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eld of dreams, trancending time & place, autobio in prog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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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구, 사일구.. 아~ 그런데…  춥다, 아니 싸늘하다, 싸늘해~~ 4월 19일, 아하 ‘우리 들’의 사일구였지.. 1960년 4월 19일 아침도 이렇게 싸늘했을까? 그날 아침의 날씨는 분명히 해가 뜨는 전형적 4월 말 서울의 날씨였었다. 중앙중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당시는 4월 초에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퇴교를 당했다. 물론 그보다 더 ‘신나는 달밤’을 없었고 곧바로 재동국민학교 앞 만화가게로 돌진을 해서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나 ‘철인 28호’에 심취했을 즈음에 근처의 종로경찰서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경무대 근처에서 총소리 [그것은 카빈소총]가 나기 시작하고… 생후 처음으로 방송극에서나 들었던 진짜 총소리를 들었던 신비하기도 했던 그 시간에 데모 형님들이 쓰러지며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때…  종로경찰서 쪽 신작로[비원 앞에서 안국동 쪽 길, 당시에는 길 이름이 없었음]에 나가보니 트럭에 가득 탄 대학생 형님들의 고함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고..  운집했던 어른들, 발을 동동 구르며 자녀들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던… 그날은 결국, 사일구라고 즉시 불리기 시작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고 나중에 미국의 LIFE magazine은 Student Phenomenon이란 논설로 그날을 보도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집으로 오는 길목에서 순간적으로 아침 식사를 McDonalds에서 결정하고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특별히 아침 식사를 만드는 것이 귀찮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순간적인 생각이… 이런 것들, 선택, 결정, 자유의지 등등 과학적인 분석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유가 결여된 갖가지 선택과 결정들… 하지만, 오늘 억지로 만든 이유는 ‘이대로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어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McCafe coffee의 향기도 있고, 다른 분위기에서 둘이 있고 싶었던 것, 그것이었다.

 

며칠 전에 fence screen을 고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Harbor Freight 의 cheap Chinese-made 4 gallon air compressor가 죽어 있었다는 것, 나에게는 첫 air compressor였기에 정이 들대로 들었던 pro tool이 아닌가? 2000년대에 산 것이니까 도대체 얼마나 쓴 것인가? 자주 쓴 것은 아니더라도 나에게 자부심을 주었던 tool이었다. 한번 pressure switch가 고장이 나서 교체를 하기도 한 것인데..  다시 이것을 서야 하는데, 이번에는 Harbor Freight로 가고 싶지 않았다. 잠재적으로 Chinese를 피하고 싶기도 했고, 처음으로 유명 name brand를, 그것도 Home Depot에서 사고 싶었다. 며칠 전, garage door sealer를 online으로, 그것도 free deliver service을 경험하고 보니 Amazon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고, 별도로 shipping charge가 없는 것이 아닌가? 값도 값이지만 이런 새로운 방식으로 오늘 $140 정도로 RIDGID 6 gallon 150 PSI compressor를 order해 버렸다. 무언가 큰일을 한 기분까지 든 것, 처음으로 non Harbor Freight product를 산 것이 어쩌면 이렇게 기분이 좋을까?

 

오늘로서 며칠 동안 골머리를 쓰며 준비했던 PC system emergency recover & migration plan을 일단 끝내게 되었다. 계기는 우연히 ‘당했던’ ransomware-malware 의 추악한 모습에 질려서 시작된 것이다. 매일 쓰던 나의 필수품 desktop pc가 순간적으로 못쓰게 된다면, 제일 아쉬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Microsoft Office 2008 OneNote [with Korean Language Pack]과 open-source email client Thunderbird 두 가지였다. 비상사태 발생시 이것만 즉시 다시 쓰게 된다면 과도한 stress는 피할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critical personal data는? 일단 거의 매일 usb flash stick으로 manual backup이 되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Stop right here! 더 이상 이것에 신경을 쓰지 말자! 이것도 과분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모두 잃는다고 해도 어쩔 것이냐? 그것이 나의 생명과 관계라도 있단 말이냐? Ok, Ok, Forget it!

 

지난 성주간 동안 나는 ‘소죄 小罪’를 짓고 살았다. 제일 가까이 해야 했을 ‘영성적 서적’들은 물론이고 나를 흥분시키는 다른 책[주로 과학과 신앙]들을 더 멀리하며 산 듯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조용하게 명상을 할 침묵의 시간을 못 만들고, 심지어 신앙심이 해이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고 강변을 하고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정말 책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책상 오른쪽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책더미’ 사진을 찍은 후에 가만히 보니 모두 읽고 싶었던 것들인데 왜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인지… 자세히 보기조차도 미안해서 흑백으로 바꾸어서 보니 조금은 덜 미안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처럼 찾아온 을씨년스러운 3월 날씨의 덕분으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지어 알 수 없는 조그만 ‘희망의 속삭임’도 느껴지는, 한가한 사순절 금요일 무엇인가 쓰고 읽고 하고 싶은데 선택의 여지가 무한정으로 많은 것이 유일한 문제다. ‘생각 없이’ 손이 간 곳이 Erich FrommThe Art of Loving, ‘사랑의 기술’,  이것은 이미 책의 절반 정도까지 나아가는 성과가 있는 것이다. 복음공부의 성서적, 영성적 사랑으로 출발해서, 신비가 차원의 우주적 사랑, 공동체에서 경험하는 사랑에의 도전 등등 나는 요즈음 이 사랑이란 단어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린다. 이때 ‘사랑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말하는 책에 호기심이 안 갈수가 있는가? 비록 typing 중심의 독서지만 대강 저자의 저술 내용과 의도는 조금씩 느껴지고 있다. 교정을 겸한 재 독서에서 더욱 확실한 ‘사랑의 방법’을 깨우치게 되지 않을까… 

두 번째로 손이 간 곳은 연숙의 장서인 소책자 ‘성 이냐시오 로욜라 자서전‘이다. 이것은 한글판이라 속독도 가능한 것이다.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얻어 들었던 이 성인의 ‘개인적 정사 正史’라고 할 수 있기에 완독을 하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을 듯하다. 비록 예수회 James Martin신부의 각종 예수회에 관한 책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방대한 분량이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소책자를 먼저 읽는 것도 나중의 도전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갑자기 출현한 중앙동창 차정호의 도움으로 오늘 내가 결국 중앙고 57회[1966년 졸업] 단체 카톡방에 등록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110여 명의 동기동창이 있는 그곳… 나에게는 거의 미지의 개척지 같은 느낌을 준다. 누가 그곳에 있는 것일까? 우선 차정호는 있을 것이지만… 오늘 글이 올라온 것을 보니 ‘주응권’이란 이름이 보인다. 물론 잘 아는 이름이고 얼굴도 뚜렷이 생각이 난다.  고2때 그러니까… 1964년 경 [용산구] 남영동에 같이 살았었지. 그제 차정호가 언급한 이재영이라는 동창의 글에 나의 이름을 언급한 것도 보인다. 가만있자.. 이재영이 누구인가? 금세 알 수가 없으니… 내가 잊은 것일까? 가슴이 철렁한 것은 왜, 두뇌세포? 아직도 나는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 가는,  늙어가는 동창들이 ‘두렵거나, 무섭거나, 생소하거나, 부럽거나..’ 정말 알 수 없는 나의 감정… 이것을 어떻게 조율을 하며 이들을 대할 것인지 나도 모른다. 동창회 참석하는 것을 가끔 꿈으로 경험하는 것이 이런 심정을 말해 준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모두들 인생의 석양을 지나가고 있는 마당에 무슨 체면이 필요할까? 나를 잘 모르는 동창들에게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말자. 그것이 진실이고 사실이 아닌가?

이후에 조금은 망설이다가.. 중앙앨범에서 이재영이란 이름을 찾기 시작해서 결국은 찾았다. 이름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었지만 역시 앨범의 얼굴을 보니 물론 기억이 가물거리며 난다. 나와 친하거나 얽힌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것 뿐이다. 3학년 7반, 김호룡이 반이었구나..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중앙 단톡방엘 들어가 아는 몇 명을 카톡친구로 일단 넣었고 그 중에 윤태석에게는 소식까지 보냈다. 그 친구, 역시 부지런하게 금세 답을 보내주었다. 바로 어제까지 연락을 하며 살던 착각에 빠질 정도…  이재영에게도 글을 보냈고, 나머지 목창수는 아직 연락이 닿지를 않는구나.. 그 친구에게는 꼭 나라니 소식을 알려주고 싶은데… 정말 오랜만에 중앙교우회에 가까이 다가간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망설인다… 망설여… 아직도 나는 수줍어하는 이경우인 것인가?

나중에 이재영 교우로부터 나중에 소식이 왔다. 이 친구, 미국에서 공부를 했던 듯 싶고 나의 블로그도 조금 읽은 듯하니… 놀랍기만 하다. 나와 직접 알고 지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이 친구 말대로 그것이 큰 문제가 될까? 같은 곳에서 3년의 세월을 보낸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지난 일요일 새벽 한 시간을 빼앗기 이후, 나는 계속 오늘까지 그  없어진 한 시간을 피해자가 된 기분이다. 아직도 7시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고, 아니 더 자고 싶고, 더 꿈꾸고 싶은 것이다. 이른 새벽을 그렇게 좋아해서 일어나는 시간만 학수고대하며 살았던 내가 올해는 왜 이렇게 바보같이 변하고 있을까? 아~ 또, 나이, 늙음, 진화, 퇴화…?

