카터의 추억

태평양을 건너온 선물, 오늘 드디어 동서형님이 신경을 쓰셔서 챙겨준 ‘서예족자 2점’ 을 펼쳐서 등 뒤에 걸어 보았다. 이제야 전체의 모습을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으로 ‘군포, 산본로, 래미안’ 등의 추억을 살리고 떠올리며 처형님 댁과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니… 너무나 이 족자의 ‘멋진 글씨’가 따뜻하게 가슴으로 다가온다.

아~ 드디어 결국은 동갑내기 R형이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최악의 예상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연숙이 처음으로 카톡 text를 보았다. 아직도 실감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제는 조금 다른 강도의 실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100% 실감을 못한다는 착각 속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를 않는 걸 어쩐단 말인가? 이곳에서 내 눈을 보기 전까지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이제 그는 정녕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걸 어찌한단 말인가? 죽음이 나의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하다. 잘 살아야 한다. 잘~ 후회가 없도록~ 하지만 나는 근래 너무나 후회할 수 있는 상태로 고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어쩔 것이냐?

오늘 또 다른 ‘선종’ 소식을 본다. 아~ Rosalynn Carter.. Dies at 96…

사실 96세 타계면 크게 놀랄 것은 거의 없겠지만 나에게는 다른 사실들로 가슴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이 사진 NYT에 Carters의 예전 모습들, 그것은 1977년 1월 새로이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Jimmy Carter와 그의 식구들이 취임식 때 Washington DC 거리를 행진하는 장면, 그곳에 카터 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우선 1977년 1월 무렵, 그때의 나의 모습들을 기억해 보니,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인 것이다. 한창 호르몬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때, 나의 모습이 그립고, 시대를 뛰어넘는 카터의 인류박애적 인간성, 그것이 지금의 ‘최악 중의 최악 D. Trump’와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고민과 고통..  어떻게 카터는 이렇게 성인군자로 비교가 되는 것일까? 인생의 후반, 말년을 그와 같이 보낼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 참 세상이 어찌 이렇게도 타락해가고 있단 말인가?

오늘 S 헬레나 자매를 만나서 들은 얘기가 아주 희망적을 넘어서 기쁜 소식이었다. 며칠 전 우리가 목격한대로 설형제가 집에서도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집안에서 보고 느낀 것이 예전에 비해서 ‘좋은 가정적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처럼 보이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부심과 심지어 나의 노력이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실망을 거듭했지만 이 형제가 드디어 가정 생활에 신경을 쓴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것 이외의 다른 행동들은 여전히 ‘자기만의 세상을 사는 모습’이긴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봐 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아~ 성모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아침미사에는 ‘류해욱’ 요셉 신부님이 오셨다. 확실히 류신부님은 오래 전 가벼운 stroke이후 발음과 바른쪽 손에 가벼운 후유증이 아직도 보인다. 목소리 조절이 잘 안 되어서 어떨 때는 너무나 큰 목소리일 때도 많고, 바른 손이 아직도 부자유스러워 미사 제대 집전과 성체분배에 곤란을 보인다. 이때마다 나는 친구 건주를 생각한다. 건주가 이 정도로만 회복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지..

Server closet을 아예 없앤다고 너무나 빨리 기대를 한 것이 조금 성급한 결정이었다. Server PC 를 나의 lab room으로 옮겨 왔지만 소리도 시끄럽고 볼품도 없고 싫어서, 혹시나 하고 server closet의 wifi signal 을 check해 보니~ 와 이곳도 실내나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러니~  예전처럼 이곳에 server를 두어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모든 ethernet wire를 철거해도 wireless 로 이곳에 server가 있어도 되는 것이어서 다시 closet에는 예전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모든 cabling은 attic이외에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물러가는 시차 후유증, 깊어가는 가을…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음 소리에 눈을 뜨니 거의 7시에 가까운 아침,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구나. 지난 밤의 기억이 전혀 없음을 알고 놀랐다. 잠이 안 들어서 뒤척이던 기억도 꿈도 없는 밤? 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 나의 본래 잠의 모습이 돌아온 것인가… 감사합니다 라는 말 밖에…

