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래도 감사할 것은…

Thanksgiving SongMary Chapin Carpenter

 

Ozzie 와 새벽 시간을 같이 지내는 2020년 추수감사절 아침이 되었다. 밤중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에는 그치기를 고대했는데 그대로 되었다. 축축하게 젖은 backyard로 튀어나갈 수 있었다. 의외로 기온까지 포근한 느낌, 조금 편한 느낌…

감사절, 추수감사절, 우리가 무슨 추수를 했던가? 생각해보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손자의 생명이 세상에 나와서 무럭무럭 자라고, 다른 생명이 잉태되었다. 이것으로 우리는 다른 것들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된 나, 비록 다른 경험으로 옮겨 갔지만 전의 고통에 비교를 할 수 있으랴…. 사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심장, 혈압의 공포에서도 조금 멀어지고, 조금씩 ‘깊어가는 늙음’에 적응을 시작한 올해였다. 코로나의 공포에서도 이제는 백신의 희망이 앞으로 보이고, 지난 4년간 해괴한 정치판도의 ‘꼴보기 싫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 미국의 대선, 이것도 사실 커다란 감사할 일이 아닌가?

우리 둘, 그런대로 건강하고, 먼 곳의 가족친지들도 큰 걱정이… 하지만 누나의 식구들은 풀어야 할 큰 숙제로 계속 남아 있지만.

신앙, 교회, 봉사, 세계관, 우주관, 인간관… 이곳에는 어떤 변화가? 내 삶의 의미를 조명해 주던 봉사활동은 치명상을 입었다. 나를 지탱시켜 주었던 것이 바로 봉사활동을 통한 신심이었는데… 그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이 성모님의 군단 레지오 였는데… 어쩔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왕마귀’가 만약에 우리 눈앞에 다시 나타나게 되면 나는 절대로 레지오에 남아있을 의미가 사라진다. 어쩔 것인가? 나에게 정답이 없다. 그저 그저 성모님의 응답만 기다린다.

 

 

몇 년 만인가? 감사절 New York Macy Parade를 편한 마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멋진 parade를 그 옆에서 보고 있는 humanity가 거의 안 보인다. 가슴이 찡해 온다.그래도, 나의 가슴이 조금은 안도의 숨을 쉬는가?  그래, 조금은 편하게 즐기면 좋겠다. 비록 오늘 우리는 혼자 조용히 탈 脫 전통적인, 조용한 감사절을 보내기로 했지만 편한 가슴의 속을 주신 것에 감사를 더 드린다.

 

마음껏 늘어지는 늦가을 하루..

기분 좋은 꿈을 기대하고 잤건만 반대로 새벽 5시 경에 눈이 떠지더니 다시 잠이 들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일찍 깼는데 더 자려고 했지만 약간 포근한 공기에 힘입어 5시 30분경에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어제 밤에 옮겨놓은 X-10 programmer가 제대로 되는가 궁금했지만 다행히 모은 light들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진다.

긴 편에 속하는 성경통독의 하루,  오늘은  ‘마카베오 上’을 계속 읽는다. 이 부분들은 거의 역사적인 것들이어서 그렇게 지루하지 않다. 시대도 로마제국과 연결이 되는 비교적 신약쪽에 가까운 때라서 더욱 흥미가 간다. 유다 마카베오… 나로서는 생소한 이름이니, 나는 정말 아직도 멀었다. 이런 것들 다시 더 계속 죽을 때까지 공부하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연숙이 부득부득 혼자 Ronan babysitting하러 가겠다고… 나는 못 이기는 척 하고 물러났다. 마음은 사실 반반이다. 가도 좋고, 안 가도 좋고… 하지만 연숙에게 나의 염려되는 마음을 보이고 싶기도 했다. 반은 연극일 수도 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집에서 큰 일을 할 자신도 없음을 알기에 그런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되니 오늘은 조금 더 느긋하게 지내고 싶은 꾀가 발동한다. 날씨도 바람이 부는 조금은 을씨년스러운 느낌, ‘추수감사절’ 휴일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 볼까나…

극동방송 인터넷 radio를 켜니,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온다. 나는 이것이 이상하기만 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크리스마스 문화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분명히 들었는데, 아무리 기독교 계열의 방송이지만 어떻게 이렇게 일찍이 이런 곡이 흘러나오는가? 누가 설명해 줄 수는 없을까? 아마도 작년에도 이런 것을 경험했기에 생각에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지도… 아니면 이것은 극동방송만의 선택이었을까? 아~ 나는 정말 고국에서 멀어진 고아처럼 느껴진다.

 

 

오래 만에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쏟아진 듯한 야릇하게 기분이 좋은 월요일 한 낮이 되었다.  분명히 편하게 지내면 한 것이 거의 없다는 느낌으로 또 기분이 쳐질 듯하지만, 오늘은 결정을 했다. 날씨가 싸늘한 것을 핑계로 늘어져보자… 하는 염원이다. 편하게 흥미롭고 유익한 ‘종교, 과학, 학문적’ 책을 필사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노년에 들어서 최고의 취미가 되었다. Robert LanzaBiocentrism, 그리고 A.J. Cronin의 저서전적 소설 ‘천사의 선택’ 이 두 권은 이제 속도가 붙었다.  추위로 완전히 손을 놓은, 밖의 일은 언제 다시 시작하나… 이것은 조금 염려스러운 것, 다시 손을 잡으려면 나는 항상 시간이 걸리니까… 하지만 일단 잡으면…

새로니가 ‘입덧’을 심하게 한다는 소식… 참, 우리 집은 엄마를 모두 닮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잘 견디리라고 확신을 한다. 이제부터 엄마의 손길이 더욱 바빠지게 될 것 같구나… 참, 여자는 불쌍하지.. 이런 고생을 하며 인간의 의무를 완수해야 하니.. 하지만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니까 순순히 순응을 해야겠지. 내년 7월이 예정이라고… 허 그렇게 오래 들 기다리더니 2020, 21년 연이어 두 명의 손주들이.. 참, 세상사는 이렇게 거대한 수레바퀴가 돌듯이 도는구나.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맛보아야 할 것들은 거의 다 나타난 모양… 이제는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 남은 듯하니…

결국은 ‘트럼프 개XX’의 모습이 점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모양인가? 억지를 쓰는 그 패거리들이 하나 둘씩 꺼져버리는 모양이다. 정말 이런 억지를 쓰는 그들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질까? 배웠다는 인간들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해괴할 수가 있을까? 지난 4년을 지내며 나는 이런 ‘추락한 인간상’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공포.. 이 공포는 사실 다른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모조리 없애고 싶은 상상을 하는 것, 바로 것이 나의 공포였다. 현재까지도… 하지만 하지만 서서히 사라질 희망이 보인다.

그것과 더불어 코로나 백신이 기록적인 speed로 개발이 되어서 코 앞에 보이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큰 영향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지지 않을까? 아이들의 직장도 그렇고.. 우리도 조금은 기를 피게 되고, 성당, 교회 등, 신앙생활을 안심하고 할 수 있고…  한가지 걱정은 Biden 이 교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조금 안심은 그래도 친 교회적 생각을 가진 Republican congress가 있으니 큰 바람막이 역할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고마운 악몽, Vanity of Vanities…

거의 정확하게 32도, 빙점을 만나는 이른 아침을 맞는다. 며칠 동안 조금은 익숙해진 따뜻한 옷이 더욱 포근하게 느껴지는 아침, 머릿속은 꿈의 잔영으로 가득하다. 이렇게 짧지 않은, 내용이 풍부한 꿈은 정말 오랜만이지만, 그것보다도 나를 더 들뜨게 한 것은 꿈의 type 이었다. 걱정 근심 고통 속에서 깨어나는 행복감 “살았다!”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으로 나는 심지어 얌전한 악몽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한 인간인가?