3월도 중순을 깜짝 넘어가고 춘분을 향해서, 그래 Spring Equinox라고 했던가.. 3월의 ‘바람 부는 날’도 일단 겪었고, 이제는 무엇을 향해서 가는가? 물론 남은 사순절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3주일 이후에는 성주간의 시작, 성삼일, 아~~ 부활 부활 부활절이다! 4월의 찬란한 꽃들의 향연, 깜짝 추위… 작년 이즈음.. 그래 우리 집의 커다란 숙제들 몇 가지가 풀리던 때였다. 지붕과 siding이 새것으로 바뀌고 최소한 밖에서 보는 집의 모습도 훨씬 젊어지던 때였지..  우리 집 30년간 우리 작은 가족을 안전하게 편안하게 행복하게 감싸주었다. 비록 이 집을 선택한 것은 우연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이렇게 우리의 삶을 장구한 세월 지탱시켜준 것은 분명히 무슨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구나… 우연만이 아닌.. 뜻이 있는…

 

Erich Fromm의 고전 classic 인 ‘사랑의 기술 技術’, 종이 색깔이 그 동안 더 바래진 오래된 ‘볼품없이 초라한 paperback’ 을 부리나케 꺼내 펴놓았다. 몇 페이지를 펴보니 역시 책의 spine의 접착제가 완전히 말라서 그런지 그 부분이 완전히 떨어지고.. 할 수 없이 spray glue를 뿌려서 간신히 고정을 시켜 놓았다. 조금 불쌍하게 보이는 모습의 이 오래된 책이 더 사랑스럽고 정이 간다.
아침에 왜 이 책을 부지런히 찾았는가? ‘사랑’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요사이 요즈음 나를 문자 그대로 ‘괴롭히는’ 말이 바로 이 ‘사랑’이란 단어였다.  순교자 성당의 ‘요한복음 산책’ 영성독서 강의, 갑자기 악마처럼 나를 괴롭히는 나쁜 생각들 등등의 등 뒤에는 ‘사랑이 결여된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고 상상일까?
이 책을 봐도, 저 책을 봐도, 이곳, 저곳을 가도 나에게는 ‘사랑’과 사랑의 결여, 를 본다. 그것도 나 자신의… 왜 이렇게 이 흔하디 흔한 말을 나는 다시 깜짝 놀라는 듯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일까?
심리학적인 사랑, 영성적인 사랑, 종교적인 사랑, 개인적인 사랑… 상관이 없다. 사랑은 사랑이다. 특히 인간적, 인간 대 인간의 사랑, 나의 주변과 나의 사랑…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과연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인가? 내가 쉽게 생각했던, 나는 물론 ‘나를 괴롭히지만 않으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는 의심이 든다.
나는 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랑만을 사랑으로 보며 살았을 것 같다. 의지적으로 사랑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거의 없다. 사랑을 받으면 사랑할 자신은 있다. 의지적 사랑? 생소한 개념이다. 아니 없다, 나에겐…
의지적인 사랑, 공부하며 연구하는 사랑의 방법,  그것을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이란 책에서 본 기억으로 그 책을 찾은 것이다. 이것으로 현재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 그룹,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 책의 서문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사랑의 기술 技術에 대한 편리한 지침 指針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실망할 것이다. 반대로 사랑은 스스로 도달한 성숙도 成熟度와는 관계 없이 누구나 쉽게 탐닉할 수 있는 감상 感傷 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가장 능동적으로 자신의 퍼서낼리티 personality 전체를 발달시켜 생산적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 한,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반드시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한, 또한 참된 겸손, 용기, 신념, 훈련이 없는 한, 개인적인 사랑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한다.  <발췌: 사랑의 기술>

사랑과 관련된 source 중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책들이 있다. 바로 예수회 Father Spitzer의 Quartet Series, 그 중에도 God So Loved the World 는 주제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거의 논문급인 그 책은 이런 때에 거의 오아시스와 같은 희망을 준다. 이런 때에 이것을 참고로 하면 좋을 것 같다.

 

오늘도 남아도는 ‘꽤 많은’ pc box들과 씨름을 했다. 물론 Ubuntu Desktop OS 를 installation을 하는 것으로… 이것을 하면서 왜 내가 이것을 지금 꼭 해야 하는 것인가 묻는 나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우선 ‘재미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용성보다는 engineer적 호기심, 재미, 바로 그것이다. 그렇게 간단한 이유로 몇 시간 머리씨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용성도 은근히 희망을 하고 있는 것은, 물론 요새 나의 심심풀이 시간선용의 제1 후보인 Raspberry PI가 Linux based라는 간단한 사실이다.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Linux community에 가까이 가는 것, 나쁜 idea가 아니다.  두 대의 PC box 에 Ubuntu 20.4 LTS 를 설치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 agony & ecstasy 의 연속이라고 할 듯… 그런 과정들이 내 engineer로서의 인생이었다. 고통과 희열의 반전, 연속…

 

어제의 충격적인 ‘악마의 출현’을 뒤로하고 조금은 머리가 가볍게 정리가 되는 쪽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LOVE, LOVE, & LIVE! 이것이 유일하게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목표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정확하게 어떤 방향과 도전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나는 대대적으로 value system이나 worldview를 조정하여야 할 지도 모른다.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바꾸어야 하면 바꿀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Holy Family 성당아침미사에 도전한다… 1월 28일 금요일의 미사 이후 처음인가?  거의 3주만인 것이다. 원래 우리의 희망은 일주일 2번 이곳에서 아침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역부족인가, 아니면 연숙의 노력에 한계가 있는 것일까? 갑자기 찾아오는 sudden death day가 문제인 것이고 그럴 때 나의  대응방법이 졸렬하기 짝이 없으니…  2월 3일 날이 그런 날이었다. 나의 현명한 노력이 없었던 것, 어쩔 수 없이 내 탓이요 인 것이다. 오늘 이곳에 가는 것은 자랑에 가까울지는 몰라도, 나의 의지가 많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push하는 것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지만 이번에는 예외를 만들었고 앞으로도 필요하면 다시 그럴 각오를 한다.

별로 편안하게 앉아서 침묵, 기도, 영적독서 등을 할 여유는 못 찾지만 그래도 나는 노력을 한다. 짬을 내어서 Mirjana의 ‘성모님 발현’ 책, 재독을 시작하였고,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제1권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아마도 나에게 아주 심각한 영향, 가르침을 줄 것이라는 예감을 느낀다. 이번에 나는 성경, 성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지혜를 이 책에서 찾으며 찾고 있는 중이다. 나 자신도 놀라기만 한다. 성경이 이제까지 내가 생각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내가 얼마나 오만한 자세로 성경을 대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성경공부는 공부 자체보다 공부 자세가 더 중요함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Medjugorje visionary 의 한 사람인Mirjana에게 준 성모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요한복음의 깨우침은 2022년을 나의 인생에서 가장 ‘계몽, 깨우침’의 해로 만들 가능성이 많다. 이런 기회를 만난 것, 절도로 우연이 아님을 나는 가슴속 깊이 깨닫게 된다.

정오 이전에 새로니 식구가 오는 것, 전에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그러면 아침 미사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새로니도 그것이 좋다고 하는데… 오늘은 유나와도 가까이서 서로 많이 마주보며 웃기도 했다. 서로 이렇게 해서 정이 드는 모양이다. 로난 때는 나에게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늦게나마 라도 새로니에게는 덜 미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애를 직접 보는 것은 아니더라도.. 힘이 드는 것은 부인할 도리가 없다. 저녁때 모두들 가고 나면 근육보다는 머리가 띵~ 피곤함을 느끼는 것, 나이 탓일 것이다. 앞으로 몇 년 간 이렇게 버틸 수 있을지…  하지만 이런 때에 OzzieSope Creek을 포함한 ‘간단한 1시간 이상’의 산책을 했음은 나를 흐뭇하게 한다. 그 녀석도 좋고, 나도 운동을 해서 좋은 것…

머리를 조금은 비우려고 난데없이 UBUNTU installation에 시비를 걸었다. 이것을 함으로써 조금은 관심을 다른 곳, 특히 computing쪽으로 돌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선택 중에 하나다. Ubuntu와의 관계는 내가 희망하는 정도의 근처에도 못 미친다.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Raspberry PI의 급속한 인기와 잠재력으로 이것, 사실은 Linux와 더 가까워지는 기회는 많은데 역시 나이 때문일까, 생각만큼… 하지만 그래도 노력해볼 가치가 있다. 시간을 보내는데 이것만큼 건전하고 확실한 것은 없지 않은가?

오늘 아침은 나의 작은 도전이 성공을 한 날이 되었다. 베이글, Bagel 바로 그것을 완전히, 그것도 sandwich로 만들어 모두 먹어 치운 것이다. 그냥 약간 구워서 cream cheese를 발라 먹은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snack이 아니고 정식 breakfast sandwich로…  이것의 맛은 그 동안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잇몸 치통의 역사가 길어서 완전히 잊고 살았던 것, 이제는 복수하듯이 이렇게 먹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는 bagel을 앞으로 연숙과 같이 먹게 되어서 감사할 뿐이다. 그 동안 그녀는 나 때문에 덩달아 그렇게 좋아하던 것을 참은 것이다.

