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일기

그제는 조금 예상 밖의 하루가 되었다. 80도를 넘고 습기가 찬 열대성 공기 때문에 그랬는가? 여름 옷차림으로 땀까지 오랜만에 흐린 것,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을의 노래를 그리다가 무안을 당한 느낌이었다.  (묵주)기도도 모두 거르고, 특별한 일도 없었던 것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할 것은 다 했다. 성경통독, 아침식사, 점심 혼자 해 먹기, Deck floor 를 모두 고친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나 할까? 하지만 묵주기도를 전혀 못 했던 것이 나를 실망케 한다.

가끔 재는 혈압, 연숙은 의외로 너무나 높아서 실망, 나는 그런대로 큰 변화가 없었디. 과연 이런 혈압수치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모른다. 그것이 문제다. 그저 현재 살고 있는 방식대로 건강하게 살면 충분하지 않을까?

레지오 주회합, 다시 시작을 했고 계속하는 것은 가상하지만 솔직히 한심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실망시키는 단원들이 아직도 나를 쳐지게 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이것을 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이것을 놓칠 수는 없다. 인자하신 성모님의 얼굴을 의식하려고 발버둥을 치며 나는 살고 있으니까…

9월이 거의 다 지나간다. 8월 초부터 블로그에서 도망 갔던 것만 기억이 나서 2개월 째라는 것은 확실히 기억을 한다. 2개월은 나에게 어떤 시절이었는가? 정말 입안의 느낌의 변화가 제일 기억에 남을 것이고, 내 몸의 건강과 목숨의 가벼움을 가까이 느끼면 살았던 것,  조금씩 기억을 남기자.  현재 가회동 모습의 놀라움도 남기고…

아쉬움은 많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이렇게 ‘문명의 이기, 카톡’으로 레지오 단원들이 모인다는 사실,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 나부터 시작해서 모두들 나와 비슷한 신선한 만족과 행복감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니까.  Key West, Florida 로 놀러 간 카타리나 자매, 그곳에서 주회합에 참여 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주위의 ‘시끄러움’은 성가시긴 했지만 다른 각도로 보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주회합이 아닌가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 기온, 이것을 보니까 지난 며칠보다 무려 20도가 떨어졌다. 또 하루아침에 긴 팔, 긴 바지가 필요한 것이다. 귀찮지만 싫지는 않다. 지난 며칠 ‘열대성 하늘’이 싸늘한 가을비의 하늘로 바뀐 것을 내가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는가?

 

아~ 흑백의 아름다움이여~~

건주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나의 모습이 있는 조금은 희미한 흑백사전. 그것은 건주 wife, 황인희씨가 서독으로 취업 차 출국하던 김포공항의 사진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또렷했으나 나는 그 정확한 시기를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확실히 1972년이란 것, 옷차림으로 이름 여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건주가 제대한 것이 1972년 봄이었다고 해서 알게 된 것. 거기에는 신언경씨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사진, 나의 촌스러운 모습… 재미 있기도 하고, 가슴이 찌릿하기도 하고… 1972년 경이면 나는 ‘할 것이 없어서’ 유학시험을 보답시고 학원에도 다니던 시절이 아닌가. 1971년부터 출국하기까지 나는 이렇다 할 사진도 일기도 없기에 나에게는 거의 신비로운 미지의 세월이다. 이제는 아마도 그런 시기로 남아있게 될 승산이 크기에 이 사진은 더욱 의미를 주게 된다.

함께 온 사진은 건주가 입대하기 전에 백양로에서 찍은 사진인 모양이다. 이 사진의 사연을 나는 전혀 모르지만 1969년 3월이라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사연이 있다 나도 그 시절에 그곳에 있었지 않은가? 나의 연세대 시절 추억의 절정을 만들어가던 해, 바로 그 시절이었구나… 3학년 거의 기타에 심취되었던 것, 4학년 거의 등산에 빠졌던 것… 그것에 대한 대가는 그 이후부터 일생을 걸쳐서 치러야 했지 않았던가?

건주의 연세대 1969년 백양로의 추억이여..

 

하루 종일 음산하고 써늘하고 어둑거리는 날이었다. 오전의 레지오 주회합을 끝낸 것의 여파를 타고, 오랜만에 불고기(갈비)로 배를 채운 후 아득하고 포근한 늦은 낮잠을 연숙과 둘이서 잔 것은 너무도 꿀맛이었다. 불면증의 불안을 떨치듯 깊은 잠을 자는 듯한 소리에 나도 꿈을 꾸듯 말듯한 한 시간여를 즐겼다.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넉넉히 남아있을까… 감사합니다, 성모님이시여…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는 video가 일본 TV 드라마, ‘내가 걷는 길’이었다. 왜 그것을 보게 되었는지 우연 중 우연이지만, 기분은 다시 상쾌하고 깨끗하고 추억적이다. 이런 일본 것을 보았던 시절 10년도 훨씬 전인데, 이것도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 한 것이 조금은 슬프다. 한때 나를 그렇게 도피처와 위안처를 마련해 주었던 주옥 같은 ‘일본애’들 것, 역사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 당시 나의 피난처 역할을 멋지게 해 주었다.

 

9월의 마지막 날이 결국은 나에게 떨어졌다. 9월도 다 가고… 내일은 10월의 멋진 날들이 시작될 것인가? 아~ 나는 왜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민감한 것일까? 내일이 고국의 추석이라고 한다. 이날을 체감으로 잊고 산 지가 거의 60년에 가까워옴은 나를 조금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가 알고 지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하지만 느낌은 거의 잊었다고나 할까. 예외는 가회동 198번지 골목을 다시 보며 99% 그날의 느낌은 되살아 나온다. 얼마나 기적적인 추억의 힘인가? 감사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Nine Eleven 19주년 하루 전, 날씨는 그야말로 습기가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진, 따사하고 건조한 가을의 모습이었다. 지나간 몇 달은 99% 물기로 가득 찬 그런 불편한 시간들이었는데… 갑자기 잊고 살았던 이런 은혜로운 공기의 느낌에 다시 한번 자연의 은사, 그런 것을 느끼고 감사하기도 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속으로 이틀째 가을아침 같은 날씨가 계속되는가? 진정 가을은 올 것이지만 거의 잊고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건조한’ 대기권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흐르는 그런 여름, 올해 여름은 사실 다른 종류로 나를 괴롭힌 셈이다.

 

계속 필사를 하며 읽는 소책자, ‘연옥실화 煉獄實話’, 비록 어체가 고어 古語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지만 내용자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연옥의 존재 여부는 물론이고 연옥영혼에 대한 것이다. 실체, 실재, 실제로 나에게 다가오는데, 어떤 것은 ‘정말 이것이?’ 라고 반문을 계속하게 되지만 솔직히 이제는 큰 장애 없이 믿으며 따르고 싶다. 연도의 의미도 더욱 확실해지며, 우리 조상, 부모님을 위시한 가까운 영혼들이 더욱 가깝게 피부로 느껴진다.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도와주고 싶고, 또한 그들의 도움을 받고 싶다.

그 동안 거의 잊고 살았던 Teilhard Chardin의 이름을 우연히 다시 찾고, 지나간 몇 년간 심취했던 ‘희망의 영성적 논리’를 다시 더듬는다. 나를 기쁘게 하고, 살 맛나게 하는 미래적인 과학적 영성가, 떼이야르 샤르댕… 다시 한번 그분의 발자취와 철학에 심취해보면 어떨까…

오늘은 전 보다 갑자기 머리끝이 아찔해지는 blackout증상이 조금은 덜한가? 보통 정오가 넘기도 전에 이미 증상은 느꼈지만 전보다 덜한 느낌이 자꾸 든다. 벌써 deck repair를 시작했고 진행 중인데도 어제보다는 덜 피로한 듯하기도 하고… 어찌 된 일인가? 혈압약을 한 알로 줄여 먹기 시작했던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을 보면 몸이 적응되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모른다. 모른다…

 

Rotten beam,, 완전히 떼어내고…

New 2 x 8 beam, sistering 되어서…

앞으로 10년은 걱정 없게…

 

얼마나 오래 잤던가? 오랜만에 깊은 늦은 낮잠을 잔 것.. 분명히 덜 느끼는 그 기분 나쁜 증세의 도움이었을 것이다. 조금 안심을 했는가? 사실 지난 며칠 나의 mortality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일단 안심을 해도 되겠는가? 오늘 갑자기 deck repair하는 것이 손에 잡혀서 일사처리로 일단은 끝을 냈다.  원래 계획에 없었던 idea, 든든하고 안전한 post를 더한 것이 아주 기분이 좋다. 웬만한 load stress도 이제는 걱정이 없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DPS (영화 Dead Poet Society] moment, 보는 시간과 위치가 평소의 것과 바뀌었을 때 느끼는 신기함, 신선함, 심지어 신비함..  오늘 아침은 시간이 바뀌었을 때의 case가 되었다. 난데 없이 7시에 일어난 연숙, 곧바로 산책을 하지고… 나는 다른 때보다 늦게 일어난 셈이어서 나의 아침 routine의 body clock에 혼란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가로등이 꺼지지 않고, 햇빛이 구름에 가려있던 모습은 나에게 너무나 영적인 신비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런 순간들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도 좋을 듯하다.  곧바로 연숙은 Sam’s Club으로 shopping을 간 극성을 보여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신비스럽고 아련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으니…

가로등이 아직도 안 꺼진 산책길의 느낌은…

 

Harbor Freight,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다. Japanese style hand saw 하나를 order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물건 한가지가 두 개나 온 것이다. 분명히 이들이 잘못한 것은 알겠는데,  가만히 있자니 조금 마음이 걸린다. 길에서 돈을 주웠을 때의 심정이라고 할까… 도로 보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쳐서는 결국 포기를 한다. 그것은 너무나 귀찮은 일이 아닌가? 아예 이것을 남에게 거저 주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줄까… 생각나는 것은 두 사위 Richard 아니면 Luke 밖에 없는데…

 

오늘도 조심스럽게 혈압약 부작용을 지켜보았는데 결국 잠깐 스쳐 지나간 듯하다. 그 여파로 deck의 일을 계속하려 했지만 엄청 자란 앞쪽의 잔디가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전번에 order했던 edge trimmer string pack을 처음 test하는 기회도 되고 구름이 낀 날씨의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정신 없이 ‘모조리’ 청소를 한 셈인데… 조금 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땀이 폭포처럼 등에서 흘러내린 것도 그렇고, 너무 피곤한 듯 느껴져서 쓰러져 Izzie (cat)를 옆에서 쓰다듬으며 골아 떨어졌다. 지난 며칠 연속으로 이런 깊은 낮잠은 느낌이 좋은 것이다. 나의 몸이 지난 몇 개월을 거치며 조금씩 밝은 곳으로 나오는가… 제발, 더 이상 건강문제로 고민하고 싶지 않은데… 내일은 또다시 기분이 안 좋은 ‘심장’쪽 test를 하러 가게 되었으니…

 

요사이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어느 지인 형제의 딸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 남편에게 drug 문제가 있었다고…  2년 전 결혼식 때에 느낀  ‘사치스런  show’ 같았다는 것, 그 느낌은 그 이후에도 떨쳐버릴 수가 없던 사실이다.  또 다른 어떤 지인의 딸의 이혼과 더불어 어째 이렇게 ‘혼인성사’가 힘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며,  우리 애들을 생각한다. 그렇게 부럽게 보이던 이들 지인 모범 가정들이 알고 보면 우리 딸들에게 느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감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고 심지어는 우리가 더 성숙된 느낌을 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은 더 충격적이다. 남편이 drug 문제가 있었던 것 말고도  신부는 친구의 남편과 일찌감치 바람을 피우다가 발각이 되었다는 정말 삼류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이것은 너무나 믿을 수 없는 사실이어서 웃음도 안 날 지경이다. 완전한 재연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과 우리 딸들에게 조금은 더 감사를 하게 되는 씁쓸함과 안도감이 뒤범벅이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그 동안 우리가 느꼈던 은근한  ‘부러움’ 같은 것,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좌절감이 남게 되었다.

이런 shocker로 인해서 우리 두 딸들에게 대한 생각이 조금은 바뀐다. 그래, 잘 자라 주었고 잘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조금은… 비록 우리의 기대를 따르지는 못했어도, 이제는 그렇게 상관을 할 수 가 없구나… 특히 이런 놀라운 소식들을 감안한다면…

Come September! Rain shower… 올해는 단비가 참 많이도 내렸다…

 

3년 전 2017년 8월 29일에 일어났던 ‘레지오 미친년 사건’ 기념일이 또 지나갔다. 그 충격적인 사건이 이제는 정말이지 태고 太古의 느낌이 드는 이유는, 분명히 현재의 상황 Pandemic 까지 곁들인 탓일 것이다. 어쩌면 나의 경험적 세상이 이렇게나 바뀌었을까? 올해와 내년까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메가톤 급 경험의 놀라움: dentistry,  annual physical checkup 등은 아직도 진행형이고 내년에는 우리를 조금은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희망적인 것이 기다리고 있지만 더 이상 우울한 경험이 없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카톡 레지오 주회합’을 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래도 이것은 조금 자랑스러운 것이다. 이 정도라도 실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성모님께 조금은 덜 부끄럽다. 하지만 역시 진정한 레지오 다운 활동이 없는 것, 아직도 계속이 되고 있으니…

 

9월 1일, 연숙이 생일, 요란하게 아침에 걷자고 하더니 역시 불면증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생일을 맞아 그래도 큰 딸이 남편(아직도 생소한 표현)과 같이, Ozzie를 데리고 와서 점심을 만들어 주었다. 날이 가면 갈 수록 두 딸들이 자랑스러워진다. 어찌 자랑스럽지 않다고 할 수 있으랴? 이렇게 딸들이 엄마 생각을 하는 것, 당연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고마운 것이다. 사위 Richard와 얘기하는 것, 화제를 탐색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공통화제를 찾게 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사위’들을 대하는 것, 어색하기만 할 듯하다. 별 수가 없다. 그저 식구로 대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 그것 뿐이다.