조금 늦었지만 이른 아침 routine을 하나 둘 씩 하면서 조금은 어두운 tool shed 쪽을 보니… 와~ 낙엽이 쌓일 대로 깊이 쌓인 모습, 너무나 아름답구나. 눈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덮어주듯 낙엽은 운치까지 더해 주는 것, 지금 처음 느낀다. 이 낙엽은 언제까지 이곳에 남아있을까…

어제보다 더 을씨년스런 날씨, 아침 스케줄이 완전히 사라진 후 여유를 가지고 만천홍으로 혼자 drive를 해서 갔다. 2017년부터 시작된 ‘목요회’ 모임, 도대체 언제 우리들이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를 않으니.. 아마도 작년 연말에 이형 가게로 갔던 때는 아니었을까? 왜 우리들의 만남이 이렇게 순탄치 못했는지 짐작은 가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내가 이 두 사람에 대해서 배려, 관심, 사랑이 부족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모처럼 만났을 때는 왜 그런지 엄청 나는 흥분하고 기쁨에 들떠있었다. 이형의 손을 꼬옥 잡기도 하고.. 전보다 더 친근하게 보이고 느껴지기도 했으니… 게다가 S형제는 정말 부러울 정도로 건강하고 활동적인 모습으로 나타났고, 게다가 우리 둘에게 멋진 wine package까지 잊지 않을 정도의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이들은 그 동안의 삶이 큰 굴곡과 문제가 없는 듯 보였다. 앞으로는 2017년 때처럼 매달 만날 수도 있겠다는 일방적인 생각까지 나타내고… 왜 나는 이렇게까지 overacting을 하는 것일까? 확실히 R형의 소식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내가 외로워지고 있다는, 나는 현재 가까운 남자친구가 별로 없다는 외로움… 이것이 나를 다른 쪽으로 corrective action를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이 먹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실감, 의식, 비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이 나는 부끄럽기까지 하다. 

비록 1시간 반의 점심 만남이었지만 의외로 가볍고 반가운 기분으로 식당을 나왔다. 다음 달에 만나자고 거의 생각지도 않고 말했지만… 과연 어떻게 될 지…

이제는 익숙한 것, iPhone으로 우리 집안의 5G Internet 의 건강상태를 check하는 것, 아직도 100Mbps down, 10Mbps up 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면 서서히 몇 년째 사용하고 있는 legacy ‘landline DSL’은 사라질 수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 주까지는 기다려보자.. 모든 PC가 WiFi로 바뀌어서 test가 끝날 때까지…

아침 식사를 여유롭게 하는 것, 오늘은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모처럼 유익한 얘기도 나누고… 식탁 화제는 한국 YouTube video에 나오는 건강정보, “약을 안 먹고 혈압 조절하는 방법”, 이것으로 senior 건강에 대한 것들, 그리고 올 가을 시작된 ‘장례 행진’, 갑자기 들려오는 죽음에 대한 소식들, 나의 누나를 포함한 것에서 급기야 R형의 요양원 행까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 하루 하루 그날만? 아닐 거다.. 왜 내일과 그 이후 자녀들의 시대를 잊고 산단 말인가?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이 있다면 죽음에 대한 의미를 찾는 것 아닐까?

며칠 전 카카오톡으로 연결이 된  ‘문기조 목사님’, 오늘 처음으로 문자 인사를 보냈다. 1950년대 가회동 시절을 직통으로 연상케 하는 나의 재동학교 선배, 현재는 목사님이라는 사실, 가회동 주인집 따님 염경자 누님을 서로 알고 있던 인연으로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인연, 어찌 우연이라고만 할 것인가?