최소한 잠을 설치지는 않았다. 꿈까지 꾼 것으로 기억은 되지만 선명하지는 않다. 하지만 꿈인지 아니면 가수면 상태의 생각이었는지는 기억이 난다. 나의 ‘자비, 사랑’의 상태를 두고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나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이란 것이 결여된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가까운 예로 송 아무개, 황 아무개 같은 신부들의 이름을 보면 반사적으로 싫어지는 감정이 일어나는, 내가 보아도 해괴한 현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송 아무개, 물론 요새 읽게 되는 그의 ‘요한복음산책’으로부터 경험하는 ‘웃기고 있네, 잘났다’ 라는 나의 숨기고 싶은 느낌들, ‘황 아무개’란 신부도 마찬가지, 그의 빙그레 웃는 얼굴이 YouTube 에 보이기만 하면 영락없이 ‘너 정말 잘났다!’ 라고 말하고 싶은 나… 이런 것과 함께 거의 다 읽고 있는 Mirjana Soldo의 메주고리예 책 My Heart Will Triumph, 그곳에서도 나는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자비, 사랑이 하느님 그 자체라는 흔한 말들이 이번에는 완전히 심각한 주제로 변한 것이다. 나는 분명히 나 자신이 사랑보다는 단죄를 하는 쪽에 서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어떻게 ‘자비와 판단의 balance’ 를 맞출 것인가? 왜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꼴 보기 싫은 사람’들로 보이는 것일까? 해답은 간단하다, 기도하며 성찰하는 것이다.

어제부터 침침해진 눈에 조금 신경을 쓴다. 이제까지 참 나를 잘 도와준 나의 고마운 눈, 시력… 이제 이것도 서서히 시간문제는 아닐까? 오늘 아침도 어제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듯 느껴진다. 어제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하지만 초점을 맞추려면 약간의 눈 시려짐을 느끼니까.. 제발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이 났으면… 나에게 시력의 문제가 있음은 거의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성경공부 화요일, 아예 이름을 간단하게 성경공부라고 고쳤다. 레지오 화요일에서, 성경공부 화요일… 나쁘지 않다. 언제까지 이 성경공부반이 계속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신부님 말씀으로는 그렇게 빨리 끝날 것 같지 않기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리로써는 너무나 행운인 timing이 아닐까? 감사합니다, 우리 신부님!

오늘의 강의도 나에게는 너무나 뜻과 의미가 있는 유익한 것이었다. 송 신부님의 교재 책을 충실히 따르며 그것에 덧붙여 실천, 실행하는 도움말들이 너무도 나에게는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로 제2권이 완전히 끝이 나고 다음 주는 휴강 [너무 잘 된 것이 내주 화요일에는 나라니가 오기로 되어있어서 우리는 부득이 목요일 저녁 강의에 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제 3권에 도전을 한다. 총 6 권의 요한복음산책 series, 이것으로 나의 영적 지평은 한 차원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이 생긴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눈이 조금 덜 아프고 침침하다. 그래서 ‘그 메주고리예 책’을 오늘 끝내고 싶은데, 조금은 겁도 난다. 또 눈에 문제가 생길까 봐서… 이 책을 읽은 것이 나에게 현재 얼마나 정신적, 영적 도움을 주는지 아무도 모를 거다. 물론 ‘성모님을 보시는’ Mirjana도 상상을 못할 것이다. 당신의 ‘고백록’이 한 사람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고맙습니다, Mrs. Soldo!
다시 침침해지는 눈을 달래며 결국 지금 모두 다 읽었다! 2017년에 읽었던 기억이 희미해지는 이때 나는 이번의 재독서가 거의 생명수와 같았다. 나의 인생, 아니 나머지 인생에 미칠 영향을 지금 가늠해보고 있다. 아마~ 좋은 열매를 맺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현재 요한복음 공부와 곁들인 이번 재독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거의 기적적인 timing이었다. 야심은 이번 이 책을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나의 blog post에 남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를 다음 영적인 영역으로 옮겨주는 발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제발 그것이 잘 성취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성모님이시여~~~

오늘은 나의 제안으로 Kroger에서 싸지 않은 sushi lunch bento 를 사다가 집에서 점심으로 먹었다. 이런 것도 삶의 작은 지혜가 아닐까? 기분 전환도 되는 느낌이 든다. 오랜만에 가격이 저렴한 [$9] 큰 병에 든 wine을 하나 사왔다. 그 동안 hard liquor나 소주로 ‘연명’을 했지만 이것 wine은 거의 잊고 살았다. 그래, 이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더 좋다. 취하게 하는 것도 알맞은 정도이니 얼마나 안전한가?

아~ 또 냉랭, 싸늘, 움칠… 춥다, 추워… 조용하게 추운 바깥의 모습이 더욱 싫어진다. 이럴 바에는 아예 이상기온으로 좀 봄 같은 날씨도 나쁘지 않은데… 이제는 추운 것이 점점 귀찮아지고 싫어지는 것은 분명히 나이 때문일 것이다. 자연적 이치라고…
무언가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왜 그럴까? 어제 순간적인 자화상의 느낌으로부터 시작된 그것일까, 아니면 다른 것이 나를 시험하는 것일까? 나에게도 성령과 악령이 교대로 오는 것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요새 나는 분명히 악령 Screwtape의 노리개  감으로 고통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순교자 성당의 요한복음 공부, 예상외로 좋았다. 꽤 많은 깨달음도 있었다. 송봉모 신부의 전6권 ‘요한복음산책’, 교재의 주제와 정신을 충실히 해설하시는 신부님의 강의가 우선 좋았지만 오늘의 주제가 현재 내가 겪는 혼란스러운 생각에서 헤쳐 나오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성령의 움직임을 나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긴다. 배우려고 하지 말고 느끼고 묵상하고 관상을 하는 예수회, 아니 이냐시오 성인의 방식을 더 알고 싶다. 아니 현재 이 복음공부는 이냐시오 영성에 바탕을 두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timing이 어디 있을까? 최근에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James Martin신부의 책들, 대부분 이냐시오 관상, 영성에 관한 것들인데 우연일까? 이 요한복음 공부 전에 나는 이미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시작을 이미 했던 것인데… 역시 프로인 신부님의 지도로 본격적으로 이것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이번이 기회다, 절호의 기회… 이것을 놓치면 나는 없다, 없어… 미래가 없다… 절대로 잡아야 한다.

오늘도 새로 산 refurbished PC에 Windows 10 Pro  installation 을 계속한다. Provisioning 이라고 할까? 일단 연숙에게 주기로 했으니 그녀의 필요에 맞게 personalize를 해야 한다. 이런 작업도 앞으로 별로 없지 않을까? 오늘도 hardware test를 해 보니, 특히 video는 확실히 speed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본다.  그것으로 일단 되지 않았을까? Benchmark는 역시 YouTube video일 것이니까… 그것이 pass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책 한 권과 2개의 32GB microSD card (rather chips?)..  책은 Simon Monk, O’REILLY  Raspberry PI Cookbook인데 거의 600 pages에 가까운 두툼한 책이다. Raspberry PI [tiny single board computer]에 대한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산 것이 두 권이나 있으나 문제는 너무나 오래 된 것이다. 2020년 대에 나온 이 책은 아주 fresh 한 느낌이고, Amazon의 review가 아주 좋았다. 나의 희망은 사실 이런 review들 보다는 그 동안 뜸했던 나의 흥미를 되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결과는 어떨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희망적이다. 이 책의 인도를 받아 작년에 $$를 투자한 것들, 주로 electronic parts들,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고 싶은 것이고, 머리를 조금 더 쓰게 하는 시간을 갖고 싶은 것이다.

 

아~ 싸늘하고 춥고 귀찮다… 귀찮다~ 하지만,  Just Do It! 을 외치던 시절이 그립고 부럽다. 하지만 일어났고 준비하고.. 다시 해가 떠오를 주일의 어두운 아침을 본다. 오늘부터 연중 5주일 시작, 3주 뒤 연중 8주일의 한가운데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 아~ 은근히 그립고도 기다려지는 우리의 사순절이 서서히 다고 오고 있구나… 올 사순절은 어떻게 보낼 것인가? 우리에게 어떤 희망과 현실, 절망, 의미를 남겨줄 것인가? 가급적 부지런히 즐겁게 보내면 어떨까? 그래 유쾌하게, 행복하게, 들뜬 기분으로 상쾌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것, 그것도 좋은 것이다. 침울하지 말고, 너무 사색에 빠지지 말고… 조금은 말도 많이 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지난 밤, 분명히 거의 생생한 꿈을 꾸었다. 깨어나기 직전까지 분명히 기억을 했고, 잊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는데 역시 아침 routine을 마치고 나니 더욱 더 희석해지는구나… 나쁜, 기분 나쁜 꿈이 아니어서 더욱 생각을 하지만.. 대강은 생각도 나는 듯하지만 그것을 생각, 글로 옮길 수가 없으니 환장하는 것… 그래서 꿈도 나중에는 상상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꾸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이것마저 없으면….의미는 다르지만 이것이 오래 전 좋아했던  Glen Campbell (with Bobbie Gentry)의 country oldie My Elusive Dream과 제목이 잘 들어맞는 것이 재미있구나…

사기치는 날씨! 이것이야말로 사기를 친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느낌과 실제의 느낌이 정 반대인가. 놀랍도록 싸늘하고 바람이 부는 느낌인 것이다. 게다가 8시 반 아침의 성전내의 공기는 거의 누구 말대로 에어컨을 잘못 켰나.. 할 정도였다. 불현듯 ‘무능의 화신, 책임자’의 불쾌한 얼굴이 떠오르지만 참는다. 신부님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이 든 교우들이 감기 걸리기에 안성맞춤인 냉방에서 편한 미사를 기대하는 것. 솔직히 나도 떨고 불편하기 그지 없었으니… 하지만 나의 특기인 ‘내숭, 연기’ 하며 무사히 버티긴 했다.
말 한마디의 인사가 얼마나 하루를 경쾌하게 만드는가를 오늘 경험했다. 미사 직후 나오는데 전에 레지오 간부로 안면이 있던 자매 [우리에게 빵까지 선물로 준]가 뒷모습이 보기가 좋다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에~ 이런 행복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그리 흔할까? 나도 이런 말을 주위에 하며 살고 싶었는데… 자매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나를 하루 종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미사 후에 하얀풍차 대신에 지난 주에 말했던 대로 둘루스 일명 ‘꼰대다방’에 가서 수다도 떨고 옆에 있는 서울갈비에서 감자탕으로 포식을 한 후 귀가를 하였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 아가다 자매의 또 다른 급변화를 목격하였다. 완전히 건강한 웃는 얼굴과 자태를 보게 된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니 뜻밖의 큰 선물들을 받은 느낌으로 주일 오전을 보낸 것, 나는 정말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주님, 성모님, 감사 드려요~~~~

 

모처럼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오후를 마음껏 즐겼다. 이런 때가 있으면 또 서서히 긴장되고 불편한 때가 분명히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조금은 현명하게 대처하고 주님께 의지하는 지혜를 찾고 싶다. 그런 방법을 배우고 싶다. 성령의 움직임을 찾고 싶다.  성령의 움직임은 성녀 소화데레사의 전기를 연숙으로 하여금 찾게 해서 읽기 시작하게 해 주었다.  영어로 된 ‘원서 傳記’는 영어 번역이 정말 읽기에 괴로운 것이어서 아예 화장실에서만 조금씩 읽곤 했는데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진도가 나아가게 되었다. 이 성인을 통해서 ‘누구나 성인 될 수 있다‘라는 과장된 듯 들리는 교훈을 배운다.