 

우리의 Primary doctors, 순병원의 젊은 여의사, 알고 보니 직함이 MD가 아니고 NP였다.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지냈지만 그 동안 의료계의 직함이 참 많이 늘어난 듯하다. 의사의 숫자가 모자라서 그런가…  한마디로 MD 와 RN의 가운데 위치한 의료인이다. 웬만한 primary care는 이들이 거의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약 처방부터 간단한 진료, 건강 check는 다 할 수 있다고…. 현재 나의 심장진단을 이 여자 ‘간호사/의사’가 했기에 더욱 관심을 갖는다. 혹시 경험부족이나 훈련부족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이지만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지나간 몇 개월 동안 잊고 사는 것, 오랜 세월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조용히 사라진 것. 사과의 맛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 치통으로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없었던 것, 그래서 ‘치과의 부담’이 일단은 물러갔다는 사실을 자축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매일 새로운 입안의 경험들에 민감한 것도 ‘다 괜찮아지리라..’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요새 또다시 ‘어지러움’을 체험한다. 11시 이후가 되면 찾아오는 것, 어지럽다기 보다는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이것은 거의 분명히 현재 먹고 있는 혈압약의 부작용일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것 처음 경험하는 것이고 timing이 맞기 때문이다. 혈압을 재면 역시 110이하의 숫자가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까… 지켜보는 수 밖에…

 

요사이 ‘영적 독서’에 문제가 생겼나? 그 놈의 ‘바오로딸 출판사’ 탓인가? 이제는 다시 시동을 걸어야 할 때다. 나의 눈앞에 제일 가까이 나타난 것이  아것이다. 2016년에 나에게 들어온 4권의 책: Spitzer’s Quartet!

당시에 난독 random reading 으로 읽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고, 언젠가는 꼭 ‘정독’을 하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이 책들은 겉 표지만 옆에서 보아도 나에게 희망을 줄 정도로 나는 보물로 여긴다.

이번, 아니 오늘부터 새로 시작을 해 보자.

  1. Volume 1: FINDING TRUE HAPPINESS
  2. Volume 2: THE SOUL’S UPWARD YEARNING
  3. Volume 3: GOD SO LOVED THE WORLD
  4. Volume 4: THE LIGHT SHINES ON IN THE DARKNESS

자! 제1권, FINDING TRUE HAPPINESS, 로 시작을 해 보자!

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도와 주소서, 꼭 이번에 이것을 모두 정독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늦게 늦은 오후에 ‘일지’를 시작한다. 당연하다. 아침 7시 45분 경에 집을 떠나야 해서 별로 아침에 시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7시 전에 일어나도 성경통독을 마치면 시간이 빠듯하다.

2 주째 실로 ‘진짜 主日’같은 일요일을 맞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진짜’ 성당에 가서 ‘진짜’ 영성체를 했고 ‘진짜’ 친교를 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느낌이 아주 좋았다. 확실히 주위 교우들이 진지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앉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예전에 비해서 훨씬 미사에 집중하기가 쉬운 것이다. 코로나의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시몬 형제와 또 ‘하얀풍차 [White Windmill Bakery] 클럽’이 되어서 아침 snack과 의외로 향기로운 coffee, 그리고 환담을 즐겼다. 신앙심이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는 ‘형제님’, 예외에 속하는 부류라서 나는 아직도 놀란다. 쉽게 말해서 내가 배울 것이 많다는 것. 하지만 나와는 신앙을 접근하는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기도를 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type인 것이고, 나는 주로 학문적인 생각을 하는 편… 하지만 분명히 공통점이 있을 듯하다. 이렇게 해서 일요일, 주일이 오랜만에 평화로운 날이 되었다.

 

결국은 ‘혈압scare의 압력’에 굴복했다. 혈압의 수치가 중요해진 것을 실감했기에 오늘 부리나케 ‘최신형’ Omron BP monitor를 $48에 Amazon에 order하였다. 분명히 현재 쓰는 것보다 정확할 것이고 게다가 최신형  connectivity를 추가 (Bluetooth, Phone App) , trend와 data storage  등등은 쓰기에 더 편리할 듯하다.

Deck painting job을 준비하며 scraping에 진이 빠지고 있는 판에 이번에는 structural beam이 rotten된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안전상의 문제라서 $$이 들어도 ‘사서’ 고쳐야 할 듯하다. 2x8x8’가 있으면 해결될 텐데… 이것을 살 때 ‘호시탐탐’ siding board를 열 개 정도 살까… 급한 것을 때우면 어떨까… 하지만 이것을 사는 것, 나는 오랜 세월 망설이고 있는데 과연 나는 그 정도로 바보인가?

 

backbreaking job, stripping old paint

rotten deck frame beam

 

아~ 거의 잊고 있었다. 내일은 ‘심장전문의’에게 가야 한다. 이것은 조금 무서운 느낌이 든다. 고혈압인 것을 모르고 꽤 오래 살았다고 하는 순병원 의사들, 아마도 만약을 위해서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믿지만 그래도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나의 심장에 문제가 있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오랜 세월 심장은 건강했다고 굳게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오진을 하거나 각종 test를 시키는 일이 있을까 그것도 두렵다. 하지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저 맡기자, 맡기자, 맡기자… 모든 것을…

 

Man’s Best Friend, 인간과 같이 집에서 살게 된 개, 과연 그들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몸 가까이 우리들의 집안에서 같이 살며 그들을 보면서 어떨 때는 사람들보다 더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어떤 사람들보다 감정이 더 잘 통한다. 개들도 갖가지겠지만 이제 그들은 정말 인간의 진정한 친구가 된 듯하다. 지난 며칠 간 [큰 딸] 새로니의 9살짜리 개, Ozzie가 며칠 우리 집에 묵고 갔다. 이제는 우리를 자기 주인처럼 느끼고 우리 집도 자기 집처럼 여기는지 너무나 편한 며칠을 보냈다.  동네 걷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고, 공을 던지면 날뛰듯이 쫓아가서 집어 물고 온다. 낮잠을 자려고 침대에 어설프게 누우면 꼭 옆에 와서 누워서 나의 모습을 느끼기도 한다.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우리의 개 Tobey를 대신해서 그 텅 빈 자리를 메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개의 수명이 예전처럼 길게 느껴지지 않기에 정을 주면 줄 수록 슬퍼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또 이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 더 오래 살지는 100%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그 ‘언젠가는’ 이란 것, 생각보다 긴 세월이 아님을 더욱 더 실감을 하며 산다. 주인인 새로니도 이런 이별의 슬픔을 염두에 두며 살고 있는 듯하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진다…

평화방송 매일미사 직전까지의 아침 routine이 끝났고… 미사를 기다린다. 오늘도 Ozzie의 신나는 모습을 즐기며 천천히 연숙과 걸었다. YMCA 문제와 곁들여 아마도 이제부터는 걷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하겠다는 의견,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지만…  사람들을 보며 건강을 돌보는 것이 YMCA의 장점인데 요새 같은 세상에선 아주 힘든 case가 되었다. Monthly payment도 이제는 조금 아깝고… 나는 어쩔 것인가? 집에서 weight exercise가 아주 힘이 드는 것 경험을 통해서 알지만 이제는 사실 나이와 나의 현재의 상태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요새는 혈압을 재는 것이 조금은 덜 두렵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하다. 190 어쩌구 하며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을 자꾸 상기하는 때문인가? 요새는 140이나 130이란 숫자가 많이 보이고 80이나 85란 다른 숫자도 보인다. 확실히 내려간 듯한데 이것과 혈압약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너무 믿는 것, 위험하다… 나는 훈련 받은 전문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그들의 판단을 거의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CLEAR, CLEAN, ORGANIZE UP! (2020 TOP PROJECT)

Dream Project!

꿈을 꾸고 싶다. 우리의 삶을 조금씩 정리하는 의미로 가지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 결과로 청소하기가 훨씬 쉽게 되면 운동 삼아 정기적으로 깨끗하게 주위를 만드는 것… 꿈일까, 아니면 실현 가능한 것일까?

 

영성체, 성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잔뜩 긴장하며 찾아간 우리의 영적인 고향, 아틀란타 순교자 천주교회 주일 아침 8시30분 ‘진짜 onsite’ 미사,  Pandemic 이후 5개월이 넘는 긴 세월의 가뭄을 깨고 ‘진짜 영성체’를 하였다. ‘신영성체’가 아닌 ‘영성체’였다. 손에 성체를 받아 나의 입으로… 이런 것에 무덤덤한 나도 별 수가 없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감사합니다, 성모님의 손길!

모든 분위기가 좋았다. 당장 생각에 이 정도면 매주 이 시간에 미사참례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성급한 결정까지 내린다. 물론 연숙도 대 찬성이고… 또한 8시 반에 온다는 조시몬 형제까지 곁들여서 일요일 오전을 만족스럽게 마치고 집에 들어왔다.

몇 명의 아는 얼굴들을 보고 감개가 무량하기도 했다. 역시 그 동안 알건 모르건 간에 정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 나온다고 하던 헬레나 자매가 늦잠을 자서 못 나왔다고… 이것으로 나는 이 가정에 평화가 조금씩 깃들인다는 성급한 진단까지 했다. 얼마나 은혜로운 일인가?

온 김에 내쳐서 ‘운동, 운동, 운동’을 결심하는 연숙과 동네를 걸었다. 걷는 길에 B 선생 댁에 잠깐 들려 과일 box를 드리고 왔다. 며칠 전에 수박을 주시고 간 일,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 가정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희망은 아직도 줄지 않고 있다.

 

오늘은 정말 정말 오랜만(한 달?)에 조금 들뜨며 평온한 마음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제일 큰 이유는 나의 눈 앞의 광경들이 다른 세계로 나를 이끌어서 그랬던 것… Pandemic 전 일상적인 외출 후에 귀가하던 때의 느낌이었을까?

 

대한민국의 평화방송 online 매일미사에 낯익은 단어가 보인다. ‘가회동’이란 단어다. 이날 평일미사를 가회동 성당에서 하는 것이다. 물론 놀랍고 반갑고 흥분이 안 될 수가 없다. 이 성당의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거의 즉각적으로 추억의 물결이 밀려온다.  어린 시절의 가회동 성당의 입구에서 본 ‘서양인 성인상’들의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도망쳤던 꿈도 있었던, 어린 시절의 고전적인 가회동 성당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값비싼 느낌’이 요란한 조화를 자랑하는 건물이 보인다. 그야말로 추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왼쪽의 한옥은 무엇이고 오른 쪽의 갤러리, 화랑 같은 구조는 무엇인가? 내가 가서 직접 보기 전에 이런 원색적인 평가를 하는 것, 물론 의미가 없다. 그저, 그저 나는 1950년대의 베이지색 고딕성당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을 청소하러 work desk를 의식적으로 피하며 몸을 움직이는 일을 이곳 저곳에서 찾는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머리 속에 한가지가 머물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고 싶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골머리를 썩히지 말자. 덕분에 Birdie nest 9개가 완성되어서 기둥 위 하늘로 높여지고 이제는 오래 전 우리 집을 떠난 Eastern Bluebird의 파아란 생명의 모습을 기다려 본다.

 

Eastern Bluebird Apartment

Under construction

 

오래 전에 카펫을 제거한 후 노출된 흉한 모습의 중앙계단 main stairway를 결국 현재 편리하게 계속 쓰고 있는 whiskey barrel 이라는 재미있는 색깔로 (이미 porch 와 birdie nest에서도 썼던)  paint하기로 했다. Stain을 하려고 생각도 했지만 너무나 일이 많고 비용도 그렇기에 오래 전에 준범이 엄마가 권한대로 ‘paint하면 되요’라는 말에 힘을 입어 페인트 칠을 하기로 했다. 하기 전에 squeaky nail 문제를 screw로 단단히 고정을 시켰더니 훨씬 나아졌다. 자…이제는.. 페인트를 칠하자… 부디 의외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렇게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cable/wire 잡동사니들…  결국 오늘 wire/cable rack을 설치, 나의 참을성을 시험하던 그 수많은 비비 꼬인 wire/cable 들을 걸어 놓았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무언가 되는가 봅니다.

 

조시몬 형제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갑자기 레지오 협조단원 권면 생각이 들어서 거의 ‘장난 삼아’ 제안을 했더니 의외로 수락을 하니… 참, 세상이 이렇게 멋진 사람도 있구나 하는 감탄사가 나온다. 레지오 (봉사) 권면 얘기만 나오면 두드러기가 돋는 사람들이 거의 태반인데… 참, 예전에 나도 그랬지만…  이곳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이 형제님,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연락이 끊어지지 않게 되는 것도 매력적인 idea가 아닌가? 이 신심 좋고 성실한 형제가 레지오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것,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성모님, 고맙습니다!