우리 집 옆에 우뚝 솟은 2층 집,  우리 이웃들은 모두 townhouse로 보였다. 심지어 옆의 Dave 집도 마찬가지… 우리에게 집이 두 채나 있었던 모양이지만 옆에 있던 집의 지붕이 안 보였다.  아마도 오랫동안 비에 방치된 모양으로 결국 폭삭 가라 앉았던 것… 비가 또 오면? tarp로 우선 덮어야 하지 않은가? 그것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지 않은가? Handyman이나 contractor를 불러야… 아~ 이제 모든 것이 내 주위에서 주저 앉는가? 

이렇게 해서 나는 우리의 옆집에 들어가 보았고, 그곳에서는 난데없이 성당교우  서 토마스 형제까지 보았고… 이제부터 개꿈으로 접어드나? 참, 이런 꿈, 재미있다. 나는 안다. 왜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수해’에 관한 꿈을 꾸는지… 아마도 우리 집 지붕이 새는 것 때문에 더욱 자주 꾸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싫어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꿈 자체는 나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래서 악몽도 즐거울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고조된 아침의 느낌에 힘입어 오랜 만에 mainstream TV news를 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제는 다시 그 ‘개XX’가 앞으로 4년 간 안 보일 것이 확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고, 예전보다 덜 그 XX 얼굴을 안 보아도 될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기쁜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쪽으로 나는 나 자신에 실망을 한다. 왜 이렇게 믿음, 희망과 용기가 없단 말인가? 왜? 왜?

아침 식사 전에 부지런히 오랜만에 둘이서 Sam’s Club엘 갔지만 9시가 아니고 10시에 일반입장을 시킨다고 해서 돌아왔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그럴 수도 있지… 가서 오랜만에 book section엘 가보려고 했던 것, 조금은 아쉽지만 다음에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부터 성경통독은 ‘코헬렛’으로 접어들었다. Vanity of Vanities!로 유명하고  To everything, turn, turn, turn으로도 유명한 구약 지혜서의 하나다. 또한 2014~5년경 하태수 미카엘 신부님과 함께 했던 추억의 레지오 피정에서 영화를 통한 강론, 영화는 ‘바베트의 만찬’이었다. 그곳에서도 ‘그 남자’가 중얼거렸던 구절도 이 ‘허무로다, 허무…. Vanity of vanities… 였었지… 이것을 읽기 시작하면서 성경주석가들은 이것을 어떻게 평하고 있을까 궁금해서 이곳 저곳을 뒤져보기도 했다. 인생이 모두 허무하다고 외치는 것은 조금 성경의 진면목 ‘희망’ 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다른 의미가 숨어 있을 듯한데… 나의 해석은 역시 ‘하느님을 떠난 각종 세상사, 그것이 허무로다…’ 그런 것 아닐까?

레지오 화요일, 그리고 장례 미사

레지오 화요일, 장례미사, 동네방네 등의 이름이 줄줄이 떠오르는 싸늘한 아침, 거의 시계처럼 정확한 동작으로, 그야말로 시계처럼… 히터가 요란하게 나오는 소음 속에서Izzie의 아침 인사를 받으며 비교적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창문 blind를 조금씩 열어놓고, 아래층으로 내려와 나의 office의 light를 키고, 혈압약 2개를 입안으로, 계속 보채는 양양이에게 Temptation을 주고, single cup coffee maker로 coffee를 갈아 내리고, 나의 desk에 와서 coffee를 마시며 성경통독, 마지막에는 지금 읽는 시편을 나의 ‘근사한’ microphone에다가 낭독, 녹음을 하고…. 서서히 지난 밤에 도착한 email, 그리고 blog count… 이것이 나의 이른 아침 일과이지만 오늘은 레지오 주회합 준비 차 과외활동이 더 있음은 물론이다….. 아~ 너무나 틀에 박힌 일상이지만 그래도 보람된 여생의 하루여…. 주님, 감사합니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하루를 올바르게, 보람되게, 건강하게 살아 보자!

오늘의 virtual 카톡 레지오 주회합, 큰 감흥은 없었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났다. 아가다 자매님, 전화기를 안 가져 오셨다고 해서 빌려 쓰는 전화기로 간신히 [계]응 과 활동보고를 했는데… 참 이런 일들이 나의 기운을 빠지게 한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활기찬 예전의 레지오 활동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참, 한심하기도 하고 암담하기도… 하지만 포기는 안 한다.

거의 9개월 만에 성당 내에서 장례미사 참례를 하였다. 같은 ‘전’ 구역 형제, 송 아오스딩 형제의 어머님, 큰 고통 없이 임종을 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꽤 많이 왔고, 그 중에는 거의 2년 만에 다시 가까이 보는 구역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 어색하고 쓰라린 추억을 되살리는 듯 해서… 이제 과거지사는 뒤로 보내고 앞을 보고 살고 싶다.  장례 미사 후에 예정대로 조시몬 형제와 셋이서 동네방네에서 식사를 하였다. 현재의 Pandemic 때문에 조심스럽기는 하였지만, 조금은 감개무량한 순간이 된 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갈 수가 없었던 곳이고, 이곳에 얽힌 갖가지 추억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이곳에서 나의 지난 10년의 주옥 같은 추억이 얽혔던 것, 잊을 수도 없고 잊지 않고 싶다.

달력을 무심코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니~ 11월이 다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 12월? 올해는 다 가는 것? 무엇인가 할 것들을 못하고 지내는 것, 그렇다 backyard의 tool shed에 관련된 일들이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할 때 다 끝내었어야 했는데, 올해도 예년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부터 priority를 모조리 재조정하고 push하면 가능할까? 그렇다. 가능한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끝내고 싶다….

창포 菖蒲 필 무렵, 꿈같은 추억이여~

 

얼마 전에 우연히 보았던 1980년대의 TV 프로그램 KBS TV 문학관 중의 ‘창포 필 무렵’이란 드라마, 1987년 경에 방영된 것이다. 이 장수프로그램  “TV 문학관”으로 나는 1980년대 대한민국의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 ‘창포…’ 를 보면서 아득하고 아련한 어렸을 적을 추억과 맞물려 이렇게 두 번씩이나 보게 되는가.

시골이 배경이지만 우리 때보다 훨씬 기름진 부유함이 보여서 실감은 좀 떨어지지만 주인공 소년아이는 100% 내가 빨려 들어갈 듯한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그 녀석이 된 것이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나의 눈을 끈 한 scene, 주인공 녀석이 ‘상사병’이 나서 앓아 누워있는 방의 모습이다. 아마도 내가 살았던 서울 가회동의 방도 그와 비슷했지 않았을까? 엄마, 누나, 밥하는 누나 이렇게 셋이서 나를 둘러싸고 앉아서 따뜻한 간호를 했던 기억들.  아플 때면 그렇게 사랑을 흠뻑 받아서  나는 몸이 아픈 것이 그렇게 괴롭지 않았고 심지어 그리워할 때도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여동생 가진 것이 인기였지만 그 전에는 이렇게 돌보아주는 누나가 더 인기가 있었다.

 

 

‘예쁜 누나’로 나오는 처녀, 어쩌면 나도 그 나이에서 꿈 속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를 동경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그 녀석이 느끼는 아련한 연정이랄까…  이성 異姓적인 각도가 제외되었다는 것을 빼면 지금도 마찬가지 심정일 듯하다. 사춘기 전에도 그런 ‘동경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여자아이나 누나뻘, 심지어는 젊은 아줌마나 되는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에 완전히 눈이 뜨게 되면서 그런 순수한 것들은 퇴색되었지만, 완전히 모든 것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예전의 100% 순수한 사랑 같은 아련한 느낌은 지금도 건재하니… 이런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여기에 나오는 묘령의 누나 아가씨의 이름은 ‘예명숙’으로 나온다. 이 TV 탤런트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다. 지금 쯤은 아줌마 세대로 접어들지 않았을까? 아~ 멋지고 달콤했던 당시의 세월이여~

 

‘일본식’ 기마전을 하는 ‘국민학교’ 아이들

이 프로그램은 손소희 원작을 드라마화 한 것이지만 원작의 줄거리를 떠난 다른 영상들, 비교적 부유한 시골의 모습과 그곳의 ‘국민학교’ 교정, 거기서 ‘기마전’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들은 거의 100% 나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서울 재동 국민학교의 그것들이었기에 나는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드라마를 만들어 준 제작자들이 너무나 고맙기도 했다.