 

다시 삼한사온의 흐름을 따라 영하의 밤과 아주 싸늘하지만 조용하고 밝은 낮을 맞는다. 어쩌면 요새의 날씨는 조금 재미가 없다고나 할까, 놀람과 흥분이 완전히 빠져버린 기후, 날씨 나의 정신건강에는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나의 관심이 이렇게 세세한 것, 쪼잔한 것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싫어진다. 좀 더 큰 것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사는 것이 나의 바램인데… 며칠 간 ‘뜻밖의 방학’을 선택한 것은 분명히 조그만 나의 잘못이었다. 하지만 OK, OK…
아침부터 귀를 사수하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듣는 것을 지키고 조심하고 방어하라!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에게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한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것, 그것이 그렇게 힘든 것을 미처 몰랐다. 어제 아침에 경험했던 완전 침묵 속의 독서, 필사의 경험, 새로운 것이었음을 알기에 다시 시도를 해 본다. 무엇을 읽으며 공부하고 생각을 할까… 너무나 많은 선택의 여지… 그래 요한복음산책 제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보자..

3부 예수님의 초막절 가르침과 유다 지도자들과의 마찰 (7,1-52)

    1. 초막절 이전과 시작에 예수님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 (7,1-13)
    2. 초막절 중반에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과 유다인들의 불신앙(7,14-36)
    3. 예수님이 공적 계시와 유다인들의 불신앙(7,37-52)

 

Wayne Dyer Ph.D.. 또 이 이름이 이책에서 인용된다. 누군지 알지만 근래에는 많이 머리에서 희석되고 있는 베스트셀러 상담심리학저자, 하지만 그는 일반인을 향한 상업적인 측면이 강해서 과연 이 인용이 적당한 것일지…  기억을 되살리려 이름을 찾는다. 아~ 몰랐다. 2015년에 하와이에서 타계한 사실을… 이것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것.. 잊고 살았구나.

Critical, Skeptical… 나는 과연.. 이 두 가지를 좋아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요한복음산책’을 읽으며 나는 이 두 가지 부류의 성향과 싸우고 있다. 왜 그럴까? 나의 현재의 심리적 상황 때문인가? 아니면.. 
강한 반발까지 동반된 이 두 가지 ‘부정적’인 판단은 건강한 것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비교적 오래 전에 이 저자의 책들에 접한 적이 있었다. 물론 연숙의 권유로… 동기와 자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얼마 안 가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 이유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책에서 풍기는 ‘겸손함의 결여’, 바로 그것이었다. 심지어 ‘교만함과 자기자랑’까지 곁들인 것들, 뜻밖이었다. 그 이후로 그 저자의 이름만 보고 피하게 되었다. 왜 남들은 그렇게 권하는 책들인데 나는 그랬던 것일까? 이번에 다시 접한 책들에서도, 아직도 그의 인상은 저자의 표현대로 그는 “성적 成績도 당연히 좋아 졸업 때 성적이 4.3 만점에 4.3이었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거의 모든 page에 달려있는 Notes 각주, 원전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note는 본문의 흐름을 끊고 페이지를 넘는 것도 있다. 지나친 note들이 연결된 본문에서 과연 저자 자신의 것은 어느 정도인가? 이 책이 논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편한 의자에 앉아 읽는 ‘산책, 수필’인가? 도무지 혼동을 피할 도리가 없다.

두 권의 책을 책상에 놓고 생각에 잠긴다. 하나는 요새 읽게 된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에서 힌트를 얻은 Wayne W. Dyer라는 상담심리학자의 1970년대 베스트셀러 번역판 <자기의 시대>라는 책이고 다른 것은 소화 데레사에 대한 역시 번역서다. 소화 Little Flower 데레사 성녀에 대한 책은 오래 전 연숙이 한국성당에서 빌려온 것인데 반납이 안 된 책이라서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양심에 상처를 안 받지 않을까?  두 책 모두 ‘필독서’의 대상이긴 하지만 조금 생각을 해야 할 듯하다. 두 책의 주제가 극과 극이니 말이다. 하나는 자기중심의 세계관을 가지라는 것이고 다른 것은 타인 중심의 가치관, 사랑이 주제니 말이다.
하지만 Wayne Dyer의 책은 1980년 결혼할 당시에 내가 사온 것이라 추억적인 가치가 있고, 송신부의 책에 꽤 많이 인용이 되고 있어서 관심이 간다. 소화데레사의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녀의 자서전은 책을 잘 못 골랐는지, 도저히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가 없기에 중도에서 포기를 했기에 더욱 다른 책이 필요했던 터였다.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바깥 모습의 유혹에 이끌려 오랜만에 둘이서 산책을 나섰다. 하지만 역시 예보에 나온 것들을 모두 맞았다. 싸늘한 기온에 보이지 않던 바람을 맞으니 정신이 번쩍 나는 정도가 아니라 불편할 정도였다. 그래도 밝음의 도움으로 걸었는데 연숙은 기본 코스만 돌고, 나는 Sope Creek 전체를 모두 걸었다. 예상외로 개울물은 불어나지 않았다. 며칠 전 밤에 내린 비의 양이 별로 많지 않았던 듯… 하지만 나의 머리 속은 역시 이곳을 함박눈이 흩날리는 날 걷는 우리 둘만의 모습이었다. 꿈은 꿈이겠지만 계절적으로 아직은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Groundhog Day, 2022… 올해는 잊지 않고 언급을 한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가 자기 그림자를 보았을까? 작년에는 그의 기후예보가 거의 정확히 맞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이것 거의 ‘복권’추첨을 보는 듯 해서 이제는 재미도 있고.  Bill Murray 주연의 영화 The Groundhog Day가 암시하는 메시지, 매일매일 쳇바퀴 도는듯한 우리의 ‘지겨운 매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극을 받는 위안도 받는다.  1993년 이 midwinter classic film은 이제 아련~ 한 추억거리로 남게 되어, 내가 살아 있는 한 이날은 재미있는 날로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오늘 이 유명한 두더지는 과연 보았을까?  아~  보았다, 자기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앞으로 6주 간은 겨울이 계속된다… 허~ 올해도 이것이 맞을 듯한 예감을 떨칠 수가 없구나.

거의 10도 정도가 올라간 비교적 포근한 날씨일 것이지만 역시 그 뒤에는 빗방울의 그림자가 없을 리가 없다. 구름이 있어야 포근함의 가능성이 있음을 안다. 거의 3한 4온, 그리고 정확한 주기로 찾아오는 비를 동반한 구름들… 그래, 최소한 이 지역 U.S. Southeast 는  Global Warming의 느낌이 없는, 거의 정상적 기후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감사, 감사… 하지만 한가지,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눈발을 다시 보는 행운은 있을까, 언제일까, 꿈은 버리고 싶지 않다.

TV news front…  나의 favorite & trustworthy channel은 전통적으로 NBC 인데 이유는 나에게 그들의morning show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마음이 들고 news 보도도 비교적 이성적,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요새는 난항을 겪고 있는데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하나는 최근에 들어,  “입만 열면 거짓말이 나오는“, ‘개XX DONALD’에 대한 보도를 지나치게 자세히 하고 있는 것[왜 그XX의 새빨간 거짓말을 cover하는지…]이고 다른 것은 ‘중공, 빨갱이 짱깨‘ 들의 다른 fake show, Olympic을 [상업적이 이유지만] 전면 cover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 그것들을 아예 ‘꺼버리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은 선택이다.

 

오늘 이른 아침 TV에서 우연히 잠깐 본 영화에 낯익은 얼굴이 나온다. Rock Hudson, 1957년 개봉된 이 Hollywood 영화, 한글 제목은  ‘무기여 잘 있거라‘, 귀에 익숙한 이 구절.  헤밍웨이의 유명한 소설영화의 제목 A Farewell To Arms..
이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61년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보게 된 영화[Rock Hudson, Jennifer Jones] 때문이었다. 중학교 [서울 중앙중학교] 2학년 생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그 나이 코흘리개들이 과연 이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것인가? 물론 전쟁의 모습들은 흥미 있게 보았겠지만, 당시 우리의 화제는 한가지였다. 주인공Rock Hudson[ Frederic Henry역] 과 그의 연인 Jennifer Jones[Catherine Barkley역] 가 과연 ‘그것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고 아직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 원래 소설에는 그렇다고 나오지만 아마도 검열에서 삭제가 되었을 것이다. 좌우지간, 그 나이에 벌써 우리들의 hormone level은 왕성했던 것인가.