나의 가슴속 깊은 곳의 평화의 샘에 혼란이 올 때, 머리를 식히거나 다른 쪽으로 생각을 바꾸려고 할 때, 역쉬~~~ ‘classic’ TV drama 를 보는 것은 아주 효과적임을 경험한다. 3년 전 ‘레지오 미친년’ 사건 때, 일본드라마 ‘하늘을 나르는 타이어’가 나를 살려주었다. 현재 나는 계속 이 평화교란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때에 나는 ‘하나무라 다이스케 花村 大介’ 라는 변호사 TV 드라마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우선 가볍고, 유머러스하고, 끝 맛이 아주 희망적이다. 그래 이런 것도 삶의 지혜가 아닐까?

 

지나간 여름 이즈음 때가 왜 그렇게 자꾸 그리워지는 것일까? 그 당시도 사실 걱정과 분노가 없었을 리가 만무한데… 참 세월은 묘하다. 지나가면 다 아름답게 보이니까… 임기를 모두 마치고 귀국하신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이 그래서 더욱 눈물겹도록 그리워지나 보다. 요사이 읽고 있는 구약의 예언서들이 나를 더욱 움츠리게 만드나… 어쩌면 그렇게 비극중의 비극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일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는 그런 것인가? 왜 사람들은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살아야 되는 것인가? 말을 들으면 되지 않나?

 

 

연숙의 혈압을 그렇게 ‘비웃던’ 내가 정통으로 한방을 맞았다. 내가 고혈압이라고? 말도 안 된다. 말도… 하지만 ‘과학적인 느낌’은 그것이 아닌 모양이니 문제다. 왜 이렇게 혈압이 올랐을까?  Dr. 안젤라,  귀여운 젊은 여의사[MD가 아니고 사실은 NP] 말이, 이런 상태가 꽤 시간이 끌었던 것 같다고.. 심리적인 것이 아니면 심장내과를 찾으라고 하니, 당황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 전혀 증상이 느껴지지 않으니 문제인가? 이것이 더 무섭다고 하는데… 좌우지간 일주일 약을 먹어보며 지켜보기로… 그때까지 차도가 없으면?

혹시 내가 염려했던 대로 2개월간의 치과의 도전이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것도 조금 챙피 해서 고백을 못했다. 그것이 원인이라면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  하여튼, 나도 나이의 도전을 하나 둘 씩 받기 시작한 모양… 치과부터 시작해서… 하지만,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는 건강하다!’ 라는 외침의 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혈압에 의한 나의 작은 shock mode는 시작단계이지만 어쩔 것인가? 이것도 최선의 방법을 동원해서 처리해야 하는데.. 어떻게 처리를 하나? 우선 매일 test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오늘 것은 170대 선에서 약을 먹은 전후가 거의 같았다. 앞으로 월요일까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조금 걱정은 되지만 이것도 역시 선배들이 많이 있으니까… 밝은 쪽을 생각하자. 그래 연숙이 말대로 나는 생각을 너무나 많이 하는 편이고 그것도 대부분 부정적인 쪽, 안 되는 쪽에 너무나 골몰하는 것, 나도 인정한다. 이번 기회에 이런 습관들도 고칠 수 있을까?

이것과 연관해서 식습관에 조금 변화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제일 걸리는 것, coffee 같은 것을 우선 줄이거나 멀리하기로 거의 결정을 했다. 대신 물을 많이 마시자. 그리고 양이 점점 늘어나는 우리의 식사량, 연숙의 말대로 줄이는 것도 좋을 듯 하고, 내가 좋아하는 알코올 류는 가끔 하는 정도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 이것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은 해 볼 것이다.

결국 나도 ‘노인성’ 고혈압인가? 갑자기 생의 마지막이 가까이 느껴지는 듯하다. 결국은 나도, 결국은 나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얼마나 나는 심각한 것인가? 연숙이 역시 수호천사처럼 나를 돌본다. 고마워…. 연숙의 생각에는 아마도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을 거라고… 물론 나는 인정 안 할 수 없다. 지독하게 지독하게 아프고, 고민하고, 슬프고 우울했었으니까. 그것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어찌할 것인가? 약을 먹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통설인 것이고 변수도 많을 것이다. 약을 먹으면 조절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관건은 나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내가 control할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는 제일 큰 과제요, 어려움이다. 근본적으로 근본적으로 나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어떻게 더?

머릿속이 아주 혼란한 새벽 잠을 잤는데, 아침에 성경통독을 하면서 조금 안정이 되었다. 레지오와 우리의 인연, 관계, 의미 등을 역사적으로 회고할 기회가 되었는데 과연 지금이 큰 변화가 온 그때인가 그것이 괴로웠다. 이 정도면 과분하게 은총을 많이 받았다고 자부하는데, 그것 말고는 무엇이 있을까? 온통 받은 것 투성이인데, 이대로 그대로 영원히 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용서 못할 두 인간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고, 의미가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도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우리도 살아야 하니까.. 우리에게도 평화가 있어야 하니까..  레지오에게 받은 것 정말 많고, 그 만큼 우리도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으니까 후회를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끝을 내는 것, 올바른 판단일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우리의 그리스도 신비체인 성당공동체에서의 모습이다. 신앙적인 뿌리가 약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레지오와 못지 않게 우리를 이끌어 줄 ‘더 나은’ 신심활동거리가 그렇게도 없는 것일까? 우리가 너무 레지오 속에서 근시안이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정치적인 마찰이 가장 적은 곳, 그런 곳을 찾으면 어떨까?

우선 요새의 사태로 레지오가 모이는 기회가 적으니까, 연말까지 큰 결정을 하는 것도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오늘 아침 성경통독을 하면서 나의 머리를 일깨웠다. 그렇다. 우선 시간을 벌어보자. 연말 즈음 꾸리아 단장 선거까지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성모님이시여,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드디어 결정의 시간이 왔다. 꾸리아 부단장 선거에 ‘그 인간’이 들어올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우리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니, 우리가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전부터 그 인간의 얼굴을 다시 꾸리아 간부자리에 앉게 되는 사태가 오면 그때가 레지오를 쉬거나 완전히 나올 때라고 …. 이것이 올바른 결정인지 모르겠으나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는 큰 후회가 없다. 우리의 자비의 모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이 제일 가슴이 아프다.

성모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신 듯하다. 오늘 연숙의 우려를 이기고 R 자매가 안정적으로 간단하게 ‘인간’ W 를 뿌리치고 당당히 부단장에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거취는 조금 여유를 두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연숙에게는 너무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비록 지독히 더운 하루였지만, R 자매의 결정적 승리로 우리는 오랜만에 가볍고 흥분되고 기쁜 마음으로 저녁기도까지 ‘반납’하고 이날을 축하하며 보냈다. 왜 이 정도로 우리는 기뻐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우리들에게 있어서 레지오의 위상, 실존적 의미, 가치가 그만큼 심오하게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자신도 놀랄 정도니까… 문제는 언제까지… 하는 것. 이것은 분명히 성모님 자신이 아실 것이고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이다. 그날까지 그날까지 뒤를 안 보기로 한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산뜻하고 건조한 느낌의 이른 아침, 전날의 그 끈적거림이 어쩌면 밤새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이것이 이런 한여름을 건너가게 하는 비밀인 듯하다.

어제는 정말 정말 오랜만에 묵주기도 20단을 달성하였다. 책상에서 하는 15단과 저녁 가족기도 5단! 이것이 오래 전에 우리가 하던 올바른 생활의 원동력 비결이었다. 그 동안 철저히 뒷전으로 밀려났던 이 ‘삶의 비결’이 레지오 주회합 재개 再開 의 도움으로  결국 우리 앞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는 이제는 가급적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으면….

 

가끔 주고받는 카톡, 특히 그 동안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과의 ‘문자 통화’, 요새는 정말 서서히 맥이 빠지는 듯한 것이다. 며칠 전 이 목사의 ‘짧고 퉁명스러운’ 한 마디의 회답은 실망적이었다. 그 양반의 성격과 됨됨이는 잘 알지만 어쩌면 그렇게 목사인 사람이 퉁명스럽고 차게 느껴질 때가 있는가?  그에 비하면 사귄 역사도 짧은 임형제의 문자는 참 정이 넘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비록 응답이 꽤 늦기는 하지만…

 

어제 porch floor painting의 여세를 몰아서 조금 더 tool shed를 정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미리 머리를 굴리고 계획을 세우는 것, 나에게는 별로 큰 효과가 없다. ‘무조건 손을 대는 것’ 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거의 3년이 지나가고 있는 desk 옆에 있는 main bookshelf, 아직도 정리는 고사하고 손을 댄 적도 없다. 이것이 정리가 되면 조금 기분도 달라질 것 같아서, 오늘 불현듯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과는 미지수지만…

 

오월 초부터 성경통독 일정표를 online 주보에서 clip & print 를 하던 것도 벌써 4 개월 째? 1월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읽는  아틀란타 순교자 본당의 ‘성경통독’, 이제는 습관적인 것이 되었다. 그래도 생애를 통해서 한번도 읽지 않았던 구약의 구석 구석 부분을 매일 읽는다는 것, 그렇게 싫지도 귀찮지도 않지만 즐겁지도 않다. 그저 덤덤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 그리고 올해 말이면 그래도 배당된 것을 읽었다는 것, 하지만 누가 아랴? 한 문장, 한 글자에 나의 지치고 굳어진 깊은 속에 그 무엇이 던져질지?

8월 1일, 이제부터는, 몇 개월째 주회합을 못하고 있었던 레지오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야겠다. 너무나 방심, 무심, 무관심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게을렀고 귀찮고 그런 것이 더 큰 이유였는지도… 다른 쁘레시디움 단원들은 형식적으로나마 계속 주회합을 한다고 어제 연숙이 꾸라아 단장과 전화 후에 알려주었다. 조금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왜 없었으랴? 어떻게 다시 주회합, 활동 등을 재개하는가 하는 것, 우리에게 알맞은 방법이 나오겠지.

 

지난 주말에 ‘선언’했던 우리의 ‘여름휴가’가 어제로 끝나고 오늘부터는 정규 스케줄을 따른다. 그것이라 봐야 평화방송 매일미사, 매일 저녁 가족기도, 동네산책, 그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대단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한결 하루가 쉬었으니까? 아니다, 그것이 아니고 ‘무슨 변화’를 느낀 것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만 추구하며 살 수는 없다.  할 것은, 중요한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해야 한다.

아침 일찍 땀나는 것을 각오하고 앞 뜰의 잔디를 깎았다. 날씨가 덥긴 해도 습기가 조금 가시고 바람이 산들거리고 있어서 일하는 것 자체는 즐거웠고 덜 피로하였다. 무섭게 정글처럼 자란 잡초들을 치우고 보니 집이 조금은 덜 피로해 보인다. 거의 끝 무렵에 결국 string trimmer의 rotor cover가 닳아 떨어졌다. 약간 panic을 했지만 (왜 나는 이렇게 이런 쪼잔한 것에 연연, 걱정을 하는가?) 곧바로 replacement part를 Amazon.com 에서 찾아서 order를 하려 한다.

 

송승환, 한진희, 정윤희, 또 두 명… 와~ 어떻게 이렇게 친숙하게 느껴지고 알고 있었던 2명의 talent의 이름을 잊었단 말인가? 알았다, 한 명! ‘이일웅’! 또 한 명은? ‘미스터 파지’라는 별명은 기억이 나는데…이들은 나의 기억 시대의 후반부 (이일웅+ 제외하고)의 유명인들이다. 나의 시대는 역시 1966년부터 1973년 까지니까… 그 이후는.. 또 기억이 났다! ‘이낙훈’! 이낙훈이다. 이 두 명은 물론 내 시대의 인물들이다. 송승환은 아역 때, 정윤희, 한진희는 기억의 후반의 유명인이다. 이들이 나오는 KBS 문학관 ‘어떤 여름방학’을 본다. 편하게… 편하게… 시원하게..

 

어제 새벽녘에 꾼 긴 꿈,  Ohio State U. 시절의 유근호 형도 보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았다. 그들은 누구들일까? 그곳은 어디였을까? 그 가까이 보았던 여자들을?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그저 ‘그립다’라는 생각만 나는 꿈을 꾼 것이다. 확실히 나는 꿈을 다시 꾸기, 즐기기 시작하고 있다. 좋은 것이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혹시 나를 살려준 성모님도 보게 될지 누가 알랴?

 

요새 하늘을 가득 채운 무서운 습기가 조금 가신 아침, 문제는 바람이 전혀 없다. 공기가 그야말로 ‘정체, 침체’된 것을 본다. 이래서 끈끈하고 습하구나.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이 들어간 Water tank를 흔들어 보니…와~ 드디어 확인한다. 무거운 것이다. 물이 꽤 많이 찬 모양… 그리고 아직 그렇게 많이 새고 있는 흔적이 없다. 이런 상태로 water recycling을 할 수도 있겠다. Pump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ain water와 a/c water를 재사용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현재의 water tank는 사실 조금씩 물이 새던 것이다. 그래서 replace를 한 것이고… 하지만 조금씩 새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어떻게 편하게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큰 $$ 쓰지 않고, 나의 시간 적당히 이용하고…

오늘은 아마도 올해 들어서 제일 불쾌지수 heat index가 높았던 날이 아닐까? 기온이 92도가 넘고 상당히 높은 습도는 아마도 100도의 ‘불쾌지수’, 아니 요새는 ‘체감온도’라고 하던가? 아~ 더워도 좋으니 ‘빠삭빠삭 마른’ 느낌을 그립다. 하지만 그쪽으로 너무 가게 되면 ‘땅이 갈라지는’ 모습도 싫다.