정말 오래 전이지만 그도 나와 너무나 비슷한 출신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은근히 반갑고 놀랍다. 원서동 시절의 그의 기억이 나보다 최소한 2~3년 빠르기에 내가 모르는 것도 알고 있는 듯했다. 사이다 공장이라고 했더니 ‘칠성사이다 원서동 77번지’ 까지 줄줄 왼다. 너무나 솔직한 목사 선배님, 어렸을 때 너무나 가난했다고 계속 회상… 어떻게 경자누나네 집은 잘 살았는데 그  이모들은 그렇게 살았는지…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C 로사 1주기 연도, WiFi at Server Closet

을씨년스런 날씨, 순교자 성당에선 슬픈 추모미사와 연도가 있어서 다녀왔다. C로사 자매, 착하게 생기고 성당 일에도 열심이었던 우리 나이 또래.. 작년 이즈음이었겠지.. beauty supply shop에서 일을 하다가 강도의 총격으로 운명을 한..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당시에도 많은 조문객이 왔지만 오늘도 꽤 많이 모였다. 그만큼 그 자매는 ‘인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그 자매님의 배우자는 완전히 다른 인물인 것 같으니… 오늘도 그 남편의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냉소적, 냉기가 도는듯한’ 느낌들, 여전히 변함이 없었으니… 연도 이후 점심을 그곳에서 함께 나눌 것을 기대했지만 준비한 도시락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더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그대로 그곳을 떠나서 H-Mart에서 K-dog (예전의 명랑핫독), 생막걸리 등을 사가지고 집으로 황급히 돌아왔다. 나중에 시음을 해본 ‘生生 막걸리’, 이것과 그냥 막걸리는 무엇이 차이인가.. 전혀 특별한 맛이 없었으니… 조금 속았다는 느낌도…

조금 놀라운 사실, 우리 집의 garage, 그것도 server closet 내에서.. 조차 현재 Verizon 5G Home Gateway로부터  WiFi signal이 ‘왕성, 건강’하게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이 새로운 5G Gateway의 성능이 그렇게 강력한 것인가? 이렇게 되면 나의 모든 가정된 사실과 차이가 나는데… 결국 server PC를 closet으로부터 옮길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그곳에서 iPhone으로 Internet speed test의 결과를 확인했으니 할말이 더 없지 않은가? 아~ 이것은 나를 조금 기쁘게 한다… 아침부터…

이제는 우리 집에서 wired LAN (ethernet cabling)의 필요가 없어지는데~ (예전의 telephone landline을 연상께 하는..) 이것을 계기로 우리 집의 모든 old network cabling을 정리하면 어떨까? 이제는 공룡, 화석, 유물처럼 보이는 것, 이곳 저곳에 있는 network outlets들, attic에 복잡하게 놓인 network enclosure, cables들, 모두 없애면… 물론 아직도 필요한 곳은 HdHomeRun(TV streaming) 이 있지만 그것은 attic TV antenna 근처에서만  필요한 것이니까, 다른 곳, 특히 garage의 server closet의 모든 wire/cable 들을 사실 완전히 제거해도 되는 것 아닌가?  벽마다 붙어있는 network outlet을 모두 제거하면,  이사 올 무렵의 깨끗한 벽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가슴이 뛴다…

아~ 살았다, 조금 다행이다… 지난 밤, 그 전날처럼 못 잔다면 나는 정말 암담했을 것이다. 물론 어제 밤도 그 이전처럼 처음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극적으로 나중에 꿈과 함께 분명히 잠에 빠진 것이다. 눈을 뜨니 7시 직전… 요새의 기준으로 이것은 나에게 이른 시간이지만 예전에 비하면 너무나 늦은 시간.. 그래도 이것이 웬 떡이냐~~ 감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났고~~ 역쉬 잠을 잤다는 사실에 나는 행복하기만 했다.

아~ 이제야 연숙이의 ‘상습적’ 불면증 고통을 조금은 실감하게 되었으니… 나와는 정반대로 요사이 연숙이는 ‘기적처럼’ 잠에 문제가 없는 것을 보는데…  불면증이 사라진 것이다. 문득 1월말 과달루페 성지순례 이후의 모습과 거의 비슷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것도 한국성지의 영향, 아니면 그것 이외에 다른 것들도?  물론 짐작은 가능하다. 연숙이는 정말 ‘최고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음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것을 나는 배울 수가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오늘도 ‘수경이네’ 단톡방을 찾는다. 아~ 내가 조금 over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나 다를까, 나의 ‘적극적인 카톡 posting’을 보고 김서방 왈  우리들이 한달 간의 여행으로 향수병이 생겼다고… 빨리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시라고.. 아~ 반가운 응답이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예산만 있다면’ 또 당장 돌아가고 싶기도 한 것이다. 어떻게 내가 이렇게 변했을지… 나의 솔직한 소망으로 ‘고향을 찾아 가는 노력’ 이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일시적인가, 아니면?