나중에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잠재의식, 기억이 하나 둘씩 되살아 나왔다. 눈이 덮인 높은 알프스 산등성이에서 치열하게 전쟁을 하는 군인들, 폭탄이 떨어지는 병원에 누워서 ‘마지막’ 기도를 합창하는 부상병들, 후퇴하는 민간인들의 처참한 모습들.. 길가에서 군법 즉결재판 후 총살 당하는 군인들,  그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에 맞서서 연합군 측에 가담한 이태리 군인들의 알프스 작전을 포함한  1차대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배우게 되었고 요새는 그것, 전쟁의 실제 모습’ 을 직접 경험했던 Hemingway의 생각과 기억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헤밍웨이의 행적을 묘사한 다른 책[실화]과 영화[실화에 근거한]가 있었던 것은 오늘에서야 비교적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가19살에 혈기왕성한 미국청년으로서 이태리 군대의 위생병, ambulance driver로 참전한 경험은 나중에 그가 쓴 각종  베스트셀러 걸작 소설의 배경이 되는데, 특히 그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까지 하기로 했던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또 다른 미국출신 7년 연상의 간호원 Agnes는 위에 말한 영화의 여자 주인공의 model이 된다.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소설과는 달리 실제의 이 연애 스토리는 전쟁이 끝난 후 서로 헤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그가 나중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세계적 문인이 되지 않았다면 이런 전쟁중의 사랑이야기는 유명한 것은 고사하고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 중의 하나였을 것인데, 헤밍웨이와 Agnes의 운명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평범한’ 사랑이야기는 1960년 이후에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해서 1990년대에는 책과, Chris O’Donnell, Sandra Bullock 주연의 영화, “In Love and War“로 알려지기도 했다.

헤밍웨이의 운명, 아니 행운은 1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이태리에 외인부대 위생장교로 참전한 것으로, 그것은 그의 일생을 좌우하는 사건이었다.  위에 말한 Agnes라는 연상의 여인과 흠뻑 사랑에 빠진 것, 그 젊은 나이의 열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탁월한 문필가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이태리 무대가 모든 베스트셀러, 노벨상 등으로 이어지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그는 각종 분쟁, 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아마도’ 이태리 때의 사랑의 경험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1차대전 말 이태리의 Alps campaign의 시작..

FredericCatherine의 우연한 첫 만남

알프스 산맥 정상으로 쳐들어오는 독일군을 향해 올라가는 이태리 군인들

독일군 spy로 오인되어 총살 위기에 몰린 Frederic 

구사일생으로 위기모면 후 중립 스위스로 탈출하는…

스위스 동네 경찰이 이민관 역할을.. 여권은 검사하지만 속 뜻은…

Catherine은 출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결국 그는 전쟁과 사랑의 비극을 몸소 안은 채…

Ernest Hemingway

 

어두운 밖을 보니 하얀 색깔이 보인다. 아~ 어제 잠깐 들었던 snow flurry가 오긴 왔구나. 지붕과 lawn deck rail등도 거의 얼어붙은 흰색의 모습들, 아주 조금 내린 듯하지만 그렇게 을씨년스럽고 냉혹하게 느껴질 수가 없구나. 어제는 2014년의 기록적인 대설 기념일이었으니, 더욱 싸늘하고 춥게 느껴진다. TV를 보니 미국 동부전체는 모조리 WIND CHILL란 글자로 덮여있고, NYC는 현재 눈이 ‘펄펄’ 내리고 온통 하얗게 보인다. 이곳은 오늘이 아마도 이번 겨울 들어서 제일 춥고 싸늘한 날이 될 것이다. 그러면.. 2월… 아~ 참 어떻게 세월은 이렇게도 끊임없이 흐르는 것일까, 좀 쉬었다 가면 안 될까?
유난히도 쓸쓸한 아침을 달래려 TV도 보며 세상의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하나도 나아지질 않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쓸쓸, 황량, 을씨년스러움, 고독하게 느끼게 하는 것일까? 감정의 계곡을 가는 것인지, 왜 나는 이런 변화에 완전히 무력감을 느끼는 것일까? 깊은 한겨울의 고독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고독, 외로움, 쓸쓸함, 싸늘함, 심지어 삶의 귀찮음… 싫지만 할 수가 없는 것들, 아니 필요한 삶의 여정의 모습일지도…

나라니 부부가 Historic Roswell 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로난을 돌보았다. 돌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데리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나니 생각보다 안도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딸 부부들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은 아닐까, 아직도 나는 그들을 지척에서 몇 시간을 편하게 보내는 것이 힘든 것일까? 둘 다 맞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라니와는 아직도 서먹서먹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Luke와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이라는 나의 선입견 때문은 아닐지… 참 이것은 어려운 문제지만 세월이 자연히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들 가족이 건강한 삶을 계속해서 산다면…

본격적으로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2권 비참과 자비의 만남’을 읽고 있다. 다음 주에 공부할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놀라는 것, 꽤 많다. 아니~ 계속 놀란다. 어떻게 이런 배경들이 복음의 글귀 뒤에 숨어있었단 말인가? 본문 자체도 그렇지만 이 한 신부의 해석까지 얼마나 믿어야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신빙성 문제인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것을 내 것으로 건강하게 소화하려면 100% benefit of doubt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다. 건강한 의심은 분명히 있어야 하지만 이 공부에는 가능한 한 자제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게 이 책을 소화하면… 희망이 보인다. 나도 복음을 제대로 믿고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그 멀게만 느껴지던 ‘복음의 신비성’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리라는… 희망… 오소서 성령님, 저에게 빛을 보는 은총을 주소서…

 

대한 大寒 추위와 나의 생일 등의 모습이 느껴지며 어제 시작된 겨울추위는 역시 겨울다운 겨울의 기쁨일 수도 있다. 오늘은 숫제 하루 종일 기온이 빙점에서 맴돌고, 설상가상으로 매서운 시베리아 바람까지… 그래, 좋다… 로난이 오면 산책을 할 수가 없을지는 몰라도 나는 Ozzie와 또 둘이서 Sope Creek의 ‘설경 잔해’를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제 우리는 연숙과 셋이서, 나+연숙+Ozzie, 눈을 맞으며 눈을 발 아래 보고 느끼며 걸었지 않았던가? 기막힌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1시간 45분 정도의 산책, 오늘은 시베리아 급 싸늘한 바람이 부는 날이라서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을 하며 걸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아무리 춥더라도 견딜 만 하지만 얼굴과 귀만은 조금 문제다. 하루 종일 40도에도 못 미치는 기온에다 햇살이 전혀 없고 바람이 부는 오늘은 사실 따뜻한 집에서 늘어지면 좋겠지만 오늘은 그런 사치를 부릴 수가 없구나. 나라니가 집에 와서 일을 하게 되었기에 어는 정도 로난은 봐 주어야 하니… 

며칠 동안 독서삼매경을 잊고 살았다. 어제 눈보라를 뚫고 배달된 또 하나의 ‘필독서’ Philosophy, Science and Religion, <요한복음산책>과 더불어 나의 눈과 머리를 즐겁게 한다. 비록 깊이 읽지는 못해도 그것이 큰 문제인가, 손끝으로 느껴지는 책장의 느낌과 박학다식한 저자들의 학식, 진리를 보기만 해도…  하지만 우선은 내일로 돌아온 요한복음산책 강해, 그것이 우선이다. 내일 공부할 것 예습독서를 못했다. 그것을 오늘 로난을 보아주면서 읽을 수 있을지…

 

오랜만에 아무런 ‘소리, 잡음’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무의식 중에 생각도 없이 무슨 소리를 듣거나[대부분 음악] screen 영상을 보거나[대부분 영화 video] 하는 나쁜 버릇이 사실 거슬리던 차에 용감하게 몇 시간 소리의 침묵 시간을 만든 것이다. 이런 때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가 있는 것,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것을 절감한다. 평소에 왜 이렇게 못하고 사는 것일까? 불안하기 때문인 것인가? 외로워서 그런 것일까? 차분히 눈, 귀, 머리에 간섭을 안 받는 사실이 불안하고 외로운 것, 바로 그것이다. 요새 돌아가는 사회생활이 그런 식이다. 간섭을 하는 것이 너무나 많기에 그것이 일순간에 사라지면 불안한 것이다. 나도 그것의 피해자의 한 사람인 것, 왜 몰랐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주위가 너무 조용한 것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어떻게 이것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읽는 James Martin 책들: 그 중에서 JESUS, PRAY, JESUIT GUIDE 모두 모두 좋았다. 내용도 그렇지만 이 신부님의 engaging하는 친근한 서술방식은 가히 일품중의 일품이다. 해박한 지식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것이 point가 아니다. 그것을 완전히 소화한 후 친구와 말하듯 유머러스 하고 겸손한 자세로 쓴 글, 어떻게 나도?