요새의 극단적인 습도가 완전히 자리를 잡았는가? 좀 적응은 되었다만, 그래도 나는 신기한 듯 느낀다. 아~ 이것이 그 옛날 고향에서 느끼던 장마성 날씨, 그리고 농가에서 마루에서 잘 때 느끼던 그런 풍경들 을 생각하니 그다지 나쁘지 않다. 특히 1966년 경 여름 인천 앞바다에 있는 영흥도에 피서 갔을 때의 추억도 삼삼하게 살아나오고… 그래 젊음은 그런가, 그 때는 정말 불편함을 몰랐으니까… 다 신났으니까…  아~ 왜 또 나는 이렇게 ‘날씨’에 연연하는 것일까? 아마도 요사이 내가 너무나 육신의 고통이 없는 평화를 즐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좋다, 좋아…

 

COVID-19의 봄 여름을 가며 동네는 유난히 조용한 모습이다

Pandemic 동안, 아예 집 앞에다 tomato를 심는 사람들도…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은 일찍 동네 산책을 하고  들어왔다. 물론 ‘아침잠’의 연숙이 도깨비처럼 일찍 일어난 덕분이다. 하지만 이 이른 아침 시간은 나에게는 정말 귀중한 시간이어서 그것을 못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반갑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David King의 7월 달 Georgia Bulletin column을 읽고 또 읽는다. 이 양반의 세상을 보는 눈이 흥미롭다. 현재의 pandemic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을 이번에는 두 프랑스 미술 거장, 고흐 Gogh와 고갱 Gauguin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필자는 영화, 문학 외에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역시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에 대한 것이다. 두 미술가의 경우는 ‘비극적’인 것으로 끝이 났지만 현재 필자는 그런 것들을 보며 ‘서로 사랑하는 자세’로 이 시국을 살아간다는 것… 하지만 반드시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빈센트 starry starry night, 를 배경으로 그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는데, 나에게 결여된 분야인 예술 그것도 미술 쪽에 조금이라고 가까이 하는 기회는 역시 COVID-19 의 ‘덕분’이 아닐까?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Don McLean

 

건주가 정교성 근황 사진을 보내 주었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아주 건장하게 서서 집에서 수확된 채소, 야채들 앞에서 폼을 재고 있는 사진, 그럼 그렇지 그 녀석이 어딜 가겠나? 어떻게 연락이 되었는지 사연을 알면 다시 카톡이 연결되어 사연을 더 들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습기가 돌아온 나날이 시작된다. 아침의 기온을 보면 알 수 있다. 70도 이상이면 습한 것이다. 따가운 햇볕대신 끈끈한 촉감과 계속되는 a/c 소음… 그것이 한 여름의 모습이다. 괜찮다… 이제는 몸이 잘 적응을 하였으니까…  한 여름의 즐거움, 아~ 이 빗소리.. 아무리 90도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머리 속에서 맴도는 평화의 천사가 있고 시원한 빗소리가 들리는 이런 순간 순간들이 나의 70대 인생을 이끌고 있다. 나의 인생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님을 알면 의외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맡기자, 맡기자 모든 것을 ‘절대’에게 맡기자.

After-Dentist-Visit Effect,  한 달 예정으로 매주 가는 치과, 그 이후 날라가는 새로운 느낌과 심지어 행복함을 맛 볼 수 있는 며칠이 또 계속된다. 이럴 때 밀린 일들을 해 치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데 나는 대신 1940s 시대의 Charlie Chan movie 나 보며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도대체 무엇부터 해 치워야 하는 것인가? 하도 할 것들이 많은 듯 우려 속에서 헤매는 느낌 뿐이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끝을 내고 다음 것으로 가면 되는데…

요사이 본당 성경통독, 구약성경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당황함을 조금 풀어줄 길이 기적처럼 나타났다. 요사이 읽고 있는 Bishop Robert Barron의 책,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 나의 궁금증들이 비교적 자세히 가려운 곳을 긁어준 셈이다. 어쩌면 timing이 이렇게도… 하기야, 이제는 이것도 우연만은 아닌 듯 싶다.

이래서, Barron’s ‘white’ book,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actually mostly by John Allen) 에 점점 빠져들어간다. 나의 독서 전통과 기호를 따라 결론 쪽으로부터 읽기 시작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나오고 있다. 8장부터 시작해서 7장이 오늘 끝났고, 오늘 6장을 시작한다. 8장, 7장을 읽으며 놀랍게도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나를 괴롭히던 질문들이 거의 자연히 풀려나가게 되었다. 이것은 거의 우연이지만 놀라움이다. 언제 어디선가 이렇게 해답이 나오니까 말이다.  오늘부터는 prayer & supernatural에 관한 것, Barron의 이 주제에 대한 논평, 의견은 이제까지 조금 짐작은 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배우게 되었다.

이 책에서 Bishop Barron의 Bible 론 을 읽으며 조금 구약에 대한 시각에 변화를 주는 듯 하다. 이 머리 좋은 ‘젊은’1 주교의 말은 내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드릴 수 있다. 거의 언제나, 언제나… 그래서 내가 영성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주교님과 항상 가까이 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Water tank rain barrel, a/c condensate water recovery 등등이 갑자기 나에게 활기를, 기분은 좋게 한다. 이것도 역시 electronics, microcontroller 가 관련이 되어 나의 발은 잡는다. 어젯밤 a/c에서 흘러나온 ‘공기 중의 물’이 무려 full bucket이 된 것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요새의 날씨가 기온보다는 습도가 유별나게 높은 것을 느꼈는데 이 사실을 완전히 실제로 나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어제 한 ‘바깥일’은 ‘공기중의 물’을 ‘다시 쓰는’  재활용, 그것이 목표였다. 전에 쓰다가 남겨둔 water heater tank에다가 a/c 의 condensate water를 저장하는 일이다.  Water pressure가 걱정이 되었지만 water tank 의 높이까지는 안전한 듯하였고, test를 해서 거의 확인을 하였다. 그 hose를 그대로 water tank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기다리면 되고, water hose를 꽂아서 꽃밭에다 주면… 와~~ 이것 멋진 것이다! 더 나은 idea는 그 옆의 rain gutter의 빗물까지 그곳으로… 저장, 근사한 idea가 아닌가?

 

레지오 월례통보가 왔는데 8월  9일 단장만 참석하는 월례회의를 하고 부단장 선출을 한다고… 와~ 이런 이야기 듣든 것 ‘몇 년’ 만인가? 부단장이라… 그 벌써 3년이 되었단 말인가? 현재로서는 머리가 안 돈다. 레지오 월례회의는 물론이고 주회합 조차… 그 정도로 머리 속에서 멀어졌단 말인가?

 

 

7월 6일에 세상을 떠난 이태리 Spaghetti Western music composer였던 Ennio Morricone 의 이름을 본 후 곧바로 추억이 나를 사로 잡았다. 1968년 가을, 겨울을 가며 담배연기 자욱한 해양다방에 앉아서 듣던 The Good , the Bad, and the Ugly의 주제곡… 그것도 ‘이선화’씨와 같이 들었던 멋진 추억으로 남았던 것…

 

 

 

  1. 사실은 60세가 넘은

 

지난 유월 초에 발행된 아틀란타 대교구의 격주간지 Georgia Bulletin 에서 나의 눈을 끌었던 기사,  정기 column이 하나 있었다. 제목이 조금 길었다. Absurdity and Hemingway’s ‘The Old Man and the Sea’. Absurdity 란 단어는 근래에 나의 눈길과 관심을 끄는 말 중에 하나이고, 그 다음은 물론 너무나 유명한 헤밍웨이의 1952년 단편소설에 관한 것이다.  왜 absurdity와 The Old Man and the Sea 가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일까…

이 기사를 쓴 저자 professor David King, Ph.D,  이 지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Kennesaw State University 대학의 English, Film Studies 의 교수인 동시에 같은 지역 Holy Spirit Church에서 가톨릭 교회 본당에서  예비신자 교리반을 책임 담당하는 [director of RCIA] 교우이기도 하다.  꽤 오랜 세월 동안 이 column을 읽어 왔는데, 대부분 그의 전공인 문학, 영화를 통한 [가톨릭]영성 추구가 주제여서 내가 즐겨 읽는 기사 중에 하나였다.

왜 absurdity란 말이 나왔는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요사이 코로나 사태와 인종분규, 역기능적인 정치판도 등에 의한, 한마디로 위아래가 완전히 뒤집힌 듯한, ‘말도 안 되는’ 세상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20세기 이후에 세상을 풍미했던 ‘세상은 부조리 투성이’란 한탄의 전형이라는 뜻. 그 유명한 20세기 초 Kafka의 소설,  ‘심판, the trial’ 의 absurdity는 사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근래에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내, 레지오 마리애 에서1 몇 번 겪고 나서 이것이 fiction의 영역만이 아님을 실감했다.

그런데 왜 ‘노인과 바다’ 소설이 함께 이곳에 언급된 것일까. 이 기사의 저자는 이 단편 소설에서 노인이 겪는 세상의 경험도 역시 absurd ‘말도 안 되는 이 세상’의 그것이 것이라는 뜻. 특히 무려 84일 동안이나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한 것, 구사일생으로 한 마리, 그것도 대어 marlin 를 낚았지만 결국은 돌아오는 도중에 상어에게 잃어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것, 하지만 이 노인은 끝에서 크게 실망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일말의 희망이라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희망은 반드시 있다라는 것이 바로 궁극적인 희망이다.

 

우리에게 이 노인이 겪은 84일은 어떤 것인가? 저자는 코로나 사태가 초래한 사회적 변화부터 시작해서 인종사태, 정치적 기능상실, 경제적 불안감.. 등등 절망적으로 열거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들과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도 예외가 아니다.  직업, 경제난에 대한 불안감, 정치에 대한 절망감,  이제는 무감각해진 엄청난 숫자의 코로나 희생자들의 비극 등, 이런 것들이 ‘부조리의 극치’임을 말하지만 나 개인적으로도 그런 것 이외에 다른 것들도 많이 있다.

나의 84일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은 118일이다. 지난 3월 17일부터 오늘까지가 118일인 것이다. 그 3개월 동안 우리는 성체성사를 한 번도 할 수가 없었다. ‘신영성체’라는 궁여지책 대안이 있었지만 그것이 신부님이 축성한 실제의 성체와 같을 수는 없다. 설상 가상 우리가 속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이 완전히 중단이 되었다. ‘기도와 봉사’의 둘 날개가 완전히 떨어진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 뿐인가.. 연령행사, 장례미사, 연도 등이 정지 되었다. 이 연령행사는 비록 고인과 가족들을 위한 것이지만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내가 더 은총을 받는다는 것이다. 가끔이나마 죽음의 이별을 통해서 다시 보는 삶의 의미, 세상의 교훈, 공부를 할 기회가 118일 동안이나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absurdity중의 absurdity가 아닐까?

우리가 몸 담고 있는 곳, 역시 정치적인 영역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완전히 불능상태에 빠진 정치체제에서, 오늘과 장래의 희망을 주어야 할 지도자가 자기 관심을 끄는데 온갖 관심을 두고 있고, 이런 인간을 관망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들이 주위에서 발견되는 놀라움 역시 absurdity중의 극치다.

그러면 과연 우리의, 아니 우리 후세들에게 어떤 희망은 있는가? 물론 희망이 없을 리가 없다. 그 ‘노인’에게도 꿈이 있었다. 문제는 언제 그 희망이 실현되는가 하는 것이다. 역시 해답은 ‘초월적’인 곳에 있다. 한 단계 위, 안 보이는 그곳을 향하여 보면 의외로 쉬운 문제가 아닐까?