해물잡탕과 Biocentrism

9개월 손자녀석 Ronan, 이렇게 그네 타는 것, 기억에 안 남겠지..

 

해물잡탕, 연숙의 특기,  점심을 푸짐히 먹고 일찌감치 bedroom으로 가서 낮잠을 거의 2시간이나 자고 났더니 의외로 기분이 다시 밝아지는 듯했다. 그래, 변하는 것은 나의 주위 여건이 아니고 나 자신인 거야… 잊지 말자.  문득 카톡을 보니, 이게 누구인가? 교성이, 정교성? 그것도 영어 문자로… Biden이 Georgia 에서 이겼다고?  이것이 무슨 말인가? 아하… 이제에 Georgia 의 늑장 개표가 다 끝난 것인가? 아니 Canada 시민인 교성이 네가 왜 그것에 그렇게 관심이 있었단 말인가?  아하~ 너도 트럼프라면 소름이 돋는… , 반가운 마음에 답을 쓰려고 했지만 자제를 하고 있다. 그 동안 어떻게 해서 나와 연락이 다시 끊어졌는지를 되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 내가 오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오해… 그 녀석의 신경질적인 말 한마디를 너무나 크게 생각한 것인 아니었을까?

 

기다리던 책이 왔다. Robert Lanza의 2010년 책, Biocentrism… 과연 이 책은 어떤 것을 나에게 일깨워줄 것인가? 확실한 것은 physics보다 biology가 더 원초적primordial한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physics가 biology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완전히 뒤바뀌는 것. Biology로 physics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 모든 것이 거의 100년 전 Quantum theory에서 출발한 것임을 알면 더욱이나 놀랄 수 밖에… 참 세상과 세계관은 최근에 더욱 더 빨리 변하는 듯하다. 몇 백 년 동안 굳세게 우리의 생각을 지켜주던 기본 중의 기본적인 ‘현실’이 흔들리고 있음은… 이것으로 또 ‘신학’의 위상이 더 값진 것이 될 것을 나는 희망하고 희망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나중에 도달하는 곳은 역시 그 궁극적인 해답, 신학이 아닐까?

이 책, 드디어 정독, 필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나는 책을 그런대로 완독을 할 수 있음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Introduction과 Chapter 1을 시작했지만 현재까지의 ‘필체’로 보아서 내가 끝까지 관심을 가질 수 있음을 짐작한다. 혹시나 New Age 류의 책은 아닐까 했지만 이 저자는 나름대로 아주 심각한 과학자임을 알고 조금 믿음을 가지기로 했다. 거대한 가설, 그것은 역시 ‘의식, consciousness’ 였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출발했다는 것.. 참 멋지고 거대하고 신학적인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래, 앞으로 이 저자의 책들을 한번 읽고 싶다.

 

올해 11월은 아무래도 따뜻한 가을 중에 하나일 것이라는 것과,  2014년 11월 중순 Polar Vortex란 것을 경험했던 기억과 어울린다. 정말 모든 것이 무섭게 꽁꽁 얼어붙었던 광경이 떠오르고 당시의 우리 둘 의 coming out [from something] 하던 초기 과정을 잊을 수가 있으랴? 지금 생각하면 참 ‘멋진 경험’의 시작이었지… 잊지 말자, 우리어머님, 성모님을…

가랑비와 오수 午睡의 매력은..

오후의 가랑비와 낮잠은 완전한 조화를…

가랑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 때로는 개일 때도 있는, 그런 날이었다. 낮잠을 자기에 알맞은 그런 날이어서 점심을 chicken pasta로 배를 불리고 아예 침대로 가서 낮잠을 즐겼다. 하지만, 낮잠을 자는 머리 속은 묵직한 것이었다. 가회동 골목 중앙 후배가 보내준 ‘북촌 계동’이란 짧은 video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한 탓이었을 것이다. 그 옛날이 그리운 것, 모든 것이 변한 것, 이러한 것들은 모두 평상적, 정상적인 삶의 일부분일진대 어째서 나는 그렇게 슬퍼하는 것일까? 변하는 것이 싫은 나의 원초적인 성격, 그것이 사실일까? 왜 나는 그렇게 유별나게 과거에 대한 집착과 변천하는 것에 대한 서글픔이 그렇게 큰 것일까?

올해는 깊은 가을의 색깔들이 천천히 천천히 변하고..

집 앞의 낙엽은 치우는 것이 이제 포기하고…

뒷 뜰의 낙엽도 이제는 보는 것으로 만족…

오늘 성경통독 드디어 욥기로 접어들었다. 일주일 동안 읽게 될 이 ‘고통의 말씀’, 어떤 것을 나는 얻게 될 것인가? 고통에는 이유가, 우리가 보기에, 전혀 없을 수도 있다..라는 것일까? 관건은 하느님이 일부러 고통을 주실 수도 있다는 끔찍한 진리가 아닐까? 아~ 어렵다, 고통이란 것은 반드시 우리와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자.

문득 생각이 났다. 레지오 카톡모임을 하면서, 혹시 우리  성당의 등대회나 고국의 친구들도 시간을 정해놓고 만나서 문자로 안부를 전하면 어떨까…  중구난방, 뜬금없이 아무 때나 발언을 하는 것, 물론 편한 시간이 보는 것은 되지만 의미 있는 대화는 안 되지 않는가? 우선 정식으로 등대회의 회의 형식으로 모여서 시도를 해 보면 실상이 들어날 듯하다. 한번 임형에게 제안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미국은 과연 어디로…

어제의 그것, 머리 속에 가득하지만 일찍 잠을 자며 잊었고, 아침에도 성경통독을 하며 계속 어제의 대통령 선거 소식이 떠오른다. 과연 어떻게 결과가 나왔을까? 왜 이런 ‘세속적, 정치적’인 것들에 나는 은근히 보이지 않게 연연하는가? 왜 초연하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 더 사려 깊어진다고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점잖지 못한 것일까?

간신히 현재 투표, 개표의 상황을 엉뚱하게도 조선일보 website에서 훔쳐 보았다. 역시 트럼프가 승산을 확실히 가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그들 지지하는 인간들, 그들의 이유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법과 질서를 사랑과 자비의 위로 선택하는 이유는?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4년 동안 더욱 위상을 높일 수 있을까? 보호를 더 받을 수 있을까? 극단적 진보성향은 유럽의 교훈을 보아서라도 자제될 것인가? 앞으로 4년이면 우리에게는 전혀 다른 미개척지에 속한다. 우리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재선으로 크게 변할 것은 많이 없고 현재의 추세가 지속될 것이다. 반대로 바이든 정권하에서는 무서운 보복까지는 아니더라도 4년 동안 지속된 ‘보수화’가 완전히 원상복구가 될 것이니… 참, 어렵다.

현재로써는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인간, 트럼프가 쉽게 인정을 할까?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야 결론이 날 듯하다. 만약 바이든이 된다면? 트럼프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증오, 혐오감, 당혹감은 이제 서서히 사라질 테지만, 종교의 자유 쪽은 어떤가? 각종 변태적, 변종적 성도착류의 인간들이 거리를 활보할 것은… 이런 쪽으로는 지나간 4년이 그리워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과 극으로 갈라진 나라의 꼴은 조금 나아질지 않을까? 정말 어려운 시대를 걸어간다.