오늘은 동서형님이 나의 카톡 전화를 받아서 문제없이 큰소리로 통화를 할 수 있었고, 그곳 래미안 아파트의 사진도 처형님이 찍어서 보내주어서 다시 보는데… 아~ 그 광경들이 어찌나 그리운지~ 내가 왜 이럴까? 왜? 갑자기 외로워지는 것일까? 우리만 떨어져 사는 이산가족 같고..

요사이 우리 양양이는 아마도 이제까지 동안 제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거라는 조심스런 낙관을 한다. 우리가 한 달 집을 비우고 돌아온 지 거의 반달이 지나가며 예전에 비해서 훨씬 나아진 것이다. 우리를 다시 만난 것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여건들이 있었는지? 그렇게 우리를 걱정하게 하던 ‘가끔 피가 섞인 구토’, 그런 현상을 요새는 거의 못보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건강해진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동물들도 심리적, 정신적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현재의 먹이들이 몸과 맞는 것인지… 하여간, 이런 늦은 삶을 사는 양양이, 언젠가는 영영 이별하겠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한 시절을 사는 것은 아닐지…

내일은 오랜만에 도라빌 만천홍에서 S 아오스딩, L 도밍고 그룹과 점심을 하게 되었다. 이 모임의 경험으로 봐서 큰 뉴스는 없겠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이…  현재 심각한 투병을 하고 있는 R형에 관한 소식에 관한 것이다. 귀 띰을 해줄 것인가, 아니면… 연숙이는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미 레지오에도 알려진 사실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나는 R형 wife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 조심스러운데…

오늘 이재욱 신부님과 카톡을 주고 받았다. 지난 달 수원신학교에서 만났던 때가 그리워서 보낸  것이다. 의외로 이유는 모르지만 신부님이 ‘옛날의 우리들이 살았던 모습’들이 총집결 되어 있는 website를 알려 주었다. 우리 세대보다 더 ‘어르신 세대’들이 살았던 시대의 각종 모습들이 그곳에 널려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곳에서 어리거나 젊었던 세대였다. 왜 나는 남들에 비해서 유난히도 옛 시절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것이 조금 비정상적인 것은 아닐까… 어렵다, 어려워, 나라는 사람도…

우리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가…

나의 고향은 어디인가? 집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화창한 날씨에 힘입어 천천히 혼자서 동네를 전부 돌아본다. 분명히 대한민국도 내가 태어난 고향이지만 이곳도 세월을 살았던 고향, 그러니까 제2의 고향이 되었고, 그만큼  정들고 편한 곳이 된 것, 어느 곳이 더 좋은가? 힘들고 바보 같은 물음이다. 둘 다 비슷하니까…

비슷하다기 보다는, 엄밀하게 말하면 두 곳의 좋은 점과 싫은 점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일대 일로 비교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좋은 것이 저쪽에서 싫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늘 동네를 돌아보며 분명히 이곳의 느낌, 모습은 제1의 고향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좋고 싫고를 떠나서, 다르고 또 다른 것, 그것이 전부다.

10월 한달 동안 우리가 없었던 이곳도 확연히 가을이 깊어진 모습,  고층아파트, 끊임없이 마주 치는 사람들과 차들의 북적거림의 소음을 떠나 이곳의 적막함이 짙어진 가을의 색깔에 섞여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스런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고독, 외로움도 함께 준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라는 것, 자기의 취향에 달려 있지 않을까?