 

 

  1. 무려 세 번을 겪었다.  그 모두가 세 명의 ‘문제 있는’ 여자들에 의한 것, 아직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The Persistence of Memory – Salvador Dali

 

오늘까지도, 며칠 전에 선종하신 윤 요안나 자매님의 성당 장례미사, 밤에 있는 장의사 연도,  참석할까 말까 하는 것,  계속 우리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교과서적, 안전한 쪽’으로  모두 불참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10년 차 레지오 단원으로써 계속 찜찜하고, 지난 간 세월들,  ‘코로나 前’ 세월이 그립기도 하다. 이런 연령행사 때, 우리는 ‘두 번 생각’을 안 하고 그들과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이고 생각하고 생각을 해야 하니까, 한마디로 ‘부조리 absurd 不條理적, 말도 안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

어제 도라빌 H-Mart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마리아 자매님, 한국인 집단, 공동체, 단체 등에도 서서히 감염자가 생기고 있다고 경고한다. 당분간은 성당 공적 미사에는 안 나가는 게 좋겠다는 강한 의견을 보이신다. 그래… 7월 말까지 미사참례의무가 없다고 하니까, 그것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이성적인 판단일 듯하다.  ‘싸가지 없는 젊은 애들이 겁 없이 마스크도 안 쓰고 설쳐대는’ 이때다. 너희들은 걸려도 무감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그대로 간다’.  마스크가 정치적 쟁점으로 둔갑한 이 ‘말도 안 되는, 빌어먹을’ 정치판도에서, 역시 우리들에게는 나이가 ‘웬수’인가… 나이가.. [너희들은 나이를 안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3월 24일부터 거의 3개월 반 동안 우리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례해 오고 있는  대한민국 CPBC 평화방송의 매일미사, 현재까지도 없으면 난감할 정도로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우리들의 본당 주일미사가 온라인으로 재개 된 후부터는 평일미사만 평화방송에 의지하고 있다. 이 매일미사에 참례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는:  참으로 다양한 신부님들의  언행, 특히’말투’가 있다.  장소가 바뀌고 신부님이 바뀌는 것,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이제는 익숙해 졌지만,  문제는 ‘일상적인 말투’를 벗어난 그런 것들이 분심을 일으키는 그것에 있다. 어떤 때는 정말 괴롭기도 하다. 우리 둘이 똑같이 느끼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나치게 민감한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요새는 과연 오늘은 어떤 ‘이상한 말투’의  신부님을 보게 되는 것인지 은근히 걱정까지 될 정도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면 우리가 그 동안 겪어온 ‘이상하지 않는 말투’의 신부님 복은 과분하게 받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어제 치과 방문에서는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궁금했지만, 치아가 없어도 우려한 만큼  ‘치명적’인 것이 아님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먹을 때 조금 불편한 것과 많은 사람들 대하는 것, 그것 뿐이다. 대신 음식준비의 연숙이 좀 더 신경은 쓰겠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조금 서로 느긋하게 relax를 하며 토니 씨와 신변, 배경, 주위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다행히 Ohio State [University] connection 이 그 중에 하나였고,  뜻밖으로 ‘경복고 景福高 connection’으로 그들의 동창회 임 형의 이름까지 나왔다.  하여튼 앞으로 2~3주 더 가면 모든 dental work 일 이 끝나겠지… 이렇게 일주일 일주일의 여름을 징검다리 건너듯 넘어간다.

 

오늘은 오랜만에 한 시간 이상 마늘을 까주며 연숙을 도왔다.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에 신경을 써주는 연숙을 보면 흡사 엄마나 누나의 느낌이 든다. 그런 때가 참 많았다. 나를 거의 동생 돌보듯, 아들 보살피듯.. 참 재미있다. 그런 것을 나는 많은 경우에 무시하거나 귀찮아 할 때가 있었다. 오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대로 나를 도와주며 인정해주는 여성이 나에게 가장 가까이서 살고 있다는 사실, 왜 나는 그렇게 잊고 사는 것일까? 미안해… 미안해…  앞으로도 역시 또 귀찮아 하고 무시할 때가 있겠지만 정말 결사적으로 노력을 하게… 정말…

 

7월 들어서 첫 주일, 연중 제14주간 온라인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주일미사 봉헌을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 보다 더 많은 교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예고된 대로 한달 반 동안 계실 임시로 오신 신부님이 소개되었다.  예수회 신부 서품이 된지 2년 밖에 안 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를 듯한’ 그런 장래를 위한 목자.  

앞으로 2달 반 공석일 주임신부님의 ‘철학’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오늘의 강론에서도 조금씩 드러난다. ‘신학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영성’에 더 치중하는 것을 본다. 특히 개개인 적인 소명, 식별, 파견의식, 행복 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임기 중에 가급적 많은 교우들이 ‘신앙의 기쁨’을 느끼게 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나는 비록 신학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 믿는다.

 

 

오늘 신부님 강론, ‘파견 론’에 대한 것인데 의외로 나도 느낀 바가 하나 있었다. 그것이 오늘의 큰 수확이다. 나의 ‘칼국수’는 무엇이었던가?  기어코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그것 (일명, 칼국수)’에 대한 집착,  그것을 버려야 행복하다고… 나의 칼국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젊음,  아련하고 행복했던 지나간 세월,  바꿀 수 없는 지나간 과오,  그런 신기루를  내가 붙잡고 있었다는 깨달음, 그것을 나는 이제 놓아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 신 구역장 소개가 있었는데,  우리가 전에 있었던 구역에서는 ‘별로 호감이 안 가는’ 사람이 소개되어서 기분이 엇갈리고 착잡하였다. 나쁜 기억들에 파묻혀서 나는 아직도 지난 날의 정리를 깨끗이 못하고 있지만, 이제 즐겁지 않은 과거는 흘려 보내야 할 듯하다.

미사 중에 신부님으로부터 뜻밖의 발표가 있었다. 진희네 부부의 이름이 나오고, 아프리카 수녀님 후원 장학금으로 거금  $10,000 이상이 진희네로부터 봉헌이 되었다고…  그렇다. 돈이 많은 것이 문제가 아기고 , 쓸 줄 모르는 것이 문제다. 돈을 현명하게 쓰는 것, 돈의 노예가 아니고 돈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우리는 어떤가?  돈도 없지만 현명하게 쓰고는 있는가? 그들이 부럽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면서 갑자기 병으로 입원했던 윤 요안나 레지오 간부 (부단장) 자매님이 있었다. 하필이면 지금 같은 사태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지 안타까웠고, 그 동안도 계속 기도 요청이 있어왔다. 그러던 것이 그제 갑자기 선종기도 요청이 들어와서 병세가 아주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자세한 병명을 모르지만 암 같은 것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선종기도를 한 지 불과 하루 만에 life support system을 떼어낸다는 슬픈 소식이 왔다.  그러니까, 그 동안 coma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오늘 아침에 숨을 거두었다고 레지오에서 연락이 왔다. 그 동안 큰 관심과 우려로 기도를 바쳤던 이 자매님, 애 띠고 밝은 얼굴로 가냘픈 몸으로 레지오 활동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예상은 했던 것이지만 어찌도 이렇게 가슴이 저려 오는 것인지? 항상 미소를 머금은 눈과 얼굴이 이렇게도 선 한데…

건강한 모습으로 마지막으로 본 것이 아마도 올해 초 (아니면, 지난해 말) 에 레지오 방문을 갔었을 때, 단장 부재로 대신 주회합을 주재했던 그 모습이었다. 항상 어딘가 아픈 듯, 약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끝까지 레지오의 간부로 있었던 것이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다. 무슨 사연으로 그렇게 몸이 아팠던 지는 잘 모르지만, 너무나 안타깝다. 더욱이 이런 코로나 사태 때에…  우리는 장례미사도 못 갈 듯하고 레지오 장 葬 도 못하고, 이 얼마나 모두가 쓸쓸한가?  코로나 사태의 최악의 결과 중에는, 장례미사에 갈 수가 없다는 기막힌 사실이 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과 제대로 고별식을 못하는 것이 이렇게 안타까울지 예전에는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Independence Day, 비록 barbecue와 beer는 못했어도 연숙이 정성 드려서 만들어준 아주 부드러운 갈비찜으로 점심을 포식을 했다. 모든 음식을 부드럽게 해야 하는 것, 얼마나 신경이 쓰일까…. 내가 이런 것에 약하다, 너무나 그런 정성들을 간과하는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Barron의 ‘하얀 책’에서 Barron & Trump란 section을 보게 되었다. 흥미가 인다. 나는 이런 사람의 의견이 필요하다. 유명한 신부님을 넘어서 새로 된 주교의 입장으로 쓴 이 글, 어떻게 그는 balance를 찾고 있을까? 신자의 입장에서 이런 각도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엄청 흉하게 자란 앞쪽 yard의 잔디를 깎았다. 이것은 최소한 2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job이지만 오늘은 지루한 것 보다는 무섭게 쏟아지는 UV radiation으로 더욱 피곤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일 뒤에 찾아오는 즐거움, ice cold Yuengling 맥주, 모밀국수, 사라진 입안의 통증,  Tubi movie, Charlie Chan old movie등이 있는 것에 감사.

 

오랜만에 예전에 Tobey와 같이 누웠던 playground엘 갔다

 

2020년 7월 성경통독 일정표

 

달 [月]이 바뀌니 달력도 ‘또’ 넘겨야 하고, 작년과 달리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전 全 신자 대상] 성경통독 계획표가 바뀐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보의 인쇄, 배포가 중단되어서, 귀찮지만 Online 주보를 보고 다시 표를 만든다. 이번 달부터는 열왕기 2 뒤에 이어 나오는 역대기로 가지 않고, 난데 없이 뒤쪽으로 가서 ‘아모스’를 읽으라고? 더구나,  이미 ‘통독’ 했던 시편이 다시… 그것은 이미 읽었던 것인데…  불현듯 짜증이 난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한마디의 안내 말씀을 덧붙이면 안 되나? 이것은 총책임자인 신부님의 불찰이라고 생각한다. 일년 동안 가톨릭 성경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반복, 제외)  통독한다는 것인지, 어느 부분은 한 번 이상을 읽는다든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있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참,  전 신자가 일년 동안이나 각종 에너지를 총 동원하는 큰 일에, ‘자세한 사항에’ 세심한 성의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들뜬 기분이 나의 머리를 감도는 또 다른 아침을 맞는다. 지난 밤에는 예전에 비해서 더 생생하고 다양한 꿈들을 꾸었다. 이것도 입안의 통증과 상관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전에는 모든 정신과 신경이 그 ‘고통’ 으로 몰렸기에 꿈 조차 멀리 사라진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내가 그것의 ‘공포’를 느끼며 살았던 것… 바보다 바보다…나는 바보다..  오랜만에 ‘피부적, 관능적’ 느낌의 꿈을 꾼 것,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 짜릿한 느낌은 역시 본능적, 말초적이지만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싶기도 하다.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본능적 사랑’과 연관시킬 수는 없을까? 참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그렇게 느끼는 것을…

이 없으면 잇몸… 참 명언중의 명언인가, 새삼 느낀다. 내가 요새 바로 그 지경이 되었으니까 하루 하루 새로운 경험을 한다. 전처럼 입 안에서 특별한 통증이 없는 상태로 음식을 넘기는 방법은 역시 잇몸이었다. 소시지 [요새 맞춤법은 이런가?] 까지 큰 무리 없이 씹히니 말이다. French toast에다가 달걀, 토마토 등등으로 기분 좋게 아침이 해결 되었다… 감사합니다.

 

Bishop Barron의 책, TO LIGHT A FIRE ON THE EARTH 중에서 Chapter 8,  ‘Obstacle to the Faith‘ 를 필사하며 흥미를 가지고 천천히, 자세히 읽는다. 한 때 나의 주 主된 관심사이기도 했던 모든 것이 한 章장 Chapter에 고스란히 정리가 되어있다. 이 ‘머리 좋고 젊은’ 주교 신부님의 ‘이성적, 영성적, 신학적, 심지어 과학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은 것이다. 이것의 정독, 필사가 끝나면 주제별로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간 10 여 년간 내가 얼마큼이나 가톨릭 신앙을 체계적으로 이해했는가를 정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이것을 블로그에 남겨서 모든 교우들과 나누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 감사합니다!

 

冊, 하늘이 우리를 갈라놓을 지라도 (부제: 이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이진섭) 의 필사가 의외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이 책에 한때 흥미 있게 몰두했었는지 새삼 놀란다. 모든 구절 구절이 어제 읽은 듯 하니까… 이것이 online archive 로 남는 것도 ‘준재, 벌거숭이 이진섭’ 선생님을 추억하고 기리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이번에 천천히 읽으며 새삼 느끼는 것, 이진섭 선생님은 나의 1 아버지와 여러 면에서 비교가 되고, 아니 더 비교하고 싶은 충동까지 난다. 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듣고, 읽고, 느낀 바에 의하면 나이가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두 분, 참 어려운 시대, 격동의 시대를 헤쳐나가셨다는 동정심을 금할 수가 없다. 하지만 두 분이 간 길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나니…아버님, 아버지…

이번에는 희한한 상상을 해 본다. 내가 이진섭씨가 되고, 연숙이 박기원씨가 되는 상상이다. 너무나 다른 인생이긴 하지만 같은 연령대를 살아갔으니까 공통점이 없지는 않을 듯. 가끔 읽다 보면 내가 이진섭이 된 착각에 빠지고 박기원 여사가 연숙 으로 대치될 때도… 그러니까.. 인생의 50/60대를 살 때의 모범의 삶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이 책에서 찾으려는 노력이다. 결국은 인생말기를 살아가는 과정을 비교한다고 할까…  그리고 나는 무언가 이 잉꼬부부의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인생철학이랄까…

 

  1. 6.25 발발 직후, 얼굴도 못 보고 납북되신

 

유월 이십사일, 세례자 성 요한 탄생 축일..   이른 아침에 보낸 카톡, 이재욱, 세례자 요한 신부님 영명축일… 곧바로 답이 도착, 너무나 반가웠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신부님과 지난 3년 동안 얽혔던 공동체와 연관된 우리의 여러 가지 사연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작은 우리들의 신앙의 역사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신부님과 3년이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는 행운이었다.