우리의 레지오 미래, 봉성체 재개

거의 빙점까지 내려간 모양이다. 예보도 그렇고 느낌도 그랬다. 영락없는 늦가을 날씨, 건조하고 싸늘하고 바람이 없는 날씨… 오늘은 비록 내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기를 쓰며 ‘정치적 관점’을 조절하여 왔지만 그래도 초조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던 그것으로부터 최상의 것을 찾자.. 라는 것, 그렇게 쉬운 일일까? 도전일 것이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나도 성숙한 위치에 있는 듯하다.

오늘은 10 년 전통의 레지오 화요일, 처음에는 그렇게 기분이 들뜨고 즐겁기까지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리 긴장이 되기도 하고 요새는 그렇게 기쁘지도 않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해결책은 하나도 없다. 그저 주재하시는 성모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만 기대한다. 그저 물이 흐르는 대로 흐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레지오와 연관이 되어 새벽잠에서 생각한 것, 꾸리아 단장 선출에 관한 것.. 12월에 단장선출이 있는데, 정말 우리게는 또 하나의 도전으로 느껴진다. 만약에, 2년 전에 우리에게 아픈 상처를 주었던 어떤 특정한 인물이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미련 없이 정든 레지오를 떠날 것을 오래 전에 결정을 했던 터였다.  이 선출의 결과에 따라서 우리는 아주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Pandemic 레지오 주회합 주재는 흡사 telemarketer 와 비슷한…

오늘 평일미사는 예외적으로 순교자 성당에서 할 예정이어서 아침시간이 조금은 여유로웠다. 하지만 요새는 레지오 주회합 시작하기 전에는 조금 긴장이 된다. 처음에는 멋 모르고 시작했지만 할수록 더 조심스러워진다.  귀에 거슬리는 audio latency같은 기술적인 문제들 (음성)로 항상 안심을 못한다. 주회합이 끝나자 마자 정말 정말 오랜 만 (2월 중순 이후)에 화요일 정오 미사엘 갔다. 봉성체 때문이었다. 사람들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예전 레지오가 있었을 때와는 거의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예전처럼 앞 구석에 앉았다가 성체를 받은 후 곧바로 채 아오스딩 형제 댁, Marian Apartment로 drive를 하니 정말 감회가 솟구친다. 정든  Buford Hwy는 생각보다 한가하였고 날씨는 싸늘하게 화창하고,… 정말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 거의 9개월 만에 다시 만난 채형제, 느낌대로 예상대로 건강한 모습이었다. 아니… 전보다 더 나아진 것은 아닐지? 이런 코로나 사태가 본인에게는 더 좋다고… 그것도 이해는 간다.

오늘의 daily routine은 사실, Pandemic 전의 성당 주회합과 거의 다를 것이 없다. 레지오를 집에서 주재하고 성당으로 drive한 것, 그것이 다를 뿐이었다. 시간적으로도 기적처럼 잘 맞는다. 레지오 회합 시간이 대폭 줄어든 것과 항상 막히던 I-286의 traffic 이 전처럼 밀리지 않는 것, 모두가 도움이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될 지는 누가 알랴?

시작되는 감사의 11월에는…

11월이 시작된다. 물론 내일의 미국대선이 제일 큰 뉴스거리겠으나 나의 자세는 이제 그런대로 굳건하다. 누가 되던 간에 ‘좋은 쪽’을 보기로 했다. 나의 정치이론도 조금은 정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쇼’들이 초래하는 것들,  모두 우연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 된다. 모든 일들에서 좋은 점, 좋은 결과, 좋은 미래를 찾도록… 모든 인간사를 관장하는 안 보이는 거대한 손길을 느끼면 된다.

사람의 향기, 냄새를 가깝게 맡고, 보고, 느끼는 것, 이것의 효과는 정말 계속 놀랄 정도로 대단하다. 며칠 간의 우울함이 도라빌 순교자 성당, 이른 아침 8시 30분 주일미사로 거의 깨끗하게 가셔지는 것을 느낀다. 왜 그럴까? 왜? 어떻게… 비록 다시 나는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것으로부터 99% 해방이 된 것이다.

 

Bourbon for coming holidays…

오랜 친구, 설 형제, 고맙게도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Sherlock [liquor store]을 호시탐탐 노리며 고민하던 것을 우습게도 몇 초 만에 풀어 주었다. 나에게 술 선물을 보내온 것이다. 내가 잘 모르는 Bourbon이지만 상관이 전혀 없다. 고마움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았으니까…  그것을 들고 헬레나 자매가 정말 오랜만에 미사에 나왔다. 변치 않는 그 모습, shopping bag안에다 그 Bourbon과 애기 옷까지…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오래된 친구 같은 부부, 제발 남은 세월을 보람되게 보내기를…

 

감사, 감사! 아버지, 이정모 사진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기록된 순간!

아침에 조금은 눈이 익은 이름의 email, 한국 에스페란토 전경덕 선생이 보낸 PDF file을 보았다. 한국 에스페란토 100주년 기념집이었다. 몇 년 전부터 연결이 된 이 ‘추억의 단체’의 ‘100주년 기념집’에 아버지의 사진이 비록 작은 것이지만 이름과 함께 올려졌다. 아버지, 제가 그런대로 조그만 일을 했습니다. 영원히 아버지 이름이 그곳에 남을 것입니다!

 

낮에도 공기가 싸늘하다. 어쩌면 이렇게 세월, 시간, 계절… 변함없이 정직하게 흐르고 있는가. 1분만 움직여도 등줄기로 땀이 줄줄 흐르던 올해의 여름은 나에게 괴로운 세월이었다. 입안의 각종 고통, 불편함과 난데없는 생명의 관건인 심장, 혈압 등으로 몸을 움츠리고, 어떻게 그런 괴로운 시간들을 우리는 그런대로 잘 견디었을까? 이것은 자랑스럽다. 내가 괴로울지언정 주위에는 큰 관심과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좌우명이고 신념이다. 죽을 때까지… 죽을 때까지…

Tropical Storm, Zeta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이 집과 전깃줄에 피해를 주었다

정말 이상한 날이 계속되는가? 어제 저녁부터 안간힘을 쓰며 함정에서 빠져 나왔던 것을 기대했지만 오늘 새벽의 ‘천재지변’이 다시 이상한 날의 시작으로 만들었다.

일기예보보다 늦게 들이닥친 열대성 폭풍우 tropical thunderstorm Zeta , 사실은 ‘풍 風’이 ‘우 雨’보다 더 무섭게 다가왔다. 비가 덜 내린 것은 가상하다마는 세찬 돌풍, 오랜 만에 걱정이 될 정도로 세찬 것이었다. 혹시 무슨 사고라 날 지 모르는 것, 이런 것들 예전에는 정말 흥미롭게, 즐기기도 했지만 요즈음의 나는 영락없는 ‘겁쟁이’가 된 듯하다.

새벽 5시 넘어서 도저히 겁에 질려 누워있을 수만은 없어서 어둠을 헤치며 내려 왔지만 이번에는 전기가 완전히 나갔다. 분명히 세찬 바람에 어떤 나무가 쓰러져 전깃줄이 끊어졌을 지도… 문제는… 기분에… 이것 다시 들어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한 것이다.