 

오늘은 backyard쪽이 보이는 부엌창문 위쪽에 소박하지만 밝디밝은 포도송이 light 3개를 달았다. 물론 연숙의 작업이었다. 우리 ‘골목, cul-de-sac’이 올해는 왜 이렇게 조용할까? 한 사람도 ‘번쩍이는 장식’을 하지 않고 있으니… 이렇게 해서 우리가 제일 빠르게, 비록 밖에서 보이는 실내 장식이지만… 오늘 중에 밖의 장식도 할 생각인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제일 빠르게 하는 것인가? 앞집 Josh집은 숫제 껌껌한 모습, 아마도 vacation을 간 듯하고, 옆집 Dave도 너무나 인기척이 없고, Mrs. Day 아줌마 집도 밖으로 비치는 불빛이 안 보이고… 왜 이렇게 올해는 작년과 다른가…

요란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아~ 비가 왔구나, 어제의 일기예보 생각이 났다. 하지만 꿈꾸듯 들었기에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어나 밖을 보니 모두 젖어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빠르게 지나간 폭우였다. 조금 더 지연되었으면 남아있는 나무 잎들이 모조리 떨어질 듯… 아니~ 이미 다 떨어졌는지도… 밖의 모습이 황량하게 바뀌었을 것이다..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오늘은 조금 색다른 날이 될까? 깜깜한 저녁 8시에 혼자 차를 타고30분간  freeway를 달려 Buford Hwy 한식당에서, 식사까지.. Pandemic은 물론이고 지난 주 자가격리에서 나온 직후라 이런 외출이 익숙지를 않아서 심적으로 불편하기까지 하다. 밤에 운전을 하는 것,  이제는 익숙지 않다. 언제부터 그렇게 이상하고 겁을 내는 나를 보는가?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는 없다. 같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앞으로 나아가는 나이’, 가끔 생각한다. 언제까지 나는 혼자서 밤에 마음대로 차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을까?

하지만 2년 이상이나 못 보고 살았던, 모르게 정이 들었던  ‘목요회 친구’들과 모이는 것은 감회가 새롭기만 하다. 처음 재상봉 再相逢을 했던 2017년 9월의 추억이 이제는 역사가 되었지만 그래도 이들과의 인연은 잊지 않는다. 다만 Pandemic으로 생각만큼 그들과 더 가까워지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기만 하다. 문제는 앞으로 앞으로 어떻게 사귀거나, 친교를 할 것이고 이들은 남은 인생에서 나에게 어떤 사람들로 남게 될 것인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오늘의 모임은 정말 놀랍게도, 기대 이상으로 반갑고 즐거운 느낌으로 끝이 났다…  우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이 모든 의미를 둔다. S형제의 놀라운 변신은 나를 놀라게 했고,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2년 동안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중에서 제일 큰 것들을 가까이 앉아서 나누는 그 자체가 오늘 모임의 모든 것이었다. 오늘의 재회를 기념하며 다음 달부터는 정기적으로 모일 것을 기약하며…  비교적 조용해진 I-285의 깜깜한 밤을 가로지르는 느낌, 절대로 나쁘지 않았다.

자가 격리 3일 째, 갑자기 집에 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 사실에 조금 들뜨고 심지어 신선하게도 느껴졌지만 그것이 그렇게 오래 갈까… 어제 저녁부터 조금씩 심란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지난 10년 간 가까이 놓고 읽고, 품고 살았던 각종 책들 대부분을 desk위에 차곡차곡 쌓아놓아 제목이 눈에 보이게 하고 추억과 명상에 잠기는 사치까지 맛보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무엇을 해야 할지에 갈팡질팡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자연적으로 저절로 풀려나갈 것이다.

 

초가을 같이 포근한 날씨의 유혹을 오늘, 내일 어떻게 자제할 것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사람과 거리를 두며 둘이서 산책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안다. 아마도 오늘 우리 둘은 걷게 될 것이다. 그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Sope Creek에서 힘찬 냇물을 소리와 모습을 가까이 하는 것이 더 건강하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일단 내일 COVID test를 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모레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면 하루 연기하는 것도…

오늘의 기쁜 소식들 중에는 나라니와 로난이 COVID test에서 negative가 나왔다는 것과 COVID positive 인 Luke가 훨씬 나아지고 있다는 것, 이제 우리의 test만 신경을 쓰면 될 듯하다. 문제는 내가 점점 감기증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침이 심해지고 콧물까지… 이것은 분명히 연숙으로부터 온 것 같다. 이제 나도 감기, 독감 등에 자신이 없어진다. 예전에는 정말 이런 것들 모르고 살았는데… 왜 그럴까?

오늘도 2시간 산책을 했다. 이 제일 긴 코스는 보통 걸음으로 1시간 45분 정도 걸리고 천천히, Ozzie에게 끌려가면 2시간이 걸리는 듯하다. 2시간 짜리는 나도 천천히 걷는 것이라서 운동량은 떨어지지만 대신 더 밖의 맑은 공기를 마시게 되는 이점이 있다. 특히 요즈음 같은 멋진 가을 날씨에서는 이것이 최상의 운동 일 듯하다.

오늘 산책에서는 모처럼, 3년 전까지 Tobey과 같이 누워서 하늘을 보던 그 playground 의 놀이터에 올라가 Ozzie와 둘이서 누워보았다. 어찌 Tobey생각이 안 날 수가 있는가. 그 녀석 생각을 하면 필요이상으로 울적해져서 가급적 이곳에 올라가는 것을 피하곤 했는데, 오늘은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을 마음껏 추억하자는 뜻이다. Tobey도 정말 나와 같이 행복한 삶을 살고 천수했다고 나를 위로하기 바쁘다.

집 어귀에 있는 나무의 잎이 거의 다 떨어졌다. 위쪽은 완전히 벌거숭이가 되었고 아래 쪽에 조금 남아서 아마도 며칠 안에 다 떨어질 모양…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제일 일찍 떨어진 것은 아닐지…

 

오늘도 다행히 제시간 6시 30분에 일어났다. 휴~ 이런 것도 이제는 조그만 은총으로 생각된다. 어제 이제는 귀국한 조시몬 형제의 카톡에 ‘건강 검진 잘 받고 건강 하라’는 충고가 이제는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진정한 도움말로 들린다. 어떻게 살면 건강하게 사는 것일까? 우리는 어느 정도 열심히 사는 것일까? 과학을 너무 신봉하는 것도 그렇게만 그것을 불신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과학은 믿음과 상관이 없는 냉혹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료 시스템을 믿고 따르자.

어제 송 아오스딩 형제가 카톡 초대를 보내왔다. 지난번 젊은이 장례미사에서 만났을 때 구역모임을 언급한 것 때문이 모양이다. 솔직히 아직도 무언가 ‘앙금’이 남은 듯하지만 이렇게 살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몇 사람과의 일시적 ‘사건’이었지 않은가? 그것도 벌써 3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마음을 열고 사는 것도… 하지만 이제는 조금 보고 싶지 않은 사람[그곳에는 우리가 레지오 탈단 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 한 사람도 있으니…]이 그곳에 있는 것이 조금은 신경이 쓰인다…  이것도 맡기자, 맡기자… 상식적이고 평범하게 살자.

책, The Hours of the Universe 지금 필사, 독서하는 책이다. 이 책도 나의 주관심사인 과학과 종교의 핵심을 찌르는 지적 심도와 명상, 묵상이 멋지게 어울린 보기에 가벼운 책이다. 저자는 나에게 익숙한 과학자, 교수 수녀 Illa Delio.. 얼마나 멋진가? 그녀는 나의 다른 선생님 Teilhard Chardin 석학이기에 간접적으로 나는 Teilhard에 관한 공부도 하는 것이다. 이런 주제들이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든다. 왜 그럴까? 그것을 분석하는 것도 큰 일이 되었다. 왜, 나는… 이런 주제에 매료가…

우려한대로 연숙에게 shot side effect가 왔다. [큰 사위] Richard가 경험했다는, 비정상적인 피로감, 바로 그것인 모양이다. 열도 없고, 고통도 없는, 그저 피로하다고.. 허~ 나도 한번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이 같은 심리인가?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시간만 지나면 되는 것이니, 이것도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대신 ‘죽을 병’에서 조금 더 멀어진 것이니까… 이것으로 아침의 정상 routine이 바뀐다. 매일미사, 그리고 오늘 가려던 Sam’s Club shopping도 내일로 미룬다. 덕분에 조용한 아침시간은 나에게 거의 bonus와 같은 것이니까, 절대로 불평할 수가 없다. 아니 심지어 감사한다고 나 할까… 이것도 아동심리인가?

결과적으로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sick day가 된 것인가? 연숙은 완전히 반나절을 완전히 잠을 자고, 나는 별 증상이 없어서 허리가 조금 아픈 것을 낫게 한답시고 동네를 혼자서 걸었다[짧게]. 그러다가 오후에 들어서 나도 조금 그야말로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해서 연숙이 빠져 나온 침대로 들어가 2시간 이상을 자게 되었다. 이것으로 booster shot 후유증 행사가 끝나는 것인지…

 

어제로 끝난 daily typing, 그것이 없어지니까 조금 허전하다. 어제 끝난 것은 James MartinBetween Heaven and Mirth, ‘성자처럼 즐겨라‘ 인데, 다음 것은 무엇을 할까…. 이번에 새로 산 ‘따끈따끈’한 Ilia Delio의 신간 The Hours of the Universe로 정했다. 책의 두께는 비록 얄팍하게 보이지만 내용은 그 반대다… 아주 무겁고 심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Ilia Delio ‘수재 과학자, Teilhard expert’ 수녀의 글은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은 ’21세기 과학, 신앙’ 접목을 위한 걸작임을 알고 있기에 이것도 soft copy를 남겨두고 싶다.

오늘 저녁 늦게 Corona booster shot 예약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고 있었다. Pandemic이후 오랜 동안 근처에도 못 가보았던 YMCA,  그 바로 앞에 있는 이곳 Publix Supermarket에서 이것을 맞게 되었다. 3주를 기다릴 줄 알았다가 새로니의 예약 덕분에 일찍 맞게 되었지만 사실은 주변의 아는 사람들 거의 다 맞은 것을 알면 이것은 너무나 늦은 것이 아닌가?  최근에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다시 감염률이 오르고 있다는 소식, 이것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정말 골치 아픈 세상을 살고 있다.