 

오랜만에 평화의 느낌이 온다. 진정한 평화… 갑자기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진 듯한 ‘착각’ 인가? 오늘 냉면을 자신 있게 먹을 때 약간의 치통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도 큰 걱정 안 한다. 며칠 있으면 그 나머지 고통도 사라질 테니까.. 그런 것 말고는 몸에 큰 이상을 못 느낀다. 아직도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젯밤엔 복잡한 꿈까지 나에게 돌아왔다. 이것이 나를 더욱 편안하게 한다. 연숙의 몸도 요새는 그런대로 소강 小康 상태가 아닐까? 요란하게 먹기 시작했던 ‘필수적인 약’들도 이제는 조금 습관이 되어 가는 듯하고, 외손자를 보러 갔다 오면 들뜬 기분으로 되는 것도 보기가 좋고… 그래 당분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보자. 큰 놀람 없이…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레지오, 성당, YMCA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여 해결이 되면 더욱 좋겠지…

 

이순원 1998년 소설 은비령 필사를 재개한다. 이 소설 이야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자세한 이야기는 아직 본격화 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매력적인 ‘상황, 환경’들이 펼쳐진다. 아~~ 총각시절의 느낌, 호기심 등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특히 그 당시의 이성 異性 에 관련이 된 느낌들… 그리고 남자친구들의 느낌들도…  이제는 모두 다 나를 떠난 지 영원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전에 회상한 ‘청옥산의 추억’과 이 은비령의 느낌을 비슷하게 보고 싶었다. 하나는 소설이지만 나의 것은 나의 삶의 개인역사다. 하지만 나의 것도 소설처럼 허구성을 넣어 보고 싶다. 그것이 더 아름다울지 모른다. 이것도 하나의 꿈이다. 저 세상에서나 실현이 가능할 수 있는…

 

오늘 잠깐 나가서 20년도 넘었을 듯한 ‘불쌍하게 방치된’ 우리 뒤뜰 새집 (주로 Southeastern Bluebird )들을 떼어내었다. 어쩔 것인가? Post가 3개니까… 그대로 3×3=9개를 할 것인가? 필요한 Lumber가 있을까? 그것보다는 동그란 작은 문을 만들 tool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hole saw가 현재…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 해도 만들 수는 있지… 이것이 새로 설치되어서 그 많은 bluebird 들이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요새는 이 새들아 안 오는지 아침이 조용하게 느껴진다.

 

 

2년 만에 Harbor Freight ‘cheapo’ pressure washer 를 꺼냈다. 2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때 아니 이제 겨우 2년 밖에 안 되었다고? 믿을 수가 없다. 나의 세월, 시간 감각이 아주 혼란을 겪고 있다. 그 한가지 이유에는 분명히 3월부터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생활이 너무나 변했기 때문이다. 2년 전, 구역장을 새로 맡아서 의욕에 찬 고생을 시작하던 때, 이 pressure washer로 집 앞, 옆을 깨끗이 화장을 했었다. 그래…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절대로 잊지 말자.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한 노력이 더 중요하니까… 가끔 괴롭더라도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은 제대로 보내주자. 그때 그때 세월의 의미가 각각 다를 테니까… 고이 고이 보내주자.

 

Ozzie와 같이 있던 것이 벌써 닷새째? 허~ 벌써… 첫날은 조금 어리둥절하던 녀석, 마루 바닥에 오줌까지는 싸놓은 실수까지 했지만 곧바로 다시 적응하며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지냈다. 오늘은 갈 것 같아서 조금은 또 허전한 마음이 될 것이다. 그래, 섭섭해 하지 말고 다시 볼 것을 생각하며 흐뭇해 하자…

어제는 나하고 Ozzie가 둘이서만 걸었다. 어제보다 더 활발하게 생기 있게 걷는 것을 보니 우리 집에 완전히 적응을 한 모양, 하지만 어제 집으로 돌아갔다. 가고 나면 첫날은 무언가 허전하고 멍멍하다.  찾아 오면 조금 귀찮기도 하고, 떠나면 그렇게 섭섭하고… 어쩌란 말인가?

 

 

2009 Hyundai Sonata의 뒷바퀴 tire에서 바람이 아주 천천히 새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줄 알았지만 며칠 후에 완전히 빠진 것을 보고 조금은 우려가 되었다. 급한 것이 아니라서 Amazon으로 tire repair plug을 order 해서 받아보니 완전히 100% 짱깨의 제품이었다. 스펠링 틀린 영어에다가 무식하게만 보이는 ‘신 한자’들… 이들의 제품이 안전이나 한 것인가… 하지만 Amazon의 매력은 customer review에 있기에 우선 그것을 믿는다. 보통의 것들보다  plug의 길이가 거의 두 배에 가까워서 아마도 내가 죽을 때까지 쓰고도 남을 듯해서 새로니, 나라니에게도 나누어 주어도 좋을 정도였다.

Repair의 결과는 좋았다. 비록 바른 쪽 어깨의 근육이 조금 생각보다 더 필요했지만 말이다. 제품도 촌스러운 포장에 비해서 Amazon  review처럼 plug의 volume이 꽤 많았다. 그래서 plugging하는데 힘이 더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당분간, 아니 이 tire를 다 쓸 때까지 끄떡도 없을 듯하다. Tire 바람이 샌 이유는 웃기게도 작지만 날카로운 못, 바로 그것이었다. 그야말로 이건 재수없는 사고였다. 며칠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물론 자신이 있다.

 

지난 밤 자다가 갑자기 끈끈함을 느끼며 서서히 정신이 너무나 말똥거리고 그 ‘덕분’에 주위의 모든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불면증의 괴로운 밤을 보냈다. Ceiling fan의 도움으로 조금 끈끈함은 물리칠 수 있어서 새벽녘에 조금 잠을 잤는데.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결과적, 공식적으로 나는 밤잠을 자긴 잔 것이다. 갑자기 습도가 뛰어오른 것인데, 아마도 shower를 안 하고 잔 것 때문에 더 끈끈하게 느꼈던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그런 type의 날씨가 예년에 비해서 일찍 온 것인가… 옛날 고국에서 7월 초부터 느꼈던 ‘장마성’ 기후와 비슷한 것이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코로나-19 Pandemic 이후, 매일 그날이 그날 같은, 나의 머리 속을 조금 현재와 다른 것으로 청소하고 싶은데, 그 방법이 문제다. 며칠 집을 떠나는 것이 제일 효과적임은 알지만 지금 여행하는 것은 한마디로 stupid한 것이다.  설사 여행이 자유스럽다고 해도 우리는 둘 다 집을 떠나는 것은 고생으로 느끼기 때문에 역시 Home Sweet Home 안에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우리의 머리를 청소할 수 있을 것인가?

 

어제는 순교자 성당의 공개된 주일 미사가 있었지만 우리는 65세 권고를 받아들여 집에서 온라인 미사를 보았다. 작은 놀라움은, 예상을 뒤엎고 교우들의 숫자가 공개미사 첫날보다 적었다는 사실이었다. 신부님도 꽤 실망을 한 듯한 표정. 또한 참석한 대부분이 ‘고정멤버’들인 듯 보였는데 그들의 나이도 만만치 않아서, 도대체 비교적 젊은 층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각자의 사정이 다 있겠지만 아주 젊은 세대가 주로 오는 토요일 특전미사는 아예 당분간 중지한다는 발표까지 있었다.  아마도 모두들 아직까지 조심들 하는 것이겠지만 참 어려운 문제다. 불현듯 모든 권고사항을 무시하고 우리도 평상시처럼 가볼까 하는 충동까지 들었다. 이것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현명한 결과가 안 나올지도…

 

삼위일체 대축일 주일미사 강론 – 이영석 세계자 요한 주임 신부님

 

이날 오후에는 김계환 안토니오 형제님의 가족장례미사가 있었을 것이다. 호스피스로 옮긴지 불과 하루 만에 선종하신 것인데, 이분에 대한 기억도 그렇고 그렇게 열심히 ‘소리없이, 조용히’ 봉사하신 분도 드물어서 애석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연도, 장례미사에 가 본지 도대체 얼마나 되었는지, 정말 그런 연령 행사가 고인과 유족들은 물론이고 함께 한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과 위안을 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의 blog post 가 드디어 1,000을 넘었다. 십 년 전부터 post 했던 ‘원래’ blog에 덧붙여 그 이전 것을 조금 더했기 때문에 1,000의 의미는 조금 퇴색했지만 그래도 이것은 조그만 이정표 역할을 한다. 1,000… 에다가 10년이 넘었다는 사실은 나도 놀란다.  나는 이렇게 오래 끈기 있게 했던 것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모두 이런 ‘좋은’ 습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언제까지 이렇게 갈 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변할 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posting하는 작업 자체는 나를 하루하루 ‘제 정신을 가지고’ 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됨은 분명하다.

 

아~ 청옥산…  얼마 전부터 자꾸만 ‘청옥산 靑玉山’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백두대간 중에 청옥산이 있음을 알고부터였다. 나의 추억으로 알았던 ‘청악산’이 사실은 청옥산이었음은 오래 전에 알았다. 왜 이때의 생각이? 아마도 나의 잠재적인 ‘현실도피’의 표현이 아닐까? 눈이 쌓였던 산봉우리, 화전민 집의 아가씨, 풍경소리 은은하던 사찰의 진흙 벽 방… 모든 것이 꿈처럼 아름답고 그립기도 하다. 이것에 대한 ‘회상기’를 한번 블로그로 써보는 것도 기분 전환을 하는데 도움이 될 지도…

청옥산을 googling하면서 새로운 사실은 대한민국에 청옥산이란 이름은 3곳이나 있다는 사실이고, 이중에 두 곳의 청옥산은 모두 강원도에 있고 다른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음도 밝혀졌다. 게다가 백두대간 중의 하나인 1,400m의  청옥산은 내가 갔던 곳이 아님을 알고 조금은 실망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간 곳은 삼척시 부근이 아닌 평창군 (미탄면) 부근의 산이었음도 확인을 하였다. 문제는 그 산이 Google map에 아직까지 안 보인다는 사실이다.

 

Deep Cleaning, 어제 무려 15년 만에 main bathroom tile grout에 깊숙이 스며든 곰팡이 자국들을  모조리 긁어내었다. 15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 우리는 게으르게 살았는가? 누구를 탓하지 말자… 유혹은 강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조금 더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은 것 뿐이다. 골치를 썩히던 shower door frame 문지방을 최신의 design으로 바꾸는 것, 이것은 그야말로 metal work이었다. $23 을 아끼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내가 하고 싶었다. 결국은 해 내었다. 이것이 이번 일의 보람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갈고 닦아 모든 것이 반짝거리지만… 언제까지 그 맑음을 간직하겠는가…

이렇게 해서 일은 모든 끝났지만, 생각을 한다. 이런 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니 10년이 아니라 1년에 한번씩 대청소를 하면 이렇게까지 힘과 시간이 들지는 않을 듯해서 앞으로는 일년에 두 번 정도 간단히 하기로 생각을 맞추었다.

 

거의 완전히 복원 된 main bath tub shower closet

 

새로니의 Vegetable Container, 지난 토요일 첫 손자 Ronan의 백일축하 모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Sandy Spring에 있는 새로니 집엘 잠시 들려서 백일음식을 전해주었다. 새로니는 완전히 방학이 되어서 stress가 많았던 online class  가르치는 것이 피곤한지 요새는 거의 완전히 gardener, 그것도 vegetable gardening에 심취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영향을 받기도 했겠지만 요새 아이들 모든 것을 science & technology의 시각으로 각종 야채들을 그 좁은 deck에서 잘도 기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Tobey를 보는 듯한 Ozzie를 다시 보니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 녀석도 우리를 보고 깡충깡충 뛰며 오줌까지 흘릴 정도였다. 다시 나는 2년 전 6월 19일 날 세상을 떠난 나의 Tobey 모습과 이 녀석의 모습이 함께 어울림을 느낀다.

 

 

하루 하루 날씨가 똑같으니까 세월이 서서히 가는 듯도 하지만 벌써 목요일.. 하면 너무 빠른 듯… 이것이 나이가 들어가며 느끼는 세월의 모습인가? 빠른 듯도 하고 느린 듯도 하고…  날씨의 변화가 이제는 조금 그립다. 덥던 춥건, 다시 땅이 말라가는 것을 보니까,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다.

 

성경통독, 어느새 삼손과 데릴라..아니 ‘들릴라’까지 왔다. 이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1950년대의 Hollywood영화, Samson & Delilah 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사자를 동물의 턱뼈로 때려죽이는 Samson역 Victor Mature, 십대의 나이에 느껴본 ‘관능적인 매력’의 Delilah역 Heddy Lamar의 요염한 모습…  1967년 Tom Jones가 불렀던 hit oldie, Delilah 딜라이라, 당시 ‘겁도 없이 날뛰던’ 조영남의 딜라일라, 이런 것들이 줄줄이 연상퀴즈처럼 풀려 나온다. 이모든 것들이 구약 판관기의 짧지 않은 대목이었다는 것을 어찌나 알았으랴.