 

뜻밖으로 어둠 속에서 고요하게 명상을 할 기회를 얻었다

결국 5시간 만에 다시 들어왔지만, 덕분에 아침 밥은 [natural] gas만으로 해결을 하였다. 깜깜한 시간에는 묵주기도를 40단까지 바치기도 했다. 나라니, 새로니 동네도 모두 전기가 나갔다고 해서 처음에는 아틀란타 전 지역이 영향을 받을 줄 알았지만 사실은 각 지역마다 각각의 폭풍우의 피해가 따로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기회에 모든 ‘종이류’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각종 서류들, 지나간 레지오 문서들… 온통 거의 5년 이상 방치가 되었던 것들이다. 이번에 거의 다 모두 정리해서 대부분은 버릴 희망을 한다.

가을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이 유명한 찬송가가 마틴 루터가 만든 choral이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토요일 아침 (한국은 밤) 시간에 극동방송에서 ‘이대 교수’란 사람이 진행하는 ‘교회 고전음악’ 프로그램에서다. 이 프로에서 교회 고전음악을 들으면 사실 대부분이 종교개혁 전의 것임 알게 된다. 개혁 후에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 ‘내 주는 강한~ ‘ 찬송가는 어렸을 적, 용기 형이 연대에 입학하면서 배워서 나에게도 열심히 불러 주었던 기억이다. 아마도 연대 채플 시간에서 배웠던 모양… 

오랜만에 날씨가 잔뜩 흐려가고 있다. 예보에는 오후부터 비가 올 것이라고… 오랜만이라 좋지만 제발 ‘살살’ 내렸으면 좋겠다. 벌써 내일이 주일, 성당미사, 영성체… 허~ 정말 요새 세월 흐르는 것을 보면 가관이다. 그래도 주일날 아침에 아주 작지만 social,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것은 은총 중의 은총이다.

이인복 마리아 교수가 번역을 한 ‘성령기도회를 위한 30가지 가르침’이란 책 요새 유심히 본다. ‘성령쇄신…’이란 것으로 나는 크게 흥분하지는 못하지만 이 책에서 나는 많은 것을 새로 배우는 느낌이다. 특히 ‘사설 교회’란 chapter는 개신교 사상의 함정을 알맞게 요약을 해 주었다. 여기서 사설교회는 아마도 private church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예보대로 구름이 잔뜩 끼더니 정확하게 2시경부터 부슬부슬 비가 뿌리더니 오후 내내 비교적 잔잔한 소리를 내며 비가 내렸다. 다행히 그 전에 잠깐 나가서 porch screen repair를 계속하였다. 물론 이것은 paint작업을 위한 준비단계이지만 이번 기회에 조금은 번듯하게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마늘을 거의 2시간 가량 까며 오후를 마감했다. 하지만 Roku TV를 보며 했으니 그렇게 심심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마늘 까는 것을 도와준 지 세월이 얼마나 되었나? 짧은 기간은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 나는 열심히 마지막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늦은 낮잠을 거의 2시간  채 못되게 자고 났더니 훨씬 기분이 좋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Basil Rathborne 주연의 Sherlock Holms 영화들은 나를 더욱 편하고 포근한 곳으로 데려간다. 그래 이런 순간들이 모이면 그것이 행복이란 것이 아닐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The Best Part of Wakin’ Up…

80’s aroma, memories coming back…

Folgers’ day! Folgers coffee,   커피 광고의 tagline, The Best part of wakin’ up is Folgers in your cup…, 아직도 이 말에 귀에 익숙한 것. 처음에 보았을 때, 흡사 담배 찌꺼기같은 색깔로 보이던 이것, 역시 거의 반세기 전으로 추억이 돌아간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미국인’들이 즐기던 ground coffee의 원조, 거의 같은 모습으로 아직까지 upscale Starbucks 치하에서 살아 남아 있다. 어떻게? 아직도 이것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가? 같은 종류로 Maxwell House coffee도 있다. 광고 tagline은 Good to the last drop… 이었던가? 진한 진짜 향수 香水처럼 이 오래된 coffee의 향기가 나를 이상하게도 포근하게 한다.

신혼 초 Mirror Lake near Quadrangle, Ohio State University

어제 연숙이 Sam’s Club에서 사온 큼직한 ‘빨~간 통’, 오늘 처음으로 맛을 보았다. 와~~ 역시 1970~80년 대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1980년대 초 신혼 때에 우리는 이른 아침에 이 coffee를 통 채로 누워있는 서로의 코에 들이대며 잠을 깨워 주던 시절이 연상되는 Folgers를 오늘 다시 맛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싼 듯하면서도 [gourmet coffee에 비해서], 독특한 추억의 향기와 맛… 어찌 잊으랴? 이번에 내가 손수 손으로 고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1-cup coffee maker는 특히나 Folgers의 맛을 잘 살려주었다.

 

 

 

교황이 돌았나? 솔직이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동성결합, 결혼 [civil union? 이것이나 marriage나.. ] 을 endorse를 한다고?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어떻게? 혼란이 나를 휩싼다.  [Natural] Morality에 관한 것에서 후퇴를 시작하면 가톨릭 교회는 사실 끝이다. 어떤 인간이 정직하게 옳은 소리를 낸단 말인가? 교황이 거짓 목자란 말인가? 이것으로 [개XX] Trump는 재선이 될 확률이 조금은 높아질지도 모르는 것인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 베드로의 후계자, 로마 교황이 성경, 기본교리를 모를 리가 없는데… 어떻게? 교회로 줄어드는 신자, 사람을 더 끌어들이려는 것이 목적인가? 나는 바로 이 문제로 나는 바이든 에게 점수를 조금 깎은 것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레지오 입단 10년, 나에게 무엇이었나?

10년간의 흔적, 레지오 활동수첩, 2010~2020

오늘은 2020년 10월 19일! 무슨, 어떤 날인가?  정확히 10년 전, 그러니까… 2010년 10월 19일을 기억하면 된다. 내가 바야흐로 도라빌 순교자 성당 자비의 모후의 화요일 레지오 주회합에 입단을 탐색하러 처음으로 참석한 날이다!

그래,  정확히10년이다. 10년이 흘렀다. 옛날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그러니까 까마득한 세월이라고 듣고 이해하며 살았지만 지금 10년의 느낌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어떨 때는 십 년 전이 바로 엊그제 같은 느낌인 것이다. 이것은 물론 내 현재 나이 탓이기도 하다.

바로 엊그제 같던 2010년 10월 19일, 덤덤함 반半, 기대 참 반半의 심정으로 그날 나는 앞으로의 10년의 시작의 첫발을 디디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절박한 기로에 선 듯한 ‘나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라는 깊은 생각으로 살고 있었다.  그냥 습관적인 변화가 아닌, 내가 알아왔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려고 발버둥 칠 때였다.

입단 이후 10년, 레지오는 과연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한마디로 나의 세계관이 완전히 다른 것을 바뀌었고, 나 자신이 나를 보아도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철저하게 완전하게 다른 사람, 다른 세계가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나는 이 10년의 ‘기념일’을 혼자서 소리치며 자축을 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그것도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전혀 뜻하지 않은 작은 기적도 경험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모든 작은 기적들의 가운데에는  ‘동정 마리아’의 인도하심이 있음을 나는 잊지 않는다.

개꿈의 매력, 추상적 죽음 외..

지난 밤엔 만화 같은 멋진 꿈속을 헤매다가 깨어났다. 멋지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무서운 운명적인 장면도 있었다. Model R/C airplane, 어렸을 때 나에게는 꿈의 장난감 중의 하나였던 것을 내가 직접 가지고 놀게 된 나의 모습은 정말 즐거운 것이었지만, 다른 쪽으로는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핵전쟁’의 시작을 기다리던 우리들 모습도 보였고,  2년 전 세상을 떠난 Tobey의 모습도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히 꿈에서 깨어남이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이런 ‘개꿈’, 나는 정말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기다린다.  오랜 치통이 사라지면서 더욱더 나의 꿈은 색채를 띄우게 되었나?