결국은 우리도 이렇게 해서 COVID booster shot 접종을 받았다. 이것으로 ‘당분간’ COVID 로 죽는 chance는 아주 낮아진다고 한다. 이것을 맞는 것,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것,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인데 왜들 그렇게 앙앙거리는 것인가? 이번 Pandemic을 겪으며 새삼 깨달은 것, 이 세상에 정말 바보, 병신, 아니 거의 criminal급 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불쾌한 사실, 어쩌면 그렇게 무식하고 남을 배려 못하는 병신, 무지랭이들이 득실거리는 걸까… 솔직히 미안한 소리지만 그런 부류 인간들, 이 병에 감염되어서 죽지는 말고, 죽기 직전까지 가는 경험을 한번 해 보면 어떨까? 1+1=3 이라고 우기는 인간들은 인간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오늘 접종은 의외로 밤시간에 차를 drive해서 가는 기회가 되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접종의 느낌 대신에 밤시간에 drive해서 나갔다 온 느낌을 나누었다. 정말 오랜만인 것이다. 밤시간의 밖은 우리에게 조금은 불편한 모습들, 확실히 이것으로 우리는 활동적인 세대에서 이미 멀어지고 있음을 절감하는 것인데 한마디로 착잡한 심정이다. 옛날 옛적, 오밤중에 장시간 drive하며 돌아다니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딴 나라 세상 같기도 하고… 조금은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요즈음 나를 매료시키는 Thomas Berry의 거시우주적 자연관이나 어제 읽었던 Avery Dulles [추기경]의 ‘자연’ 체험담 등이 나의 보는 눈을 더욱 활짝 열어주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Dulles 신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흥미롭다. Dulles 집안은 미국에서 유명한 명문가문이다. 나도 어렸을 적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인 John Foster Dulles를 기억할 정도니까.. 그의 아들이 바로 Avery Dulles라는 것인데 집안의 후광과는 상관없이 이 추기경님은 미국 제일가는 가톨릭 신학의 거두인 것이다. 이분이 대학시절까지 무신론자에 가까운 agnostic였는데 한 순간에 하느님의 존재를 믿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내가 요사이 유달리 깊은 가을의 모습에 감동하는 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이 추기경도 어느 날 나무의 모습을 보다가 깊은 영감을 느끼고 곧바로 가톨릭에 입교를 했다고 한다. 비슷한  case로는 유명한 당대의 석학 Narnia Trilogy로 알려진 C.S. Lewis 의 천주교 개종 일화도 있다.

 

I walk therefore I am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오늘 도 Ozzie와 둘이서 정처 없이 2시간을 걸었다. 그야말로 spectacular, gorgeous day, 깊어가는 가을의 모습, 이곳에 산 이후 제일 멋진 가을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면 내가 자연을 보는 눈의 차원이 올라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눈으로 들어오는 물리적(광학적) 그림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뇌 능력이 발달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 이상의 형이상학, 초월적인 현상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오늘 드디어James Martin신부의 걸작,  ‘성자처럼 즐겨라!’ 의 ‘필독서’ [필사, 독서의 약어]가 일단 완료되었다. 재독을 하며 교정을 보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의 요점은 대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즐겁고 명랑한 신자가 이상적인 그리스도인임을 주장하는  마틴 신부의 경험적 논문 급의 정말 탁월한 솜씨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책의 주제를 나와 어떻게 연관을 지을까 하는 과제는 남는다. 읽으면서 생각을 많이 하긴 했다. 우선 나와는 거리가 먼 어려운 요구라는 것, 나는 어쩌면 너무 심각한 자세로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나와 함께하는 나의 주변 가족, 지인들… 미안하기도 하다.

반갑지 않은 연례행사, 지난 밤에 이미 벽, 손목시계를 모조리 한 시간씩 늦추는 [새벽 2시가 1시로]  고역을 치렀지만 덕분에 아침잠 한 시간을 벌었다. 큰 생각 없이 맞이한 연중32주간 시작 본당 주일미사, 가보니 매년 이즈음 ‘평신도’ 주일이란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2010년대 초,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 재임시 연숙이 평신도 대표의 한 사람으로 강론대에 올랐던 추억까지는 좋았는데.. 글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뜻밖에  ‘W 마귀’의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허~ 미리 알았더라면 거의 십중팔구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을  피했을 터였다. 이 Kafkaesque, hypocritical, lying, attacking 하는 인간과 우리는 왜, 무슨 악연으로 엮였는가? 듣기 싫은  narcissistic mumbo jumbo, 귀를 막는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괴로운 자리였지만, 궁여지책으로 완전히 눈을 감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나의 모습,  죽도록 싫었다. 

오늘은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멋진 가을날’, 시간이 한 시간 늦추어진 것과 더불어 더욱 계절의 신비를 느낄 수 있은 날이 되었다. 오늘은 이전과 다르게 모처럼 Buford Highway의 전통적 명소, Farmer’s Market에 들려서 떨어진 쌀도 사고 식사용 스시, 비빔밥을 그곳의 food court에서 사왔다. H-Mart에 비해서 조금 낡은 내부였지만 이곳의 물건들, 특히 produce 류들은 이곳이 훨씬 싱싱한 듯 보였다. 하도 인상적이어서 다음 주부터는 이곳도 정기적으로 오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환하고 깨끗한 것은 H-Mart로 가고 싱싱한 것, 푸짐한 것을 찾으려면 이곳 Farmer’s Market… 허~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 1989년경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와 비교하면 이건 완전히 천지개벽, 아니 천지창조 된 느낌까지 든다.

 

아침의 얼어붙는 듯한 스산함에서 갑자기 찬란한 태양에 힘입어 부드러워진 대기 속을 걷고자 새로 개발된 neighborhood trail을 45분 동안 걸었다. 걷는 것과 혈압조절의 관계를 의식한 것이 제일 큰 동기가 되었나, 연숙이 나보다 더 열심히 산책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나도 싫지는 않다. 그렇게 오랜 세월 걷자고 했지만 이제야 정신이 나는 모양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제부터 내년 봄까지는 모기 문제가 없으니 걷는 것 큰 문제가 없지 않은가. 이것으로 신체의 각종 의학적 수치들을 조정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요새 계속되는 kitchen area paint, range hood쪽의 faux door 로 그곳이 한결 보기가 좋은 것에 힘을 입어 sink area의 paint job에 도전했다. 크게 힘든 일은 아니지만 귀찮게 자주 움직이는 것, 이제는 예전 같지 않고 지나친 결과에 대한 집착, 실수할 까봐 걱정하는 나의 모습이 싫다. 이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조금 실수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다시 하면 되는데… 시간은 넘치는데…

 

며칠 전에 거의 충동구매에 가까운 2권의 책이 빠르게 도착했다. 두 권 모두 나를 흥분시킬 만한 제목과 review를 자랑하는 책들이다. 과연 어떤 내용들일지… 기대가 크다.  Ilia Delio, 그녀의 책은 이미 사서 본 적이 있는 수준 높은 scholarship을 지닌 저서들이어서 아마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책, 보기에도 웅장하게 보이는 hardback 멋진 장정으로 심각한 인상을 준다. 과연 Is God Dead? 에 걸맞은 Is Atheism Dead? 제목답게 21세기의 classic으로 남을 것인가? 

하느님 맙소사! 오늘은 정말 극과 극의 극단적 날로 끝이 나는가? 왕마귀에서부터 ‘IS ATHEISM DEAD?’의 저자 Eric Metaxas란 새로운 이름의 저자까지.. 정말 이상하고 싫은 날이 되었다. 왕마귀는 그렇다 치고, Metaxas 라는 발음하기도 괴로운 이름의 인간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의 최근 간행된 책의 저자가 바로 ‘DONALD 개XX’ 신봉자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문제는 이것이다.  어떤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쓴 저자의 배경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 예를 들어서 ‘하느님의 존재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사람의 배경에 그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정치인을 전폭적으로 지지 한다는 것이 포함이 된다면? 이것 정말 예상치 못한 대형사고다. 앞으로는 책을 살 때 그 자자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인가? 책을 return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선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고, 또한 책에다가 재빨리 나의 sign을 한 것, 등으로 return을 하는 것은 옳지 않는 듯 싶다. 아~ 괴롭다, 괴로워…

Amazon의 book review를 읽으면 이 책의 내용에는 저자의 ‘비이성적’인 정치관은 거의 없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니까 책의 저자를 의식하지 말고 책의 내용에 집착을 하면 이 책을 버리거나 돌려보낼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그래도, 찜찜한 것은 역시 나의 ‘과민한 상태’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 냉정하게 판단하고, 읽자, 이 책을…

지난밤 정말 깨끗이 잤다. 한번도, 한번도 깨지 않고… 귀찮은 pee, 악몽, 밖으로부터의 소음.. 등등이 하나도 없었던,  8시간 이상의 straight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이다. 이것이 또 하루를 살게 하는 ‘밥’인가? 그래, 이 정도면 건강한 모습이다.