하느님에게서 눈이 멀어지면 이민족에게 억압을 당하고, 돌아오면 그들을 ‘쳐 죽이며’ 해방을 얻고… 이것이 거의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자그마한’ 이스라엘의 역사, 이것이 구약의 거대한 흐름인 듯하다. 여기서 끝나는 유대교의 신앙인가,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예수의 존재를 무시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간단하지 않은 결정을 오늘 단행 했다. Catholic sites: CRISIS Magazine, Catholic Thing과  EWTN의 National Catholic Register같은  newsletter를 모조리 cancel한 것이다. 이것 이외도 정리해야 할 곳이 더 있을 것이다… 그 동안 그들의 위선적인 ‘정치적’ 논조에 동의할 수가 없었던 것이 쌓인 것이다.  소위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한다는 fundamentalist들이 가톨릭에도 예외가 아님을 알았지만 이제는 솔직히 지겨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과 정의는 흑백논리와는 다른 그 너머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하고, 가슴속에서 뛰는 느낌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 소위 말하는 ‘원칙, 원리주의자’들은 그런 것들이 심히 결여된 집단인 듯, 요새의 인종문제로 시끄러울 때 그들의 논조, 비록 조심스러운 듯하지만 실제 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숨길 수 없는 듯하고, 나도 이제는 지겨운 것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예수가 그렇게 질타하던 ‘바리사이’의 위선자들인 것이다.  또라이 트럼프에게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를 지지하는 그들은 후에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세속의 문화는 종교나 교회를 이제보다 더 증오할 것임을 어찌 그 위선자들은 모르는가?

 

성당에서 봉사를 많이 하시던 요셉회의 김계환 안토니오 형제님, 선종기도 요청이 왔다. 어쩌나.. 어쩌나.. 그렇게 건강하시던 형님 같은 형제님, 왜 그렇게 빨리 가시나요? 우리 시대는 이렇게 하나 둘씩 사정없이 떠나야만 하는 겁니까? 형제님, 나으시지는 못하더라도 고통 없이 성모님의 손을 잡고 가세요…

이 형제님을 생각하면 우미관의 의협깡패 김두한을 연상케 한다. 의리 있는 젊잖은 깡패, 시대를 잘못 만난 탓으로 험한 생을 살았었을 것 같은 형제님이었다.가끔 만나면 그 옛날 잘나가던 시절의 무협담을 끊임 없이 자랑하셨다. 기억나는 것 중에는 6.25때 가족과 헤어져서 백선엽 장군의 포병 부대에서 house boy로 일했던 것, 명동, 삼선교 근처에서 깡패들과 싸우던 이야기 등등… 6. 25 이후 시절 서울 장안을 누볐을 듯. 하지만 다행으로 자유당정권에 개입된 정치깡패의 그림자는 벌로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근육이 좋으시던지, 한번은 성당사무실에 놓여있던 커다랗고 무겁게 생긴 상자, 내가 한번 들어보려다 그냥 놓았는데, 글쎄 그것을 산뜻 번쩍 들고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나도 웬만한 것은 무리 없이 들곤 하는데… 나는 놀랐다. 어떻게 그런 분이 갑자기 폐암이라니.. 그것도 폐암 말기…허~~  참, 인생이란…

 

하루의 일정이 나의 마음대로 흐르지 않는 느낌, 끌려가는 느낌, 심지어는 불안한 느낌까지.. 평화의 강의 깊이가 얕아지는가. 요새의 각종 [코로나, 인종]사태 때문에 그런지도. 아까 podcast [tested.com]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더 그렇게 되었나? 세상이 조금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나의 믿음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 레지오 활동을 하던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장례미사, 연도를 하던 때가 진정으로 나에게는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다 갔는가? 나의 진정한 평화는 언제 다시 찾아오려나?

 

점점 나아지는 아침 메뉴 요리 솜씨, 이것은 나의 영역, 담당, 그리고 나의 자랑이다. 처음에는 아침잠이 많은 연숙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장난 삼아’ 시작했던 아침 담당이 이제는 10여 년이 훨씬 넘어가는 역사가 되었다. 모든 것을 연숙에게 배워서 시작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 어떤 것은 내가 만든 것이 더 맛있게 되는 이변까지 생겼고, 그것에 신이 난 나는 아예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아침을 하기로 한 것이 이제까지 온 것이다.

아침 메뉴 중에서 내가 거의 완숙의 경지에 도달한 것 중에는 pancake과 French toast가 있는데 사실 이것들은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라  아침 맛이 식상을 하면 이것으로 대체를 하곤 하는데 오늘 아침도 그런 날이 되었다. 이런 것들을 만들며 배운 것은 요리는 절대로 시간과 세월, 경험’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라는 진리였다.

 

 

성모성월의 끝자락에 내린 비, Tobey가 더욱 그리워지는 날..

 

¶  성모성월, Fatima의 성모님, 어머니날, 우리들의 어머니, 그녀들의 은은한 향기로 가득했던 2020년의 5월….이라는 광경을 그리워하며  한 달을 지낸 듯하다. 올 5월은 예년과는 너무나 달랐다. 작년의 기억만 해도 그렇다. 그야말로 꽃 향기로 가득했던 성모의 밤 행사를 비롯해서 집을 떠난 레지오 피정은 물론이고, 주일미사, 평일미사, 레지오 주회합, 봉성체, 양로원 방문 봉사… 등등.  정말 이제는 그런 것들이 너무나 멀리 느껴질 정도가 되었다. 비록 얼마 전부터 조금씩 정상의 느낌이 조금씩 들긴 하지만 언제 완전히 ‘평범한’ 그런 세상이 될지는 미지수다. 그런 때가 오면 올해의 봄, 여름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비록 제일 중요한 성사 聖事생활에는 치명타를 입었지만, 조그만 위안은 이것이다. 갑자기 남아도는 시간을 적절히 쓰는 것, 그것도 오랜 세월 미루어 왔거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찾아서 끝낼 수 있는 것들…  이것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에 속한다. 이런 것들조차 없었다면 이런 시기는 정말 괴로운 세월로 기억이 될 것이다.

 여름이 가까이 오면서 에어컨에 신경이 쓰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 재점검과 중요한 수리를 한 것이 되어서 아무리 지독한 더위가 닥치더라도 심리적, 육체적으로 편안한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또한 거의 잊고 살았던 ‘납세자의 의무’ Tax Return을 끝냈고,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financial picture를 보게 된 것도 다행이었다. 이것을 근거로 앞으로의 big budget을 세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실은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 우리 부부의 향후 5년 정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언가’를 시작하였다. 이것은 개인적인 비밀에 속한 것이지만 이렇게 반공개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이래서 올해 5월도 평균적으로 A 아니면 B+ 정도의 성적은 되지 않을까?

 

Nine year old Sharkbite connection

 

¶  Trauma Buster:  5월의 마지막 날에 지난 9년 동안 나의 머리 속 깊은 곳에 trauma로 남아서 나를 괴롭혔던 것의 결말을 보게 되었다.  남들이 보면 ‘뭐 그런 것 가지고 trauma씩이나..’ 할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글자 그대로 trauma였다. 날짜도 잊지 않는다. 2011년 7월 4일, 하필이면 Independency Day가 아닌가? 거의 12시간 동안 나는 악몽 속에서 헤맸다. 그 당시의 기억이 두 posts 이곳이곳 에 뚜렷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데 어떻게 내가 손수 water heater tank를 손수 설치를 했는가? $500을 절약하려는 것과 나의 ‘자신감’ 이 문제였다. 하지만 tank자체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의외로 plumbing에 도사리고 있었다. Copper pipe plumbing의 soldering (납땜)이 내가 생각한 바와 아주 달랐다. Electronic soldering 의 그것과 아주 달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참담한 실패로 끝났고,  최악의 사태 당분간 더운물 쓰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의 상수도를 못쓸 수도 있었는데, 그런 위기의 순간에 혜성처럼 나의 눈에 띤 것이 Sharkbite™ plumbing product…  극단적인 표현으로, 아이들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쉽게 pipe를 연결시키는 것, 그것으로 납땜을 할 필요가 없이 순식간에 일이 끝났던 것이다.  물이 새는 것을 걱정했는데 정말 거짓말 처럼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Brand new Sharkbite shutoff valve sleeve

 

당시에  일이 끝났을 때, 너무나 피곤해서 물을 잠그는 Shutoff valve를 다시 설치하는 것을 포기하였고 그런 상태로 9년 동안 숙제로 남아 있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Sharkbite™로 깨끗이 처리한 것이다. 이 valve가 없어서 그 동안 water heater tank를 flush할 수도 없었는데 이번에 시원하게 청소를 했는데, 생각보다 물의 상태가 괜찮아서 이 water heater는 앞으로 5년 이상은 더 쓸 수 있을 듯하게 보였다.

 

Almost child play, Sharkbite connection

 

Sharkbite™는 설치하는 것이 너무나 쉽고, 여간 해서는 물이 안 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좌우지간, 기분이 후련~하다. 덕분에 water tank flush도 했기에 더욱 기분이 날라갈 듯하다. Now, it’s another Yuengling Time!

 

Another Yuengling Time!

 

¶  태어난 지 거의 100일에 가까워 오는,  우리의 첫 손주 사내  ‘Ronan, 산’ 을 데리고 나라니 부부가 첫 외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찾아왔다. 물론 그 동안 우리들은 손주의 집을 가기도 했지만 COVID-19 Pandemic 탓으로 나는 자주 못 갔고 연숙이 애를 보아주러 가곤 했었다. 오랜 세월 주위의 사람들이 ‘애 보아 주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곤 했었는데 결국은 우리들이 그 주인공이 된 듯하다.

거의 3개월 만에 손주 아기가 우리 집에 처음 온 것은 그 동안 코로나 사태로 나가는 것을 자제한 것이 큰 이유였다. 아기가 평균치보다 훨씬 무겁고 커서 오랫동안 안아주는 것 쉽지는 않지만 비교적 순해서 아주 편하게 안아주며 즐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남들 할아버지들처럼 그렇게 흥분되거나, 기쁘거나 한 것이 아니어서 나도 이상할 지경이다. 어떨 때는 내가 거의 ‘연극’을 하는 듯 느껴지는데,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가면 나아지지 않을까? 나는 정말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애기의 얼굴을 보면서, Caucasian과 Asian의 인종 사이에서 어떤 부분이 어떤 쪽인지 그것에 큰 관심이 간다. 눈은 분명히 brown쪽이지만 나머지는 거의 Caucasian으로 보인다. 이럴 때, 나는 다시 깊은 생각에 빠지곤 한다.  비록 white중의 white guy 인 사위지만 이제는 서로 익숙해져서 피상적인 대화에 큰 문제는 없다. 특히 그가 gourmet , local beer를 좋아해서 그것도 도움이 되고, 화제도 협조적이어서 세대 차를 넘어서 나와 같은 ‘꼰대’들의 주장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은 보기가 좋았다.

다음 주말에는 나라니가 push를 해서 조금이라도 외가 쪽 나라의 문화를 심어주기 위해서,  100일 잔치를 하기로 결정을 하고 양가 부모들과 함께 모이기로 했는데, 글쎄 그들이 우리들의 100일 잔치의 의미나 알 것인지…  Racism이 hot button issue인 요새, 참 나는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

 

¶  며칠 전에 겪은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기쁜 놀라움이다. 화장실에서 그런대로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허리를 ‘삐끗’하며 다쳤다. 이런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한번 일어나면 때에 따라서 며칠 동안 고생을 할 적도 있었다. 심한 case (눈을 치우다가)에는 일주일을 누워서 고생한 적도 있었다.  이런 때는 주로 massage를 하며 기다리는데 나는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그냥 꼼짝 안 하며 기다리는 참을성으로 지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거의 직감적으로 산책을 나간 것이다. 물론 허리를 꾸부리고 고통스러운 자세로 남들이 볼까 봐 둘러보면 조심조심 걸었던 것이다.

직감에, 이렇게 하면 빨리 나을 듯 했던 것이다. 결과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동네 산책길 30분이 끝나고 나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아마도  Chiropractor 만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나는 기필코 산책을 하러 기어나갈 것이다. 처음의 ‘잠깐 고통’이,  두고 두고 편안함의 기쁨을 주는 비결, 방법 이것을 누가 이것을 마다하랴?

 

¶  아침, Talmud 필사로 시작한다. 요새 읽기 시작한 순교자 성당의 일년 성경통독 중의 모세 오경과 맞물려 혹시 큰 수확이 있지는 않을까? 크리스천 성경 중에서 가장 유태교적인 부분이 이곳이고 이것이 유대교 믿음의 전승인 탈무드를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하다.

오래 전부터 우리 집 서가에 꽂혀있던 ‘탈무드의 지혜’란 ‘초라한’ 책, 이것을 요새 우연히 발견하고 ‘필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저자도 궁금하고 탈무드의 배경을 알기 위해 시간을 쓴 결과, 역시 Google의 힘으로 Talmud와 이 책의 저자로 나와있는 Rabi Marvin Tokayer 의 jackpot을 찾았다.

이 노력의 결과로, 한국과 이 토케이어 Tokayer의 저서, ‘탈무드의 지혜’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나의 기존의 생각이 확인되기도 했다. 한국인과 유태인의 관계라고 할까?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보나… 하지만 종교적, 신앙적으로는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내가 모르는 사이에 대한민국에서 이 특정한 책의 영향력이 미친 모습을 보며, 조금 내가 늦었구나 하는 아쉬움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일 것이다.