아름답고 행복한 30대의 부부의 운명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죽음으로 이르는 병으로…

“문門 밖에서” 라는 1980년대   [KBS TV 문학관] 드라마 의 한 episode를 보았다. 나도 잘 아는 ‘우리세대’ 임동진 씨가 주역으로 나오는 것인데, 30대 중반의 행복한 가장으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췌장암 말기로 진단이 되고 생을 서서히 마감하는 고뇌를 처절하게도 잘 그렸다. 이 드라마 처럼 30대는 아니었지만 2000년대에 50대 중반에 췌장암으로 타계한 동년배 친지 박창우 씨 생각도 나고… 또한 요새 갑자기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사실적, 실제적으로 느껴짐을 알고 놀란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죽음을 가까이 보고 느끼며 살았다고 자부를 했지만, 막상 내가 죽는다는 생각은 역시 추상적, 피상적인 것이었다. ‘설마 내가..’ 하는 저 속 밑바닥 생각을 나는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근래에 신체 정밀 검진 등으로 의료시설에 가까이 가면서부터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의료환경에 접하면 이제는 도저히 아무 큰 병 없이 늙어 죽는다는 것의 chance 가 아주 높지 않음을 실감한다. 그래, 나도 70년을 훨씬 넘어서 살았으니 몸에 하나라도 이상이 없을 수 없을 듯하다. 어머님은 80세를 넘기고 타계를 하셨지만, 나는 70대인 지금 죽는다고 해도 짧은 인생은 결코 아니다. 더 오래 살아도 크게 달라질 경험이 그렇게 새롭고 많을까? 그래 하루 하루를 새로운 삶으로 알고 경험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거의 우연히 single cup coffee maker에 관심이 간다. 우리에게, 특히 나에게 알맞게 coffee를 끓여주던 것, 언제가 갑자기 죽은 듯이 보이고 방치해 두었다가 거의 버리려던 직전이었다.  이것 혹시 내가 고칠 수는 없을까… 공돌이 습성이 발동해서 killing time을 목적으로 다시 갖고 들어와 work bench위에 ‘펼쳐’ 놓았다.  일 자체가 재미도 있고 single-cup coffee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고.. 어찌 또 saved by the bell 의 thrill 도 잊을 수가 있으랴?

밖의 다른 일거리가 아직도 손이 가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온 종일을 cute coffee maker를 고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결국은 완전히 고쳐서 다시 쓸 수가 있게 되었지만, 솔직히 돌이켜 보면 그렇게 분해할 정도로 고장 난 것이 아니었다. Hot flush만 해도 될 것이었다. 왜 이렇게 나는 시간낭비를 한 것일까?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유익한 소일거리였다고 자위를 한다. 머리의 두뇌세포를 썼으니까…

완전히 고쳐진 single cup coffee maker가 다시 부엌에 모습을…

미사 후 ‘하얀 풍차’의 즐거움..

비가 멈춘 새벽, 비교적 포근한 날씨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오늘 중에 이 ‘허리케인 성’ 폭우는 모두 지나갈 듯한데, 다행히도 지붕에서 비가 새지를 않았다. 이것이 왜 그렇게 나의 신경을 건드리는지… 

도라빌 순교자성당, 주일 8시반 미사에 가려고 이제는 깜깜해진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조금 습관이 되었나 보다. 나는 큰 문제가 없지만 연숙에게는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역시 이것이 그녀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인가,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어코 하는 것… 어떨 때는 참 얄밉기도 하지만 어찔할 수가 있겠는가?

주일 ‘진짜’ 미사, 큰 예외, 놀람 없는 것으로 그것으로 만족한다. 미사 후, 거의 예외 없이 성당 옆 하얀풍차 coffee & bakery에서의 social, 이것도 정말 ‘꾸준한 사람’, 조시몬 형제와 각종 화제로 일요일 아침을 마감하였다. 언제까지 이런 편안한 자리가 계속되려나 하지만 사실 얼마 남지 않았다. 이 형제님, 내년 초면 모든 ‘가장의 의무’를 마치고 귀국할 것이기 때문이다. 섭섭하지만 이렇게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  이 형제를 통해서 나의 final frontier의 하나인 조국 대한민국의 흐름, 맥을 잡으려고 노력을 한다. 매우 공정한 정치, 시대관을 지닌 이 형제님의 의견은 믿을 만하게 느껴진다.

내일은 조금 신경이 쓰이던 일, 심장전문의 cardiologist 를 만나는 날이다. 비록 검사결과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전에 간단히 보고를 받았지만, 솔직이 말해서 아직도 겁이 난다. 그  primary care 순병원의 진짜 의사도 아닌 여자 NP  Nurse Practitioner 의 겁주는 말들 때문인가… 하지만 절대로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생각하자!

며칠 전부터 catholic website에서 갑자기 보이던 이름, Carol Acutis.. 이 ‘아이’는 누구인가?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고 그 이름은 15세 이태리 소년의 것이었다.  오늘 거의 우연히 자세하게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1991년에 태어났고 2006년에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소년, 그가 ‘복자, blessed’ 품을 받은 것이다. 암만 생각해도 이해는 안 갔지만 자세히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신세대의 성인’ 의 model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Computer같은 digital technology를 신앙적 바탕에 의해서, 하느님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알았던 어린 소년이었다. 성체신심에 심취하고, 주위의 불쌍한 사람들을 사랑하였고, 결국은 그에 의해서 기적이 발생을 하고… 15세 소년이 어떻게… 나의 15세를 기억하면 말도 안 된다. 나의 중3때가 아닌가?  그 나이에, 궁극적으로 성인품이 오른다는 사실 그것만도 기적중의 기적이 아닐까?

Indian Summer, 가회동 골목의 추억…

Indian Summer 라고 할 수 있는 날씨가 예보된 날, 85도까지 오른다고는 하지만 속지말자, 이 85도는 8월의 그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기분이 상쾌한 그런 뜨거움인 것이고, 낮과 밤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낮에는 옷을 하나씩 둘씩 벗고 지내다가 갑자기 저녁에 움츠리는 날, 까마득하게 오래 전[1950~60년대] 가회동 골목에서 그것도 10월 경, 오후에 많이 놀았던 추억들, 저녁때까지 짧은 옷을 입고 신나게 놀다가 갑자기 추위를 느끼며 집안으로 뛰어들어오던 추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Back porch screen door의 hinges 등을 포함한 hardware를 $30에 order를 하였다. 이미 home depot에서 사온 것이 있지만 이번에는 조금 고급스러운 것을 쓰기로 했다. 이제는 집에 조금은 투자를 할 때가 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일까? 문짝에 $30 이면 사실 투자 근처에도 못 가는 것이지만…

예상 밖으로 10% rain chance가 100%로 바뀌었는지 부슬부슬 낮부터 내린다. 다행히 골머리 썩히던 일, porch stud base plate, 썩은 것을 빼내고 새것으로 갈아 넣었다. 오랜만에 ‘제값 주고 산 미제’  DeWalt reciprocating saw 를 꺼내어 효과를 보았다. 이것을 오래 전에 샀을 때는 $$에 대한 큰 신경을 안 쓸 때였지… 그런 적도 있었지.. 그립다, 그 시절들이… 언제부터 내가 그렇게 구두쇠로 변하기 시작했는지… 그 정도라도 수선을 피웠으니까 지금 이 정도로 집안을 지탱하는 것이 아닐지.

 

조시몬 형제, 귀엽다고나 할까… 우리보고 낮 미사 (평일미사)는 언제부터 나올 거냐고 묻는다.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꿰뚫어 보는 것인지, 이 친구의 특기인가… 사람자체는 깊이 알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신심 좋고 성격에 이상 없는 형제님을 요새 찾기가 이렇게 쉬웠을까. 하지만 얼마 있으면 이별을 해야 하는 그것이 항상 머리 속에 남아있다.   화요일 미사를 항상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레지오 주회합 끝나자마자 바쁘게 성당으로 drive를 하는 것은 조금 stress로 느껴지기도 하니… 성모님, 어쩔까요?