예보대로 dreary, gloomy, dark, breezy, wetting… 모두 섞여있는 깜깜한 밖의 모습, 안전하고 아늑한 실내의 고마움을 잊고 싶지 않다. 집, 보금자리, 제2의 장구한 추억이 아롱진 집의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예상대로 오늘은 대낮도 거의 초저녁 같이 어둠이 깔리고 소낙비는 아니더라고 꾸준히 비가 내린다. 가끔 바람이 불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런 창 밖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가끔씩 작은 우산을 들고 tool shed로 뛰어가서 몇 가지 필요한 tool들을 가져왔던 그야말로 ‘가을비 우산 속’을 경험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잠시 range hood 위쪽의 duct를 cover하는 작업에 정신을 쏟았다. 일단 보이지 말아야 할, 가려야 할 ducting을 예전처럼 꾸며놓았다. 일단 이 작업은 끝났다고 보아도 되지만, 조금 더 그 주변의 미화작업을 하는 것은 필요할 듯…

 

Thomas Berry reading을 며칠 전에 이어서 읽는다.  오늘 것은 ‘지구 환경, 생태학의 영성’ 에 관한 것. 지구환경이나 생태학 등을 과학적인 눈으로만 보는 것은 부족한 접근 방법이며 궁극적으로 영성, 영적인 차원이 필요하다는 요지다. 오늘은 잡스러운 소음, 주로 음악들이 없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읽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다. 읽을 수 있는 건강한 두 눈과,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적인 머리가 살아있는 이 나이가 귀중하게 느껴진다. 과연 언제까지 나는 이런 기본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어제 연숙이 어디서 보았는지, 앉았다가 일어날 때 머리가 아뜩해지는 증상을 느낀 후 평균 10년 정도 더 생존했다는 통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허~ 그런 통계도 있나… 10년 씩이나 더 산다고? 짧지는 않지만 문제는 그렇게 ‘숫자로 정해진 기간’을 보니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누가 감히 죽은 날을, 하느님을 빼고, 알 수 있단 말인가?

날씨의 도움으로 차분해진 가슴과 머리를, 오랜만에 손에 잡히는 책들을 읽고 생각하는 쪽으로 관심을 쏟았다. 지나간 여름의 독서 목록에 있는 것들, 너무나 목표가 높았던지 꾸준히 매일매일 조금씩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 중에 오늘 손에 잡힌 책들,  James Martin, SJ 의 저서들 중 (1) Jesus, a pilgrimage, (2) Essential Writings (3) Learning to Pray 세 권은 거의 우연한 선택이었고 책의 내용도 보기와는 달리 아주 가벼운, 경쾌한 것들이었다. 

확실히 기온이 떨어짐을 느낀다. 그렇게 습도가 높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게 잠을 잔 것이다. 6시 반에 일어났지만 잡스러운 꿈을 기억하느라 누워있었다. 7시를 전후해서 아침 routine을 시작한 날, 오늘은 어떤 하루를 창조할 수 있을까?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덤덤하게 이끌려 가지 말고 내가 만드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오늘은 9월의 첫날, ‘명색이 가을’의 느낌을 주는 단어가 9월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기분학상으로도 써늘한 피부의 느낌과 thermostat에 보이는 70도라는 숫자, porch door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 등등이 가을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그래 나는 올 가을의 ‘갈색’을 그렇게 기다렸지…

완전히 개인 날씨일 뿐 아니라 바람까지 산들산들 부는 여름 들어서 제일 시원한 느낌을 주는 날이 아니었을까?  85도 정도에 비교적 건조한 대기는 상쾌한 것이었다. 9월의 시작을 시원하게 맞는다.

 

A Coursera course:  Journey of Universe specialization No 2, conversation을 힘차게 시작하였다. 첫 번째 것의 반복도 포함 되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것으로 나는 ‘과학+종교’의 대화가 시작되는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은 테이야르 샤르댕의 공헌이 지대했을 것이다. 진화론을 그리스도교에 완전히 이론적으로 접목하는 그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학식이 나왔을까?

늦게 손에 잡힌 책이 작년 3월 Pandemic이 선포되던 때 산 Capra (with Luisi)의 The Systems View of Life, a unifying vision.. 왜 이 책이 눈에 띄었을까? 물론 현재 ‘청강’하고 있는 Journey of the Universe 코스의 영향이다. 오늘 이 코스에서 새로 찾은 석학 Thomas Berry의 유명한 저서 The Dream of Earth 중에서 New Story 란 부분을 필사를 하면서 이미 인문학, 과학, 종교 등이 서서히 대화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지 실감을 못한 것이다. 특히 진화론에 대한 나의 얄팍한 편견, 가톨릭 교리의 영향, 정말 편견, 편협한 생각이란 것 등… 눈을 떠간다, 나는 점점, 거대한 그 무엇을 향하여..

그 다음에 나의 눈은 2014년2월에 사서 읽을 책, The Language of God,  그 유명한 BioLogos 창시자 Francis S. Collins를 알게 해준 시발점이 되었다. 그의 해박한 과학철학종교 론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사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이 나는 너무나 부럽다.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처럼 살 수 있는가?

지난 밤에도 꿈을 많이 꾼 듯한데 아~ 왜 하나도 분명하게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일까? 기억하고 다시 그 꿈을 살고 싶은데…

잠 속에서도 비가 오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아하~ 이것 또 내가 상상을 심하게 했구나~ 혹시 hurricane Ida 가 완전히 이곳을 피해서 올라간 것일까? 조금은 섭섭하기도 한데… 알고 보니 지나가기 전의 상태인 모양… 하루 종일 폭우와 tornado 가능성이 높다고… 그럼 그렇지. 덕분에 조금 시원해질 것을 기대도 하고 세월의 변화도 신선하게 느낄 수 있고… 하지만 NOLA (New Orleans) 는 완전히 power 가 끊어졌다고… 전에는 flooding을 걱정했는데 그것은 OK인데 결국 power system이 이번의 victim이 되었나? Flooding보다는 몇 배 낫지만 power가 없으면… 이것은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 아닌가? West의 wild fire, 그리고 끈질긴 Pandemic Delta variant까지 nature는 신음을 한다. 아~ 테이야르 샤르댕 Teilhard de Chardin 신부님이시여, 저희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여름의 끝자락, 초록의 향연은 서서히…

 

8월 말, 9월 초가 되면 떠오르는 추억들, 별로 좋지 못한 것들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역사물들로 화석화가 되어가는 것들… 잊혀지지 못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도 2017년 8월 말,  ‘레지오 미친년’ 사건은 추억중의 악몽, 악몽중의 악몽에 속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여파로 나는 개인역사의 다음 장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악몽만은 아닌 것이다. 용서와 망각의 두 가지 중에서 망각을 택한 case일지도 모르지만 망각이 그리 쉽지도 않다. 아직까지 그 당시의 생생함과 놀라움이 느껴지니 말이다. 불쌍한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용서의 명분을 찾고 살지만 역시 망각이 먼저 올 것이다.

깜깜한 날씨에 알맞게 시원한 대기를 뚫고 가랑비, 세찬 비가 교대로 오기 시작한다. 이런 날이 바로 나의 날이다. 차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잔잔하고 편한 느낌, 이것이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기분이고 즐거움이다. 물론 ‘피해’가 없는 한…  유난히 우는 모습의 유나, 쩔쩔매며 돌보는 새로니 부부의 모습이 엇갈린다. 모두 겪는 것이지만 이 둘의 모습은 왜 그렇게 안쓰럽게 느껴지는지… 바로 이것 때문에 연숙이 그렇게 유난을 떠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죽을 때까지 이런 것들은 멀었다, 배우고 공감하려면… 하지만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Second Cup:  dark & rainy [hurricane] IDA day를 조금 더 가슴으로 느끼려 정말 오랜만에 2nd cup of coffee (freshly brewed Starbucks brand)를 둘이서 즐겼다. 연숙도 모처럼 문인화를 그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나는 두 번째로 보게 되는 ‘월척 越尺’ 이란 화석화 되어가는 KBS 드라마[게임] episode를 마주하며 아련~히 고향생각에 빠지는 사치함을 맛보고 있다. 그래, 이것이 우리의 IDA day가 된 것, 피해보며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너무나 응석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월척이란 드라마 게임 episode는 아버지의 숨은 교훈을 가르치는 멋진 이야기였다. 낚시로 거의 모든 주말을 보내는 정년퇴직을 앞둔 아버지[이신재 분]는 사실은 시골 산중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며 땅을 개간해서 조상 묘를 모시고 퇴직 후에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퇴직 후에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는 이야기, 낚시의 월척이 아니고 후손을 위한 월척을 한 것…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있었던 그 가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버지가 없었던 나에게는 조금 실감이 안 가지만, 부러운 것은 다른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란 것만 빼고.   

80년대 KBS 드라마게임 episode ‘월척’

 

Joe Biden 바이든, no more nice guy, 평소 그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거의 싸울 듯한 모습으로 자기의 아프간 철수결정의 정당성을 변호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인간성과 정치 철학을 지지하지만 그 결정의 시기와 눈에 보이던 결과가 문제가 아닌가? ‘개XX’ 졸개들에게 정치적인 허점을 너무나 많이 보이며 ‘정치자산’을 소비한 것, 어떻게 그것을 회복할 것인가? 산더미처럼 쌓인 big agenda들을 먼저 처리를 한 후에 했어도 그렇게 늦은 것이 아닐 텐데… 코앞에 다가오는 Nine-Eleven 9/11에 맞추려는 symbolism에 집착한 것이라면 그도 큰 실책을 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national address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최소한 그는 자신을 가지고 모든 책임을 지는 용기와 더불어 이번 결정과 결과 모두 역사가 공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에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서 조금은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YALE University  Coursera

Journey of the Universe: A Story for Our Times Specialization

Course 1: Journey of the Universe: The Unfolding of Life

Course 2: Journey Conversations: Weaving Knowledge and Action

Course 3: The Worldview of Thomas Berry: The Flourishing of the Earth Community

얼마 전에 Course 1의 audit가 일단 끝났다. ‘청강’을 한 셈인데 그런대로 많은 것, 특히 초거시적인 과학과 인문학의 접목을 목격한 셈이다. 알고 보면 이런 우주, 세계관은 Teilhard de Chardin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번에 새로 알게 된 Thomas Berry로 이어지는 종교, 인문, 과학철학으로 보인다. 지금은 제2 코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한동안 멀리하며 살았던 테이야르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번 끈끈한 여름에 거의 우연히 얻게 된 큰 수확 중에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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