How the Talmud Became a Best-Seller in South Korea, 2015년 The New Yorker Magazine,   Ross Abes의 기사를 읽으며 완전히 ‘감’을 잡게 되었다. 각가지 의문들이 풀리는 것이다. 왜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이 특정된 탈무드에 관한 Marvin Tokayer의 책이 그렇게 ‘성경’ 처럼 많이 팔리고 유명해 진 과정과 이유들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이 괴기한, 의아한 현상은 알고 보니 그렇게 오랜 된 것이 아니고 주로 2010년대에 일어난 것, 문득 고 故 차동엽 노베르또 신부님의 얼굴과 강론이 떠오른다. 그의 강연에서 수없이 들었던 화제들이 아닌가? 나는 사실 이런 현상, 특히 유태인과 관련된 것들 깊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없었다. 요새 성경통독으로 두 번째 읽게 된 구약, 특히 모세오경을 통해서 조금씩 관심이 발동했던 것, 그리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탈무드’라는 글자의 책, 그것뿐이다.

내가 현재 읽고 필사하며 공부하는 이 특정한 책 ‘탈무드의 지혜’는 이상한 책으로, 발행연도 (대강 1980년대?) 나 출판사의 연락처, 책의 가격도 없는 ‘해적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나의 추측에 일본책을 100% 그대로 조잡하게 번역하여 판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책의 원저자라도 밝혔으면 어땠을까?

 

¶  며칠 전에는,  아침식사 후면 곧바로 하던 대한민국 평화방송 CPBC 매일미사를 나중으로 미루고, ‘내가’ drive를 하여 Holy Family 동네 성당까지 가서 food  pantry donation할 것을  굳게 잠긴 출입구 앞에 놓아두고, 멀리서 얘기하고 있던 주임신부를 보고 차 안에서 손을 흔들고 떠났다. 성당이 굳게 잠긴 것, 도라빌 한국성당과는 대조적이지만 그 이유는 짐작이 갔다. 한국본당과 달리 이곳은 대부분 연로자들이 평일에 오갔기 때문에 그들이 혹시라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이 될까 봐 ‘과잉책’을 쓰는 듯했다. 그래도 성당 문을 닫은 것은 좀 지나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아올 때 집 가까이 있는 Kroger에 잠깐 들려서 나는 차에 머물고 연숙이 모든 수고를 해 주었다. 내가 감사하지 않으면 나는 한마디로 ‘개새끼’일 것이다. 오자마자 가벼운 마음으로 동네를 비가 쏟아질 듯한 염려 속에서 걸었다. 걷다가 또 Tobey와 100% 닮은 잘 생긴 개를 만나 그들과 인사를 하였다. 어쩌면 그렇게 Tobey를 연상시킬까..(2년 전에 떠난) Tobey야, I miss you dearly!

 

 

¶  5.16이 지나고 5.18을 맞는다. 나에게 거의 느낌이 없는 날이 바로 5.18인데… 나도 이제 역사관을 조금 더 확고하게 세워야겠다는 생각 오래 전부터 들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생각만큼 간단치를 않으니, 나이 탓도 있고 세월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남는 한 나는 ‘역사의 진실’을 더 알고 싶다. 그러고 나서 나의 생각을 정하면 어떨까? 언제나 이것은 나에게 짐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과거의 민감한 역사는 나같이 비정치적인 인간에게는 큰 골치거리일 수밖에 없다. 소위 말해서 진보, 보수 어느 쪽에도 동조를 하려고 하지 않으니 아마도 ‘비겁자’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확고한 입장은 딱 한가지다. ‘김일성 민족반역자’의 역사적 재판, 그것 하나밖에 없다. 그 후에 이승만, 박정희, 등등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애국관이 있을 것이고, 보는 시각에 따라 한 가지 역사적 사실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것이 사실 ‘정상’이다. 사람의 생각과 머리는 컴퓨터의 두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실을 더 깊이 알려고 노력을 할 뿐, 100% 흑백논리로 ‘좋은 놈, 나쁜 놈’을 가리고 싶지는 않고, 결국은 차원을 높여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어떨까 하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  요새 다시 microcontrollers [BeagleBone Black, Arduino, Raspberry PI, NodeMCE ESP32, Sparkfun ESP32 Things, Particle’s Photon, ZigBee Xbee etc.]  들을 건드리며 만지작거리는데 연숙이 신기한 눈초리로, 그것이 뭐냐고 묻는다. 얼떨결에… ‘발명 좀 해보려고..’ 하고 얼버무렸는데.. 글쎄  연숙의 반응이 나를 놀라게 했다. 순간적으로 ‘뭘 그런 장난감으로 시간을…’ 할 줄 알았는데, 나 같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나… 와우! 반가운 칭찬인가, 아니 실제로 그렇게 나를 평가하고 있는지도… 그렇다면, 한번 우리들 같은 ‘senior citizen을 위한 gadget’을 발명해 볼까? WHY NOT?

 

¶  Muggy feeling이 계속되었던 지난 며칠, 반가운 열대성 폭우도 맛 보았고, 이제는 편하게 느껴지는 우리 집 위층의 잔잔한 에어컨의 소음, 작년에 경험했던 90+ 의 일주일 이상의 날씨들, 모두 머리 속에서 맴돈다. 또다시 기울어가는 성모성월의 한달, 현재까지 해야 할 것들은 거의 하며 살았다. 제일 큰 것, a/c service와 Tax Return 도 했고, 그렇게 궁금하던 우리의 Fidelity IRA account의 실상도 알게 되고…  지난 해 stock market이 꽤 활발했던 듯했다. 올해는 좀 달라질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잘 하고, 살고 있다. 이영석 주임신부님의 말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들을 좀 칭찬을 해 보자…

열흘 정도 남은 5월을 어떻게 현명하게 보낼 것인가?  ‘서류정리’, 이것부터 머리를 친다. 사실은 2014년 이후, 특히 2017년 아래층으로 office를 옮긴 후 나는 모든 서류들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 귀찮다는 유혹만 계속 물리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는 그렇게 ‘무서운 것’이 숨어 있지 않을 듯하니까, 걱정하지 말자.

 

¶  오랜만에 Bishop Robert BarronWord On Fire video 를 본다. 요새 나의 머리를 잠시 떠난 나의 등대 불이 이렇게 쉽게 나에게 다가왔다. 한 순간, 한 순간 나의 관심과 손끝이 어디로 가는지 조심해야 한다. 잘못 ‘고르면’ 완전히 하루를 망칠 수가 있는 것이다. 높은 것을 보고 높을 것을 찾고, 높은 것을 만지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  궁중비사 조선편 마지막 7편을 필사, 수정하게 되었다.  야사 野史 형식이라 각가지 음담패설류의 상상적인 것들도 있지만 이것을 읽으며 그 때, 그러니까 대원군, 민비 등과 일본의 접근한 때의 이야기들, 어렸을 때 만화로 많이 보던 것도 생각이 나고, 그 당시의 역사가 다시 새로워 진 것도 한 몫을 했다. 다시 보게 된, 식민주의 시대의 일본제국 모습을 조금 더 우리의 눈으로 보는 것은 아마도 두고두고 유익할 듯 하다.

일본과 조선의 역사가 1860년대부터 한쪽은 고종, 다른 쪽은 명치유신으로 시작되는데, 결과가 참으로 보기가 민망하다. 대원군, 민비의 치열한 이기주의적 ‘당파’ 싸움과 절대 무력한 고종, 이들이 향후 50년간 이루어 놓은 역사는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한 나라를 말아먹으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 라는 교훈중의 교훈이라고 할까.

 

¶  ‘먹을 것’을 사러 연숙이 조금 전에 Doraville H-mart로 떠났다. 참, 부지런한 사람이다. 특히 먹을 것을 챙기는 것은 너무도 솔직한가? 안 먹고 살 수 있는 ‘항우장사’는 없다고 하는 말,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 할 것은 해야 한다. 나처럼 이런 것에서 내숭을 떠는 것 그렇게 보기 아름답지 않다.

 

요새 한창 즐겨보는 Youtube video는 vegetable garden 에 관한 것들, 정말 pro들은 다르다!

신록의 계절, 알맞은 비와 기온으로 더욱 푸르러진 backyard

Pandemic 덕분에 나와 더 가까워진 우리집 lucky 터주대감 Izzie

 

지난 2주일은 그야말로 화살이 나의 눈앞을 쌩! 하고 날라가는 듯한 느낌, 게다가 귀가 멍~할 정도로 외롭고 고립된 느낌들, 이것은 코로나사태의 영향일 듯하다. 둘이서 그렇게 규칙적인, 정상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는데도 이것은 역시 ‘비 정상적’인 생활이 아닌가? 역시 물을 떠난 고기와 같은 그런 꼴일 것이다.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듯하니 지긋이 기다려 보자. 오늘부터는 명심하고, 미완성인 것들, 자질구레한 서류정리, 겨울 옷 정리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머리 청소도 되고 집도 깨끗해지고, 얼마나 좋은가?

 

우연히 손이 간 곳에 책 ‘탈무드 Talmud 의 지혜’가 있었다. 역시 오래된 아주 연약하게 정장이 낡은 책, ‘탈무드의 지혜’였다. 오래 전부터 나의 눈에 가끔 뜨이던 책이지만 한번도 심각하게 읽은 적이 없었다. 그것으로 나의 손이 간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요새 성경통독의 일환으로 모세 오경을 매일 읽으며 다시 나의 눈에 들어온 글들, 유태인들에 관한 것이다. 한번 필사를 시작해 보는 것은? 그래 책의 분량이 그렇게 무섭게 거창하지 않아서 우선 안심이다. 이것도 나의 online library에 큰 무게를 더할지도 모른다. 해보자!

 

이번 코로나 사태 중에 나에게 조금 마음의 여유와 즐거움을 주었던 것들, electronics, IoT, microcontroller etc etc, 지금까지 거의 완전히 손을 놓은 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다시 시동을 걸 수는 없을까? 이것에 어느 정도 길들여지게 되면 앞으로 두고 두고 시간, 정신 활용에 도움이 될 것인데.

 

Agony & Ecstasy of Microcontrollers

아틀란타 순교자 성당, 부활 제 6주일 online 미사

강론중인 이영석 세례자 요한 주임 신부님

 

오늘,  순교자 성당 online 주일미사, 역시 좋았다. 이영석 신부님 어쩌면 그렇게 기억에 남을만한 그런 강론을 하는 것일까? 오늘 말씀도 참 좋았다. 비록 우리보다 한참 어린 것은 분명하지만 이 신부님도 나름대로의 연륜의 빛을 발하는 것일까? 불교철학을 통한 폭넓은 인생 안목이 더해져서 그런 것일까?  근래에 우리는 정말 ‘신부님 복’이 많다고 생각하며 산다. 이것도 우리의 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윗동네 형제성당의 볼품, 예의, 매력 없는 신부와 비교하여 생각하면 더 그렇다. 분명히 그 신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영석 주임신부님 복음, 미사 강론 – 2020년 5월 17일 online 미사 중

 

정말 오랜만에 비가, 그것도 늦은 저녁에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이거 정말 오랜만이 아닌가, 거의 잊고 살았던 느낌이 든다. 맞다 지난 주 한번도 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 5월이 들어서 처음 보는 비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비! 반갑다… 새로 단장한 tool shed에 비 챙, 이런 말도 있나… 그러니까… awning, 이제는 shed 근처에 조금 더 비를 피할 공간이 생긴 것이 흐뭇하다. 이제 더 정리를 하고 나면 밀렸던 tool shed를 정리하는 일들을 하자.

 

5월 초의 특유한 느낌, 냄새, 기분… 모두 겪는 이른 아침에 뒷마당을 편하게 거닐고, 갑자기 활기를 띈 나의 tool shed,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즐겼다. 어제 피곤으로 ‘고꾸라진’ 연숙, 아직도 깊은 잠에 빠진 모양, 그래 성질 좀 적당히 control하면 누가 때린다냐?

 

하루 하루 변하는 나의 자랑, Tool Shed…

 

예의 월요일의 느낌이 희미해지는 요즈음이다. 일요일에 ‘주일 외출’이 없어졌고 화요일의 ‘레지오 외출’이 없다는 것, 처음에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불안한 예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시선을 느껴야’하는 의무감 같은 것을 오래 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가상적virtual한 만남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최소한 5월 말까지는 이렇게 되니, 기왕이면 ‘즐기는 마음’을 갖도록 하자.

다시 레지오 주회합, 활동… 생각하니 먼~ 나라를 바라보는 느낌이 든다. 언제 마지막으로 레지오 회합, 활동을 했었던가… 아득~ 하기만 하다. 그래도 간신히 묵주기도 routine은 시작했지만 레지오의 느낌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 우선 성당 공동체의 느낌조차 멀어지고 있다. 비록 주일미사를 통해서 간신히 신부님의 기억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것도 한 달이 지나면 더욱 희미해지지 않을까? 최소한 나의 방어선은 이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공동체, 성당, 레지오’에서 떨어져 나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은 절대로 잊지 말자. 움직일 수 있는 한 그래야 한다.

COVID-19, Pandemic, 이것이 과연 앞으로의 모든 사회적, 정치적.. 심지어 신앙적은 환경을 바꾸어 놓을 것인가? 나도 분석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가 적당한 것인가? 분명하거나, 예상이 쉬운 것들도 있지만 그 이외의 것들은 불필요한 우려나 자아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새 자주 보는 Dr. Michael Convington같은 Christian Scientist는 내가 깊게 참고를 해도 좋을 듯하다.

 

월요일 아침의 menu는 내가 ‘눈을 감고도’ 만들 수 있는 pancake 이었다.

이것도 Pandemic project중의 하나, lab bench가 달라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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