Biden picket, 가을의 산책로에서..

Halloween 과 Politic 의 symbol이 한 군데에…

이틀째 연속으로 싸늘하고 청명한 이른 아침 산책길을 걸었다. 요새는 수영장 쪽으로 안 들어가고 연숙과 같이 걷는다. 며칠 전부터 부쩍 많이 보이는 Biden picket들, Trump picket보다 훨씬 많은 것, 이 동네도 30년을 살면서 그 동안 정치적 색깔이 변한 모양이다. 예전 같았으면 99% ‘빨간 그 XX’의 것이었을 텐데. 이것은 확실히 이성적이고 배운 젊은 가족들이 많이 눈에 뜨인 것에서 내가 짐작하는 그런 이유가 아닐까? 이렇게 극단적이 아닌 온건한 분포를 가진 동네, 나라가 나는 좋다. 어떤 것에서든 과격한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카톡 레지오 주회합의 audio recording setup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70년대 oldie, 젊은 연인들…

 

오늘은 레지오 주회합 날, 이것 별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인다.. 이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신경이 쓰여야 하는 것이니까. 다른 단원들도 그 정도의 관심과 시간, 노력으로 ‘구색을 맞추어’ 주면 얼마나 성모님이 좋아하실까? 가까스로 올해 연례 사업보고서가 완료가 되었다. 이번에는 어찌 연숙이 혼자서 다 하였다. 왜 그랬을까? 단장인 나는 ‘논평’정도만 하면 올해는 넘어가는 것이다. 어떤 논평을 공식기록으로 남길 것인가? 물론 코로나에 의한 나의 생각이 분명히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현재 진행중인 ‘자비의 모후’ 역사임이 분명하니까.

2020년 9월이 간다…

그제는 조금 예상 밖의 하루가 되었다. 80도를 넘고 습기가 찬 열대성 공기 때문에 그랬는가? 여름 옷차림으로 땀까지 오랜만에 흐린 것,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을의 노래를 그리다가 무안을 당한 느낌이었다.  (묵주)기도도 모두 거르고, 특별한 일도 없었던 것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할 것은 다 했다. 성경통독, 아침식사, 점심 혼자 해 먹기, Deck floor 를 모두 고친 것도 하나의 성과라고나 할까? 하지만 묵주기도를 전혀 못 했던 것이 나를 실망케 한다.

가끔 재는 혈압, 연숙은 의외로 너무나 높아서 실망, 나는 그런대로 큰 변화가 없었디. 과연 이런 혈압수치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솔직히 모른다. 그것이 문제다. 그저 현재 살고 있는 방식대로 건강하게 살면 충분하지 않을까?

레지오 주회합, 다시 시작을 했고 계속하는 것은 가상하지만 솔직히 한심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렇게 실망시키는 단원들이 아직도 나를 쳐지게 하는 것일까? 과연 우리는 이것을 하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이것을 놓칠 수는 없다. 인자하신 성모님의 얼굴을 의식하려고 발버둥을 치며 나는 살고 있으니까…

9월이 거의 다 지나간다. 8월 초부터 블로그에서 도망 갔던 것만 기억이 나서 2개월 째라는 것은 확실히 기억을 한다. 2개월은 나에게 어떤 시절이었는가? 정말 입안의 느낌의 변화가 제일 기억에 남을 것이고, 내 몸의 건강과 목숨의 가벼움을 가까이 느끼면 살았던 것,  조금씩 기억을 남기자.  현재 가회동 모습의 놀라움도 남기고…

아쉬움은 많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씩 이렇게 ‘문명의 이기, 카톡’으로 레지오 단원들이 모인다는 사실,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 나부터 시작해서 모두들 나와 비슷한 신선한 만족과 행복감을 받았으리라 생각하니까.  Key West, Florida 로 놀러 간 카타리나 자매, 그곳에서 주회합에 참여 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주위의 ‘시끄러움’은 성가시긴 했지만 다른 각도로 보니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주회합이 아닌가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까지 들었다.

오늘 기온, 이것을 보니까 지난 며칠보다 무려 20도가 떨어졌다. 또 하루아침에 긴 팔, 긴 바지가 필요한 것이다. 귀찮지만 싫지는 않다. 지난 며칠 ‘열대성 하늘’이 싸늘한 가을비의 하늘로 바뀐 것을 내가 어떻게 싫어할 수가 있겠는가?

 

아~ 흑백의 아름다움이여~~

건주가 사진을 보내왔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나의 모습이 있는 조금은 희미한 흑백사전. 그것은 건주 wife, 황인희씨가 서독으로 취업 차 출국하던 김포공항의 사진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또렷했으나 나는 그 정확한 시기를 기억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확실히 1972년이란 것, 옷차림으로 이름 여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건주가 제대한 것이 1972년 봄이었다고 해서 알게 된 것. 거기에는 신언경씨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그야말로 생전 처음 보는 사진, 나의 촌스러운 모습… 재미 있기도 하고, 가슴이 찌릿하기도 하고… 1972년 경이면 나는 ‘할 것이 없어서’ 유학시험을 보답시고 학원에도 다니던 시절이 아닌가. 1971년부터 출국하기까지 나는 이렇다 할 사진도 일기도 없기에 나에게는 거의 신비로운 미지의 세월이다. 이제는 아마도 그런 시기로 남아있게 될 승산이 크기에 이 사진은 더욱 의미를 주게 된다.

함께 온 사진은 건주가 입대하기 전에 백양로에서 찍은 사진인 모양이다. 이 사진의 사연을 나는 전혀 모르지만 1969년 3월이라는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사연이 있다 나도 그 시절에 그곳에 있었지 않은가? 나의 연세대 시절 추억의 절정을 만들어가던 해, 바로 그 시절이었구나… 3학년 거의 기타에 심취되었던 것, 4학년 거의 등산에 빠졌던 것… 그것에 대한 대가는 그 이후부터 일생을 걸쳐서 치러야 했지 않았던가?

건주의 연세대 1969년 백양로의 추억이여..

하루 종일 음산하고 써늘하고 어둑거리는 날이었다. 오전의 레지오 주회합을 끝낸 것의 여파를 타고, 오랜만에 불고기(갈비)로 배를 채운 후 아득하고 포근한 늦은 낮잠을 연숙과 둘이서 잔 것은 너무도 꿀맛이었다. 불면증의 불안을 떨치듯 깊은 잠을 자는 듯한 소리에 나도 꿈을 꾸듯 말듯한 한 시간여를 즐겼다.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넉넉히 남아있을까… 감사합니다, 성모님이시여…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는 video가 일본 TV 드라마, ‘내가 걷는 길’이었다. 왜 그것을 보게 되었는지 우연 중 우연이지만, 기분은 다시 상쾌하고 깨끗하고 추억적이다. 이런 일본 것을 보았던 시절 10년도 훨씬 전인데, 이것도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듯 한 것이 조금은 슬프다. 한때 나를 그렇게 도피처와 위안처를 마련해 주었던 주옥 같은 ‘일본애’들 것, 역사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 당시 나의 피난처 역할을 멋지게 해 주었다.

 

9월의 마지막 날이 결국은 나에게 떨어졌다. 9월도 다 가고… 내일은 10월의 멋진 날들이 시작될 것인가? 아~ 나는 왜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민감한 것일까? 내일이 고국의 추석이라고 한다. 이날을 체감으로 잊고 산 지가 거의 60년에 가까워옴은 나를 조금 움츠리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가 알고 지낼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하지만 느낌은 거의 잊었다고나 할까. 예외는 가회동 198번지 골목을 다시 보며 99% 그날의 느낌은 되살아 나온다. 얼마나 기적적인 추억의 힘인가? 감사합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가회동 嘉會洞 198번지

꿈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생생한 사진으로 나에게… 우리들의 소굴, 골목이 여전히..