Halloween 늦은 밤에 돌아왔기에 밤중의 trick-or-treat 하는 것, costume 등은 못 보았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각종 ‘도깨비, 귀신, 해골’들은 다행히 볼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아마도 Thanksgiving theme으로 동네는 또 변신을 하겠지. 이런 이곳의 오랜 전통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 과연 나의 진정한 고향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Home, really Sweet Home…

3일 전 저녁 늦게 집에 도착 이후 다음날 아침, thermostat setting문제로 아침에 home heating 이 나오지 않았다. 놀랍게도 빙점가까이 떨어진 아틀란타 지역, 추위에 떨며 일어났지만 그래도 행복, 집의 침대에서 너무나 편한 안도감~~ 아~ 정말 home sweet home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이후 지독한 심한 시차 후유증으로 계속 밤잠은 거의 잘 수가 없었다.  대신 낮에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로 하루 하루를…수십 년 전의 기억으로 나는 시차에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필요이상의 걱정은 안 한다.

어제는 냉장고에 먹을 것이 완전히 떨어졌기에 무리를 해서 Sam’s Club엘 가서 급한 것부터 사서, 정말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먹던 그대로 먹을 수가 있었다.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home sweet home 의 맛을 느낀다.

여행용 짐 꾸러미를 하나 둘 씩 풀며 나오기 시작한 것들, 대부분 사랑이 듬뿍 묻은 선물들이다. 어떻게 이런 선물을 줄 배려를 했을까, 고마움과 호기심으로 본 첫 번째 것을 보니… 아 멋진 포장된 box를 열어보니… ‘오설록’ 제주산 gourmet tea set였다. 이것은 중앙 채인돈 후배가 서울역 모임에서 준 것이다. 유난히 밝고 다정했던 인상의 채 후배 부부, 우리의 godson  채경덕군의 부모, 30여 년이 지난 후에도 그 당시의 모습의 애 띤 얼굴.. 그들을 다시 생각하며 아침에 오설록 차의 맛을 보았다. 와~ 이곳 (미국)에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다르고 수려한 맛’, 아니 신비스런 고향의 냄새가 묻어 나오는 듯..  인돈 후배, 다시 한번 고맙네…

이 멋진 차茶가 담긴 컵, 유난히 가벼운 잔, 디자인이 독특하고 멋진 것이었다. 이것은 연숙의 1970년대 이대 梨大 총학생회시절 회장이자 이후 이대 총장을 지냈던 친구가 선물한 것이라고…

모처럼 맑아지는 정신으로  backyard엘 나가니~ 이틀 동안 나의 눈에 느껴지지 않았던 모습이 들어온다. 아~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이곳은 완전한 깊은 가을 풍경, 집을 떠날 무렵에도 이곳은 초록색이었는데, 그것 대신 찐한 가을의 상징, ‘낙엽’이란 선물로 수북이 덮여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잔뜩 마른 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는 요란하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한 것, 아 역시 home sweet home이구나~ 감사합니다.

새로 사온 ’19 Crimes’ Red Wine… Hmmm.. 도대체 왜 wine label의 이름이 19 Crimes인가? 호기심으로 wine을 더 선전, 판매하려는 상술인가? 이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름의 wine은 내가 자주 찾는 어떤 website [Jeff Duntemann] 에서 본 것이다. 이 red wine은 비교적 값이 저렴한 (<$15)것이어서 나 같은 사람에게 안성맞춤이다. 마셔보니 전형적, 보통인 red wine의 맛이다. 다음은 왜 하필 19 crimes이라고 했는가… 역사적으로 이 용어는 18~19세기 영국의 형법의 일종, 이 죄를 저지르면 Australia 로 추방을 했다고. 대부분 경범죄로 보이는데 어떻게 그들을 당시의 ‘오지 奧地 중의 오지’로 보냈는지 궁금하다.

이번 고국 여행에서 제일 신경이 쓰이던 것이, 우리의 pet cat Izzie의 ‘안녕과 건강’이었다.  거의 한 달 동안 텅 빈 집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을 할 수는 없지만 일주일마다 새로니가 잠깐 와서 보고 가긴 했지만, 얼마나 황당하고 놀랐을까? 처음 2~3주 간은 크게 모습이 변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마지막 즈음에서는 완전히 depress가 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분명히 건강상에 문제가 생겼을 듯하다.  우리를 ‘갑자기’ 보게 될 즈음 확실히 녀석은 놀라고 있었고, 이후 전에 없던 행동, 나의 desk위로 올라와서 ‘만져 달라는’ gesture를 보인다.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모습… 역시, 이런 동물들도 인간과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