거의 6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20세기 1960년대 중반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집 골목, 그곳의 현재 모습을 사진으로 가까이서 보는 기적을 체험한다. 솔직히 이것은 거의 꿈, 기적 같은 느낌이다. 그야말로 time machine을 탄 기분인 것이, 머리 속에 각인된 기억의 사진과 지금 보는 사진이 거의 비슷한 것이다. 집의 위치들은 변함이 없지만 개량되고 말쑥해졌다. 우리들이 모여서 자치기, 다마[구슬]치기, 딱지치기, 골목야구, 다방구, 찐뽕, ‘왔다리 갔다리’, 말타기, 칼싸움, 술레잡기 등으로 시간을 소일하던 그 찻길과 골목길에는 흙이 전혀 안 보이지 않게 포장이 되어있다. 어쩌면 이런 기적이… 상전벽해 桑田碧海라고 그 자리들이 모조리 ‘도시계획’에 의해서 없어질 수도 있는 강산이 6번 변할 수도 있는 세월이 지났는데 거의 전의 모습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나의 추측에, 아마도 가회동 근처지역이 법적으로 보호를 받는 특수구역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거의 60년 이상 같은 모습을…  또한 다른 기적을 바란다면, 죽기 전에 한번 다시 그 골목을 거닐며 나의 눈으로  보고, 나의 늙어가는 손으로 땅을 만져보고 싶은 것 뿐이다.

6.25 동란 발발 직후 아버지는 3살도 채 안된 나, 누나, 엄마 셋을 남겨놓고 납북, 영영 소식이 없었다. 원산이 고향이셨던 어머니는 거의 혈혈단신 서울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당시 우리는 원서동 ‘병세네 집’ 의 단칸방에 숨어서 휴전을 맞아야 했다. 그렇게 원서동의 추억으로 시작된 우리는 재동국민학교의 인연으로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교 뒷문 쪽에 위치한 가회동 집으로 이사해서 중앙고등학교 1학년 초 때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제일 재미있는, 즐거운, 개구쟁이 시절을 이 집에서 보낸 셈이다.  따라서 그때의 추억은 생생하게 나를 오랜 세월 나를 포근하고 행복하게 했다.

 

땅과 흙에서 놀았던 골목이 완전히 돌덩어리로 포장이… 이곳의 애들은 어떻게…

가회동의 추억, 오래 전,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 내가 이곳에 남긴 블로그의 제목이었다. 그 당시 나의 기억력은 그런대로 평균이상으로 꽤 많은 어릴 적의 추억을 거의 사진처럼 그릴 수 있었고, 외롭거나 슬픈 감정이 들면 그 머릿속의 ‘추억의 사진’들을 꺼내 보며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의 기억력도 나이에 비례해서 급속히 쇠퇴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 가회동의 추억이라는 나의 기억은 지금 읽어봐도 아주 상세한 이야기들이었지만, 결국은 이것은 남이 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죽을 때 가지고 갈 것이었다.

가끔 ‘가회동’이라는 keyword로 이 블로그를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나의 추억을 거의 같이 공유한 분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우리가 살던 집 ‘주인집 누나’의 현재 소재지까지 알고 있던 분도 있었다.  가회동과 재동학교를 나보다 더 자세히 기억하기도 했는데 특히 재동학교 지하실에서 달걀귀신이 나온다는 도시전설을 알려주던 어떤 형제님… 정말 꿈을 꾸는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가회동 같은 골목 자락에 살았던, 재동학교, 중앙중고등학교 10년 후배, 이민우 후배가 연락을 주었다.  이번 case는 그야말로 grand slam격이어서 며칠 동안 나는 행복한 추억을 다시 즐기게 되었다. 내가 알고 지냈던 동네 꼬마들의 소식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야구꼬마 오자룡, 막다른 골목의 윤표네 집 등 이들과는 같은 시절에 놀았던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시절보다 10년 정도 뒤에 그곳에서 추억을 만든 경우다. 오자룡은 자기 형과 친했다고 하고… 게다가 골목 막다른 집에 살던 ‘홍윤표’ 란 아이가 나를 따르던 애였는지, 아니면 그 동생인지.. 그 애가 머리가 좋아서 경기, 서울의대, 성형외과의사, 뜻하지 않게 타계를 했다는 소식들.. 정말 이건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느낌들이다.

나와 개인적인 연락이 되어, 지난 밤에 이 가회동 골목 후배의 답신을 받고 잠자리에서 한참을 뒤척거리며 그 동화 같은 시절을 그려보기도 했다. 이것도 향수 鄕愁의 마력 중의 하나다.  홍윤표, 준표 이름을 듣고 당시 그 애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들은 특히 엄마들은 그 골목에서 꽤 오래 남아 살았고 모두들 친하게 지낸 모양이다. 우리나 우리 어머니는 사실 그런 처지가 못되었음을 나는 당시에 실감을 못하며 산 거, 다행인가 아쉬움인가? 그러니까, 내가 알던 추억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을 것이다. 가정주부들, 말 그대로 일을 안 하는 엄마들, 그 당시에는 거의 모두 집에 있었으니까, 그들만의 그룹을 가지고 있었겠지. 우리는 그런 것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어찌 보면 조금 슬퍼지기도 한다. 일을 하러 하루 종일 밖에 계셨던 엄마를 다시 그려보면…  참, 우리도 너무 철이 없었고, 나이가 먹어서도 하나 나아진 것이 없었으니 울고 싶다…

 

골목 왼쪽 2층집, 198번지.. 이층 위로 거대한 전망대가 올라 섰구나…

이 활달한 느낌의 이민우 후배가 이번에는 사진과 짧은 video file을 보내 주었다. 사진은 high resolution 가회동 골목의 모습을 담았고, 비디오는 ‘북촌계동’ 으로 중앙중고가 있던 계동골목의 모습을 보여준다.  ‘북촌계동’ 비디오, 계동입구부터 중앙중고 교문근처까지 천천히 걸으며 찍은 것이다. 교문부근은 그런대로 알아 보았지만 계동입구는 100% 내가 기억한 모습이 아니었다. 100% 변한 것이다.

핵심은 역시 골목사진,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너무나 고화질의 사진이라서 거의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자세하기 관찰할 수 있을 정도다.

이민후 후배가 살았던 집, 195번지는 아마도 이희천 3형제가 살았던 그 집인 듯하다. 그 다음 집이 심술 맞은 수학선생 집 이원영이 살던 집을 것이다. 우리가 살던 집 198번지는 거대하게 2층 양옥으로 고급화 된 듯하고, 바로 앞의 한옥, 오자룡의 집은 전과 거의 같은 모습, 막다른 집의 홍윤표가 살던 집도 예전과 거의 비슷하고….. 와! 이런 기적이…

지난 밤에도 머리만 깨어있으면 가회동 골목의 사진을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time machine을 탄 기분이었다. 어쩌면 그 골목이 그대로 건재해 있을까? 그곳에서 보내던 그 세월들이 그대로 살아나는 환상에 빠지고 깨어나고 를 반복하고 있었다.

사진의 size [high resolution]가 워낙 크기에 자세히 들여다 보니 골목 끝자락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 아~ 역시 세월의 흐름은… 그곳은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상가의 간판들이 보이고, 우리의 보금자리였던 2층집은 거대한 구조물로 치솟아 있었다. 유일한 추억의 위안은 앞 쪽으로 남아있는 ‘전통한옥’들 뿐이었다.  궁금한 것 중에는 이곳에는 현재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혹시 옛날부터 계속 살았던 사람들은 없었을까…  이런 추억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나도 참 못 말리는 인간이 아닐까?